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 2002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2년 10월호
코스타에 대해서는 주위에서 참석해 본 사람들을 통해서 많이 들어보았고 언제가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참가를 결정하려니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먼저는 4박5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내야한다는 것이 내심 부담스러웠고 또 내가 있는 곳에서 맡겨진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멀리서 가서 알지도 못하는 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코스타의 참석이 어려웠던 이유는 결혼한 사람으로서 혼자 가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제 남편은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교포로 한국어가 서툴러서 누군가가 계속 옆에서 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한국어 설교나 강의를 듣지 못하기 때문에 코스타에 참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혼자 수양회에 가면 혹시 사람들이 결혼한 사람이 왜 혼자 왔을까 하고 궁금해하지는 않을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혼자만 은혜받고 함께 나누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타까울 것 같았고 그래서 더욱 혼자 가는 것이 싫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영어권 수양회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바쁜 일정 속에서도 열심히 코스타를 준비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 일에 땀흘리는 것에 대한 기쁨을 알기 때문에, 그분들의 일하는 모습이 부러워 보였습니다. ‘나도 함께 돕고 같이 가면 좋겠다.’ 그러던 중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자매가(그 자매도 결혼한 자매입니다) 남편이 너무 바빠서 혼자 코스타에 참석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결혼한 사람이 혼자 간다는 것이 보기에 좋지 못하다”는 것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코스타의 목적은 내가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고 제자되고 그곳에서 허락되는 사람들을 제자 삼는 것이 목적인데, 그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 하에 또 다른 나의 만족을 채우려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금이라도 기회가 주어지면, 내가 편하고자 하는 쪽으로 이토록 스스로를 잘도 속이면서 합리화하는 것을 보며 내 자신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스스로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했나 봅니다.
한국말 더 많이 배워서 다음에는 꼭 함께 가자는 남편의 약속과 함께 저는 코스타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너무 늦게 결정한 탓에 인터넷 조장훈련을 잘 참가하지 못했고 마음에 준비도 많이 하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받은 조원들의 이름을 두고 기도하는 데도 참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분들이기에 이름조차 잘 외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준비없이 참가한 저에게 조장 수양회때의 말씀과 기도들이 너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섬기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준비가 없었던 저에게 조장 수양회의 말씀은 또 다시 나에게로 포커스되려는 나의 마음과 시선들을 하나님께로, 하나님이 부르신 영혼들에게 돌이켜 주었습니다. 죽어 있던 감각들이 말씀을 통해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조는 세 쌍의 부부가 함께 오고, 나머지 4분은 혼자 오시게 된 분들이었습니다. 한 부부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다른 두 부부들은 아기가 없이 양쪽이 다 공부하는 유학생 부부였습니다. 혼자 오신 분들 중에는 교회 전도사님도 계시고, 박사과정에 계신 분, 일을 하시는 분들 다양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잠시 조구성에 대해서 제안을 한다면, 부부그룹조를 짜실 때는 가급적이면 함께 오는 부부들과 혼자 오신 분들을 따로 묶으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이가 있는 부부들과 없는 부부들을 따로 묶는 것도 공통의 관심사가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습니다. 저희 그룹에서도 아이가 있는 부부들은 다른 조원들과 식사도 함께 하기가 어렵고, 아이가 함께 놀 친구도 없어서 조별 활동에 잘 참여하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저희 조에는 다양한 배경의 분들이 참여하셨습니다. 신앙이 없는 아내에게 신앙을 가질 기회를 주기 위해서 유학을 결심하고 오신 유학생 부부,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하셨시고 봉사도 나름대로 많이 하셨지만, 각자가 선 땅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신는 부부, 풀타임으로 인형을 파시면서 또 파트타임 전도사님으로 교회를 섬기시는 분,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구원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계신 분,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가 결정되지 않아 힘들어 하시는 분. 대부분 교회생활도 오래 하시고 맡겨진 일에 충실하신 분들이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다들 지치고 힘들어 하신 모습이 역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밤에 모여 그날 있었던 느꼈던 점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면서, 한분씩 마음에 담긴 어려움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사역의 어려움, 생활고의 어려움, 신앙의 고민들, 같이 지내는 교회식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없었던 문제들이 많이 있으셨던 것 같았습니다. 그중 한 형제님께서는 구원의 문제에 대하서 갖고 계신 고민을 솔직히 나누어주셨는데, 본인이 다닌던 교회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나눌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날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조원들의 고민하는 얼굴이 떠나지가 않았습니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설명할 능력도 제게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그냥 대답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대답을 해 주실 만한 강사님을 찾아가서, 저의 모임에 한번 오셔서 그리고 조원들이 갖고 계신 고민을 개인적으로 좀 대답을 해 주 실 수 없는 지 부탁드렸을 때,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구 한 걸음에 달려 오신 강사님과 그 강사님과 면담 후에 밝아진 조원님들의 얼굴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희 조에서는 제가 나이가 어린 편에 속했습니다. 혼자오신 분들은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고, 부부 중에 저보다 나이가 어린 분들이 두분 계신 것을 빼곤 조원들이 모두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전체집회 때마다 조원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고 앉으셨는지 한분 한분씩 둘러 보고 있자면, 그분들이 제 눈에는 왜 그렇게 어린 아이들 같아 보이는 건지…. 저도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귀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넷 조장훈련을 통해서 제자의 삶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훈련자료들을 읽으면서 제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실제로 제자가 되고 제자를 삼는 삶을 사는 것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였습니다. 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다른 영혼을 또 제자를 삼아야 한다는 것이 때론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도망가고 싶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코스타에 오기 전에도 그런 유혹이 있었습니다. 코스타 도중에도 그런 유혹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한 사람을 온전히 제자 만드는 것 이외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다른 방법을 주시질 않으신 것을 코스타에서 조장을 섬김을 통해서 다시 한번 기억하게 해주셨습니다.
Oct 1, 2002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2년 10월호
이번 2002년 코스타는 어떻게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치밀하게 계획하시고 인도해주신 은혜의 선물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작은 올 봄부터 시작된 저의 기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제가 섬기고 있는 저희 교회(퍼듀 한인장로교회) 대학부에서 올 봄에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강사로 오신 캐나다 토론토의 안바울 목사님께서는 감사하게도 정말 전심을 다하셔서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늘 남편과 함께 성장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늘 하나님께 ‘남편과 함께 성장하고 남편과 함께 쓰임받는 가정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해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2002년 코스타 중부지역 지도자 모임으로 제 기도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남편과 저는 열심으로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도, 점점 더 많아져가는 교회 일에 조금씩 제어를 걸고 싶어하던 참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중부지역에서 모임을 갖게 되는 이 코스타 모임이 하나님께서 주신 참 감사한 기회라는 걸 알면서도, ‘봄방학까지 교회 일에 이렇게 충성을 바쳐야 하나’라는 인간적인 마음으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어떻게든 안 가보려는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한번 마음먹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핑계들을 모두 무색케 하시며 저희 부부를 ‘어쩔 수 없이’ 참석케 만드셨습니다. 그것도 ‘부부 조장’이라는 거창한 타이틀까지 맡기시면서 말입니다. 그 발뺌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QT를 통해 주신 한 말씀이 그 분의 강하신 뜻을, 그리고 저희들이 그 뜻을 거역할 수 없음을 분명케 하였습니다.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눅 10:2).”
