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1년 5월호
답달기 성경 공부는 이제 그만
– 균형 잡힌 성경 공부 모임을 찾아서 –
요즘 우리는 (아마도 40대 이하의)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해야 할” 필수적인 요건으로 흔히 성경 공부와 QT를 꼽는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해야 할”(doing) 어떤 요소가 아니라 “되어져야 할”(being) 요소임에 틀림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 공부나 QT를 믿음이 성숙한 사람들이 반드시 “해야 만” 하는 어떤 필수 사항으로 꼽곤 한다. 이같은 우리의 인식은 늘 강조하는 대로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깊이 배어 있는 ‘업적 중심’의 신앙이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 하다. “이번 주도 나는 성경 공부를 갔다” “QT를 오늘도 어김 없이 했다”는 표현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어디엔가 “가서” 무엇을 “해야만” 만족할 수 있는 업적 중심의 신앙이 잘 드러나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들어 각종 선교 단체, 대학부, 청년부, 제자 훈련팀을 통해서 심령 대부흥회와 철야 기도회에 익숙해져 있던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서서히 새로운 영적 방향의 흐름을 인도해 나갔던 성경공부 모임. 이제 30여 년이 지난 현재, 부흥회와 기도회에서 성경 공부와 제자 훈련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감으로써 한국 기독교인들의 믿음의 성숙과 공동체 안에서의 나눔, 그리고 공유된 리더십의 필요성을 잔잔히 일깨웠던 성경 공부 모임과 교재들의 현 모습을 지켜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는 CCC의 ‘십 단계 성경공부’나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 또 ‘그리스도인의 생활 연구’ 등, 선교 단체에서 발행한 성경 공부 시리즈가 한국 교회에 끼쳤던 신선한 영향력을 기억할 수 있다. 교단에서 발행하는 구역 예배나 속회 등을 위한 – 주일학교 공과교육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 ‘공과’ 수준의 성경 공부 교재에서, 이제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단계 별로 개인의 영적 성숙도를 점검해 나가면서 또 꼼꼼한 말씀 암송을 겸비한 짜임새 있는 교재들이 등장했을 때 젊은 지성인들은 놀라운 속도로 반응했다. 이제는 어느 덧 중년이 되어 버린 당시 젊은 대학 청년들은 어렴풋한 기억 속에 그와 같은 교재들로 주님을 만나고 복음의 진리를 깨달아 갔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교재들 대부분이 ‘질문하고 성경에서 답 찾아 달기’ (Fill in the blank)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성경 공부 모임에 참여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머리만 커진 교인을 만들어 냈던 아쉬움이 있었다. 반면에 80년대 들어 제자 훈련이 물꼬를 트기 시작하고 귀납법적 성경 연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성경 공부 교재에 새로운 전환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다. 특별히 IVP에서 간행되었던 ‘말씀과 삶 성경공부 시리즈’ ‘IVP 기초 성경 공부 시리즈’ 등의 교재 등이 80년대 후반 이래로 청년 대학부와 캠퍼스 모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기존의 계단식 교육 과정을 띤 시리즈 성경 공부 교재가 단계 별로 체계적으로 빈틈 없이 필요한 요소들을 가르칠 수 있었음에도 ‘답 달기’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러한 성경 공부 교재들은 그러한 단점들을 보완하면서도 성경 연구의 귀납법적 접근을 통해 개인적인 적용을 요구하고 나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IVP 성경공부 교재의 경우 ‘지성 사회의 복음화’라는 단체의 모토에 맞게 상대적으로 높은 문제의 난이도로 인하여 지나친 지적 접근을 꺼리는 많은 층에게 거부감을 심어준 것도 사실이다. 한국 교회의 일부 중장년층 교인들은 지금도 성경 공부 하면, 넥타이 맨 목사님이 앞에 서서 공과 공부 교재에 딸린 빈 칸에 답을 메꾸어 주시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들에게는 아직도 예닐곱 둘러 앉아 마음 속 깊은 고민을 나누며 정답도 보이지 않는 질문에 대해 이런 저런 논리적이고 학구적인 방법으로 성경책을 뒤지며 답을 찾는 성경 공부는 부담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균형 잡힌 성경 공부의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최근에는 한국 교회에도 미국에서 시작된 ‘세렌디피티(Serendipity) 성경 공부’라든지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성경 공부 시리즈’ 혹은 ‘프리셉트(Precept) 귀납적 성경 연구 시리즈’등이 90년대 들어 소개되면서 성경 공부 교재의 다양화를 가져 왔다. 이러한 대안적(alternative) 교재들이 적용 중심의 귀납적 성경 연구를 크게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 공부를 통해 단계 별로 성숙된 그리스도인이 양육되어야 하는 사명을 되돌아 볼 때 우리에겐 여전한 걱정 거리가 남는다. 어떤 교재들은 지나친 나눔(sharing) 위주의 진행으로 우리가 정말로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나누면서 성숙해 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오늘도 조원들과의 깊은 나눔을 – 나쁘게 말하면 정처 없이 흘러만 가는 돛단배같은 성경 공부를 – 통해 한 주일 동안 막혔던 한을 풀어주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들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균형 잡인 소그룹 성경 공부와 교과 과정을 세워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이 될 것인가? 결코 쉽게 답변할 수 없는 질문이지만, 우리는 먼저 성경 공부의 목적은 그리스도인 혹은 비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신자의 삶 속에 합당한 단계로까지 성숙해 나가며 열매를 맺는 이들을 보기 위한 것임을 확인해야 하겠다. 성경 공부 모임에는 기본적으로 공부(study)가 될 수 밖에 없는 요소가 존재하지만, 이와 아울러 함께 자리한 이들과의 깊은 나눔과 교제를 통해 따뜻한 믿음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감으로써 천국의 작은 대리점(branch)을 맛보게 하는 다른 요소가 함께 자리 잡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각자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살아서 숨 쉬며 삶을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능력이 있음을 함께 경험하고 맛 보아야 할 것이다. 공허한 답 달기는 이제 그만 두자. 주제 없는 만담 같기만 한 나눔 시간도 이제는 접어 보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찔러 쪼개려고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