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빛을 들고 나아가는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 노진준 황윤엽 김홍덕

이코스타 2003년 4월호

eKOSTA 우선 오늘 저녁 이 시간에 이코스타 4월호 좌담회에 참여해 주신 여러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부활절의 절기에 맞게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에 대한 이슈들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들을 나누기 전에 우선 자기 소개를 해 주시는데요, 현재의 직업, 미국에 오신 이유, 가족 관계들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진준 네, 저는 노진준 목사입니다. 현재 워싱턴 볼티모어에 있는 갈보리 장로교회에서 1세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오게 된 이유는 1976년도에 부모님을 따라서 이민을 왔고요 1987년에 결혼을 했고 슬하에 2남 1녀의 자녀가 있습니다.


황윤엽 저는 현재 택사스 San Antonio에 살고 있는 황윤엽 이라고 합니다. 현재 택사스 주립 의대에서 니코틴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고 가족 관계는 자폐를 가진 정민이와 개구쟁이로 잘 자라고 있는 정현이가 있습니다. 1996년에 박사 후 연수과정(Post Doc)으로 미국에 와서 1-2년 정도만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영접하고 지금까지 미국에 살면서 많은 훈련과 단련을 받고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지는 4년 정도 되었습니다.


김홍덕 네, 저는 김홍덕 목사이고 LA에 있는 조이 장애 선교 센터 (Joy center for the disabled) 을 섬기고 있습니다. 간호원으로 일하는 아내와 대학생인 아들, 고등 학생인 둘째 아들, 그리고 5살인 조이라는 딸 아이가 있습니다. 저는 1983년 초에 미국에 공부하러 들어왔다가 학위 취득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이 곳에서 하나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각 자의 삶에서 지금 현재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어려운 환경들과 시련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생활 속에서의 어려움 특히 유학 생활 속에서의 어려운 점들이 있었는지요? 어떤 어려운 점들이 있었는지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또 어떻게 극복하셨는지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진준 다른 분들은 모두 유학생활을 해 보셨기 때문에 공부하시면서 어려웠던 점들 (고난) 이 많았으리라 생각하는데요, 사실,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하는 질문이 저에게는 생소한데 저는 갈수록 어려움이 더 해지는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


eKOSTA 우리의 삶이 계속 고난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기는 합니다.


노진준 저는 고등학교 때 왔기 때문에 처음에 공부하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기는 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생후 8개월 후에 소아마비를 앓았고 지금까지도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애를 특별히 고난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살아오면서 그 장애를 남에게 알리기 싫고 남이 또 나의 장애를 아는 것 역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많이 감추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역을 하면서 다른 분들의 아픔과 고난을 보면서 제 경우와 비교하며 동질감이나 공감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김홍덕 저는 첫째,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생물학 박사 공부하러 유학을 왔었는데 도중에 신학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목회자가 되리라는 꿈이 마음 속에 있었는데 생물학 공부를 하다가 신학을 다시 공부하려니까 왠지 모르게 마음 속에 두려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공부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식의 공부 방법이 달랐고 사고하는 방법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꽤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저는 훌륭한 가르침을 받았고 이 과정이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 된 것 같기 때문에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eKOSTA 네, 아무래도 한국식 교육 방법과 미국의 교육 방법의 차이로 많은 유학생들이 똑같은 어려움들을 많이 겪는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황윤엽 저는 학위를 한국에서 했지만 이곳 미국에서 유학 생활도 해보았고 현재는 박사 후 연수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제가 MIS에서 경영 정보 시스템에서 석사 과정을 하는 중이나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하는 중에 “내가 과연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포스트 닥을 하는 과정에서는 주님을 먼저 영접한 사람으로서 실험실에서 일할 때에 전세계에서 온 동료 과학자들과의 대인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제가 일하는 실험실에는 기독교인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주님을 영접한 사람으로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많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eKOSTA 그럼,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들을 잘 해결은 하셨나요?


