(1)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선지자들…….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 사무엘과 다윗과 엘리야와 이사야, 그리고 세례 요한과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을 살펴볼 때, 우리는 일종의 경외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불가능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꿈과 환상을 좇아 순종하였을 뿐 아니라 환란에 빠진 자기 민족을 기근과 속박과 전쟁에서 구해낸다. 거짓 선지자와 우상 앞에서 담대히 맞닥뜨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싸워 이기는 용기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의 피를 뿌리는 그들의 믿음에 감탄을 금할 길 없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들은 우리와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믿음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리 자신이 왜소해지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항상 그들을 특별한 존재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나 조금만 더 성경을 들여다보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요 동일한 성정을 지닌 존재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역시 목숨의 위협을 느낄 때 두려움으로 위축되어 거짓말을 하였고, 자신의 혈기를 이기지 못하여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기도 하고, 물질과 성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을 鄕嗤8? 자녀교육의 한계에 부딪혀 실패하기도 하였으며, 옥에 갇혀 절망하며 의심하기도 하였고, 사역에 대한 갈등과 욕심으로 동역자와 다투어 갈라서기도 했던 사람들이었다. 성경 기록의 진실성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위인들의 삶의 모습을 전혀 과장하지 않을 뿐아니라 그들의 인간적인 한계를 가감없이 여과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서 나타난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한결같은 죄인이요 부족한 인간들임을 오히려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지닌 인간적인 성정에 의해 그들이 어떻게 실패하였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달랐다. 그들의 삶에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왔을까? 그들 역시 떡의 전쟁 속에 휘말려서 고민하고 몸부림치며 살았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그 전쟁의 승리자들이 되었다. 그 비결을 알고 싶은 것이다.



(2)


구약시대의 선지자 중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엘리야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명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구약의 선지자 가운데 에녹과 더불어 죽음을 보지 않고 바로 하늘로 승천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었으며, 예수님이 변화산상에 올라가신 순간 모세와 함께 나타났던 두 사람 중 다른 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만큼 하나님께 특별대우(?)를 받은 사람이 있을까? 예수가 세례요한을 가리켜 구약의 선지자와 율법을 통해 “오리라 한 엘리야가 바로 이 사람이다.(마 11:14)”라고 밝힌 것과, 예수의 놀라운 기적을 목도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러 엘리야가 다시 나타났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마 16:14)을 미루어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뇌리에 엘리야는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인상을 남긴 대 선지자임에 분명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엘리야-세례요한-예수 사이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서 의식주를 초월하여 가난하고 검소하게 살며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어 불의한 부자와 권세자들에 대해 맞서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는 데에 있다. 엘리야……. 그는 물질적 풍요와 권세를 누렸던 구약시대의 대부분의 선지자들과는 달리 광야 생활을 하며 떡과의 전쟁에 대해 최초로 공개적인 선전포고를 하고 정면 승부를 걸었던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선지자 엘리야가 후세에 남긴 이미지는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왕과 제사장과 백성들을 신랄하게 공격하고 준엄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개혁자의 모습이다. 엘리야의 인생을 통 털어 가장 클라이맥스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갈멜산에서의 대 접전, 떡과의 전쟁 사상 최대의 승리를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바알(Baal)신과 여호와의 한 판 승부를 이끌어내어 바알신과 아세라신을 숭배하던 거짓 선지자 팔백오십인을 죽인 사건이었다. 이 전투를 통해 엘리야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잊을 수 없는 불후의 명성을 남기게 된 것이다.


