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 리포트


가족 요법 (Family Therapy): Caring Heart for Others


처음 미국에 와서 도저히 이해 되지 않고, 문화적 충격 이었던 것이 있다면 도덕과 윤리가 무너진 미국의 가정 생활이었습니다. 제가 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주위에 있는 친구들만 보아도 원만한 가정-양쪽 부모님이 계신-에서 자란 친구들 보다는 기독교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이 이혼하여 편 부모와 함께 혹은 친척들이나 조 부모님들과 함께 여러 가지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갈등을 겪어 가면서 사는 친구들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아도 제 클래스의 90%의 아이들은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대 부분이고,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자란 아이들 보다는 결핍과 학대로 상처 받은 아이들이 더 많이 있다 보니, 그 아이들은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을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저의 학급에 D라는 학생이 있는데, 그 아이는 매일 아침에 저를 보면 얼마 전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난 Mr. Roger가 그의 TV 프로그램 Mr. Roger’s neighborhood에서 부르던 노래 한 곡을 부릅니다.

It’s a beautiful day in this neighborhood,
A beautiful day for a neighbor.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It’s a neighborly day in this beauty wood,
A neighborly day for a beauty.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I’ve always wanted to have a neighbor just like you.
I’ve always wanted to live in a neighborhood with you.


So, let’s make the most of this beautiful day.
Since we’re together we might as well say: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Won’t you be my neighbor?
Won’t you please,
Won’t you please?
Please won’t you be my neighbor?


D라는 학생은 이 노래를 저에게 와서 부를 때 “Would you be mine? Could you be mine? Please won’t you be my neighbor” 이라는 가사 중 ‘mine’ 이나 ‘neighbor’ 라는 단어 대신 ‘mother’ 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부릅니다. “Would you be my mother? Could you be my mother? Please won’t you be my mother?” 이렇게 말입니다. 처음에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 저는 너무 재미 있어서 그냥 웃어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엄마가 될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할 때에도 계속 웃고만 있었더니, 제가 대답을 안 하면 계속 노래만 할 거라고 하여 결국은 “Yes”라고 대답 했답니다.


그 아이의 아빠는 감옥에 가 있고, 혼자서 두 남매를 키우면서 사는 엄마는 생계 유지에 허덕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적인 여유 조차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가정 환경 뿐만 아니라 그에게 기대하는 엄마의 생각에 저는 더욱 놀랐습니다. 그의 엄마는 아들인 D가 워낙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정서 장애 아동이다 보니 아예 포기하고 이미 초등 학교 2학년 때부터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 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소년원에 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의 학습적인 면을 보면 그렇게 장애를 가진 아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그의 원만하지 못한 가정 생활로 인해 그가 정서 장애 아동이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또 한 몇 달 전에 이코스타에서 소개한 알코올 중독 엄마의 가출로 다른 엄마를 필요로 하는 B 라는 어린이는 한 동안 새 엄마가 있었으나 학대와 구타를 당해서 힘들어 했습니다. 결국 싱글 인 저에게 자기 아빠와 결혼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답니다. 제가 보기에 청교도 정신에 세워진 기독교 국가라는 미국의 가정은 너무나 많은 질병을 앓고 있습니다.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혼율, 알코올과 마약 사용의 증가, 타락한 성 문화, 10대의 임신, 동성 연애 등등은 한 가정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런 가정 문제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태어난 학문이 바로 가족 요법 (Family Therapy)입니다. 사회의 기본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 할 가정의 무너짐은 우리들에게 많은 갈등과 문제들을 가져와 생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상담 (counseling)에 비해 가족 요법은 그 문제를 좀 더 폭 넓게 이해하고 함께 연구하려는 관점에서 치료 (Therapy)를 시작 합니다. 1950년대에 새로이 태어난 가족 요법이라는 학문은 그 역사도 짧은 반면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학문으로서 많은 관심을 얻고 있습니다.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철학 등의 다양한 학문들이 합쳐 져서 이루어진 가족 요법은 가족 서로간에 갖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회 복지 (Social work/ Social welfare)에 가까울 수 있겠고 문제를 이해하고 도움을 찾았을 때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정신 의학 (Psychiatric medicine) 에도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족 요법이 사회 복지 대학 내에 있는 학교도 있고 의과 대학 내에 있는 학교도 있으며 심지어 많은 신학교에서도 기독교 상담 학을 하면서 가정 사역에 관심 있는 목회자들에게 가족 요법(Family therapy) 자격증을 취득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그럼 이 가족 요법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자세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저는 가족 요법의 기본 적인 개념과 우리 기독교 세계관이 많은 유사한 점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가족 요법을 통해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다 보니 .(Accept yourself the way you are.) 우리에게 처한 환경을 현실 그대로 받아 들인다. (Accept your situation the way it is)


만 약 우리 자신과 처한 환경을 부인하는 것은 어떤 문제와 갈등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가족 요법 치료사들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 하기 때문에 각자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 다른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하더라도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라고 강조합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감옥살이를 한 요셉의 삶을 보면, 자신의 형제들로부터 시기와 질투 속에서 미움을 받고 결국 노예로 팔려가 수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살아 갔지만 그의 현실을 비관 하지 않고 언제나 꿈을 갖고 그 꿈을 현실화 하는데 노력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꿈이 이루어 진 이후에도 요셉은 형제간의 우애를 변치 않으며 살아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 크리스천들도 요셉 처럼 자신에게 처한 고난과 아픔 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가족 요법을 통해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Understanding others and their life situation)


우리의 이기적인 생각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의 환경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가족 요법 치료사들은 심리극 (psychodrama)과 같은 방법들을 도입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에 앞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이해 시키는 역할을 먼저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큰 다른 점이 있다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순결한 섬김을 통해서, 특히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으면서 온 인류의 영혼 구원까지 책임지신 그의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남을 사랑으로 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잘 이해해 주시는 첫 번째 role model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각자 자라온 환경, 즉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Understanding of diversity)


가족 요법 치료사들은 사람들의 자라온 환경을 비롯해서 사회적 문화적 차이를 이해할 때 그들의 문제점과 갈등해소 방법을 찾게 된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얼마나 상대방을 향해 마음의 문이 열려 있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 과정에서 치료는 시작된다고 보는데 예수님께서도 어떤 문제들을 갖고 찾아 오는 분들을 위해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받아 들이시고 치유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양성의 이해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열린 마음 (Open mind)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3가지의 내용들을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에 적용해 봅시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와 여자가 부모님을 떠나서 한 몸을 이루어 한 지붕아래 살아갈 때, 자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알지 못 하고 자신에게 처해 있는 현실 (고난 혹은 어려움을 의미함)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상대방 (배우자, 자녀, 가족 구성원 모두)을 마음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으로 달리 성장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갈 때에는 반드시 어떤 문제를 갖고 살아가고 그 문제 해결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의 가족 관계 형태 (different structure of the family)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가 족 요법은 크게 근대적 가족 요법 (modern family therapy)과 현대적 가족 요법 (post modern family therapy) 으로 나누어 지고 이 두 가지 요법 안에는 대략 15개 정도의 요법들이 있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과 처한 환경에 따라 치료 방법 또한 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법들이 사용되기 전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 (Caring Heart for Others)” 입니다. 지금까지는 가족 요법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았는데 다음 달 이코스타에서는 여러 가지의 가족 요법들 중에 제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들을 소개할 까 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