황윤엽 네. 잘 해결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이런 인간 관계의 문제가 있으면 대부분 한국에서는 일 끝나고 나서 술을 마시면서 즉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데 저의 경우는 소속되어 있는 성경 공부 모임에 나가서 중보 기도 요청을 했고 저 역시 나름대로 기도함으로써 갈등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 졌지요.


eKOSTA 각 자의 일상 생활 외에도 신앙적으로도 고난의 시간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떠한 어려움이었으며 그 시련들을 어떻게 이겨 내셨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김홍덕 신학교 졸업 후 목회를 LA에서 3-4년 정도 하다가 굉장한 도전이 왔습니다.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목회를 하려고 노력했고 설교 준비도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3-4년 동안 했는데 변화된 사람들의 모습들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경향들을 많이 보았을 때 “과연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하는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국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지내는 동안에 하나님과 더 깊은 대화를 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면서 깊은 영감 같은 것을 많이 받았고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아팠던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낮추시는 훈련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6년 전에 제 아내가 딸아이를 갖고 임신 3개월 만에 검사를 해 보니까 아이가 뇌를 비롯해서 척추 및 다른 신체적으로 심한 장애가 있고 태어나서도 6개월 밖에 살지 못 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참 너무나 많은 고민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불러 주셨으면 잘 사용하시지는 않고 오히려 저를 오랜 병을 앓게 하시고 또한 장애아이까지 주신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 사역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 등으로 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 주변에 계셨던 사람들(믿는 사람들이건 또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이 낙태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미련한 신앙 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결심은 제가 이 아이 하나만을 위해서 목회를 하는 한이 있어도, 또 이 아이 하나만을 위해서 살아도 좋다고 결심을 하고 십자가를 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단 후에 정말로 놀라운 소망과 기쁨이 하늘에서 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이름을 조이(Joy)라고 지었는데요, 그 이름처럼 아이는 잘 자라주었고 저에게 십자가가 아닌 정말 많은 기쁨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 고통의 기간을 통해 영적으로 큰 축복을 받았으며 부수적으로 얻는 축복도 많았습니다. Joy가 매일매일 주는 기쁨을 즐기며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그렇게 아프던 몸이 낫기 시작했고 장애 사역이 시작 되었으며 학위 논문 역시 잘 마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계산해 보았을 때 앞뒤가 맞지않고 도저히 순종하기 어려운 것 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고 성령님께서 그렇게 감동 주시면 미련하게 보일 지는 모르지만 그 뜻에 순종하면 그 뒤에는 많은 축복이 숨어있다는 것을 저의 체험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노진준 저는 모태 신앙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 주님을 영접하고 대학 졸업 후에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목회 일을 시작했습니다. 신앙적인 갈등이 있다면 ‘내가 과연 하나님 뜻대로 목회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제 마음 속에 있는 개인적인 욕심이나 자아가 꺾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너무 형식에 치우쳐서 영적 혹은 신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인 상태에 안주하고 말 것이라는 불안이 있습니다. 또 어느 때는 제게 너무 능력이 없는 것 같아서 하나님이 제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강한 능력을 주셨으면 하고 원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깨달은 점이 있다면 하나님은 저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저에게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라는 점인데요, 그래서 지금 제가 신앙 생활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씀 드리기 보다는 매일 힘이 되시는 주님과 극복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황윤엽 신앙 생활 시작 한지가 4년이 되어서 그런가 아직까지 신앙적으로 고난은 없는 것 긷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자폐 아이인 정민이를 키우다 보니 신앙적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많이 갖고 있지 않느냐라고 의문을 갖기도 하겠지만 조금 전 김 목사님의 말씀처럼 정민이를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과 기도함으로써 더 가까워 질 수 있고 그러므로 해서 더욱 더 큰 즐거움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를 하나 말씀 드린다면은, 정민이는 감각방어(Sensory Defensiveness) 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 대해 촉각, 후각, 시각 등 감각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합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당연히 여기는 배변문제나 수면문제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아이가 그렇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오히려 정민이가 소변을 볼 때마다 그 아이와 함께 기도했고 또 많은 자폐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그렇듯이 거의 한두 달에 한번씩 ear infection으로 힘들어 몸부림칠 때에도 아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대 일의 관계를 허락하시고 그 속에서 마음의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제가 정민 이를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할 꺼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물론 그러면 좋지만 혹 그렇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감사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즉 장애나 고난으로 부터의 탈출을 꿈꾸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현실에 감사할 줄 아는 자세를 배우게 되는 과정이라고 나 할까요. 물론 이런 마음의 자세가 제가 정민이가 주위의 도움이 없이 독립적인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것을 도와주는 걸 게을리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그것 나름대로 제가 열심히 해야 할 일이죠. 과정에서의 열심과 주님의 결정에 대한 승복과 감사함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좋은 말씀입니다. 어떤 어려움을 주님 안에서 극복함으로써 내 자신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 지고 영적 성숙의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모두들 믿음을 갖고 긍정적으로 주님께 순종하시면서 고난을 극복하신 것 같습니다. 각 자의 삶 가운데 고난과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해결책이 달라지는데요, 여러 가지 다른 시련을 겪으신 혹은 겪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나름대로 인생에 대한 know how 혹은 인생 철학이 생겼을 것 같습니다. 그 인생 철학을 나누어 주실 수 있나요?