저희 부부는 곧 자신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순종키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은 형용할 수 없는 은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집회들을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타협치 않으며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고, 또 저희 부부로 하여금 하나님께 붙잡히고 싶은 강한 마음을 주셨으며, 그 분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고 싶은 결단을 갖게 하셨습니다. 더욱 더 감사한 것은, 너무나 많은 믿음의 동역자, 그리고 선배들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남편과 함께 결단할 수 있었던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결혼한 저의 존재가 이제는 하나로서의 하나가 아니라 “1+1″로서의 하나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반쪽만으로는 온전한 성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코스터 중부 지역 모임 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저희 부부는 2002년 코스타를 너무나 애타게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려 할수록 사탄의 방해도 심해진다고 하던가요. 2002년 코스타로 가는 길은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그토록 기대에 부풀어 기다리던 코스타였는데, 이상하게도 코스타가 앞으로 다가올수록 제 마음 속에는 계속해서 악한 속삭임과 논쟁이 생겼습니다. 우선, 제일 가까운 남편과의 자잘한 일상들로부터 짜증나기 시작했고 –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은혜의 증거겠죠 – 급기야는 ‘이런 마음으로 무슨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영이 꽉 막혀버렸네.’ 하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갑자기 학교 일로 코스타를 풀타임(full time)으로 참석할 수 없게 되어 혼자 시카고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몇년 동안 기다린 코스타인데, 이런 마음으로 가야하다니… 에라, 모르겠다. 하나님, 저 그냥 갑니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쇼.’ 남편을 집에 남겨 두고 저는 교회의 싱글들과 먼저 시카고의 위튼(Wheaton college)에 도착했습니다.
무슨 얘기부터 해야할까요.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 봐라, 조금 참고 기다려보니 내가 그 때 너에게 왜 그랬는지 보이지 않니?’ 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나님께서는 그 일주일 동안 너무나 많은 걸 깨닫게 하셨고 보여 주셨습니다. 정결치 못한 제 마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갔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런 저를 씻어주셨고 또 그분의 품에 감싸주셨습니다. 너무나 소중했던, 그리고 저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던 저희 조원들과의 만남, 그리고 세미나와 집회를 통해 ‘가려운 곳을 긁어주신’ 말씀들, 무엇보다 2000여명의 믿음의 동역자들이 하나님께 뜨겁게 갈구하고 부르짖는 모습이 너무나 큰 감동이었고 또한 도전이었습니다.
이 많은 모습 중에 저는 오늘 저에게 정말 특별한 감동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저의 신앙 배경이 우선되어져야겠군요. 저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태어나 기억이 나는 한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놀이터 삼아 자라난 ‘자동(automatic) 신자’였습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일요일이면 당연히 교회에 갔고, 주일학교 시절부터 성가대며 찬양팀 등 무언가를 해오던 터라, 저에게 하나님은 자연스러운 존재였고, 또 의심없이 – 의심하면 큰일난다고 생각하면서 – 순종적으로 믿음 생활을 해왔습니다. 저는 늘 ‘선택받은’ 백성이었고, 가끔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는 삶을 살아갈 때에도 곧 회개하고 돌아가면 언제나 받아들여진다고 믿는 편리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신앙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아마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미국에 와서가 아닐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나와 ‘교통’하며 교재할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흥분되었고 또 감사했습니다. 신앙이 자라면서 교회에서 점점 섬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가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당연히 제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맡은 일이 많아지면서, 또 기도가 늘어나면서 언제부터인가 저에게는 제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던,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생겼습니다. 바로 제 기도 안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 저에게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당연한 이름이었고, 그 존재에 대해 의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게 그로부터 천년도 더 뒤에 태어난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이성적으로 의심이 들 때에도, ‘아냐, 이런 마음은 사악한거야. 몇년 동안 믿음인데, 흔들리면 안돼.’ 하며 무시해버렸습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 주님….’ 하고 외칠 때는 성령의 감동이, 또 그분과의 교통하심이 느껴지면서도, ‘예수님….’ 하고 기도할 때는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꼭, 입양된 아이가 양부모에게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런 어색한, 억지의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이번 코스타에 남몰래 가지고 간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에게 예수님의 보혈을 느끼게 해주십시오. 머리로, 이성으로 억지로 받아들인 보혈이 아니라, 제 심령으로 모두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설상 가상으로, 코스타를 시작할 때 저의 영성이 거의 제로(zero) 상태에 있었기에 기도의 응답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답답하니까 하나님께 하소연해 보는게 전부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간증집을 보면, 하나님을만나고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말로써는 형용할 수 없고, 이성으로써는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응답의 순간을 독자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그 말로써는 형용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느껴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저에게도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펑’ 꿈에 나타나셔서 뭔가 보여주신 것도 아니고, 어떤 분을 보내셔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을 해주시지도 않았습니다.
둘째날 저녁, 남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저 혼자 저녁 집회에 참석해 찬송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느끼고 싶습니다. 그 분의 보혈을 믿고 싶습니다.’ 라고 기도하며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찬양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제 온 몸에 예수님의 보혈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느낌을 이후에 제 친구에게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너 예수님의 보혈에 샤워해본 적 있니?” 그건 바로 샤워였습니다. 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그리고 저의 온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을 씻어내리는 거룩한 샤워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찬양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냥 눈물이 났습니다. 저의 자각하지 못했던 죄성들과 그리고 인정하지 않았던 많은 죄들이 떠올랐고, 아직도 회개하지 않는 저의 죄 때문에 피흘리시며 아파하시는 예수님의 심장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바로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샤워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육신의 그 어떤 쾌락과 즐거움도 줄 수 없는 짜릿함입니다. 몇년 동안 막혀 있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하수구가 하루 아침에 뚫려 생명수의 ‘콸콸한’ 운동이 느껴지는 상쾌함입니다. 전병욱 목사님의 ‘히스기야의 기도’라는 책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로 구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역사하신다구요. 저는 하나님이 정말 좋습니다. 저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제가 구하는 순간 늘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니까요. 2002년 코스타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 속의 ‘예수’라는 이름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특별한, 그리고 값진 선물입니다. 저는 요즘 참 좋은 친구를 두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 저는 조용히 묻습니다.
“예수님, 지금 저와 함께 걷고 계시죠?”
Oct 1, 2002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2년 10월호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장 15-17절)
먼저 주의 제자들을 불러 예비하신 2002년 코스타에서 구원과 치유, 그리고 회복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 안에서 예수의 제자 되기를 더욱 바라던 코스탄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주시고 주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서로 나누며 격려하도록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찬양한다.
조별모임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이와 같은 사랑의 교제의 구체적인 실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조의 형제 자매님들과의 즐거운 만남과 교제는 새로운 기쁨을 제공해 주었다. 조라는 아름다운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만나게 된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은 영적인 가정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로의 대화 속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신앙적 고백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축복과 평강으로 채워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2002년 코스타 기간동안 결혼하신 부부들의 조에서 조장으로 섬길 수 있도록 부르셨다. 가정의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시는 분들이었기에 영적인 가정의 소중함을 이미 알고 계셨다.
첫 만남 인사와 소개 속에서, 그리고 기도제목의 나눔에서 아픔과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고 서로의 비전과 계획을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서로의 모습을 통해 연약한 것들을 격려하시고 비전을 회복해 주시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조원들의 각자의 기도제목을 기도목록에 작성하여 서로를 위해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며 모임 때마다 기도했다. 또한 코스타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함께 하신 일에 대한 간증도 모임 때마다 나누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코스타 기간동안에 조원 개개인이 자신의 기도제목들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기도들에 친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어떻게 계속해서 역사 하실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영적 동행을 확신할 수 있었다.
