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스타 2003년 6/7월호

간증을 시작하며


제가 7년 반만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올 봄에 제주대학에 정착하기까지의 기간을 돌아볼 때, 코스타를 언급하지 않고는 저의 미국에서의 삶을 얘기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코스타가 제 삶의 가장 귀하고 큰 중심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코스타를 한번이라도 참석 할 기회가 주어지는 사람들이 단 몇 퍼센트도 안 되는 소수라는 생각과, 그런 특권과 복의 기회가 내 인생에서 몇 년 동안이나 주어질까 하는 생각에 기회가 되는대로 참석하다 보니, 7년의 재미기간 중 한해를 빼놓고 6년 동안 코스타를 갈 수 있었습니다. 그 한번 한번의 코스타가 저에게는 너무나 큰 도전과 복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실제로 저는 영적인 복 뿐만 아니라 학업과 삶에 있어서도 코스타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코스타 기간동안과 코스타 이후에 받은 복들을 연도별로 간략하게 헤아려 보면, 96년 첫 코스타 이후 저는 연구 조교 자리를 거의 기적적으로 얻을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그 해 여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그 이듬해 봄에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97년 수련회에는 아내와 함께 코스타를 참석하였고, 그 이후 참으로 어려운 상황들이 닥쳐왔었는데,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98년에는 등록까지 했었는데, 아내의 임신을 코스타 바로 직전에 알게 되어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해서 할 수 없이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었습니다. 99년에는 태어난 지 4개월 된 쌍둥이 딸들과 함께 12시간동안 운전을 해서 코스타 참석을 할 수 있었으며, 그 이후 어려웠던 교회의 문제들을 잘 지혜롭게 대처하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코스타 이후에는 그 동안 안 되던 실험 장치와 방법들의 문제점들을 파악해서 해결할 수 있었으며 실험 결과가 좋아서 첫 논문을 쓰게 되었고, 2001년 코스타를 통해서는 오랫동안 정리가 되지 않고 답을 찾던 학문과 신앙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며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는 은혜가 있었으며, 코스타 이후에 예상치 않던 값비싼 장비를 빌릴 기회가 주어졌으며 실험결과가 잘 나와서 졸업을 할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2002년 코스타에서는 간사로 섬길 수 있는 특권과, 박사 후 과정을 위해 옮길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귀한 교회와 삶의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반드시 코스타의 직접적인 결과나 코스타를 참석했기 때문에만 일어났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코스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코스타를 중심으로 일들이 전개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던 저의 유학생활 동안의 간증들을 코스타를 중심으로 몇 회에 나누어서 여러분들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96년 코스타를 참석하기까지


