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 2002 | 삶과 신앙/Joy의 편지
Joy의 편지
어머니를 닮은 딸내미
미국에 살다보니… 한국의 명절이나 공휴일은 잠시 방심하면 지나쳐버리기 십상입니다.
그나마 교회에서 떡이나 맛난 음식들이 풍성하게 등장하면 설인지 추석인지 알 수 있지만 이렇다할 특징이 없는 삼일절이나 식목일과 같은 매우 심심한(?) 공휴일의 경우, 지나갔다는 사실 조차 뒤늦게 아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엔 식목일이 공휴일이었는데 요즘도 그런가요?!?!
믿을 수 없는 제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식목일엔 흐리거나 비가 내리곤 했던 것 같습니다. 나무 잘 자라라고 그런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붙였던 기억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식목일 하면… 저는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봄철이면 어머니는 화원에서 한바탕 봄꽃들을 사다가 베란다 가득 꾸며놓곤 하셨어요. 꽃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고, 죽어가는 식물도 다시 살리는 마애스터 울엄니. ^^ (물론 그 열심이 아버지께로 전염이라도 되었는지 근래에 들어서 아침에 물주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 되었습니다만…)
가까스로 살려놓은 식물을 딸래미에게 맡겨놓고 여행이라도 며칠 다녀오시면 저는 그 잠깐 사이에 그 풀들로 하여금 다시 사경을 헤매게 만들어 놓곤했습니다만… 베란다인지 식물원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화초들을 골고루 채워놓고 자식키우 듯 아니 때로는 자식보다 더 정성껏 키우시는 울엄니를 저는 꽤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거의 화초없이 지낸 적이 없다는 사실.
봄철이면 어김없이 좋아하는 하얀 데이지 한 묶음을 사다가 화병에 꽂아두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고 방학이면 집에 다녀오는 친구들의 온갖 화초를 맡아서 키워주는 이른바 plant sitter가 되었죠. 수퍼마켓에 가도 제일 먼저 눈길을 주는 곳은 구석에 있는 꽃과 화분 코너이고, 특히 야외 꽃시장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제 방엔 대개 꽃이든 풀이든 식물이 하나쯤은 꼭 있곤합니다.
제가 그렇게 나무를 좋아하는지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나무 냄새, 풀 냄새, 꽃 냄새…
오늘도 캠퍼스를 오가며 킁킁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나무를 심지않고 지나쳐 버린 식목일이 어쩐지 자꾸만 마음에 걸리네요.
나도 모르는 사이 울엄니의 화초사랑하는 마음이 전염이라도 된 건지…
사실 어디 이것 뿐이겠어요. 저도 모르게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들, 닮은 것들… 끄적끄적 글쓰기 좋아하는 것, 비평하기 좋아하는 것,
구경하기 좋아하는 것, 음악 좋아하는 것, 커피 좋아하는 것,
처음 만난 사람과도 금새 친해지기, 남의 이야기 들어주기, 속눈썹 짧은 것도 닮고, 눈물 많은 것도 닮고, 웃는 모습도 닮고, 합창을 하면 알토 음을 내는 것도 닮고, 화장 진하게 하는 걸 싫어하는 것도 닮고, 이것저것 죄~ 다 닮고, 닮고, 닮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도 닮은 것들,
나도 모르게 어머니 품 안에서 자라며 저절로 배운 것들이죠.
그래요.
어머니 품안에 있으면 저절로 배울 수 있는 것들, 저절로 따라하게 되는 것들이 있었군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익힌 것들.
음…
문득 하나님의 품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머물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그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의 모습을 어느 새 닮게 된 것 처럼
그 분의 마음을 나도 모르게 닮게 되면 좋겠습니다.
일부러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술술 흘러나가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분의 품안에 거하는 삶으로 인해…
주 안에서 행복~*
sAN frANcIsCO,
Joy~*
Apr 2, 2002 | 삶과 신앙/Joy의 편지
Joy의 편지
Joy, 또 일 저지르다!
제가 부러워하는 두 가지 체질이 있습니다.
