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도 미주 코스타 평가회

이달의 초점


2002년도 미주 코스타 평가회


코스타를 섬기는 사람들은 매년 코스타 수양회가 끝나고 나면 평가회를 갖습니다. 이 평가회는 간사들이 각자의 사역을 통해서 바라본 코스타와 2003년을 위한 보안점을 중심으로해서 이루어집니다. 올해에도 역시 7월 6일(토) Wheaton 대학의 Fischer Hall에서는 2002년 코스타를 마무리하고 2003년 코스타를 준비하는 평가회가 있었습니다.


미주코스타본부는 코스타의 구석 구석 모두를 여러분과 함께 투명하게 나누고자 하는 바램으로 올해부터는 이 평가회의 내용을 여러분께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러 코스탄 여러분, 그리고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따끔한 충고와 질책, 그리고 격려와 칭찬의 말씀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코스타 수양회 및 postKOSTA 사역을 위한 평가나 제안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코스타 홈페이지(kosta.ws)나 이코스타(ekosta.org)를 통해 전해 주십시오.



1. 자원봉사(자봉)



  •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으로 코스타를 섬김에도 불구하고 큰 은혜주셨다.

  • 어린이코스타를 위해서 많은 인원들이 인터넷으로 자원하셨지만 실제로 나타나 봉사하신 분들이 많지 않았다. 코스타 이전에 인터넷으로 자원하신 분들 보다는 오히려 기간 중 은혜의 표현으로 자원하신 분들이 더 효율적이고 헌신되어 봉사하셨던 것 같다.

  • 인터넷 지원자 현황: 영아부1부 97명, 영아2부 59명, 유아부 2명, 등록수속 90명, 세미나자봉 29명(이중 반만 나타나셨고 현지자원하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심) 의료자봉 6명 +7명(현지)

  • 의료자봉에 미진했던 느낌. 그러나 병자가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의 은혜 느낄 수 있었다.

  • 자봉에게 감사카드를 드리자.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식당자봉이 필요하다.

  2. 의료사역의 경우 자봉만으로는 미흡한 것 같다. 의료를 전담할 수 있는 간사를 따로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3. 의료간사 및 의료자봉에겐 비퍼를 채우자.

  4. 자봉들에게 명찰을 달아 드리자.


2. 일터전시관



  • 일터전시관에 참여할 단체를 접촉하는 문제에 있어 담당간사가 혼자서 하려고 하니 효율적이지 못했다. 코스타 중진 간사들의 측면지원을 요청한다.

  • 일터전시관 안내책자는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면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실제로 읽힐 수 있는 책자를 사전에 조정하여 잘 구성해서 미리 냈으면 한다.

  • 일터전시관 장소가 너무 열악했다. 거의 호흡곤란이 일어날 정도로 무덥고 힘들었다. 중요한 사역인데 발전시키려면 장소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 시간적인 측면: 빡빡한 코스타 일정 가운데 참가자들이 일터로 올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 일터 토크쇼는 홍보가 부족했다. 일터 토크쇼에 대한 광고가 나갔지만 이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전달이 참가자들에게 되지 않았다. Adman Chapel에서의 presentation이 필요한 것 같다.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잔디밭에 텐트를 쳐서 야외장소를 마련해서 축제형식으로 하면 좋겠다.

  2. 일터전시관의 사역개념을 잘 잡는게 필요하다. 코스타 이후를 잘 Follow-up해주는 사역으로서의 일터전시관. 선교가 아닌 사회 속으로의 부름을 받은 코스탄들을 위해 많은 단체를 소개해서 잘 연결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각 전공별 관심별로의 Follow-up 또한 필요하다.

  3. 홈페이지를 통해 웹상에서 일터전시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리고 링크를 시켜주는 일을 하려고 한다.

  4. 점심을 도시락으로 하면서 일터에서 먹으며 Fair를 하는 것은 어떨까?

  5. 일터전시관이란 이름을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했으면 좋겠다. KOSTA-Expo가 어떨까?


3. 사운드



  • 콘솔이 두 대로 운영이 돼서 너무 편안했다. 앰프에서 팬노이즈 문제 있었지만 잘 해결돼서 좋았다.

  • 소리가 크다고 느꼈던 분들은 자기가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라.

  • 강의를 하실 때 소리가 너무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무대에 서신 분들의 성량에 따라 조절하기는 했지만 말씀하시는 분 각각의 목소리가 너무 차이가 나 조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4. 등록



  • 내년에는 참가 신청자들이 온라인으로 다 지불까지 하실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메일 문의에 응답하는 게 등록팀의 주된 일이 될 것이다. 강사님 등록자들도 미리 확인이 되어서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등록이 마감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 내년 cKOSTA가 있으므로 학부생 등록은 공식적으로는 받지 않는 것으로 한다.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등록과 조배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게 시급하다. 이런 등록과정을 일반 참가자들에게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게 하자.

  2. 12시 check-in이 가능하도록 Wheaton측에 요청하자.

  3. 등록담당간사 확보, 온라인 program 만들기,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 만들기 등의 과제

  4. 코스타 홈페이지에 등록에 관련해 FAQ(Frequently Asked Questions) 코너를 만들자.

  5. 포스트코스타로 들어가는데 해야할 일-매뉴얼 만들기 (FAQ 같은 것, 각 사역별로 필요한 물품 리스트 만들기 등).


5. 세미나



  • 코스타 기간 중 세미나 티켓을 떼는 방식은 현재의 상태로는 안 될 것 같다. 세미나를 미리 미리 어레인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간 중에 세미나 시간 등이 자꾸 바뀌기 때문에 미리 어레인지를 다 해 놓기 어렵지 않겠는가.

  • 참가신청을 해서 등록할 때 이미 세미나 배정도 다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아예 티켓을 안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세미나 티켓은 몇몇 강의에 사람들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강사에 대한 배려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한 세미나에 참여 가능한 숫자가 제한되게 배정이 돼서 참가자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 될 수도 있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세미나 제목과 내용이 너무 다르다는 불평이 제일 많았다.

  • 세미나 평가서를 강사들에게도 보내라 – 강사님들에게 전체 통계를 보내고 본인 자신에 대한 평가는 본인이 원하는 경우 보내 드리기로 하자.

  • 세미나 녹음을 간사들이 듣고 평가한 다음 스태프 보드에 평가를 올리도록 하자.

  • 강사님들이 세미나에 필요한 장비 신청을 코스타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해 주셨으면 좋겠다.


6. M&M: sam-tv.com



  • 비디오 presentation을 sam-tv.com 과하게 돼서 감사하다. 여러 가지 방송사고가 줄었다. sam-tv.com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설정해야 할 것 같다. 잘 알아서 흐름을 타는 전문성을 지닌 팀이다. 매우 좋은 Outsourcing 대상인 것 같다. 코스타와의 협조관계를 확실히 해서 Contract를 Release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7. jjKOSTA



  • 코스타 기간중 조장들의 활동에 얼마나 비중을 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조별모임에 많은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다. 강사와의 모임을 일부러 오피셜하게 주지 않으니 식사 시간 등을 통해서 더 좋은 만남이 많이 이루어진 것같다.

