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내가 왜 여기에?

이코스타 2000년 11월호

오랫동안 기독학생운동에 관여해 온 사람으로서 2세기 전 학생선교자원자운동(SVM)이 일어났던 미국대학의 캠퍼스현장을 오랜 시간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에게 있어 기회이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코넬대학의 존 모트(John R. Mott), 윌리암즈 대학의 사무엘 밀즈(Samuel G. Mills),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윌더(Robert P Wilder) 등은 학생시절 자신들의 캠퍼스에서부터 선교비전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 비전은 이들이 수련회로 모임으로써 더욱 분명해지게 되고 결국은 전국적인 학생선교자원자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마치 코스타처럼 말이다. 이 SVM운동은 단지 개인의 부흥을 통한 선교에의 헌신 뿐 아니라 “우리 세대에 세계를 복음화하자”는 이들의 구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세계 각 나라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데에 그 가치를 둘 수 있다.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로 파송된 선교사로서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SVM운동의 열매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특별히 교육분야에서 매우 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는 SVM운동을 말할 때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선교에 동원되었고 그들의 헌신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이 가져다 준 개인의 부흥을 포함한 사회전체의 변화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리바이벌리즘과 사회변혁


부흥(Revival)이라는 단어는 매우 개인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특별히 최근 몇 년 사이 “부흥”은 복음성가에서부터 기독교서적의 제목, 청년대학생 집회의 명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른바 리바이벌리즘의 부흥이 온 것이다. 코스타운동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찬양이 강조되고 소그룹 활동보다는 전체집회가, 그리고 지성보다는 영성이 강조되는 프로그램 구성이 최근 몇 년간의 코스타수련회에서 지속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그 동안 수련회 자체의 양적성장과 초신자들의 신앙성장, 특히 유학생 교회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맹목적인 리바이벌리즘의 오류에 빠져서 분명한 목표의식이 희미해지고 영적 자기도취(Narcissism)에 빠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개의 학생운동이 그렇듯이 폭발적인 대중들의 지지가 곧 운동의 성공인 양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리바이벌리즘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나의 부흥이 나의 가정, 학교, 사회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학생 신앙운동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부흥은 무엇인가? 첫째 학생 자신이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캠퍼스 현장에서 부흥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의 캠퍼스에서 기도모임을 시작하라. 소그룹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대로” 캠퍼스에서 살라. 둘째 자신의 학문분야에서 부흥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학문이 직업인 유학생에게 있어 공부는 삶이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을 추구하는 태도는 우리의 책임이자 부흥을 위한 우리의 과업이다. 우리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학문활동과 신앙활동을 통해 준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전공으로 민족과 역사앞에 책임있는 존재로 서야 한다. 최근 조국의 의약분업 사태와 기독교계의 부자세습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각오를 새롭게 하곤 한다. 한국사회에 훌륭한 장로와 집사가 없어서 한국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전공분야와 관심분야별로 한국사회에 필요한 내용을 가지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사회변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흥은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킨다. 부흥과 사회변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개인의 부흥을 마이크로(micro-)한 부흥이라 한다면 사회변혁은 매크로(macro-)한 부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파랑새 신드롬


누구에게나 파랑새가 있다. 우리의 파랑새는 유학을 떠나올 때 뿐 아니라 공부하는 도중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다. 공부를 마친 후에도 우리의 파랑새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파랑새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동화 속에서 만난 파랑새는 지금도 우리의 삶 속에서 가끔 발견되곤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파랑새신드롬”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럴 때 질문을 해 보자 “내가 왜 여기에?”라고.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대답을 가질 때야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파랑새는 발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