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기독학생운동의 역사와 비전

이코스타 2005년 2월호


(본 글은 2000년 KOSTA/USA 김경수 총무의 세미나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복음주의’, ‘학생운동’, ‘한국사회’라는 무거운 주제를 복음주의라는 연결고리 가운데 다루고자 한다.


대학의 위기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한 사회가 건강한가는 “학교”, “교회”, “법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을 돌아보면, 이 세가지 모두 좋지 않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의 대학의 상황은 더욱 문제가 있는데, 그 예로 서울대의 위상이 이웃 나라인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들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의 현 상황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3가지를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   대학생 스스로의 정체성 인식의 변화이다: 과거에 대학생들은 적으나마 스스로 엘리트라는 의식이 있었으나, 최근의 대학생들은 스스로를 엘리트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에는 교육부에서 평생교육이라는 기치 하에 대학교육을 보편화 시키고자 했던 정책이 있었다고 하겠다.
-   대학 문화의 변화이다.: 예전에는 이념이 대학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면, 현재 대학은 스스로 상업화하고 있고, 경쟁 중심의 문화로 변화하였다.
-   이단 단체와 민족 종교의 침투이다: 과거 대학 신입생들 중에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일 종교를 가진다면 어떤 종교를 가지기를 원하는가?’는 설문 조사를 하면, 기독교와 천주교가 다수를 이루었었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를 보면 민족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했슴을 알 수 있고, 더욱이 대학 내 기독교는 이단들에 의해 시달리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이런 세가지가 한국 대학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다.


학생운동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학생운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학생운동’하면 주로 정치적인 데모를 떠올리곤 하지만, 사실 ‘학생운동’은 정치적 운동과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다. 첫째, 학생운동은 주체가 학생 스스로이어야 하며, 또한 그 대상도 학생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둘째, 학생운동은 정치, 문화, 종교의 영역에서 주로 나타난다. 한국 대학의 경우에는 정치적 학생운동은 더할 나위없이 활발했고, 문화 학생운동도 한 때 ‘탈춤반’이나 ‘샹송반’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그리고 종교적 학생운동은 CCC, IVF, YWAM과 같은 선교단체로 대표되어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세가지 형태의 학생운동은 90년대 들어 상호의 영역을 넘나 들면서, 그 특징을 구분 짓기 어려워졌다. 그 예로 ‘기독 총학’을 들 수 있는데, ‘기독 총학’이란 각 대학의 기독 연합회에서 총학생회장의 후보를 배출함으로써 정치적인 영역에 참여하려는 시도이다. 비록 이런 시도는 성공 사례와 더불어 많은 비난도 받으므로, 시도 자체에 대해 회의을 남기기도 했다.


정리하자면, ‘학생운동’이란 ‘학생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운동’이라 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많은 의문이 떠오르는데, ‘현재의 간사중심의 선교 단체들은 간사들이 주로 최종 결정권이 가지지 않는가?’하는 점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선교 단체들의 운동을 학생운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간사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라는 점에서 간사운동 혹은 조직운동이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복음주의’란 무엇인가?
영국 옥스포드 신학부 교수인 Alister McGrath가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라는 책에서 복음주의의 특징을 6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다음 여섯 가지에 우선점을 두는 특징을 지닌다.
-   성경의 절대권위
-   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영광
-   성령의 주권
-   개인적 회심의 필요성
-   복음전도의 우선성
-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성


복음주의란 어떤 하나의 교파나 단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이 가지는 특정한 믿음의 관점’이라 하겠다. 그 예로 천주교나 자유주의 신학 가운데서도 복음주의자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주의에 대한 용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면, evangelism은 ‘복음 전도’, evangelization은 ‘복음화’, 그리고 evangelicalism을 ‘복음주의’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evangelicalism이라 불리는 ‘복음주의’는 복음을 전하는 ‘복음화’와는 구분되어 사용되어야 한다.


