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동국] 코스타 이후 경험한 지역교회의 회복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시작하며


특별한 은혜가 넘쳤던 2003년 코스타가 끝난 지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 갑니다. 그 풍성했던 천국잔치에 참석한 후에 아직도 그 생생하던 코스타 때 받은 은혜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매일 매일 코스타 때처럼 승리하며 살아가는 코스탄 들이 있을 것이고, 또 코스타 기간동안에 은혜를 받으면서 결심했던 일들을 처음 며칠 내지 몇 주는 잘 지키다가 지금쯤 지치기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자신에 대해서 실망하고 어쩌면 자포자기 하고 계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어떤 상태이던지 혹시라도 이 간증을 읽으시면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은 post KOSTA라 하여 코스타 이후에도 tmKOSTA, eKOSTA, jjKOSTA, gpKOSTA, missionKosta 등의 프로그램과 각 조들이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대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메신저를 통해 매일매일 코스타 때처럼 교제를 계속해 나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96년 당시만 해도 일년 연중 코스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을 때였습니다. 미리 이것을 밝히는 것은 지금 같이 여러 프로그램이 있을 때와는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이번에 계속되는 제 간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호에 실패한 코스타(?)에 대한 선언 후에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제가 전혀 생각치 못한 일을 보여주신 일은 지금으로 말하면 부분적으로 포스트 코스타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으로 경험한 교회 청년부 공동체와 한 교회의 변화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96년 코스타 이후 경험한 한 지역 교회의 회복


제가 다녔던 보스턴 근교의 한 한국 교회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코스타 이후 8월 즈음에 청년부의 위기 상황 가운데 세 명의 임원들이 모여서 새벽기도를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자매는 비교적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믿은 지 3년 정도 밖에 안 되는 그 당시 청년부 회장한테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는 권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황당해 하면서도 자매는 요한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요한복음 3장 14-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는 말씀을 읽다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몇 주후에 그 자매가 공식적으로 청년부에서 개인적 간증을 할 때를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청년부 임원과 조장으로 섬기고 있던 자매가 청년부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자기가 이제야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며 지금까지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면서 섬겼던 조원 들과 청년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들- 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그리고, 자기는 원래 소리내지 않고 기도하던 사람인데 속으로 기도하던 중에 자기의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던 일- 에 관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의 기도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마침 목사이신 아버지께 상담하던 중에 한나의 기도를 예로 들어 주시며, 자기같이 차갑고 이성적이고 성령과 은사에 대해서 무지하고 냉랭했던 자에게 심지어 소리 없는 방언을 주시면서 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자기에게 보여 주시는 분임을 알게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매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며, 고집스러운 자신 같은 사람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청년들에게도 임하기를 바란다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임원 세 명만이 참석하기 시작한 새벽기도회에 더 많은 청년들이 참석해서 15인 승 교회 밴을 운행하고 그 밴이 매일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회는 차가웠고 새벽기도가 시작된 지가 5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때인지라, 새벽기도에는 기껏해야 예닐곱 명 정도가 참석하던 때였습니다. 그 기대와 비전들이 청년부 사람들 가운데 번져 나가기 시작 하였고, 간증을 나눈 뒤 한 달여가 지난 후에는 승용차 한대로 충분했던 서너 명의 청년들이 한두 사람 불어나면서, 비전과 기대를 갖고 기도한대로 15인 승 교회 밴을 운영 해야만 했으며 급기야는 이 밴이 청년들로 가득 채워져서 매일 아침 새벽 5시 45분에 시작하는 새벽기도로 몰려들게 되었습니다. 기대한 것 이상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은 밴도 모자라 몇 대의 승용차로 카 풀을 하면서 이삼십 명에 가까운 청년들이 거의 매일 새벽마다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밴을 운전하던 형제는 공대 박사과정 학생이었음에도 거의 6개월 동안이나 계속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스케줄에 따라 보스톤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한 명 한 명의 집으로 라이드를 주었으며, 그 이듬해에는 몇 명의 헌신자들이 더 생겨 순번을 정해서 그 새벽에 청년들의 발이 되어 주기도 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변화된 청년부 모습의 한 결과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청년들이 개인적인 회심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면서 말씀에 대한 갈망과 기도에 대한 열정으로 청년부 모임들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3, 4 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그 불길이 어른들로 번지게 되었고, 그 다음해 초부터 계속 늘어나는 새벽기도의 참석자들이 사순절 특별 새벽기도에는 70여명의 사람들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는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때 당시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는 교인 숫자가 200명이 채 안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교인 3분의 1 정도가 매일 새벽 5시 45분에 있는 새벽기도에 참석한 셈입니다. 그 중에는 소문을 듣고 주위의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새벽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참석하는 숫자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도의 태도와 언어가 바뀌며 그 이성적이고 지식적인 청년 학생들에게조차 방언의 은사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대표적인 변화의 결과 중 하나일 뿐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죽어있던 교회와 청년부가 살아나는 그런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소망하고 기대하던 참된 ‘부흥’의 최종적인 모습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부분적으로 한 교회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변화된 청년들과 교인들이 계속해서 그 지역과 나라와 전 세계에 걸친 역사적인 큰 ‘부흥’을 기대하고 갈망하며 열정으로 기도한다는 면에서 너무나 큰 은혜라고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큰 변화의 또 하나의 결과로는 전해에 열명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이 코스타에 참석했었는데 그 다음해 그 한 교회에서만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밴을 빌려 20시간 동안이나 운전을 하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기도 하면서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단일 교회에서는 아마도 가장 많이 코스타 참석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이 코스타가 열리는 가까운 지역의 교회가 아닌 1000 마일 이나 떨어진 보스턴의 한 작은 지역교회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변화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이후 여러 지역에서 이루어진 지역 교회들의 변화


