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이제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마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15년 정도의 대학교 생활, 그 사이에 군대를 갔던 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대학교 안에서만 생활해 왔습니다. 중간에 때때로 왜 내가 지금 이 길에 있는가라고 몇번씩 생각하고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지금껏 걸어왔습니다. 그 15년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했던가 되돌아 보면 여러가지 반성이 많이 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안에 공부하는 것이 꼭 비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사회에 나가서 사회의 일원으로 무슨 일을 해야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지금은 준비하는 단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너무나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순간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달성된 목표뿐 아니라 순간순간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리더 훈련을 위한 교재,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1)를 읽으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로 교재 제목에서도 나와 있는 것 처럼 서로 모순(oxymoron)되는 듯한 Servant와 Leader로서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고 그러한 본을 우리에게 또한 요구하심을 다시금 되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쉽이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도 분명히 나타나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부담감을 계속 가지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삶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목표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가운데에서 어떤 불협화음이나 충돌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는 삶을 사신 모습이 두번째로 나에게 다시금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를 왜 이 길로 인도하셨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큰 과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학문의 영역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흔히 전문인으로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해 두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말자체가 좀 우습기는 하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말하면 좀 떨어지는 학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세태가 말입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삼류로 되어버린 지는 오래되었고 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철저하게 믿음과 신앙적인 것은 배제되고 인과법칙에 따른 논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한 신앙인으로서 저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질문들의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저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이것이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장막을 짓는 일을 함께 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부담을 지우지 않게 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5년동안 연구했던 것을 쉽게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자신도 같은 과에 있는 사람들의 세미나를 들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때가 너무 많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학문이 너무나 전문화되어 몇몇 사람들만 공유하는 그런 암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학제간 (interdisciplinary) 연구도 많이 하는 듯합니다.


“Formation and Breakdown of Chromate Conversion Coating on Al-Zn-Mg-Cu 7×75 alloys” 이것은 저의 학위논문의 타이틀입니다. 그리고 아래 있는 영화 포스터는 저의 연구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예를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보셨을 영화, “Erin Brockovich”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입니다. Julia Roberts가 열연했던 Erin Brockovich는 PG&E(Pacific Gas & Electronic) 회사로부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3억3천만불의 소승에 승소하였습니다. 그 PG&E회사가 chromate (Cr6+)를 그들의 엄청난 시설물의 부식, 즉 녹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 이 chromate가 어떠한 오염방지 시설이 없이 결국에는 식수까지 오염시켰고 회사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질병, 유산, 심각하게는 여러 종류의 암까지 유발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출처: www.erinbrokovich.com)


이 chromate가 저의 학위논문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였습니다. 학위 내내 지원을 받았던 Department of Defense, Department of Energy, 그리고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는 이 chromate의 심각성을 알고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 지원 해 오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프로젝트는 항공재료에 있어서 chromate의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항공재료는 가벼운 알루미늄이 많이 쓰이는데, 순수 알루미늄으로는 항공재료로서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을 첨가하여 알루미늄합금을 만듭니다. 그 중에서 아연, 마그네슘, 구리등을 첨가한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합금이 보잉747, 777 그리고 전투기 등의 항공재료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알루미늄합금 자체로는 아직도 부식 등의 위험이 있기에 여러가지 코팅을 입힙니다. 그 중에서 chromate를 기본으로 하는 chromate conversion coating이 코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chromate가 사람에게 아주 유독하기에 앞으로 몇년 안에 chromate 사용이 금지될 것으로 판단되어 지금 많은 연구가 대체 물질을 발견하는 쪽으로 투자, 연구되어 왔지만 아직도 chromate와 같은 혹은 더 뛰어난 물질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구의 방향이 chromate의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로 돌아왔습니다.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서 Chromate의 특성을 더 완전히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의 연구는 이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 합금에서 어떻게 chromate 코팅이 형성되는지를 연구했고 그리고 어떻게 이 코팅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약화되고 결국에는 붕괴되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첨가한 물질과 불순물로 인해서 코팅의 취약한 부분이 있었고 이것이 코팅 전반적으로 치명적인 붕괴의 원인을 제공함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원인들과 결과를 찾기 위해서 여러가지 장비를 이용하고 결과를 제시했던 것이 제 논문의 큰 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제를 5년동안 연구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계속 현상들을 알아갈 때 그만큼 모르는 것도 더 많아 짐을 느낍니다. 밝혀진 사실들이 언제든지 더 발달된 기술을 통해서 더 정확히 밝혀지고 이전의 사실들이 수정 혹은 변경될 수 있음을 느끼면서 겸손할 수 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하나의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마음에 많이 남는 것은 제 자신의 능력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도 교수님과의 토론이 제에게 늘 도전이 되었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실험실에 다른 학생과의 대화 속에서, 세미나 속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위 논문이 결코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준 많은 분들이 계심을 역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생 고민해야 할 쉽지 않는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적어도 저에게는 주어진 일에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원론적인 결론으로 이르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 저에게 다섯 달란트가 아닌 두 달란트를 맡기시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계신지 모르니깐요. 저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주어진 삶과 일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앙과 학문이 통합되는 시작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1) C. Gene Wikens,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 Nashville, Tennessee: LifeWay Press,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