조별모임을 통해 주신 기쁨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조원 중에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을 바라시는 분도 계셨고,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능력의 소멸됨을 안타까워하시며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바라시는 분들도 계셨다. 특별히 이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길 소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을 위해 준비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그들에게 영적인 교제자로 만나주셨고 그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더하시고 성령의 충만도 선물로 주셨다. 감동의 연속이었다. 이분들이 이동원 목사님의 인도를 통한 예수님을 영접하는 시간에 용기 있게 일어나셔서 응답하시고 헌신을 다짐하는 기도를 받으실 때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인간에게 있지 아니함을 보여주시기 위해 때때로 별로 유명하지 못한 그리고 보다 낮은 은사를 받은 자들도 기꺼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해 주심을 개인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조에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신 두 분의 전도사님이 계셔서 많은 진리의 말씀과 체험의 신앙을 나누어 주셔서 조별모임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흘렀다. 주님을 인정하고 서로에게 자신들을 낮추시는 겸손의 모습들을 통해 조원들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심과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조원들 중에 바로 예수의 제자로서 살기를 소망하시며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선교사로서 헌신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특별히 그분들은 하나님의 그에게 향하신 비전을 확실히 보기를 소망하며, 또한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던 분들이셨다. 조원들의 헌신함을 보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을 통하여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에 이르게 될 때 바로 그곳에 예수님의 제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
코스타동안에 조원들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졌고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 안에서 친밀하여 졌다. 아쉽게도 우리의 이별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계획되어져 있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격려하였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다시 만날 그 때 까지 각자의 길에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열심히 살아갑시다. 세상과 사람은 모두 변해도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며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 곧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세요.”
2002년 코스타 감동의 시간이 벌써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그 감동과 많은 은혜는 지금도 마음과 기억에 항상 남아있다. 주변의 이웃들과 형제자매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살아가면서 기뻐하고 힘을 내는 것은 주변 상황이 좋다거나 순탄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정리하면서 무엇을 바라고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만 바라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삶 속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예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쓰임을 받는 질그릇이 되리라 믿는다. 지금 특별히 조별모임을 통해 만난 사랑하는 형제자매들과 코스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소망하는 것은 그분들이 하나님의 디아스포라 교회로 믿고 그들 자신을 교회로 세우며 어디에 계시든지 그곳이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소명하며 사랑과 격려의 신앙을 잊지 않고 주변의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무엇을 하시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시길 바란다.
Sep 1, 2002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2년 9월호
eKOSTA 안녕하세요, 이렇게 eKOSTA가 주관하는 eKOSTA 좌담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좌담회는 코스타의 주제에 대한 토의인데요,또한 코스타의 주제가 학생들의 필요(need)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 패널리스트들의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일형 저는 지금 직장인으로 코스타에 참여한 지는 3년이 되었습니다.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캠퍼스 사역(campus ministry)을 하고 있습니다.
박종승 예, 저는 아리조나에서 공부하는 학생이고요 코스타에 3 번 참여했습니다. 지금 현재 학교에서 캠퍼스 성경공부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성욱 예, 저는 미시간에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을 공부하고 있고요, 코스타는 2001년과 2002년, 두 번 참석했습니다. 연합감리교회에서 평신도로 섬기고 있습니다.
김정숙 저는 지금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직장인으로 일하고 있고요, 코스타는 학생 때 처음 참석 했습니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는 간사로 섬기고 있고, 지역 교회에서는 청년부를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네, 모두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2002년 코스타를 되돌아 보면서 코스타 주제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얼마나 반영이 되었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했는지 경험하신 내용들을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어느 분이 먼저 해주시겠습니까?
이성욱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코스타 홈페이지 보드에 이미 올린 바가 있습니다만, 주제에 관한 것은 (지난8월호 eKOSTA에 실렸던) 한명선 형제님의 견해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eKOSTA 다르게 생각하신다면, 어떤 면에서인가요?
이성욱 주제가 필요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일단은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금년 코스타의 경우에는 오전 성경강해에는 주제에 많이 근거해서 말씀을 하신 것지만, 다른 나머지 강사분들의 말씀 대부분은 치유되는 자아와는 별로 관계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것들은 준비하는 간사님들과 강사님들 간의 교류가 사전에 미흡했던 때문은 아닐까 싶고요,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만족했습니다.
eKOSTA 또 다른 분들은 어떠셨습니까? 참석하시면서 코스타 주제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나요?
박종승 저는 주제 자체에 대해 특별히 안좋았다는 생각은 없고요. 코스타의 주제에 대해서는 주제 자체가 참가자들에게 기대감을 준다고 봅니다. 또 이것이 주제가 필요한 이유중에 하나이구요. 올해는 이성욱형제님의 말씀처럼 부족한 부분이 조금 있었긴 있었지만 주제 전달이나 치유와 회복에 대한 참석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올해의 주제는 우리 개개인들에게 중요했던 것들이고 그리고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 것들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eKOSTA 그럼 주제가 어떻게 연결이 되었고 반영이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박종승 코스타를 마치고 다시 자기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코스타에 참가하는 코스탄들이 많은데요. 많은 분들은 코스타를 통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다시 가까워지고 자신의 회복과 재충전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코스타의 주제는 이런 부분을 채우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거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특히 작년과 재작년에 그런 갈급함이 매우 컸던 것 같은데요. 재작년에는 “새 천년을 여는 믿음의 개척자들” 이었고 작년에는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 이였는데, 올해 주제는 개인적인 부분으로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았습니다.
eKOSTA 강사로 참석하신 이일형 권사님은 어떠셨나요?
이일형 네, 저도 역시 3년 동안 참석하면서 올해 집회가 특히 주제에 더 많이 초점(focus)을 맞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전체모임에서 가능한 것 같고 세미나는 전체적인 주제에 맞추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면에 맞추어 볼 때는 괜찮았고…, 혹 제가 우려했던 것은 복음적인 내용보다는 심리학적인 면을 강조하시는 목사님들이 많이 계실 것 같았는데 다행히 그런 접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스타에 있어서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세미나에서는 일반적인 것으로 진행하되 전체 말씀들은 주제에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집회 때는 주제면을 많이 반영하고 세미나는 일반적인 것으로 갔으면 하는 말씀이시지요?
이일형 저희가 다루는 의견들을 계속적으로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세미나 강사분들에게 일부러 주제에 맞추어서 말씀을 부탁한다면 이성욱 형제님의 말씀처럼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치유되는 자아,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이 주제가 매우 광범위한 주제인데 -코스타의 주제가 매우 광범위합니다 – 코스타 세미나 강사님들께 주제만 먼저 말씀드리는 것이 미리 사전에 어떤 의제(agenda)를 드리는 것 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강사님들께 전체적인 주제의 의미, 즉 왜 그 주제가 나왔는지 그 배경을 설명드린 다음에 나머지 부분은 강사님들로 하여금 알아서 정하시게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강사님들께 어떤 유연성(flexibility)를 드릴 때 전체적인 밑그림(outline)에 대한 처리도 어느 정도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작년보다 올해 집회가 더 주제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작년같은 경우에 저는 상당히 혼동이 되었었거든요 – 오히려 주제와는 반대되는 말씀들이 나왔다는 말씀들이 나왔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 올해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네요.
eKOSTA 그럼 이번에는 김정숙 간사님께서 말씀해주실까요?
