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영적 지도자의 권위 통찰 (Authority insights)

지도자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권위”가 도전을 받는 시대 속에 살고 있고 “권위”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지만 나쁜 것은 권위를 내세우는 “권위주의”이지 참다운 “권위”가 사실상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한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참다운 권위를 가진 지도자에 대하여 목말라 하고 있다. 지도력은 참다운 권위에서 나온다. 그래서 한 사람이 지도자로서 성숙해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권위에 대하여 바로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지도자가 성숙해 가면서 특히 사역의 초반부에 지도력의 권위에 관하여 어떤 배움이 있어야 할까?


첫째, 한 사람이 권위를 실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권위에 순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로 우리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철학이 다를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가 그 권위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권위 질서를 세우시고 교회와 가정 그리고 사회와 국가 속에 일정한 권위의 구조를 세워 두셨다. 그 지도자들에 대하여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그 권위가 하나님에 대항하고 하나님을 거슬리는 것이면 우리가 저항해야 하지만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도자에게 반항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권위를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추종자가 지도자들에 대하여 불평을 하게 되고 객관적인 입장으로 비판한다고 이야기하기 쉽지만 사실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추종자들은 지도자처럼 전체를 보는 관점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 위치에 서 보면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한 지도자가 자신의 위의 권위에 대하여 순복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순복할 것을 요구한다면 누가 순복할 것인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한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예는 다윗의 경우이다. 사울 왕이 그를 원수처럼 여겨서 몇 번이나 죽이려고 하였지만 자신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때에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이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세우신 권위 질서를 존중하는 다윗이였기에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사회에 팽배해 있는,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위의 권위에 순복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즉 집에서는 부모에게,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학교에서는 스승에게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도력 개발에서 초반부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지도자는 권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도력을 수행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그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하여 갈등을 경험할 수가 있다. 사실상 지도자가 바른 비젼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 갈 때 순종하지 않고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정말로 힘이 들게 된다. 지도자가 권위에 대하여 도전을 받았을 경우에 보이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그 도전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람이 나를 반대하고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지도자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권위, 즉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그 도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상처입고 반응하기 보다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반응이다. 지도자가 보여야 할 반응은 자기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우는 일에 정진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권위를 지키시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에 어떤 추종자가 문제를 일으킬 때에 만일 지도자가 그 문제 일으킨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공격하면 다른 추종자들은 그 지도자의 모습에 실망하고 도리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옹호하게 된다. 그러나 지도자가 도리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용서하고 그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면 그 모습들을 보고 다른 추종자들이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는 결국 이런 갈등들을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에 순복하는 것을 건강하게 배우지 못하였다. 그들의 경험가운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권위에 피해를 입었기에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반항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쌀 때에 그들도 권위에 순복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지도력 개발에서 삶의 후반부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셋째, 지도자는 바른 권위의 사용을 배워야한다. 권위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섬기기 위하여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된 이유는 지도자들이 그 권위를 가지고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권위를 주장하는 권위주의를 가졌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권위주의를 세상의 이방인들의 것으로 규정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속한 자들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지도자들이 도리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적 지도자들은 권위의 사용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물론 많은 경우에 삶과 사역속에서 지도자들이 이런 섬김의 지도력이 아니라 권위주의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그것으로 인하여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권위의 사용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또 좋은 영적 지도자들의 모범을 통하여 권위의 바른 사용, 섬기기 위한 사용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성경적인 권위사용의 가치관을 배양하지 않으면 우리의 부정적인 경험들이 우리의 지도력 사용에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은 우리도 똑같이 부정적인 권위사용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깨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워진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따르는 자들을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넷째, 지도자는 여러가지 종류의 권위를 가져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권위는 영적인 권위이다.
영적인 권위란 지도자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기 때문에 추종자들이 그 지도자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허락하는 권위를 말하는데 이는 주로 인격과 모범과 설득을 통하여 영향력을 발휘한다.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능력이 아니다. 다른 지적인 권위나 지위의 권위 혹은 인격적인 배려에서 오는 권위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노력해서 취득하는 능력이지만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하나님께 점점 더 깊이 다가섬으로 인하여 생기는 열매이고 부산물이다. 우리가 권위를 목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한 분을 목적하여 나아가고 섬기고 동행할 때에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임재가 우리 삶과 사역가운데 나타나고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고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영적인 지도자들이 의지해야 할 권위인 것이다. 물론 우리 지도자들에게 다른 모든 종류의 권위와 능력도 필요하다. 지식도 지위도 인간관계도 때로는 보상을 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역이 점점 깊어질수록 지도자들에게는 영적인 권위가 요구되는 것이다. 풀러신학교의 킬린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영적 권위의 기반 위에서 사역을 실행한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의 삶가운데 권위에 순복하는 일이 힘이 드는가? 그로 인하여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여 지도자와 갈등하고 사역지를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는가? 여러분이 지도자로써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특정한 사람들이 반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가? 그것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가? 당신이 권위주의에 빠져서 권위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하는 그런 지도자 아래 있어서 힘들어 하는가? 무엇이 참된 권위요 지도력인지 가치관이 혼돈되는가? 아니면 당신의 참된 권위의 필요를 느껴서 찾고 갈구하는데 손에 잡히지가 않는가? 이런 문제들은 모든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도력의 성숙을 위해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다. 권위에 대한 바른 통찰을 하고 참다운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의 권위 (Authority)