황윤엽 저의 가족들이 경험한 내용들을 바탕으로 한 번 나누어 보겠습니다. 장애 아이를 키우시는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수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학교들을 찾기 위해서 이사를 여러 번 다녔습니다. 맴피스에 살 때의 일인데요, 이사 간 첫 날부터 정민이가 좀 이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이의 방을 놀이방으로 꾸며 놓고 아이가 놀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는데 갑자기 어느 날 막 집안을 뛰어 다니고 무서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수면에도 많은 지장이 있었고요. 처음에는 이것이 마귀 장난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 보면 이사를 다시 가라는 이야기들을 하시고 해서 저 역시 심각하게 그 문제를 고려해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 구요. 그 당시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지 2년 정도 밖에 안 되었는데 이것이 정말 마귀 장난이라고 해서 이사를 간다면 매번 마귀 장난 때마다 피하고 도망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교회 구역 모임에 부탁을 해서 목사님께서 저희 집에서 한 달 내내 구역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구역 예배 시작과 끝에 정민 이를 위한 기도도 함께 했습니다. 그런 후 아이에게 있었던 이상한 행동은 차차 사라지고 수면도 더 잘 취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저의 인생 철학이라 하면 어려움을 혼자 해결해 나가지 말고 신앙의 선배분들께 영적인 상담과 중보 기도 요청도 하고 도움도 받는 등 문제해결에 능동적인 자세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 합니다.


eKOSTA 네 흔히 어려운 순간을 겪으시면서 도움을 많이 받으신 분들이 다른 사람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다고 하지요.


