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뜻? 2. 이스라엘은 왜 인종주의 군사국가가 되었나?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지난번에 올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두번째 글입니다. 이번학기가 유난히 바빴던것도 있지만, 글을 쓰면서 내용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마무리를 못하고 한참 끌었네요. 지난 글들에 대해 격려나 의견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은 의사소통을 하기에는 좀 한계가 있는데, 혹시 페이스북을 하시는 분들 중에 더 생각을 나누고 싶은 분들은 친구신청 환영합니다. (godnation @ 쥐메일.컴 으로 찾으시면 됩니다) 아직 쓰려고 생각하는 글이 많이 밀려있는데, 앞으로는 좀더 자주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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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 2. 이스라엘은 인종주의 군사국가가 되었나?


 


0. 들어가며


 


개인적으로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어렸을 때 부터 읽으면서 성경의 인물들은 저의 영웅이었고, 동시에 유대인이나 이스라엘에 대해서도 친숙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나이가 든 후에는 TV에서 해준, 나치에게 고통받은 유대인들의 삶과 홀로코스트 등을 다룬 영화들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면서, 유대인들의 고통에 대해 깊이 공감하기도 했고, 역시 선지서 등에 나온 예언들을 공부하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의 백성이자 인류역사속에서 전무후무한 고통을 당한 유대인들, 그리고 그들이 세운 이스라엘을 응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죠.


그런데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지켜보면서 점점 더 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세계로 흩어져 핍박받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국가를 이루게 된 것은 잘 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그 땅에 천년이상 살던 팔레스타인 인들이 집과 재산과 고향을 잃게 되었고, 지금도 가자지구와 서안(웨스트뱅크)에서는 이스라엘의 가혹한 점령정책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마스 같은 팔레스타인 극렬파의 테러도 당연히 문제지만, 미국의 철저한 지지와 중동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이 살해한 팔레스타인 인들의 숫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지요. 현실을 조금만 들여다 보면, 적어도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보수 기독교의 입장에 성경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를 개략적으로 설명했다면, 이번에는 현재와 같은 인종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정책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역시 민감한 주제인데,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시는 분도 많을 줄로 압니다만, 그럴수록 한번 꼭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번 글에 설명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상황을 몇가지만 다시 소개드리면서 글을 시작하지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는 이스라엘 영토의 확장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엔이 영토를 분할한 1947 직전까지 팔레스타인 영토가 87.5%, 유대인들은 6.6% 불과했으나, 2011 현재 팔레스타인 지역은, 가자와 서안, 그리고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22% 불과하며 지역조차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어 준식민지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가자에서는 전략적으로 철수했으나,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정착촌을 건설해, 이미 50만명 이상의 이스라엘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살고 있으며, 이들은 법적으로 무장할 권리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영장없이 체포할 권한까지 지니고 있어,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 군사조직이라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착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팔레스타인 마을에 관통도로를 뚫고 점령촌과 고립장벽을 세우고 검문소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결국, 22% 땅마저 이스라엘이 점차 먹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에 이스라엘은 국제사회 대부분이 인정하는 1967 경계조차 받아들일 없다는 것이지요.


 


이미 1948년에 독립해서, 현재 세계 7위의 군비를 지출하며, 핵무기를 포함한 중동최대의 군사력을 갖추고 미국의 전폭적 지지를 갖춘 이스라엘이, 하마스 등의 테러위협을 빌미로 협상을 피하면서, 팔레스타인이 먼저 유대국가 이스라엘을 인정하고 완전 비무장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절대 인정할 없다고 말합니다. 팔레스타인은 지난 63년간 주권국가를 이루지 못한채 오랜 새월을 이스라엘의 점령상태에서 살아왔고, 엄청난 숫자의 난민들이 주변 아랍국가들의 난민캠프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스라엘에 의해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수는 2005 통계에 따르면 720 명으로, 세계에 있는 970 명의 팔레스타인인 74%가량이 난민이라고 하며, 팔레스타인난민구제사업기구 (UNRWA) 따르면 난민의 60% 빈곤선 이하로 살며 난민촌 실업률은 70% 육박합니다. 혹자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아랍 국가들이 그렇게 민감하냐고 물어보시는데, 기본적으로 아랍사회는 국가 구분도 있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연대해있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이미 아랍국가에 엄청나게 퍼저서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현재까지도 가자와 서안의 상황이 너무나 비참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분노가 아랍전체에 공유되고 있는 것이지요.


 




일상화된 이스라엘 군의 폭행과 과잉 대응. 아래 오른쪽 사진은2008년 가자 전쟁때 팔레스타인 학교에 이스라엘 군의 포격이 떨어지는 장면 


 


1967 이후, 30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투옥되었고 제도화된 고문을 당했습니다. 2012 5 현재에도 행정구금 300여명을 포함해 4500여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있는데, 행정구금이라는 것은 법원의 영장과 재판도 없는 불법적인 감금이고 6개월 단위로 수감 기간을 연장할 있다고 합니다.


1982년에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아리엘 샤론의 주도로 이스라엘은 인접국인 레바논을 침공 한달만에 이스라엘군이 자그만치 2만명의 팔레스타인인과 레바논인들을 살해하였고 25천여명이 부상당하고 40여만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지난 2006 여름에도34 동안의 공습으로 레바논인 1100명을 살해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내내, 양측간에 공격이 있어왔지만, 언제나 사망자의 수는 팔레스타인이 거의 10에서 100 정도 많았습니다. 2007 과격파인 하마스가 선거를 통해 파타를 대신해 가자지구를 장악하자 이스라엘은 3 이상 가자 봉쇄작전을 실시했는데, 2008 가자 전쟁때는 국제적으로 금지된 백린탄과 열화우라늄탄까지 동원해,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던 1381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살해한 반면, 이스라엘군 사망자는13명에 불과했던 것이 대표적인 입니다. 지붕없는 감옥이라 불렸던 가자에서는 3년간 전력과 수돗물 공급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식량과 약품도 구입할 없었는데, 이스라엘의 유대인 명이 하루에 쓰는 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300명이 쓴다는 간단한 통계만 보아도,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을 있습니다.


 



폭격당한 집에서 울고 있는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팔레스타인 공격에 쓰일 미사일에 글을 써 넣는 이스라엘 어린이


 


2003 3 16일에는 평화운동단체인 국제연대운동소속 미국인 여성 레이첼 코리(23) 가자지구 라파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건물 파괴하려는 이스라엘군의 불도저에 맞서다 불도저에 깔려 사망했는데, 목격자들에 의하면 운전수가 코리를 보고서도 고의로 밀어부쳐 깔아버리고 위를 두번이나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운전수는 아무런 재판을 받지 않았고 미국 정부도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관련기사)


 



생전의 레이첼 코리 (좌), 사망직후 사진 (우)


 


바로 한달 , 4 11일에는 이스라엘의 총격에 쓰러진 팔레스타인 아이를 구하려던 국제연대운동 소속 영국인 활동가 헌달(22) 이스라엘 군의 총격을 받고 9개월간 의식불명으로 있다가 숨을 거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조사에 협조를 거부했고, 총을 이스라엘의 타이시르 병장은 헌달이 먼저 총을 쐈으며 자신은 머리에서 10cm앞을 조준했다고 해, 진실이 묻혀질 했으나, 헌달의 부모가 직접 인터뷰와 조사를 통해 이것이 뻔뻔한 거짓말이었고, 비무장상태의 헌달을 조준사격 했음을 2005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포토 저널리스트이자 평화운동가였던 생전의 톰 헌달 사진과 피격직후 (아래 오른쪽)


 


2010 5 31일에는 고립된 가자에 구호 물자를 전달하려 했던 국제운동가들의 가자자유함대를, 이스라엘 해군이 지중해 공해상에서 공격해, 터키출신의 활동가 9명을 살해하고 30명의 부상자를 발생시켰습니다. 2010 1월에는 모사드 요원으로 추청되는 암살자들이 유럽과 호주 등의 여권을 위조해 두바이의 호텔에서 하마스 간부를 암살하기도 해서 국제적인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최근 네탄야후 총리나 시몬 페레즈 대통령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을 자주 언급해 중동에서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그것이 이스라엘에 주는 안보 위협을 용납할 없기 때문에, 이란의 핵개발이 돌이킬 없는 단계에 이르기 전에 선제 공격해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스라엘이 이슬람 독재국가인 이란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것은 이해 있습니다만, 문제는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시인한 적이 한번도 없고, NPT멤버로서 평화적인 핵에너지의 사용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거짓말일 가능성도 물론 있지만, 반면에 이스라엘은NPT가입도 거부하고 있고, 이미 1979 경에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했고 최소 80여개에서 200여개의 핵탄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세계가 알고 있습니다. 엄연히 국제법상 불법인 것이지요. 여기에서 한번의 놀라운 아이러니를 있습니다. 불법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핵무장국가가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서는 핵실험이나 핵보유도 아닌, 핵개발에 대한 의구심 만으로 선제 공격을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하는 사실. 재미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핵개발을 하면, 아랍의 위협으로 인해 어쩔 없이 자위적 차원에서 했다고 주장하고, 이란이 하면 그것은 이스라엘 공격용이고, 테러조직에 전달할 거라고 믿는 다는 것이지요.


역사적으로 핵보유국이 다른 보유국을 핵으로 공격한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 보유국이 비핵국을 공격한 역사가 한번 있는데,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여한 1945년의 예가 유일하지요. 보유국을 핵으로 공격할 없는 것은, 바로 핵으로 보복을 당해서 결국 상호확증파괴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공멸의 길이라는 것이고, 이것이 냉전기에 미국과 소련이 3차대전을 일으킬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설령 그렇게 지라도, 이스라엘이나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란이 설령 테러리스트에게 핵무기를 건네줘 사용한다고 해도, 현재 기술상 핵무기의 소스가 어디인지 바로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란은 보복을 피할 없습니다. 결국 이란이 핵공격을 한다는 , 스스로 석기시대로 돌아가거나, 국가적 자살을 결심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그걸 빌미로,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는 것이죠. 그 어떤 국가지도자도 생존을 추구하지, 자살을 추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이 테러조직과 국가의 결정적 차이이지요.


이란을 선제공격 하겠다는 이스라엘의 막무가내식 입장을 지지하는 하나의 황당한 이야기가 미국 근본주의 기독인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데, ‘12번째 이맘이라고, 이란이 속한 특정 이슬람 정파가 믿는 일종의 메시야가 돌아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마겟돈 전쟁 같은 대혼란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걸 위해서 아흐마디네자드는 핵을 개발해 (자살행위같은) 선제공격을 하고, 전세계에 핵전쟁을 일으킬 거라는 만화같은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근본주의적인 개념을 믿는 것은 역시 근본주의자들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국제정치의 ABC 모르는 근본주의 기독인들이 이스라엘의 선제공격 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면서, 만일 전쟁이 시작된다면, 이란의 핵개발을 몇년간 늦출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란은 오히려 핵개발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이란의 민주화나 갈등의 평화적 해결은 물건너 가고 이란의 정책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sy) 것이지요. 그런데도 오바마는 네탄야후를 말리기에 급급하고, 이것을 빌미로 네탄야후는 오바마에게 이란을 공격할 있는 벙커버스터를 놓으라고 하면서, 이란이 위반할 시에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을 보장할 구체적인 조건들을 제시하라는 강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우파가 위협으로 지목하는 이란이 실제로 얼마나 미국의 군사기지에 포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도 


 


여러가지 예를 들었는데, 정리하자면, 이스라엘의 정책은, 그대로 국제법과 인권을 쉽게 무시하고 자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다는 모습입니다한마디로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행동할 있는 나라는, 이스라엘 외에는 없다고 있습니다. 세계 강대국은 누가 뭐래도 미국이지만, 미국도 어쩌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가 이스라엘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근본주의 보수 기독인들은 역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우리도 열심히 해서 그런 나라가 되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분들의 머리속에 기준은 예수님이 가르치신 의와 평화와 화해 아니라, ‘힘과 승리와 성공뿐이라는 것을 아주 보여주는 현상이지요.


 


2차대전 이후 2012년 현재까지 국제질서의 발전을 볼 때, 적어도 공공연한 인종차별이나 직접적 식민주의 정책은 많이 사라진 것이 현실입니다. 언론과 인터넷이 발달해 정보가 쉽게 확산되어 국제여론을 무시할 수 없고, 각종 NGO들이 국제규범을 무시하는 국가들을 비난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악명높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부가 국제적 비난과 넬슨 만델라로 상징되는 국내의 투쟁을 통해 무너진 것이나, 2차대전 이후 대부분의 식민지가 독립한 것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스라엘은 아직도 인종주의에 기반한 국가로 존재해 왔고, 팔레스타인에 준 식민주의 점령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현실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상황이지요. 네탄야후 총리는 언제나 연설에서도 유대인 국가(Jewish State)’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요. 네탄야후가 현재 국제적인 합의안이라 할 수 있는 1967년 경계에 기반한 ‘2국가해법마져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인종과 상관없이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민주국가를 세우자는 ‘1국가해법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그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인들이 투표에 참여해 유대국가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다민족국가가 되어서, 근본주의 유대인들이 지향하는 시오니즘의 이상이 붕괴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이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임을 강조하지만, 이스라엘 내 130만명의 아랍인들은 2등시민으로 취급받고 있고, 1967년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불법적으로 식민지배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미국과 한국의 대부분의 기독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충격적일 정도로 단순 무식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다수의 기독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의 모순이 지속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이야기 하겠지만, 이스라엘의 현 정책에 대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은 곧 보수기독인들과 미국내 유대인 로비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결국 현실의 복잡성을 이해할 의사도 없고, 이해할 능력도 없고, 자기에게 주어진 신학적 정치적 프레임을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신이 잘 모른다는 것 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반론은 들어볼 생각도 없이 비판에만 열을 올리는, 근본주의 보수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 어떻게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이렇게 어떠한 특정한 성경해석이나 정치적 관점에 눈이 심하게 가리워진 분들을 제외하고,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한 몇가지 정보만 접해본 분들이라면, 도대체 21세기에 현재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이 가능하고, 이렇게 비참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지속될 수 있는가, 적어도 한번쯤은 궁금증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도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건국의 역사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는데, 아직도 더 배워야 하겠지만 제가 찾은 내용들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런 특수국가로서의 이스라엘 인종주의적 군사주의 점령국가 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첫번째로는 이스라엘의 국내적 요소유대인의 역사와 이스라엘 건국과정 및 국내정치-이고, 두번째로는 국제적인 요소-미국과의 특수관계, 특히 미국 내 막강한 유대인 로비를 통한 미국의 일방적 친이스라엘 정책입니다. 지난번 글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를 요약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유대인들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건국과정을 살펴보면서, 인종주의 군사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반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의 경험


 


로마제국에의해 전세계로 흩어진 후 유대인의 역사는 디아스포라와 반유대주의에 따른 핍박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전에도 반유대주의는 수세기동안 존재해 왔는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는 유대인들은 언제나 미움의 대상이나 의심의 대상으로 핍박을 당해 왔습니다. 예수를 살해한 자들로 미움을 받은 유대인들은, 십자군 전쟁때도 엄청난 학살을 당했고,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해서 처형되거나 추방되기도 했고, 전염병이 돌면 유대인들이 우물에 독을탔다는 소문이나, 이들이 기독교이 어린이들을 잡아다가 피를 뽑아 마신다는 소문도 돌았습니다. 중세에는 돈놀이, 즉 금융업을 죄악시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금융업에 많이 종사 했는데,  베니스의 상인같은 작품에서 보듯이 돈밖에 모르는 탐욕스런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고, 또한 그렇게 재산을 모은 유대인 금융 세력들이 국제관계의 이면에서 전쟁을 부추겨 돈을 버는 세력이라는 주장도 존재해 왔습니다. 로스차일드 같은 유대계 금융세력의 파워에 대한 주장은 음모론의 단골소재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세계역사나 현재 미국의 월스트리트의 현실등을 보면 세계 금융에 대한 유태인들의 막강한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1차대전과 대공황으로 고통을 겪은 유럽인들사이에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를 더욱 부추겼는데, 그로 인해 희생된 유대인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이지요. 유럽 곳곳에서 진행되던 반유대주의는 1894년 프랑스에서 유대계 장교인 드레퓌스를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아서 논란이 되었던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잘 볼수 있는데, 이를 취재한 유대인 테오도르 헤르츨(Theodor Herzl)은 결국 유대국가의 수립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해 시오니스트의 선구자가 됩니다. 헤르츨의 주도아래 1897 8월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온주의 총회가 열렸는데,  “조국 시온의 언덕으로 돌아가 새로운 국가를 세우자”는 바젤 선언이 채택되었고, 당시 헤르첼은 늦어도 50년 안에는 모든 사람들이 유대국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신기하게도 정확히 50년이 지난 1948 11월 이스라엘이 건국됩니다.


개인적으로도 독일 여행을 갔을때, 다카우(Dachau)에 있는 유대인 강제수용소를 방문했었고, 워싱턴D.C.에서도 홀로코스트박물관을 방문해서 억울하게 죽어간 유대인들을 애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정책을 논하기 전에,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이 겪은 고난을 아파하고, 특히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에게 가한 처절한 악에 대해 반성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에게 행한 악에 대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도 듭니다.


