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이]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세계관 단상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인가…. 이런 말을 듣는 목사님이나 신학생들은 아마도 크게 분개할 것이다. 목사가 된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단순한 일이냐며,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며 나를 크게 꾸짖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일은 부르심(Calling)이 없이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미국에 유학오기 전 약 1년 반 동안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할 때, 대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약 3년 여의 ‘훈련’기간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학교생활과(대학원에서의 실험실생활은 반쯤 직장생활이었다) 교회생활에서 체득한 경험이 내 자신에게 있어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분명히 훌륭한 직장인이 되어 직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직업, 직장생활에 관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책도 읽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면서 멋진 직장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부딪혀야했던 직장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서 직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주위의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직장 내 신우회에(직장 내에서의 그리스도인 교제모임을 보통 한국에서는 신우회라고 부른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계획과 생각들은 여지없이 무너져갔다.


1. 직장상사와의 갈등


내 직속상사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술, 담배를 몹시 즐기는 것은 복음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용납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치관은 가장 세속적인 출세주의였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복음의 능력과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같이 식사를 할 경우 내가 식사기도를 하면 자신도 그렇게 식사기도를 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하여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완전한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유일한 차이인 것처럼 보였다. ‘출세’라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엄청난 추진력으로 일을 하다보니 직장 내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유능한 연구자로서 인정을 받는 터였다. 그는 내게 그러한 자신의 ‘개똥철학’을 매일같이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 상사를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당시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내가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공부할 기회를 많이 갖고 싶었는데, 내게 엄청나게 던져지는 일을 감당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의 성공을 위하여 이용 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내가 속한 연구부의 부장은 매우 권위적인 ‘비그리스도인’이었다. 내게 주일에도 일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였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밝히자 나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계속해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내게 술을 권하였다. 내가 정중하게 거부하자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했는지 거의 강압적으로 술을 권하였다. 나는 직장상사의 권위에 앞선 하나님의 권위를 우선으로 두려고 노력하였다. (술 마시면 천국 못 간다는 식의 율법주의로 이 글을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국 그 대가로 나는 매우 어렵고 힘든 직장생활을 감내해야만했다. 이러한 갈등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좌절이 나를 힘들게 했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영적침체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2. 시간의 문제


나는 한달 평균 300시간 이상 일할 것을 요구받았다. 평일에는 평균 12시간 이상 직장에 있어야 했고, 조금 바쁜 일이라도 있으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연구실과 연구실 사이를 다닐 때에는 걷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뛰어야 할 만큼 바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겨우 연구실에 가고, ‘죽어라’ 뛰어 다니며 일을 하고, 저녁엔 녹초가 되어서 들어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개인여가를 즐기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성경공부 인도하는 일, 다른 지체들을 돌보고(care) 훈련하는 일 등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QT와 기도 등 개인 경건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개인적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GRE, TOEFL 등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그러한 압박은 더욱 심했다. 하루에 4시간 여 밖에 잠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의 일도 효율적이지 못 했고, 유학관련 시험준비도, 개인생활도 모두 다 엉망이 되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그러한 상황에서 “강요 당하는 자”(driven person)가 아닌 “부르심 받은 자”(called person)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역시 이로부터도 나는 심한 영적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3. 동역자의 문제, 교제(fellowship)의 문제


학교에 있으면서 학원(campus)에서 성경공부를 조직해서 인도한 경험이 있던 터라 직장에 가서도 그러한 일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두세 사람만 모을 수 있다면 QT를 나누는(sharing) 모임 같은 작은 모임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만 그렇게 바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터였고, 거기서 더 헌신하여 어떤 형태의 모임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 독신이었던 나도 그토록 버거웠는데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나마 약간의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경우 수 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그러한 소망과 열정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자연히 나도 내가 막 시작한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그리스도인 선배들과 효과적으로 나눌 통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해야 했다. 교제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하고나 가능했지만 그나마 적당한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가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신우회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생활에서는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고민과 비전과 생각과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사역할 동역자를 만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으로 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4. 부정한 체제(system)의 문제


가장 신참이었던 내게 가끔 주어지는 일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자주 했던 ‘가짜 영수증 만들기’는 이제 이력이 나 있었다.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했다며 그 전문가의 체제비, 강의비, 식비 등을 신청해서는 같은 팀의 사람들끼리 회식을 하는 일이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다. 같은 자료(data)로 여러 학술잡지에 짜임새(plot)만 약간 바꾸어서 논문을 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팀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과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하신 에베소서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나는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는 당위를 어떻게 설명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제일 신참이고 나이도 어린 내가… 내가 자주 선택한 길은 도망하여 숨는 것이었다. 화장실이고, 자료실이고 실험실이고… 이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숨어서 그저 내가 그 일을 맡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비겁한 일인가! 게다가 그렇게 얻어진 회식비로 나도 함께 가서 12만원 짜리 광어회를 맛있게 먹고는 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큰 체제(system)와 싸워서 공의와 정의를 지키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아 보였다. ‘타협’, ‘회피’, ‘대립’ 등 바람직하지 못한 반응 등을 보이던 나는 조금도 그들을 ‘변혁’시키지 못한 채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챙겨들고 연구소를 나왔다.