복음주의의 역사
복음주의의 역사를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제 1세계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조지 뮬러가 다녔던 학교가 할레 대학이라는 곳인데, 이 학교는 프랑케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할레 대학을 다녔던 사람 중에 진센도르프 백작이 있었는데, 그가 만든 겨자씨 모임을 통해 선교사들이 파송되었고, 그 겨자씨 모임으로 모라비안이 생겨나게 되었다. 최근에 많이 행해지는 선교방식이 ‘전문인 선교’인데, 그 당시 모라비안들은 벌써 자신의 전문 직업을 가지고 선교지로 나가는 전문인 선교를 행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살펴보아야 하는 학생운동의 역사는 영국이다. 영국의 학생운동에서 요한 웨슬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감리교를 웨슬레가 창립한 것은 아니고, 후에 그의 추종자들이 만든 것이다. 사실 영국의 학생운동을 살펴 볼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은 챨스 시므온(1759 1836)이다. 이 분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널리 행해지고 있는 귀납법적 성경공부나 강해 설교의 방법을 처음 사용했다는 점이다. 챨스 시므온은 대학 졸업 후에 약 30년을 대학에 남아 교목과 비슷한 역할을 하며,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후, 영국에는 캠브리지 세븐이라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1885년에 캠브리지 대학에서 7명의 선교사가 배로 한 달이 넘은 거리인 중국의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 일곱명의 선교자 중에 CT 스터드(Stude)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스터드는 당대 크로켓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 스포츠 스타였기에 영국 전체가 그들의 선교사 파송을 크게 다룰 수 밖에 없었다. 캠브리지 세븐의 배경을 살펴보면, D L 무디 (Moody)가 있었다. 1882년에 캠브리지에서 D L 무디의 집회가 일주일간 열렸는데, 별 반응이 없던 집회는 마지막 날 열기가 오르게 되었고, 무디가 초청을 하였다. 그 날 D L 무디의 집회에 캠브리지 학부 학생의 약 절반이 참석했고, 그 중에서 200명 이상이 회심을 하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 C T 스터드가 있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캠브리지 세븐이 파송된 이후 1886년 마운트 헐몬에서 D L 무디의 집회가 열렸었다. 그 집회에 89대학에서 251명이 참석을 하는데, 그 중에 100명이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사실 이 무디의 집회는 로버트 와일러가 총무로써 주관을 하게 되는데, 와일러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1945년까지 각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사로 초청하는 일을 하게 된다. 1886년부터 1945년까지 대학생 중에서 무려 20500명이 해외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이 기간은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시기이고,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바로 이 20500명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1886년부터 약 2년간 와일러가 방문한 대학은 약 162개에 이르는데, 그 방문 기간 중에 챨스 스터드가 선교보고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스터드가 방문한 학교는 코넬(Cornell) 대학이었는데, 그 집회 가운데 존 모트 (John R. Mott)가 있었다. 존 모트는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존 모트는 SVM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만든 단체가 아이러니 하게도 WCC이다. 존 모트가 1895년 WSCF (국제 기독학생회)를 창설하는데, 그 후 1990년도 초 WSCF와 현재의 복음주의 계열이 분열을 겪게 된다. 그 분열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중의 하나가 자유주의의 침투였다. 존 모트는 감리교 평신도로서, 전 세계를 다니며 학생 집회를 열어, 선교사를 헌신케 하는 탁월한 mission mobilizer였다. 존 모트의 집회는 일본에서도 열렸었는데, 그 집회에 참석한 유일한 한국 사람이 윤치호였고, 그 집회의 영향이 한국에도 미치게 된다. 1945년에 SVM은 막을 내리지만, 곧 이어 1946년에 Urbana 대회가 시작되게 되었다. 이 얼바나 집회를 모방해서 한국에서 열린 집회가 다름 아닌 ‘선교한국’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전체적인 학생운동은 ‘선교’와 관계하면서 진행되어 왔슴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제 1세계의 학생운동의 특징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전통 복음주의 신앙을 대학 안에서 발견하고 계승시켰다.
-  세계 선교 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  성경공부와 기도운동이었다.
-  사회 개혁에 관심을 가졌다.