 





독일의 다카우 박물관 (상), 미국의 홀로코스트 박물관 (하)


 


한편 홀로코스트나 반유대주의를 생각하며 유대인들의 건국이나 독립을 지지하는 것은 이해는 되지만, 현재의 근본주의 기독인들이 보듯이 이스라엘은 무엇을 하든지 옳고, 팔레스타인 인들은 아무 권리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모든 혐의를 씌어 일방적으로 핍박하던 과거 유럽 기독교의 모습과 또 다른, 반대 극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독인들은 중세에는 유대인들을 차별하고 박멸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이스라엘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지하는 일종의 반대극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구약 성경을 민족주의 국가주의로 읽는 것은 오독이라는 것을 앞에서도 여러번 말씀 드렸고, 특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원칙은 인종주의가 아닌 평화와 화해의 복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더 기억할 점은, 지금은 유대아랍간의 갈등이 심각한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유대인들을 핍박한 것은 아랍인들이 아니라, 중세시대에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이었고 근대에는 역시 유럽의 나치와 인종주의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중세의 무슬림들은 상대적으로 유대인들에게 관대한 정책을 폈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 건국 초까지만 해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이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헌팅턴의 문명충돌론 류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절대 공존이 불가능한것 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아랍이스라엘 갈등은 적어도 이스라엘의 건국과 중동전쟁, 팔레스타인 점령 이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지요.


 


잘 아시다시피, 유럽의 반유대주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에서 정점을 이루어 600만의 유대인들이 인종청소를 당하게 되고, 유대인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극도의 피해의식과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정신에 강력한 일종의 DNA를 형성하는데, 그것은 종족의 말살에 대한 극도의 공포안보에 대한 강한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현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타인에게서 극도의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 중,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더 민감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일부 있지만, 반대로 자신의 고통에만 집착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쉽게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의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정책은 후자와 가까운 모습을 더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고 안전을 보장받고 싶은 열망은 이해가 가지만, 문제는 그것이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억압과 핍박위에 진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결국, 나의 안전이 너의 생존이나 기본권보다도 더 중요하고, 내 안전을 위해서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극도의 자기중심성으로 밖에 이해하기 힘듭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몇년간 거주하며 평화활동가로 활동했던 한 친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나치에게 핍박받은 자신들의 경험에 따라 팔레스타인인들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 나치로 부터 극도의 인종차별과 종족말살의 위기를 경험한 이스라엘이, 역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인 시오니즘을 형성했고, 그에 따라 타인종이자 스스로의 생존과 안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팔레스타인 인들을 무자비 하게 다루고 핍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논리이지요. 집에서 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아이가, 학교에 와서 자기 보다 약한 아이를 유사한 방법으로 학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괴물과 싸우면서 닮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니체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역학관계는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건국과정을 보면 좀더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습니다.


 


2.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건국과정


 


(참고로 이 부분은 랄프 쇤만의 저서 잔인한 이스라엘(The Hidden History of Zionism, 2002)’을 주로 인용했습니다.)


먼저 시오니즘의 선구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오니스트의 대부로 불리는 테오도르 헤르츨1904년 앞으로 세워질 유대인 국가의 모습을 “(아랍이나 아시아의) 야만성으로부터 문명을 지키는 전방요새”라고 묘사해 그 인종주의적 성격을 드러냈고, 팔레스타인 뿐 아니라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시오니즘 운동의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영토는 구체적으로, 레바논과 요르단 전체, 시리아 2/3, 이라크 절반, 투르크 일부, 쿠웨이트 절반, 사우디 아라비아 1/3, 포트 사이드와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카이로를 포함한 시나이 반도와 이집트 1/3을 포함하는 영토인데, 1947년 랍비 피쉬만은 역시 약속의 땅은 나일강에서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지역으로 시리아와 레바논의 일부를 포함한다고 하며 헤르츨의 주장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랄프 쇤만, p.97)


시오니즘의 이데올로기적 선구자 블라디미르 야보틴스키 1923년 시오니즘 운동의 교과서가 되는 강철벽(The Iron Wall)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우리와 아랍 민족 사이에는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자발적인 화해를 위한 어떤 토론도 있을 수 없다. […] 왜냐하면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아랍민족의 국가에서 유태인이 다수로서 지배하는 국가로 바꾸려고 하기 때문이다. […] 원주민의 동의를 얻어 한 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사례를 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는가? […] 식민지화는 팔레스타인 아랍 민중의 의지에 반해 진행되어 왔고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모든 식민지화 과정은, 그것이 아무리 제한된 형태라 하더라도, 원주민들의 도전 속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식민지화는 강철벽을 포함한 무력의 호위속에서 진행되고 발전될 수밖에 없다. 강철벽은 원주민들이 결코 돌파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대아랍정책이다.” (랄프 쇤만, p.32) 중요한 것은 이러한 야보틴스키의 강철이라는 주제와 표현은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상이라는 점입니다.


 


싸우다가 닮는다는 말처럼, 시오니즘은 파시즘의 인종주의로 부터 핍박받은 유대인에게서 생겨난 사상이지만, 극도의 인종주의로 부터 생겨난 또 하나의 인종주의라는 주장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시오니즘 운동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주의 식민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고, 리투아니아 출신의 많은 유태인들이 남아공에 정착하기도 했는데, 헤임 바이즈만과 헤르츨 같은 시오니스트들은 남아공의 인종주의적 식민주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두 운동사이의 실질적 협약의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1934년에 남아공의 주요 집단과 이스라엘은 공동투자회사를 설립했고, 54년간 이 회사는 팔레스타인 토지를 사들이는 등 합작 활동을 했습니다. (랄프 쇤만, p.30)


더 믿기 힘든 사실로, 홀로코스트와 반유태주의가 진행될 때, 시오니즘의 지도자들이 적극적인 유태인들의 구출 노력에 반대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차별적 구출은 유능한 인력을 팔레스타인으로 데리고 와서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1943년 말, 유럽인 수백만 명이 학살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시오니즘의 주요 대변자로 활동하던 랍비 스테픈 와이즈는 유대인 구조 법안에 반대하는 증언을 했는데, 구조 법안이 팔레스타인의 식민지화에 대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또한 벨포어 선언을 주도한 시오니즘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헤임 바이즈만(Haim Weizmann)은 “‘당신은 6백만 유태인을 팔레스타인으로 데려갈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자신은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며, 개인은 냉혹한 세계의 먼지에 불과하기에 자신의 운명을 감내해야 하고,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해 젊은이들과 유능한 인물들을 구출하길 원한다고 답한 바 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유태인 구조위원회의 루돌프 카스트너 박사는 1944년에 나치인 아돌프 아이히만과 헝가리의 유태인 문제 해결을 위한 비밀협약을 맺었고 600명의 저명한 유태인을 살려주는 대신 80만 유태인의 학살에 침묵하기로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렇게 볼 때, 시오니스트들은 자신의 동족의 구출보다도 시오니즘에 기반한 유대인 국가 건설과 정치권력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있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 PLO나 현재의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비난하고 평화협상을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건국 이전에는 테러리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지도자들중 상당수는 건국 이전에 테러리스트로 활동했었는데, 예를 들어 이스라엘 6대 총리가 되는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은 건국 이전에 유대 테러집단 이르군의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영국 총독부가 1939년 부터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제한하자, 1946년 영국 총독부와 헌병 사령부 등이 있었던 예루살렘의 다윗왕(King David) 호텔을 폭파해 91명이 사망하는 유명한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역시 이스라엘의 7대 총리였던 이츠하크 샤미르(Yitzhak Shamir)1940년까지 이르군에 참여했다가 영국 당국에게 체포와 탈출을 거듭하던 중, 1943년 ‘레히’라는 조직의 지도자로 활동하는데, 당시 UN의 중재자로 팔레스타인문제에 개입하고 있었던 스웨덴의 외교관 폴케 베르나도테(Folke Bernadotte) 백작이 자신과 같은 극우 시오니스트들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 타고 있던 UN 차량을 공격해 암살하는 등, 여러 암살 사건에 관여하였습니다. (참고로 베르나도테 백작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재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던 유명한 외교관이었고,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거론되던 인물이었지요. 실제로 그의 참모였고, 후임자가 된 랄프 번치 195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샤미르는 후에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 들어갔다가 1983년부터 1984년까지, 또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이스라엘의 제7대 총리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시오니스트 극우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동족들에게도 테러와 암살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메나헴 베긴과 그가 폭파한 예루살렘 다윗왕호텔(좌), 이츠하크 샤미르(우)



폴케 베르나도테 백작(좌)과 그의 후임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랄프 번치(우)





 


이러한 시오니스트들의 과거를 생각해 볼때, 사실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이 테러를 일삼고 있다고 비난하며 협상을 거부하고, 전면적 공격을 퍼붓는 것은 모순성이 있습니다. 시오니스트들의 초기 지도자들의 테러전술을 국가 수립을 위한 필요악으로 합리화 한다면, 그보다 더 극심한 점령과 식민통치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저항폭력을 단순한 테러리즘으로만 보면서 협상을 반대하는 명분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유엔이 영토를 분할한 1947 직전까지 팔레스타인 영토가 87.5%, 유대인들은 6.6% 불과했으나, 유엔은 팔레스타인의 56% 유대 국가에, 43% 아랍 국가에 할당하라고 결정하고 팔레스타인은 이에 반발합니다. 그러자 이르군하가나같은 시온주의 민병대들, 아랍인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일부 유대인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영국의 암묵적 지지하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추방하기 위한 테러를 시작합니다. 특히 1948 3월 부터는 ‘D계획(Plan Dalet, 공식 명칭은 여호수아 계획)으로 불리는 보다 조직적인 작전에 따라 팔레스타인들을 학살하고 추방시키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1948 49일 데이르야신(디야신)에서는 254명의 남녀와 어린이들을 무차별 학살해, 이르군의 지도자인 베긴이 자랑스럽게 말했듯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르군이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질리게 되었고, 이는 엄청난 피난행렬로 이어져 약75만 명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학살이, 극도의 공포심을 일으켜 팔레스타인을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초대 수상이었던 벤 구리온(Ben Gurion)과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책임지고 있던 유대 식민지개척부의 책임자 요세프 바이츠(Joseph Weitz)가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벤구리온은 1936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분할된 유태 국가는 마지막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팔레스타인의 다른 지역과 주변 국가에 우리가 정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으며 1938 6월에는“나는 (팔레스타인 인들의) 강제 이송을 지지한다. 그것은 전혀 부도덕하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1938  연설에서는 시오니즘 열망의 한계는 남부 레바논과 남부 시리아, 현재의 요르단과 시스요르단 전역, 그리고 시나이 반도를 포함한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요세프 바이츠의 1940 12 20일 일기를 보면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어쫓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는 두 민족이 이 나라에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 작은 나라에 아랍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아랍 주민들을 모두 이웃 국가들로 이주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마을 하나, 부족 하나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라고 언급했습니다. (랄프 쇤만, p.48)


 


1948 5 14일 영국의 위임통치가 끝나고 영국군이 철수하자 시오니스트들은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국가를 선포하는데, 이는 팔레스타인들에게 ‘알나크바(Al-Nakba), , 대재앙의 날로 기억됩니다. 다음 날인 5 15, 미국은 이스라엘의 존재를 곧바로 승인하는데, 이에 맞서 팔레스타인은10 11차 팔레스타인 민족회의에서 국가를 선포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철저히 무시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야보틴스키의 강철벽의 사상을 비롯한 시오니스트들의 정신은 건국이후 구체적인 이스라엘의 정책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국방장관이었던 이츠하크 라빈은 인물은 강철벽의 사상을 이어받아 1967년 전쟁의 작전을 철의 의지라고 명명했고, 1975, 76년에는 웨스트뱅크(서안)철의 손이라는 정책을 공포했는데 그 결과 30만명 이상이 투옥되고 제도화된 고문에 시달렸습니다. 라빈에게서 참모총장 자리를 이은 라파엘 에이탄은 웨스트 뱅크에 철의 팔이라는 정책을 시행해 억압수단에 암살을 추가하고, 1987년과 88년 팔레스타인 민중봉기시에 다시 국방장관이 된 라빈의 정책은 철의 주먹으로 철저한 억압과 집단적 처벌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리고 1982년 레바논 침공에서 난민촌을 쓸어버리는 군사작전은 철의 뇌라고 명명됩니다. (랄프 쇤만, p.36)


1954~55년 이스라엘 2대 총리를 지냈고 48년에서 56년까지 유태인 정치국의 책임자와 외무부 장관을 지낸 모세 샤레트(Moshe Sharett)는 자신의 일기를 출판했는데, 이스라엘의 군사적 도발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세계 구석구석으로 분산시킴으로써 팔레스타인 땅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아랍 세계를 분할하고 아랍 민족주의 운동을 분쇄하며 이스라엘의 지역적 패권아래 괴뢰 정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랄프 쇤만, p.48)


1984이스라엘 노동당은 이스라엘의 유력 일간지 두곳에 전면 정책광고를 실었는데, ‘네가지 아니오에 초첨을 맞춘 이 광고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팔레스타인 국가는 인정할 수 없다. 2.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는 어떤 협상도 없다. 3. 1967년 국경으로 돌아갈 수 없다. 4. 어떤 정착지도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1985년 노동당 출신의 헤임 헤르조그 대통령은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신성한 영토였던 이 땅을 결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유태인은 이 땅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랄프 쇤만, p. 180)


 


3. 공존의 기억이 말살된 인종주의적 군사국가 건설


 


이러한 시오니스트들이 주도해서 건국된 이스라엘은 인종주의적 사상과 군사주의에 기반해서 건설됩니다. 이는 박노자 교수의 글, 유대인, ‘유대인을 말살하다에 잘 나타나 있는데 (박노자 교수 글. 하얀가면의 제국이라는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었음.), 그는 팔레스타인 인들에 대한 학살과 추방 뿐 아니라, 유대인 사회 내부에서도 단일성의 신화를 바탕으로 억압, 배제, 차별의 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박노자 교수에 따르면, 유럽의 독일을 중심으로 거주했던 아슈케나지(Ashkenazi) 유대인들은 독일어를 골간으로 하는 이디시(Yiddish)를 썼는데, 특히 유대인 진보세력들은  이 이디시를 공식언어로 사용했고, 진보적 국제주의와 반전(反戰)의 전통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시오니스트들은  유대교의  사어(死語)인 히브리어를 다시 인위적으로 뜯어고쳐 현대화하고 ‘민족의 언어’로 설정한 후 이디시어 신문·잡지들의 발행이 금지되고, 이디시어 학교·극장 설립도 불허해,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길거리에서 이디시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욕설과 물리적인 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동시에  이스라엘 사회 상류·중류층을 이룬 아슈케나지들과 달리, 이슬람권 출신의 유대인인 ‘세파르디’(Sephardi)에 대한 단일화 정책은 거의 인종주의적인 문화유산의 말살에 가까웠다고 하는데, 시온주의에는 무관심한 반면에 천년 이상 같이 한 땅에서 살았던 아랍인들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졌던 이들의 일상 언어와 문화를 금지시키고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탄압하고 세뇌했다고 합니다. 아랍인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했던 이들의 역사 자체가, 시오니즘에 기초한 인종주의와 아랍에 대한 증오라는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이 맞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는 ‘가장 악질적인 후진 분자’로 분류된 일부 종교적인 세파르디들로부터 갓난아이들을 빼앗아 유럽 출신의 시온주의자의에게 입양시키는 ‘2세 동화 작전’까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거의 일본의 식민지 무단 정책이나, 북미에서의 인디언 말살정책을 떠올리게 하는 인종주의적 국가주의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건국한 우파 시오니스트들은, 유럽의 아슈케나지 유대인들 안에 존재했던 진보적, 국제주의적, 반전(反戰)적 전통, 그리고 이슬람권 출신의 세파르디 안에 존재했던 아랍인들과의 평화, 공존의 기억은 부정, 말살시키는 동시에, 국가가 만들어낸 인위적인 히브리어에 기반해, 시오니즘적 단일민족 사상만을 주입해, 3년간의 군복무를 주된 경험으로 공유하는 이스라엘의 2세들을 창조해 났다는 것이 박노자 교수의 주장입니다.


 


동시에 2차대전 과정에서 유대인내의 극우 시온주의자들을 견제할 중도나 진보세력이 거의 궤멸된 것도 현재의 이스라엘이 나타나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분드(Bund)당 같은 급진 사민주의자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상당수가 도살되었고 극우 시온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과 전술에 반대가 되면 같은 유대인들에게도 테러나 살해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하에 형성된 이스라엘의 사회와 이념은, 현재 이스라엘의 극단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이 어떻게 국내에서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아시다 시피 이스라엘은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어 남자 3, 여자 2년동안 복무하도록 되어 있고 43-45세 되기 전까지 1년에 약 1개월 동안 예비군 훈련을 받는데 이러한 현실은, 한국의 군사독재정부하에서 팽배했던 군사문화하에서 처럼, 안보위협의 강조를 통해 내부의 반대의견이 묵살되는 분위기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시도 때도 없이 테러공격과 교전, 전쟁작전이 수행되는 상황이라 이스라엘의 현 정책에 대한 반대가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인종적으로 국민의 75% 이상이 유대인이고 20%가 아랍인이며 그 외에 많은 소수민족이 있는데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은 없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여러면에서 차별이 존재합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출신의 동방유태인인 세파르딕은 주로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고 아랍국가 출신 유태인들도 아랍인들과 비슷한 외모로 차별을 받고 있고, 이스라엘 사회는 독일, 폴란드계 유태인인 아슈케나지들이 지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아랍인들은 교육과 취업의 기회가 적기 때문에 유대인들에 비해 열악한 조건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토지의 93%는 유태인 국가기금에 의해 관리되는데, 땅에 거주하거나 토지를 빌리거나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최소한 3대이상 어머니 쪽의 유태혈통을 증명해야 합니다. (랄프 쇤만, p.70) 명백한 인종차별 정책이지요. 사막을 개간해 옥토로 만들었다는 환상을 심어준 키부츠는 공동체적, 사회주의적 요소도 있고, 환상적인 성공의 예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건설되었고 비유태인은 구성원이 될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그 땅에 정착하기 위해서 수백 년 동안 농사를 지어 온 아랍 농민들은퇴거되었고, 공동체주의적인 키부츠의 생활은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열려있었다는 것이지요.