  • 멘토를 더 확보하는 문제, 코스타 전에 조장들을 리크루트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지역적으로 잘 활성화되야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 멘토들은 다른 강의 안 들어가고 멘토링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뜨는 코스타가 되어서는 안된다. 코스타와 지역교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조심스럽게 지역교회의 사역을 돕는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 사람의 모습이 많이 안 보이는 세미나 등을 조장들을 위해 지정해 주고, 멘토링의 방향은 학생들 가운데 자질이 있는 사람들을 멘토로 세우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케어하는 것이 멘토링의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 코스타 스피릿을 갖는 것과 코스타를 전하는 것은 다르다. 각각 개교회에 흩어져서 해야할 일들이 있다. 정말 중요한게 뭐고 중심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조장코스타의 미션이 무엇인가? 이를 문서화해서 코스타 홈페이지에 올리자.


8. 시카고팀



  • 어린이 코스타를 좀더 영적으로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이 많다. 선생님들을 대학생들로만 구성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다. 윌로우크릭에서 선생님들을 트레이닝하거나 실제로 어린이 코스타를 맡아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9. tmKOSTA



  • 31개의 그룹, 전공별 18/관심별 13, 여성관련 3개.

  • 작년의 경험을 발판으로 사회자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게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작년의 방향은 토론 중심이었는데 올해는 소그룹이었고, 이렇게 작은 그룹으로 모인 것이 앞으로의 networking 등을 위해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 앞으로 tm의 방향은? 교회의 동역자 이외에 삶의 현장에서의 동지를 만나 그룹을 유지해서 서로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얼마나 살아 남을 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networking을 통해 사람들이 쌓여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그룹 하나 하나가 일터전시관 부스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내년에 사람들이 그 결과물들을 들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이런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tmKOSTA 보드를 통해 관련 단체에 알려주고 정보를 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어떤 그룹이든 코스타 기간을 통해 전공이나 관심에 따라 이벤트를 갖는 것이 좋겠다. (예: 미술전공-전시회)

  3. 조배정할 때 1/3이라도 전공별로 묶어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 등록 과정이 이미 너무 복잡하다. 전공별까지 고려한다면 등록팀이 너무 힘들어진다.

  4. tm 세미나 시간이 목요일이어서 만나자마자 헤어지게 되니 서로 networking하기가 쉽지 않으니, 세미나를 수요일 정도로 미리 여는 것이 어떤가.

  5. 세미나 시간을 2회 연속으로 늘리자. 예를 들어 tm 세미나를 수요일로 할 경우 세미나 3-4를 다 tm으로 잡으면 좋을 것이다.


10. KOSTA Voice



  • 올해는 갑자기 사무실이 없어져서 자봉 관리에 헛점이 있었다.

  • 이코스타와 코스타보이스의 두 사역이 함께 가는 것이 무리였다. 이코스타에 관련된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코스타보이스가 집회 전체 맥락에 따라 충분한 서포트를 줄 수 있어야 했다. M&M 등에서 몇컷 짜리 만화 등을 미리 만들면 어떨까?


11. cKOSTA



  • 많은 도움, 기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학원사역과 학부사역은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 가운데 상처를 치유하고 비전을 갖도록 돕는 일이 학부사역이다.

  •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다른 것일 수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인격적인 교제를 했느냐를 생각해 보라.


12. 기타평가



  •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이 주제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 참석자들의 7-80%가 치유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 전반적으로 jjKOSTA는 밸런스가 맞은 것 같으나, 코스타 전체적으로 볼 때 말씀 등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포커스가 부족했다.

  • “코스타, 크지만 작은 집회”라는 컨셉트와는 얼마나 상응했는가? – jjKOSTA나 상담, 그리고 멘토링은 이런 관점에서 매우 좋았다.

  • 조장숫자는 현재의 10%, 조별시간도 20% 정도 늘었으면 좋겠다.

  • 식사시간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새로운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예: 점심을 도시락으로 대체하여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것을 어떤가)

  • 참여자들의 열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열린 리크루트를 해야 한다.

  • 조장의 온라인 등록을 일반참가자보다 미리 시작할 수 없나.

  • 코스타 준비와 진행과정의 투명성 – 이것은 우리의 게으름의 문제이다. 코스타의 타임라인을 일년 내내 일반에 공개하자.

  • 참가자들의 반응을 반영하는 본부의 노력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자들의 respect도 조장들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예: 새벽기도시간에 말씀이 끝난 후 묵상 3-4분도 참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나가는 참가자들의 모습. 이것은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의 부족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훈련에도 좋지 않다.)

  • 코스탄의 무대를 코스타 대회 이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 중보기도시간이 좋았다. 올해의 코스타는 기도의 능력이 놀라웠던 코스타였다.

  • 코스타의 캠퍼스 순회간사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유학생 교회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를 통해 목회하시는 데 필요한 자료나 강의 내용 등을 제공하고자 한다.

  • 강사님 중에서 미국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리크루트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강사님들의 발굴을 위해 우리 간사들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서로 추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코스타가 영적 충전의 장소가 아니라 지난 일년간의 승리를 기뻐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코스타의 폐회예배가 앞으로 1년의 코스타를 시작하는 Commencement라는 의미에서, 코스타의 개회예배는 지난 1년의 승리의 삶을 마감하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폐회예배를 개회예배로, 개회예배를 폐회예배를 바꿔부르는 것은 어떨까?

<KOSTA 2003 kick-off 간사 수양회>


8월 중이 어떨까? 노동절 주간은 어떨까? 8월 17일?

[좌담회]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 김경수, 김정숙, 차문희, 최재범

이코스타 2002년 8월호


eKOSTA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독자와 함께 하게 될 eKOSTA 좌담회, 오늘 그 처음 시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KOSTA 좌담회에서는 2002년 미주 코스타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면서, 받으셨던 은혜들을 나누고,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특별히 오늘 좌담회에서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일년을 살아가게 될 우리 코스탄들의 각 지역에서의 역할과 비전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코스타 이후 연중 지속되는 코스타로서의 postKOSTA 사역의 비전과 그 방향성에도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물론 postKOSTA 사역의 각 지역사회 및 지역교회와의 동역에 대한 논의도 빠져서는 안되겠지요.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되, 코스타에서 하셨던 역할 혹은 코스타와의 인연과 함께 짧게 말씀해 주세요.


차문희 저는 조지아주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고 Family Service를 공부하고 있는 차문희입니다. 이번에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저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짧은 시간에 섬기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라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최재범 저는 최재범입니다. 컬럼비아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이번에 미주지역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더군다나 기혼조의 조장이라 싱글일 때와는 기분이 다르더라구요. 작년에 뉴욕/뉴저지 지역의 gpKOSTA에 참석을 하면서 코스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김정숙 저는 현재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살고 있고요, 코스타는 93년 미시간에서 대학원재학 중 처음 참석하였고, 96년부터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맡았던일은 코스타 수양회 시작 전에는 오퍼레이션 부문에서 준비과정을 섬겼구요, 기간 중에는 프로그램 진행을 도왔습니다.


김경수 저는 1993년부터 코스타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고, 지금은 비영리단체경영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는 조장 멘토로서 작년에 이어 2년째 조장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예, 다들 반갑습니다. 이번 2002년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은혜들과 코스타 이후 변화된 부분이 있었다면, 짧게 각각 한, 두가지씩만 나눠 주시죠.

최재범 전 제가 속한 공동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었던것들로부터 회복될 수 있었던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구요. 조모임을 통해서 우리 세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나 가정 그리고 학교나 회사에서…. 예전과는 달리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지요.

