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정말 귀중한 것을 버리고 도시(都市)에 속한 문화와 향락을 좇아가다가 화를 당한 한 가정의 불행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 가운데 롯만큼 여러 번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손길을 체험하고도 그 기회를 포착하지 못한 인물도 드물다. 롯은 우상(偶像)의 도시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의 삼촌 아브라함을 따라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롯이 아브라함을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과 일찍 아버지를 여읜 롯 사이에 부자지간과 같은 정으로 맺어져 있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롯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장막에 거할 수 있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음도 간과해선 안 된다. 아무튼 그는 그 당시로는 드물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아브라함의 집에서 살게 되는 큰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모태신앙의 축복을 누린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기근을 피해 아브라함과 롯이 애굽으로 이주했을 때, 롯은 이방의 도시문화가 가져다주는 풍요와 안락함의 단맛을 보게 된다. 어쩌면 그곳에서 롯은 청년 시기를 보내며 연애를 하고 아내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사라를 바로에게 빼앗길 뻔한 위기를 넘긴 아브라함은 오히려 바로의 궁에서 수많은 소유물, 즉 육축과 은금을 이끌고 애굽을 나오게 된다. 그러나 소유물의 넘치는 풍요로 말미암아 롯은 아브라함과 다투게 된다. 육축으로 인한 하속들의 다툼이 심해지자 마침내 아브라함은 친아들처럼 키워왔던 롯과 갈라서는 길을 택하고 만다. 행운이라 생각되었던 물질의 축복이 오히려 화근이 되고만 것이다. 지금도 재물로 인해 친밀했던 가족 사이에 금이 가고 때론 원수지간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골육간에 헤어지는 아픔을 삼키며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조카에게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주었을 때, 롯은 애굽 시절을 회상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요단 동편의 성읍을 선택한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롯에게는 이미 삼촌에 대한 양보심은 뒷전이었고, 메마른 땅 가나안보다도 물이 넉넉히 차 있는 비옥한 땅 요단 들판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롯이 요단 들을 바라보았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여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고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그의 내면에는 애굽의 피난 시절 누리던 도시의 안락함과 화려함에 대한 그리움이 잠재되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눈을 자극했던 것은 바로 도시 생활에 대한 향수였던 것이다. 하루 속히 지긋지긋한 유목민 생활을 벗어나 독립하여 도시로 가서 살자고 충동질하며 옆에서 부추긴 것은 롯의 아내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의 눈에 처음 들어왔던 것은 작은 성읍 소알이었다. 비록 작은 도시였지만 도시 생활을 시작한다는 기쁨에 젖어 그들은 아브라함의 장막을 떠났다. 더 크고 화려한 도시를 사모하던 그들은 요단 평지에 속한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죄악의 도시 소돔성으로 들어가고 만다.



인간적인 꾀로 당시에는 자신에게 많은 이득을 가져다 준 듯이 보이던 선택이 세월이 지나며 결국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이 판명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롯은 요단 동편을 택한 후 거친 유목생활에서 벗어나 도시생활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게 되었다. 당시의 대도시요 화려한 문화도시 소돔으로 들어간 그 가정은 뜻하지 않은 전화(戰禍)에 휘말리게 된다. 창세기 14장은 그 당시에 벌어졌던 여러 도시간의 치열한 전쟁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 당시 시날 평야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종주국 엘람의 그돌라오멜에 반기를 들고 반역 전쟁을 일으킨 다섯 도시가 있었다.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이 다섯 도시가 더 이상의 조공을 거부하며 독립 전쟁을 일으킨다. 이에 맞서 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 네 도시가 반격을 가하여 반란군과 연합군 사이의 큰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은 단순한 육적 전쟁이 아니라, 셈의 장자였던 엘람(10:22)을 통해 믿음의 정통성을 이어오던 종주국에 대해 맞서고자 하는 영적 반역 전쟁이었다. 그 결과는 반란군의 대 참패로 끝나고 소돔왕 베라는 재물과 사람을 모두 빼앗기고 롯은 전쟁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된다.