 


4. 근본주의 유대교의 영향


 


이스라엘의 강경정책 뒤에는 근본주의 유대교 사상과 이를 설파하는 근본주의 랍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825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레바논 전쟁이 일어나고 9 16레바논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서 단 사흘만에 절반이 부녀자와 어린이였던 3천여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무참히 학살당하는데, 일부 근본주의 랍비들은 이를 전 세계에서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진정한 정화라고 유대인들에게 설교했다는 충격적인 자료도 있습니다. 2008년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당시에도 근본주의 랍비들의 군 정신교육이 문제가 되었는데, 한 이스라엘군 장교는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와의 인터뷰에서종군 랍비들이 이번 작전을 종교전쟁으로 몰고 갔다고 말하며 랍비들이 이 성스러운 땅의 정복을 방해하는 비유대교도들을 몰아내자고 가르쳤음을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에 따르면 가자 전투에 참전한 한 익명의 이스라엘군 예비역 병장은훈련소에서 만난 랍비가이번 싸움은 빛의 자식들과 어둠의 자식들 간의 대결이요, 특정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주민 전체와 맞서는 전쟁이라고 설교했다고 했고, 적에게 절대로 자비를 베풀지 말 것을 조언한 랍비도 있었다고 합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10~20년 사이에 민족주의적이고 극우주의 적인 세력이 군과 종군 랍비들에 대거 진출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측 사망자 1381여명 중 민간인이 900여명(어린이 400여명)에 달할 정도로 무자비한 공격이 있었던 배후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악마화한 근본주의 랍비들의 설교가 있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죠. (관련기사)


최근 팔레스타인 임산부 그림이 있고 총 한발로 두명 사살이라는 구호가 적혀있는 디자인의 티셔츠를 이스라엘 군인들이 주문한 것이 공개돼 파문이 일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사회학자인 오르나 사손 레비(Sasson Levy) 교수는이런 디자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적개심을 강화하거나 자극하고 정당화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사람이 아니라서 어떤 짓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 바도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스라엘 내부의 극우적 성향을 볼 수 있는 다른 예로, 2008년 마탄 빌나이 이스라엘 국방부 부장관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더 엄청난 홀로코스트를 안겨줄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고, 다른 예로 랍비인 이스라엘 로센은팔레스타인인은 남자, 여자, 아이를 불문하고 모두 죽여야 한다. 그들의 가축도 예외가 돼선 안된다는 취지의 극단적인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으며, 사무엘 엘리야후라는 이름의 랍비는 지난 3월 예루살렘에 소재한 유대인 종교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학생 8명을 숨지게 한 팔레스타인인의 자식들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극단적인 주장을하기도 했습니다. (관련기사)


 


이러한 유대교 근본주의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을 옹호하는 지식인이나 인권단체, 타 종교인을 겨냥한 `백색테러의 증가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예를 들어 2008925일 이스라엘경찰은 평화운동단체인 `피스나우(Peace Now)’ 회원들을 살해하는 사람에게 100만 세켈(34천만원 상당)을 제공하겠다는 현상금 전단과 포스터를 발견해 회수했는데, 전단이 발견된 곳은 이날 새벽 예루살렘에서 테러범들이 투척한 사재 파이프 폭탄에 부상한 제브 스턴헬 히브리대 교수의 집 주변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스턴헬 교수는 팔레스타인 내 식민마을인 유대인 정착촌의 건설에 반대해왔을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과의 평화공존을 촉구하는 글도 일간지에 수시로 기고해왔다는 점에서 극우 유대주의자들에게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다고 합니다. (관련기사)


 


5. 근본주의의 충돌과 공존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에서 문명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 문명과 그 인접 문명에서 가장 큰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면서, 간접적으로 이슬람이 국제분쟁의 원인인것으로 지목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타리크 알리라는 작가는 근본주의의 충돌(The clash of fundamentalisms)’이라는 저서를 통해 헌팅턴을 비판했는데, 현재의 갈등은 이슬람과 비이슬람간의 갈등이 아닌 근본주의 간의 충돌로 봐야한다는 것이지요. 기독인들은 특히 이슬람을 악마화 하는 경향이 강한데, 사실 엄밀하게 봤을 때,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안에는 모두 근본주의 세력이 있고, 이들은 서로 갈등하는 동시에,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선과 악의 갈등으로 이해하고 스스로를 선, 타자를 악으로 인식하며,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합리화 하고, 경전을 문자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사회에 적용하고자 하며, 타자나 타 종교에 관용이 없고, 타자가 정복되거나 박멸될때까지 끝없는 투쟁을 주장하며,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반대하거나 종교가 정치를 지배해야 한다 주장 등, 아주 유사한 성향이 많지요. 위에서 살펴본 예들을 볼 때, 유대교 안에 존재하는 근본주의 세력이 오늘의 대 팔레스타인 강경정책을 낳았고, 이들의 극우적인 태도는 앞으로도 평화협상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족주의를 비판한 임지현 교수는 적대적 공범자들이라는 책을 썼는데, 사실 평화 협상을 바라지 않는 이스라엘의 강경파와, 테러전술을 쓰는 팔레스타인 내의 강경파는 현재와 같은 끝없는 갈등을 유지하는데 이익을 같이 한다는 의구심도 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극우 근본주의 세력을 지양하고 생명의 가치와 평화와 화해를 모색하고 기도해야 할 기독인들이, 유대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인종주의적이고 극우적인 대 팔레스타인 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이러한 기독인들의 신앙성격은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결국 이스라엘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옳다라는, 성경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근거가 빈약한 현재 보수 기독교인들의 입장은 근본주의라는 코드를 통해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이스라엘 사랑이 일종의 짝사랑이라는 것이죠. 이들은 유대기독교 전통 (Judao-Christian Tradition)’이라는 말을 끔찍히도 좋아하는데, 미국의 전통 문화는 이 유대기독교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치되는 문화와 사상, 주로 이슬람이나 공산주의를 미국에 대한 위협이나 악으로 정의합니다.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한편이고 많은 것을 공유한다고 믿고 싶어하지요. 그러나 정작 유대인들에게 물어보면, 보수기독인들이 왜 자기들 보다도 더 이스라엘문제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고, 싫지는 않지만 재미있다는 묘한 웃음을 짓곤 합니다. 깊이 들어가 보면, 유대교인들 안에는 아직도 천년이상 유럽 기독교인들에게 받아온 박해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강렬한지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덧셈 기호도 다른 모양으로 바꿔서 사용할 정도입니다. 김종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회복을 보면 이스라엘에 있는 메시야닉 쥬나 기독교 선교사들이 폭탄테러나 공공연한 위협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미국의 보수세력은 이스라엘이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지만, 이스라엘은 웬만한 아랍 국가 못지 않게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는 사회이고 직간접적 인종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같은 근본주의 보수기독교의 입장은 성경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파심이지만, 제가 이런 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보고 팔레스타인 갈등의 평화적 해결과 또한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도, 성경적 입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어디를 봐도 단순히 이방인이기 때문에 죽여도 된다는 말씀은 찾을 수 없습니다. 이집트에 대한 심판이나 가나안에 대한 정복과정은, 그들이 저지른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이스라엘도 동일한 죄를 범할때 하나님은 처절하게 심판하고 가나안에 살 권리를 박탈 당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혈연이 아닌 언약공동체였고, 혈연과 상관없이 이방인들도 믿음이 있으면 공동체로 들어올 수 있었고, 혈연적 유대인이라도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끊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이 편을 드신다는 주장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방인이자 이교도이므로, 모든 것을 잃고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거나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식의 근본주의 보수기독인들의 입장이, 어떻게 예수님의 가르침, 즉, 인종과 성별, 빈부귀천을 떠나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모든 사람의 생명과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며, 만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조화될 수 있는지요? 다시 말하면, 그런 입장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유사한지, 아니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 혹은 이교도들의 박해와 살해를 합리화 하는 극단주의 이슬람과 더 유사한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는, 아직 이스라엘의 존립과 안보에 대한 집착, 외부의 위협에 대한 공포가 지배적이긴 하지만, 이제 팔레스타인과의 갈등과 전쟁, 그리고 가자와 서안에 대한 점령상태가 끝없이 지속되고, 이스라엘의 정책으로 인한 희생자와 국제사회의 비난이 늘어가면서, 내부에서도 자성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이스라엘의 건국 동기와 현 팔레스타인 정책이 인종차별적이고 낡은 개념에 바탕한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 이스라엘의 이미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압제자로 변하고 있구요.


 


6. 이스라엘의 정치 지도자들


 


물론 이스라엘의 정책이나 정치 지형이 단순한것 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도 현실을 직면할 수록,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압적 식민통치나 정착촌의 확대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언제나 극우파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 안보논리에 의해, 평화 협상은 제한되거나 금새 깨어지고 강경정책이 힘을 얻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유명한 이츠하크 라빈 총리(총리임기: 1974~77, 1992~95)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의 영웅으로, 정계에 진출해 미국과의 철저한 동맹과 군사력 강화를 통한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추구합니다. 철저한 시오니즘의 전사였던 그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테러와 살인이 발생하자 결국 협상과 타협이 없이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92년 부터 PLO와의 대화를 통해 평화노선을 추진합니다. 1993년 빌 클린턴의 중재하에 아라파트와 오슬로 협정을 맺고 가지지구와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의 자치권을 인정해 주고 그 지역에서 이스라엘이 물러날 것을 동의합니다. 그러자, 오랫만에 중동의 평화가 찾아오고 그는 1994년 아라파트, 그리고 당시 외무장관인 시몬페레즈와 함께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합니다. 1995년에는 요르단의 후세인1세 국왕과 평화협정을 통해 양국간의 전쟁상태를 끝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강경한 시오니스트들은 그를비겁자라고 맹비난했고, 1995년 텔아비브의 중동평화회담 지지 연설 후, 라빈은 유대인 극우파 청년이 쏜 총에 살해됩니다. 그를 살해한 이갈 아미르라는 극우주의 유대인 청년은 라빈 살해 5년이후에도, 라빈을 암살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왜 진작 라빈을 죽이지 않았는가 후회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좌)와 오슬로 협정(우)


 


역시 전쟁영웅으로 유명한 아리엘 샤론 총리(임기 2001~06)는 국방장관이었던 1982,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를 응징하겠다며 레바논을 침공해 한달만에 2만여명을 학살하고, 악명높은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서의 학살을 방조해 83년 국방장관직을 사임하기도 했으며, 이후 건설장관 시절에는 가자지구와 서안에 200여개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밀어부쳐 팔레스타인 문제를 악화시킨 바가 있습니다. 그러던 그도 끝없는 분쟁과 갈등 앞에서 일종의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가자지구에서나마 정착촌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는데, 가자지구에서 철수하는 대신 서안에서 정착촌은 더 늘리기 시작했다며 비난하는 의견도 있지만, 적어도 과거의 극우 정책에서는 한발 물러난 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정책 변화 직후, 이스라엘의 극우 강경파는 곧 샤론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조국을 팔아넘겼다며 맹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리쿠드 당원들이 샤론의 가자지구 철수 계획을 극력 반대하고, 결국 샤론은 리쿠드 당을 탈당해 2005년 카디마라는 새 정당을 만들었는데, 2006년 갑작스럽게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상태에 빠지고, 그해 카디마가 선거에서 승리하자, 그의 당수직과 총리직은 부총리였던 올메르트가 이어받습니다.


 



아리엘 샤론 총리 


 


이에 대한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인의 입장을 볼 수 있는 것이, 유명한 팻 로버슨(Pat Robertson) 목사의 발언들입니다. 한국전쟁 때 해병대원으로 참전했었고, 198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로버트슨 목사는 1989년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을 창립해 기독교 우파의 정계 진출을 지원해왔고, 기독교방송네트워크(CBN)를 설립해 ‘700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해 오고 있는데, 2006년 방송에서, 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단행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뇌출혈로 쓰러진 소식을 전하면서 이를 “하나님의 땅을 나눈데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라고 주장해 큰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1995년 라빈 총리의 암살에 대해서도 역시 하나님의 땅을 나눈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구요. 이분은 워낙 망언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예를 들어 2005년에는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을 암살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역시 거센 비난을 산 바 있고, 역시 2005년 뉴올리언즈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태풍 카트리나가 낙태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했으며, 2010년 아이티 지진은 과거 아이티가 프랑스에서의 독립을 위해 부두교를 통해 사탄의 도움을 청했기 때문이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2009년 가자 전쟁이 벌어져,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던 약 1381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이 살해 되고 이스라엘에 대한 전세계적인 비난이 급증했을 때에도, 그는 전세계의 비난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팻 로버슨 목사


 


이렇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고, 기본적 상식이나 지적인 판단력 조차도 갖추지 못한 단순무식한 발언들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는 것은, 역시 근본주의적 성경해석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로버슨 목사와 거의 유사한 신학적 사회적 관점을 공유하는 김홍도 목사라는 분이 비슷한 발언들을 많이 해서 물의를 빚었었지요) 특히 로벗슨 목사가 이스라엘의 강경 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는 근본주의적 성서 해석과 세대주의 신학에 기반해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 축출이 예수의 최후 심판이 있기 전에 도래할 천년왕국의 징조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대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해 보겠지만, 결국은 왜곡된 성경해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지요.


 


소위 근본주의와 문자적 성경해석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성경을 더 철저히 지키는 좋은 입장 같은데, 현재  이들의 정치적 입장들을 엄밀하게 보면, 성경 전체의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사회적 입장을 지지하는 몇 구절을 자의적으로 선택해, 그에 기반한 정치적 입장들을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합리화 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한가지 예만 들어, 비극적인 자연재해를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규정해, 희생자들의 마음을 다시한번 찢어놓은 로버슨 목사의 비인간적인 발언들을,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어떻게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이스라엘 내의 극우세력과 근본주의 유대교, 그리고 미국 내의 우파와 근본주의 기독교가 동일한 역할, , 평화 협상을 비난하고, 팔레스타인에 강경탄압정책을 추진하게 만들어, 평화를 만드는 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상당히 대척점에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평화 협상을 추진한 지도자들이 물러난 이후에는 다시 강경정책과 극우파가 등장했는데, 현재 이스라엘 총리인 네탄야후(임기 1996~1999, 2009~현재)가 바로 이를 대표하는 정치인입니다. 그는 라빈이 사망한 후 뒤를 이은 시몬 페레즈 총리를 1%차로 물리치고 96년 총리가 되었고, 잠시 정계를 물러났다가 샤론의 뒤를 이은 올메르트와 카디마 당의 인기가 떨어지자 다시 강경정책을 내세우며 총리로 집권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했고 네오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그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오래전 부터 주장해 왔고, 1967년 이전 경계에 대해서 조차 합의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극우파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난번 글에서 설명했듯이, 미국의 정치인들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이스라엘의 정책이라면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고, 네탄야후는 두려울 것이 없이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을 주장하며오바마를 압박하고 서안에 정착촌을 확대하여, 중동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네탄야후 총리


 


문제는 이러한 정책이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갈등과 테러를 영속화시킬 수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영화 ‘뮌헨’에서 보듯이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테러와 암살은 더 상대를 더 극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유대교 근본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주민들은 계속되는 테러와 학살, 위협과 폭압속에서 살 수 밖에 없고, 결국 이러한 중동의 지역갈등은 언젠가 폭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오랫만에 쓰다보니 글이 무척 길어졌습니다. 저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적 정치적 차원들을 계속 고민하고 공부해가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크리스찬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성경적 입장이다라는 극도로 단순무식한 입장과 구약성경을 민족주의, 인종주의적으로 해석한 현재의 시오니즘 정책이 얼마나 문제가 많고 위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스라엘 정책의 가장 큰 지지 기반인 미국의 정책과 지지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인엽] 목사가 된 이근안, 그리고 개독교,기득교,괴독교

젊은 시절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민주화 운동의 대부이자,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 일컬어지는 김근태 씨의 죽음이 많은 이들에게 추모열기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편, 김근태씨의 죽음앞에 눈물흘리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지금은 목사가 된 이근안 경감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문기술자로 이름을 날리던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독교 목사가 되었냐고 황당해 하며 분노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동시에 저는, 기독교인이 되고 목사가 되면서 오히려 이근안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뻔뻔해진 부분도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이근안이라는 인물은 단순히 나쁜놈을 넘어서 상당히 상징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관련자료: 김근태 ‘예술고문’한 이근안, 지금은 목사?
http://blog.donga.com/sjdhksk/archives/10028