차문희 미국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언어와, 다른 문화적인 차이등을 비롯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미국에서 친구의 전도를 통해 만났는데요, 그다지 믿음이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 제일 은혜받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갖게된 것입니다. 신앙과 학문적인 비전 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과 기도로 치유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평보다는 하나님 측면에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 자신의 치유없이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김경수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 코스타에 참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로, 코스타에 참여하면서, 가족관계의 변화와 가족들 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신앙이 말씀 안에서 견고해져가고 있다는 것이고, 저 자신도 말씀과 가족공동체를 이끌어갈 힘과 지도력을 코스타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숙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저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던것이 가장 감사할 부분입니다. 아침 강해 설교에서 다루었던비전에 관련된 메시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저의 삶을 통해서 손수 이루어가시는 비전을 다시 한번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예, 다들 굉장히 많은 은혜들을 받으셨군요. 그럼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코스타의 주제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였는데 코스타 전체 진행을 놓고 볼 때 주제의 충실도는 어떻다고 개인적으로 느끼셨나요? (편집자 주 : 올해 KOSTA의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과 KOSTA 집회에 있어 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재평가는 eKOSTA 9월호의 좌담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차문희 세미나의 대부분과 새벽기도, 성경강해, 저녁설교와 일터의 현장의 메시지가 코스타 주제와 많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유학생들의 삶에 많이 중점을 두고 있어서 제 자신의 삶에 많이 비추어 보았습니다.

김경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주제에 충실했다고 보여집니다.

최재범 전 수련회기간 동안에 새벽예배가 가장 일관되게 주제를 맞추어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KOSTA 저희가 관심있는 부분은. 두가지 주제를 조금 나누어서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치유되는 자아를 구분한다면 (물론 궁극적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두 부분 다 충실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치유되는 자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어졌나요?

김경수 다분히 개인적인 치유 쪽에 더 치우쳤다고 봅니다.

차문희 예 그렇습니다.

최재범 제 생각도 개인적인 회복에 많이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전체적인 메시지의 비중을 따지자면 하나님나라의 회복보다는 개인의 치유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지문에 명시된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회복이 바로 “나”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나라/공동체의 회복은 코스타 후의 개인의 삶을 통해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코스타 이후에 개인의 삶에 실현시킬 수 있을 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군요. 이에 대한 의견들을 좀 주시죠. 이제는 딱딱한 질문과 대화체에서 벗어나 좀더 메신저 컨퍼런스의 생동감을 살릴 수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문희 글쎄요, 아마 내 자신의 신앙상태를 수시로 정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 하나님과 큐티를 하면서 큐티에서 얻은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며 하나님과 기도로써 교재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지요.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교회나, 학교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 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겠지요. 나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치유받기가 어렵겠지요.

최재범 저희 조에서 가장 많이 오고간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가정을 만들고 아이가 생긴 부부로서 어떻게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을 섬기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와 직장에 대해서는 결혼 전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많이 고민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별 문제가 없다가도,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을 시작하더군요…. 그 세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섬기는 모습…. 그것에 대한 소망은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힘든 것을 인정해 주시지 않고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시는 현실 앞에서 많이 힘들어 했지요.

차문희 아직도 많은 한국 교회들 특히 이민 교회들은 기본적인 영적 치유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기 바라는 게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김정숙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이 자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문희 건강한 자아상,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불평만 하는 마음을 갖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경수 자아상, 이성(결혼한 사람은 가정), 진로문제 이 세가지가 현실적인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아마도 아직까지 회복된 자아가 나타나는 모습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차문희 맞아요.

김경수 최근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심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하는데요.

eKOSTA 문희자매님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숙간사님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서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으로, 그리고 재범형제님은 결혼에 관련해 교회와 직장과 가정으로까지의 하나님의 확대를 말씀하셨군요. 그렇다면 우리 코스타에 참석하는 유학생과 eKOSTA 독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나라의 범위 혹은 개념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김경수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웃과의 회복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일이 나의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에 확장될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오는 것이지요.

김정숙 저도 동감 합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가정, 교회, 삶의 터전의 영역도 포함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차문희 일단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와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왜 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교회만 나가서 구하기만 하고 봉사활동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그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의 나라에 일군으로 쓰시니까요. 즉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지요. 학문과 신앙에서 모두.

eKOSTA 예, 그렇군요. 문희자매님께서는 자아의 치유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내부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되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이 교회와 직장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고 보시는군요.

차문희 네.

eKOSTA 그런 의미에서 postKOSTA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경수 진정한 의미에서 코스타는 지금이 시작 아닌가요?

차문희 예.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어떻게 우리 삶이 변화하느냐가.

eKOSTA 올해의 아주 큰 특징 중 하나는 코스타 이후로 웹을 통해 아주 진지한 나눔과 교제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고 계시고 어떤 영향들을 받고 계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유학생들과 지역 교회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김경수 코스타 이후 공식적인 웹사이트 이외에 이미 있던유학생 모임 웹사이트나 코스타 이후에 생긴 사이버 클럽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숙 간사님 중의 한 분이 코스타 직후 함께 평가회를 하면서 코스타 마지막 날의 폐회예배의 명칭을 개회예배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는데, 다들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코스타는 그후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재범 저는 지역 게시판에 종종 들어갑니다. 비록 글은 많이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고민하고 힘쓰는 모습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문희 저는 jjKOSTA, eKOSTA, tmKOSTA 보드에서 활동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하는데, 기도 부탁합니다.

김경수 저희 유펜(UPenn) 성경공부 모임의 예를 들면 기존에 잠자던웹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정숙 코스타 이후에 개인이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는 게시판들이 영역별로 다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jjKOSTA, tmKOSTA, 각 조별 게시판, 전체 게시판 등

차문희 그런데, 아직도 많은 tmKOSTA의 전공별 모임들 중 활동을 개시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eKOSTA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postKOSTA를 힘써 이루어갈 수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어떤 부분들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계와 또는 주의할 점들은요?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jjKOSTA와 gpKOSTA를 합쳐서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문희 제가 있는 동남부 지역 jjKOSTA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참여율이 별로입니다.

최재범 지금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상황이 가장 좋은 매개체인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코스탄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이 postKOST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tmKOSTA 게시판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같은 전공을 가진분들과 전공과 신앙에 관련된 진지한 대화를 하기란 지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KOSTA 그렇군요. 지역 매개체와 전공매개체 둘 다 중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gpKOSTA와 jjKOSTA 둘 다 중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지역별 혹은 전공관심별로 약간의 차이들이 있군요.

김경수 아마도 지역별로 묶여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들 지역별로 활동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더군요.

eKOSTA 그렇다면 올해 jjKOSTA가 지역을 타겟으로 하고 사역한 것이 아주 중요하고 유효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최재범 그런데 tmKOSTA의 경우 공통 관심사를 갖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같은 전공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싶네요. 같은 전공내에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공보다는 “하는 일” 또는 “연구분야”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반도체를 하는 사람의 전공에도 재료, 전자공학, 물리 등 많은 것이 있으니까 반도체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이게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연구와 직장에서의 문제점들을 나누는 거지요. 제 경험상,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을 때, 전공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점만 고집하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 전공별 모임을 통해 나눈 지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또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를 자세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면서 성장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경수 재범 형제 의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는 미국에 남는 영프로페셔날들과 대학원생들 간의 교류가 필요해지리라고 봅니다. 이번 KOSTA에 젊은 교수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거든요.

