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7년 5월호

상대주의는 다양한 이론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험 혹은 문화적인 특징과 각 요소들은 상대적이라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상대주의자들은 인간은 신념과 행동 규범들을 오직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하에서만 이해하고 평가할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대주의는 종종 진리 상대주의, 즉 절대진리란 없다는 원칙, 를 의미하곤 하는데, 다시 말해서 진리란 언어 혹은 문화 등과 같은 참조의 틀에 항상 상대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상대주의는 최근에 생겨난 신종 용어가 아니고 고대로 부터 중세, 근세,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 속에서 많은 사상에 담겨져 있다.(1) 일례로, 현대의 기독교 철학 사상중에도 많은 움직임들이 윤리적인 측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만를 위주로 열거해 본다면, 정서주의(emotivism), 주관주의(subjectivism), 상황주의(situationism)(2) 이라고 할수 있다.


좀더 풀어서 말한다면, 정서주의에서는 모든 윤리적 진술들을 정서적이라고 주장한다.


다시말해, 도덕적인 발언은 단순한 우리의 감정의 토로이지, 도덕적인 의무에 대한 신의 명령이 아니다 라는 견해로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다. 주관주의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로서 인생을 위한 객관적인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믿는 실제적인 도덕률폐기론(3)이다. 상황주의는 모든 상황에 상대적이라는 견해인데, 예를 들어 사랑의 결정은 인식적으로가 아니라 상황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역사적 상대주의에 빠져서 근본적으로 과거의 시대의 인간과 이 시대의 인간이 다르다고 이해하는 데서 오는 오해도 있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개념들은 철학 교과서에서만 찾아 볼수 있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 젊은이의 일상속에 깊이 파고들어 와 있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주일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들을때, 필(Feel)을 받아야 소위 은혜를 받았다고 여기는 경향이라든지, 개인 큐티 시간에 마음에 평소에 와 닿았다고 느끼는 말씀을 편식하고 나의 상황에 쉽게 적용할 것은 뭐 없나를 먼저 찾는 경향등에서도 그 영향을 의심해 볼수 있다.


소그룹 나눔 시간에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 탐구의 열정은 식어가지만, 방향성 없는 말들만 무성하게 나눈 후 모임을 마무리 하고 친교 시간만 계속 늘어나는 경향도 염려해 볼수 있으며, 성경공부 시간에 나눈 말씀에 바탕하지 않는 주관적인 걱정만이 담긴 상황적인 기도제목을 반복해서 들을 때면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들곤한다. 더 나아가서 성경말씀을 구시대적인 글의 묶음으로 오해하여 절대적 진리를 상대적인 상황화의 논리에 전복시켜서 신구약 시대에 활동하시는 하나님과 인간, 오늘날 시대에 활동하는 하나님과 인간을 동일하게 보지 못하는 경우에서도 이런 경향을 엿 볼수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포스트모던의 상대주의에 빠져있기는 하지만, 그 상대주의적인 가치관이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또다시 만족을 줄수 있을 것 같은 어떤 것을 찾아 신비주의를 추구하기도 하고, 종교적인 봉사에 몰입하기도 하며, 세속주의적인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상시 하면서 신앙적으로 포장하여 합리화 하기도 한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사회(4)에서 우리 젊은 청년들의 당면한 중대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상대주의를 극복하고 의미 있는 삶의 규범과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세상속에서 열린 겸손한 신앙을 유지하면서 열리기는 열렸으되 범람하는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의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고 상대적인 것을 매개로 하여 오히려 절대적 가치를 더욱 갈망할 수 있는 신앙과 삶의 본질적인 면을 회복되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은 결국 절대적인 성경의 해답이다. 허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주어진 문제에 단답식 으로 피상적인 답을 달아가는 top-down approach식으로 해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소그룹 운동을 통해 bottom-up approach 식으로 성경을 붙잡고 함께 씨름하며 진실된 관계적 만남을 통해 마음과 생각을 열고 각 속사람을 계속 변화시켜 주시길 원하시는 성령님께 더욱 의지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정리하면서 “이 세상에 절대 가치라는 것은 없다. 절대 기준이라는 것도 없다. 타자(他者)에 대한 개인의 평가나 감상은 그야말로 개인적이고 상대적인 평가일 뿐,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식의 귀로 들을 수 있는 말들을 젊은 이들의 공동체에서 얼마든지 찾아볼수 있다. 사실, 그 보다 더욱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귀로는 들을 수 없지만 심혈을 기우린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는 젊은 영혼들의 존재적인 신음이다. 마음을 열고 듣고 예수의 마음을 품고 함께 고민하며 말씀과 기도에 사로잡혀 사랑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다. 이럴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안에서 만 찾을 수 있는 행복의 기준, 삶의 의미과 영원한 대답을 제시하여 줄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Geisler, N. L., Introduction to Philosophy
(2) Geisler, N. L., Ethics : Alternatives and Issues
(3) Lewis, C. S., The Abolition of Man, appendix
(4) Newbigin, Lesslie,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