요한 웨슬러의 경우만 보더라도, 조지 뮬러보다 고아원을 더 많이 설립할 정도로 사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제 3세계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살펴보자. 제 3세계의 학생운동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일어나게 된다. 일본의 경우는 개화가 일찍 되는 까닭에 다소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에서 윌리암 클락의 영향으로 1878년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우찌무라 간조가 대표적인 사람이다.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로는 김교신 선생과 함석헌 선생이 한국 교회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중국의 경우, 문화혁명 전에 북경대학의 IVF에 소속된 학생 숫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활발했다. 다시 말해, 제 3세계의 학생운동은 접목되고 이식되었다는 측면이 강했다.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학생운동은 크게 3세대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45년 이전, 해방 이후, 그리고 1980년 이후가 바로 그것이다. 해방 전에는 Y운동으로 불리는 YMCA가 주도를 했고, 해방 이후에는 초교파 선교 단체들이 주도를 하게 된다. 1980년 이후에는 초교파로써 연합하고 협력하는 운동들이 많이 생겼다. 코스타도 그런 흐름 중의 하나라 하겠다. 한국 YMCA의 간사 1호는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이상재 선생이 60세에 YMCA의 평간사로 일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1세대 운동은 민족적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2세대의 초교파 단체의 운동은 성경공부와 해외선교에 중요한 영향이 미쳐왔다. 3세대 학생운동은 네트웍 운동으로 연합과 협력을 이루어 오고 있다. 코스타도 그 예라 하겠다.


제 2세대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2가지 면에서 평가해 보자. 긍정적인 면은 경건생활, 복음 전도, 제자 훈련을 강조하고, 방법론 강조했으며, 조직 의식화된 기독교 지성을 배출하게 된다. 문서운동이 활발하였으며, 영적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또한 선교의 붐을 조성했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면은 서구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너무 많이 가지고 섹트화되었다 점이다. 신앙적으로도 너무 편향적이다. 즉 다소 근본주의에 가까운 경향이 있다. 또한 약하거나 왜곡된 교회관을 가지고 있고, 미흡한 상황 문화 변형력이 적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한국의 복음주의 학생운동을 정리해 보면, 해방 이전에는 김교신 이상재 선생같은 분에 의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고, 해방 이후 유신 정권까지에는 복음주의 학생운동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의 학생운동은 공명선거 위원회와 같은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전도하는 운동
-  제자를 양육하는 운동
-  기도를 강조하는 운동
-  성경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운동
-  철저한 성경연구 운동
-  효과적인 그리스도 학자들을 배출하는 운동
-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운동
-  선교하는 운동
-  생활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  창조적인 기독교 사상 문서운동
-  학생의 책임에 위탁하는 학생의 운동
-  민족적 지도력에 위탁하는 운동


위에 열거한 12가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에 학생운동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왔다.


새 시대의 복음주의
그렇다면, 새 시대에 복음주의 학생운동의 역할과 과제는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그 첫째는 ‘선교’에 대한 역할이다.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의 선교는 상당히 활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연합 운동이다. 존 모트의 경우도 학생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네트웍킹하고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예를 살펴보면, 1996년도 ‘복음 민족 역사’ 집회를 위해 작곡된 고형원씨의 ‘부흥’이란 곡이 기존 교회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1997년에는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학생 선교단체를 중심으로 시작했고, 한달 만에 3억 5천만원이 모이는 일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일반 국민에게까지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이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복음주의 학생운동이 기존의 교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또한 사회 참여에도 적극적이 되어야 하겠다.


