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2년 11월호

내 전공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tmKOSTA에서 발견한 답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유학을 온 나는 처음에 전공 정하는 것 부터 고민이 많았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국에 와서 영어를 배우라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미국에 왔지만 특별히 유학을 와서 어떤 것을 공부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 던져진 18살의 나는 정말 고심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학을 오자마자 내가 미국에 온 것이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라는 고모의 열성적인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름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을 한 후였기에 영적으로 육적으로 모두 어린 상태에서 막연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공을 찾으려니 더 많이 고민이 되었다. 다행히 미국 대학은 1,2 학년 때는 구지 전공을 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 특성을 활용해서 될 수 있으면 다양하게 여러 과목들을 두루 들으며 여유롭게 전공을 정해야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갓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던 그 때는 왠지 교회와 관련된 일은 성스럽고 세상의 학문은 속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원론적 생각을 가진 나에게 믿기 전에 관심이 있던 사회과학계통은 인본주의(Humanism)에 뿌리를 둔 “속된”전공으로 생각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신학을 하자니 전임 사역자로 특별한calling을 받은 일도 없었고 해서 섣불리 신학교에 가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1학년 때는 전공을 정하기 위해 학교 catalog에 나온 전공 소개를 여러번 읽으며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공을 정하게 해주세요”라며…


그러다 정한 전공은 아이러닉하게도 내가 가장 관심을 두지 않았던 회계학이었다.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유학 온 또래의 언니가 전공을 두고 고민하던 나에게 “Undecided”상태로 있으면 괜히 시간 낭비가 되니까 일단 임시로 언니랑 같이 회계학을 전공으로 두고(그 언니는 회계학을 전공하러 유학을 왔었다) 다른 전공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 말이 지혜롭게 들렸지만 회계학은 고등 학교에서 전혀 배운일이 없었기에 망설여졌다. 언니는 생각보다 안 어렵다며 같이 수업을 듣자고 했고 그래서 회계학 개론을 듣기 시작했다. 막상 회계학 수업을 듣다보니 처음엔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고, 별 어려움 없이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들어가는 수업마다 한결같이 돈 많이, 잘 버는 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고 학생들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상대(Business School)에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긴 그런 것에 관심도 없으며 상대 수업을 듣고있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는 그들의 생각과 말들이 조금은 충격적이었고 강의시간에 듣는 내용을 소화하기도 쉽지 않았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 당시 나는 교회와 관련된 것이 세상의 것보다 더 성스럽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었기에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능력있다는 뜻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최선의 길이라는 말들이 “돈을 사랑함이 일만악의 뿌리”라는 성경 말씀과 대치되며 혼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덧 3학년이 되어 전공과목을 많이 듣게 되었고 같은 전공을 하는 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다. 조금씩 전공과목에도 익숙해지고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전공과 취직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회계학이 하나님이 내가 하기 원하시는 전공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었다.