나의 이러한 경험들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지만, 내가 가졌던 교만한 ‘비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정사정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역시 많은 부분 문제는 직장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던 나의 태만과 직장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의 무지에 있다. 그러나 한가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인이 한국의 반도체 관련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누군가는 가서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하고,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나는 다시 한국에 가서 직장생활을 할 것이 두렵다. 몸서리가 쳐진다. 사자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런 식의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는 목사님들이 부러워진다. 그 좋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하는 일이 ‘주업’이 아닌가! (아마도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의 어려움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리라) 게다가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왠지 더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용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원론적인!) 생각에 나도 그런 소명(calling)을 받고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평신도로 부르신 것에 감사한다. 목사님이나 선교사들이 가지는 ‘영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전 영역에서 (직장생활을 포함한 불신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하게 하는 거룩한 평신도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고 많은 ‘훌륭한 목사님’들이 있지만 ‘훌륭한 평신도’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냉수 한 사발’같은 사람이 될 기대 때문이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병신도’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평신도였던 집사 스데반, 빌립과 같은 기준을 되찾는 평신도 사역에의 부르심이 나를 몹시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는 멋진 평신도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기쁨과 감격이 몸서리치게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목사님, 선교사님, 혹은 그 지망/헌신자들의 기운을 빼는 글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고 저는 그 모든 분들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반영운] 오른쪽 표지판을 따라서

삶과 기독교세계관


오른쪽 표지판을 따라서


지난 주일(7월 22일) 아침, 현재 서울에서 다니고 있는 ‘문을 여는 교회’의 수양회가 열리고 있는 용인 청소년 수련원에 뒤늦게 참여하기 위해 양재역 근처에 있는 서초 구청으로 향했다. 교회에서 협동 목사로 수고하시는 전현철 목사님과 오전 7시에 만나 함께 가기로 약속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전날인 토요일에는 미국에서 같은 교회에 다니던 형제와 자매들이 함께 하는 성경 공부에 참석했었다. 약간 늦게까지 뒤풀이를 한 후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는 PC 방에 들러 ‘미국’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집에 들어가니 벌써 새벽 두 시가 넘고 있었다. 무더위에 흐른 땀을 씻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적어도 여섯 시 전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하는 염려와 함께….


주님의 도우심이었는지 새벽 5시 45분에 눈이 떠져서 적당히 씻고 짐을 챙겨 잰 걸음으로 지하철에 오르니 6시 5분. 양재역까지 가려면 약 한 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아 일단 5호선을 탄 후 7호선과 3호선으로 갈아타고 양재역에 도착하니 예상했던 대로 6시 58분. 부랴부랴 서둘러서 서초구청이라 쓰여 있는 출입구를 찾아 나섰다. 출입구에 나와 보니 방향 표지판이 생각하던 것과는 정반대인 오른쪽으로 되어 있었다. 약간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난 번에 한 번 와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착하니 7시 3분.