96년 코스타 이후에 그렇게 한 지역교회의 회복을 경험한 후에 97년 코스타에 다시 참석하게 되었을 때 또 한번 깜짝 놀랄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첫 조장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몇 사람들이 간증하는 바, 작년 한 해 동안 코스타 이후 받은 은혜들을 지역 교회에 가서 다른 지체들과 함께 나누게 되었고, 그러면서 교회 공동체가 변하는 것을 경험 했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 몇몇 지역 교회에서 그 전년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함께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여러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입을 맞춘 듯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스턴 지역에서 내가 속한 지역교회에서 경험한 그런 역사가 몇몇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있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중 한 지역에서는 코스타 이후에 그 지역의 몇몇 교회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서로 협력하며 사랑하며 그 지역 한인 유학생들과 이민 사회를 함께 돕는 사역을 하는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고백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일을 행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한 집회에서 일회적으로 큰 역사를 허락하시지는 않았지만, 점차적으로 각 지역교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었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셨던 것입니다. 그 때 당시 저는 간사도 아니 였고, 전체적인 코스타의 진행이나 준비나 계획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단 두 번 그것도 처음으로 참석했던 한 개인이 느낀 것이기에 얼마나 객관적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제게 주어진 정보가 아주 제한적이라서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관적으로 한 개인이 바라고 원하는 대로만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참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제한적으로 제게 주어진 정보와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제가 느끼게 된 점을 기억을 더듬어서라도 꼭 나누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주제에 상관없이 매년 일어나는 변화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저 개인적으로는 그 해의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특별했다고 느끼고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그 지역교회 회복의 현장 한 가운데 서서 각자의 역할을 담당했던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런 나눔의 기회가 우리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들이 몇몇의 기억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객관적으로 기록되고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받은 축복


교회의 회복을 통해 받은 복을 누리던 그 때는 저에겐 개인적으로도 큰 복을 받았던 한 해였습니다. 전혀 연구 조교를 얻을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그 때에, 그리고 다가오는 가을학기에 조교자리를 못 찾으면 당장 등록을 할 수 없었던 그 때에 코스타에서 만났던 조원 들에게 기도 제목을 나눈 뒤, 채 한 달이 지나기 전에 저는 극적으로 연구조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저희 코스타 조원 들을 비롯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 때 조원 들의 계속적인 기도 외에, 다니던 미국 교회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은 몇몇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전략적인 접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에 세 분의 교수가 있었는데, 한 분은 정년퇴직에 가까워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않았고, 또 한 분은 큰 병으로 학교를 나오지 못하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한 교수만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의 박사과정 말년에 있던 미국 친구가 아무 이유 없이 저를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교수에게 편지를 쓰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편지 수정도 봐 주고, 박사과정으로 연구조교 신청을 하면 거의 불가능하니 석사를 일단 하기로 하고 석사 기간 동안만 연구조교를 하게 해 달라고 하면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권고도 해 주었습니다. 결국 제가 그의 도움을 받은 것이 연구 조교 자리를 얻는 데 유용했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것 때문에 큰 문제가 발생 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고 그런 접근 없이는 사실 제가 연구 조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친구가 나중에 제 석사 과정 연구 테마까지도 제공 해주고 무능력하고 실력 없는 제가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일년 후에 석사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기적같이 연구조교가 확정된 이후로 유학생활 일년 동안 너무 지치고 힘들었던 때라 쉬고 싶기도 하고, 또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한국을 다녀와야 될 것 같아서, 급히 서둘러 2주 동안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치도 않게 친한 교회 선배의 소개로 지금은 제 아내가 되어있는 자매를 만나게 되었고, 6개월이 채 되기도 전인 그 다음해 2월초에 결혼을 하고, 97년 코스타에는 함께 부부로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하면서


