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상] 영어찬양과 한국어 찬양사이에서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1970년대 당시에 인기 있었던 통기타 그룹은 단연 ‘트윈폴리오’였다. 아직도 이 분들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송창식, 김세환, 그리고 윤형주로 구성되었던 이 팀은 당시에 미국의 인기 있던 팝송들을 번역해 불러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을 불렀었다. 전통 트로트가 아닌 통기타의 선율을 가지고, 더군다나 번역된 곡을 노래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아시겠지만 한국의 찬양은 대 부분 번역 곡이 많다.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부르던 노래를 종합해보면, 거의 70-80퍼센트이상이 번역된 곡들, 특히 미국에서 불려지던 찬양이 한국에 들어와서 번역되어 진 것이 많다. 예수 전도단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하던 1990년도 당시에 호산나 인티그리티 앨범을 한국에서 구한다는 것은 어지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종로2가와 교보문고를 지나, 새 문안교회옆에 있던 ‘카리스’ 라는 크리스천 수입전문 음반판매점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 때 쉽게 구하지 못했던 미국의 앨범들을 그 곳에서 비싼 값을 주면서 흥분해 하던 기억들이 생생하리라 생각된다. 당시 한국의 테잎들이 1500원정도 하던 시절, 카리스에서는 수입 음반이고, 게다가 크롬테잎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4000원씩 주고 그것을 사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 때 나는 하나님에 미쳐 있었고, 예배와 찬양 곡이라면 없는 돈이라도 아낌없이 살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모은 100여 개의 테잎을(복사본을 포함해서) 선교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말씀하셔서 다른 형제에게 줄 때는 마음이 꽤 아팠었다. 하지만 사실 거의 모든 곡들을 외우다시피 해서 내게 테잎을 듣는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다만 외국 곡을 어떻게 번역해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내게는 큰 관심이었다.


결국 훈련을 마치고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예수 전도단에서 찬양인도를 오랫동안 했었던 나에게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생겼다. 92년도 겨울 3개월동안 사무실에서 처 박혀서 ‘예수전도단 송북3집’을 만들었던 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번은 ‘유월절 어린 양의 보혈’을 번역할 때, 한 곡을 번역하기 위해서 한 달여 동안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난 후 결국 송북에 집어넣을 수 있었고, 또 ‘우리 함께 기뻐해’라는 찬양은 악보를 받은 지 10분만에 번역을 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같이 있던 간사들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번역문제로 복잡하던 90년도 중반에 영국의 그레함 켄드릭목사님의 비서와 우연하게 연락이 되어서 몇 곡의 번역을 의뢰 받았었다. 그 때 그레함 켄드릭목사님께서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조건을 팩스로 보내주셨는데. 첫 번째는 번역하는 사람이 번역하는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는 번역하는 사람이 뮤지션인가, 즉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과,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성경을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가 하는 문제였다. 사실 96년도에 ‘You are my all in all’, ‘주 나의 모든 것’도 처음 번역할 때는 약할 때 ‘강함 되시네’ 가 아니라, ‘강함 주시네’라는 표현을 썼는데, 나중에 신학적인 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모든 분들에게 사과하고 ‘강함 되시네’ 로 바꿔야 했다. 한 글자의 표현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게 하느냐가 달라지기 때문에 번역을 잘못했다는 창피함에도 불구하고, 바꿔야 했다. 이 각 각의 기능을 가진 사람이 함께 모여서 번역을 하기를 원하셨다. 사실 그 전까지 번역할 때, 주로 혼자서 성경의 구절을 짜 맞추기 해 왔는데, 팩스를 받고 보니 번역하는 것이 더욱 구체적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기고 나중에 번역할 대는 혼자서 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같이 나누어서 번역을 함께 했다. 결국 처음에 번역했던 것들과 나중에 번역했던 곡들, ‘로마서 16:19’,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를 보면 후에 번역한 것들이 음악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에서 더 깨끗하게 정리됨을 개인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에 오면서 사실 나는 번역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을 떠나면서 다시는 번역을 안 하겠다고 말한 이유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번역이 가지는 한계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요즘 한국에서 번역한 곡들을 보게 되면 많은 오류를 보게 된다. 내가 오류를 안 범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무 많은 오류를 범했기에 더 더욱 번역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꺼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정말, 번역된 한국 찬양은 내 나름대로의 정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번역한 곡들을 보면 표현이나 내용면에서 열심히 하고 수고를 한다는 것은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음반을 내는 제작자들이 먼저 음반을 내려고 빨리 번역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나 역시 번역을 안 하는 상태이기에 그들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번역 곡들 사이에서 정말 중요한 가사의 내용은 사라진 채, 음악적인 완성도를 높이려는 것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단체가 번역한 곡들을 몇 글자만 바꾸어서 새로 곡을 출판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결국 바이링글로 진행되는 코스타에는 특히나, 올해 처음 LA에서 열린 CKOSTA에서는 번역된 곡들보다는 원래 영어 곡들을 많이 부르게 되었다. 물론 깊이 있는 예배로 들어갈 때는 역시 우리 말로 지어진 찬양이 힘이 있고, 또한 우리의 정서에 맞기 때문에, 한국말로 된 찬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어설프게 번역된 영어 찬양을 부를 때는, 이미 원곡을 듣고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부르라고 하기에는 나 역시 적응하기 힘든 것을 인정하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코스타의 모임에서 찬양 안에 기름 부으신 ‘shout to the Lord’, ‘Above all’이라든지, ‘Here I am to worship’의 번역 곡들은 아무래도 회중에게 같이 하자고 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트윈폴리오의 노래들이 히트 된 이후로 가요계에서는 한국인들이 부른 가요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단지 번역 곡만이 아닌, 창조적인 노력으로 말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도 바람이 있다면, 한국인들 스스로 지은 찬양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되도록이면 영어의 원곡들은 억지로 번역하지 말고, 그대로 부르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2001년도 코스타 주제 찬양이었던 박성호 목사님이 지으신 ‘낮아지신 예수’라는 곡을 좋아한다. 가사를 보면, 끊임없는 묵상이 흘러나오고 깊이가 느껴진다. 이러한 곡들이 우리 한국인들 안에서 많이 발견되어지면 좋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