만일 지금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느 곳을 다니실까? 아마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캠퍼스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은 역사에서 거름과 같아서 눈에 띠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뿌려진 씨가 결실을 맺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캠퍼스에 관심을 가지고 씨를 뿌리라고 도전하고 싶다.

[김경수] 캠퍼스 유학생 모임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코스타 2001년 4월호


다양한 학문적, 신앙적 배경의 유학생들이 같은 캠퍼스에서 만나 어떠한 모임을 시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그들이 미국에서 신앙활동에 참여하는 동기나 유형 또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에 왔으니 미국교회를 배워 보겠다는 생각을 갖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미국교회 멤버가 되거나 미국교회의 인터내셔날 그룹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 또 한 예는 미국대학 내에서 활동하는 미국선교단체의 회원이 되어 활동하는 경우인데. 이는 한인교회가 없는 지역의 캠퍼스에서는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주로 IVF(Inter Varsity Christian Fellowship), CCC(Christian Campus Crusade), Navigators, BSU등의 단체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 유학생들은 한인교회에 출석하게 되고, 보다 활동적인 학생의 경우에는 교회 내의 청년대학부나 유학생모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전형적인 예라 할 것이다.


그런데 위의 세가지 전형 이외에도 최근에는 캠퍼스 내에서 기독유학생 모임을 갖는 예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대학원 유학생보다는 학부 유학생과 1.5세 그리고 2세 중심의 모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에 갓 입문한 학생이거나 이미 신앙을 갖고 있는 학생이거나 다음 세가지 성격의 공동체에는 소속될 필요가 있다. 즉 영성공동체(Spiritual community), 교제공동체(Fellowship community), 사역공동체(Misnisty comminity)가 그것이다. 우리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기 위해서 튼튼한 영성과 끈끈한 교제, 적절한 사역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캠퍼스 기독유학생 모임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위의 세가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를 살펴보자.


논리적인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 교제공동체로서 먼저 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같은 아파트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경우 생활공동체로 시작하는 예도 종종 있다. 구약의 다니엘과 세 친구는 동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생활공동체였다는 점에서 유학생들의 삶과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 캠퍼스에서 기독공동체를 꿈꾸고 있다면 가까운 곳에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유학생을 찾아서 교제하라. 일정기간 교제를 통해 서로를 알고 모임의 방향을 결정하고 두세 명의 동지를 더 얻는 것이 순서이다.


캠퍼스 모임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기도모임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기독학생운동의 역사는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매일 아침 혹은 격일로 캠퍼스 조용한 곳에서 만나라.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눌 뿐 아니라 캠퍼스를 위해서 그리고 조국과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바쁜 대학원생들이 개인적으로 소위 Q.T라 불리는 경건의 시간을 갖기 어려운 경우 두세 명이 함께 모여 20분 정도 개인적으로 묵상시간을 가진 다음 20분 정도 깨달은 바와 적용점을 나누고 기도한 후 헤어지는 패턴도 좋을 것이다. 매일 모임을 갖지 못해도 좋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모이라. 이러한 모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모임을 이끌 리더의 필요성이 이 시기부터 생겨나는 것이 보통이다.


기도모임이 발전하게 되면 대개의 경우 성경공부모임으로 가게 된다. 그런데 말씀을 스스로 묵상하고 공부하는 훈련을 전혀 받아보지 않은 유학생들이 대부분인 경우 이 단계에서 멈칫거리게 된다. 여기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지역교회 목사님을 초청해서 한 학기 동안 성경강의를 듣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 경우, 예를 들어 창세기,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등 한 학기 한 권의 책이 좋다. 또 하나의 방법은 타지역 캠퍼스 모임의 리더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주로 리더 세우는 일을 부탁하는 것이 좋다. 궁극적으로는 모임 자체에서 리더가 세워지고 그 안에서 리더의 대물림이 이루어질 때 캠퍼스 모임은 생명력을 갖게 된다. 대체로 캠퍼스 모임의 실패는 리더의 부재에서 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한 학기 모임의 횟수는 평균 12-14회 정도이다. 모든 모임에서 성경공부를 하려고 하지 말라. 첫 모임과 마지막 모임은 오리엔테이션과 종강모임으로 특별한 순서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중간고사를 즈음해서는 한 주를 쉬거나 특강순서를 만들라. 기도의 날을 정해서 기도회를 갖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 주 정도는 소풍을 가거나, 멤버의 집을 방문해서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러한 캠퍼스 기독유학생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일반적인 목표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각 멤버들이 성숙한 기독지성인으로 자라가도록 돕는다.
  • 각 멤버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사를 깨닫고 개발하도록 돕는다.
  • 모임의 자발성과 독창성을 유지하기 위해 힘쓴다.