김정숙 최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전공자체가 공동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더 친밀한 공통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eKOSTA tmKOSTA는 더 세부화된 전공혹은 관심(하는 일)들로 묶여서 아주 적은 인원이나마 전공혹은 일속에서 동역자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군요. 그리고, 김총무님이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KOSTA에서의 젊은 교수님들과 더불어 젊은 목사님들의 약진도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 교수님 혹은 전문직 종사하시는 분들과 대학원생들의 네트워크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교수님과 직장인님(?)과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요..

eKOSTA 그리고 지역별 사역들이 언급되었었는데요, 어떤 방향으로 지역별 네트워크가 진행되면 좋을지 의견들을 주세요. 지역이 캠퍼스 사역일 수도 있고, 또 지역 교회의 갱신과 연합 등일 수도 있고 한데요….

김경수 소위 말하는 Social Capital 개념인 네트워크가 KOSTA 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즉, 일년에 한번하는 수련회가 KOSTA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KOSTA가 되는 것이지요

차문희 그런 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좀 더 비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김경수 재범형제가 생각하는 네트워크를 모델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대도시 중심으로 말이지요.

차문희 네트워크 KOSTA, 상상만 해도 기대가 큽니다.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지역 내에 있는 학교에서 일단은 찬양집회를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찬양집회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집회는 그 지역의 교회와 성경공부그룹이 협력을 하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지역의 캠퍼스사역에 동역하는 거지요. 어느 교회나 단체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냥 학생들의 모임으로 말입니다.

eKOSTA 와! 벌써 구체적인 모임들이 시작되고 있군요! 정말로 그런 실제적인 네트워크와 사역들이 미국 각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김경수 제 견해로는 찬양집회만으로는 약하다고 봅니다. 연합모임의 경우 말씀에 기초한 기도운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네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 합니다.

김정숙 구체적으로 그런 모임들을 주선하려면 어떻게 시작을 하시나요? KOSTA에 참석한 분들과 연락망을 사용해서 일단 모이게 되나요?

최재범 글세요, 그냥 일단은 시작을 하면서,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모임 등으로 모임을 서서히 키워 나갈 예정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차문희 그런데…, 그런 모임이 큰 지역은 가능하지만….

김경수 저희 필라에서도 UDT(Upenn, Drexel, Temple) Network Zone(가칭)이라는 모임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교회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유학생 출신들과 영프로페셔날, 유학생 이상의 세그룹이 만나는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재범 저희는 일단, 지역 내의 공동체에 대한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 내에 장소를 섭외할 곳, 찬양을 인도해 주실 분, 설교말씀을 주실 분을 분담했습니다.

차문희 저 역시 제가 속한 교회에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들과 힘을 모으는 중인데, 기도해 주세요.

eKOSTA 그러한 연합모임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 사역과 방향의 범위 등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차문희 교회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겠지요. 작은 지역과 큰 도시를 함께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역의 목표와 미래의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재범 사역의 목적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저희는 저희 학교나 맨하탄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전도와 성장이 주목적이라고 정했습니다. 문제는 각 유학생이 지역교회의 활동과 캠퍼스 내에서의 활동을 어떻게 조율하는가 하는 거구요.

김경수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이 시작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유학생 연합운동은 이제 그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KOSTA 예, 최형제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와 양립될 수 있는지, 혹은 자칫하다가는 지역교회의 반대에도 부딪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김경수 지역교회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학생사역으로 지역교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김정숙 제가 있는 지역같은 경우에는 4-5개 되는 교회들 간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연합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할때 아주 리스키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문희 (김경수총무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김정숙간사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이 작고 교회 수가 작다 보면 단합은 힘들 것 같은데요.

최재범 아직 저희는 활동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지만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 입니다. 저도 김총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지역교회를 바꿀 수는 없지요. 단지, 그 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부탁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저희가 하는 거지요.

김경수 문희자매님의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바로 불신 유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이구요. 기본적인 제자훈련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서 아시아권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외에도 더 많습니다.

최재범 이에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저희 학교 예를 들면, 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단체 이외에는 절대로 건물을 빌려 주지 않거든요.

차문희 김총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의 이민자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유학생들이 돈이 많아서 돈 쓰러 왔다고 편견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최재범 사실 유학생들에 대한 그런 편견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유학생들 간의 신앙훈련이 더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 부분도 지역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좀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되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KOSTA 김경수 총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로는 한국 유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지역교회와 그 연계성이나 결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전도한 사람들이 속하게 되는 개교회), 아시아권 유학생들이나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선교의 개념으로 간다면 지역교회들이 함께 해 나가야 될 큰 명분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교회와 캠퍼스 모임 등과 같은 다른 사역들의 협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데요, 중서부 지역같은 경우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지역교회와 캠퍼스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KOSTA 저희도 정숙 간사님 말씀을 십분 이해하며,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갖게된 것이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선교차원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수 정숙간사님이 계신 곳의 상황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지역적인 한계라고나 할까요. 제가 주장하는 연합은 대도시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소수의 교회들은 지도자들의 결정이 연합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야 일은 유학생(KOSTA) 출신 중에서 사역자가 나오도록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숙 김경수총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서부 지역 같은 경우에는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김총무님 말씀대로 목회자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김경수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전도와 제자화에 힘쓰고, 영프로페셔날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사역자화에 힘쓰는 것이 개념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차문희 네 동의합니다.

최재범 이런 학생 운동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교역자분들은 이해하시기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경험상 이해를 못하시는 것이지요….

김정숙 최형제님과 eKOSTA의 말씀대로 단시간에 교역자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시도는 해야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수 “설득”이라는 말보다는 “동역”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봅니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하면서 그 분들과 동역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봅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집회가 끝난 바로 순간부터 KOSTA는 시작된다”는 사고의 전환과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사역으로의 발돋움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차문희 저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최재범 요즘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지역교회와 학생운동 간의 괴리에는 학생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KOSTA 같은 모임에서 지역교회에 문제점이 많은 것처럼 느끼고 가서 지혜롭게 해결하기 보다는 젊은 혈기에 부딪힌 분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땐 그랬던거 같구요.

김정숙 최형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사역을 하면서 KOSTA에 참석하고 각자의 지역교회로 돌아온 분들을 볼 때 가슴이 “조마 조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김경수 KOSTA 운동 즉 유학생운동이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믿어왔고 또 앞으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정말 더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죽고 삶으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유학생운동을 통한 교회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조국의 갱신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문희 앞으로 우리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eKOSTA 시간이 많이 되어서 이제 정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eKOSTA와 eKOSTA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차문희 eKOSTA의 독자광장코너에 유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면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요.

최재범 유학생활을 통해 느낀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나그네” 입니다. 나그네 동안 잃을 것도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문희 좋은 말씀해 주셔서 저도 오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그래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한 말씀들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명선] 어느 코스탄의 편지

이코스타 2002년 8월호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이번 2002년 미주 코스타에서 큰 은혜 받았습니다.


제 이름은 한명선이구요,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 나는 몇 가지가 있어서 적어 봤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몇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혹, 제가 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코스타에 헌신하고 계신 여러분들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저도 코스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두 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 코스타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에 얼마나 집중했나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와 그 안에 치유되고 회복될 자아라는 생각을 하고는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이지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세적 하나님 나라 이해에서 현세적 하나님 나라,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고 찬양할 것을 크게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집회가 내내 진행되는 동안 이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는 얼마나 언급되어졌고 또 얼마나 생각되어졌는지 생각해봅니다. 아마 새벽 시간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믿기로는 코스타는 매 해 밖으로 걸리는 주제보다 더 강한 주제가 그 저변에 이미 깔려 있습니다.