휴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주위를 둘러 보니 전 목사님은 아직 오시지 않은 듯하여 마치 나는 정각에 도착한 양 핸드폰을 들고 약간의 여유를 곁들여 전화를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은 오고 계시는 중이고 이제 약 삼 분 후면 도착할 예정이란다. 난 안심하고는 책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이것 저것 정리를 하였다. 계획도 세우고, 써야 할 페이퍼 스케줄도 정하고…. 시계를 보니 7시 15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도착하실 때가 됐는데…. 길이 막히나? 아니면 잘못 찾으시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다시 전화를 드리려다가 운전 중일 지 모른다는 생각에 (요즘은 운전 중에 핸드폰을 받으면 벌금이 많음) 좀 더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하고 하던 일을 계속 했다. 기다리는 곳에는 여러 여행사들의 차들이 세워 놓고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여기가 구민회관이지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예, 맞아요”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까지만 해도 그 물어보신 아주머니께 가서 여기는 구민회관이 아니라 서초구청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었으나 그분이 금새 자리를 뜨시는 바람에 조금은 미안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동시에 대답하신 아저씨에게도 “그게 아닌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분도 기다리던 차가 도착하면서 막 떠나 버렸다.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비를 피해가며 지하철 안에서 읽던 페이퍼를 마저 읽다보니, 써야 할 페이퍼 제목이 불현 듯 떠올랐다. 그것을 수첩에 적어 넣고 나니 시간은 어느 새 7시 40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뭔가 잘못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핸드폰을 찾아 전화를 드렸더니, 전화벨이 한 번 울렸는데 바로 목소리가 들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서로 다급하게 물었다. 지금 어디 있느냐고. 우리 둘 다, 서로, 지금 서초구청 앞에 있노라고 자신의 위치를 밝혔다. 이럴 수가 없었다. 둘 중에 하나는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다. 나는 확신있게 빨리 이쪽으로 오시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당신이 정확하게 서초구청 앞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물 입구 쪽으로 걸어 가서 건물 이름을 확인해 보니 글쎄 ‘서초 구민회관’이 아닌가? 아뿔싸, 얼굴은 화끈 달아 오르고 어찌 해야 할 지는 모르겠는데 목사님께서 이쪽으로 오시겠다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나서 본능적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우째 이런 일이?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난 7월 6일에서 8일까지 녹색연합이라는 단체와 함께 국내에 있는 생태마을들을 답사한 적이 있다. 그 때 출발하기 위해 만난 장소가 바로 서초 구민회관이었는데 그 곳을 서초구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서초구청 안에 구민회관이 있는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가설과 오해로 빚어진 실수임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어쩌겠는가? 기왕 벌어진 일인 것을….


목사님과 ‘구민회관’ 앞에서 7시 45분 경에 만나서 박장대소를 하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기다리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나누었다. 목사님도 전날 바쁜 일 때문에 새벽 두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가 조금 늦게 일어나시는 바람에, 바삐 챙기고 나오다가 지갑도, 주소록도 다 두고 오셨단다. 그래서 나에게 먼저 전화를 하실 수 없었다고 아쉬워 하셨다. 내 전화번호를 알아 보려고 여러 시도를 해 보셨으나 아무도 이른 시간에 전화를 받지 않더라고. 나는 나름대로 마음에서 오갔던 (위에서 적은) 생각들을 이야기하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드렸다. 그랬더니 당신도 늦게 오셨고 중요한 것들을 챙기지 못한 잘못이 있다고 하시면서 위로하시는 것이었다.


수련회장으로 가는 길 내내 머리 속에서는, 이제까지 살아오는 길목마다 놓여진 표지판들을 무시하고 나름대로의 선입견이나 경험에 비추어 나의 길을 선택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자괴감과 두려움이 맴돌았다. 분명하게 표지판은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왜 나는 질문도 없이 왼쪽을 거침없이 선택했을까? 그리고 중간에 기회가 있었는데도 왜 이름을 확인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과 함께.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얄팍한 경험과 기준(심지어는 망각의 늪에서 생겨난)을 절대적으로 믿는 아집과 교만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성경을 읽고 그대로 산다고 해도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의 신, 창조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는) 본래적인 죄성을 벗을 수는 없는가 보다. 결국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가리키는 방향 표지판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일진대 나의 이런 모습은 철저한 불신의 소치에서 온 것이라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참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분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지 애써 연구하고 알아감이 없이, 좁고 뒤틀어진 가치관과 오염된 생각들로 자신의 삶의 방향과 내용들을 결정하고 남도 훈계해 왔으니…. 쥐 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생각을 우리 주위와 한국교회로 넓혀서 어느 부분에서 이러한 현상이 가장 심각할까 점검해 보니 역시 종교적인 전통의 영역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제는 거의 상식적이거나 성경적인 질문마저도 할 수 없고 또 하지도 않는, ‘신학 지상주의’에 까지 다다른 기독교의 실상을 보게 된다. 신학을 최고로 아는 또 다른 ‘전통’이 이미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생각의 범주가 넓어지고 질문의 능력이 싹트기 전 이미 그러한 분위기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깊이 없이 생각이 고정돼 버린 것이 중요한 화근이라면 화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회에서는 목회자가 이야기 하는 것이 질문이나 여과 없이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버리는 형국임을 감안할 때 훨씬 더 그 위험의 수위가 높음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교회당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을 하는 것은 더 할 나위 없는 하나님의 일이며, 선교라는 이름을 붙이면 무엇을 해도 괜찮으며, 전임 목회자가 되거나 외국으로 나가는 선교사가 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헌신이며, 가족이나 이웃이 굶어 죽어도 십일조는 반드시 본 교회에 내야만 하는. 이런 국적 모를 전통들이 우리 신자들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본인이 알든 모르든 구조적으로 교묘히. 어쩌면 구조적으로 숨통을 조이는 가해자들 조차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예수님을 죽일 때 손을 씻었던 빌라도는 그래도 양반 중의 양반이 아닐까?