예를 들어 2005년 여주교도소에 면회를 온 김근태씨에게 그는 용서를 구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김 상임고문은 당시 사죄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씨를 보고 진정성이 의심돼 차마 “용서한다”고 말하지는 못한 채 “당신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 복역이 끝나고 출소하면서 이근안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그 시대엔 애국인 줄 알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역적이다. 세상사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한 회개나 진정성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지는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2008년 이근안은 목사안수를 받고 이후 간증집회를 다니면서 보다 뻔뻔하게 자신의 과거를 합리화 하는 발언들을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해 한 보수 단체가 주최한 외교 안보 포럼에서 그는 “내가 직접 조사해 간첩 혐의로 형을 받은 범죄자들이 버젓이 국가 기관에 의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한없는 좌절감을 느낀다”며 “나 자신이 한 사람의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2010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밝히면서,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라고 했고, 김근태씨에 대한 전기고문에 대해서도 “내가 취미삼아 만든 모형 비행기 모터에서 ‘AA 건전지 2개’를 가지고 겁을 준 것뿐”이라 하며 부인했는데, “두 시간 넘게 말로 겁을 주고 건전지로 찌릿찌릿한 감각만 느끼게 해서 실토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김 상임고문을) 신문해서 단 몇 시간 만에 노동계와 학원에 침투한 조직을 캐내 전원 검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다시피, 김근태씨는 1985년 20여일간 8차례의 전기고문과 2차례의 가혹한 물고문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평생 비염과 축농증을 앓았고 2007년 파킨슨병 진단도 받았습니다. 이근안은 이미 재판을 통해 확인된 고문에 대한 사실마저도 왜곡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의 윤리적 판단은 주변사람들이나 자신의 준거집단의 반응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과 세리 삭개오의 만남에서 그가 자신의 사회적 악행을 돌아보고 배상을 하겠다고 한 것은 사람들의 ‘수군거림’ 이후였죠. 저는 이근안이 이렇게 대담해 진 것에는, 그가 분명한 사회적 회개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 목사안수를 준 교단의 책임이 있고, 또한 주변에서 그의 행위를 ‘간첩과 좌파를 때려잡은 애국 행동’으로 합리화 해준 기독교인들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무고한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한 이근안의 죄 보다, 더 무서운 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신학대학원 졸업을 앞둔 이 씨에게 대학 총장은 목사 임직을 시켜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고, 신학교 내부적으로 토론을 벌여서 “목사 임직 허가였지만 정치 활동을 안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하며, 이 씨 스스로도 교정선교회 활동에만 충실할 것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근안 아니라 그보다 더한 죄인도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될 수 있고, 목사도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혁명성이죠. 그러나 그 전에 분명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자기로 인해 고통받은 사람에게는 사죄하고 할 수 있는대로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치신 회개이며, 교회는 이것을 가르치고 점검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는 정치 활동을 안하는 조건을 달았다고 하는데, 문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분명한 회개 – 개인적 회개 뿐 아니라 사회적 회개- 를 하지 않은 이근안에게 목사안수를 주는 것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선언(즉, 기독교는 사회정의에 전혀 관심이 없고 독재정권하의 고문행위를 죄로 보지 않는다는)이라는 것이고, 이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 하는 이근안의 발언들 자체가 엄청난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종을 키워낸다는 신학교와 교단에서 이런 사회적 상식조차 없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근안은 예수교장로회 합동개혁측 총회신학교 통신신학부 4년 과정을 옥중에서 밟았고, 현재 예장 합동개혁(총회장 정서영 목사) 소속 목회자, 그리고 한국교정선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화된 복음의 문제와 사회적 차원의 결여, 그리고 그 결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기독교의 회개와 복음을 개인의 윤리적 차원, 그리고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만으로 축소시킨 현재 보수기독교의 신학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의 원죄사건을 보면 죄의 결과는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다른 인간과의 관계(아담과 하와),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아담과 땅) 모두를 파괴시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 하나님 과의 관계 차원 뿐 아니라, 인간관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관계 모두에서 회개와 회복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죠.
온전한 용서와 회개에 관해, 김영봉 목사(워싱턴한인교회)는 다음과 같이 설교한 바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성서를 바탕으로 가르쳐온 용서는 그렇게 값싼 것도 아니고, 무책임한 것도 아닙니다.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는 온전한 용서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회개의 3R(Three R’s of Repentance)이라고 부르는데, 첫째가 Repentance(회개), 둘째가 Restitution(보상), 그리고 셋째가 Reformation(개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 repentance이며, 자신이 끼친 잘못에 대해 어떻게든 보상하는 것이 restitution이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자신을 고치는 것이 reformation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져야 온전한 회개입니다.”

 
영화 ‘밀양’은 이 문제의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주인공 신애는 자신의 아이를 유괴해서 죽인 범인이 옥중에서 예수를 믿고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며 환하게 웃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영화 밀양과 몰트만의 강의를 다룬 글을 하나 추천합니다. 특히 첨부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에 대한 몰트만의 강연내용은 꼭 읽어볼 만 합니다.

박치현, 영화 <밀양>의 질문에 세계적 신학자는 뭐라고 대답할까?
http://blog.daum.net/ursangelus/8484652


중요한 것은 4영리식의 단순화된 복음은 개인적 차원의 영적 회개만으로 가해자에게 쉽게 면죄부를 주고,피해자에게 너도 똑같은 죄인이니 아무말 하지 말아라 하면서 정의의 회복을 무시한다는 것이죠.

한번은 미국 TV에서 살인죄로 복역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한 죄수의 인터뷰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다른 죄수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그는, 성경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한다 하면서,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죄나, 평소에 거짓말 하는 일반인들의 죄나 다르지 않다고, 아주 대담하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일견 복음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 것은, 만일 거짓말 한 사람이 회개하면서 내 죄가 살인죄나 다르지 않다고 하면 이해가 가지만, 살인한 사람이 내 죄가 거짓말한 사람의 죄와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이건 미친소리이기 때문이지요.
최근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여성성희롱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을 변호하면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해 물의를 빚은 바 있습니다. 이 말이 감동을 주기는 커녕 코메디 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시대 가장 낮은 성매매 여성을 불쌍히 여겨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힘과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의 성희롱을 무마하자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정도 일로 제명한다면 우리 중에 남아있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라는 말도 했다는데, 이는 마치, 우리 정치인들이 다 썩은걸 몰랐냐, 이정도 일로 왜 놀라고 그러냐라는 윤리의식의 실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결국 단순화 된 왜곡된 복음은 죄에 대한 깊은 회개가 아닌, 오히려 뻔뻔함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단순화된 신학 뿐 아니라 역시 역사의 무게가 실려 있는데,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죄와 군사독재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했던 보수교회의 죄를 감추고 합리화 하기 위해, 복음의 사회적 차원을 거세해 버린 교회의 역사가 그 뿌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가르치는 회개나 구원은 예수님이 가르친 복음의 보다는, 중세시대 면죄부에 훨씬 가까운 것이죠.


중세시대 면죄부가 교회가 윤리적 경제적 권력을 갖기 위해 남발 된 것처럼, 이러한 값싼 용서가 보편화 된 것은, 권력에 밀착하려던 보수교회의 욕망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한것처럼 교회 자체가 신사참배와 군사독재협력의 죄가 있어서 뒤가 구릴 뿐더러, 교회가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가진 이들을 흡수함으로서 영향력을 갖고 싶어 했던 것이죠. 동시에 권력을 잡고 있는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은, 보수교회가 제공하는 종교적 장치를 통해 세상의 부귀영화 뿐 아니라, 양심의 가책으로부터의 자유, 집사 장로등으로 상징되는 종교적 권위, 그리고 내세의 구원까지 누리게 되어 양자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 이지만 한홍구 교수의 글에 따르면 이근안의 고문기술은 일제시대 악질 경찰로, 독립군을 고문했던 노덕술에게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다음 글 참고.          이근안과 박처원, 그리고 노덕술 http://h21.hani.co.kr/section-021075000/2001/05/021075000200105220360052.html )

결국 왜곡된 신학과 사회적 죄들은 상호작용하며, 정의를 배신한 자들이 교회안에 들어왔을 뿐 아니라 이제는 교회의 주류가 된 것이죠. 그리고 이들이 가진 ‘친미반공 자본주의 정신’이 예수의 복음을 대체해 보수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와 원리가 되어버립니다. 이른바 ‘고소영 강부자’의 종교가 되어 버린 ‘기득교’의 탄생입니다.
 
물론 ‘친미반공 자본주의’가 반드시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반미용공 반자본주의’가 좋다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 두가지로 재단할 수 있다고 보는 그 ‘단순무식성’, 그리고 친미반공자본주의로 판단되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우기고, 반대로 반미용공반자본주의라고 낙인 찍은 것은 무조건 악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 ‘마녀사냥적 태도’가 엄청난 문제를 야기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전 미국에서 살고 있는 교포 몇분과 대화를 한 적 있습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는 교회 장로, 집사님들이었고, 인품도 좋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대뜸,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은 빨갱이다’라는 무지막지한 말을 하셔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보시냐 했더니 복지예산을 펑펑 써서 나라가 망할 거라는 거였습니다. OECD 30개국가중 복지예산이 거의 최하위를 달리는 대한민국인데, 복지예산을 올려서 나라가 망한다는 얘기도 황당할 뿐더러, 서울시민 다수가 뽑은 시장을 너무나 쉽게 빨갱이라고 하는 발언도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나라는 곧 망해아 맞겠죠. 한미FTA반대나 촛불시위도 무조건 빨갱이라고 해서, 여쭤보니, 반미, 반자본주의기 때문이랍니다.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도 ISD 문제 등, 현재 진행되는 한미FTA는 문제가 많다고 하고, 국익 차원에서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비판이 있는데, 반대의견을 단순히 ‘빨갱이’라고 매도할 수 있다는 그 ‘사고 프레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친미반공 자본주의로 판단 되는 것은 무조건 선이요 아닌 것은 악이라는 단세포적 사고가 아무런 문제 없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이 보수기독교인들의 논리라는 것이지요. 이런 얘기를 밖에서 하면 단순 무식하다는 얘기를 들을텐데, 보수 교회안에서 얘기하면 놀랍게도 ‘아멘’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근안이 연결되는 지점도 이것입니다. 이근안의 행위는, 민주화 운동가들이나 간첩으로 지목된 무고한 사람들을 불법으로 고문한, 기본적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시한 악행이라는 ‘상식’ 보다도, 간첩이나 좌파를 때려잡기 위해서는 그정도도 괜찮다는 친미반공 자본주의의 프레임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그의 행위는 ‘애국’이 되며 국민들의 비난으로 가졌던 약간의 반성이나 수치심 마저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보수기독교의 프레임이 이근안에게 뻔뻔함과 용기를 주는 것이죠.


잘 아시다 시피, 이러한 프레임은 미국내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에도 유사하게 작용합니다. 무식한 발언들로 웃음거리가 된 사라 페일린을 하나님이 이 시대의 에스더로 세웠다는 예언이나, 오바마는 이슬람교도 혹은 사회주의자이고 미국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근거나 상식이 무시된 주장들이 아주 잘 통하는 것이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기독교이지요.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이나 언론(한국으로 치면 한나라당과 조중동, 미국은 공화당이나 티파티, 폭스뉴스 등)도 이렇게 단순무식한 논리를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물론 생각은 다르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그럴듯한 논리를 만들어서 사용하지요. 하지만 보수 기독교가 보이는 이러한 단순무식한 입장은, 보수 정치세력과 보수 언론에 가장 큰 지지와 동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 세력의 특징이 바로 인간의 삶과 사회적 현상의 복잡성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아주 조악한 신학적, 사회적 프레임을 가지고서 타인의 삶과 사회를 판단하려 들고, 나는 답과 진리를 알고 있다라는 태도로 접근하기에 세상의 조롱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시 충격적이면서 상징적인 사건 하나가 2010년 한국에선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6월 22일 개최된 평화 기도회에 간증 강사로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부시’를 초청한 사건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그 명분이 되었던 대량살상무기와 테러조직과의 연계성은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것 외에는 그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습니다. 미군과 다른 연합군에서 사망자가 7500명 이상 발생했고, 최근 참전 미군들 중 전쟁후유증으로 많을 때는 하루에 18명씩 자살 한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이라크 측에서는 자그만치 백만명 이상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통계가 있고 18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충분한 증거도 없이 그러한 전쟁을 밀어붙여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가져온 부시를 평화기도회에 주 강사로 초대한 것은, 개인적으로 마치 한편의 ‘거대한 부조리극’, 혹은 슬픈 코메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에 항의하러 갔던 기독청년들은 “당신의 평화에는 너무 많은 피가 흘러”라는 팻말을 들고 갔는데,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평화라는 것이 내가 십자가를 져서 화해와 용서를 가져오는 예수의 평화가 아닌 힘으로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희생자를 만들어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만듭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스스로 거듭난 그리스도인(born-again Christian)이라고 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우리의 회개에 대한 관점도 잘 보여주고, 또한 친미반공 자본주의의 틀로 얼마나 세상을 단순하게 보는지도 잘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그리고 미국에서 6년정도 체류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안타깝게도, 사회에서 가장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정치적 사회적 분별력이 가장 낮은 집단이, 바로 한국과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기독교인들이라는 점입니다. 보수 기독교의 사회적 죄악을 합리화 하고, 또 교회 안에서 목사의 절대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우민화 정책의 결과, 이것이 이제는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무지와 독단의 사회적 동력’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결국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이 볼 때, 말도 안통하는 기괴한 집단, 즉 “괴독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선배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이근안과 관련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인용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아렌트는 2차 대전중 유태인 학살주범으로 1962년에 처형된 아돌프 아이히만이 알고 보니, 개인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악의 일상성’을 설명하는데, 개인의 도덕만을 다루고 사회적 분별력이 없는 인물들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지적해 주었습니다.


비슷한 인물로 박정희 시대에 ‘차지철’이라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독재권력의 하수인으로 충성을 다했는데, 그는 개인적으로 교회 집사였고,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아서 자신이 충성해 마지 않는 박정희가 주는 술도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술 마시지 말라는 기독교의 개인윤리에 충실한 사람이 독재정권의 오른팔 노릇을 하다가 총맞아 죽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예로 전두환의 오른팔이었던 ‘장세동’이라는 인물은 청문회때 자신의 가방에 늘 성경을 가지고 다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고 교도소에 있을 때도 교도관이 감동할 정도로 매일 성경을 묵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광주 학살의 주범중 하나였고, 박종철 사망사건, 그리고 한 가족을 억울하게 파멸시킨 수지김 간첩 조작사건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목사가 된 이근안 경감이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교회 장로인 ‘그분’까지, 결국 이들은 권력과 결탁하고 복음을 왜곡시킨 보수교회가 낳은 ‘괴물’들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 그리고 기본적인 사회 정의에 대한 의식도 없는 집단으로 이해 받는 보수 기독교는 이제 ‘개독교’로 불리웁니다.



결국 오늘의 문제는 보수 교회가 사회참여에 관심이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그리고, 빛과 소금으로서 사회의 어둠과 악을 정화하는 역할을 못한다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일부 근본주의 보수 교회들이 뿜어내는 오염이 사회를 심각하게 어지럽히는 수준이 된 것입니다. 저의 지적이 과하다고 생각하시거나 불편하신 분에게는 죄송하지만, 현실은 이런 제 표현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보수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프레임인 ‘단순화된 복음’과, ‘친미반공 자본주의’를 금과옥조로 하여 세상을 마녀사냥하는 정치적 프레임’을 깨고 나가지 않으면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한기총으로 대표되는 근본주의 보수기독교회의 행보가 언제나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길을 고민하고 사회의 개혁과 정의를 바라는 교회들 모두가 싸잡아서 “개독교, 괴독교, 기득교”로 치부되고 있고, 이러다가는 역사와 국민들로부터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기독교인들과 교회의 선한영향력을 소망했기에 우리가 잘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믿었다면, 이제는 근본주의 보수 기독교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역시 동일하게 우리만 잘해도 세상이 바뀔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적이었고 원칙을 지키려던 또 한명의 바보정치인 김근태의 죽음과, 그를 고문했던 이근안 경감의 뻔뻔함을 보면서, 오늘의 교회를 다시한번 고민해 봅니다.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고, 웬만한 분들은 한번 쯤 생각해 보았을 부분이지만, 답답한 마음에 2011년이 저물어가는 이시간에 긴 글을 남겨 봅니다.
2012년은 새로운 희망의 해, 예수님의 이름이 영광받으시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인엽]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뜻?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0. 들어가며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913일 뉴욕에서 개막한 제 66회 유엔총회에서, 194번째 회원국으로 승인 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미국의 주도하에 여러 협상 시도가 있었지만, 1967년 이래 팔레스타인 인들이 살고 있는, 가자 지구(Gaza district)와 서안(West Bank)은 이스라엘 군에 의해 식민지에 가까운 점령상태로 남아있고, 팔레스타인의 테러공격과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계속 되어 왔는데, 예를 들어 2008년의 가자 공습에서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대부분이 비무장 민간인이었던 138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이스라엘측 사망자 13),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유엔학교, 유엔 구호트럭, 비무장 국제 구호선까지 무차별 공격함으로서, 미국을 제외한 국제 여론의 심각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세우고 정착촌을 늘려나감으로서, 평화 협상은 최근 1년여간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압바스 (좌), 오바마와 네탄야후 (우) 