그 당시 전쟁 포로에게 내려지던 풍습에 따라 죽임을 당하거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롯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다. 조카 롯이 당한 비운의 소식을 전해들은 아브라함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조카를 구하기 위해 삼백 십팔 인의 훈련된 부하를 이끌고 야간 기습을 감행하여 포로와 재물을 전부 찾아온다. 이때 만일 롯이 정신을 차렸다면 죄악의 도시 소돔을 떠나 아브라함과 화해하고 재결합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롯은 여전히 소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임박한 죄악의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



소돔을 심판하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알게 된 아브라함은 자식처럼 키운 롯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중보자로서 하나님과의 끈질긴 설득 작업에 나선다. ?만일 소돔 땅에 의인이 오십 명이 있다면 그 도시를 멸하시겠습니까?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의인들을 위해 그 도시를 구원해 주심이 마땅치 않습니까?? 라고 질문을 던졌던 아브라함은, 물론 용서하겠다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대답 앞에 자신을 잃고 의인의 수를 감소시킨다. 사십 오, 사십, 삼십, 이십, 십까지 내려가던 중 그 대화는 갑자기 끝이 난다. 많은 경우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의인 열 명이 없어서 멸망당한 소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소돔에 의인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몇 명이? 아홉명? 다섯명? 아니면 한 명? 의인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무시하셨을까? 그보다 롯은 과연 의인이었는가? 그는 의인이었기에 구원을 받았는가? 그렇지 않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대화 가운데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소돔 안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음을.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대화를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롯을 구원해 주신 것은 순전히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를 통해 베푸신 은혜일 뿐이다.



창세기 19장은 심판이 임박한 소돔성의 전야에 전개되는 롯의 가족을 둘러싼 삶과 죽음의 변주곡을 숨막히게 묘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소도미스트(sodomist, 소돔사람들, 곧 동성연애자)라는 단어가 말해주듯이 온갖 음욕과 육욕이 들끓는 남색(男色)의 도시 소돔에서 롯은 최후의 전령으로 파견된 두 천사를 부지 중 나그네로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젊고 아름다운 두 청년이 롯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소문을 들은 소돔인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그의 집을 둘러싸게 된다. 이미 인간으로서의 존귀성을 찾아보기 힘든 소돔인들이 두 나그네를 자신들의 육욕의 재물로 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장면에서 우리는 소돔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 머리 위에 머무르며 얼마나 오래 참아왔던가를 엿볼 수 있다.



도대체 롯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를 가리켜 성경은 의인이라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벧후 2:7-8) 롯은 아브라함의 장막에서 자란 사람이다. 물론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워 알았던 사람이다. 그의 마음에는 믿음으로 인한 선한 양심이 있었다. 그랬기에 소돔 땅에서 행해지고 있었던 온갖 음란한 행실로 인해 그의 심령이 상하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 같은 환경은 롯의 도덕성과 성결성을 크게 해치고 손상하였을 것이다. 두 천사를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폭도들에게 정혼한 자신의 두 딸을 대신 내어주겠다고 제의를 하는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일 수가 없다. 믿는 자라 할지라도 음란의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그의 영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어 양심이 무뎌지게 마련이듯이 이미 롯의 양심과 판단력은 흐려질 대로 흐려져 있었다.



마침내 천사들에 의해 심판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성읍을 곧 떠나라는 권고와 함께 그에 속한 모든 식구들에게도 그 소식이 전해진다. 소돔성을 떠나라는 구원의 메시지는 롯의 사위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작 롯 조차도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결단을 못 내리며 머뭇머뭇 지체하다가 마침내 새벽 동이 틀 시간이 되고 말았다. 곧 시작될 유황불의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은 은총을 더하셔서 천사들이 강제로 롯과 아내 그리고 두 딸의 손목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순간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는 황급한 명령 앞에서 롯이 보인 태도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린 그 순간에 있어서도 롯은 머뭇거리며 작은 성읍 소알로 자신들의 피신처를 삼게 해 달라고 안간힘을 쓰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19:17-22) 작은 성읍 소알은 과연 어떤 도시인가?