월드미션대학교의 총장님이신 임동선 목사님께서는 매 학기 신입생들을 맞이하면서 주시는 격려에서 꼭 빼어놓지 않는 말씀이 있다. 좋은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신학교를 다니면서 인격, 지식, 또 영력을 쌓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열심히 공부하여서 지식을 쌓고 고난의 경험을 통하여 인격을 다듬고 하나님께 깊이 나아가는 기도 생활을 통하여 영력을 쌓으라고 말씀하신다. 사실상 지도자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능력을 갖추고 그 능력을 사람들을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영적 지도자가 갖추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영적인 능력과 권위이다. 일萱?효과적으로 사역을 감당했던 영적 지도자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주로 영적 권위의 기초 위에서 지도력을 발휘한 것을 살펴볼 수가 있다.


한국의 지도자들을 연구하면서 많은 지도자들의 삶과 사역 속에서 영적인 권위를 인식하고 소중히 하고 사역에서 영적 권위의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서도 한경직 목사님은 그의 사역 가운데 영적 권위를 잘 인식하고 사용하신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분은 목회자들을 위한 글에서 영적인 권위에 대하여 가르치셨다. 주님께서도 “가르치실 때에 서기관과 같지 아니하고 권세를 가지고 가르치셨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의 바른 권위를 강조하셨다. 그러면서 설교자가 영적 권위로 가르치기 위한 다섯 가지의 중요한 원리를 강조하셨다.


첫째, 설교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다른 어떤 지식을 통하여 권위를 가지려 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할 때에 지도자들은 영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지도자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에 권위를 가지게 된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면서 그것을 지도자 스스로가 확신으로 받아들이고 전할 때에 권위가 있는 것이다. 셋째, 지도자는 그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즉 도덕적인 면에서 타의 모범이 될 때에 영적인 권위가 있는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화려하게 말을 잘한다고 영적인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넷째, 지도자가 인간의 영혼을 향한 깊은 애정과 구원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을 때에 영적 권위가 있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한 지도자에게 영적 권위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지도자가 기도생활을 통하여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영적 권위가 나온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고 순복할 때에 영적 권위가 있는 것이다. 한경직 목사님은 이상과 같은 원리 위에서 삶과 사역을 감당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그분의 지도력을 따른 것이다.


풀러 선교대학원의 지도자학 교수인 클린톤 교수는 영적 권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영적 권위란 “사람들이 그들의 지도자 안에 있는 영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 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의 삶과 사역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보고 그 결과로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따르는 것이 영적 권위이다. 이런 영적 권위는 주로 지도자가 삶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때 또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로 인한 성령의 열매가 그 삶 가운데 나타날 때, 또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이 나타날 때 사람들은 지도자의 영적 권위를 인정해 준다. 또한 영적 권위가 있는 사람은 자기의 권위를 주장하기보다는 주로 설득과 모범 그리고 도덕적인 면에서의 탁월함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이끄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영적 권위를 가질 수가 있을까? 영적 권위란 욕심을 내어 소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되게 나아가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의 참다운 교제, 깊이 있는 만남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결과요 열매이다. 영적 권위 자체가 목적인 것이 아니란 오직 하나님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향한 깊은 열정이 있을 때에 주어지는 하나의 결과이다.


영적인 지도자는 여러 다양한 능력을 소유하고 상황과 대상에 맞게 적절하게 섬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영적인 지도자가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여러 다른 능력을 소유했는가 아닌가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설사 우리가 다른 모든 면에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할찌라도 그 능력 때문에 하나님 앞에 절대 겸손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을 목적하고 의지하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영적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또 지도자들의 영적 권위가 부족한 것이 우리 지도자들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하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말하면 너무 아이러니컬한 표현일까? 우리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역을 하신 대표적인 영국의 영적 지도자중에 한 분이신 존 스타트 목사님은 그의 “리더십의 진실”이라는 책에서 사도 바울의 영적 권위에 관한 중요한 역설적 진리를 지적하였다. 고린도후서 12:9-10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있는 가시를 없애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세번 간절히 드린 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를 의지하여 살아갈 때에 주어지는 선물이요 결과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의 능력이 있을 때에 그것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않는 경향이 있다. 도리어 우리가 약할 때에 우리는 나약함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영적 권위의 열쇠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동행하는 것인데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하여 우리가 더 하나님께 나아가게 됨으로써 우리의 나약함이 도리어 우리의 진정한 강함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역설이다.


현대는 권위주위에 강하게 반발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참다운 권위에 대한 깊은 갈증을 가지고 있는 시대이다. 권위를 섬기기 위하여 사용하는 사람, 다양한 권위를 소유하고 상황과 사람들에 맞는 권위를 사용할 수 있는 지혜의 사람, 무엇보다도 우리가 의지해야 하는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임을 기억하는 사람,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설을 이해하는 사람, 이런 지도자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고 사람들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