“Tentmaker”.


코스타에 참석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코스타가 가지고 있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코스타 저변에 아주 처음부터 깔려 있는, 확고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학문 공동체 혹은 직업 공동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기도로 코스타에 찾아오고 또 코스타는 그들을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tentmaker들로 길러내는 중요한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해 코스타의 주제가 “순결”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코스타에서 얼마나 그 주제가 강조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매년 코스타의 주제를 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의미한 주제로 집중력을 흐리게 하는 것보다 이미 코스타의 저변에 깔려있는 “tentmaker”라는 주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그 하나로 신앙적 역량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자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그 주제가 코스타와 코스타에 참석하는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매년 또 다른 주제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다른 하나는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 코스타가 이제는 “transition”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참여하시는 강사님들이 바뀌어 가고 참여하는 학생들도 바뀌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아직 그 70년대 80년대 폭발적인 부흥 성장을 뒷받쳐 줄 마땅한 후계자를 찾고 있지 못하듯, 코스타도 처음의 그 열정과 그 헌신을 뒷받쳐 줄 다음 지도자를 찾는 일에 이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저녁 남서울 교회와 지구촌 교회에서 부목사님들을 지내셨던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하시고 그 뒤에 코스타의 원조격이신 이동원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마무리 하시는 것을 보고는 지금 코스타가 겪고 있는 transition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동원 목사님께서 앞에 나서신 두 목사님의 지원(back up)을 해주고 계시며 그 무게를 더 해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코스타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이제 코스타에 변화가! 필요하고 transition이 필요하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의 열정이 식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스타가 소위 인기있는 강사들을 찾기 보다 신실한 강사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한 단체든지 소위 처음의 인기를 의식해서 아주 중요한 transition의 시기에 내용보다는 그 인기 유지에 힘을 더 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처음의 뜻과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오직 사람들, 그 인기만 남게 되지요. 하지만 나는 코스타의 힘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코스타의 힘은 하나님께로 향한 천 오백 영혼들의 헌신과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스태프, 그리고 강사님의 마음이 여기까지 코스타를 오게 한 힘이라 믿습니다.


이제 이 transition의 시기에 코스타가 더 신실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숫자나 규모에 휩싸이지 말고 인기나 소문에 휩싸이지 않고 신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사람으로 다시 코스타가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고민하고 기도하고 계신 것들을 제가 다시 이야기한 것이라면 괜한 사족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 코스타를 위해서 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동인] 미리보는 KOSTA/USA-2002 : 하나님의 그림

이코스타 2002년 6/7월호

코스타 2002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와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회복과 치유를 보는 것이다. 약 1년전 올해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모인 간사회의에서 하나님께서는 간사들에게 유학생들이 직면하고있는 영적 어려움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주셨다. 그 모임에서 우리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를 주제로 선택했다. 우리의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영적 각성이 있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우리의 자아가 치유되고 회복되기를 원한다.


코스타 2002에 거는 기대


집회를 통해 가장 먼저 구하는 것은 ‘죄로부터의 회복’이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죄로부터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매년 코스타 집회에서 우리는 백여명의 잃었던 영혼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영혼의 축제를 경험해왔다. 구원을 위해 인간에게 주신 유일한 이름 예수,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영혼들을 코스타에 보내는 이들이 있다. 코스타 집회 중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 개개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조장들과 강사님들이 있다. 이들의 아름다운 동역은 하나님께서 친히 지휘자가 되셔서 이끌어내시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선율로써 코스타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전통의 하나이다. 주변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친구가 있는가? 적극적으로 권하여 함께 오기 바란다. 코스타에는 그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주의 일꾼들이 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치유와 회복을 기대한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은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부여한다. 하지만 우리의 자아는 이미 죄로 말미암아 구겨져있고 상처와 쓴뿌리로 인해 병들어 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 4:2). 집회 가운데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경험하기를 원한다. 우리 안에 있는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서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처와 미움과 쓴뿌리와 더불어 현재 유학생이라는 신분에서 오는 독특한 문제들 — 타문화권에서의 미성숙한 적응, 지나친 목표 지향적 삶, 급변하는 조국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으로 인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과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소위 잘 믿는다는 이들 조차도 타문화에서의 열등의식, 비전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성공주의라는 세상적인 가치관에 끌려 가고 있는가? 더욱이 그들을 영적으로 성장시키고 치유하는 효과적인 사역의 부재로 말미암아 그들의 자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룩하게 회복되는 과정에 있기보다, 오히려 영적으로 소진되고 상처의 골은 더욱 깊어지는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치료하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영혼을 쪼개고 회개케 하시며 그 가운데 치료하시는 역사가 코스타 집회 중에 있기를 기대한다.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 안에 충만히 채워진 은혜가 밖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유학생들의 삶의 대부분이 드려지는 학문과 캠퍼스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안에서는 좋은 크리스찬, 그러나 사회에서는 열등생이라는 균형잡히지 않은 신앙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삶의 전영역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위해 힘쓰는 것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기 원한다.


크지만 작은 집회


외견상의 코스타는 대형집회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개개인의 참가자들의 필요에 부응하는 작은 집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첫째, ‘조’별 활동은 코스타가 크지만 작은 집회가 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여러 지역에서 온 참가자들로 구성되는 개개의 조는 코스타 기간동안 서로 중보하고 격려하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귀한 신앙 공동체이다. 조별활동을 통해 신앙의 눈이 자신의 지역사회를 넘어 미국 전역을 보게되는 시야의 확장도 경험하게 된다. 이때에 이루어진 교제가 코스타 이후에도 계속 지속되는 경우를 자주 보게된다. 둘째, 참가자들은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영적 훈련과 진단의 기회를 제공받는다. 강사님들과의 격이 없는 교제도 아름답게 내려오는 코스타의 전통이다. 셋째, 참가자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상담하고 함께 기도하는 ‘개인 상담’의 기회가 있다. 특별히 유학생 가정의 어려움, 학업과 진로 상담, 건강한 교회생활, 배우자 등의 문제들을 들어주시고 함께 기도하며 상담해주실 전문 상담요원과 강사님들이 참가자들을 섬길 것이다. 올해는 특별히 조별로 배정된 멘토(mentor)를 통한 상담의 기회가 주어진다. 멘토들은 주로 신앙과 학문의 선배들로 구성될 것이다. 멘토들은 참가자들과 비슷한 과정을 겪어온 사람들로써 참가자들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기도하며 조언하는 형님, 누나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조별활동, 세미나, 상담, 그리고 멘토링을 통해 참가자들은 자신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개별적 음성을 듣게되기를 기대한다.


