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흔히 운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미 정해져 버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더러는 체념한다. 운명적인 팔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래의 일을 또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점이나 사주를 보고 별자리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린다.


적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의해 운명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여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인생이 그래도 전자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이 설자리가 없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자리에 피조물 또는 자기 자신이 우상으로 들어 앉아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굴레 속에 던져진 인간에게 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세계관의 문제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라는 광고 문안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의 시간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위의 두 가지 인생은 그들이 지닌 세계관이 닫힌 세계관이냐 혹은 열린 세계관이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닫힌 세계관을 지닌 사람은 운명론자 또는 숙명론자가 되고, 열린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더러 인본주의자가 되어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열린 세계관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그 선택의 기준이 인간의 야망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때 그 결과는 오히려 멸망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적극적인 인생을 펼쳐가던 재벌 기업가의 참담한 말로를 우리는 심심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인생을 인도해 가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관자요 파란만장한 한 사람의 인생도 결국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뜻 보면 크리스천의 세계관은 닫힌 세계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것도 하나님을 택하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하는 가장 큰 선택권마저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생각하면 크리스천의 세계관은 열린 세계관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크리스천의 인생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선택, 즉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며 순간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이 그것을 이끌어간다는 모순성? 지구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인간이 지구의 공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듯, 우리 인생의 절대 기준은 더 큰 척도 안에서 운행되고 결정되고 있다는 인식…… 그러나 그 속에서 누리는 선택의 자유와 중요성은 지구의 공전 궤도마저 바꿀 수도 있다는 역설로 강조해도 좋을지?


크리스천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을 믿는다. 인생의 순간들을 결정하는 자신의 자유 선택권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 투성이의 삶 속에서도 그것을 선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아름다운(?) 간섭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간섭이란 곧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간섭하듯 옳은 길로 인도하는 포괄적 배려를 뜻한다. 이 같은 설명에 즉각 반발하는 무신론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과 재앙과 전쟁을 그대로 방치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니 신의 간섭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고 거꾸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반증이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오해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자녀가 잘못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손을 들어 야단치는 성미 급한 부모가 아니다. 오히려 자녀의 잘못을 알면서도 스스로 깨달아 돌이킬 때까지 일정 기간을 인내하며 지켜보는 지혜로운 부모에 가깝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과 전쟁들은 하나님이 원했거나 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한 길을 선택한 인간들이 자초한 죄의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내버려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돌이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은 인간의 역사와 운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지닌 신비스런 질서와 오묘함…, 물 한 방울 눈 한 송이에도…, 무질서해 보이는 나노 원자의 세계 속에서도 또 다시 나타나는 새로운 질서와 소우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세계 전체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한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 간섭의 손길이 없다면, 천체계를 운행하는 행성들의 모든 중력장과 빛의 세계를 지배하는 전자기장이 사라지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의 세계가 일시에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이처럼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도 하나님의 침묵 속에 더러는 하나님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영역이 있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난 후에는 그것마저도 간섭의 결과였음을 깨달아 알 수 있을지라도,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묵묵히 바라보며 우리 인간에게 전적인 선택권을 허용하는 부분이 있다. 마치 선악과의 선택처럼, 그들의 전 인생의 결과를 뒤바꾸는 엄청난 선택…… 다시 말해 필생의 선택이 있는 것이다.


*


1980년대 시인과 촌장으로 활약하던 <가시나무>의 가수 하덕규씨가 얼마 전 학교를 방문하여 시와 노래로 어우러진 가을밤의 아름다운 콘서트를 가졌다. 토크쇼처럼 진행된 콘서트에서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시어로 작사된 노래를 불렀다. 순수 담백한 가사를 생동감 넘치는 선율에 담아 읊조리는 음유시인의 고백을 들으며 지난 날 내 모습을 또한 반추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하덕규씨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58년에 태어난 개띠 인생으로 어둡고 답답했던 시대를 집나간 개처럼 방황하며 살았던 동지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니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동일한 고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나의 제자들이 눈에 뜨여 그들에게도 연민의 정을 느꼈다.