롯은 산으로 피하라는 명령을 두려워하여 작은 성읍 소알로 자신의 가족이 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다. 소돔을 창졸지간에 떠나야했던 롯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신뢰보다는 최소한 소알 정도의 도시가 되어야만 자신들의 가족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리석은 생각이 앞서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어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다. 어리석은 자의 기도이지만 간청하는 기도를 뿌리치지 않고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가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는 마치 창세기 4장에서 살인자 카인의 간청을 들으사 그에게 표를 주시고 생명을 구원토록 하시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억하셨음은 물론이다. 죽음으로부터의 도피, 그 질주의 순간에도 롯의 아내는 두고 온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아 비극적인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 롯이 두 딸과 함께 소알에 들어서는 순간 해가 솟았고 유황불이 비같이 하늘에서 쏟아져 소돔과 고모라는 마침내 멸망당하고 만다. 멀리서 바라보니 마치 옹기점 연기처럼 치밀어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에 피어올랐던 버섯구름의 모습이 아니었을지….



창세기 19장을 통해 보면, 이 날 멸망당한 도시가 소돔과 고모라 뿐인 듯이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신명기 2923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멸망당한 성은 아드마와 스보임을 포함한 네 개 성읍이었다. 이 도시들은 창세기 14장에서 종주국 엘람 왕에게 영적 반란을 일으켰던 다섯 도시 중 네 도시였고, 오직 소알 만이 그 심판에서 제외되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소알 역시 이날 멸망당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도시였으나 롯의 간청으로 말미암아 한 도시가 구원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천사들이 산으로 피신하라고 권할 때는 절대 못 가겠다고 버텼던 롯이 가까스로 얻은 새 삶의 거쳐 소알을 버리고 스스로 다시 산으로 도망가고 만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아 멸망당하는 것을 체험한 롯은 비슷한 죄 속에서 살아가는 소알 역시 언제 멸망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성을 쌓아야만 했던 카인의 심리 상태……. 이미 롯에게는 은혜를 받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지 못하는 카인의 불신앙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롯이 과연 구원을 받았을까?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면 롯에게는 더 이상 믿음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두 딸과 함께 산 속으로 숨어 들어가 도시 사람들과의 접촉을 끊고 굴혈인(掘穴人) 되어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해야만 했던 그는 자신이 이미 음욕의 제물로 내어주었던 두 딸로 하여금 근친상간의 불륜을 저지르게 하여 인류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결국 처절한 멸망의 인생으로 끝을 맺고만 롯……, 도대체 그의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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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BS 인간극장의 책임 PD로 이름이 알려진 김우현 PD가 자신이 운영하는 버드나무(www.birdtree.net)의 촬영 제작진을 이끌고 취재차 연변과기대를 방문하였다. 그 일행 중 하나로 김동호 목사님의 둘째 아들 지열이가 함께 와서 우리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다니던 한동대학을 그만 두고 영화 제작에 꿈을 품고 한국종합예술대학 영화과에 다시 입학한 독특한 친구다. 그래서 그런지 예술적인 끼가 있어서 아내와 금새 잘 통하게 되었다. 그가 우리 집에 들어와서는 아내가 꾸며놓은 집안 분위기를 둘러보고는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사모님은 파리에서 사는 것이 어울릴 분인데, 연길에 사시는군요.? 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아내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는지 퇴근 후에 보니 얼굴이 시무룩해 있었다.



중국 생활을 시작한 이후 아내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녀의 예술적 감수성을 채워 주지 못하는 연길의 열악한 문화 환경이었다. 간혹 자기는 뉴욕 맨하탄에서 살아야 할 시티 걸(city girl)인데, 남편을 잘못 만나서 이곳까지 왔노라고 투정을 하곤 했다. 유일한 문화 생활이라고 해야 고작 틈을 내어 영화를 빌려 보는 것인데, 미국 영화는 왜 그리 보스톤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많은 지. 영화를 보다가 보스톤 중심가와 찰스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면 다시금 옛 향수에 젖어서 눈물을 글썽일 때가 많았다.