김정숙 네, 의견을 나누기 전에 저는 이자리에서 코스타의 공식적인 입장보다는 제 개인의 입장을 말씀드리는 것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주제와 관련해서 집회를 준비하는 입장이나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는 정해진 주제를 적절히 표현하고 포커스을 잃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 주제가 다루어졌는지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주제가 얼마나 유학생들의 놓여있는 상황과 필요를 반영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참석하는 유학생들에게 기대감을 줄 수 있는 주제라면 더욱 좋을 것 같구요.
그런면에서 저는 올해 주제에 학생들의 상황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코스타에 참석하신 분들과 혹은 지역교회에서 유학생들이 겪고 있는 개인적인 어려움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들을 비롯해서 – 새벽에 코스타 사무실로 부부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전화하는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 진로와 관련된 자아상의 문제등 다양한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2002년 코스타의 주제로 회복과 치유가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되었고 준비위원들도 주제를 통해서 많은 유학생들이 회복되고 치유를 받게 되기를 기도하면서 올해 집회가 준비되었던 것 같아요.
eKOSTA 다른 분들을 위해서 주제의 선택이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김정숙 몇 년 전하고는 최근에 그 과정이 달라졌는데요, 3년전 “새 천년의 믿음의 개척자들”때까지만 해도 이사회에서 결정이 되었었어요. 물론 그 이사회에 참석하신 간사님들도 있었지만, 이사님들이신 목사님들이 인도하시면서 기도하시면서 주제를 주시면 거기에 맞는 부제들은 간사들이 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작년하고 올해는 간사들이 주가 되어서 주제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주제가 정해질 때도 간사들끼리 5월 정도에 모여서 유학생들의 필요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해진 것이거든요….
eKOSTA 네, 그렇군요.
박종승 주제 정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한가지 해도 되겠습니까?
eKOSTA 네.
박종승 김정숙 간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주제를 해마다 이렇게 얼마 전부터 정하셨던 이야기 같은데요 코스타가 이제 15년 이상 정도 되지 않았습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코스타의 완성도나 평가 도는 비슷한데요, 주제에 대해서는 코스타가 앞으로 더 큰 그림(big picture)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코스타 주제에 대한 큰 그림이 제게는 보이지 않던데요.
김정숙 그러니까 어떤 5년 이상의 주제를 갖고….
박종승 네, 그러니까 장기적인(long-term) 주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김정숙 네, 아까 제가 말씀드린대로, 간사들이 모여서 다루어졌으면 하는 주제들을 여러가지 내어 놓게 되는데 그 내용들을 보면 한 해에 다룰 수 있는 분량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몇년의 주제들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큰 그림을 보려고 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요, 아직 그 부분에서는 미흡한 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eKOSTA 네, 좋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지난 eKOSTA에 실린 “주제가 필요없지 않을까”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성욱 주제가 필요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주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라면 동의합니다. 코스타의 전제는 방금 박종승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텐트메이커(tent-maker)이거든요. 장기적이라면 상당히 장기적인데 그쪽에 우리는 맞추어져 있으니까 1년간의 계획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한형제님께서) 이야기하신 것 같은데요, 원칙적으로는 크게 보면 맞는 말씀이지요.
코스타에 대해서 저도 참석한지 2년 밖에 안 되었지만 저희 모임에 가보았더니 저희 조안에 3년, 4년도 계시더군요. 계속 참석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지만 한 번 참석하시고 마는 분들이 실제로 더 많거든요, 그 이유는 많은 분들에게 코스타는 유학생들의 영적 강건의 수련회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미국서 공부한 많은 유학생들이 그런 것을 소망하는 마음들이 많이 있거든요 이전에 수련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수련회에 주제가 없으면 각자 혼자서 기도하러 온 것이지 많은 사람들을 공통 분모로 엮어서 어떤 말씀을 전달하고 어떤 생산적인 결과를 이끌어지지가 않잖아요. 저는 코스타를 수련회로 인식하여 준비한다면 그해 주제에 맞춰서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난호 eKOSTA에서 한명선 형제님께서 주신 지적은, tmKOSTA 같은 것이 있는 만큼 수련회 때문에 얻는 것을 tmKOSTA에 와서 이룰 수 있게 하고, 코스타에서 얻는 기본은 평상시처럼 미국 지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위한 영적인 수양회로서의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구요.
eKOSTA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이일형권사님?
이일형 조금 전에 말씀해 주신 이형제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박종승 형제님 말씀하신 것과도 조금 연관이 되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코스타의 목표나 방향성에 따라서 매년 주제를 선정해 나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것에 동의합니다. 코스타의 방향성이 설정된 다음에 그 목표에 따라서 학생들의 상황에 따른 필요(selective need)에 따라 그 주제를, 그러니까 부제(Sub-theme)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것들을 하나 하나씩 다루는 것이 올바른 접근(approach)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KOSTA 지금까지 코스타가 다루어야 하는 목표(goal), 비전이라 할까요, 이런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런 의미에서 지난호의 한명선 형제님의 글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코스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주제로부터 출발한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코스타가 다루어야 하는 주제(theme)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일형 코스타 홈페이지에 보면, 코스타는 텐트메이커를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라고 이해를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 텐트메이커의 정의를 제대로 내릴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제가 그 정의를 정립하겠다는 것은 아니구요, 일단 텐트메이커의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고 난 다음에 이에 대해서 서로 갈급해 하는 필요 중에서 공통된 것을 찾아내서 주제들을 선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처음 3년 전에 참석했을 때와 지금하고 비교해 보면 지금은 텐트메이커라는 개념(concept)이 많이 형성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어느 한해에 마음먹고 한자리에 앉아서 짜맞출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계속 진화해가는(evolve) 개념인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한번 정의해보라고 하면 나름대로 할 수는 있겠지요. 그 근본정신이 본질적으로는 바뀌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개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 지에 대한 생각은 바뀌기 때문에 텐트메이커의 근본적인 현 삶의 위치에서 제자의 삶을 사는 그런 사람들 위치에서 그 개념을 바라보는 과정의 일부를 코스타의 부제가 담당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제를 정한 다음, 그것을 가지고 현재 학생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기도하는 가운데 인도하심을 받은 다음에 그 주제를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eKOSTA 네, 그럼 코스타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에 대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종승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코스타 참석하는 목표도 그런데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이 각자 자기 삶의 터전에서, 자신의 분명한 비전을 갖게 해 주는 것이 코스타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앞에서 얘기한 텐트메이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봅니다.
eKOSTA 김정숙간사님, 텐트메이커에 대해서 한 말씀해 주신다면?
김정숙 코스타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대상이 대학원생들에게 맞추어져 왔는데요, 코스타에 오시는 분들이 신학교로 진학을 해서 전임 사역자가 되는 분보다는 전문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하는 마음들을 가지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중요한 이슈는 본인의 일(혹은 학문)과 신앙,복음을 전하거나 신앙 공동체에서의 섬김등이 어떤 관계가 있으며 그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고민했던 부분이 그런 부분이고 어느 정도는 해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일형권사님 말씀처럼 코스타의 주제는 그때 그때 바뀌게 되겠지만 근본적인 주제는 평신도들 (텥트메이커) 의 삶과 신앙의 연계를 다루는 그런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KOSTA 그렇다면 과연 텐트메이커의 올바른 정의는 무엇일까요?