나의 대학생활은 인생의 비전도 삶의 목표도 찾지 못해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허탈한 시간들로 점철된 시절이었다. 마치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에 나오는 13인의 아이들처럼 어디를 향해 왜 달려가는지도 모르며 그저 남들이 뛰니까 안 뛰면 불안해서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인생을 살았다. 외적으로는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어디론가 탈출구를 찾아야만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하덕규씨는 자신의 음악세계에서 몸부림치며 현실을 잊기 위해 마약의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고, 나는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전공을 멀리하고 문학과 술과 여자로 도피처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도피의 세계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빠져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더 내면의 허무감은 심연처럼 깊어만 갔다. 육체와 정신의 황폐함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내려갔을 때, 탕자의 어렴풋한 옛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버지의 집이 떠올랐고, 마침내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된 것이다. 그것마저도 그와 나는 닮아 있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 그 황폐해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가 부른 노래가 바로 <가시나무> 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뺐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 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인생을 돌아보기에는 아직 마흔 다섯의 내 나이가 충분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간섭의 흔적들을 분명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이 자리의 나를 만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목표와 비전이 없이 술에 취해 그저 친구들의 의견에 휩쓸리며 주관 없이 살아가던 나를,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마다 하나님이 조금씩 그 방향을 간섭하여 이곳까지 이르게 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문과 취향의 적성을 지닌 내가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고등학교 시절 짝 친구(1)를 따라 이과를 선택했고 뜻하지 않은 공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공학박사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문과 취향적 인생을 섞어서 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선택한 친구는 의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언제나 찾아가면 반겨주는 마음의 고향처럼 남아 있으니 결코 손해 본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황하며 1년을 보낸 나는, 어느 겨울 아침, 술에 만취한 상태로 쓰러져 있다가 친구(2)의 전화를 받고 부스스 깨어났다. 계열별로 입학하던 때라 그 날이 전공학과를 정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피곤한 몸을 추스려 할 수 없이 집을 나섰다. 등교 길에 우연히 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3)를 만났다. 자기와 함께 같은 과로 가자고 권유를 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후로 마침내 금속의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그는 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그의 주장이었지만 다른 전공을 선택할 특별한 생각이 없었던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처음 들어보는 금속공학과를 택하였다. 그러나 전공을 선택한 후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의 고민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공부해야 하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카프카와 까뮈의 노예로 남아 있었다.


친구(4)와 친구(2)의 소개로 재학 중 두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지금은 원숙한 여인들이 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사실 그 시절에는 풋내기 여학생들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들과의 심각한(?) 연애 행각으로 금쪽같은 대학 시절을 모두 맞바꾸어 날려 버렸다. 그녀들과의 사랑만이 내가 처한 허무와 절망의 늪을 빠져나갈 유일한 비상구라고 그 시절 생각했었다. 실연의 상처로 헤매던 아무 희망 없었던 대학 졸업반 시절, 나는 군대를 마지막 도피처로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잊고 현실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학수고대 현역 입영날짜를 기다리던 중 느닷없이 보충역 편입통지서를 받고 허탈해 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 해에,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났던 58년 개띠들 중에 유난히 현역 입영 대상자가 많아서 그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후에 누군가에게 들었다. 사실 그런 신빙성 없는 이야기조차 나에게는 절망과 분노만 안겨다 주었다. 그 시절은 정말 한 가지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는 개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방위병으로 동사무소에 배치받아 근무하였다. 똥개처럼 이리저리 채이며 정신적 육체적인 밑바닥 인생 체험을 하였다. 민원 창구에 앉아 몽롱하게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 주던 나른한 여름날 오후였다. 마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오처럼 이유 없는 살인의 충동이 느껴지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친구(5)가 자기와 함께 대학원 시험을 치자고 권유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찍이 던져버렸던 교과서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대학원 입학 준비를 시작했다. (이쯤에서 내가 밝혀둘 것은 대학 시절 나의 별명이 피노키오였다는 사실이다. 학교 가던 중 여우의 꾐에 빠져 옆길로 샜던 피노키오처럼 나는 내 주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친구들이 말하는 대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곤 했다. 지금 와서 또 생각해보니 친구들에 의해 휩쓸리는 인생을 살았던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며 그들의 인생 행로를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Anyway…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지 모르겠다. 그 이듬해, 함께 대학원을 가자던, 나보다 훨씬 공부를 잘 했던 그 친구는 떨어졌는데 나는 이상하게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계획에 없던 학문의 길에 나서게 된다. 역대 대학원 입학생 중 기록적인 최하의 성적으로 입학하여 교수님들을 놀라게 했다. 지도 교수를 정하는 면접 중 내가 신청했던 교수님이 내 성적에 놀라며 박사까지 계속 공부할 의향이 없으면 나가달라고 했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겨 끝까지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금속공학과에서도 밑바닥을 돌던 내가 지도교수의 주문에 따라 갑자기 기계공학과 대학원 과목을 전부 택하여 들었다. 옛날 명문 K 고등학교에서도 수재로 이름을 날렸고 20대에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돌아온 그 당시 나의 지도 교수님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편애가 조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눈 밖에 난 채로 입학을 한 나는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첫 학기에 전 과목 A+의 성적을 따냈다. 그러나 그것은 공부를 위한 공부라기보다 망가져버린 내 인생에 대한 분노와 나를 무시하는 세상을 향한 복수와 야심을 불태우기 위한 교만한 몸짓이었던 것 같다.


