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8월호
시작하며
특별한 은혜가 넘쳤던 2003년 코스타가 끝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 풍성했던 천국잔치에 참석한 후에 아직도 그 생생하던 코스타 때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매일 매일 코스타 때처럼 승리하며 살아가는 코스탄 들이 있을 것이고, 또 코스타 기간동안에 은혜를 받으면서 결심했던 일들을 처음 며칠 내지 몇 주는 잘 지키다가 지금쯤 지치기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어쩌면 자포자기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어떤 상태이던지 혹시라도 이 간증을 읽으시면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은 post KOSTA라 하여 코스타 이후에도 tmKOSTA, eKOSTA, jjKOSTA, gpKOSTA, missionKosta 등의 프로그램과 각 조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대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신저를 통해 매일매일 코스타 때처럼 교제를 계속해 나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96년 당시만 해도 일년 연중 코스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을 때였습니다. 미리 이것을 밝히는 것은 지금 같이 여러 프로그램이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이번에 계속되는 제 간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호에 실패한 코스타(?)에 대한 선언 후에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을 보여주신 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분적으로 포스트 코스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교회 청년부 공동체와 한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96년 코스타 이후 경험한 한 지역 교회의 회복
제가 다녔던 보스턴 근교의 한 한국 교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코스타 이후 8월 즈음에 청년부의 위기 상황 가운데 세 명의 임원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자매는 비교적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믿은 지 3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당시 청년부 회장한테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황당해 하면서도 자매는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요한복음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는 말씀을 읽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주후에 그 자매가 공식적으로 청년부에서 개인적 간증을 할 때를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청년부 임원과 조장으로 섬기고 있던 자매가 청년부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자기가 이제야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섬겼던 조원 들과 청년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기는 원래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던 사람인데 속으로 기도하던 중에 자기의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던 일- 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기도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마침 목사이신 아버지께 상담하던 중에 한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주시며, 자기같이 차갑고 이성적이고 성령과 은사에 대해서 무지하고 냉랭했던 자에게 심지어 소리 없는 방언을 주시면서 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자기에게 보여 주시는 분임을 알게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고집스러운 자신 같은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청년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란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임원 세 명만이 참석하기 시작한 새벽기도회에 더 많은 청년들이 참석해서 15인 승 교회 밴을 운행하고 그 밴이 매일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차가웠고 새벽기도가 시작된 지가 5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인지라, 새벽기도에는 기껏해야 예닐곱 명 정도가 참석하던 때였습니다. 그 기대와 비전들이 청년부 사람들 가운데 번져 나가기 시작 하였고, 간증을 나눈 뒤 한 달여가 지난 후에는 승용차 한대로 충분했던 서너 명의 청년들이 한두 사람 불어나면서, 비전과 기대를 갖고 기도한대로 15인 승 교회 밴을 운영 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이 밴이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서 매일 아침 새벽 5시 45분에 시작하는 새벽기도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은 밴도 모자라 몇 대의 승용차로 카 풀을 하면서 이삼십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거의 매일 새벽마다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밴을 운전하던 형제는 공대 박사과정 학생이었음에도 거의 6개월 동안이나 계속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스케줄에 따라 보스톤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 명 한 명의 집으로 라이드를 주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몇 명의 헌신자들이 더 생겨 순번을 정해서 그 새벽에 청년들의 발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변화된 청년부 모습의 한 결과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청년들이 개인적인 회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말씀에 대한 갈망과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청년부 모임들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 4 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그 불길이 어른들로 번지게 되었고, 그 다음해 초부터 계속 늘어나는 새벽기도의 참석자들이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에는 70여명의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200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교인 3분의 1 정도가 매일 새벽 5시 45분에 있는 새벽기도에 참석한 셈입니다. 그 중에는 소문을 듣고 주위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하는 숫자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의 태도와 언어가 바뀌며 그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청년 학생들에게조차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변화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죽어있던 교회와 청년부가 살아나는 그런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소망하고 기대하던 참된 ‘부흥’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한 교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변화된 청년들과 교인들이 계속해서 그 지역과 나라와 전 세계에 걸친 역사적인 큰 ‘부흥’을 기대하고 갈망하며 열정으로 기도한다는 면에서 너무나 큰 은혜라고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큰 변화의 또 하나의 결과로는 전해에 열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코스타에 참석했었는데 그 다음해 그 한 교회에서만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밴을 빌려 20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기도 하면서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단일 교회에서는 아마도 가장 많이 코스타 참석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코스타가 열리는 가까운 지역의 교회가 아닌 1000 마일 이나 떨어진 보스턴의 한 작은 지역교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진 지역 교회들의 변화