하나는 바로 “무대체질”
평소엔 뭐 별 볼일 없는 거 같은데 무대에만 올라가면 갑자기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연주도 잘해서 그야말로 폼나는 체질. 그러나 저는 애석하게도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는 속담에 딱 어울리는 전형적 인물이죠. 이야기도 중얼중얼 거리기는 하는데 여러사람 앞에 나가서 하라면 덜덜 떨고, 대학 때는 성악을 전공 하면서도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영~~ 어색해서 늘 “성악과 반주 전공” 이라고 우기면서 남들 노래할 때 반주하기를 즐겼다면 이해가 되실지…
또 다른 부러움의 대상은 바로 “공부체질”입니다
저는 자칭 “살림체질” 내지는 “백조체질” 이거든요. 정말 살림을 잘할지는 결혼을 해봐야 알게될 일이지만 어쨌거나 공부 보다는 살림이나 엉뚱한 것에 취미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일단 학교 가는 것 보다는 수퍼마켓 가는 걸 좋아하고, 리서치 하는 것 보다는 시장조사 하고 책구경, 음반구경 하기를 좋아하고, 도서관에 앉아있는 것 보다는 부엌에서 뭘 만들어 먹거나, 벤치에 앉아서 먼 산 바라보기를 좋아하죠. 물론 매일 그걸 해야만 하는 입장이 되면 어찌될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이런 저에게 갈등생기는 일이 생겼으니 바로 “유학”
사실 오래 전부터 바라던 일이었지만 이렇게 늦게(?) 기회가 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아들래미가 유치원엘 들어간다는 둥, 어버이 날 카네이숀을 달아주더라는 둥, 알수없는 딴 나라 이야기를 해대는 판국에 저는 다시 학교를 가야 하다니… 사람들의 시선이 등뒤에 꼽혔습니다. “쯧쯧 시집이나 갈 것이지… 이제 유학을 가면 언제 시집을 가누” 그러면 저는 이렇게 얼버무려 넘겼습니다. “공부는 혼자서두 할 수 있지만 결혼은 혼자서 못하니깐, 일단 혼자서 할 수 있는 거 하려구요.” ^^;;
그리고는 결국, 2000년 1월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말았죠.
부모님의 기억에 따르면 저는 5살 때부터 시집가는게 꿈 이었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결국 저를 이 나이에 공부하라고 미국 땅에 떨어뜨려 놓으신 걸 보면 말입니다.
음…저는 압니다.
결혼하면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 하나님 모두 뒤로하고 살림만 하며 “결혼생활”을 신처럼 받들며 살 사람 이라는 걸 말이죠. 하나님도 그 사실을 아셨겠죠. ^^ 그래도 아직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제가 꼼짝 못한다는 것을 아시기에 저를 이곳에 두고 달래는 중이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얼떨결에 시작된 듯한, 그러나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 시작된 Joy의 유학생활. 그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구구절절이 설명드리지 않아도 모두들 미루어 짐작하실 겁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무대체질도 아니고 공부체질도 아닌 제가 졸업을 앞두고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게 되는군요. 미국에 온 이후, 선배, 후배, 친구 등 세계 각 곳에 흩어져 있는 지인들에게 제 소식을 알리고, 유학생활의 기록을 남기자는 차원에서 Joy’s email~*을 보내곤 했는데요. 이제 그 비슷한 것을 오픈된 웹 공간에 실어야 할 운명에 처했지 뭡니까~?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마구 몰려오기도 합니다.
이젠 더 이상 내가 보내고 싶으면 보내고 말고 싶으면 말 수 있는 “내맘대로 식”의 이메일이 아닌 것이죠. 책임을 가지고 써야하는 “일”이 될지도 모르는 것. 때로는 감사보다 불평으로, 때로는 잘한 일 보다는 엎어지고 코깨져서 빨간약 바르고 부끄러워할 순간이 더 많을텐데 그런 걸 천하에 공개를 해야하나…싶은 갈등이 있습니다.
이미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조금은 알고, 다른 사람들 마음이 내 맘 같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어쩌면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도마위의 생선이 될 수도, 그리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을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온갖 위험부담을 안은채 이 일을 결단합니다. 저는 새로운 깨달음을 전할 지혜나 지식도 없고, 매끄러운 글 솜씨도 없고, 남의 인생을 바꿀만한 설득력은 더 더욱 없습니다. 다만 그저 제가 공부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길을 걸으면서, 피아노를 치면서, 음식을 만들면서, 언제 어디서든 늘 기억하며 살려고 애쓰는 그 분, 저와 함께 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성품, 그리고 함께하심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의 약함 속에 드러나게 될 하나님의 강함을 기대합니다. 그 분이 드러나길 기도해 주세요.
주 안에서 행복~*
sAN frANcIsCO,
J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