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버린 내 성적에 놀란 그 교수님은 이제 오히려 나를 무척이나 편애해(?) 주셨고, 급기야 어느 날 나를 불러 박사과정을 위해 국비 유학 시험을 보라고 권유하게 된다. 당신이 국비 유학시험의 출제위원으로 뽑혔는데 새로 만들어진 우리 분야에서는 나밖에는 붙을 사람이 없으니 시험만 보면 된다는 것이었다. 유학에 대한 새로운 꿈을 안고 열심히 준비를 하던 어느 날, 그 해부터 국비 유학 시험의 전형 조건에 대학 시절의 성적이 B학점 미만인 사람은 시험 칠 자격이 없다는 새로운 조항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지도 교수님은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그럼 자기 밑에서 빨리 박사를 마치고 미국의 Post-Doc. 과정으로 떠나라고 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후, 예수 믿는 여자… 지금의 아내 최문선 동무를 소개받아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나는 3년 만에 국제 저널에 논문을 4개 발표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만일 현역병으로 군대를 갔다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을지? 박사과정으로 바로 유학을 떠났다면 아내를 만날 수 있었을지? 학위 과정으로 미국에 왔다면 그렇게 깊이 신앙생활에 빠져들 수 있었을지? 나를 믿음으로 인도했던 신앙의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 그리고 마침내 코스타 집회를 통해 인생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감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전공공부를 끝까지 하도록 만들어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되었던 것이 지금 와서 얼마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지? 내가 전공하게 되었던 재료공학/기계공학을 접목하는 특수한 분야가 이곳 연변과기대에서 초창기 교수요원이 부족했던 그 시절 얼마나 유용하게 잘 사용되었던지? 그리고 나의 문과적 취향으로 인해 과학사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열고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음악하는 아내를 얻은 것이 이곳에서의 사역에 얼마나 큰 도움과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 속에서 빈틈없이 준비되어 왔던 일임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하나님은 젊은 시절 방황하던 나의 그 모든 일 가운데서 나를 지켜보고 계셨고 준비하게 하셨으며, 그리고 때를 따라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람과 환경을 통해 특별한 방법으로 간섭하셨던 것이다.


*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간섭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할지라도, 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로에서 내가 스스로 결단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국 땅 중국, 그 낯선 곳을 향해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이끌고 삶의 거처를 옮겼던 그 사건이었다. 그것은 진정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었고 체험이었다.