김홍덕 장애 사역을 하면서 서로의 아픔을 놓고 이야기 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신체 장애를 가지신 분들과 정신 및 발달 장애를 가지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신체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비록 신체는 불편하지만 정신적으로 오히려 큰 방황을 하게 됩니다. 장애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까지는 엄청난 과정을 겪게 되지요.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지능이 낮은 정신 지체장애인들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인식하지 못하면서 살고 싶어하는데요, 반면에 정신 및 발달 지체장애인들은 신체의 결함은 있지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신체 장애인들을 부러워 합니다. 누구나 자기가 갖고 있는 아픔이 다른 누구의 아픔 보다도 크다고 생각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운 순간들을 겪으면서 얻은 수확이라고 한다면 인생관, 즉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옛날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획득하고 성취하고 올라서기를 하면서의 기쁨을 얻었는데 아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장애아인 딸을 낳아 기르면서 내려오는 즉 낮아지는 삶을 배우면서 기쁨을 얻습니다. 특히 장애 사역을 하면서 제 자신이 그들과 비교해 볼 때 얼마나 행복하고 잘 갖추어진 사람인가를 깨달음으로서 경쟁해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삶이 아니라 아래로 계속 내려오는 삶인가를, 즉 좀 더 겸손한 삶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 보니까 세상에서 무엇을 얻을까 하고 아웅다웅 하기 보다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나더군요. 물질, 명예보다는 예수 사랑을 남겨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것이 저의 인생관, 신앙관의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장애사역을 하면서 처음에는 그들을 돕는다는 생각이 가득 찼지만 사실은 제가 그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표현하는 반면에 저는 걱정하고, 계산하고, 의심하고, 많은 경우 속과는 다르게 밖으로 가장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더 큰 장애인임을 깨닫습니다. 그들에게서 순수성을 배우면서 날마다 행복하게 마음 편히 사는 법을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eKOSTA 노 목사님은 어떠세요?


노진준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고난을 통한 인생철학을 말하라면, 저를 목회자로 부르신 것과 마찬가지로, 고난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고 허락하신 소명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 동안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도 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이 누리지 못한 것들을 제가 누리면서 사는 것이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나누면서 살수 있을까 하던 중에 제 아내와 제가 결정한 것이 입양이었습니다. 그래서 막내 아들을 한국에서 입양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면 만 네 살이 되는데요. 저희가 참 감사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려고 온 아들인데 언어발달장애가 있는 것을 봅니다. 아직도 몇 군데서 검사 받고 있는 중인데요. 처음에는 좀 답답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KOSTA 목사님, 그때 아이를 입양하실 때 아이가 장애 아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나요?


노진준 그땐 몰랐습니다. 그 당시 검사 할 때는 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도 검사가 끝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일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시고 감당하시라고 하신 일이니까, 내가 목회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런 면에서 모든 고난 또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너무 세상적인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실패 (고난)는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생이 늦어지는 것 같고 떨어지는 것 같지만, 내가 겪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내가 알게 모르게 다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그러한 생각/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들을 대하려고 합니다.


eKOSTA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기독교 내에서도 물질적 축복이 많이 강조되고 있는 현시대에,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기가 힘이 드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세상의 방법이 아닌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순결하게 살아 갈 수 있는지요?