코스타 2002 그 이후…


이 모든 것은 한번의 코스타 집회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년간의 코스타 집회를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이다. 매년 코스타를 마치고 참가자들이 돌아갈 때, 가장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돌아간 그 땅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번 코스타 2002에 참가하는 거의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영적 휴식/재공급’을 참석의 동기로 선택했다. 현재의 상황을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전 지역에서 ‘삶’에 지친 그리스도인들이 코스타에 긴급 수혈을 받으러 오는 것이다. 긴급 수혈을 받은 후 돌아가면, 약효가 있는 동안 (약 1달?) 반짝 열심을 내다가, 무시무시한 가을학기의 시작과 더불어 장렬히 전사해 가는 것은 아닌지…. 개인적인 경험으로 미루어본다면 가을학기 중간고사가 가장 치열하면서도 처참한 전투장이 되는 것 같다. (성경공부 인원의 절반이 중간 고사 전후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개인적으로는 코스타가 긴급수혈의 장이 되기보다는 ‘축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전국적으로 흩어져 열심히 주를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우던 지체들이 모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누고 함께 기뻐하는 축제의 장이 코스타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처받은 군사들을 위로하고 승전한 군사들은 함께 그 기쁨을 나누며, 계속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서로 중보하는 그런 장이 코스타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은 지나친 꿈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코스타 집회 기간중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아의 치유는 순간의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의 코스타 참석 이후의 삶에서 열매를 맺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참가자들이 섬기고 있는 지역교회에서 그들을 계속 격려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세워주어야 한다. 유학생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세워주는 여러 모범적인 교회가 있음에 감사한다. 이제는 힘을 합하여 미국 전역을 향한 사역을 해야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받은 은혜를 나누어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코스타는 지역에 있는 유학생 지도자들을 훈련시키는 사역(gpKOSTA)을 지역교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해왔다 (http://gp.kosta.ws). 지금까지 보스톤, 샌프란시스코, LA, 뉴욕/뉴저지, 그리고 중서부 지역에서 gpKOSTA가 열렸으며, 향후의 지역선정을 위해 기도로 준비중이다. 코스타는 신세대의 공간인 싸이버 공간을 통한 사역들도 개발해 왔다. 코스타 집회 이후의 계속적인 영적 공급을 위한 eKOSTA (http://www.ekosta.org), 같은 학문 또는 관심자들이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나눔의 장 tmKOSTA(http://tm.kosta.ws), 타문화권 선교에 헌신한 지체들의 후속 양육의 장 winKOSTA (http://win.kosta.ws) 가 있다. 올해는 특별히 코스타에 조장으로 섬기는 지체들의 네트워크와 지원을 위한 jjKOSTA (http://jj.kosta.ws)가 새로운 사역으로 시작된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나눌 수 없었던 교제와 누릴 수 없었던 자원을 싸이버 공간에서 연중 내내 공유하자는 것이다.


하나님의 그림


코스타 집회를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동역자를 보내어 주신다는 것이다. 각자 자신의 사역의 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나가는 귀한 동역자들을 만나게 해주신다. 각자의 눈에는 자신의 사역의 조각만 보인다. 하지만 코스타를 준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그 조각들을 조금씩 맞추어 가시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코스타 집회 중에 하나님께서 맞추신 전체 그림을 발견하고 전율케 된다. 그렇게 만난 동역자들은 비록 거리가 떨어져있더라도 얼마나 귀한 동역자가 되는지, 하나님께 감사드릴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실까? 우리들의 부서지고 훼손된 자아가 하나님의 손에서 온전해지는 것을 꿈꾸어본다. 그리고 회복된 그리스도의 군사들이 미국, 한국, 그리고 전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시키는 그림을 상상해본다. 하나님께서 그리시는 그림의 한 조각이 되고싶지 않은가?

[고창현] 기독 청년의 인생관: ‘고지론’을 수정 보완하라!

이코스타 2002년 5월호

기독 청년의 인생관: ‘고지론’을 수정 보완하라!


요셉의 삶을 통해 조명해 본 기독 청년의 인생관


‘고지론’


1996년 여름, 미주 코스타를 갔다 온 한 지체를 통해 나는 처음으로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었다. 지금에야 설교 본문과 제목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나에게 목사님의 말씀은 참으로 신선하고 도전적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은혜가 되었던지 그 당시 학교와 교회를 오고가면서 이분의 설교 tape을 들으며 수도 없이 웃고, 울곤 했던 기억이 난다. 백원과 오백원의 가치를 몰랐던 목사님네 막내아들 이야기에서부터 “공부가 인생의 전부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던 한 고등부 학생 이야기, 진정한 겸손과 실력을 이야기하며 항상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대법원장을 꿈꾸는 한 고시 합격생의 이야기, 한 미친놈(?)과 한 미친 분의 자동차가 새벽에 나란히 빨간불 신호등에 멈추어 섰던 이야기 등… 삶에서 경험된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도 그 안에서 깊이 있는 의미들을 찾아내던 김동호 목사님의 이야기식 설교(Narrative Preaching)에 나는 정말 많은 은혜를 받았다. 물론 후에 코스타에 몇 번 참석하게 되면서 김동호 목사님의 세미나나 집회 말씀은 거의 다 같은 내용의 재탕(?)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깨닫게 된 후, 솔직히 좀 지겨워(?) 질만도 할텐데 그럼에도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은혜와 감격 속에 사로잡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러한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 중 청년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1990년대 초부터 학복협(학원 복음화 협의회)과 코스타 집회 등을 통해 유명해진 ‘고지론’ 설교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거의 코스타의 대표적인 표어가 될 만큼 이 ‘고지론’은 특히 전문적인 학업 연마를 위해 먼 이국 땅까지 와 공부하고 있는 많은 기독 유학생들의 학업관과 인생관에 큰 반향과 도전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김동호 목사님의 ‘고지론’ 설교는 대략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에서 고지를 점령하면 최소 3배에서 5배의 전략적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지만 세상 속에서 그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지 못한 이유는 바로 고지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곧 세상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되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먼저 선두(고지)에 서야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우리에게 낮아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낮아지라고 하신 것은 실력이 아니라 자세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낮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실력을 높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인간적인 야망을 위하여 고지를 정복하려고 힘쓰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하여 각자의 고지를 정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이 ‘고지론’ 주장은 여러 관점에서 상당히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기독교인이 천만을 넘는다고 하는 현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 속에서, 이 ‘고지론’은 상당히 도전적이고 실제적인 조언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게다가 이 설교의 주 대상이 코스타의 유학생들과 학복협의 대학생 이상의 고등 학력자들 이라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청중의 특수한 상황에 맞춘 타당하고 적합한 말씀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이 ‘고지론’에서 몇몇 문제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은 ‘고지론’의 주창자인 김동호 목사님의 본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를 받아들이는 청중들의 ‘자기 해석’의 수준에 따라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 ‘고지론’이 지난 10여 년 간 나를 비롯한 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귀한 도전과 은혜를 끼쳤음을 결코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고지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불안한 요소들을 건설적으로 지적함으로서, 청중들이 ‘고지론’ 설교를 들으며 임의적으로 해석, 오해할 수 있는 성경적 가치관과 세계관을 사수하기 위해 ‘고지론’의 수정, 보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러한 수정과 보완에 대해 묵상하던 중, 대안으로 떠오른 성경의 인물이 바로 요셉이었다. 창세기(37-50장: 38장 제외)에 나와 있는 요셉의 삶을 묵상하는 중에 난 강하게 ‘고지론’의 취약점과 중심을 잃은 편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요셉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고지론’의 수정과 보완을 감히 제안하고자 한다.


기독 청년들이 요셉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


자신의 꿈(고지)을 까먹은 요셉?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때에 요셉은 형들을 두고 꾼 꿈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표준새번역)
“Although Joseph recognized his brothers, they did not recognize him. Then he remembered his dreams about them.” (N.I.V.)