성경에 나타난 대조적인 인물들 가운데… 아벨과 카인, 야곱과 에서, 아브라함과 롯, 다윗과 사울 등 우리에게 교훈과 경종을 주는 인물 쌍 들이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 분명 하나님을 알고 자라난 사람들이었는데 어째서 한 사람은 영광과 축복의 반열에, 다른 한 사람은 모멸과 멸망의 길에 들어섰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심을 끈다.


무엇이 그들을 갈랐을까? 분명한 것은 축복을 받은 자들이 반드시 완전한 의인이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 선택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벨의 삶에 대해서는 성경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차치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많은 허물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성격적 결함이 있었으며, 떡의 문제 즉 물질과 여자 혹은 명예심에 의해 다투기도 하고 시험을 받아 유혹에 빠졌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했던 사람이었고, 그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떡 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소유보다 존재를 더 귀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그 귀중한 장자권을 육신의 정욕에 따라 떡 한 조각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 구약시대의 장자권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을 이어갈 권리를 의미하기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요 백성이 되기 위한 영생의 선택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만홀히 여긴 에서는 떡 한 조각을 소유하려다가 영생을 놓쳐버린 망령된 자가 되고만 것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던 아브람과 사래는, 중도에 정착했던 하란 땅에서 살아가던 중 다시 한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는다. 문화 도시 하란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던 그들에게 앞길을 알 수 없는 척박한 새 땅을 향해 다시 떠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그 문제로 인한 부부싸움도 많았을 것이고, 하란에서 모은 많은 소유물들과 그곳에서 쌓고 누렸던 커리어들을 두고 떠나기 아까워서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택했던 것은 그 많은 소유물들을 바리바리 싸서 낙타 등에 싣고 기나긴 대상 행렬을 이루며 사막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창 12:5) 마치 우리 부부가 10년 전 눈물의 기도 가운데 40피트 컨테이너에 각종 세간과 피아노 오르간 등 그 많은 이삿짐을 싣고 중국 땅을 밟았던 것처럼. 아브람과 사래에게 소유의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요, 그것을 초월한 인생을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 모든 소유의 문제보다도 하나님의 기업을 향한 부르심을 더 소중히 여겼던 그들의 믿음과 순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축복을 누린다.


하나님의 부르심…… 그것은 바로 우리를 소유의 굴레에서 이끌어 내어 영원한 존재의 세계로 옮기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영원한 기업을 향한 그 목소리를 우리는 소명이라고 부른다. 그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떡 한 조각으로 인해 영원한 기업을 놓치는 망령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우리 인생 속에 나타나는 필생의 선택 앞에서 깨어 있도록.


초창기에는 항상 한국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며 살던 아내가 최근 들어서는 마침내 이곳에 마음을 붙였는지 아니면 체념을 했는지, 이제는 연길이 자기가 살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으로 흐뭇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아내의 취향대로 깔끔하게 꾸며놓고 안정된 생활 공간을 갖게 되었다. 예민한 성격의 아내에게는 그것도 그런 대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평양 프로젝트의 일을 맡게 되면서 아내는 몹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마치 10여 년 전 포항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당장 어딜 떠나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저녁, 크게 한바탕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왜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느냐고. 왜 당신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만 맡아서 하느냐고. 이러다가 결국 옛날처럼 또 떠나자고 할 것 아니냐고… 이제 자기는 다시는 아무데도 떠날 수 없다고. 이제 겨우 마음 잡았는데… 엉엉… 아내는 한번 울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냥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쏟아내야지만 겨우 마음이 풀린다. 아내의 울음을 바라보며, 내 안에도 두려움이 생긴다. 정말 이곳은 우리에게 하란 땅일까? 가나안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내처럼 예민한 여자가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 또 다시 떠나야 한다면? 겁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니 만일 평양에 대학을 세울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북한의 청년들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어떤 떡 조각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고 나를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기업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의 믿음이 그 일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연변과기대에서 이루었던 기적같이… 제2의 출애굽처럼 수많은 무리들이 짐을 싣고 홍해바다를 건너 평양 땅을 향해 움직여 가는 새로운 환상과 기적을 바라본다. 오 주님! 그 일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