저는 이미 유학을 가기 전에 코스타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었기에, 미국을 가기만 하면 꼭 한번은 코스타를 참석해 보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너무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유학 첫 일년을 마칠 때쯤에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거의 탈진 상태에 있었습니다. 영어실력도 안되고 기초실력도 모자라는데 전폭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오게 된 유학인데다가, 전공도 바뀌었으니 수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수업시간에 아무리 졸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눈이 감기고는 했던 첫 학기와, 숙제를 아무리 읽어봐도 문제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고, 심지어 선배들이 풀었던 답을 봐도 왜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답이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막막해 하며 한 해를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 잘 나올 리가 없었으며, 더불어 연구조교 자리를 찾기는 더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가에서 받은 장학금과 온 가족이 모아준 돈을 합쳐도 겨우 1년을 버틸 만큼이었으며, 여름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가을학기에 등록을 못하게 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절망감도 절망감이거니와, 설사 어떻게 경제적으로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무능력 감 때문에 이렇게 몇 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사방이 막혀있는 감옥처럼 느껴져 밀폐 공포증까지 있었던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이었는데 96년 4월초에 코스타 등록원서를 보게 되었고, 등록원서를 보자마자 눈 딱 감고 그냥 등록을 했습니다. 육적으로 영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상황에서 자포자기식으로, 또한 어디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어보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등록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 전에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수련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셨기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마음도 컸었습니다. 레위기 23장 말씀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번제나 화목제 등의 제사를 지내고, 매주 안식일을 지켰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일년에 세 번을 따로 모여 여호와 목전에서 거룩한 성회를 하라고 하셨으며, 그 중에서도 유월절과 초막절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모아서, 일주일씩 여호와 앞에 함께 모여서 절기를 지키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매주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여름과 겨울에 수련회를 가서 몇 일씩 세상과 분리되어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면서 쉬는 거룩한 모임이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정하신 절기의 원리 속에 있다는 것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이미 그런 말씀에서 깨달은 영적 원리들이라는 것을 개인적으로는 그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어 수련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되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저 개인적으로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그 해의 코스타 주제였습니다. 96년의 코스타의 주제는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 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93년, 94년도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차갑고 강철 같던 저와 제가 속해있던 청년부에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주셨고 성령의 탄식하는 영을 저와 저희 청년부들의 심령 속에 심어주셨던 경험을 했었습니다. 그때의 주제와 말씀도 역시 ‘부흥’ 이었고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개교회의 부흥 집회와는 구별되는, 개인이나 집단의 거룩한 회심을 통한 사회와 민족과 족속들 까지도 변화되는 미국의 1차 2차의 대각성 시기 같은 이 영광스러운 시대로의 부흥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되었고, 그러한 부흥을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95년에는 개인적인 여러 사정상 수련회를 못 갔었고, 이제 개인적으로는 2년 만에 맞는 수련회인 그 코스타가 역시 동일한 주제로 계속되었으니, 거기에다 코스타가 열리는 장소는 시카고 부근의 위튼 대학(Wheaton College)으로서 94년도에 미국 크리스천 대학생들의 집회 중에 집단적으로 ‘부흥의 조짐'(주:부흥과 개혁사의 <캠퍼스를 태운 하나님의 부흥을 말한다> 참조)이 있었던 것을 미국 오면서 막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두 대학생의 간증을 들으면서 시작된 저녁 집회가 그 다음날 아침까지 밤을 새우며 회개와 기도 찬양으로 계속 되어졌으며, 천 여명의 대학생들이 그렇게 며칠을 회심과 회개와 말씀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의 폭포수 같은 은혜를 경험했으며 그 결과로 담배와 음란잡지, 그리고 마약 등을 자발적으로 모아 소각하게 된 양만도 엄청 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번에는 주제처럼 저에게도 또한 우리 한국 유학생에게도 그러한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게 되는 소망을 더욱 크게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큰 잔치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하며 지역 교회에서 렌트해 준 미니밴에 대략 여덟 명 정도의 학생들이 1박 2일로 보스톤에서 시카고까지 20시간을 운전해서 가게 되었던 첫 코스타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잔치라는 것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작예배 때 처음으로 에드만 채플로 들어가는데, 이미 시작된 찬양 팀의 찬양과 강당을 꽉 메운 사람들이 손을 들고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성령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어린양을 이십사 장로들과 천사들이 찬양하는 천국의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코스타는 순서 하나하나 진행될 때마다 얼마나 그 말씀들이 저를 도전하고 심령을 뒤흔들어 놓았던지요. 저녁시간마다 부흥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던 하용조 목사님, 오전 시간마다 다니엘서로 유학생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 주시던 이 승장 목사님, 그리고 코스타 출신들의 삶의 현장에서의 간증을 통한 도전과 비전들, 오후 시간마다 20여 개의 주옥 같은 선택식 강의들, 그래서 각자의 관심이나 기대, 그리고 신앙의 단계에 맞춰 이삼십 명씩 나눠서 듣는 강의 하나하나들, 그 속에서 저는 저희 앞에 차려진 큰 잔칫상이 떠올랐습니다. 여러 좋은 경건서적의 저자들,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만 접하거나 소문만 들었던 분들, 그 중 한 분만 오셔도 큰 은혜의 수련회가 될 법한데, 그런 분들이 이삼십 명이나 오셔서 필요한 영적 양분을 다양하게 공급해 주시는 모습 속에서(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코스타에서 이것을 ‘국력낭비’라고 하더군요), 최고의 요리들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가득 채운 상 앞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조별로 모여서 요나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경건의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정리하면서 함께 모여서 그날 받았던 은혜들을 나누던 조별 모임, 이 모임을 통해서 대형집회에서 간과 되어질 수 있는 깊이 있는 개인적인 교제가 가능했고 기도제목 들을 나누고 함께 중보기도하며, 이미 코스타 기간 중에 응답을 받은 기도들로 인해 감사하며 함께 기뻐하며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조원 들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 나는 분이 두 분이 있는데, 한 분은 텍사스에서 오신 자매인데 코스타를 너무 오고 싶었는데 기말고사가 겹쳐서 포기할까 하다가 금식도 하고 기도도 하면서 각 과목 교수님들께 양해를 받고 오신 분이 있었고, 또 한 분은 한국 모 대학 도서실에서 사서관련 일을 하시는 분인데, 전혀 올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셔서 캐나다를 거쳐 이 코스타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분이었으니, 그 분들과 함께 받은 은혜는 더불어 클 수 밖에 없었지요. 그 외에도 많은 조원들이 코스타를 사모하고 준비해서 왔었고, 또 몇 분은 억지로 끌려오신 분들이 있었는데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그분들의 얼굴표정이 바뀌고 말과 생각이 바뀌어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던 분들도 있었으며 그 모습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답니다. 너무 좋아서 그 해가 다 가기까지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했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코스타에서 좋았던 점은 화려한 미사여구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좋은 양서를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언어의 마술사’ 이 동원 목사님의 양서 소개 시간과 한국의 여러 좋은 양서와 찬양테이프 및 CD를 할인해서 살수 있었다는 것과 그 책들을 코스타 이후에도 읽으며 영적 공급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백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인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는 역사와 또 다른 백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2년 이상의 단기, 장기 선교사로 헌신하는 모습은 참으로 그 감격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백 명 가까이 얻은 이 때에 하늘에서 열리는 잔치의 기쁨을 생각하면 코스타가 여기서 끝나도 원 없이 좋지만,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에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원 받을 때까지 코스타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져야 한다’ 던 한 간사의 말과, 자신의 바쁘고 힘든 유학생활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코스타에 자원 봉사하여 수 십일을 밤잠을 설치며 준비하고 현장에서도 코스타 진행을 도우려고 바쁘게 움직이던 간사들이, 힘든 육체의 고단함에도 기쁨과 평안으로 가득한 미소와 얼굴로 우리들을 위해 섬기시던 모습들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실패한 코스타 (?)