결국,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진전이 없고, 미국이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은 유엔에 직접 독립국 승인을 요청하게 된 것이지요. 물론 언제나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미국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할것을 확고히 했으나, 팔레스타인 측은 유엔 회원 192개국 가운데 140여 개국에서 독립을 지지한다는 지지를 얻어냈다고 밝힐 정도로, 대다수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의 독립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안보리 거부권으로 독립국가 자격은 얻지 못하겠지만, 만일 유엔 안보리 15개 회원국 중 최소 9개국이 승인하고,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중 3분의2 찬성을 얻으면 팔레스타인은 `표결권 없는 비회원국 옵서버 단체(entity)’에서 `표결권 없는 비회원국 옵서버 국가(state)’ 지위로 승격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제형사재판소(ICC)와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등에 이스라엘 관련 문제를 제소할 권한을 갖게 되어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될 수 있고, 이렇게 팔레스타인 독립문제가 유엔에서 논의되고, 대다수의 국가들이 지지를 보내는 것 만으로도, 중동 정세에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i]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5 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후, 19일에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대중동연설(Middle East Speech)과 이에 대한 반응입니다. 오바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해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서 합의에 따른 일부 영토교환을 전제로 한 1967년 이전 경계(the 1967 lines with mutually agreed swaps)’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협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언급 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은 과거 조지 부시나 힐러리 클린턴 등 다른 정치인들도 언급한 바 있고, 유엔이나 국제사회에서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새로울 것 없는 내용입니다. 사실 오바마의 개혁적 성향을 보고 뭔가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전을 위해 과감하고 적극적인 조치를 기대했던 팔레스타인과 아랍국가들은, 내실없는 오바마의 발언에 큰 실망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연설이 끝나자마자, 미 공화당 의원들을 비롯한 보수 인사들은 오바마의 주장을 강력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차기 공화당 대선주자인 미트 롬니(Mitt Romney)오바마가 이스라엘을 달리는 버스 아래 던져 넣었다(President Obama has thrown Israel under the bus)’고 했고, 역시 대선주자인 미셸 바크만은 오바마는 또 한번 우리의 친구이자 동맹국인 이스라엘을 배신했다(Once again, President Obama betrayed our friend and ally Isael)’라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비난여론을 의식했는지, 오바마는22일에 유명한 이스라엘 로비단체인 AIPAC(American 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를 방문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철통같은 지지는 변함 없다며, 발언의 파장을 진화하기에 바빴습니다.[ii]

AIPAC을 방문하여 연설하고 있는 오바마

 

또한 미국을 방문한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바마 연설 바로 다음날인 20일 오바마와의 대담에서 거의 두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역사와 현실을 강의하듯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은 1967년 이전 경계로 돌아갈 수 없고 그것은 방어가 불가능하다(indepensible)’고 주장해, 그 전날 오바마의 발언을 대놓고 반박하기도 했으며, 오바마가 유럽을 방문중이었던 524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오바마의 발언을 거듭해서 비판했는데, 놀랍게도 공화당 민주당을 막론하고, ·하원 의원들은 자신들의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하는 네타냐후의 발언이 끝날때마다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31번이나 보내서, 마치 선채로 연설을 듣는 듯 보였고, 마치 네타냐후 지지집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결국 오바마의 발언으로 인한 파장은, 미국의 국내정치를 고려한 공화당의 오바마 때리기이기도 하지만, 전임자인 조지부시와 같이 이스라엘에 충성에 가까운 일방적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 즉시 이스라엘에 대한 배신자로 비난을 받는 이상한 미국 정치 상황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 상관없이, 미국의 정치인들이 얼마나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미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강한 어조로 오바마의 중동연설을 반박하는 네탄야후 


그렇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1967년 이전 경계’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또한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이길래, 그 총리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에게 두시간동안 훈계하듯 이야기 할 수 있고, 미국의 국회의원들 조차 자신들의 대통령이 아닌 이스라엘 총리의 편을 들고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게 만드는 것일까요? 미국의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지난 번 글에서는
, 빈 라덴의 죽음과 관련해 과거 미국의 대 중동정책의 문제점들을 소개했었는데, 글을 읽은 몇 분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어느 정도 심각하길래, 다른 중동국가들이나 이슬람 테러조직들이 언제나 그 문제로 미국을 비난하는지 궁금하다고 물어오시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문제의 뿌리에는, 언제나 석유문제와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전폭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의 뒤에는, AIPAC으로 대표되는 미국내 유대인들의 로비가 있고, 또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보수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미국과 한국의 보수 기독교인들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의 역사나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글에서는 가능한 알기쉽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과 현실, 그리고 미국내 이스라엘의 로비와 그 문제점을 소개해 보고, 성경적 입장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이슈를 생각하면, 먼저 기독인들은 우리에게 친근한 구약성경의 역사를 기억하고, 또한 홀로코스트와 같은 유대인 박해의 역사를 떠올립니다. 성경의 백성이라는 친근함, 그리고 안네프랑크의 일기나 쉰들러스리스트와 같은 영화를 통해 유대인들이 겪은 비참한 역사가 잘 알려져 있기에, 심정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과 그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의 역사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바마가 언급한 ‘1967년 이전 경계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역사적 배경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iii]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중동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전쟁이 있었고, 그에 따라 영토와 경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붉은색은 이스라엘의 영토, 파란색은 팔레스타인 영토로 표시된 다음의 지도는 이스라엘 영토가 팔레스타인에서 지속적으로 확장되가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1948 5 14일 건국 되었는데, 이스라엘 건국 하면, 마치 빈 땅에 나라를 세운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거의 2천년 전에 로마에 의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 세계 각지에 흩어지게 되었고, 그 땅에서는 아랍인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들은 1차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있었는데, 아랍인들의 군사협력이 필요했던 영국은 이들에게 맥마흔 선언을 통해 독립을 약속합니다. 동시에 전쟁을 위해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시오니스트들의 지지가 필요했던 영국은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또 다른 약속을 한 바 있었습니다. 지킬 수 없는 두가지 약속을 한 셈이고, 한입으로 두 말을 한 것이지요. 이후 유럽과 러시아로 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오기 시작하고, 결국 유엔은 1947 11월 팔레스타인의 약 56%를 유대 국가에, 43%를 아랍 국가에 할당하라고 결정했는데, 아랍인들은 분할안을 거부하고 유대인들은 받아들여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 인들은 영토의 대부분인 87.5%를 소유하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6.6%만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팔레스타인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56대43으로 땅을 나누라는 유엔의 결정은 팔레스타인들의 땅을 떼어 유대인들에게 주라는 것과 같았다는 점입니다.

2천년간 세계 각지에서 수난을 당한 유대인들이 구약성서의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 땅에는 이미 2천년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고,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살고 있던 자기들의 땅을 이스라엘과 나눠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된 것이지요. 굳이 비유를 하자면, 갑자기 내일 일본이 임나일본부설(고대 한반도 남부를 일본이 정벌해 식민지를 세웠다는 주장)을 주장하면서 남한 영토의 절반을 요구하고 거기에 일본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니면 우리가 지금 고구려 역사를 근거로 중국에 만주땅을 요구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상황이 똑같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의 건국은 팔레스타인 인들에게 이러한 심각한 상황이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유엔의 결정에 분노한 주변의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공격해 이스라엘 건국 직후 1948년에 1차중동전쟁이 발생하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유엔에 의해서 할당된 영토보다도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의 78%를 장악하게 되고, 나머지 22%는 가자(Gaza)와 서안(West Bank)으로 나눠져서, 각각가자’는 이집트의 통치하에, ‘서안과 동 예루살렘’은 요르단의 통치하에 1967 64일까지 놓여있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양측에 이스라엘의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동예루살렘으로 분할됩니다. 결국, 이것이 바로 오바마가 언급한 ‘1967년 이전 경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는 가자와 서안(웨스트 뱅크)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가 궁금하셨다면 아래 지도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가자’지구는 우리가 잘 아는 삼손과 들릴라 이야기의 배경이 된 성경의 ‘가사’이며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도 블레셋에서 기원합니다.
 

이 전쟁으로 약 75만에서 100만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전쟁을 패해 주변 아랍 국가들로 피신했는데, 이때 이스라엘은 부재자 재산법을 만들어 손쉽게 이들의 토지와 재산을 몰수하고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할 수 없게 해버립니다. 동시에 귀환법을 만들어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은 모두 이스라엘로 돌아올 권리를 가지고 시민권을 받는다고 선포합니다. 결국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주민의 상당수는 토지와 재산을 잃고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고, 반대로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만 증명하면, 팔레스타인에서 시민권과 주거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1956년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자 그 결과로 2차중동전쟁이 발발하는데, 영국과 프랑스가 이집트에 파병하고 이집트와 숙적이었던 이스라엘도 파병하는데, 이 결과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집트의 주도하에 아랍 국가들이 단결해, 다시 1967 3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6일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이 또다시 승리하여, 이제는 가자와 서안 모두가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결과 약 43만 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이 추가로 쫓겨나고 남은 약 100만 명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하에 생활하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이스라엘이 통제하게 된 것이지요. 유명한 아라파트는 1969년 이후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결성하여 투쟁을 하는데, 큰 진전이 없자, 이제 팔레스타인 전체에서 이스라엘을 내어 쫓고 팔레스타인만의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은 완전히 포기하고, 1967년 이전 경계, 즉 가자와 서안에서만이라도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도록 해 줄것을1976년 유엔총회에서 요구합니다. 이것이1967년 이전 경계를 기반으로 독립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상호 인정하자는 두 국가건설 해법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것 마저도 거부합니다. 이것이 오바마가 언급한 ‘1967년 이전 경계이며 유엔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973년에는 욤 키푸르 전쟁이라 불르는 4차 중동전쟁이 터지는데, 욤 키푸르(속죄날)을 맞아 이스라엘 군이 금식 등으로 병력 동원에 어려움이 있으리라 에상한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초반에 우세한 상황이 되는데, 위기에 몰린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겨우 아랍군을 몰아내게 됩니다. 나중에도 다루겠지만, 이스라엘은 굳건한 애국심과 단결력으로 수많은 아랍국가들에 맞서 승리를 거둬왔다고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승리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충격으로 이스라엘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중동의 상황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1978년 지미카터가 주도하고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서명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입니다. 이는 숙적이었던 이집트와 이스라엘 관계에 화해를 가져오고, 이집트는 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나이 반도를 되돌려 받는 대신, 가자지구에 대한 개입을 중지하고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으며,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의 권리와 독립을 인정하고 점령지역에서 철군하기로 약속을 합니다. 나세르와 그 후임자인 사다트 같은 아랍민족주의 지도자들 하에서, 이집트는 아랍의 반이스라엘 진영 지도자 역할을 했으나, 사다트는 캠프 데이비드를 통해 전격적으로 이스라엘과 화해하게 된 것입니다. 

캠프 데이비드협정에서 좌로부터 사다트, 지미카터, 베긴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의 두 리더였던 사다트와 베긴 모두, 협정이후 자국의 강경파에게 암살되고 말았으니 팔레스타인 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잘 보여줍니다. 이후 이집트는 평화협상의 대가로 미국으로 부터 매년 20억 달러를 받게 되며, 사다트가 암살된 후 권좌에 오른 무바라크는 미국의 지지를 업고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자그만치 30년간 독재정치를 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집트는 협상의 약속을 지켰으나, 이스라엘은 아직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바라크는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묵인해,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의 통치를 인정한 셈이 되어 버렸고, 아랍국가들로 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결국 최근 민주혁명 초기에 무바라크가 축출 위기에 처했는데도, 미국이 쉽게 무바라크를 포기하지 못하고 민주시위를 지지하지 못한 것은,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렀던 전임자들(나세르와 사다트)과 달리, 그가 독재자이지만 이스라엘과 평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해 독재자 무바라크를 필요로 했던 것이지요.

최근 무바라크가 시민혁명으로 무너진 후, 지난 9 9, 카이로 시민 수천명이 개혁 가속화 시위를 하다가 그중 수백명이 인근 이스라엘 대사관에 몰려가 방어벽을 부순 뒤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치외법권 지역인 대사관에 난입한 사건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면, 아랍 시민들의 관점에서 같은 형제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무바라크의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분노가 곪아터진 사건인 것이지요.

 

캠프데이비드와 유사하게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클린턴의 지원하에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조약을 맺는데, 이 결과로 요르단이 서안을 사실상 이스라엘의 영토로 승인하는 대신, 미국은 요르단의 부채탕감과 군사원조 2억달러를 포함 매년 5억달러의 원조를 약속합니다. 요르단도 후세인 국왕이 통치하는 친미 독재왕정국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이 평화조약들은 미국의 주도하에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들의 갈등을 어느 정도 방지하게 되었으나, 가자지구와 서안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지상태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PLO와 협상을 하는 동시에, 가자와 서안, 그리고 동예루살렘에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이주시켜 영토를 확대해 나갑니다.

 

1982년에는 5차 중동전쟁으로 불리는 레바논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스라엘은 민간인 정착촌을 미사일로 폭격한 레바논 거주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추격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하고, 그 결과 한달만에 2만명의 팔레스타인 인과 레바논 인들이 사망하게 됩니다. 특히, 82 9 16레바논의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에서의 학살은 이 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으로 오랜 기간 내전을 겪어온 나라이고,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군부는 수도 베이루트를 점령해, 레바논의 기독교도 수장인 바시르 제미엘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앉히려 했는데, 그가 이슬람측의 폭탄테러로 살해당합니다. 그러자 광분한 레바논의 기독교 팔랑헤 민병대 150여명은 이스라엘 군이 포위한 팔레스타인 난민촌인 사브라와 샤틸라로 기습해, 사흘동안 절반이 부녀자와 어린이였던 3천여명의 난민을 무참히 학살합니다.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이스라엘 출신 감독인 아리 폴만의 애니메이션, 바시르와 왈츠를(2008)’입니다. 학살을 다룬 이 영화는 기독교 민병대들의 학살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을 모호하게 다루었지만, 사실 그 배후에 이스라엘 군이 있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것이, 학살극이 벌어지는 동안 이스라엘 군은 샤론의 명령에 따라 난민촌을 탱크로 둘러싸고 밤새도록 조명탄을 쏘아 올려 학살을 방조하거나 도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비난이 급증하자 샤론은 국방장관에서 물러나지만 20년 후 2001년에 이스라엘 총리에 당선되어 다시 팔레스타인의 탄압에 앞장섭니다. 그리고 이 결과로 레바논에서는 반 이스라엘 투쟁이 중심인 헤즈볼라(Hezbollah)가 결성됩니다. 역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Hamas)와 함께 이스라엘과 미국이 테러조직으로 비난해 마지않는 헤즈볼라가 레바논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고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는 배후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학살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2006년 여름에도 레바논은 34일 동안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겪으면서 11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습니다.[iv]



영화바시르와 왈츠를’ 포스터 (좌), 실제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 장면 (우)
 

특히 1987년 말의 1차 팔레스타인 민중봉기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의 참혹한 현실과 이스라엘의 억압정책을 폭로해,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1988 PLO의 부패와 무능에 신물이 난 팔레스타인 인들을 중심으로 보다 과격한 하마스가 창설되어 PLO와 경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92년 이후 PLO와 협상을 시작하는데, 8년여간의 협상기간 동안 예루살렘과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은 두 배 이상 증가해서 40만명이 넘게 됩니다. , 협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정착촌을 늘려나가는 이중적인 정책을 쓴 것이지요. 이러한 이스라엘의 정착촌 정책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판결되었을 뿐 더러, 미국의 관료들조차 비판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들은척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난 2008년에는 제 6차 중동전쟁이라고도 불리는 가자전쟁(Gaza War) 발생했는데,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휴전이 종료되고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 무장대원 3명을 사살하자,  하마스가 그 보복으로 이스라엘 영토에 7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하고, 이스라엘은 다시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공습과 침공을 시작해 1380명이 사망하고 (이스라엘측 사망자 13), 이스라엘은 민간인과 유엔학교, 유엔 구호트럭, 비무장 국제 구호선까지 무차별 공격함으로서, 미국을 제외한 국제 여론의 심각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 지구 한편에서 문명국가 군대의 공격으로 민간인이 대부분인 천명 이상이 살해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믿기 힘든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많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런 현실에 눈을 감거나, 알면서도 여전히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8년 가자전쟁의 참혹한 희생장면. 민간인이 대부분이었던 1380여명의 사상자 발생 

이스라엘 군의 한 티셔츠 디자인. 과녁안에 팔레스타인 임산부 그림이 있고 “총 한발로 두명 사살”이라는 구호가 적혀있다

다음의 지도는
, 녹색으로 표시된 팔레스타인 지역이 어떻게 축소되어 나가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첫번째 지도는 이스라엘 정착 초기, 두번째 지도는 유엔의 분할 결정안, 그리고 왼쪽에서 세번째 지도가 1967년 이전 경계이고, 현재는 서안의 상당 지역을 이스라엘 정착지가 침식해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40만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안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2000
년 최종 협상에서 이스라엘은, 정착촌 제거, 1967년 경계 회복 등,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여 협상을 실패하고, 자살폭탄테러를 동반한 팔레스타인의 2차 민중봉기가 발생합니다. 테러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이스라엘은 2002년부터 서안 지역에 총 길이 800㎞이상 높이 8미터의 콘크리트 분리 장벽을 건설해,이스라엘 정착지와 팔레스타인 지역을 분리시켜 나가고,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분리시키며, 지역 전체에 검문소를 설치해, 팔레스타인 인들은 출근하기 위해서 매일 몇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분리장벽으로 인해 엄청난 거리를 돌아서 다녀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분리 장벽(좌), 서안 곳곳을 차단하고 있는 검문소 (우)

 

2004 7월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는 1967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지역인 동 예루살렘, 서안, 가자지역은 국제법을 위반한 점령지이며 이스라엘이 이들 지역에 건설한 정착촌과 분리장벽도 국제법 위반이이라고 판결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의 22% 1967년 이전 경계에 기반한 서안과 가자, 그리고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민족국가를 설립하겠다는 요구마저 이스라엘은 받아들일 생각이 없고, 그것을 언급한 오바마의 연설조차 미국 내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팔레스타인은 결국 유엔에 독립국 승인을 신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본대로,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현실, 그리고 세계 여론을 생각할때, 대부분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팔레스타인 이슈에 대해 가진 생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주장이 얼마나 역사나 현실에 무지하고 단순한 생각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2.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결국 위에서 살펴본 역사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입장을 살펴 보았을 때, 누가 강자이고 약자이며, 누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천년간 팔레스타인에서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들은 이제 22%남은 땅에서 준 식민지 상태로 이스라엘 군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 지역에서만이라도 독립국가를 인정해달라는 주장을 이스라엘은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1967년 라인마저도 인정할 수 없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세력이 테러공격을 해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기에완전 비무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고, 하마스 같은 조직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미 1948년에 국가를 수립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중동 최고의 군사력을 갖추고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준 식민지 군사점령상태에서 독립국가수립도 못하고, 인구 상당수는 해외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에게,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지 않으면 독립 승인은 물론 평화협상도 할 수 없다고 강요하는 현실입니다. 물론 하마스 같은 팔레스타인 강경파 중에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존재는 이미 기정사실이고, 협상 과정에서 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협상하기도 전에 그걸 인정하는건 미련하다고 밖에 말할수 없겠지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먼저 그런 선결조건들에 굴복하지 않으면 협상은 불가능하고, 기본적으로 1967년 경계는 받아들일 없다고 말하며, 지속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불법적으로 이스라엘 정착지를 늘려나가 이스라엘 영토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러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안은 이해가 가지만, 양측의 갈등이 계속되고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사황에서 팔레스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완전 무장해제하지 않으면 독립은 없다라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요구입니다.

