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면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 당시는 악몽 같은 일이 기억난다. 대학시절에 연애를 하다가 몇 번 여자들에게 채인 것이다. 그때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누구를 붙들고 하소연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어서 혼자 끙끙댔다. 아마 그때 술을 마실 줄 알았다면 엄청 술에 취했을 것이다. 순간적이지만 자살까지도 생각했으니 말이다.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옆에서 조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어떤 말도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지내던 어느 날 내가 알고 있던 성경구절이 하나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지금 일어난 일들이 불행한 것 같아도 나중에는 그 일 때문에 혹은 그 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유익한 일로 변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절망에 빠져있는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말씀인데 그것이 내 마음에도 다가왔던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나를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고 현재로서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 일이 나중에는 오히려 합력해서 유익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되었다. 당장 내 마음의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때부터 당한 현실을 새로운 각도로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나중에 누군가 만나게 될 텐데 그 여자가 내게 훨씬 적합한 여자일 것을 기대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회복하게 되었다. 결국 처음에 나를 찼던(?) 그 여자와 다시 만나서 지금까지 25년간 잘 살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나를 보면서 그 말씀이 내 생애에 그대로 적용이 된 것 같다. 지금 내 아내가 내게 가장 어울리는 여자이며 그 아내와 한번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더욱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나를 위기 가운데 구해준 말씀이 그 후에도 여러 번 그 효력을 발휘했다.


유 학시절에 신학교 공부를 마친 후에 박사코스를 공부하기 위해서 몇 학교에 입학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 이유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지만 모든 학교에서 거절 내지는 다음 해로 연기하라는 연락이 왔다. 그때 정말 충격이 컸다. 더구나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장학금까지 준다고 했는데 나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니 기가 막혔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다른 학교들에 입학을 신청하기에는 시간도 늦어져서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내게 다가온 것이 바로 이 성경말씀이다. 이 말씀을 생각하는 순간 절망가운데에서도 새로운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 말씀을 따라 기도하면서 교수 한 분과 의논했다. 그 교수가 딱하게 생각하면서 입학신청마감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학교 중의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사실 그 학교가 내가 먼저 입학신청서를 냈던 학교보다는 한 등급 위의 학교이기 때문에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대안이 없어서 그곳에 입학신청서를 내고는 정말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기를 기도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어느 날 그 학교에서 입학이 허가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그 기쁨이란. 그 교수에게 소식을 전했더니 날보고 행운아라고 했다. 처음 신청한 학교에서 거절당하는 바람에 오히려 더 좋은 학교에 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이 롬8:28의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후에도 이 말씀은 종종 작용을 했다. 내 생애에서 가장 힘든 순간에 또 한 번 위력을 발휘했다. 귀국해서 기독교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곳에 너무 즐겁게 또 보람 있게 일했는데 단체 내부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그만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처음으로 실직이라는 것을 경험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부될 수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그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금식기도를 하러 기도원에 올라갔었다. 내 딴에는 무언가 해결책을 찾으려고 기도원엘 갔는데 일주일 동안 기도했지만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답답해 할 때 다시 한 번 이 말씀이 찾아와서 내 마음을 두드렸다. 물론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의 내 삶을 돌이켜 보면서 롬8:28의 약속은 결코 헛소리가 아닌 것을 실감한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