보스톤의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는 금요일 저녁의 부부 성경공부 모임이었다. 말씀으로 한창 깨우치던 때라 그 시간이 꿀처럼 달고 기다려졌다. 더욱 좋았던 것은 성경공부가 끝나고 다과를 나누며 밤늦게까지 모여 앉아 담소하며 주말을 만끽하던 그 여유로운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 시간이 되면 자연스레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학업이나 스포츠, 세상 정치 이야기로, 또 아내들은 자기들만의 가정 화제로 모여 앉아 수다(?)들을 떨곤 했다. 유학생 아내들의 그 당시 가장 큰 관심사와 화제거리는 남편의 학위가 끝난 후 어디로 직장이 구해지는가 하는 것과 돌아가기 전에 미국서 어떤 살림살이를 장만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부인들은 어떻게든 남편이 서울에 직장을 구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자매가 힘주어 하는 이야기가 우연히 귀에 들려왔다. ?나는 대전까지는 참을 수 있어도 그 이하는 절대로 안돼.?라고 했던 것 같다. 아마 농담으로 한 것이었겠지만, 그 한 마디 말속에 크고 화려한 도시에서 살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 같다. 다름 아닌 롯의 아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와 아내의 지난 삶을 돌아보면, 우리 부부야말로 롯과 롯의 아내의 삶을 살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런 사람을 어찌하여 하나님이 이곳까지 끌고 오셔서 강제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인생을 살게 하셨는지은혜일 뿐이다. 롯의 아내만큼이나 화려한 것을 좋아하던 여자. 온갖 세간으로 우아하게 집안을 꾸미며 살아가고 싶어했던 여자. 그리고 고급 백화점에서 자기 맘에 드는 의상으로 마음껏 쇼핑을 하며 살고 싶었던 그녀가 연길이라는 새장에 갇혀버린 것이다. 백화점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생일 선물을 사줄 것이 없어서 중국식 주방용 식칼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 먼지 바람과 연기에 휩싸인 추운 겨울 거리에 겹겹이 입은 내복과 파카 이외에는 아무런 옷이 필요 없는 도시. 그 새장 안에 갇혀서 아내는 보스톤을 꿈꾸며 눈물 흘렸다. 그토록 화려한 도시의 문화 생활을 그리워하던 아내도 십년이라는 세월 앞에서 나이가 들어가고 점차 체념의 세월을 살기 시작했다. 처음에 가지고 왔던 살림살이와 옷가지들을 지난 10년 간 계속 줄이고 버리고 남을 주는 바람에 이제는 단촐한 세간과 여기 저기 고장난 전자제품들 밖에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 집에 오면 이상하게 까페 분위기가 난다고 한다. 그것은 안타까움으로 배어있는 아내의 문화적 체취일 뿐이다.



화려한 연주자로 대형 교회의 파이프 오르가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던 아내. 독주회와 청중의 박수갈채에 익숙하고 바하와 오르간이 우상이었던 아내에게 연길 생활은 그녀가 원하던 음악과 문화를 빼앗아 갔다. 피아노 앞에서 딩동거리는 반주자 양성, 유행가를 가르쳐야 하는 수업시간, 초라한 키보드로 반주를 하는 예배 시간, 그 모든 것이 괴로웠다. 그런 그녀에게 이상하게 학생들은 감동을 받는다. 예배가 끝나면 속도 모르는 분들이 그녀에게 찾아와 반주에 은혜 받았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내는 속으로 눈물을 삼킨다. 그 세월이 이제 10년이 흘렀다. 어느 날 저녁, 아내를 위하여 이웃에서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를 빌려와 함께 보았다. 홀러코스트의 잔혹한 장면에 눈쌀을 찌푸리던 그녀는 간간이 흘러나오는 쇼팽의 녹턴 피아노 선율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끝까지 영화를 보았다. 클라이막스에서 자신이 학생 시절 가장 잘 치고 좋아했던 곡을 주인공이 치기 시작했다.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을 무엇에 홀린 듯이 듣고 있던 그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마치 석고상처럼 굳어져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양 손가락을 펴서 내려다보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은 더 이상 피아니스트도 오르가니스트도 아니라며 펑펑 울기 시작했다. 어느새 변해버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자각하고 울음이 터진 것이다.