2003년 코스타에 특별한 은혜가 있었음에도 저는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항별로 꼬집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은혜 받았던 시간이나 사건이나 말씀이 없어서도 아니고, 저 개인적으로는 정리가 조금 늦게 되는 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이제 또 다시 일년을 살면서 코스타 때에 감동하면서 받았던 그 은혜의 말씀들을 가지고 이 세상 속에서, 특별히 저의 삶의 영역이 될 제주도 지역에서, ‘순결’하게 살기위해 씨름하며 얻을 축복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류해 두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받은 은혜 자체를 나누며 풍성해지는 기쁨을 모른다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웬 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꼭 그러고 싶어집니다. 지금 96년의 코스타와 그 이후 일년 동안 경험한 변화들을 기억하며 간증하듯이, 나중에 이번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와 코스타 이후에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들을 또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분의 말씀대로 이제는 매일 매일을 코스타처럼 살아가는 daily KOSTA, 즉 dKOSTA로 살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96년 이후에 있었던 그런 지역 교회들의 회복의 역사가 우리 코스탄들을 통해 계속되어지고, 더 나아가 ‘순결한 삶’과 ‘거룩하게 구별된 삶’, 즉 ‘먼저 자기 집 앞을 청소하는’ 그런 선교사적 삶을 통해 적극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서 이 시대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 나가는 저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좌담회]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 김경수, 김정숙, 차문희, 최재범

이코스타 2002년 8월호


eKOSTA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독자와 함께 하게 될 eKOSTA 좌담회, 오늘 그 처음 시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KOSTA 좌담회에서는 2002년 미주 코스타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면서, 받으셨던 은혜들을 나누고,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특별히 오늘 좌담회에서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일년을 살아가게 될 우리 코스탄들의 각 지역에서의 역할과 비전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코스타 이후 연중 지속되는 코스타로서의 postKOSTA 사역의 비전과 그 방향성에도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물론 postKOSTA 사역의 각 지역사회 및 지역교회와의 동역에 대한 논의도 빠져서는 안되겠지요.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되, 코스타에서 하셨던 역할 혹은 코스타와의 인연과 함께 짧게 말씀해 주세요.


차문희 저는 조지아주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고 Family Service를 공부하고 있는 차문희입니다. 이번에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저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짧은 시간에 섬기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라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최재범 저는 최재범입니다. 컬럼비아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이번에 미주지역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더군다나 기혼조의 조장이라 싱글일 때와는 기분이 다르더라구요. 작년에 뉴욕/뉴저지 지역의 gpKOSTA에 참석을 하면서 코스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김정숙 저는 현재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살고 있고요, 코스타는 93년 미시간에서 대학원재학 중 처음 참석하였고, 96년부터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맡았던일은 코스타 수양회 시작 전에는 오퍼레이션 부문에서 준비과정을 섬겼구요, 기간 중에는 프로그램 진행을 도왔습니다.


김경수 저는 1993년부터 코스타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고, 지금은 비영리단체경영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는 조장 멘토로서 작년에 이어 2년째 조장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예, 다들 반갑습니다. 이번 2002년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은혜들과 코스타 이후 변화된 부분이 있었다면, 짧게 각각 한, 두가지씩만 나눠 주시죠.

최재범 전 제가 속한 공동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었던것들로부터 회복될 수 있었던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구요. 조모임을 통해서 우리 세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나 가정 그리고 학교나 회사에서…. 예전과는 달리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지요.