우리는 갈멜산의 전투를 전후한 역사적 배경과 사건 상황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전투를 벌였던 바알신과 아세라신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을 육체의 떡으로 미혹하여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도록 하던 물신(物神)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와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는 백성들을 질타하며 그 바알신을 추종하던 거짓 선지자들을 한꺼번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엘리야…. 그 승리의 비결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편, 물신 바알을 물리치고 엄청난 승리를 거둔 엘리야의 사역이 어째서 갑자기 위축되었으며, 결국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에 의해 이스라엘 역사 속에 본격적인 바알 숭배와 사유재산제도가 도입되고 말았는가 하는 이유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장차 천국에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제시하여 깨닫게 하기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영토에서 하나님의 주권 즉 그 거룩한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나라다. 다시 말해 국가의 3요소인 주권-백성-영토가 모두 하나님께 귀속된 나라이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통치되는 나라. 모든 풍요와 배부름과 생명이 넘치는 나라. 에덴동산에서 잠시 선을 보였으나 곧 상실해 버린 나라.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천국에서 마침내 완성될 나라. 그 사이를 걸어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그 나라의 모습을 여러 가지 모형으로 보여주신다. 가정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말씀을 통해, 선지자를 통해, 그리고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모습을 통해, 성도들의 삶을 통해 그리고 교회를 통해.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의 역사다. 그러나 그 땅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으로 다스려지는 나라가 되어야만 했다. 따라서 구약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살아가는가 아니면 그 땅의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선택의 역사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가나안을 지배하고 있던 물신 바알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하나님의 주권을 찬탈하려고 내세운 사단의 군대장관이었다. 가나안은 떡의 전쟁을 치루기 위한 전쟁터였고 그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의 삶의 양식, 존재 양식을 지배할 신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여호와냐? 바알이냐?” 하는 이 선택은 떡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선택이기도 하다.


바알신은 가나안 지방의 생산신(生産神)으로 농경 사회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으로서 믿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바알의 배우신(配偶神)으로 함께 숭배되던 아스다롯(더러는 아세라라고 불려짐)역시 다산과 생산의 신으로 성적인 해방과 쾌락을 추구하며 바알과의 성적 교접에 의해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바알과 아스다롯을 숭배하는 산당에서는 풍요를 기원하는 행위로서 창기들과 미동들에 의한 문란한 성적인 행위가 주술적으로 함께 행해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경문화를 받아들일 때 팔레스타인 지방의 타락한 바알 숭배를 함께 받아들임으로써 여호와 신앙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것은 물질 우상 숭배와 성적인 타락을 동시에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대 왕들은 깊은 우상 숭배와 음행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조상들이 믿어왔던 여호와 신앙을 전부 저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 여호와와 바알을 동시에 숭배하는 혼합주에 빠져있었다. 아무튼 바알 숭배 사상은 물질과 성을 사유화하여 마음대로 소유하겠다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악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끌어내신 후 40년간 광야생활을 통해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을 시킨다. 뿐만 아니라 모세의 계명과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경제법칙을 상세하게 충분히 제시하였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경륜 가운데 다스려지는 청지기 경제(oikonomia)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치 방식은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그 나라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신정정치였다. 신정정치와 청지기 경제의 핵심은 모든 정치적 권력과 물질적 재부의 소유는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을 위임받아 다스리는 청지기로서 살아갈 것에 대한 요청이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타락한 죄성으로 인한 권력의 불평등과 부의 불균형이 발생할 것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조정하여 다시 재분배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장치와 제도를 마련해 두었다.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십일조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 명령과 안식일과 안식년 제도를 통한 절제와 희년 제도들은 물질의 재분배를 통해 영구적인 빈부의 격차가 확대재생산 되는 것을 억제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기업(inheritance)은 토지였다. 12지파를 통해 각 가족 단위로 분배된 토지는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줄 기업으로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물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경제적 기초였다. 따라서 토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해 놓은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본권이었다. 인간 사회의 타락한 본성에 의해 토지의 사용권이 매매되고 토지의 주인이 노예로 팔려감으로 정치 경제적인 불균형이 발생할지라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 희년(the year of Jubilee)이 돌아오면 노예는 해방되고 토지는 다시 원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토지 되무르기를 통한 경제 정의의 회복이었으며, 성경전체를 통해 흐르는 구속 사상(redemtion)의 현세적 실천이었다.(레 25 : 10, 24) 즉 해방의 나팔소리(yobel)와 함께 50년 마다 임하는 희년은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고편이요 예행연습이었던 것이다.