이일형 텐트메이커의 정의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텐트메이커란 ‘복음을 위해서 직업을 갖는 사람’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목사도 텐트메이커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목사도 목회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텐트메이커라는 것이 무엇이냐하면 목회를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그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하면서 그의 핵심적인 힘을 바로 제자를 삼는 일을 하는데서부터 얻게 되고, 그 다음에 실질적인 삶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떤 기본권(fundamental right), 예를 들어 밥을 먹을 수 있는 권한,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부분이 바로 이 점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면 그런 몇가지 요소(elements)들이 보여지거든요. 저는 그런 요소들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텐트메이커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eKOSTA 네, 지금 이일형 권사님께서는 텐트메이커를 그렇게 정의 하셨는데 또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이성욱 네,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기본적인 생각들을 모아서 정의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굳이 정의를 내려 본다면 텐트메이킹(tent-making)이라는 용어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2년 동안 코스타를 참석하고 또 저에게 코스타를 권했던 선배 참석자들이나 코스타를 기대하는 많은 분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하는 이 전공으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지금의 삶과 의미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 너무 고민을 하는 것보다는 ‘나는 지금 이런 직업을 갖고 있는데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거에요. 이미 방향이 정해진 삶 속에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이 대학원생인 것과는 관계없이 20대 후반 30대초반의 젊은 영혼으로서 갈등하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저는 코스타가 타겟으로 하는 대상이 한정되었기 때문에 그 특정대상에 대한 주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박종승 형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장기적인 주제는 텐트메이킹이다’라고 혹은 ‘선교사이다’라고 – 선교사가 반드시 전업으로 나가는 분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 동의는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코스타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그 음성을 귀기울여 찾고 그렇게 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서적, 영적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 표현이 이상하지만 – 어떤 분들한테는 그해의 주제가 “낮아지자! ”라거나 혹은 “영적 치유” 이거나 간에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 분들은 코스타에 와서 목사님의 말씀이나 듣고 고민들이나 나누고 또 “아! 나와 똑 같은 사람들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도 있구나” 하고 말씀을 받고 말씀을 사모하고 오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코스타는 미국 땅에 유학생이 없어지기까지 계속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기본적인 생각에 동의를 한다면, 다시 말해서 미국에 있는 젊은 영혼들의 휴식과 공급 그리고 그들이 온전하게 사는 것을 돕는다는 것이 코스타의 목적이라고 동의를 한다면, 코스타의 큰 주제를 텐트메이커로 구체화시키는 것은 한 방향으로 이룰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에 있어서는 거기에 얽매여서 주제가 실행되고 적용되었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번의 주제를 놓고 말한 다면 몇분들은 어떤 부분들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성욱 형제님의 말씀에 의하면 어차피 매년 유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영적인 휴식과 공급이라는 것인데요.
이성욱 예, 저는 그렇습니다. 코스타는 지금까지 방향성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했을지도 모르는데 실제로 기본적인 주제로는 코스타가 15-16년 동안 잘 유지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유학생들의 영적인 휴식과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거든요…. 그런 것에 동의 한다면 지금까지 코스타는 잘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만.
이일형 저도 이성욱 형제님과 동의하는데요, 역시 표현에 있어서 정리를 하자면 전체적인 주제(main theme)가 있고 이 주제가 정해지는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 다루시고자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유학생들의 영적 정서적 휴식과 공급에 대한 필요(need)가 매년 주제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우리 코스타의 주인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약간 조심할 필요는 있는 것 같네요. 주제를 선정한다 하더라도 주제 말씀을 강사님들에게 부탁할 때 왜 이런 주제를 선정했는지 확실하게 말씀을 드린다면 준비하시는데 영향을 받으시거든요, 그런데 성령께서 그런 지휘권을 갖고 움직이시는 것을 원하시는 것 같네요. 어떤 주제를 정해야 할 지 매년 고민하면서 기도하고 묵상하는 몇사람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정숙 실제로 준비를 하면서 그런 고민들이 계속 있어왔었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주제가 실질적으로 짧은 코스타 집회기간 동안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과 주제가 자체가 가지는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좀 다른 이슈인 것 같고요. 이일형권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님의 여러사람들의 고민을 통한 역사가 있는 것 같아요. 참석하는 분들이 주제를 통한 기대감을 가지고 오셨을때 수양회 기간 동안에 실제로 그와 관련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터치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이라면, 주제가 표현되는 것을 말씀의 선포에만 제한을 두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eKOSTA 이일형 권사님 말씀처럼 성령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이끌어 가신다면 집회에서 선포된 말씀에 제한될 필요없이도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이군요.
이일형 간사님께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내년 주제가 결정이 되었나요?
김정숙 네,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이일형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좋은 주제인 것 같은데요.
eKOSTA 어떤 주제들이 다루어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나, 여러 각 지역에서 모인 간사들이 간사모임을 통해 기도를 하면서 주제를 정하게 되는데요, 다른 곳에서 유학생들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말씀해 주세요. 주제는 이미 정해 졌지만 앞으로 어떤 주제들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들…. 코스타 주제를 잠깐 살펴 보면 86년에 “우리가 어디로” 87 년에 누가 이 때를 위하“, “조국에서 땅끝까지(88)”, “어떻게 살 것인가(89)”, “이 시대를 새롭게(90)”, “치우침 없는 걸음으로(91)”, “2000년대를 향하여(92)”,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93)”, “복음과 민족(94)”, “새 시대를 향한 리더쉽(95)”, “부흥의 불길을 온 땅 위에(96)”, “거룩과 능력(97)”, “예수, 신세대의 참 소망(98)”,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99)”, 그리고 “새 천년을 여는 믿음의 개척자들(2000)”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2001)” 그리고 금년(2002년)에는 다들 아시는 대로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 였지요.
박종승 글쎄요, 지난 코스타의 주제들을 들어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대학에서 1,2학년때 공통과목을 듣다가 3,4학년때 자기 전공을 따라 전공과목을 듣는 것과 비슷한거 같습니다. 물론 지금 코스타에서도 오전과 저녁집회가 모두가 참석하는 공통과목이라면 오후 세미나는 자기 목적에 따라 듣는 전공과목이구요. 지난 코스타의 주제들도 전체를 위한 공통주제에서 개개인을 위한 세부적인 주제들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이성욱 세부적인 것도 있고 주어지는 주제가 모두 좋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개의치 않고요. 조금 전 말씀해주신 지금까지의 주제를 들어 보니까 할 것은 다 하셨군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앞으로 이 미국 땅에서의 삶에 맞는 주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누구에게 예수님 믿는다고 말을 못할 때가 대부분이거든요. 한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바로 서야 하는데, 예를 들면 제가 있는 이 지역은 유학생과 교민사회가 공존하는 장소이거든요. 그런데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영적으로 깨지기가 쉽잖아요, 그런 깨진 영혼이 다시 일어서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주제들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eKOSTA 다른 분들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이일형 예 저도 이성욱 형제님과 많이 동의합니다. 특히 제가 코스타를 몇년 동안 지켜볼 때 주제들은 그 시대에 필요했었던 것 같고요, 코스타의 제반사역들인 tmKOSTA, gpKOSTA ,eKOSTA 같은 것들이 이성욱 형제님이 요청하신 것들과 비슷한 사역들인 것 같고요. 한가지,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 있다고 보는데 지금까지는 세상적인 목표를 세워 놓고 기독교적인 면에서 바라보았는데 이제부터는 자신이 진정한 기독교인라면 세상적으로 어떻게 표현이 되어야 하는가로 그 지향하는 방향(direction)이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박종승 이일형권사님 말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 그런 것들을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보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말씀들을 했는데 이것을 조금 다르게 이야기 한다면 “우리가 어떤 판단의 기준으로 살아가는가?”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분명하게 서 있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주변에 소위 신실한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냥 따라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부적절한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판단 기준이나 어떤 표준(criterion)이 분명하게 서 있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이런 것들이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제시해 주는 주제들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숙 저 개인적으로 세상 속에서 사는 저의 모습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나 직장생활 자체로 평가해보면 한마디로 두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공동체안에 있을 때의 판단의 기준과 세상에 있을 때의 판단의 기준이 다른거죠.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일 때가 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에서도 적용해야 할 법이 최상위법인 하나님의 법인데 그 법은 따로 내려 놓고 세상에서 정해 놓은 법대로 살고 있을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내년의 주제인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어쩌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듭니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이미 정해진 내년 코스타의 주제와 앞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지요.