차문희 미국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언어와, 다른 문화적인 차이등을 비롯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미국에서 친구의 전도를 통해 만났는데요, 그다지 믿음이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 제일 은혜받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갖게된 것입니다. 신앙과 학문적인 비전 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과 기도로 치유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평보다는 하나님 측면에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 자신의 치유없이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김경수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 코스타에 참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로, 코스타에 참여하면서, 가족관계의 변화와 가족들 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신앙이 말씀 안에서 견고해져가고 있다는 것이고, 저 자신도 말씀과 가족공동체를 이끌어갈 힘과 지도력을 코스타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숙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저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던것이 가장 감사할 부분입니다. 아침 강해 설교에서 다루었던비전에 관련된 메시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저의 삶을 통해서 손수 이루어가시는 비전을 다시 한번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예, 다들 굉장히 많은 은혜들을 받으셨군요. 그럼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코스타의 주제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였는데 코스타 전체 진행을 놓고 볼 때 주제의 충실도는 어떻다고 개인적으로 느끼셨나요? (편집자 주 : 올해 KOSTA의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과 KOSTA 집회에 있어 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재평가는 eKOSTA 9월호의 좌담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차문희 세미나의 대부분과 새벽기도, 성경강해, 저녁설교와 일터의 현장의 메시지가 코스타 주제와 많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유학생들의 삶에 많이 중점을 두고 있어서 제 자신의 삶에 많이 비추어 보았습니다.

김경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주제에 충실했다고 보여집니다.

최재범 전 수련회기간 동안에 새벽예배가 가장 일관되게 주제를 맞추어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KOSTA 저희가 관심있는 부분은. 두가지 주제를 조금 나누어서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치유되는 자아를 구분한다면 (물론 궁극적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두 부분 다 충실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치유되는 자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어졌나요?

김경수 다분히 개인적인 치유 쪽에 더 치우쳤다고 봅니다.

차문희 예 그렇습니다.

최재범 제 생각도 개인적인 회복에 많이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전체적인 메시지의 비중을 따지자면 하나님나라의 회복보다는 개인의 치유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지문에 명시된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회복이 바로 “나”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나라/공동체의 회복은 코스타 후의 개인의 삶을 통해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코스타 이후에 개인의 삶에 실현시킬 수 있을 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군요. 이에 대한 의견들을 좀 주시죠. 이제는 딱딱한 질문과 대화체에서 벗어나 좀더 메신저 컨퍼런스의 생동감을 살릴 수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문희 글쎄요, 아마 내 자신의 신앙상태를 수시로 정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 하나님과 큐티를 하면서 큐티에서 얻은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며 하나님과 기도로써 교재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지요.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교회나, 학교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 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겠지요. 나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치유받기가 어렵겠지요.

최재범 저희 조에서 가장 많이 오고간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가정을 만들고 아이가 생긴 부부로서 어떻게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을 섬기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와 직장에 대해서는 결혼 전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많이 고민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별 문제가 없다가도,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을 시작하더군요…. 그 세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섬기는 모습…. 그것에 대한 소망은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힘든 것을 인정해 주시지 않고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시는 현실 앞에서 많이 힘들어 했지요.

차문희 아직도 많은 한국 교회들 특히 이민 교회들은 기본적인 영적 치유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기 바라는 게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김정숙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이 자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문희 건강한 자아상,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불평만 하는 마음을 갖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경수 자아상, 이성(결혼한 사람은 가정), 진로문제 이 세가지가 현실적인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아마도 아직까지 회복된 자아가 나타나는 모습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차문희 맞아요.

김경수 최근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심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하는데요.

eKOSTA 문희자매님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숙간사님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서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으로, 그리고 재범형제님은 결혼에 관련해 교회와 직장과 가정으로까지의 하나님의 확대를 말씀하셨군요. 그렇다면 우리 코스타에 참석하는 유학생과 eKOSTA 독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나라의 범위 혹은 개념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김경수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웃과의 회복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일이 나의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에 확장될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오는 것이지요.

김정숙 저도 동감 합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가정, 교회, 삶의 터전의 영역도 포함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차문희 일단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와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왜 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교회만 나가서 구하기만 하고 봉사활동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그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의 나라에 일군으로 쓰시니까요. 즉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지요. 학문과 신앙에서 모두.

eKOSTA 예, 그렇군요. 문희자매님께서는 자아의 치유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내부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되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이 교회와 직장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고 보시는군요.

차문희 네.

eKOSTA 그런 의미에서 postKOSTA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경수 진정한 의미에서 코스타는 지금이 시작 아닌가요?

차문희 예.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어떻게 우리 삶이 변화하느냐가.

eKOSTA 올해의 아주 큰 특징 중 하나는 코스타 이후로 웹을 통해 아주 진지한 나눔과 교제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고 계시고 어떤 영향들을 받고 계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유학생들과 지역 교회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김경수 코스타 이후 공식적인 웹사이트 이외에 이미 있던유학생 모임 웹사이트나 코스타 이후에 생긴 사이버 클럽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숙 간사님 중의 한 분이 코스타 직후 함께 평가회를 하면서 코스타 마지막 날의 폐회예배의 명칭을 개회예배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는데, 다들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코스타는 그후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재범 저는 지역 게시판에 종종 들어갑니다. 비록 글은 많이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고민하고 힘쓰는 모습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문희 저는 jjKOSTA, eKOSTA, tmKOSTA 보드에서 활동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하는데, 기도 부탁합니다.