 

결국, 이제까지 이스라엘의 정책을 살펴보면, 과연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하거나, 궁극적으로 독립을 승인할 생각이 있는가 심각한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강경파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국가는 없다라고 여러번 언급한 바 있고, 과거 PLO가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던 시절에는 PLO를 테러조직이라고 협상을 거부해 오다가, 이제 PLO의 후신인 파타가 인기를 잃고 강경한 하마스가 등장하자, 하마스를 테러조직으로 비난하면서 협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 볼 점은, 팔레스타인의 비참한 상황을 생각했을 때, 이들의 독립요구나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등장을 단순히 테러리즘으로만 비난 할 수 있냐는 점입니다. 테러리즘과 관련해, “당신의 테러리스트는 나의 자유 투사일 수 있다(Your terrorist is my freedom fight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제 식민지 시대 독립투쟁을 보아도, 안중근 의사가 잡혔을 때 그는 자신을 독립군 중장이라고 주장했고, 일제는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했다는 것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잔혹한 식민지배에 대한 리비아 인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사막의 라이온(Lion Of The Desert, 1981)’이나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대한 알제리인들의 저항을 다룬 영화 알제리 전투(La Battaglia Di Algeri, 1965)’에서 볼 수 있듯이, 식민지배국이 독립을 향한피 식민지배 국의 저항을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고 진압해온 것은 매우 흔한 일입니다. 그런데, 훨씬 강력한 군대를 가진 점령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과 살인에는 테러리즘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군사작전같은 용어를 사용하지요. 그래서 국가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협상하는 것은 미국에게 알카에다와 타협하라는 것과 같다며, 하마스의 테러리즘을 근거로 평화협상과 독립승인을 거부하고 있습니다만, 하마스를 알카에다와 동일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먼저 알카에다는 특정국가와 상관없이 ‘반미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목표로 하는 다국적 테러단체이지만, 하마스는 과격무장세력인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정치세력이기도 합니다. 특히 하마스는 선거에서 주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점령하에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교육과 의료 등 사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서 민심을 얻어왔기 때문입니다. 하마스는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해 62.6%의 득표율로 총 132석 중 74석을 장악하며,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파타를 제치고 제 1당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제는 하마스조차도 현재 22%안에서의 독립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하고 있으며, 압바스의 유엔독립국지위 신청에 대해서도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구체적인 평화협상과정이 진행된다면, 하마스 마저도 보다 현실적인 타협에 나올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빌미로 협상에 나오지 않고 정착촌건설만 지속하는 이스라엘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군사력이나 사상자의 규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많은 언론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폭력을 중단해야한다는 언급을 함으로써, 마치 양측이 똑같이 공격을 하고 비슷한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이스라엘측 피해를 더 과장해서 묘사를 하는데 (예를 들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련 보도의 정확성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사례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어린이와 청소년 사망 관련 언론기사를 비교해 볼 때, 팔레스타인 보다 이스라엘 어린이 사망에 대한 보도기사가 30배 정도 많다고 함), 실제로 사상자의 비율을 보면 대부분 팔레스타인 측이 수십배에서 수백배까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동 최강의 군사력으로 최첨단의 전투기, 탱크를 갖춘 이스라엘과, 피지배 상태에서 기껏해야 총과 로켓으로 무장한 팔레스타인이 비교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예를 들어 하마스의 로켓 공격도 문제이지만 이로 인해 사망한 이스라엘인은 8년동안 20명에 불과한 반면, 이스라엘 전투기가 하루 공격으로 300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 흔한일이라고 합니다.

테러리즘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 팔레스타인 같이 절망적 상황에서 독립투쟁이 극단화 되는 것은 쉬운 일이고, 이스라엘은 그것을 빌미로 협상을 거부하고, 다시 막강한 군사력으로 팔레스타인을 공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자신의 책 해적과 제왕에서, 똑같은 악랄한 살인과 약탈을 해도 그것을 배한척으로 소규모로 하면 해적이 되지만, 대함대를 거느리고 대규모로하면 제왕이자 영웅이이 되는상황을 지적하며, 한쪽만을 테러리즘으로 비난 하는 입장에 문제제기를 한 바가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강경파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과격파를 문제삼아 분열시키는 동시에, 평화협상을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독립을 무한정 지연시키면서 지속적으로 정착촌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들을 학살하거나 해외로 쫓아내서, 결국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이스라엘화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50만명의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먹어들어가고 있고, 이들은 법적으로 무장할 권리를 가지고 팔레스타인에게 신분증을 요구하거나 영장없이 체포할 권한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평범한 민간인이 아니라 준 군사조직인 것이지요. 더불어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건설해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분리시키고, 이스라엘 정착촌들을 잇는 도로를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인들은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히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테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암 촘스키는, 자신의 책 숙명의 트라이앵글에서 이스라엘의 강경파는 PLO가 온건화 되고 평화협상에 나와서 이스라엘이 협상을 해야할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강경책을 써서 상대를 극렬화 하는 정책을 썼는데, 예를 들어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하여 팔레스타인 인들의 학살을 조장하여 갈등을 증폭시키고 피의 대결을 지속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PLO가 온건화하자, 1987년 이스라엘 정보부는 팔레스타인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해 종교적 색채가 강한 무슬림 형제단을 이끄는 야신을 지원했는데, 그가 창설한 단체가 바로 하마스입니다. 이스라엘이 현재 비난해 마지않는 테러단체 하마의 창설에 이스라엘이 어느정도 개입했다는 사실이지요.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제 지속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관련 유엔표결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의견을 보이고 있으며, 이제 팔레스타인의 참상이나, 이스라엘의 정책으로 자행된 인권유린과 학살이 세계여론을 통해 잘 알려져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 여론과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지지하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중동에서 독재정부를 지원하거나(사우디, 요르단, 쿠웨이트, 이집트 등등), 분열을 일으켜 약화시키는 방식(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이란에도 무기를 팔았음)으로 아랍국가들을 제어하고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원해 왔으나, 이제 시민혁명의 확대와, 근본주의 이슬람의 발흥으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이제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해 온데 대한 결과가, 반미감정과 반 이스라엘 감정으로 폭발 직전에 이른 것이지요. 아래 표(출처: 매일경제 9월6일자 기사)에서 보듯이 중동은 이제 거대한 변화에 휩싸인 상태고 팔레스타인의 독립요구도 더이상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중동에서 확산되어 가는 민주화의 물결을 적어도 원칙상 지지하는 오바마가, 팔레스타인의 자결권과 독립권은 왜 인정할 수 없는가는 점점더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굳건한 지지 세력이 되고 있는 이들이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인데, 이들이 말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냐는 주장이 얼마나 역사나 현실에 무지하고 단순할 뿐더러, 성경적 근거도 빈약한 주장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지난번에 연재한 두개의 글들에서, 인종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그에 기반해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주장에,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을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1) 가나안 정복과 이집트 심판에 대한 오해
  

(2) 혈연 공동체 vs. 언약 공동체

 

현재 이스라엘의 폭압적인 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급증하자, 오히려 보수 기독교인들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커녕, 이스라엘이 위기에 처했고, 각국이 이스라엘을 대적한다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 지고 있다며, 더욱 이스라엘 지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성경과 역사에 대한 무지와 왜곡이, 얼마나 기독교인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정의와 정반대에 서게 할 수 있는지, 처절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스라엘이 왜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인종주의 군사국가가 되었는가, 그리고 미국은 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가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i]연합뉴스 914일자 기사, “카터,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승인 노력 지지

[ii] 다음 링크를 보시면 공화당 정치인들의 자세한 발언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SINSuFQhxLk

[iii] 이 글에서 설명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역사는 다음 자료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홍미정,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코리아 연구원 현안진단 25

[iv] 김재명, 2008 12 4일자 씨네21기사, 좌우갈등 속 모호해진 목소리: 학살현장 사브라샤틸라 난민촌을 다녀와서 본 <바시르와 왈츠를>

 

[이인엽]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2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2


 


     앞의 글에서는 빈 라덴의 죽음을 계기로, 과거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진행된 미국의 비밀 작전의 역사와 영향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역사의 의미와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함의의 살펴보려고 합니다. 냉전기 미국의 개입과 그 결과를 잘 설명해주는 개념이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이라는 정치학자의 ‘블로우백(Blowback)’입니다. 블로우백은 원래 CIA 내부 용어로, 비밀 작전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해로운 결과가 아군에게 미치는 것을 설명하는 단어였습니다. 찰머스 존슨은 이 개념을 통해, 비밀리에 진행된 CIA 작전이 결국 9.11테러와 탈레반, 알카에다의 형성을 가져왔다고 비판합니다. , CIA가 미국의 필요에 따라 훈련시키고 무장시킨 아프간 극단주의 이슬람세력이 결국 9.11테러와 미국에 대한 위협이라는 일종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주장입니다.[i]
                                              찰머스 존슨과 그의 책 ‘블로우백’


     9.11테러가 발생한 후, 당시 부시 대통령은 그들은 왜 우리를 증오하는가 (Why do they hate us)?”라는 상당히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자유를 증오한다 (They hated our freedom)”이라고 스스로 대답을 했습니다. , 9.11테러 공격은 선을 상징하는 미국이 누리는 번영과 자유를 시기한 악의 세력이 일으킨 사건이며, 테러와의 전쟁은 선악간의 투쟁이라는 말이지요. 이에 대해 찰머스 존슨은 앞에서 소개한 블로우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왜 우리를 증오하느냐구요? 그에 대한 답은 바로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  체니, 럼스펠드, 라이스, 파월, 아미티지, 1980년대에 아프간에서 역사상 최대의 비밀 작전을 수행했던 그들이 아주 자세하게 답해줄수 있을 겁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노리에가나 후세인 처럼 한때 미국의 가까운 협조자로 있다가 이제 공공의 적이 된 인물들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ii]


     모션캡쳐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 베오울프(2007)를 보면, 영웅 베오울프는 괴물을 물리쳐 왕의 자리에 오르고, 외적과 괴물로 부터 왕궁을 지키는데, 결국 왕국을 위협한 최후의 괴물은 전쟁의 과정에서 베오울프 자신이 만들어 낸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를 비유로 사용한다면, 소련이라는 거대한 괴물을 죽이기 위해 미국은 작은 괴물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소련이 사라진 지금 이제 자신이 만들어 낸 괴물들로 인해 골치를 앓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폭력의 역사(2005)는 과거 범죄조직의 일원이었다가 손을 씻은 후,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정체를 감추고 살아가던 주인공에게, 계속해서 과거의 인물들이 찾아오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다시 폭력을 사용해 악당들과 싸우지만, 그 과정에서 가정이 위기에 처하고 은연중에 자신의 아들에게 폭력성이 전염되 가는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이 역시 미국의 역사에 대한 은유로 읽을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베오울프(2007)’
                                                     영화 ‘폭력의 역사(2005)’


     물론 테러의 원인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고 모든 책임이 미국에게만 있다는 주장도 당연히 지나친 생각이겠습니다. 미국의 정책과 상관없이도 반미감정을 내세우고 테러를 일삼는 집단이 나타날 수도 있겠고, 헌팅턴이 주장 했듯이 지하드와 같은 근본주의 이슬람의 영향도 중요한 요소이겠습니다. 그러나 앞의 역사를 살펴보았듯이 테러와 반미감정의 일정부분은 과거 미국이 냉전기에 뿌린 씨앗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빈 라덴 사살 이후 미국의 한 복음주의 목사님이, 기독인으로서 누군가가 죽은 것을 기뻐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만,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처럼 빈 라덴은 자신이 뿌린 악의 씨앗의 열매를 거둔 것이며 칼을 가진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성경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쓴 글을 보았습니다. 빈 라덴이 수천명의 민간인이 살해된 9.11 테러의 주범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원리는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 될 수 있습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오늘날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국제관계상의 문제들, 특히 테러와 반미감정은 상당부분 냉전기에 미국이 뿌린 씨앗의 열매로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은 미국 정부가 어떤 정책을 취하는지 몰랐을 지라도 말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의 일인데, 같은 사무실에 있던 나이가 많으신 미군 특무상사 (Sergeant Major) 한분이, 9.11테러 이후 아프간 전쟁이 한창이던 2002년 경 제대를 해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분과 우연히 함께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분은 자신이 80년대에 아프간에서 스팅어미사일 교관으로 무자헤딘을 훈련시켰었다고 하면서, 그 무기로 지금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미군을 공격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럴수가 있냐고 한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차마 직접 말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그럼 극단주의 무슬림들을 무장시키고 훈련시킨후에, 소련에 맞서 싸우는 도구로 이용하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 나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손떼고 떠난 미국의 정책은 잘한 것인가 묻고 싶었죠.


 


     물론 이런 비판은 미국안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부분이고, 까딱하면 반미주의자나 극단주의자, 혹은 비미국적인 발언으로 공격받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내부 경선 주자 중 한명이었던 하원의원 론 폴(Ron Paul)은 미국 내에서 고립주의를  주장하는 몇 안되는 정치인중 하나인데, 미국의 무분별한 해외 개입을 중단해야한다는 입장에서, 위에서 말한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백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아프간전과 이라크 전을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뉴욕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를 비롯해서 다른 후보들은 그렇다면 9.11 테러의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냐그런 발언은 비미국적이고 용납할수 없다고 펄펄 뛰며 론 폴에게 발언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iii] 


 


     조지 부시를 비롯해서 미국 보수인사들이 보이는 중요한 특성이, 반성적 사고가 부재하고, 쉽게 미국 스스로를 으로 미국의 적을 으로 등치시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기독교적인 수사들을 들으면 언뜻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지만, 결국은 성경적인 생각도 아닐 뿐더러, 복음전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가져옵니다. 사실 성경은, 외적으로 행해지는 악도 있지만, 내적 반성이 없이 스스로 선을 자처하며 문제를 외부로 돌려 자신은 변하지 않고 상대방만 변하라고 하는 태도 자체가. 더 심각한 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처절한 비판을 보면 이를 잘 알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미국 남부에서 상당수의 보수 기독인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미국 역사의 어두운 면들 인디언 학살, 흑인 노예제와 인종 차별, 베트남 전쟁과 최근의 이라크 전쟁 등등 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알아도 반성적 사고가 없이 무조건 미국은 옳았다라는 입장만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깊은 실망감을 느낀적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과 반성적 사고의 부재가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문제의 원인을 인식하는 것이 테러리즘을 대하는 미국의 정책결정에 결정적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 많은 비판을 받은 것도, 결국 테러리즘을 포함한 국제 갈등의 원인을 문화와 종교의 문제로 환원시킴으로서, 이슬람 문화와 종교의 폭력성에 테러의 근본 원인이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주장이 반드시 틀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중요한 요소들인 과거 미국의 외교정책에 오점들, ,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 지원의 문제,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패권정책, 중동국가들의 비민주성과 그러한 독재정부와 미국의 유착관계 등을 간과하는 것이 상황을 심각하게 오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경우 단순화는 쉬운 답을 제공하지만, 본질을 호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화된 사고와 신학이 끼치는 폐해들을 우리는 미국과 한국의 교회들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 헌팅턴 교수