누가복음 4장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될 때 이 희년 사상이 선포된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을 선포함으로써 그의 사역을 시작했던 것이다.(눅 4:18-9) 그리스도의 초림은 죄에 빠져 육체적 영적 가난에 허덕이는 웅크린 자들을 십자가의 피로 다시 사서 해방시키는 구속(redemption) 사역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신분 해방과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기업의 회복이기도 하다. 따라서 구약 시대 희년 되무르기의 핵심 내용이었던 노예 해방은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영적 해방으로, 토지 되무르기는 경제 정의를 위한 기업의 회복으로 확대되었다. 그것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소명과 부르심을 통한 직업(calling)에서의 청지기 직분을 감당하는 새로운 삶으로의 거듭남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제 활동의 기초는 땅에 있다. 토지의 사유화가 유지되는 한 경제적 불평등과 빈부의 격차는 심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희년 제도를 통해 토지 되무르기를 실시하도록 명한 이유이며, 이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도 여전히 유효한 경제 개념이다. 사회적 경제 정의의 회복을 위해서는 토지의 사유화를 막고 토지의 공개념을 실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는 토지 사유화를 통한 사유재산제도의 뿌리 깊은 권력 구조가 거대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를 되무르기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공산주의 체제가 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지난 세기의 사회주의 국가를 통한 실험을 통해 엄청난 피의 댓가를 치르고 입증된 바 있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 의해 다스려지는 어떤 사회 체제도 가난의 확대 재생산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개인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체제나 국가에게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사회주의 체제 모두가 결국은 사유재산제도(chrema- tistike)의 변형된 형태일 뿐이다. 오히려 거대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집단주의적 통제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여 가난의 균등 분배만을 낳았던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희년 제도가 실시되며 경제적 신정정치를 이루었던 기간을 600-700년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가나안 정복 이후, 사사시대의 신정정치가 왕정으로 바뀐 후에도, 비록 혼합주의에 의한 바알 숭배가 부분적으로 진행되기는 하였지만, 토지의 기업 사상이 이어지고 되무르기가 실시되었던 흔적과 기록이 남아있다. 열왕기상 21장에서 아합왕이 농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었을 때, 나봇이 담대하게 여호와가 주신 기업을 왕에게 줄 수 없다고 저항한 것으로 보아 왕권을 초월한 신정정치의 기업사상이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깨어지고 이스라엘 역사 속에 본격적인 바알 사상 즉 사유재산제도가 국가적으로 유입된 것이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이세벨 왕후의 시대였던 것이다. 시돈왕 엣바알의 딸로서 이스라엘의 왕비가 된 이세벨은 열열한 바알숭배자로서 사마리아에 바알 신당을 짓고 아세라 목상을 세웠으며(왕상 16:31-2) 여호와를 따르던 많은 선지자들을 죽이고 탄압하였다(왕상 18:4). 그때 그것을 목숨을 걸고 반대하여 대항하였던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였던 것이다. 따라서 엘리야의 갈멜산 전투는 여호와냐 바알이냐를 선택하는 한 판 승부였고, 타락한 떡의 유혹에 대항하여 생명의 떡을 선택하는 치열한 전쟁 마당이었던 것이다.



(3)


하나님이 선지자를 택하실 때에 처음부터 준비된 사람을 택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가 부족하고 겁이 많은 사람들을 선택하여 자신의 무능함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을 향한 절대 의존적 삶을 체험케 한 연후에 점차 훈련과정을 통해 그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마침내 전투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엘리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엘리야는 느닷없이 막강한 권력자 아합왕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징벌을 선포하는 역할을 명받는다. 엘리야 자신의 말이 다시 있기 전에는 이스라엘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당돌한 예언을 한 이후에 그는 그릿 시냇가로 도망간다. 그리고 삼년 반 동안의 광야 생활이 시작된다. 그릿 시냇물을 마시며 까마귀가 가져다주는 떡과 고기를 먹으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여 그릿 시냇가로 몸을 피할 때 느닷없이 까마귀를 통해 내가 너를 먹이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고, 엘리야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지속되는 가뭄 속에서 아합왕은 군사들을 풀어 엘리야를 잡기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실 그릿 시냇물조차 말라가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비가 내리지 않기를 간구해야 했던 엘리야의 처절한 심리 상태가 어떠했을지 우리는 짐작키 힘들다.


