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운] “폭풍” 속의 “평안”

이코스타 2006년 11월호


2006년 8월 25일. 일기.


아침에 눈을 뜨며…
부지불식간에, 꿈 속에서도 찬양을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찬양.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앞에 어려운 일 보네
    주님앞에 이 몸을 맡길 때 슬픔없네 두려움없네
    주님의 자비하신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 날마다 주님 내 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 주시네 위로함주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사 항상 평안함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 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맘속에 믿음 잃지 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다
    흘러가는 순간 순간마다 주님 약속 새겨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폭풍 가운데도… 제가 탄 배에 주님이 타고 계시니
내가 참 평안합니다.


이 평안이 너무 좋은걸요.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 주님 주신 평안에 참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제게 있어서 2006년 8월은…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아니 기억하고 감사해야하는 한 달이 되었습니다. 박사자격시험(Qualifying Examination)에서 실패한 후, 하루에도 수도없이 마음이 부서졌다 모아졌다… 약해졌다 강해졌다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고, 그래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무쌍한 상황과, 연약하여 흔들리기 쉬운 나자신을 본다면 결코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언제나 신실하신 하나님… 그 분을 신뢰함이 폭풍 가운데 평안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8월 3일, 구술고사를 보던 날 아침에 묵상했던 말씀은 누가복음 6장 37절 – 42절, 용서와 베품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 비판치 말라.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 정죄하지 말라.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 용서하라. 용서를 받을 것이요.
  • 주라.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리라.)
  •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그 날 아침, 주님께서 나에게 왜 이런 말씀을 주시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는 시험을 자연스레 패스할 것이라고 여겼기에, 이 말씀이 제 생활에 어떻게 살아나게 될 지, 어떤 예상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결과를 듣고 나서,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부터 왈칵 쏟아지는데, 그 순간 공교롭게도 제 마음 속에 떠오른 것은 아침에 묵상했던 말씀이었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어떤 누구도 비판치 말고,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주고, 내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빼는 것이 그 때의 제가 해야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박사과정에 들어와서 치르게 된 첫 퀄리시험이니, 그렇다면 두번째 기회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 엄격한 학과 룰은 “두번째 기회는 없다” 라는 것이었고, 지금까지 어느 학생에게도 예외없이 한번의 기회만 주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는 정말이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유학 3년차.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하는지, 아니면 다른 학교로 옮겨 공부를 계속 해야하는지, 혹은 다른 길을 찾아보아야하는 것인지 예상치 못한 상황 앞에서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던 것처럼…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 가운데 믿음의 발걸음을 떼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무얼 어떻게 해야하는건지도 잘 몰랐지만, 그 와중에 제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딱 한 가지, “하나님”의 “신실하심” 이었고, 주님은 어떠한 순간에도 나를 집중력있게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이 그 때의 저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마음 가운데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시험을 준비하면서 제가 하나님께 드렸던 “고백”들이 시험결과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은 분명 아님을 발견했고, 어쩌면 그 상황 안에서 주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또 사랑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가난해진 마음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 아니하셨지만 감사합니다.”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합니다.”


“이 일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 때, 그렇게 쉼 없이 쏟아낼 수 있었던 고백과 기도.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날 후로 참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마다 함께 기도무릎을 꿇어준 캠퍼스 동역자들과의 “말씀묵상과 기도” 시간은 날마다 간증의 연속! 함께 묵상했던 말씀이 매일의 삶으로 생생하게 나타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익히 알던 말씀들이, 새벽마다 하나님께서 갓 써주셔서 내려주신 것처럼, 생생하게 마음판에 아로 새겨지고, 삶 가운데 살아나는데 어찌나 신기하고 감사하던지요.


말씀은 실로 살아 움직였습니다!


상황이 다급하기도 했지만, 우선은 제 마음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어느 말씀하나 가벼히 듣지 않게 되었고, 중심을 계속 체크하며, 순간순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 말씀을 삶으로 경험하는 토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불어, 동역자들과 멘토님들이 해주시던 진심어린 기도와 다독임은 힘겹던 시간을 참 따뜻하게 견딜 수 있게해준 힘이 되었습니다.


폭풍 속에서 항해하는 것 같던 그 시간.


한 달여의 기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소소한 사건들을 모두 다 나열할 순 없지만… 하나님께서 문을 하나, 둘, 셋… 다 닫으시는걸 보며, 처음에는 마음이 참 힘겹기도 했으나 점차 두번째, 세번째쯤 되어서는 순종의 속도가 빨라지고, 즉각 순종하게 되고, 나중에는 닫으시는 문 너머에 열어주실 문까지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 를 경험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주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으셔서 이렇게 상황을 몰아가시는 거라면, 제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을 지라도, 주님 원하시는 곳에 제가 설 수 있도록… 문을 계속 닫아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주일 설교 때 목사님께서 주신 말씀을 또한 마음에 새겼습니다.



아무리 아픈 시간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며
아무리 즐거운 시간도 다 지나가기 마련이다.
“이것도 지나가리라.”

8월이 끝나가던 마지막 주, 저는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 서둘러 이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감사히도, 그 때의 마음은 속상하거나 아쉬운 마음이기 보다는, 한 달여 하나님의 깊고도 큰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감사와 평안으로, 또 기대함으로 떠남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행을 일주일도 채 남겨놓지않은 8월 30일. 전 해에 어드미션을 받았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원한다면, 바로 다음주에 개강인 가을학기부터 트렌스퍼해서 공부하라고 말입니다.


그 순간, 전에 드렸던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주님이 뜻하신 바가 있어서 어떤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라면 그 길을 즐거이 따라가겠다는 고백과 함께, 혹 주님께서 무얼하고 싶냐고 물어보시면… “제 소망이 주님 뜻안에 있는 것이라면, 공부하고 싶어요.” 하고 기도한 것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아, 어찌나 놀랐던지요….


폭풍 속에 있었다 할 지라도, “하나님이 나의 상급” 되심이… 모든 것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제 마음의 소망까지도 세세히 감찰하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를 드리러 나갔는데 마침 말씀 본문은 욥기 마지막 장이었습니다. 욥의 고난이 끝난 후, 그가 할 수 있었던 고백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니다” 를 저도 고백하며, 또 회개하며, 관계가 어려웠던 지도교수님을 위해 중보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교수님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게 되시길 간절히 간구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강력한 인도하심을 따라 뉴저지에 와서 하고 싶었던 공부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전에는 하나님께서 문을 하나, 둘, 셋… 닫으시더니, 이 곳으로 옮겨오고는 문을 하나, 둘, 셋… 열기 시작하시는데, 지켜보던 주위 분들까지도 놀랄만큼 앞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셨다는 것이 보이고 있습니다.


폭풍 가운데도 평안할 수 있게 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믿고, 순종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라 하셨던 “은혜의 때” 를 마음 깊이 새기며,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겠다고 다짐합니다.


한창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저를 위해 기도해주던 선배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고난 받을 때 낙망하지 말고,
축복 받을 때 교만해서는 안된다.”


참… 힘이 되는 말이었습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지금 어떤 상황 가운데 계시는 지는 알 수 없으나, 고난 가운데 계시다면 낙망하지 마시고, 축복 속에 계시다면 교만하지 마시기를 기도합니다. 저 또한 이 말을 마음 속에 계속 새기려 합니다. “고난 받을 때 낙망하지 말고, 축복 받을 때 교만해서는 안된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만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