3학년 2학기를 앞두고 전공에 대한 회의가 심화되면서 지금 바꾸지 않으면 대학원에 가서야 기회가 올 것 같아 다른 전공으로 바꾸기 위해 advisor를 찾아갔다. Advisor가 다른 전공으로 바꿀 때 얼마나 더 많이 학점을 들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꽤 많은 학점을 잃게 되고 지난 3년간 익숙해진 회계 전문 용어나 개념(concept)들과 전혀 다른 그 분야만의 용어들과 원리에 익숙해 져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막상 바꾸려니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 보게 되면서 새삼스레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전공이 회계학이 아니었다면 왜 그동안 내 삶에 간섭하셔서 전공을 바꾸게 하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지금와서 특별한 계시(?)도 없이 전공을 바꾸면 이제까지 배운 것과 시간을 모두 낭비하는 셈이 되는 데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이렇게 허비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내가 너무 성(聖)과 속(俗)을 심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성경을 봐도 나처럼 전공을 두고 고민한 사람은 (당연히) 나와있지 않았다. 물론 회계학이 나쁘다고도 나와있지 않았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세리도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전공을 바꾸려는 생각을 접고 “제가 회계학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 알려주세요”라는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 회계학을 전공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지혜가 부족한 탓에 선교/구제 헌금 많이 내는 것 외에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믿음이 필요한 일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구지 회계사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마음 한 구석에선 뭔가 더 강한 동기의식(motivation)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말해 이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영광이 되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싶었다. 왜냐면 대학 졸업반이 되어 취직과 공인 회계사 자격증 시험이 코 앞에 닥쳐왔는데 그 힘든 고비들을 넘기기 위해선 이 길이 정말 걸을 가치가 있다는 확신과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간절히 바랬던 건 수많은 한인 회계사 중에 크리스찬으로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분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발이 그리 넓지 않은 유학생이었기에 그저 가끔가는 한인타운의 공인회계사 간판을 보며 저 중에 신실한 크리스찬 회계사는 어느 분일까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즈음에 대학 2학년 때 참석했다가 그 이후 IMF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갈 수 없었던 KOSTA에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마침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이었고 자격증 시험 준비를 막 시작하려는 때였다. 코스타 광고지를 보니 올해부터 전공별/관심별 모임이 생긴다고 했고, 강사 명단에 공인회계사로 일하고 계신 분이 계셨다. 출발하기 전부터 코스타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있으심을 느끼면서 설레는 맘으로 시카고로 향했다. 마지막 날 있었던 전공별/관심별 모임에 들어가니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오셔서 강의실이 꽉차게 되었다. 워낙 참석자가 많았기에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와 왜 이 모임에 왔는지에 대해 말하고 진행을 맡아주신 어느 강사님께서 대강의 토픽(topic)을 정리해 그 곳에 오신 다른 강사님들과 함께 조언을 해 주시는 형태로 진행이 되었다. 참석자들이 나눈 고민들은 비단 전공에 대한 문제 뿐 아니라 크리스찬으로서 직장생활 할 때 부딪히는 문제들과 미국에서 직장생활 할 때의 문제등에 관한 것도 있었다. 나와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는 이들의 고민들을 놓고 신앙과 인생의 선배들인 강사님들이 조언을 해 주셨다. 나에게는 그 분들의 조언들이 하나 하나 너무나 귀하게 들렸다. 왜냐면 미국에서 유학생 출신으로 미국 직장(사회)에서 크리스찬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시는 그 분들의 조언은 이론이 아니라 삶이 묻어 나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 분들의 조언을 통해 전공분야에서 뭔가 크고 대단한 일을 해야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름받은 그 자리에서 크리스찬으로 최선을 다하며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 분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동시대를 사는 또래들의 모습을 보며 나만 홀로 고민하고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도 받게 되었다.


코스타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가 코스타 홈페이지에 tmKOSTA 보드가 생기게 되었고 그 곳에 용기를 내어 자기소개하는 글을 올렸다. 내 소개글을 읽고 내 또래에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크리스찬 자매가 이메일을 보냈다. 그 기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지역에 살며 나와 비슷한 나이에, 같은 전공을 공부하고, 같은 계통의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크리스찬’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얼마나 가슴 설레이고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한 번도 코스타에 참석해 본 적이 없던 자매는 보드에 올린 내 소개를 보고 용기를 내어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 이후 서로 계속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다가 코스타에도 함께 참석하게 되었고 지금도 가끔씩 안부를 물으며 나눌 수 있는 귀한 영적 친구가 되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더이상 유학생의 신분이 아니지만 매년 코스타에 가는 것이 연중행사처럼 되어있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고 또 했었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 위로와 도움을 주고 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 전공을 택하게 하셨을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공과 직업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전공과 직업을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들은 크리스찬 청년들이면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질문인 것 같다. 대학 시절 내내 이 문제들을 놓고 고민했던 나는 tmKOSTA라는 전공별/ 관심별 모임을 통해 만난 동역자들과 신앙의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 내가 왜 이 공부를 했고 또 어떻게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지에 대해 돌아보고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코스타가 끝난 후 현실인 내 삶의 자리에 돌아와서 직장생활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tmKOSTA에서 받은 조언들, 그리고 그 때 본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다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각자의 삶의 장소로 보내심을 받은 우리의 정체성(identity)을 상기해 보게 된다.


오늘도 출근하기 전에 나를 부르신 삶의 터전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길 간구한다. 부족하고 연약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기도할 때 마다 응답해 주시는 신실한 아버지를 의지하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태복음 5: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