왜 하필 까마귀인가? 까마귀는 성경에서 항상 불결하고 불길하며 은혜를 모르는 새로 인식되어 왔다. 노아가 방주에서 물이 빠진 상태를 알고자 하여 먼저 까마귀를 날려 보냈을 때 까마귀는 은혜를 저버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자고로 까마귀를 길조로 숭상하는 민족과 흉조로 생각하는 민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노아의 홍수 사건과 거의 유사한 홍수 기사를 다루는 수메르의 점토판에는 까마귀를 오히려 길조로 취급하고 있다. 아무튼 죽은 시체를 향해 몰려드는 불결하고 부정한 새 까마귀를 통해 먹일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아마도 엘리야는 절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엘리야가 깨달아야 했던 것은 가장 천한 짐승 까마귀를 통해 연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능한 실존의 체득이었으며, 까마귀까지도 복종시키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었을 것이다.


시냇물이 마르자 하나님은 다시 엘리아를 시돈의 사르밧 과부에게 보낸다. 그것도 바알 숭배가 극심한 시돈 땅의 가장 가난한 과부에게로 보내는 것이다. 그 과부는 가뭄과 기근으로 인한 가난 속에서 절망하여 이제 막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자신과 아들을 위해 떡을 해 먹고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세상과 결별하려고 불을 지필 나뭇가지를 모으던 중이었다. 하필 그런 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어 그에게 떡을 구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 떡을 먼저 바치라는 엘리야의 명령을 순종해야 했던 과부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그러나 거기서 엘리야는 다시 절망 중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통의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아니하는 신기한 기적을 통해 자신과 과부의 집이 다시 소생하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또한 과부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한 생명을 위해 부르짖는 기도를 배우게 하고 생명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철저하게 깨닫게 된다. 마침내 엘리아는 이방 여인의 입에서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을 아노라(왕상 17:24).”는 유명한 고백을 듣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갈멜산의 전투에 임하는 것이다. 갈멜산의 승리는 이 광야 생활에서 준비된 것에 불과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체험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앞서 행하는 선지자에게 한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거대한 영적 프로젝트를 행하는 사람일지라도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생명의 가치를 먼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가족이 연변에 오기 전에 받았던 삼년 반의 포항 생활을 통해 체득했던 가장 중요한 훈련은 결국 돌이켜 보니 한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우리를 먹이신다는 일상적 떡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탈피였다. 일상적 삶과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이 단순한 믿음을 이론으로부터 실천으로 받아들이기가 그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평양과기대를 준비하는 가운데, 2003년은 정치 경제적인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조치와 한국내 정치경제 상황의 동결로 인해 아무도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는 그 프로젝트를 위해 물질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자금이 없어 더 이상 평양 현장에서 건설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이 중요한 영적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의 떡을 떼어 도울만한 크리스천들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하는 원망도 생겼다. 그러던 가운데 부활절을 앞두고 어느 날 새벽에 평양과기대를 위한 물질 후원자를 붙여주시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던 중, 느닷없이 마음속으로부터 “네가 먼저 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후원을 받아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처지를 뻔히 아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슨 돈이 있다고 먼저 물질을 내라는 것인지…….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단호했고 다음 순간 내가 한국의 어머니께 맡겨두었던 통장이 떠올랐다. 중국 오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통장이요,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받아 넣었던 통장이었다. 장남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눈물짓는 어머니께 무언가 마음의 위로가 되도록 연결고리의 역할로 맡겨두고 떠났던 통장이었다. 그 속에서 어머니 생활비와 용돈도 조금씩 드리며 어머니께는 아들의 통장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애틋한 그 통장이 생각난 것이다.