                                              헌팅턴 교수의 책 ‘문명의 충돌’
     그동안 중동에서의 미국의 정책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목표들을 추구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석유를 확보해야 하고, 또한 미국의 최우선순위인 이스라엘의 이익과 안보를 보장해야 하고, 이러다 보니, 실제로는 수많은 독재정부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겉으로 미국의 가치(민주주의, 인권, 경제발전)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미국의 이익(냉전에서의 승리, 석유이익확보, 이스라엘 지지, 테러와의 전쟁)이 더 중요했고, 이러한 괴리는 아랍인들에게 심각한 환멸과 반미감정을 일으켜 온 것이 사실입니다. 부시정부는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와 알카에다와의 연계가 발견되지 않자, 후세인이 독재정부이기 때문에 침공이 합리화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그렇다면 미국은 자신의 다른 동맹국들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이집트, 요르단, 쿠웨이트 등등도 침공해 민주화를 시켜야 했겠죠. 앞에서 말한대로, 파키스탄은 최근에 민간정부가 들어서긴 했지만, 군부와 ISI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재국가에 가깝고 테러와의 전쟁 내내 쿠테타로 집권한 무샤라프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은 민주주의의 기준에서 최악에 가깝고 일종의 중세시대에 가까운 상황인데, 정당이나 헌법조차 없을 뿐더러, 여성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가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도 개종을 하게 되면 국가가 목을 베거나 국외로 추방할 권리가 있을 정도 입니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많은 기독인들이 이제 선교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라크 전쟁은 잘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는데,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사우디를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사우디가 최대의 산유국이고, 유가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석유 결제를 달러로만 하기로 합의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국은 중동의 안정과 이스라엘의 안보라는 이름으로 이집트에서도 무바라크의 독재정부를 지지해 왔습니다. 이집트에서 시민들이 무바라크에 대항하는 시민혁명을 일으켰을 때 미국이 이를 선뜻 지지하지 못한 이유이지요. 무엇보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잔혹한 점령정책과 인권유린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함으로서 아랍인들의 공분을 사 왔습니다. 결국,이슬람의 문화와 종교가 근본 원인이라는 헌팅턴의 주장은 단순한 설명을 원하는 미국인들에게 쉽게 지지를 받고, 과거의 정책에 대한 불편한 양심을 잊어버리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테러리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에 듣기 좋은 얘기를 하는 일종의 거짓선지자인 셈이지요
 


     사실 알 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조직이 중동의 시민들의 삶과 민주주의에 기여한 바가 뭐가 있습니까? 말 그대로 공포(Terror)와 분쟁만을 안겨주었을 뿐이고, 아랍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키고, 진정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가로막은 역할 밖에 한 것이 없지요. 예를 들어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중동에서도 시민혁명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테러리즘은 힘과 지지를 잃어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는데, 상당히 일리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iv]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리즘이 이제까지 지속 되어 온 것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내재한 모순으로 인한 반미감정이 워낙 극심하고, 그것이 테러리즘에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왜 그러한 반미감정이 일어나는가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도입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엄청난 무기와 첩보전을 통해서도 테러리즘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빈 라덴이 사살 된 후, 미국 언론에서 진행된 또 하나의 논쟁은 바로 고문의 효용성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히 폭스 뉴스를 비롯한 미국의 보수 언론들은, 오바마가 정치적으로 유리해진 상황을 못견디고, 이를 깎아내리기에 바빴는데, 특히 과거 부시정부의 인사들을 불러다가 고문을 허용했던 것이 빈 라덴의 위치를 찾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전 부통령 체니, 전 국방부장관 럼스펠드, 그리고 법무부에서 일하면서 고문과 관련해 법률조언을 했던 버클리대 법과 교수 존 유 (John Yoo)등을 불러다가 인터뷰를 했는데, 특히 존 유 교수는 아부그레이브와 관타나모 기지에서 고문이 허용되도록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테러리스트에게는 제네바 협정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상당한 비판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최근 폭스 뉴스의 마이크 허커비 쇼에 출연한 그는, 지난 10년간 자신이 비난을 받았지만, 고문의 효과가 빈 라덴의 사살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했고, 호스트인 허커비도 고문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계 미국인인 존 유 교수가 고문이라는 국제법에도 위반되고 인권을 유린하는 정책을 도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안타깝고, 아무리 보수인사라지만 남침례교에서 안수를 받은 목사인 허커비가 자신도 고문의 중요성을 지지한다고 하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v] 같은 보수 정치인이긴 하지만, 베트남 참전시 포로가 되어 5년동안 잡혀서 고문을 경험했던 존 메케인은 다행히도 고문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재확인했습니다. ‘대접받고 싶은대로 대접하라라는 성경의 말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존 유교수의 사진



                 존 유 교수를 전쟁범죄로 기소해야한다고 비난하는 시위자들의 모습


     고문이 빈 라덴의 위치 파악에 얼마나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고문이 도움이 되었다면, 부시 정부는 두번의 임기가 끝나도록 왜 빈 라덴을 잡지 못했고, 이라크 침공을 비롯해 왜 그렇게 처참한 정보의 실패를 거듭했는가에 대답을 해야하겠죠. 하지만 실제로 도움을 주었더라도 그런 방식을 통해 과연 테러리즘을 해결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엄청난 군사력에도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이라크전쟁에서도 수렁에 빠저 헤어나오지 못하고 제2의 베트남전이 되고 있는 것은 왜입니까? 모두가 정당성(legitimacy)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소련과 구 공산권 국가들이 무너진 것을 보면, 고문과 도청이 아니라 그 무엇을 해도, 정당성이 없는 싸움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잘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정당한 목적과 더불어 정당한 수단이 도입되어야 장기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라 생각합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2005)을 보면 이스라엘 특수조직이 검은 구월단의 테러에 보복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테러조직의 지도자들을 역시 테러를 통해 암살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데, 결국 테러는 테러를 낳을 뿐이며, 암살된 테러 조직의 지도자들은 더욱 악독한 인물들로 교체되고, 테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영화 뮌헨(2005)


     무자헤딘에 대한 지원이 오늘 테러조직들의 뿌리가 된 것을 살펴보면, 손쉬운 문제 해결을 위해 도입한 불법적인 수단들은 결국 언젠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볼 수 있습니다. 냉전기에 공산주의 소련을 저지하는 것은 어느정도 정당성이 있었지만, 그 목적이 모든 것을 합리화 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고, 오늘도 테러리즘을 저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모든 수단을 합리화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울때는 당신이 괴물과 닮아가지 않도록 주의하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겪으신 사단의 시험도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목적을 위해 수단을 합리화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정당성을 이야기 하면 현실주의자들은 순진한 이상주의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책이나 전쟁이라도 정당성이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당성이 국내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담보하고, 국제적으로 동맹국들의 지지를 담보하며, 분쟁 지역에서 현지인들의 지지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전 이후 미국인들도 “winning hearts and minds”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배우게 되었죠. 이러한 정당성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정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국제정치와 관련된 논의를 들어보면, 미국의 지도자들은 물론이요, 많은 미국의 기독인들도 하나님이 아닌 미국의 번영과 안보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듭니다. 우상으로 섬긴다는 것은 번영과 안보가 궁극적 가치가 되어 다른 가치들과 충돌할때 최우선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미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문도 괜찮고 도청이나 납치, 암살도 괜찮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정의보다 국가 안보가 중요하다는 말외에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다소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을 하면, 기독인들 중에서는 마음이 불편한 분들이 꽤 있으실 줄 압니다. 흔히 미국에 대한 입장은 친미냐 반미냐는 이분법적 기준으로 갈라지는데, 저는 미국이 하는 것은 언제나 옳고 정의로우며 미국을 지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친미, 그리고 미국이 곧 모든 악의 근원이며 미국을 반대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반미도 기독인의 입장이 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언제나 이러이러 하다라고 말한다면, 벌써 객관적인 판단이 아닌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이지요. 기독인들은 미국이든 한국이든, 거리를 두고 하나님의 정의의 차원에서 지지할 것은 지지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이 일치한다면 좋은 일이겠는데, 그 두가지가 충돌할 때, 우리가 국가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정의를 무시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아닌 국익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지요. 성경은 이를 우상숭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국의 절대화를 상징하는 금신상앞에 절하기를 거부했던 다니엘의 세 친구들 처럼, 모두가 옳다고 믿는 부분이라도 하나님의 정의가 아니라면 과감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기독인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도해 봅니다. 설령 단기적인 손실이 있더라도, 목적과 수단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따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정의와 생명, 평화의 길이라는 것이 성경과 역사가 말하는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나오며


 


      빈 라덴이 사살된 것으로 이 글을 시작했지만, 빈 라덴의 죽음 자체에 글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지 않은 것은, 이제는 빈 라덴 개인이나 그의 죽음 자체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빈 라덴이 더 이상 테러를 계획하지 못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기독인으로서 한 개인의 불행한 죽음을 축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무장도 하지 않은 상태의 그를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로 즉결 사살 한 방식에도 문제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 이후 공포심을 이용해, 정당성 없는 이라크전쟁을 밀어부친 부시 정부가 거짓말로 점철된 임기를 보냈다는 것과 비교한다면, 적어도 빈 라덴을 추적하겠다는 약속을 지킨 오바마가 상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이해가 되는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본 바 대로, 드러난 현상인 테러의 배후에 있는 미국의 과거 정책을 반성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비롯한 중동의 평화와 민주화가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테러리즘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i] Chalmers Johnson, ‘American Militarism and Blowback: The Costs of Letting the Pentagon Dominate Foreign Policy,’ New Political Science, Volume 24, Number 1, 2002, p.23.; Chalmers Johnson, ‘American Militarism and Blowback: The Costs of Letting the Pentagon Dominate Foreign Policy,’ New Political Science, Volume 24, Number 1, 2002, p.23-25



[ii] 2004년에 버클리대에서 진행된 찰머스 존슨의 인터뷰(Militarism and the American Empire) 다음 링크에서 직접 보실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oOjYteh-ZRs )



[iii] 2007년에 진행된 폴과 루디 줄리아니간의 토론은 다음 링크에서 직접 보실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cQrwKr_b4Lg )



[iv] 지난 5 5 CNN 에서 진행된 마이클 무어의 인터뷰는 다음 링크에서 직접 보실 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CkOSgSsNXwM )



[v] 허커비와 교수의 인터뷰는 다음 링크에서 직접 보실 있습니다. (http://video.foxnews.com/v/4683623/huckabee )

[이인엽]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1

안녕하세요. 개인적으로 이번학기에 박사과정 종합시험이 있어서 연재를 한참 쉬다가 오랫만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이번에는 최근에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빈 라덴 사살과 관련해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1


 


     지난 5 1일 오바마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고 발표했고, 뉴스에서 연일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백악관 앞에서는 수백명이 “U.S.A.”를 외치는 등, 많은 미국인들이 이에 대해 환호를 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2001년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 테러로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D.C.의 펜타곤 등이 공격당하고 약 3천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던 것을 생각하면 미국인들의 이러한 반응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과연 빈 라덴의 죽음과 지난 10년간 진행되어 온 테러와의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쉽지 않은 문제이고,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일지라도, 기독인의 입장에서 한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는 것이 적절한가, 그리고 체포후 법정에 세워서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닌, 당시 비무장이었던 그를 일종의 암살에 가까운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바다에 유기하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었나, 또한 근본적으로 미국은 선이고, 테러리스트 혹은 이슬람을 악이라고 단순하게 규정할 수 있는가, 테러리즘의 원인은 무엇이고 현재의 미국의 대테러전쟁이 과연 테러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이슬람권 선교에 도움이 될 것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질문에 다 답하기는 불가능 하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빈 라덴이라는 인물의 과거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배경을 살펴봄으로서, 위의 질문들에 대해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는 오바마 대통령
                                          빈 라덴 사살을 다룬 타임지 표지 사진



                빈 라덴 사살 발표이후 백악관 앞에 모여 환호하는 미국 시민들 (연합뉴스)

     먼저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도입차원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두가지 간단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빈 라덴을 포함해 9.11에 가담한 테러리스트들의 대부분(90%이상)의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이고, 두번째는, 빈 라덴이 살해된 지역이 어디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는 질문입니다.


      첫번째 문제의 답은 ‘사우디 아라비아’로, 비교적 쉬운 질문이지만, 미국에서 진행된 설문조사 (Program on International Policy Attitudes Survey)에 따르면 불과 설문자의 27%만이 답을 맞췄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중 하나이며, 미군이 엄청난 규모로 주둔해 있는 국가인데, 9.11 테러리스트들의 대부분이 이라크나 이란, 아프가니스탄 같은 반미 국가, 혹은 소위 불량국가 출신이 아닌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라는 것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번째 질문의 답인 빈 라덴이 발견되고 살해된 지역은, 최근 뉴스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대로, 아프가니스탄의 산간지역이 아닌,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38마일 떨어져있고 파키스탄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보타바드(Abbottabad)라는 부유한 교외지역이었습니다. 파키스탄 역시 미국의 동맹국으로,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중요성 등으로 인해, 미국에서 해마다 10억 달러 이상씩의 엄청난 원조를 받아왔는데, 이 사건 이후, 자기네 수도 근처에 빈 라덴이 살고 있는 것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요, 빈 라덴을 숨겨주거나 묵인해 왔다면 동맹관계를 배신한 행위라며, 미국은 파키스탄을 엄청나게 압박하고 있습니다. CIA 국장 레온 파네타는 최근 미 하원에서 빈 라덴의 은거지 위치로 볼 때, 파키스탄이 “정말 무능하거나 아니면 빈 라덴에 연루되어 있다(either incompetent or involved)”고 볼 수 밖에 없고, 둘 중에 어떤 경우든 심각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떻게 빈 라덴은 파키스탄의 수도 근방에 숨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과연 이 테러조직들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하는 가를 살펴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던 시점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이를 소련이 아프간을 통과해 중동의 석유에 접근하고 부동항(겨울에도 얼지않는 항구)을 확보하고자 하는 ‘팽창 전략’으로 해석하여, 당시 카터 대통령은 유명한 ‘카터독트린(외부세력이 페르시아만을 통제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면 군사력을 동원해 막겠다는)’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소련을 약화시키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하기 위해 79년부터 3천만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사이클론 작전(Operation Cyclone)’을 시작하였고, 1985 3월 후임자인 레이건 대통령은 국가안보 결정 명령166호에 서명하여 지원액을 25천만달러로 늘렸고, 2년 뒤인 1987년엔 63천만달러까지 증액하여  무자헤딘에 대한 비밀 군사지원이 총 10년간 지속됩니다. 그 기본 전략은 파키스탄 정보국인 Inter-Services Intelligence(ISI)를 통해 근본주의 이슬람세력인 무자헤딘 게릴라를 지원해 소련에 맞서 싸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대통령 카터(오른쪽)와 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가운데), 그리고 파키스탄의 지아 대통령(왼쪽)


                            전 대통령 레이건(왼쪽)과 파키스탄의 지아 대통령 (오른쪽)
                       무자헤딘 지도자들을 초청해 백악관에서 대화하는 전 대통령 레이건



     
이에 따라
1986 1992년 사이 10만명이 넘는 이슬람 전사들이 CIAMI6(영국 첩보부)의 감독하에 파키스탄에서 훈련받았고 영국 특수부대 SAS는 미래의 알카에다와 탈레반 전사들에게 폭탄제조법을 가르쳤으며, 무자헤딘 고위 지도자들은 버지니아에 있는 CIA캠프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사우디에서 온 빈 라덴을 포함, 전세계 43개국에서 온 35천명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아프간 무자헤딘과 함께 싸웠고, 수만명의 새로운 자원자들이 ISI CIA가 후원하는 파키스탄의 마드레사(이슬람학교)에 몰려들었습니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재정과 스팅어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들이 지원되어 전쟁의 판도를 바꿔 놓았는데, 예를 들어 무자헤딘 게릴라들이 스팅어미사일을 쏠 때마다 거의 70%의 확률로 소련 헬기와 비행기들을 격추시켰고, 한발에 6~7만달러 하는 스팅어 미사일로 소련군에 거의 2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혔습니다. 결국 소련은 14,427명의 군인, 118대의 전투기, 333대의 헬기와 다른 엄청난 손실을 입고 아프간에서 철수하였고, 이는 소련의 붕괴에 도화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카터정부의 국가안전보좌관이었던 브레진스키는 1998년 프랑스의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간에서 수행한 미국의 비밀작전은, 소련을 미국의 베트남전에 비견되는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 뛰어난 아이디어였다고 자랑한 바 있습니다. [i]


 





                                          대 소련 투쟁 당시 무자헤딘 게릴라들 
                                      미국이 지원한 스팅어 미사일을 사용하는 장면 

      당시 미국의 최우선순위는 냉전에서의 승리였기 때문에, 소련을 약화시키고 파괴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이라도 합리화시켰습니다. 그래서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세력이었던 무자헤딘은 미국 언론에서 아주 호의적으로 묘사되는데, 이들은 낙후된 무기를 가지고서 외부 침략자들에 저항해온 용맹한 전사들로 그려지고, 반면 소련군은 엄청난 무력으로 양민을 학살하고 저항세력을 토벌하는 잔인한 침략자로 묘사됩니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영화 람보III(1988)’는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람보가 아프간에 가서 무자헤딘을 도와 소련군에 맞서 싸우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심지어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이 영화를 용감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바칩니다(This Film is dedicated to the gallant people of Afghanistan)’라는 헌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당시 아프간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또한 2007년에 나온 영화 찰리윌슨의 전쟁(Charlie Wilson’s War)’을 보면, 플레이보이면서 냉전의 전사였던 하원의원 찰리 윌슨이 어떻게 무자헤딘을 지원하기 위해 국내적 국제적 수단들을 동원해 활약하는지를 잘 그리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CIA는 무자헤딘 게릴라의 사기를 진작을 위해 코란 수천권을 인쇄해서 배포할 정도였습니다.[ii] 지금의 관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인데, 쉽게 말해 소련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수단이든 상관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작전은 국가안보라는 차원에서 미국 국민들 대부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진행됩니다.