노진준 저희들이 전문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과 실력을 의미하기 보다 그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 또, 일방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에 대한 점, 이런 것들이 더 문제가 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성공의 동기보다 어쩌면 성공이 무엇인가 하는 정의 자체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을 보통 얘기하고 그 frame 에서 생각하고 말하면서 거기서 겸손하자고 말하고 낮아지자고 말하는 자체가 내가 높아진 것을 전제로 말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피바디 음악학교에서 성경공부를 인도 하는데 한 competition 에 여러 명이 참가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한명은 1등하고 나머지는 떨어 지는 것 인데, 그 중에 한명은 성공했고 나머지는 실패했기 때문에 그 성공한 한 명에게 섬길 수 있는 더 귀하거나 큰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겁니다. 저는 섬기는 것은 절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동일한 위치, 같다고 생각 되는 곳에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가 높은데 올라가서 섬기게 되자, 최고가 되서 밑에 사람들한테 주자, 그래야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 수 있다 해서 내가 이미 높아졌다고 생각해서 주기 시작한다면 그때부턴 정말 섬기는 부분에서나 받는 부분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닐 수 있겠다 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어떤 위치에 우리가 있게 될지 모르지만, 그 어떤 자리든지 그것이 섬김의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되고 또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을 성공이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황윤엽 물질적인 축복이라 하니까 많은 생각이 듭니다.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인 명예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리고 자녀와 본인의 질병, 경제적인 어려움을 하나님의 저주나 징벌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의외로 많이 발견 되었어요. 실제로 제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도 몇 주전에 사회적/경제적 부유함이 축복으로 성경에 명시되어 있다고 설교하시는 것을 테이프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는 덧붙여서 어려운 와중에서도 십일조와 새벽기도를 계속하면 기도 하는 것들이 앞으로 꼭 이루어 질 거라고, 본인 때에 아니더라도 자식 때에 꼭 이루어 질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 많은 경우에 저희 식구가 참석하는 기도모임에 간혹 이런 기도나 말씀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정민이 부모의 믿음이 강건해서 정민이 같이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를 저희 부부에게 주셨다고.. 또는 고난이 믿음을 단련 시키는 줄은 알지만, 본인 자신은 믿음도 약하고 의지도 약하니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계속해서 고난으로부터 지켜 주 십사 하는 말씀도 하시고… 사실 저도 쉽지 않는 삶을 살면서 또 그게 순간순간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는 처지에 이런 고난의 삶을 누구에게 권해 볼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누구나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아까도 말씀했지만, 고난 중에서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허락해 주시쟎아요? 그리고 아직 고난과 절망을 통해서 주시는 영적인 단련을 경험해 보시지 못 한 분들과 또 그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제 경험 한 가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고통과 절망 한 가운데 계신 분들한테 특히 기독교인 분들에게 ‘기도해보세요’ 라고 충고해 주시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대신 ‘제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라고 하시거나 아니면 그분 모르게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 하시는 게 훨씬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경험한 바 또는 제 주위의 경험을 비추어봐서 가령 신유의 은사가 있는 분이 오신다던가 해서 이런 저런 부흥회나 각종 기도모임에 참석을 권유 받을 때마다 참 힘들 더라구요. 또 그 이후의 후유증도 작지가 않고요. 물론 그 권유해 주시는 분들의 호의를 깍아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의 심정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정말이지 해보지 않은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대게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의 부모의 기도나 장애를 가진 본인의 기도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거나 혹은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느끼지 않거든요. 근데 그 기도하러 오라는 권유가 힘든 도전을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저의 피해의식도 한 몫을 하겠지요.


또 한 가지는 많은 경우에 저희 식구들에게 호의적인 분들 가운데, 가족 중에, 혹은 가까운 분들 가운데 어려운 고난을 겪고 계시거나 겪으셨던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서, 주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눈을 열어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또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또 하나의 은사라고 생각이 들어요.


김홍덕 물질적 축복에 대해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 – 돈, 명예, 학식,권력- 등을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치 최고의 축복인 것처럼 하는 가르침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근데 저는 생각하기를 돈, 명예, 학식, 권력 그 자체가 축복이 아니라 그러한 조건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축복이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 지면 그것은 불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돈과 명예, 학식, 권력을 빼앗아가시면서 까지 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축복이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활절을 맞이하면서 부인하는 삶, 순결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저도 끊임없이 이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중세시대에 깨끗하게 살고자 고행을 했던 많은 수행자들이 결국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에 굴복한 것처럼, 깨끗해지려고 하고 부인하려고 노력해 봐야 순결해지거나 자신이 부인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폭 싸이는 것이 부인하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십자가의 보자기로 우리를 덮는 것이 참된 부인의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사역초기에는 정의감에 까발리고 지적하는 것이 순결한 삶이며 청명한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역을 하면 할수록 십자가의 순결은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라고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이웃들의 허물을 까발리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eKOSTA 좋은 말씀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 분 모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요즘 유학생들의 추세도 역시 성공지향적 혹은 흥미 지향적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진준 유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성공 지향적인 생각과 흥미 지향적인 생각의 삶이 어쩌면 지나치게 “suffering phobia 에 걸리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두려워 하고 무서워 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의 인생을 kingdom perspective 에서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천국을 믿고 소망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가질만한 가치관, 인생관이 뭘까 하는 생각을 유학생들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리고 그 사고에 의해 행동을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기복적인 모습을 당연시 하게 생각하고 의아한 모습들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더군다나 그것이 기독교에서의 추세라고 한다면 이는 세속화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세속화와 영적인 것을 더 이상은 종교 적인 것과 비 종교 적인 것으로 나누려 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을 의식하고 천국의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 인생을 보는 것과 세상의 가치관에 의해서 우리 인생을 보는 것으로 나누어 좀 더 깊게 사고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 했으면 하는바람입니다.