그러던 아내를 지난여름 아주 오랜만에 보스톤에 데려갔다. 고색창연한 아치형 교회 건물과 현대식 빌딩이 조화를 이룬 보스톤의 아름다운 시가지는 여전히 청명한 하늘 햇살 아래서 신비한 빛을 내고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보스톤이었기에 아내가 오랜만에 마음껏 만끽하기를 내심 기대하였는데이상하게도 아내의 반응이 신통치가 않았다. 보스톤 이야기만 나와도 가슴이 설레던 그녀가 정작 보스톤 땅을 밟고서도 심드렁하여 별로 웃지도 않았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이제 하나님이 자기 마음속에 있던 보스톤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거두어 가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옛날에 그녀가 다니던 학교는 한번 데리고 가야할 것 같아서 후배의 라이드를 받아 찰스 강변을 따라 보스톤 대학의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건물들을 찾아갔다. 어린 다니엘을 뒤에 태우고 차를 몰며 바삐 다니던 거리의 옛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녀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피곤한 듯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 그녀가 오르간 독주회를 했던 마쉬(Marshy) 채플 앞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그곳은 한번쯤 들려보아야 할 것 같아서 강제로 손목을 이끌고 차에서 내렸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엄숙한 채플 안은 십여 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고풍스런 분위기 속에 남아 있었다. 크고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이 전면을 감싸고 우리를 맞이했다. 중앙 복도를 가로질러 앞자리에 앉아 잠시 기도를 하였다. 옛날 아내가 이곳에서 연주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어린 다니엘을 데리고 뒤에서 기다리며 나도 모르게 웅장한 오르간 음악에 심취하곤 했던 시절. 그녀도 그때가 생각나는지 조심스레 단위에 올라가 오르간을 기웃거린다. 아마 다시 한번 쳐보고 싶겠지그러고 있는데, 사찰 집사인 듯한 분이 다가와 아내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아내가 자신이 이 학교 학생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오르간을 잠시 만져보아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하였다. 흔쾌히 허락하는 너그러움그녀는 미끄러지듯 오르간 의자에 앉았다. 잠시의 침묵중국에 처음 이삿짐을 풀던 날 가지고 간 연습용 전자 오르간으로 정신없이 바하를 쳐대던 아내의 뜨거운 열정이 떠오른다. 그녀의 절반 인생과도 같았던 바하. 또 다시 바하를 치려나? 그러나 그녀의 손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조용한 찬송가 반주였다.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찬송가를 메들리로 치고 있는 그녀의 성숙한 모습에서 십 년의 세월 속에 감추어진 눈물이 느껴졌다. 오르간 선율 속에 담긴 그녀의 아픔이 파도처럼 밀려와 내 가슴에 안기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또 울지어떡하나걱정하고 있는데갑자기 뚝 그치며 그녀가 일어섰다. 울음이 터지기 직전에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꺽어버린 것이다. 안심안도눈시울이 붉어진 아내의 어깨를 감싸고 나오는데 그녀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걸어가며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내가 그동안 가르친 제자들이 인근 도시마다 교회의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고, 그 중에는 오르간을 배우고 유학을 다녀와서 중국에서 최초의 전문적인 오르간 반주자를 꿈꾸는 제자도 있다. 언젠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아내의 눈물이 씨앗이 되어 자란 그 제자들에 의해 중국의 교회가 부흥하고 곳곳에서 찬송이 차고 넘치는 그날이 왔을 때, 후세 사람들이 아내가 중국 교회 음악의 어머니였다고 기억할 날이 있지 않을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하며 그녀의 거칠어진 손가락 마디를 꼭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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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과 롯,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며 하나님을 아는 믿음이 있었던 두 사람. 소유의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여 가는 곳마다 전 재산을 이끌고 다녔으며 재물로 인해 다투어 갈라지기까지 했던 그들. 창세기 18장과 19장에서 부지중 나그네를 대접하여 천사를 맞이하는 모습조차 두 사람은 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브라함은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묵상 중에 천사를 맞이했다면, 롯은 사람들이 바삐 드나드는 성문 앞에 앉았다가 천사들을 영접한다. 그리고 그들은 천사들을 집으로 안내하여 떡을 대접한다. 아브라함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라가 고운 가루를 반죽하여 떡을 굽는데 비해, 롯은 직접 급히 무교병을 굽는다. 아마도 그의 아내는 다른 사업(부동산 투기와 주식투자?)에 바빴던지 갑작스레 남편이 데리고 들어온 불청객이 불편하여 눈쌀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했던 모양이다. 두 가정의 식탁과 떡. 그러나 그들이 베풀었던 식탁은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천사를 대접한 그 떡의 식사를 기점으로 두 가정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식사 후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의 아들 이삭의 잉태에 대한 축복의 예언을 받게 되지만, 롯과 그의 아내는 소돔 땅을 속히 떠나라는 심판의 메시지를 듣게 된다. 아브라함의 식탁은 풍요와 평화와 웃음이 넘치는 식탁이었지만, 롯의 식탁은 멸망을 앞둔 자가 지닌 불안과 조급함과 메마름의 식탁이었다.