김경수 저희 유펜(UPenn) 성경공부 모임의 예를 들면 기존에 잠자던웹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정숙 코스타 이후에 개인이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는 게시판들이 영역별로 다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jjKOSTA, tmKOSTA, 각 조별 게시판, 전체 게시판 등

차문희 그런데, 아직도 많은 tmKOSTA의 전공별 모임들 중 활동을 개시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eKOSTA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postKOSTA를 힘써 이루어갈 수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어떤 부분들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계와 또는 주의할 점들은요?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jjKOSTA와 gpKOSTA를 합쳐서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문희 제가 있는 동남부 지역 jjKOSTA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참여율이 별로입니다.

최재범 지금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상황이 가장 좋은 매개체인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코스탄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이 postKOST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tmKOSTA 게시판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같은 전공을 가진분들과 전공과 신앙에 관련된 진지한 대화를 하기란 지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KOSTA 그렇군요. 지역 매개체와 전공매개체 둘 다 중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gpKOSTA와 jjKOSTA 둘 다 중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지역별 혹은 전공관심별로 약간의 차이들이 있군요.

김경수 아마도 지역별로 묶여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들 지역별로 활동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더군요.

eKOSTA 그렇다면 올해 jjKOSTA가 지역을 타겟으로 하고 사역한 것이 아주 중요하고 유효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최재범 그런데 tmKOSTA의 경우 공통 관심사를 갖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같은 전공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싶네요. 같은 전공내에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공보다는 “하는 일” 또는 “연구분야”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반도체를 하는 사람의 전공에도 재료, 전자공학, 물리 등 많은 것이 있으니까 반도체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이게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연구와 직장에서의 문제점들을 나누는 거지요. 제 경험상,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을 때, 전공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점만 고집하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 전공별 모임을 통해 나눈 지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또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를 자세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면서 성장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경수 재범 형제 의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는 미국에 남는 영프로페셔날들과 대학원생들 간의 교류가 필요해지리라고 봅니다. 이번 KOSTA에 젊은 교수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거든요.

김정숙 최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전공자체가 공동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더 친밀한 공통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eKOSTA tmKOSTA는 더 세부화된 전공혹은 관심(하는 일)들로 묶여서 아주 적은 인원이나마 전공혹은 일속에서 동역자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군요. 그리고, 김총무님이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KOSTA에서의 젊은 교수님들과 더불어 젊은 목사님들의 약진도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 교수님 혹은 전문직 종사하시는 분들과 대학원생들의 네트워크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교수님과 직장인님(?)과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요..

eKOSTA 그리고 지역별 사역들이 언급되었었는데요, 어떤 방향으로 지역별 네트워크가 진행되면 좋을지 의견들을 주세요. 지역이 캠퍼스 사역일 수도 있고, 또 지역 교회의 갱신과 연합 등일 수도 있고 한데요….

김경수 소위 말하는 Social Capital 개념인 네트워크가 KOSTA 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즉, 일년에 한번하는 수련회가 KOSTA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KOSTA가 되는 것이지요

차문희 그런 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좀 더 비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김경수 재범형제가 생각하는 네트워크를 모델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대도시 중심으로 말이지요.

차문희 네트워크 KOSTA, 상상만 해도 기대가 큽니다.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지역 내에 있는 학교에서 일단은 찬양집회를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찬양집회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집회는 그 지역의 교회와 성경공부그룹이 협력을 하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지역의 캠퍼스사역에 동역하는 거지요. 어느 교회나 단체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냥 학생들의 모임으로 말입니다.

eKOSTA 와! 벌써 구체적인 모임들이 시작되고 있군요! 정말로 그런 실제적인 네트워크와 사역들이 미국 각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김경수 제 견해로는 찬양집회만으로는 약하다고 봅니다. 연합모임의 경우 말씀에 기초한 기도운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네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 합니다.

김정숙 구체적으로 그런 모임들을 주선하려면 어떻게 시작을 하시나요? KOSTA에 참석한 분들과 연락망을 사용해서 일단 모이게 되나요?

최재범 글세요, 그냥 일단은 시작을 하면서,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모임 등으로 모임을 서서히 키워 나갈 예정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차문희 그런데…, 그런 모임이 큰 지역은 가능하지만….

