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10월호

분주히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 예상치 못했던 딜레이가 생기고 어느덧 시계는 4시 30분을 막 지나가고 있다. 한번 분석프로그램을 돌려놓으면 밤새 분석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퇴근하기 전에 일을 마쳐 놓아야 내일 아침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마음이 급해지니 자꾸 에러가 나고, 눈으로는 프로그램을 읽고 있는데 머리로는 어디서 에러가 나는지 읽혀지지 않는다. 4시 40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퇴근을 한다. 어서 집에 가서 아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못 본 아기가 궁금하고 보고싶은 마음이 퇴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오늘도 일을 깔끔히 마무리 못해 이렇게 하루가 더 딜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무겁다. 다행히 마감 일이 임박한 일이 아니라 크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필요에 따라 늦게까지 시간조정을 하면서 할 일을 하던 productive한 연구생활은 이젠 더 이상 나의 얘기가 아니다.


아기를 낳고 일을 하면서 내게 가장 큰 변화는 내 자신이 아닌 존재를 위해 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것이다. 퇴근 후 아기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시간은 아기와 놀아주고,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일로 꽉 차 있고, 아기가 잠이 들고나면 남은 집안일, 출근준비, 뒷정리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직장에서 한아름 싸 가지고 오는 일감을 뒤로한 채 잠에 취해 버린다. 새벽에 깨어서 젖을 먹이기 때문에 이젠 제법 나눠 자는 것에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늘 피곤하다. 그러나 한 영혼을 키워 가는 이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을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성장해 가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대견해 하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에서 내가 조금씩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당히 제한된 나의 시간을 관리하는 일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는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들을 시간 내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오는 것 이외에도 곳곳에 나를 시험 들게 하는 요소들이 언제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4-5개월 안에 마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입사 지원서와 이력서를 작성하는 중에 연구 실적란을 채우면서 문득 지난 1년 남짓 연구실적이 너무 미비한 것이 거슬린다. 풍부한 연구실적이 좋은 직장을 guarantee한다는 사실에 나는 문득 불안해 진다. 내가 가고 싶은 직장에 지원서를 받아 놨지만 지원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 아무개가 좋은 직장을 얻어 귀국했다는 얘기가 생각이 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postdoc을 시작한 사람들의 금의환향하던 모습과 지원서를 들고 망설이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이유를 생각 해 본다. 지난 1년 남짓, 동기들이 학위 취득 후 한참 연구에 몰두하고 실적을 쌓는데 투자해야 할 시간에 나는 임신을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좀더 자자 좀더 쉬자 라며 휴식 해 왔고, 출산에, 출산휴가에, 복직 후에는 아기 돌보는 것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했으며, 복직 초기에는 집중력도 많이 떨어 졌었다. 그래.. 원인을 찾았다. 바로 아기 때문이야. 내가 working하면서 mom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내가 일에만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실적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기 갖는 시기를 조금만 늦췄어도 좋은 직장에 갈 준비가 되었을 텐데… 앞으로 직장에 가서 더 많은 실적을 쌓고 인정을 받으려면 지금처럼 정시에 퇴근해서 아기를 돌보면서 가능한 일일까?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마음이 복잡해진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이 생기고 여자라서 억울하다는 생각, 괜히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든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게 아닌데 싶다. 그러나 곰곰이 무엇이 본질인가를 잘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은 일하는 것과 아기를 돌보는 것을 병행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임신했을 때부터 육신의 약함을 핑계로 기도의 자리에, 말씀을 읽는 자리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적어졌고 출산이후에는 더더욱 영적으로 회복해야 할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일과 육아로 지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내지 못하는 데다가 주일 예배시간마저 유아 방에서 아기와 씨름하다 보니 하나님과의 교제가 많이 소원해 졌고 내 안에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직업을 찾으면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충성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세상이 세워놓은 성공의 잣대를 가지고 좋은 직장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들을 추구하고 있는 나의 내면이 보였던 것이다.


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무엇이 문제인가? 절대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얼마나 집중하여 일 하는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다. 정말 내가 일 하는 동안 최선을 다 하는가? 불필요한 web searching으로 버려지는 시간을 활용할 수 없었는가? 집중하지 못해 필요이상의 시간을 들여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 안에서 무엇엔가 화가 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인가 아니면 나와 같이 출발한, 그러나 벌써 저 만치 앞서 가고 있어 보이는 동료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오는 상대적인 불안감인가? 나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다.


한 생명을 낳고 지금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하는 이 아기가 스스로 생활 해 나갈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양육하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그래서 그 영혼이 또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양육하는 수고로움을 해산의 수고로움에 비유해도 될까?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보면서 내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자녀를 양육하는데는 해산의 수고 이상의 수고가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고로움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나의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심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담당하며 제한된 시간을 잘 분배하는 어려운 숙제를 푸는데 있어서, 또 언제든지 세상이 주는 가치관에 흔들려 일 핑계로, 육아핑계로 불평하거나 나를 합리화시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나에겐 가장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