롯과 롯의 아내…… 이들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가운데 보인 롯의 태도, 결국은 소금기둥이 되고만 롯의 아내의 행동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묶고 있었던 것은 재물과 도시에 대한 우상 숭배였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그들이 소돔으로 이사가게 된 배경 속에는 처음부터 화려한 도시 생활을 사모하며 남편을 부추기어 소돔으로 옮겨가자고 졸라대었을 롯의 아내의 역할이 있었을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사라와 롯의 아내도 표면적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아브라함의 가정은 남자가 그 가정을 이끌고 다녔다면 롯의 아내는 그 아내가 주도권을 쥐고 이사를 다닌 것은 아니었는지? ?무릇 지혜로운 여인은 그 집을 세우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잠언 141)?는 말씀처럼 한 집안이 사치와 화려함을 좋아하는 여인의 어리석음 때문에 멸망의 길로 간 것이다. 그저 편안한 도시의 삶에 이끌리며 도시가 아니면 살기를 꺼려했던 롯과 그의 가족의 도시에 대한 우상 숭배가 그 가정의 멸망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자신의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이 직장 자체의 질과 삶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직장의 소재지가 어디인가에 따라 판단기준을 두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목회지나 사역지를 정하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도시 혹은 대도시 지향적 사고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롯과 롯의 아내, 그들은 다름 아닌 도시로 도시로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현대의 도시 지향적 인간들의 전형(典型)이다. 복의 근원 아브라함의 장막을 마다하고 멸망의 도시 소돔으로 나아간 롯. 시편 4920절에서 이르기를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도시의 삶 자체가 특별히 악하다든지 벽지(僻地)의 삶을 권하든지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돔성의 롯이 그러했듯이 향락적이고 부패한 도시문화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오염된다면, 혹은 도시가 가져다주는 여러가지 안락함과 문화적 편이(便易)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가리는 우상이 된다면, 그곳은 이미 중립지대에서 벗어난 곳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인정되고 선포되는 곳이라면 그곳이 산촌 벽지이건 니느웨 성이건 우리는 마다하지 않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영원히 사모하는 하나의 도시가 있을 뿐이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