어머니께 E-MAIL을 드렸다. 그 통장에서 돈을 찾아 부활절 헌금으로 평양과기대를 위해 서울 후원회에 입금시키도록 부탁을 드렸다. 아내에게도 힘들게 동의를 구하고 마음을 정하고 나니 기쁨이 있었다. 이미 칠순이 넘으신 어머니……. 장남과 맏며느리를 갑자기 중국으로 보내놓고 상실감에 빠져 있던 중 어떻게든 대화할 길을 찾으시던 어머니는 뒤늦게 E-MAIL을 배우셔서 자식들에게 넋두리 겸 종종 편지를 보내시곤 하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때 답장도 못하였지만 내가 편지를 드리면 곧바로 답장을 해주시던 어머니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상하게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메일을 미처 못 열어 보셨나? 궁금해 하던 중 마침내 답장이 왔다. 그것을 읽자마자 나는 가슴이 아프고 쓰려 한동안 눈을 감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도무지 너희들의 믿음을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무런 장래 대책도 없이 살아가면서 아들은 덜컹 토론토로 유학을 보내놓고 등록금은 어찌하려고 이제 남은 이 돈을 헌금을 한단 말이냐? 네가 부탁하니 어쩔 수 없이 보내기는 보냈다마는 어제 밤 이 애미는 한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돈은 어쩌면 어머니에게는 마지막 남은 통 속의 밀가루와 같은 그런 돈이었을 것이다. 아들을 위해 마지막 떡을 해 먹일 그런 돈, 그것을 바치라니……. 그 돈을 찾아 후원회에 입금시키기 위해 은행 창구에서 아픈 가슴을 무릅쓰고 전표를 쓰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나는 또 한번의 씻을 수 없는 불효를 한 것임을 순간 깨달았다. 그리고 그날 밤 나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의 국제 코스타 본부에서 코스타 리더쉽 포럼에 와서 간증을 하라는 초청이 왔다. 코스타의 주요 책임 목사님들과 간사님들 앞에서 간증을 하는데……. 갑자기 성령께서 이 간증을 하도록 강하게 요청함을 느꼈다. 자신의 치부를 또 드러내는 것 같아 좀처럼 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으나, 결국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간증이 끝난 직후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으신 듯 했다. 특별히 K목사님께서 다가오시더니 큰 감동을 받으신 듯 앞으로 큰아들 다니엘의 학비를 당신이 책임지시겠노라고 장학금을 주실 것을 제안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 그 통장 안에 돈이 입금되기 시작했다. 더러는 보낸 분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돈도 입금되어 있는 경우가 있었다. 정말 밀가루가 마르지 않는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건은 사르밧 과부의 심정이었던 연약한 믿음의 어머니께도 큰 체험과 용기를 주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들과 손자를 직접 먹이시고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되신 것이다. 요즈음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평양과기대 건설 현장에서 건물들이 올라가는 장면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그 돈이 씨앗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갈멜산에서의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낸 엘리야, 기도로 삼년 반 동안 비를 그치게 하고 또 간구로 다시 비를 내리게까지 했던 대 선지자 엘리야를 생각할 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 엄청난 승리를 거둔 직후에, 한 여자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도망가며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청하는 나약한 모습이 갑자기 어떻게 튀어나왔을까? 자신이 열조보다 못함을 고하는 엘리야는 완전히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기까지 하다. 그 엘리야를 위로하며 하나님은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위로하시고 떡과 물을 먹이신다. 사십일간의 광야길을 행해 다시 호렙산의 굴 속에 숨어있던 엘리야에게 다시 하나님의 실존적 질문이 임한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만군의 여호와를 의지하던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가 어찌하여 굴속에 숨어 있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그러나 연거푸 두 번의 이어지는 동일한 질문에 대해 엘리야의 대답은 여전히 두려움과 불평에 싸인 대답이었다. 내가 여호와를 위해 열심이 특심이었으나 이제 그들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나만 홀로 남았으며 저희가 내 생명마저 취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과의 이 대화를 기점으로 엘리야의 역할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쇄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엘리야의 대답을 지켜보던 하나님은 엘리야를 대신할 후계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을 것을 명한다. 엘리야는 오해했다. 그 전투 이후로 자기만 홀로 남았다고 오해했다. 위대한 승리를 거두는 순간 자아 도취감에 빠져 그는 그 일이 자신이 직접 행한 것으로 착각을 했다. 그러자 곧 하나님 중심 사고에서 자기중심적 사고로 전환이 되었으며 여호와를 의지하던 그 믿음은 흔들리고 사라지게 되었다. 