주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흘리신 동일한 눈물로 우리를 향해 외치시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모두 오른쪽으로 난 표지판을 거스르고 왼쪽으로 가고 있다고.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예언서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외치고 있다(이사야 53장 6절). 구체적으로 예배, 헌금, 사랑을 베푸는 것마저 본래의 정신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거나, 아니면 형제들이 피폐해지도록 돌보지 않고 내어버려 두는 일들이 생겨나는 것을 어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습하고 장사터로 만드는 악행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으며 무슨 논리로 정당화 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이 모든 일들을 예언이라도 하듯 주님의 마음을 대변하여 어떠한 헌금이나 제사도 다 가증스럽고 견디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주께는 무거운 짐이 된다고 선언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통렬히 책망하고 있다. 종교적인 행위는 무성하지만 포도주에 물을 섞고, 뇌물을 받아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지 않을 정도로 공의가 없어져 살인자들만 난무하다고(이사야 1장 전체). 예수님도 당시 이스라엘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당시에 통용되고 있는 십일조에 대해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하셨다. 이 책망의 촛점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십일조가 형식에 빠져서 율법의 핵심인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렸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단언컨대 우리의 실상이 구약 이스라엘의 시대나 예수님의 시대 상황보다 그 타락의 정도가 결코 덜 하지 않다. 화려한 예배당과 그 속에서 연주되는 거룩한 음악, 세련된 설교, 그리고 어떤 지방 자치 단체들보다 풍부한 예산, 바쁘게 돌아가는 모임과 헌신의 약속들. 그러나 정작 교회 안에 참된 의와 인과 신이 있는가? 형제됨이 살아 있는가? 과연 크리스천 개개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공의가 실현되고 있는가? 대교회는 장사터로 변해 버린 지 이미 오래 되었고, 지난 90년 대 초반부터 불거져 나온 교회의 부패와 사회 속에서 저질러지는 굵직 굵직한 해악의 중심에는 어김 없이 내노라 하는 크리스천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떠올리면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나 또한 그 악함에서 한 발짝도 멀어져 있지 않은 공범자임을 자인할 때, 많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꾸짖으며 외친 세례 요한의 음성이 무섭게 들려 온다 –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태복음 3장 7절-10절)


느헤미야는 성벽을 중수하고 나서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으고 학자 에스라를 모셔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게 한다(느헤미야 9장).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듣는 도중에 백성들 사이에서는 회개가 일어나고 결국 그 회개가 이스라엘 전체의 공통된 삶의 전환으로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된다. 곧 이방 백성과의 통혼 금지이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 백성들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율법과 그에 깃든 정신을 어그러 뜨렸던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제사와 예배도, 동족 간의 사랑도 모두 저버리게 된 악한 현실만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백성의 지도자로서 느헤미야의 업적은 성벽의 중수는 물론 더 더욱 백성들의 마음에 율법, 즉 하나님의 마음을 심어 놓은 것이 백미 중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첨단 전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모양과 형태는 다르지만 핵심은 전혀 다르지 않은) 우상 숭배의 악함이 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회복하는 일, 이것 보다 더 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이는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보여준 율법의 회복에 달려 있다. 곧 그 옛날 루터가 외쳤던 “오직 성경으로만!”(Sola Scriptura)의 정신이 우리 개신교의 양보할 수 없는 근간이라면, 우리는 온 정신을 모아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의 가르침을 성경 대로 연구하고 우리의 현실에 적용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절대의 믿음과 그리스도 예수의 속죄로 말미암아 회복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을 통해서만 인간과 자연의 참된 회복을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성경과는 다른 종교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십자가의 정신과 사랑의 정신으로 바꿔가는 참다운 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단지 교회당과 종교 조직과 연관된 영역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아니 우리의 생각이 닿고 노동하는 그 모든 영역들을 하나님의 신앙으로 되살려 내는 작업. 주께서는 그것을 우리로부터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주께서 성령과 성경을 통해 오른쪽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면 그대로 오른쪽으로 가는, 지혜롭고 순결한 신앙의 결과로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