그러나 그렇게 순서순서 마다 은혜가 가득했고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렇게 기대하고 소망하던 개인적인 ‘부흥’이나 공동체 전체에게 허락하신 ‘부흥’을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부흥’은 너무나 명백히 ‘아주 좋다’ 거나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영접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을 알고 있었던 저로서는, 나름대로 용기를 내어서 금요일 점심시간에 마지막으로 모인 조 모임에서 그것을 얘기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각자 받은 은혜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참된 ‘부흥’은 이것과는 명백히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주권적인 임재와 역사이며, 우리가 경험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그 분을 아는 지식과 우리의 죄인 됨의 인식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가 머리와 가슴과 삶과 우리의 모든 말과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인쳐지는 것이고, 그 결과는 본인이나 공동체 전체가 뚜렷이 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나 사회, 심지어 한 나라 혹은 세계 전역에 까지 그 영향력이 크게 나타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해의 코스타 주제가 바로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라는 면에서, 이번 코스타가 실패인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래야 사람들이 ‘부흥’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되어 이런 것이 바로 ‘부흥’인 것으로 착각함으로써 참된 ‘부흥’을 기대하거나 소망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우리 조원 들만이라도 깨어서 계속해서 기도하자고 감히 주장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나 하나님은 일 년이나 지난 뒤에 저에게 다른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계속)


마무리하면서 사족


저는 코스타만이 모든 것이고 코스타를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된다거나 누구나 다 물질적 혹은 영적 복을 받는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처럼 코스타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도 많지만 또한 코스타를 참석했으면서도 은혜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기에 이것을 꼭 나누고 싶을 뿐입니다. 저는 매년 코스타를 참석하면서 어쩌면 이번 코스타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만큼 각박한 유학생활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하게 저는 한국으로 돌아온 올해에도 코스타를 참석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정말로 저에게 마지막 코스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참 기대가 큽니다. 한국에 돌아오면서 어찌 보면 가장 필요한 것이 ‘순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되 세상을 떠나거나 등지지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고귀하고 순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는 정말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뱀 같은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 순결함일 것 같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세상의 방법을 너무 쉽게 쫓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 들이 이제는 진실로 순수하고 순결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고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하며 그분 앞에서 그 분만을 청중자로 두고 살아갈 때 인 것 같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들이 속한 공동체에 선포되어, 주위에 거룩한 흰옷을 입은 청년들이 자진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날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다에 물이 가득할 그 날들이 돌아올 것입니다. 이번 2003년 코스타를 통해서 그런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