이세벨의 손이 자신의 생명을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자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튀어나오게 된다. 그리고 자기가 홀로 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 않은 사람이 엘리야 외에도 칠천 명이나 남아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광야 생활에서 엘리야를 지켜주었고 아합왕 앞에서 여호와의 권능을 펄럭이며 달려가던 그 능력의 겉옷이 엘리사에게로 넘어가고 만다.(왕상 19:19)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과 오해가 여기에 있다. 위대한 일, 큰일을 행한 직후, 자신이 그 일을 행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닥친다. 그리고 이전의 그 놀라운 믿음은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지고 깊은 회의와 패배감이 몰아닥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듯이 엘리야 역시 동일한 성정을 가진 약한 존재였다.(약 5:17)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갈멜산의 위대한 승리를 일구어낸 사람이기도 했다. 하나님의 엘리야를 향한 사랑은 그야말로 특별했다. 엘리야가 지치고 힘든 상태로 빠져들자 그를 위로하여 먹이면서 곧 그의 후계자를 세우고 마침내 그를 신속히 하늘로 불러올리기까지 했다.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신 것도 역시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었다. 가나안의 모세는 망령된 행동으로 그 이전에 행한 업적들조차 까먹게 될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특별히 열심이 특심인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순교자로 미리 데려가신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자신이 퇴진할 때를 찾지 못하여 결국 역사의 오점으로 남게 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더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도록 명하신 일들의 경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갈멜산의 전투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바알신의 허망함을 만 천하에 나타내고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임을 선언하는 큰 이정표로 남게 되었다.(왕상 18장) 그러나 그 같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 여호와 신앙을 빼앗기고 그 땅에는 바알신앙과 사유재산제도가 정착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왕상 21장) 엘리야의 움츠려든 태도와 비겁한 퇴각이 부른 결과인지 우리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그 모든 일 가운데 여전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국지전에서 졌다고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며 장렬한 갈멜산 전투에서의 승리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지자의 역할은 부분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십자가에서 모든 구속(redemption)의 역사를 단번에 다 이루신 예수의 승리는 완전하다.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누가 선지자인가? 홍수를 미리 알고 예언했던 에녹이 최초의 선지자인가? 하나님께서 친히 선지자라고 인준하셨던 아브라함이 더 큰 선지자인가?(창 20:7) 아니면 갈멜산에서 팔백오십인의 거짓 선지자를 죽인 엘리야가 가장 큰 선지자인가?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마 11:11)” 구약의 선지자들은 여전히 예수의 희미한 그림자를 기대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미 십자가의 구속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천국에 속한 자요, 그중에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이 예수에 대해 알았던 것 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더 큰 선지자들인 셈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성정이 성경에 나타난 선지자들보다 연약해서가 아니다. 같은 성정을 가진 그들이 남다른 능력을 나타낸 것은 바로 그 당시 그의 믿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적으로 열려 있었기 때문이요, 다음 순간 그들이 실패했던 것은 그 믿음이 닫혔기 때문이었다.


평양과기대가 과연 세워질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기에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어쩌면 우리의 믿음에 의해 그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평양과기대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세워진다면 그곳은 갈멜산의 전투만큼이나 치열한 떡의 전쟁을 벌이게 될 전쟁터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더 큰 관심사는 대학이 세워지느냐 하는 것 보다 이 모든 구속의 역사 가운데 뛰어들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의 그 믿음 속에 나타나는 생명을 살리는 과정들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