황윤엽 저는 유학생 여러분께 이런 것도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자기 분야의 프로로서 실력을 갖추고 주님을 향한 열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요. 실제로 성공 지향적인 생각과 흥미 지향적인 것을 우려 하시지만, 저는 자기 분야에서 일정부분 성공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발전소에서 전기가 생성되듯이 높은 위치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낮은 자리에 있는 자들을 섬길 때 많은 영적인 전기가 생성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주님의 뜻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 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유학생들이 그런 성공 지향적인 생각과 흥미 지향적인 것을 궁극적으로 그 목적을 주님께 영광 돌린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과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KOSTA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가 전공한 분야나 기술을 사용한다는 말씀이 되겠네요.


김홍덕 황 박사님의 말씀에 대해 동의를 합니다. 성공 지향적인 것과 흥미 지향적인 것이 동기 유발 측면으로 볼 때는 좋은 요소가 있습니다. 크리스챤도 성공해야하고, 하는 일에 재미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고 저도 믿습니다. 그러나 성공의 동기가 중요하겠죠. 성공 자체가 동기가 될 때 갖은 편법을 쓰게 되고 거기서 또 다른 죄악을 낳습니다. 근데 전 늘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각 방면에 크리스챤 전문가가 부족 하다는 사실입니다. 옛날에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사회, 문화, 예술 모든 방면을 점령하고 굉장히 큰 영향력을 끼쳤는데 지금은 특별히 잘 나가는 남자 형제들은 다 목사, 선교사가 되고 그리고 또 갑자기 은혜만 받으면 회사 내에서 성경보고 옆 사람 전도하려고만 합니다. 자기가 몸담은 직장을 발전시키고 사회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큰 관심을 두기 보다 우리가 이땅에서 살 때에 전도자의 삶을 살라고 하는 그 말씀을 너무 지나치게 좁게 적용 함으로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이 세상의 문화발전을 위한 명령에 등한시 하는 모습은 참 아쉽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챤이 각 방면에 전문가가 되어 큰 목적을 가지고 주님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겠다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 문명의 발달과 모든 일을 쉽게 이루려는 개인 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지금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특히 기독 유학생 혹은 전문인 그리스도인들 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황윤엽 저는 우선 유학생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것은 자기 분야의 프로로서 실력을 갖추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주님의 향한 열정도 함께 유지하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어떻게 기독교인의 삶과 가치를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 것 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그에 맞는 가치관과 기독교인으로서의 가치관이 한 몸에 서로 별개로 존재해 필요할 때 마다 편하게 바꿔 쓰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민과 기도를 통해 기독 전문인으로서의 일관된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가령 저같이 life science 을 전공한 사람의 경우 인간복제나 각종 유전자 조작 식물에 의한 식량난 극복 같은 것이나 진화론에 대해서 기독교인이자 또한 전문인으로서 입장정리를 하는 것이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KOSTA 김 목사님은 어떠세요? 아까 계속 공부하는 방식이 다른 점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김홍덕 특별히 전공선택에 있어서 쉽게 학위 딸 수 있는 학교, 전공, 교수, 또는 job을 쉽게 딸 수 있는 전공, 이런 것들에 너무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면, 나중에 포기하는 사태가 많이 일어납니다. 사실 자기와 적성도 안 맞고 재미도 없는데 하기 쉬운 전공을 택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나중에 자기가 전공을 한 후에 평생 즐겁게 enjoy 할 수 있는 전공, 정말 평생 enjoy 할 수 있는 그러한 부분, 분야를 전공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결국엔 공부하는 과정이 학위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렵게 학위를 받는 과정 속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이 받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더 자랄 수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진준 네, 제가 코스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영생을 천국에 두려고 하지 말고 믿는 순간부터 누리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활의 소망이라고 하는 것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살아있는 능력으로 받아 들이시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 할 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 하지 말고 부활의 소망이 정말 실제적이고 살아 있는 것으로 느끼면 좋겠습니다.