유, 초등부 시절에 교회 생활을 한 사람들은 다들 한 두 번쯤 이 꿈꾸는 자(Dreamer), 요셉에 관해 공과 공부를 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요셉이 17살 때 꾼 두 가지의 꿈 이야기(37:7-9)를 들으며 “요셉은 그 어떤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준 꿈을 바라보며 결국 하나님 안에서 이 꿈을 성취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꿈을 가집시다! 비전의 사람이 됩시다!”라는, 그런 가르침 말이다. 유, 초등부 시절에 하도 까불고 다녀서 도대체 공과 공부와 관련된 기억이 별로 없는 내게도 이 꿈의 사람, 요셉에 관한 내용은 비교적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근데 창세기 42:8-9a 말씀을 보면, 우리가 배운 공과 공부의 내용에 반하는 주장을 보게 된다. 꿈의 사람 요셉은 형들이 자신에게 곡식을 사러 온 그 상황에서야 자신이 20여 년 전에 꾼 꿈들을 기억했다는 점이다. 곧 그는 자신의 꿈(고지)만을 바라보고 산 사람이 아니라, 아무 목적이나 야망 없이 그냥(?)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순간 20여 년 전에 꾼 꿈들이 자신의 삶에서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그의 꿈, 그의 고지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점령되어지게 된 것일까? 우린 매일 박사 학위를 언제 받나 하며, 박사 자격 시험(qualification exam)이나 논문 심사(defense)에 매여 살아도 쉽게 고지 점령의 끝이 보이지 않는데, 요셉은 자신이 올라가야 될 구체적이고 분명한 고지에 대한 개념도 또한 목표 의식도 없는 가운데 어떻게 애굽의 총리가 되는 이 고지를 점령하게 된 것일까? 혹 우리가 이해하는 목표 중심(goal-oriented)의 ‘고지론’을 뛰어넘는 그 어떤 고지 점령의 비밀이 요셉의 삶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지를 점령하고도 망가지지 않은 요셉의 말로(?)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창세기 50:19-21)


내가 요셉의 삶에 관심을 갖는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성경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진정으로 성공한 ‘고지 점령자’이기 때문이다. 애굽의 총리라는 막강한 고지를 점령하고도 그는 그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만을 위해 자신의 고지를 온전하게 사용한 몇 안 되는 성경의 인물이다.


애굽의 총리가 된 후 곡식을 사러 온 그의 친형들을 대면할 때 그는 충분히 그가 가진 권력으로 형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지만 그는 그의 고지를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창 45:7)하며 그들을 환대하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찬양했다. 또한 창세기 47장에 나오는 그의 토지개혁은 그의 부패성 없는 청렴결백한 리더십을 보여준다. 7년의 풍년으로 거둔 곡식을 효과적으로 보관, 사용하면서도 그는 단 한 번도 스스로의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주군 바로왕을 위해 충성되게 봉사하다가 나중에는 모여진 돈, 짐승, 전지들을 가지고 애굽의 토지제도를 개혁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47:20-26) 혹자는 창세기 47장의 이야기를 가지고 그가 반민주적이고 강압적인 폭거를 휘둘렀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 이집트의 정치 구조가 왕권 중심적이었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그는 분명 백성들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던 지혜로운 정치 지도자였음이 분명하다. (47:25)


무엇보다 그의 위대한 말로(?)를 증명하는 이야기는 후에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 다시 요셉의 복수를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다가가 고백하는 그의 ‘하나님 중심의 신앙관’과 삶의 자세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지의 이점(利點)을 철저히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섭리 안에서 이해하고 활용하고자 한 사람이었다. 보복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그는 단순히 안심과 위로를 베푸는 선을 뛰어넘어 형들과 형들의 자녀들까지도 자신이 기르겠다며 대국의 총리답지 않은(?) 섬김과 헌신의 말로를 보여주었다.


그는 철저하게 ‘고지’를 ‘고지’로서만 이해한 성경의 인물이었다. 고지가 결국에는 자신의 발목을 잡아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게 하는 올무가 아닌,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관’을 가지고 자신에게 허락된 고지를 통해 이웃과 세상을 섬기고 구원하는데 사용된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고지 중에 고지라고 할 수 있는 왕권(Kingship)을 손에 잡았던 사울왕과 다윗왕, 그리고 솔로몬 왕 역시 결국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허락한 고지를 자신의 것으로 알고 방종과 간음, 살인과 불순종의 죄들을 저질렀다. 그러나 요셉은 오히려 올라갈수록 그에게 주어진 고지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만을 추구했던 사람인 것이다.


‘옷 로비 사건’ ‘교회 세습’ 등을 통해 기득권 층에 있는 많은 현대의 ‘고지 점령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추태와 실망감은 분명 우리로 하여금 ‘고지론’에 대해 불안감과 경계심마저 갖게 한다. 그러나 고지에 올라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려와 섬길 생각은 안하고 그 위에서 안주하며 자신들의 만족과 유익만을 위해 산다고 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고지’ 점령하는 일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요셉의 삶을 통해 무엇이 우리의 궁극적인 ‘고지’여야 하며 또한 어떻게 올라가는 것이 성경적인 고지 점령인지를 제시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올라가면서도 쓸데없는 생각을 안하고 올라가서도 쓸데없는 행동으로 넘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요셉은 어떠한 인생관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게 된 것일까. 그리고 ‘고지론’은 요셉의 삶을 통해 어떻게 수정 보완될 수 있는 것일까.


1. 하나님이 나의 고지이다!: 고지를 점령하라는 Doing의 유혹 앞에 Being의 자세로만 나아갔던 요셉


요셉의 인생관에서 우리가 첫 번째로 엿볼 수 있는 특징은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으며, 그 분과 동행하고자 하는 존재론적(Being)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는 점이다.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창 39: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1)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창 39:23)


요셉과 관련된 창세기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확연하게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 전개 상의 전환점(turning point)은 바로 창세기 39장이다. 37장에서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하나님과 동행하는 요셉의 삶’이 39장의 중심 모토(motto)로 계속 강조되기 때문이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요셉은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진 후부터 이스마엘 상인들에 의해 보디발의 노예로 팔려지는 기간 사이에 그 어떤 신앙적 변화와 성숙을 체험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39장의 초입 부분부터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바로의 시위대장인 보디발의 노예로 팔려간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요셉의 하나님(God) 여호와가 그와 함께 하심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보디발의 수하에 있었을 때만 드러난 요셉의 특성이 아니었다. 그가 나중에 보디발의 아내의 계략에 의해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도 그는 전옥(典獄)에게서 똑같은 평을 듣게 된다.


곧 그에게는 하나님 그 분만이, 그리고 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존재론적(Being) 삶이 비전이자, 고지였던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이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이루고 성취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고지였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분만을 바라는 삶(Being)이 곧 그의 궁극적인 고지였던 것이다.


내가 ‘고지론’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첫 번째 불안은 바로 하나님 당신보다 고지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인간의 야망 중심적(Ambition-oriented)인 경향이다. 곧 수단을 목적으로 순식간에 바꿔 버리면서도 이를 하나님을 위한 ‘고지’라며 계속적으로 합리화시키는 인간의 본질적 죄성을 경계한다. 세상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올라가는 것은 좋은데, 그리고 이러한 점이 분명 세상의 엘리트주의(Elitism)와는 차별화된 기독교의 정신인 것 까진 좋은데, 과연 인간의 실체가 고지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이 고지 뒤에 계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겸허하게 내려와 세상을 섬길 만큼의 양심적 존재냐는 점이다. 사실 많은 경우에는 이미 고지를 올라가는 도중에 ‘하나님을 위한 고지'(비전)를 ‘나를 위한 고지'(야망)로 자연스럽게 바꾸고 합리화하는 우리의 자기 중심적(Self-centered)인 현실을 바라볼 때, 어떻게 보면 목표 중심적 언어인 ‘고지론’은 성경의 가르침을 잘못 전달할 소지가 다분히 있다고 생각된다. 굳이 ‘고지론’이라는 진취적이고 목표 중심적인 관점에서 성경적 인생관을 이해시키고자 한다면 우리의 ‘고지’는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고 인정받아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닌, 바로 하나님 그 분 자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올바른 ‘고지론’이라 생각한다.