이일형 내년에 강의를 하실 강사분들에게 주제를 알려주실 때, 주제가 그렇게 정해진 배경(background)에 대해서 설명을 해 드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의 경우에는 주제가 많이 다루어 진 것 같지만, 제가 간사들하고 이야기했던 문제들과는 안 맞았었는데 어디서 그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어요. 주제를 제대로 정의해 주시고 왜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 배경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
이성욱 간사님들이 주제를 정하시고 그 주제가 강사님들에게 전달 되어서 한사람 한사람 유학생들에게 말씀이 다가갈 때 그 어떤 목표도 중요하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귀히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면 저는 작년 김동호 목사님의 주제설교가 사실은 “낮아지신 예수” 라기보다는 “고지를 점령하라” 쪽을 강조하신 것 같거든요. 흔히 유학생하면 학위를 받을 사람들, 앞으로 좋은 직장을 가질 분들 뭐 이런 쪽에 많이 중점을 두는데, 사실은 한 개인이 미국이란 곳에 와서 나라가 바뀌고 말이 바뀌었을 뿐이지 겪어야하는 어려움이나 갈등은 동일하거든요. 그런 현실을 간과한다면 직장을 잡기 위해서 또 다른 학위를 받아야하는 현실의 유학생들의 입장하고는 동떨어지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깊이 공인하시고 형상을 아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막연하게 “유학생” 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특히 20년 전의 유학생들이나 학위 취득자들의 현실과는 달리 보시고,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을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정숙 저도 코스타 사역을 가까이서 지켜 보면서 그런 필요들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코스타 사역이 유학생들을 어떤 목표를 향해 drive하는 사역이 아니라 한 영혼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형제님 말씀처럼 유학생이라고 해서 예전처럼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고 직장을 얻는 일이나 현장에서의 삶이 예전보다도 더 힘들어지고 있는 상황을 잘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코스타 집회가 규모가 적지 않기 때문에 한 영혼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쉽지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기는 간사나 강사님들께서 한 영혼을 섬기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어요.
eKOSTA 지금 이렇게 나온 이야기들을 시간 관계상 정리를 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정리의 말씀을 해주신다면요?
이일형 다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코스타를 통해 일하시는 것이 너무 확실히 증거가 잡히니까 좀 두렵고, 계속적으로 참여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한 것처럼 계속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접근을 했으면 좋겠어요.
eKOSTA 예,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밤늦게까지 좌담회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ug 2, 2002 | 이달의 초점
이달의
초점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eKOSTA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독자와 함께 하게 될 eKOSTA 좌담회, 오늘 그 처음 시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KOSTA 좌담회에서는 2002년 미주 코스타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면서, 받으셨던 은혜들을 나누고,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특별히 오늘 좌담회에서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일년을 살아가게 될 우리
코스탄들의 각 지역에서의 역할과 비전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코스타 이후 연중 지속되는 코스타로서의 postKOSTA 사역의
비전과 그 방향성에도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물론 postKOSTA 사역의 각 지역사회 및 지역교회와의 동역에 대한
논의도 빠져서는 안되겠지요.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되, 코스타에서 하셨던 역할 혹은 코스타와의 인연과 함께 짧게 말씀해 주세요.
차문희
저는 조지아주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고 Family Service를 공부하고 있는 차문희입니다. 이번에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저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짧은 시간에 섬기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라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최재범
저는 최재범입니다. 컬럼비아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이번에 미주지역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더군다나 기혼조의 조장이라 싱글일 때와는 기분이 다르더라구요. 작년에 뉴욕/뉴저지 지역의 gpKOSTA에 참석을 하면서 코스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김정숙
저는 현재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살고 있고요, 코스타는 93년 미시간에서 대학원재학 중 처음 참석하였고, 96년부터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맡았던일은 코스타 수양회 시작 전에는 오퍼레이션 부문에서 준비과정을 섬겼구요, 기간 중에는 프로그램
진행을 도왔습니다.
김경수
저는 1993년부터 코스타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고, 지금은 비영리단체경영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는 조장 멘토로서
작년에 이어 2년째 조장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예, 다들 반갑습니다. 이번 2002년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은혜들과 코스타 이후 변화된 부분이 있었다면, 짧게 각각
한, 두가지씩만 나눠 주시죠.
최재범
전 제가 속한 공동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었던것들로부터 회복될 수 있었던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구요. 조모임을 통해서 우리
세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나 가정 그리고 학교나 회사에서…. 예전과는 달리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지요.
차문희
미국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언어와, 다른 문화적인 차이등을 비롯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미국에서
친구의 전도를 통해 만났는데요, 그다지 믿음이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 제일 은혜받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갖게된 것입니다. 신앙과 학문적인 비전 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과 기도로
치유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평보다는 하나님 측면에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 자신의 치유없이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김경수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 코스타에 참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로, 코스타에 참여하면서, 가족관계의 변화와 가족들 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신앙이 말씀 안에서 견고해져가고 있다는 것이고, 저 자신도 말씀과
가족공동체를 이끌어갈 힘과 지도력을 코스타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숙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저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던것이 가장 감사할 부분입니다. 아침 강해
설교에서 다루었던비전에 관련된 메시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저의 삶을 통해서 손수 이루어가시는 비전을 다시 한번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예, 다들 굉장히 많은 은혜들을 받으셨군요. 그럼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코스타의 주제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였는데 코스타 전체 진행을 놓고 볼 때 주제의 충실도는 어떻다고 개인적으로 느끼셨나요? (편집자
주 : 올해 KOSTA의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과 KOSTA 집회에 있어 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재평가는 eKOSTA 9월호의
좌담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차문희
세미나의 대부분과 새벽기도, 성경강해, 저녁설교와 일터의 현장의 메시지가 코스타 주제와 많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유학생들의 삶에 많이 중점을 두고 있어서 제 자신의 삶에 많이 비추어 보았습니다.
김경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주제에 충실했다고 보여집니다.
최재범
전 수련회기간 동안에 새벽예배가 가장 일관되게 주제를 맞추어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KOSTA
저희가 관심있는 부분은. 두가지 주제를 조금 나누어서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치유되는 자아를 구분한다면 (물론 궁극적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두 부분 다 충실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치유되는 자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어졌나요?
김경수
다분히 개인적인 치유 쪽에 더 치우쳤다고 봅니다.
차문희
예 그렇습니다.
최재범
제 생각도 개인적인 회복에 많이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전체적인 메시지의 비중을 따지자면 하나님나라의 회복보다는 개인의 치유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지문에
명시된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회복이 바로 “나”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나라/공동체의
회복은 코스타 후의 개인의 삶을 통해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코스타 이후에 개인의 삶에 실현시킬 수 있을 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군요.