96년 코스타 이후에 그렇게 한 지역교회의 회복을 경험한 후에 97년 코스타에 다시 참석하게 되었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조장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사람들이 간증하는 바,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타 이후 받은 은혜들을 지역 교회에 가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고, 그러면서 교회 공동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 했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 몇몇 지역 교회에서 그 전년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함께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여러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서 경험한 그런 역사가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중 한 지역에서는 코스타 이후에 그 지역의 몇몇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협력하며 사랑하며 그 지역 한인 유학생들과 이민 사회를 함께 돕는 사역을 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을 행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집회에서 일회적으로 큰 역사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각 지역교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저는 간사도 아니 였고, 전체적인 코스타의 진행이나 준비나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단 두 번 그것도 처음으로 참석했던 한 개인이 느낀 것이기에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제게 주어진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라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관적으로 한 개인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만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참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제한적으로 제게 주어진 정보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제가 느끼게 된 점을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주제에 상관없이 매년 일어나는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특별했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 지역교회 회복의 현장 한 가운데 서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나눔의 기회가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들이 몇몇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축복
교회의 회복을 통해 받은 복을 누리던 그 때는 저에겐 개인적으로도 큰 복을 받았던 한 해였습니다. 전혀 연구 조교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때에,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학기에 조교자리를 못 찾으면 당장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그 때에 코스타에서 만났던 조원 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눈 뒤,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저는 극적으로 연구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저희 코스타 조원 들을 비롯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때 조원 들의 계속적인 기도 외에, 다니던 미국 교회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세 분의 교수가 있었는데, 한 분은 정년퇴직에 가까워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았고, 또 한 분은 큰 병으로 학교를 나오지 못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교수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의 박사과정 말년에 있던 미국 친구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편지 수정도 봐 주고, 박사과정으로 연구조교 신청을 하면 거의 불가능하니 석사를 일단 하기로 하고 석사 기간 동안만 연구조교를 하게 해 달라고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권고도 해 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연구 조교 자리를 얻는 데 유용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것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런 접근 없이는 사실 제가 연구 조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제 석사 과정 연구 테마까지도 제공 해주고 무능력하고 실력 없는 제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일년 후에 석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이 연구조교가 확정된 이후로 유학생활 일년 동안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때라 쉬고 싶기도 하고, 또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 급히 서둘러 2주 동안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치도 않게 친한 교회 선배의 소개로 지금은 제 아내가 되어있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인 그 다음해 2월초에 결혼을 하고, 97년 코스타에는 함께 부부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2003년 코스타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에도 저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항별로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았던 시간이나 사건이나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고, 저 개인적으로는 정리가 조금 늦게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제 또 다시 일년을 살면서 코스타 때에 감동하면서 받았던 그 은혜의 말씀들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특별히 저의 삶의 영역이 될 제주도 지역에서, ‘순결’하게 살기위해 씨름하며 얻을 축복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류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받은 은혜 자체를 나누며 풍성해지는 기쁨을 모른다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웬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꼭 그러고 싶어집니다. 지금 96년의 코스타와 그 이후 일년 동안 경험한 변화들을 기억하며 간증하듯이, 나중에 이번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와 코스타 이후에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들을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이제는 매일 매일을 코스타처럼 살아가는 daily KOSTA, 즉 dKOSTA로 살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96년 이후에 있었던 그런 지역 교회들의 회복의 역사가 우리 코스탄들을 통해 계속되어지고, 더 나아가 ‘순결한 삶’과 ‘거룩하게 구별된 삶’, 즉 ‘먼저 자기 집 앞을 청소하는’ 그런 선교사적 삶을 통해 적극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는 저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