또한 지역교회와의 건전한 관계를 설정하라. T대학 캠퍼스에서 몇 년 전 캠퍼스모임이 활발하게 일어나서 100여명까지 모인 적이 있었다. 그러자 해당지역교회들이 각 교회에 출석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교회 내에 별도의 모임을 따로 만들거나 청년부 담당교역자를 캠퍼스모임에 보내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캠퍼스 모임이 순식간에 와해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역교회와 캠퍼스 모임은 그 역할과 사명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지역교회가 그 지역의 캠퍼스 모임을 품고 기도하고 지원하는 것은 필요하나 교회가 캠퍼스 모임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역할을 넘어서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내에서도 한 때 대형교회가 캠퍼스 모임을 활발하게 주도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해 캠퍼스에서 철수하여 교회 자체의 청년대학부 모임에 충실하게 되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캠퍼스 기독학생모임은 그 특수성과 자발성 때문에 대학이 생긴 이래 지금까지 그 독특한 생명력을 지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캠퍼스 모임의 전형적인 진행순서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목적의 유학생들과 만남



캠퍼스에서 기도모임을 시작



모임의 리더를 세움(지역교회 목회자 혹은 타대학 리더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



정기적인 성경공부 시작(학기별로)



모임의 지속적인 성장(리더의 훈련이 필요한 시기)


최소한 20명까지 모임이 성장하다 보면 이제 사역공동체로서의 전환이 요구된다. 다니엘과 세친구의 공동체를 살펴보면, 그들은 때때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바벨론사회에서 영적전쟁 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했다(3장의 풀무불사건, 6장의 사자굴사건). 즉, 선교공동체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의 캠퍼스 모임도 그 역할에 있어서 많은 활동들이 기대된다. 우선적으로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캠퍼스의 상황에 따라 한인유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계획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모슬렘이나 제3세계 국가에서 온 유학생에게 복음을 전하는 활동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캠퍼스모임의 ‘선교사역공동체’로서의 역할이 ‘교제’나 ‘영성공동체’로서의 역할보다 커지는 단계에서 어려움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교제나 영성의 뒷받침없이 사역공동체로의 역할이 강조될 때 모임이 갖고 있는 에너지가 일찍 소모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마지막 단계이지만 선교사역공동체로서의 역할이야말로 캠퍼스공동체가 존재하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캠퍼스 모임은 유학생들을 전도하고, 지역교회로 멤버들을 보내고 지역교회가 그들을 제자훈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역할분담이다. 그러나 유학생활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캠퍼스모임이 선교공동체로서의 역할만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캠퍼스에서 기독유학생 모임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유학생이라는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그 진행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한국사회가 어려울 때마다 유학생, 특별히 기독유학생들의 역할이 컸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일본에서는 1925년 여섯명의 유학생들이 “조선성서연구회”를 결성한다. 그들은 귀국 후 성서조선 운동을 통해 민족을 섬겼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한국 젊은이들의 손에 성경책이 들려질 때 민족의 장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 유학생 캠퍼스모임은 성경중심적이고, 한국적이며, 학생중심적이어야 한다. 캠퍼스 현장에서 복음의 씨 뿌리는 일을 통해 한국사회를 새롭게 하는 꿈을 꾸는 유학생들이 캠퍼스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성서조선아 너는 우선 이스라엘의 집으로 가라. 소위 기성신자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국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서는 그 발의 먼지를 털어라. 우리가 그를 위해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 성서연구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가득차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부활, 재림의 신앙으로 조선사람의 마음을 잡게 함이다” <성서조선 창간사(1927) 중 일부>

[김경수] 내가 왜 여기에?