나는 요셉이 자신이 17살 때 꾸었던 그 꿈만을 바라보며 입을 악 물고 열심히 목표를 향해 살아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목표 중심적인(goal-oriented) ‘Doing’의 관점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면, 그는 나중에 자신의 존재를 형들에게 드러낼 때 하나님의 주권을 자랑하며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다”는 위대한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창 45:7) 오히려 자신의 목표에 큰 방해가 되었던 형들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밀거나 아니면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이러한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은근히 자신의 의를 드러내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고지’는 하나님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매일 매일의 삶이 그의 ‘고지’이자 비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왕의 경호 대장 보디발이나 감옥의 전옥이나 이집트의 왕 바로 앞에서나 하나님만을 추구했다. 하나님을 비전으로 삼았기에, 그래서 그 분 만을 바라며 그 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했기에, 그는 종살이도 감옥살이도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Doing’의 종교가 아니라 ‘Being’의 종교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이루겠다, 성취하겠다고 노력하는 종교가 아니라 그 분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존재론적인(Being)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의 하나님 되심을, 그 분만이 나의 비전 되심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러한 존재론적 삶(Being)을 추구해 갈 때, 그분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건강한 동기의 순종적 행위(Doing) 또한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게 되며,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앞길을 그 분의 뜻대로 인도해 나가시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허락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지금 잠깐 하나님 바라보는 일을 멈추거나 아니면 그 분과의 관계를 소홀히 여기고 일단 공부나, 연주회 그리고 전시회 준비에 집중하겠다는 자세는 그 발상 자체가 이미 하나님 중심에서 ‘고지’ 중심의 자기 야망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는 고도의 자기 합리화인 것이다.


우리의 ‘고지’는 석·박사 학위, 성공적인 졸업 연주회나 전시회, 콩쿠르 입상, 그리고 그 후에 펼쳐지는 성공(sucess)과 인정(recognition)의 삶이 아니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Doing’이 아니고 오직 그 분만을 추구하는 ‘Being’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속되는 이 ‘Being’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리고 그 뜻은 요셉과 같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a way)일수도 있고 아니면 스데반 집사와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길(a way)이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성공한 인생이다. 왜냐하면 성공하는 ‘고지,’ 인정받는 ‘고지’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 그 분만이, 그분과 동행하는 친밀한 관계가 그들의 진정한 ‘고지’였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본 원고는 뉴욕 맨하탄 헌터 College의 K.C.F.(Korean Christian Fellowship) 모임과 로체스터 연합 장로교회 청년부 수련회(2002년 4월 5-6일) 세미나 등을 통해 나누어졌던 생각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특히 한국에서 ‘주님의 교회’를 개척, 사역하시고 몇 년 전 스위스에 교단(장로교 통합) 선교사로 헌신하시다가 귀국하신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 ‘비전의 사람'(장신대 신학대학원 사경회: 2000년 3월 29일-31)을 통해서 많은 도전을 받은 원고임을 밝혀 둡니다.

기독 유학생의 엘리트 주의

이달의 초점


기독 유학생의 엘리트 주의


유학을 한다는 것,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자신을 던져 더 나은 학업환경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험을 감수하는(risk-taking)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을 나온 유학생들 가운데에서 그러한 모험 감수(risk-taking)를 하고서도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나선, 적극적, 진취적, 모험적 엘리트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허들을 뛰어 넘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성향을 가진 유학생들이기에 그들이 보이는 삶의 방식과 태도도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 그것은 그들이 매우 목표 지향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며 행동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학위’로 상징되어 질 수 있는 어떤 ‘성공’을 바라보지 않고서 대부분의 유학생들에게 이러한 모험 감수는 그 자체로 절대로 매력적인 것일 수 없다.


이러한 이들의 삶의 방식은 매우 자주 그리스도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든 유학 생활 도중에 만난 사람이건, 이미 유학을 오기 전에 그리스도인이었건 간에 이들의 신앙 행태는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목표 지향적이고 성공지향적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회심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질이나 성품 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러한 기질과 성품도 분명히 ‘거듭나야’함을 생각해 볼 때 유학생들의 일반적인 신앙의 모습들은 한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목표 지향적 자세의 문제


긍정적인 목표 지향적 자세의 모델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빌립보서 3:14)을 그리스도인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표 지향적인 자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목표가 어디에서 기인했느냐, 그리고 그 목표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거의 모든 기독 유학생들의 ‘목표’는 비기독 유학생들의 목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저 ‘공부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허울 좋은 합리화를 한다는 것을 굳이 차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목표 지향적 자세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목표를 학문적/직업적 성취로 설정해 놓고 있는 유학생들에게 신앙 훈련/신앙 교육의 필요를 인식시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유학생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신앙 훈련이나 성경공부도 자신의 목표를이루는 장애물로 여기지기 십상이다.


2. 성공 지향적 자세의 문제


이 역시 소위 ‘성공’에의 기준과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자세의 건강함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경우에도 세속적 가치관에 근거한 성공주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성공 지향적 자세들이 유학생들과 같은 소위 ‘엘리트’ 그리스도인 사이에 편만한 듯 보인다.


대부분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 노력(성실함)과 성공(성취)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성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은 분명 하지만, 모든 성실함이 언제나 성공으로 이끌어 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노력을 했음에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러한 사람들은 실패자이자 낙오자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소위 ‘고지론’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 자신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으로 합리화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을 “기도와 믿음으로 담대히” 물리치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3. 행동 지향적 자세의 문제


“40일 금식기도 3회” 어느 ‘부흥사’의 명함에 이런 ‘경력’이 써 있었다고 한다. 40일 금식기도를 몇번 했다는 것이 신앙의 이력에 들어가는 것도 우습거니와, 어떤 신앙인의 모습이 어떤 일을 행했는지로 판단되는 모습은 더욱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소위 ‘엘리트’ 기독 유학생들 사이에 너무나도 많이 발견되는 모습들이다. ‘예수를 믿으면 이런 것들은 해야지’ 하면서 여러 가지 신앙의 행동들을 시도해 보는 모습들. 그래서 흔히 ‘헌신’의 핵심을 ‘행함’에 두는 모습을 흔히 발견한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어떤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너무나도 자주 눈에 뜨인다. 지역교회에서도 당장 이처럼 눈에 띄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여기기 마련이고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진정으로 이르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쉽게 지치게 되고, 고갈이 되고, 상처를 받게 된다.


금년 코스타의 주제를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치유되는 자아”로 잡은 것은 어찌보면 매우 일반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유학생들의 성향에 매우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비정상적이고 비성경적인 (기독) 유학생들의 흐름이 이번 코스타 한번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다소 비상식적인 낙관적 기대이겠으나, 적어도 소수의 사람들이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유학생 문화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언급한 유학생들의 문화 속에서 상처를 받고 고갈된 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풍성한 “치유”를 경험하는 일들이 있었으면 한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크게 일하실 코스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