 





                                 영화 람보III (상), 영화 찰리윌슨의 전쟁 (중),
                     무자헤딘들과 함께 촬영한 하원의원 찰리윌슨의 실제 사진 (하)

      문제는 이러한 비밀 작전을 수행하면서, 과격파 이슬람으로서의 무자헤딘 게릴라의 성격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또한 파키스탄의 ISI를 대리인으로 사용하면서 ISI가 다른 목적을 위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무자헤딘 지도자 중, 굴부딘 헤크마티아르(Gulbuddin Hekmatyar) 같은 인물은 유명한 6개의 헤로인 공장을 소유한 마약거래상이자 가장 무자비하고 극단적인 이슬람 군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언급한 하원의원 찰리윌슨과 CIA 국장 윌리엄 케이시 등이 ISI에 수억달러의 지원을 보낼 때, 그 지원금의 거의 절반을 받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CIA의 윌리엄 케이시는, 전쟁을 아프간을 넘어 소련까지 확대시키고자 하는 헤크마티아르의 극단적 성향으로 인해, 그를 특별히 선호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iii]


 


          전 CIA 부국장 리차드 커(오른족)와 함께 한 헤크마티아르(왼족). 1988년 이슬라마바드


      이러한 미국의 비밀 작전에서 마약의 역할을 빼 놓을 수 없는데,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재정지원과 더불어, 상당량의 자금은 황금 초승달 지역(the Golden Crescent)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마약 거래를 통해 확보되었기 때문입니다. CIA가 정부로 부터 받는 예산은 의회에 감사와 보고 의무가 있기 때문에, 불법적이거나 비밀리에 수행되는 작전들에 사용할 수 없고, 따라서 외부 예산을 확보하는데, 여기에 마약이 중요한 재정공급원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Air America 항공을 통해 마약을 해외로 운송했는데, 이는 영화 아메리칸 갱스터(2007)에서도 묘사된 바가 있습니다. CIA 작전이 시작된 지 2년 안에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지역은 세계 최대의 헤로인 생산지역이 돼 미국내 수요의 60%를 공급했고, 파키스탄에서 헤로인 중독자는 1979년 사실상 전무했으나 1985년에 120만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미국의 지원으로 무자헤딘이 승리했던 1986년경 아프간은 전세계 헤로인의  40%가까이를 생산하고 있었고, 1999년에는 80%를 생산할 정도였습니다. 1995년에 전직 CIA 아프간 담당자 찰스 코건(Charles Cogan)은 마약거래가 소련을 철수하는 주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산물로 어쩔수 없이 나타났다고 합리화 했는데, 결국 마약 자금이 CIA작전에 중요하게 사용되었음을 인정한 셈입니다.[iv] 9.11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파트너로 선택한 북부동맹의 군벌들 역시 마약왕들이었고, 2009년 경에는 전세계 아편의 93%가 아프간에서 생산되었고, 현재 아프간 정부 내 정치인들과 고위층들도 공공연히 마약거래에서 이익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현 대통령 카르자이(Karzai)의 친동생인 아흐메드 왈리가 바로 칸다하르를 지배하는 통치자이며 아프가니스탄의 ‘마약왕’이며 CIA의 자금 지원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CIA ISI의 지원을 받은 헤크마티아르는 또한 오사마 빈 라덴과 아주 가까운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v] 오사마 빈 라덴이 CIA에서 직접적인 지원을 받았느냐는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지만, 결국 그도 미국의 지원 하에 치러진 아프간전쟁의 와중에 성장하고 적어도 간접적 지원을 받은 인물임은 분명합니다. 또한 빈 라덴 개인도 중요하지만, 파키스탄의 ISI, 탈레반, 알 카에다의 동맹 관계가 결국 냉전기 미국 패권 전략의 산물이라는 것이 주목해야할 사실입니다.


 


      미국이 직접 지원이 아닌, 파키스탄의 ISI를 중개자로 해서 비밀리에 무자헤딘을 지원한 것은 소련의 파괴라는 궁극적인 목표가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였는데, 여기서도 여러 부작용들이 나타났습니다. 먼저 파키스탄은 이 비밀작전에서 얻은 자원과 경험을 자신의 적대국인 인도와 싸우는데 이용했고, 카슈미르 등의 분쟁지역에서 아프간전쟁에서 체득한 게릴라 전술을 활용했습니다. 또한 파키스탄 군부와 ISI는 무자헤딘을 교육하면서 이슬람을 완벽한 사회정치적 이념으로 가르치고, 무신론자인 소련 정부에 맞서 지하드를 일으키며 소련의 해체와 구소련 국가들에서의 무슬림 공화국 건설까지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교육했습니다. 실제로  파키스탄은 아프간 전쟁 이후에도 소련의 해체와 중앙아시아 지역 6개 무슬림 국가 건설을 지원하고 개입한 바 있습니다. 파키스탄 내부에서도 CIA ISI의 관계는 지아 울 하크 장군(Zia Ul Haq)이 부토 총리를 쿠테타로 축출하고 세운 군사정권을 강화시켰습니다. 결국 파키스탄 내에서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권력집단이 된 ISI와 파키스탄 군부는, 현재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과 민간 정부가 어쩌지 못하는 실질적인 파키스탄의 실세가 되어있고 핵무기도 이들의 통제하에 놓여있습니다. 이렇게 80년대에 미국의 지원하에 무자헤딘 네트워크와 극단주의 이슬람운동이 급속히 성장하자, 파키스탄의 전 총리였던 부토 여사는 미국을 방문했던 1989년 당시,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에게 당신들은 지금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경고할 정도 였습니다.[vi] 다시말하지만, 냉전기 미국의 비밀작전을 진행하면서 형성된 파키스탄 ISI  탈레반, 알카에다간의 견고한 동맹관계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네트워크가 되어 버렸고, 오늘 미국이 골치를 않는 테러조직의 뿌리가 여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입니다.[vii]


 
      아프간과 관련된 또하나의 정책 실패는, 소련이 철수하자 마자 미국이 아프간에서 즉각적으로 관심을 잃고 손을 떼었다는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무자헤딘과 아프간을 소련을 패배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했을 뿐, 아프간의 미래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소련의 지배는 60만에서 2백만에 가까운 아프간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갔고, 5백만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습니다. 89년 소련이 철수하자 놀라운 승리를 자축했지만, 미국은 전쟁으로 찢겨진 아프간에 대해서는 이제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무자헤딘에 대한 재정지원과 파키스탄의 난민 지원을 바로 끊어버렸고, 아프간 사회의 재건을 위한 진지한 지원은 전무했습니다. 1992년 마침내 미국은 파키스탄에게 책임을 넘기고 아프간에대한 모든 개입을 종료했습니다. 아프간이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와 관심에서 사라진 후, 아프간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되기 시작했는데, 소련이 떠나고 난 후, 통합된 리더쉽의 부재는 다양한 무자헤딘 파벌간의 권력쟁탈전을 낳았고 군벌들의 난립과 내전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예로 1994년에만 수도 카불에서 만명 이상의 인명이 사망했고, 마침내 파키스탄이 지원하는 극단적 이슬람 세력인 탈레반(Taliban)이 카불을 장악하고 근본주의 이슬람국가를 설립해 200년에 95%의 국토를 장악하게 됩니다. 탈레반 정권을 외교적으로 승인한 단 세나라중의 하나가 파키스탄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겠지요.


      알카에다(Al-Qaeda)는 빈 라덴과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이 파키스탄 페샤와르(Peshawar)에서 소련에 대항하기 위한 외국인 출신의 무자헤딘을 모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단체(Maktab al-Khidamat)에서 유래합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후 미국에 의해 소위 자유의 투사라고 불리었던 이들은, 1991년 사우디의 이슬람성지인 메카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사실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한 미국의 중동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이제 서방세계를 향해 테러를 시작합니다. 1993년 세계무역센터에 폭탄 테러를 하고 CIA 요원들을 살해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93년 이들의 폭탄 테러에는 과거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위해 쓰여졌던 CIA의 폭파 교본이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viii] 상당히 의미심장한 내용이지요. 여론이 악화되자 알카에다 본부를 제공하고 있던 수단은 이들을 추방하기로 결정하고, 알카에다는 마침내 과거 대소련 투쟁의 동지였던 탈레반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본부를 옮기게 됩니다. 1998 8 7일 알카에다는 동아프리카의 미대사관을 공격하고, 2001년 마침내 9.11 테러가 발생합니다.


 
                                                          2001년 9.11 테러



     
9.11을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테러가 일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평가는 극적으로 달라지는데, 소련의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영웅적 전사들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테러를 자행하며 마약거래를 일삼는 공공의 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어두운 면들은 미국이 이들을 지원하던 80년대에부터 동일하게 존재했던 문제들이고, 단지 냉전하에서 소련과 싸우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 감춰져왔을 뿐이지요. 이와 유사하게,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파나마의 독재자 노리에가가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할 때는, 온갖 범죄행위들을 눈감아주다가, 독자노선을 가기 시작하고 파나마 운하에서 미국의 이익에 위협을 가하자, 바로 그를 깡패이자 마약장사꾼으로 비난하고 결국 침공해서 체포했다는 것을 예로 드는데, 사실상 그는 CIA 고용되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담 후세인도 이라크 전쟁시는 악당중의 악당으로 묘사되었지만, 사실 80년대에 이란-이라크 전쟁시, 이란을 약화시키고자 했던 미국은 후세인을 지지해 무기를 지원했었는데, 미국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후세인은, 전쟁 후에 석유기업을 민영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고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등,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시작한 후부터, 비난 받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니카라과의 독재자 소모사 가르시아(Somoza Garcia)에 대해 했다는 다음의 말은 상당히 의미심장 합니다. “He may be an S.O.B., but he’s Our S.O.B.” 외국의 지도자가 독재자냐 아니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느냐라는 것이지요. 결국 미국 외교정책의 가치판단과 윤리는 상당부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쉽게 조작될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예들입니다.         




1983년 이라크의 독재자 후세인과 악수하는 젊은 시절의 럼스펠드. 80년대의 이란-이라크 전쟁시 미국은 이란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라크를 지지하고 무기를 판매하였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빈 라덴이 파키스탄 수도에서 가깝고 군부대까지 주둔하고 있는 아보타바드에서 발견된 것에 대해, 최근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은 엄청나게 분개하면서, 파키스탄내에 빈 라덴을 지원한 세력이 있다며 파키스탄 때리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직 정확히 확인된 바는 없지만, 군부대까지 있는 파키스탄 수도 근처에서 빈 라덴이 5년이상 은거하고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는 파키스탄 내의 지원세력이 있다는 것(아마도 군부와 ISI내에 협력세력)이 거의 분명하겠지요. 이전에도 빈 라덴 이외에 상당수의 알 카에다 고위 지도자들이 파키스탄 영토 내에서 체포 된 바가 있었습니다.


 



                         2001년 9.11 테러 아흐마드 슈자 파샤 (오른쪽 끝) ISI 부장과
                            마이크 멀린 (왼쪽 끝) 미 합창의장 (사진: 한국일보)



      결국 9.11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을 동맹국인 파키스탄의 어떤 세력이 숨겨주었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이제까지 살펴본 80년대 미국의 비밀작전의 역사가 말해주듯이파키스탄 ISI를 통해 80년대에 무자헤딘을 훈련하고 무장시킨 것은 사실 미국이라는 것, 그리고 무자헤딘의 후신으로 나타난 것이 알카에다와 탈레반이라는 것을 기억해 본다면, 지금와서 그 관계가 깨끗하게 청산되었기를 바란다는 것이 오히려 우습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다 보면, 미국인들은 상당히 선택적인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데, 미국의 개입에 대한 과거 역사에 무지하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어두운 역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자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거 아프간에 대한 미국 개입의 역사를 설명했다면
, 다음 글에서는 그 의미에 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


[i] Le Nouvel Observateur, Paris, Jan, 1998



[ii] Steave Coll ‘Anatomy of a Victory: CIA’s Covert Afghan War,’ a article in the Washington Post, on July 19, 1992



[iii] Robert Dreyfuss, Devil’s Game: How the United States Helped Unleash undamentalist Islam, New Work: Metropolitan books, 2005, p.268



[iv] Alfred McCoy, Drug fallout: the CIA’s Forty Year Complicity in the Narcotics Trade. The Progressive; 1 August 1997.



[v] Steave Coll, Ghost War, The Secret History of the CIA, Afghanistan, and bin Laden, from the Soviet Invasion to September 10, 2001, New York: the Penguin Press, 2004. p.119.



[vi] Evan Thomas, ‘The Road to Sept. 11,’ Newsweek, October 1, 2001.



[vii] Steve Coll’s interview at the University of Berkeley (the Conversation with History) on March 15, 2005.



[viii] Michael Powelson, ‘U.S. support for anti-Soviet and anti-Russian guerrilla movements and the undermining of democracy,’ Demokratizatsiya, Spring 2003

[이인엽] (3) 율법의 정신을 대표하는 희년 제도



(3) 율법의 정신을 대표하는 희년 제도


 


     지난번 글에서 설명했듯이, 성경은 ‘혈연’이 아닌 ‘언약의 준수’가 하나님의 백성인지의 여부를 결정했으며, 언약의 땅에서의 생존과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결정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시하신 언약의 내용은 무엇이었고 그분은 이스라엘이 어떠한 사회가 되길 원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율법과 언약을 통해 자신이 원하시는 사회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의 영역 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 공평과 정의와 자비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2:3]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지 말아라.


[예레미야 33:15] 그 때 그 시각이 되면, 한 의로운 가지를 다윗에게서 돋아나게 할 것이니, 그가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모세오경에 나타난 구약의 율법은 제사법, 십일조법 등 종교적인 법 뿐 아니라, 정결법, 도덕법, 희년법 등 삶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은 공평과 정의의 원칙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레위기25:8-10] 안식년을 일곱 번 세어라. 칠 년이 일곱 번이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사십구 년이 끝난다.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니, 너희는 뿔나팔을 크게 불어라. 나팔을 불어, 너희가 사는 온 땅에 울려 퍼지게 하여라. 너희는 오십 년이 시작되는 이 해를 거룩한 해로 정하고,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누릴 해이다. 이 해는 너희가 유산, 곧 분배받은 땅으로 돌아가는 해이며, 저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해이다.  


     칠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에 땅을 쉬게 해야 했고, 칠년이 일곱 번째 돌아오는 해의 다음해인 오십년 째 해가 종이 해방되고 팔려간 땅이 원주인에게 돌아가는 희년입니다. 가나안 입성 시 땅은 지파와 가족 별로 공정히 분배되었는데, 이스라엘은 이방과 달리 땅을 영구히 팔 수 없었고, 팔았더라도 오십년 째 해는 원 주인에게 돌아가야 했습니다. 땅은 인간이 생산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주신 것이며, 그 땅의 분배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요소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희년법은 미국의 경제학자였던 헨리 조지에 의해 토지경제학으로 연구되었는데, 그는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가 발전함에도 빈부격차가 더욱 심화되는 현상과 이 레위기 말씀을 연구하면서, 땅값의 상승이 이자나 임금의 상승보다 언제나 빠르고, 경제발전으로 창출되는 부가 대부분 지주에게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관찰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토지에 대한 세금을 강화함으로서, 과거 레위기에 나타난 희년의 정신을 구현하고, 경제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고 대천덕 신부님이나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등의 활동으로 많이 알려진 바 있는데,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비봉출판사; 대천덕, 대천덕 신부가 말하는 토지와 경제정의, 홍성사; 성경적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www.landliberty.org)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과 언약 속에서, 공평과 정의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엄성과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기 원하셨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산수단, 생존의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했고 그것이 바로 땅이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정치적 자유나 인간의 존엄성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정의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땅을 영구히 잃어버리거나, 땅이 일부 부유층에 독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의 빈부격차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서, 생산수단과 생존의 기반을 영구히 잃어버린 백성의 일부는 경제적, 정치적 노예가 되고, 막대한 부를 소유하게된 소수의 부유층은 다른 인간들을 지배하는 비극적 상황을 방지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이러한 희년의 정신은 신약에 들어와, 흔히 예수님의 취임사로 불리는 누가복음 4:18-19에서 ‘은혜의 해’로 언급되고 있고, 예수님 승천 후 성령의 강림을 통한 자원의 희년을 통해 계승됩니다(이 부분은 다음에 올릴 글들을 통해 더 자세히 다뤄질 예정입니다). 다음의 말씀들은 이러한 희년의 원리가 실천 될 때 나타나는 평화와 축복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상4:24-25]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 이쪽에 있는 모든 지역, 곧 딥사에서부터 가사에 이르기까지,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모든 왕을 다스리며, 주위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솔로몬의 일생 동안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


[미가 4:4]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전도서 9:7-9] 지금은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을 좋게 보아 주시니, 너는 가서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너는 언제나 옷을 깨끗하게 입고,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라. 너의 헛된 모든 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성경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표현 중 하나가 바로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산다라는 표현입니다. 이는 단순히 외적의 침략이 없는 것뿐 아니라, 사회 내에서도 경제적 정의와 공평이 이루어져, 구성원들이 자기의 생산 기반을 가지고 안정적 생활과 만족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희년의 정신이 구현된 사회입니다. 극도의 빈곤을 방지하고, 또한 극도의 탐욕을 방지하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필요가 채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