이코스타 2000년 11월호

오랫동안 기독학생운동에 관여해 온 사람으로서 2세기 전 학생선교자원자운동(SVM)이 일어났던 미국대학의 캠퍼스현장을 오랜 시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 기회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코넬대학의 존 모트(John R. Mott), 윌리암즈 대학의 사무엘 밀즈(Samuel G. Mills),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윌더(Robert P Wilder) 등은 학생시절 자신들의 캠퍼스에서부터 선교비전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비전은 이들이 수련회로 모임으로써 더욱 분명해지게 되고 결국은 전국적인 학생선교자원자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치 코스타처럼 말이다. 이 SVM운동은 단지 개인의 부흥을 통한 선교에의 헌신 뿐 아니라 “우리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는 이들의 구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 각 나라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데에 그 가치를 둘 수 있다.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로 파송된 선교사로서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SVM운동의 열매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특별히 교육분야에서 매우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SVM운동을 말할 때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선교에 동원되었고 그들의 헌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이 가져다 준 개인의 부흥을 포함한 사회전체의 변화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리바이벌리즘과 사회변혁


부흥(Revival)이라는 단어는 매우 개인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특별히 최근 몇 년 사이 “부흥”은 복음성가에서부터 기독교서적의 제목, 청년대학생 집회의 명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른바 리바이벌리즘의 부흥이 온 것이다. 코스타운동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찬양이 강조되고 소그룹 활동보다는 전체집회가, 그리고 지성보다는 영성이 강조되는 프로그램 구성이 최근 몇 년간의 코스타수련회에서 지속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그 동안 수련회 자체의 양적성장과 초신자들의 신앙성장, 특히 유학생 교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맹목적인 리바이벌리즘의 오류에 빠져서 분명한 목표의식이 희미해지고 영적 자기도취(Narcissism)에 빠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개의 학생운동이 그렇듯이 폭발적인 대중들의 지지가 곧 운동의 성공인 양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리바이벌리즘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부흥이 나의 가정, 학교, 사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학생 신앙운동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부흥은 무엇인가? 첫째 학생 자신이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캠퍼스 현장에서 부흥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의 캠퍼스에서 기도모임을 시작하라. 소그룹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대로” 캠퍼스에서 살라. 둘째 자신의 학문분야에서 부흥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학문이 직업인 유학생에게 있어 공부는 삶이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추구하는 태도는 우리의 책임이자 부흥을 위한 우리의 과업이다. 우리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학문활동과 신앙활동을 통해 준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전공으로 민족과 역사앞에 책임있는 존재로 서야 한다. 최근 조국의 의약분업 사태와 기독교계의 부자세습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각오를 새롭게 하곤 한다. 한국사회에 훌륭한 장로와 집사가 없어서 한국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심분야별로 한국사회에 필요한 내용을 가지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사회변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흥은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부흥과 사회변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개인의 부흥을 마이크로(micro-)한 부흥이라 한다면 사회변혁은 매크로(macro-)한 부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파랑새 신드롬


누구에게나 파랑새가 있다. 우리의 파랑새는 유학을 떠나올 때 뿐 아니라 공부하는 도중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다. 공부를 마친 후에도 우리의 파랑새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파랑새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만난 파랑새는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가끔 발견되곤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파랑새신드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럴 때 질문을 해 보자 “내가 왜 여기에?”라고.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을 가질 때야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파랑새는 발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