황윤엽 조금 덧붙이자면, 근래에도 인간 복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는데, 미국 언론에서도 많이 떠들고 또 각 지역 교회 목사님들도 그런 문제들을 설교 말씀 중에 많이 언급하시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한 입장 정리는 사실 전공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구체적이거나 과학적인 데이터도 없고 해서 입장정리가 참 어렵 잖아요. 가령 유전자 조작 식물에 의한 식량난 극복 얘기도 나왔지만, 결국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생명에 인간이 손을 대서 유전자조작을 통해 식량난을 극복하는 것이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실제로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식량난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는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들. 또 진화론에 관한 얘기도 저 같은 경우는 아주 보수적인 분들과는 입장이 다르지만 결국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할 때, 해당 분야의 전공을 하신 분들이 기독교인으로서 입장 정리를 해서 목사님이나 주위의 기독교인들한테 제대로 된 의견을 정확한 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됩니다. 가령, 예전에 밀레니엄 버그 같은 경우도 실제로 IT 관련 전공하신 분들은 크게 별일은 없을 거다 라고 예측을 하셨는데도, 많은 목사님들이 2000년이 넘어가면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씀을 하셨고 결국 두려운 마음에 실제로 강대상에서 적절하지 않은 말씀들을 하시는 것들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각 분야에서 실력 있는 기독교인들이 각종 새로운 사건들이나 이슈에 적절한 입장 정리를 해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탕은 역시 주님에 대한 신뢰이겠죠.


eKOSTA 마지막으로 하시고 말씀이 더 있으신 가요?


황윤엽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아버지가 주님께 부탁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능치 못 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하시니깐 이 아버지가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는 말을 했는데, 저는 이 말이 저에게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머리 속으로는 깨달아도 가슴이 달궈지지 않으면 변화가 힘들고, 또 가슴이 달궈진다 한들 제 몸 속에 40년이나 가지고 있던 버릇들을 깨뜨려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도 참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고 주님의 도움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는 1년 넘게 새벽기도를 하면서 느낀 것인데 저 개인적인 열심으로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다고는 생각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내가 열심히 해야지, 내가 빼먹지 않고 기도를 해야지 라고 하며 이런 것들로 인해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을 했지만, 한참 지나고 나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열심이나 그러한 환경들도 주님께서 주선해 주셨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eKOSTA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부활절을 바탕으로 삶과 신앙 생활에서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요, 늦은 밤 까지 참여하셔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안상현] cKOSTA – 캠퍼스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이코스타 2003년 3월호