김경수 저희 필라에서도 UDT(Upenn, Drexel, Temple) Network Zone(가칭)이라는 모임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교회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유학생 출신들과 영프로페셔날, 유학생 이상의 세그룹이 만나는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재범 저희는 일단, 지역 내의 공동체에 대한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 내에 장소를 섭외할 곳, 찬양을 인도해 주실 분, 설교말씀을 주실 분을 분담했습니다.

차문희 저 역시 제가 속한 교회에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들과 힘을 모으는 중인데, 기도해 주세요.

eKOSTA 그러한 연합모임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 사역과 방향의 범위 등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차문희 교회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겠지요. 작은 지역과 큰 도시를 함께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역의 목표와 미래의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재범 사역의 목적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저희는 저희 학교나 맨하탄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전도와 성장이 주목적이라고 정했습니다. 문제는 각 유학생이 지역교회의 활동과 캠퍼스 내에서의 활동을 어떻게 조율하는가 하는 거구요.

김경수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이 시작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유학생 연합운동은 이제 그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KOSTA 예, 최형제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와 양립될 수 있는지, 혹은 자칫하다가는 지역교회의 반대에도 부딪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김경수 지역교회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학생사역으로 지역교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김정숙 제가 있는 지역같은 경우에는 4-5개 되는 교회들 간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연합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할때 아주 리스키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문희 (김경수총무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김정숙간사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이 작고 교회 수가 작다 보면 단합은 힘들 것 같은데요.

최재범 아직 저희는 활동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지만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 입니다. 저도 김총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지역교회를 바꿀 수는 없지요. 단지, 그 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부탁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저희가 하는 거지요.

김경수 문희자매님의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바로 불신 유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이구요. 기본적인 제자훈련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서 아시아권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외에도 더 많습니다.

최재범 이에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저희 학교 예를 들면, 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단체 이외에는 절대로 건물을 빌려 주지 않거든요.

차문희 김총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의 이민자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유학생들이 돈이 많아서 돈 쓰러 왔다고 편견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최재범 사실 유학생들에 대한 그런 편견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유학생들 간의 신앙훈련이 더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 부분도 지역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좀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되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KOSTA 김경수 총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로는 한국 유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지역교회와 그 연계성이나 결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전도한 사람들이 속하게 되는 개교회), 아시아권 유학생들이나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선교의 개념으로 간다면 지역교회들이 함께 해 나가야 될 큰 명분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교회와 캠퍼스 모임 등과 같은 다른 사역들의 협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데요, 중서부 지역같은 경우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지역교회와 캠퍼스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KOSTA 저희도 정숙 간사님 말씀을 십분 이해하며,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갖게된 것이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선교차원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수 정숙간사님이 계신 곳의 상황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지역적인 한계라고나 할까요. 제가 주장하는 연합은 대도시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소수의 교회들은 지도자들의 결정이 연합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야 일은 유학생(KOSTA) 출신 중에서 사역자가 나오도록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숙 김경수총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서부 지역 같은 경우에는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김총무님 말씀대로 목회자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김경수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전도와 제자화에 힘쓰고, 영프로페셔날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사역자화에 힘쓰는 것이 개념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차문희 네 동의합니다.

최재범 이런 학생 운동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교역자분들은 이해하시기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경험상 이해를 못하시는 것이지요….

김정숙 최형제님과 eKOSTA의 말씀대로 단시간에 교역자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시도는 해야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수 “설득”이라는 말보다는 “동역”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봅니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하면서 그 분들과 동역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봅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집회가 끝난 바로 순간부터 KOSTA는 시작된다”는 사고의 전환과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사역으로의 발돋움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차문희 저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최재범 요즘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지역교회와 학생운동 간의 괴리에는 학생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KOSTA 같은 모임에서 지역교회에 문제점이 많은 것처럼 느끼고 가서 지혜롭게 해결하기 보다는 젊은 혈기에 부딪힌 분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땐 그랬던거 같구요.

김정숙 최형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사역을 하면서 KOSTA에 참석하고 각자의 지역교회로 돌아온 분들을 볼 때 가슴이 “조마 조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김경수 KOSTA 운동 즉 유학생운동이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믿어왔고 또 앞으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정말 더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죽고 삶으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유학생운동을 통한 교회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조국의 갱신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문희 앞으로 우리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eKOSTA 시간이 많이 되어서 이제 정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eKOSTA와 eKOSTA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차문희 eKOSTA의 독자광장코너에 유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면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요.

최재범 유학생활을 통해 느낀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나그네” 입니다. 나그네 동안 잃을 것도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문희 좋은 말씀해 주셔서 저도 오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그래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한 말씀들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명선] 어느 코스탄의 편지

이코스타 2002년 8월호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이번 2002년 미주 코스타에서 큰 은혜 받았습니다.