이에 대한 의견들을 좀 주시죠. 이제는 딱딱한 질문과 대화체에서 벗어나 좀더 메신저 컨퍼런스의 생동감을 살릴 수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문희
글쎄요, 아마 내 자신의 신앙상태를 수시로 정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 하나님과 큐티를 하면서 큐티에서 얻은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며 하나님과 기도로써 교재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지요.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교회나, 학교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 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겠지요. 나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치유받기가 어렵겠지요.
최재범
저희 조에서 가장 많이 오고간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가정을 만들고 아이가 생긴 부부로서 어떻게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을
섬기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와 직장에 대해서는 결혼 전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많이 고민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별
문제가 없다가도,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을 시작하더군요…. 그 세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섬기는 모습…. 그것에
대한 소망은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힘든 것을 인정해 주시지 않고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시는 현실
앞에서 많이 힘들어 했지요.
차문희
아직도 많은 한국 교회들 특히 이민 교회들은 기본적인 영적 치유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기 바라는 게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김정숙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이 자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문희
건강한 자아상,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불평만 하는 마음을 갖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경수
자아상, 이성(결혼한 사람은 가정), 진로문제 이 세가지가 현실적인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아마도 아직까지 회복된 자아가 나타나는 모습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차문희
맞아요.
김경수
최근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심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하는데요.
eKOSTA
문희자매님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숙간사님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서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으로, 그리고 재범형제님은 결혼에 관련해
교회와 직장과 가정으로까지의 하나님의 확대를 말씀하셨군요. 그렇다면 우리 코스타에 참석하는 유학생과 eKOSTA 독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나라의 범위 혹은 개념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김경수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웃과의 회복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일이 나의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에 확장될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오는 것이지요.
김정숙
저도 동감 합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가정, 교회, 삶의 터전의 영역도 포함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차문희
일단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와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왜 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교회만 나가서 구하기만 하고 봉사활동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그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의 나라에 일군으로 쓰시니까요. 즉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지요. 학문과 신앙에서 모두.
eKOSTA
예, 그렇군요. 문희자매님께서는 자아의 치유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내부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되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이 교회와 직장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고
보시는군요.
차문희
네.
eKOSTA
그런 의미에서 postKOSTA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경수
진정한 의미에서 코스타는 지금이 시작 아닌가요?
차문희
예.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어떻게 우리 삶이 변화하느냐가.
eKOSTA
올해의 아주 큰 특징 중 하나는 코스타 이후로 웹을 통해 아주 진지한 나눔과 교제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고 계시고 어떤 영향들을 받고 계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유학생들과 지역 교회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김경수
코스타 이후 공식적인 웹사이트 이외에 이미 있던유학생 모임 웹사이트나 코스타 이후에 생긴 사이버 클럽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숙
간사님 중의 한 분이 코스타 직후 함께 평가회를 하면서 코스타 마지막 날의 폐회예배의 명칭을 개회예배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는데,
다들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코스타는 그후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재범
저는 지역 게시판에 종종 들어갑니다. 비록 글은 많이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고민하고 힘쓰는 모습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문희
저는 jjKOSTA, eKOSTA, tmKOSTA 보드에서 활동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하는데, 기도 부탁합니다.
김경수
저희 유펜(UPenn) 성경공부 모임의 예를 들면 기존에 잠자던웹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정숙
코스타 이후에 개인이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는 게시판들이 영역별로 다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jjKOSTA, tmKOSTA,
각 조별 게시판, 전체 게시판 등
차문희
그런데, 아직도 많은 tmKOSTA의 전공별 모임들 중 활동을 개시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eKOSTA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postKOSTA를 힘써 이루어갈 수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어떤 부분들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계와 또는 주의할 점들은요?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jjKOSTA와 gpKOSTA를 합쳐서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문희
제가 있는 동남부 지역 jjKOSTA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참여율이 별로입니다.
최재범
지금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상황이 가장 좋은 매개체인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코스탄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이 postKOST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tmKOSTA 게시판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같은 전공을 가진분들과 전공과 신앙에
관련된 진지한 대화를 하기란 지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KOSTA
그렇군요. 지역 매개체와 전공매개체 둘 다 중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gpKOSTA와 jjKOSTA 둘 다 중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지역별 혹은 전공관심별로 약간의 차이들이 있군요.
김경수
아마도 지역별로 묶여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들 지역별로 활동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더군요.
eKOSTA
그렇다면 올해 jjKOSTA가 지역을 타겟으로 하고 사역한 것이 아주 중요하고 유효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최재범
그런데 tmKOSTA의 경우 공통 관심사를 갖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같은 전공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싶네요. 같은 전공내에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공보다는 “하는 일” 또는 “연구분야”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반도체를 하는 사람의 전공에도 재료, 전자공학, 물리 등 많은 것이 있으니까
반도체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이게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연구와 직장에서의 문제점들을 나누는 거지요. 제 경험상,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을 때, 전공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점만 고집하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 전공별 모임을 통해
나눈 지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또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를 자세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면서 성장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경수
재범 형제 의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는 미국에 남는 영프로페셔날들과 대학원생들 간의 교류가 필요해지리라고 봅니다. 이번 KOSTA에
젊은 교수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거든요.
김정숙
최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전공자체가 공동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더 친밀한 공통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eKOSTA
tmKOSTA는 더 세부화된 전공혹은 관심(하는 일)들로 묶여서 아주 적은 인원이나마 전공혹은 일속에서 동역자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군요. 그리고, 김총무님이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KOSTA에서의 젊은 교수님들과 더불어 젊은 목사님들의
약진도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 교수님 혹은 전문직 종사하시는 분들과 대학원생들의 네트워크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교수님과 직장인님(?)과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요..
eKOSTA
그리고 지역별 사역들이 언급되었었는데요, 어떤 방향으로 지역별 네트워크가 진행되면 좋을지 의견들을 주세요. 지역이 캠퍼스 사역일
수도 있고, 또 지역 교회의 갱신과 연합 등일 수도 있고 한데요….
김경수
소위 말하는 Social Capital 개념인 네트워크가 KOSTA 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즉, 일년에 한번하는
수련회가 KOSTA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KOSTA가 되는 것이지요
차문희 그런 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좀 더 비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김경수
재범형제가 생각하는 네트워크를 모델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대도시 중심으로 말이지요.
차문희
네트워크 KOSTA, 상상만 해도 기대가 큽니다.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지역 내에 있는 학교에서 일단은 찬양집회를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찬양집회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집회는 그 지역의 교회와 성경공부그룹이 협력을 하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지역의 캠퍼스사역에 동역하는 거지요. 어느 교회나 단체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냥 학생들의 모임으로 말입니다.
eKOSTA
와! 벌써 구체적인 모임들이 시작되고 있군요! 정말로 그런 실제적인 네트워크와 사역들이 미국 각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김경수
제 견해로는 찬양집회만으로는 약하다고 봅니다. 연합모임의 경우 말씀에 기초한 기도운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네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 합니다.
김정숙
구체적으로 그런 모임들을 주선하려면 어떻게 시작을 하시나요? KOSTA에 참석한 분들과 연락망을 사용해서 일단 모이게 되나요?
최재범
글세요, 그냥 일단은 시작을 하면서,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모임 등으로 모임을 서서히 키워 나갈 예정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차문희
그런데…, 그런 모임이 큰 지역은 가능하지만….
김경수
저희 필라에서도 UDT(Upenn, Drexel, Temple) Network Zone(가칭)이라는 모임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교회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유학생 출신들과 영프로페셔날, 유학생 이상의 세그룹이 만나는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재범
저희는 일단, 지역 내의 공동체에 대한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 내에 장소를 섭외할 곳, 찬양을 인도해 주실 분,
설교말씀을 주실 분을 분담했습니다.