작년(2002년) 미국 타임지의 마지막 호 커버 스토리는 올해의 인물 세 사람을 장식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세 사람의 이름은 신시아 쿠퍼(월드컴), 콜린 로우리(FBI), 그리고 쉐론 왓킨스(엔론)이었습니다. Whistle blower(내부 고발자)라고 부제가 붙은 이 세 사람은 잘 알다시피 자신들이 속해있던 회사와 조직의 비밀을 세상에 알림으로 결국은 회사와 조직을 파멸(?)로 몰고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먼저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 비교한다면 작은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두번째로는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조직으로부터..),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속한 조직내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세번째로는 행동을 통해서 자기들의 신념을 표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적인 자기희생을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즈에서는 그들의 희생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위협앞에서도 자신들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이 세 사람은 소위 이야기하는 미국의 절대적 가치, 즉 자유, 용기, 그리고 정직을 위하여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을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캠퍼스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바로 2003년 처음 갖는 미주 cKOSTA를 바라보면서 갖는 소망의 작은 단편을 바로 그들 가운데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이 믿는 가치를 위해서 희생을 무릅썼다면 캠퍼스속의 기독 대학생들을 바라보면서 갖는 소망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이루어 내기 위하여 자신을 드리는 순결한 젊은이들인 것입니다.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은 ‘캠퍼스속의 순결함’은 “작은 존재들”이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잊지 않는 기독 대학생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창조적인 소수(creative minority)가 만들어 나간다고 했습니다. 학생 선교 운동사에서 볼 수 있는 건초더미(Haystack) 기도모임이나 영국의 캠브리지의 7인, 미국의 존 모트에 의한 학생선교의 운동은 바로 캠퍼스의 순결함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바로 작고 미미한 존재들이 만들어 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이 곳 미국에서 공부하고 삶을 살아가는 학부 유학생들과 한인 대학생들이 그런 영적인 창조적인 소수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학생자원운동(SVM: Student Volunteer Movement)의 수혜자인 우리들이 이제는 우리가 공부하고 발을 딛고 살아가는 미국대학 캠퍼스의 순결함을 위해서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작은 존재들이 cKOSTA를 통해서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이사야 6:13) 바로 이렇게 작지만 거룩한 씨들이 캠퍼스속의 그루터기로 자라기를 소원합니다.


두번째로, ‘캠퍼스속의 순결함’은 “인정받기 힘들지만 값어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기독 대학생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은 끊임없는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동시에 그 열매는 더디고 작습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큰 그림을 보면서 자기 자신을 그 그림 가운데서 찾으면서 인내하는 기독 대학생들이 cKOSTA에서 헌신되기를 바랍니다. 짐 엘리엇과 그의 친구들이 에콰도르 원주민들에게 무참히 살해 되었을 때에 타임지는 그들의 죽음을 “커다란 소모 (What a Waste)”라고 비판했지만 우리는 짐 엘리엇이 선교를 떠나기 7년전 21살때 자기의 일기장에 썼던 글귀를 기억하면서 우리도 캠퍼스의 순결함을 위해서 발걸음을 내딛는 기독 대학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하나님의 나라가 캠퍼스속에서 나타나기를 위해 애쓰는 많은 바보들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캠퍼스속의 순결함을 이루기 위해 행동으로 신념을 표현하는 많은 기독대학생들이 cKOSTA를 통해 배출되었으면 합니다. 헬무트 틸리케라는 사람은 식품이나 음료광고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이 정말 그 제품을 사용할까 궁금할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 질문이 ‘캠퍼스속의 순결함’을 이야기하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캠퍼스속의 순결함을 추구하는 것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얻기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파는 일입니다. 바로 좋은 진주를 얻기 위하여 자기의 가진 것을 파는 장사가 되는 일입니다. 밭에 보화가 있다, 좋은 진주가 저기에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쉽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보화를 찾으러 나가는 일이고 진주를 사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일입니다. 행동으로 믿음과 신념을 드러내는 많은 젊은 기독 대학생들을 기대합니다.


지난 연말에 최대 흥행작 중의 하나인 영화 “반지의 제왕 (Lord of the Ring)” 2편을 보았습니다. 1편에서부터 느끼는 점이지만 주인공 프로도가 존경스러운 것은 자기의 사명과 꿈을 가지고 멀고 힘든 여정을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cKOSTA 2003을 통해서 각자의 삶가운데 허락하신 작지만 소중한 꿈들을 발견하는 기독대학생들이 많이 헌신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꿈을 안고 캠퍼스로 흩어지는 작은 영적인 프로도들이 자신들의 캠퍼스를 누비며 하나님의 순결함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꿈과 소망에 힘을 실어주는 cKOSTA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