제 이름은 한명선이구요,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 나는 몇 가지가 있어서 적어 봤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몇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혹, 제가 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코스타에 헌신하고 계신 여러분들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저도 코스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두 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 코스타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에 얼마나 집중했나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와 그 안에 치유되고 회복될 자아라는 생각을 하고는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이지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세적 하나님 나라 이해에서 현세적 하나님 나라,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고 찬양할 것을 크게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집회가 내내 진행되는 동안 이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는 얼마나 언급되어졌고 또 얼마나 생각되어졌는지 생각해봅니다. 아마 새벽 시간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믿기로는 코스타는 매 해 밖으로 걸리는 주제보다 더 강한 주제가 그 저변에 이미 깔려 있습니다.


“Tentmaker”.


코스타에 참석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코스타가 가지고 있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코스타 저변에 아주 처음부터 깔려 있는, 확고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학문 공동체 혹은 직업 공동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기도로 코스타에 찾아오고 또 코스타는 그들을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tentmaker들로 길러내는 중요한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해 코스타의 주제가 “순결”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코스타에서 얼마나 그 주제가 강조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매년 코스타의 주제를 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의미한 주제로 집중력을 흐리게 하는 것보다 이미 코스타의 저변에 깔려있는 “tentmaker”라는 주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그 하나로 신앙적 역량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자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그 주제가 코스타와 코스타에 참석하는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매년 또 다른 주제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다른 하나는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 코스타가 이제는 “transition”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참여하시는 강사님들이 바뀌어 가고 참여하는 학생들도 바뀌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아직 그 70년대 80년대 폭발적인 부흥 성장을 뒷받쳐 줄 마땅한 후계자를 찾고 있지 못하듯, 코스타도 처음의 그 열정과 그 헌신을 뒷받쳐 줄 다음 지도자를 찾는 일에 이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저녁 남서울 교회와 지구촌 교회에서 부목사님들을 지내셨던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하시고 그 뒤에 코스타의 원조격이신 이동원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마무리 하시는 것을 보고는 지금 코스타가 겪고 있는 transition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동원 목사님께서 앞에 나서신 두 목사님의 지원(back up)을 해주고 계시며 그 무게를 더 해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코스타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이제 코스타에 변화가! 필요하고 transition이 필요하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의 열정이 식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스타가 소위 인기있는 강사들을 찾기 보다 신실한 강사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한 단체든지 소위 처음의 인기를 의식해서 아주 중요한 transition의 시기에 내용보다는 그 인기 유지에 힘을 더 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처음의 뜻과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오직 사람들, 그 인기만 남게 되지요. 하지만 나는 코스타의 힘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코스타의 힘은 하나님께로 향한 천 오백 영혼들의 헌신과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스태프, 그리고 강사님의 마음이 여기까지 코스타를 오게 한 힘이라 믿습니다.


이제 이 transition의 시기에 코스타가 더 신실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숫자나 규모에 휩싸이지 말고 인기나 소문에 휩싸이지 않고 신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사람으로 다시 코스타가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고민하고 기도하고 계신 것들을 제가 다시 이야기한 것이라면 괜한 사족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 코스타를 위해서 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지성] post KOSTA 신드롬 극복하는 법

post KOSTA

post KOSTA 신드롬 극복하는 법

1. post-KOSTA syndromes

2001년 7월 9일 월요일 아침, 창밖이 환하게 밝아있다. 아직도 코스타에서의 열띤 찬양과 기도소리는 귓가에 쟁쟁한데, 희미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감지되는 햇빛, 그 햇빛이 창으로 들어오는 각도와 강도를 보아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앗! 시간은 아홉 시 삼십 오 분, 여섯 시로 맞추어 놓은 알람 시계의 snooze 단추가 눌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 아침에는 반드시 일찍 일어나 큐티를 하려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늦었다! 코스타에 가려고 지도 교수님에게 눈치밥 먹으며 겨우 휴가를 받아 냈었는데… 오늘은 월요일, 지도 교수님이 실험실에 나오시기 전에 먼저 갔어야 했는데… 후다닥! 일어나 옷은 주섬 주섬, 아침 식사는 대충 건너 뛰고, 자동차 시동을 걸고 학교 실험실을 향해 마구 밟아댄다…. 어느덧 하루의 일과가 정신 없이 대충대충 지나가고… 저녁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피곤함으로 초죽음이 되어 있다.