차문희
저 역시 제가 속한 교회에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들과 힘을 모으는 중인데, 기도해 주세요.
eKOSTA
그러한 연합모임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 사역과 방향의 범위 등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차문희
교회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겠지요. 작은 지역과 큰 도시를 함께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역의 목표와 미래의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재범
사역의 목적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저희는 저희 학교나 맨하탄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전도와 성장이 주목적이라고 정했습니다. 문제는
각 유학생이 지역교회의 활동과 캠퍼스 내에서의 활동을 어떻게 조율하는가 하는 거구요.
김경수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이 시작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유학생 연합운동은 이제 그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KOSTA
예, 최형제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와 양립될 수 있는지, 혹은 자칫하다가는 지역교회의 반대에도 부딪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김경수
지역교회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학생사역으로 지역교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김정숙
제가 있는 지역같은 경우에는 4-5개 되는 교회들 간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연합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할때 아주 리스키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문희
(김경수총무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김정숙간사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이 작고 교회
수가 작다 보면 단합은 힘들 것 같은데요.
최재범
아직 저희는 활동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지만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 입니다. 저도 김총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지역교회를 바꿀 수는 없지요. 단지, 그 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부탁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저희가 하는 거지요.
김경수
문희자매님의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바로 불신 유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이구요.
기본적인 제자훈련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서 아시아권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외에도 더 많습니다.
최재범
이에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저희 학교 예를 들면, 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단체 이외에는 절대로 건물을 빌려 주지 않거든요.
차문희
김총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의 이민자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유학생들이 돈이 많아서 돈 쓰러 왔다고 편견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최재범
사실 유학생들에 대한 그런 편견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유학생들 간의 신앙훈련이 더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 부분도
지역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좀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되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KOSTA
김경수 총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로는 한국 유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지역교회와 그 연계성이나 결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전도한 사람들이 속하게 되는 개교회), 아시아권 유학생들이나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선교의 개념으로
간다면 지역교회들이 함께 해 나가야 될 큰 명분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교회와 캠퍼스 모임 등과 같은 다른 사역들의 협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데요, 중서부 지역같은 경우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지역교회와 캠퍼스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KOSTA
저희도 정숙 간사님 말씀을 십분 이해하며,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갖게된 것이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선교차원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수
정숙간사님이 계신 곳의 상황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지역적인 한계라고나 할까요. 제가 주장하는 연합은 대도시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소수의 교회들은 지도자들의 결정이 연합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야 일은 유학생(KOSTA) 출신 중에서 사역자가 나오도록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숙
김경수총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서부 지역 같은 경우에는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김총무님 말씀대로 목회자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김경수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전도와 제자화에 힘쓰고, 영프로페셔날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사역자화에 힘쓰는 것이 개념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차문희
네 동의합니다.
최재범
이런 학생 운동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교역자분들은 이해하시기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경험상 이해를 못하시는 것이지요….
김정숙
최형제님과 eKOSTA의 말씀대로 단시간에 교역자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시도는 해야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수
“설득”이라는 말보다는 “동역”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봅니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하면서 그 분들과 동역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봅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집회가 끝난 바로 순간부터 KOSTA는 시작된다”는 사고의 전환과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사역으로의 발돋움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차문희 저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최재범
요즘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지역교회와 학생운동 간의 괴리에는 학생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KOSTA
같은 모임에서 지역교회에 문제점이 많은 것처럼 느끼고 가서 지혜롭게 해결하기 보다는 젊은 혈기에 부딪힌 분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땐 그랬던거 같구요.
김정숙
최형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사역을 하면서 KOSTA에 참석하고 각자의 지역교회로 돌아온 분들을 볼 때 가슴이
“조마 조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김경수
KOSTA 운동 즉 유학생운동이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믿어왔고 또 앞으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정말 더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죽고 삶으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유학생운동을 통한 교회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조국의 갱신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문희
앞으로 우리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eKOSTA
시간이 많이 되어서 이제 정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eKOSTA와 eKOSTA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차문희
eKOSTA의 독자광장코너에 유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면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요.
최재범 유학생활을
통해 느낀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나그네” 입니다. 나그네 동안 잃을 것도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문희
좋은 말씀해 주셔서 저도 오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그래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한 말씀들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Aug 2, 2002 | 이달의 초점
이달의 초점
어느 코스탄의 편지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이번 2002년 미주 코스타에서 큰 은혜 받았습니다.
제 이름은 한명선이구요,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 나는 몇 가지가 있어서 적어 봤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몇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혹, 제가 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코스타에 헌신하고 계신 여러분들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저도 코스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두 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 코스타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에 얼마나 집중했나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와 그 안에 치유되고 회복될 자아라는 생각을 하고는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이지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세적 하나님 나라 이해에서 현세적 하나님 나라,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고 찬양할 것을 크게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집회가 내내 진행되는 동안 이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는 얼마나 언급되어졌고 또 얼마나 생각되어졌는지 생각해봅니다. 아마 새벽 시간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믿기로는 코스타는 매 해 밖으로 걸리는 주제보다 더 강한 주제가 그 저변에 이미 깔려 있습니다.
“Tentmaker”.
코스타에 참석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코스타가 가지고 있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코스타 저변에 아주 처음부터 깔려 있는, 확고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학문 공동체 혹은 직업 공동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기도로 코스타에 찾아오고 또 코스타는 그들을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tentmaker들로 길러내는 중요한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해 코스타의 주제가 “순결”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코스타에서 얼마나 그 주제가 강조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매년 코스타의 주제를 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의미한 주제로 집중력을 흐리게 하는 것보다 이미 코스타의 저변에 깔려있는 “tentmaker”라는 주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그 하나로 신앙적 역량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자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그 주제가 코스타와 코스타에 참석하는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매년 또 다른 주제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다른 하나는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 코스타가 이제는 “transition”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참여하시는 강사님들이 바뀌어 가고 참여하는 학생들도 바뀌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아직 그 70년대 80년대 폭발적인 부흥 성장을 뒷받쳐 줄 마땅한 후계자를 찾고 있지 못하듯, 코스타도 처음의 그 열정과 그 헌신을 뒷받쳐 줄 다음 지도자를 찾는 일에 이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저녁 남서울 교회와 지구촌 교회에서 부목사님들을 지내셨던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하시고 그 뒤에 코스타의 원조격이신 이동원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마무리 하시는 것을 보고는 지금 코스타가 겪고 있는 transition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동원 목사님께서 앞에 나서신 두 목사님의 지원(back up)을 해주고 계시며 그 무게를 더 해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코스타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이제 코스타에 변화가! 필요하고 transition이 필요하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의 열정이 식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스타가 소위 인기있는 강사들을 찾기 보다 신실한 강사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한 단체든지 소위 처음의 인기를 의식해서 아주 중요한 transition의 시기에 내용보다는 그 인기 유지에 힘을 더 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처음의 뜻과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오직 사람들, 그 인기만 남게 되지요. 하지만 나는 코스타의 힘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코스타의 힘은 하나님께로 향한 천 오백 영혼들의 헌신과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스태프, 그리고 강사님의 마음이 여기까지 코스타를 오게 한 힘이라 믿습니다.
이제 이 transition의 시기에 코스타가 더 신실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숫자나 규모에 휩싸이지 말고 인기나 소문에 휩싸이지 않고 신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사람으로 다시 코스타가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고민하고 기도하고 계신 것들을 제가 다시 이야기한 것이라면 괜한 사족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 코스타를 위해서 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