왜 이렇게 공부와 연구는 재미 없는 것일까? 코스타의 열기는 내 마음 속에서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매일 코스타 같은 집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공부 다 때려치고 신학교에나 갈까? 그러면 매일 성경보고 찬양하고 전도하고 할 수 있을텐데… 아님, 이번 가을에 확 선교사로 나가서 일생을 선교지에서 살다 그렇게 그냥 죽어 버려? 왜 이렇게 공부가 재미 없지? 논문을 쓰려면 아직도 2년은 더 실험을 해야 되는데… 그런데, 학위 마치고 나서 나는 어디로 가지? 한국에 Job 사정도 어렵다는데… 그리고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한 것과 나의 인생에서 내가 가야 할 길들과는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자, 나는 이제 마치 각개 전투를 하는 군인처럼 느껴지는 냉혹하고 고독한 현실 가운데로 돌아온 것일까? 나는 이제 또 한 해를 날마다 순간마다 그 수 많은 결정들을 홀로 내리면서 살아야 한다. 마치 두 갈래 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존재로 서게 되는 두려움을 항상 갖고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Savior)으로 모시면 그 분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주님(Lord)이 되신다던데, 도대체 나는 이 “홀로 서기”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란 말인가?

2.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

구약의 지혜서인 잠언 3장 5절에서 6절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축복된 삶의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기서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라는 말씀은 가야할 길을 선택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신다는 것 이상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실 때에는 내 앞에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시고 그리고 높은 곳은 깎고 깊은 곳은 돋우어 평탄하게 만들어 주시는 동행하심의 의미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 발 앞서 가시면서 가야 할 길을 “예비해 주심”의 의미가 더 강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과의 동행함”의 축복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면에서 주님께 의지적인 순종을 해야 함을 이 말씀은 아울러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나의 “감성, 지성, 의지”의 모든 면을 다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성과 지성과 의지적인 면이 별로 성숙되어있지 않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부족한 인격을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초청에 응답하는 일, 즉, “의뢰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는 “기대감”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그 기대감을 갖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동행하시기를 원하는 그 초청의 은혜를 기대하는 “감정”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그 동행하심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들의 지적인 활동을 통해 알아가게 되기를 기대하는 모든 지식적인 “탐구(연구)활동”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적인 활동은 성경 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 뿐만 아니라 내 전공분야에서 나에게 주신 지적 활동의 수행까지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참고: 본지에 계속 연재된 “이일형”의 글을 참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내가 “순종”할 의지적인 결단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기대감을 갖는 것입니다.

둘째는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일”입니다. 인간에게는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원리들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도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만으로도 매우 괜찮아 보이는 일들을 이룰 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지 못할 때에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절대적인 위치에 놓게 되고, 성경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나 하나님의 저주하시는 삶”(예레미야 17:5)을 살게 되어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 삶이란, 삶의 기저에 하나님이 인간을 인간되게 하신 창조주이심을 인정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사물의 원리들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되면 결국에는 나의 생각과 삶의 방식들이 하나님의 그것들과 비교하여 매우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 인식은 결국, 다음의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에 무한한 가능성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처험하게되는 진정한 축복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8-9)”

셋째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범사”란 나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의 삶의 모든 영역을 의미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 삶”이란 나에게 주어져 있는 “모든” 자원과 기회들이 말씀의 원리에 따라 사용되어질 수 있도록 기꺼이(감성) 탐구하며(지성), 그 알게 되고 느껴진 것들을 하나 하나 적용하며(의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놓치기 쉬운 것은, 이 “범사”의 개념은 나 한 개인의 삶에만 국한된 것이라기 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시대, 이 때에 내가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알게 모르게 관련된 다양한 공동체들을 포함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스타 기간 동안 열광하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한 번 뒤집어(?)졌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력한 감성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의 삶이 하나님 없이 홀로 서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무기력 속에 빠져 있는 스스로를 보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은 지성적인 면과 의지적인 면의 성숙을 위해 나의 삶을 점검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방법 대로 사는 법을 말씀 속에서 탐구해 나가고 내게 주어진 학문 활동을 진지하게 수행하며, 지식으로 알게 된 말씀의 원리에 나의 삶을 복종시키는 작업을 해 나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삶의 정황에 주어진 작고 큰 공동체의 모습들도 동일한 원리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데이트, 가정, 연구실, 캠퍼스 소그룹, 교회, 그리고 한민족 등등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날 수 있도록 기대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각오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삶의 점검과 성숙은 강력한 헌신이 요구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성적 자아가 뒤집어지게(?) 열광한 것보다도 더 강력한 강도의 헌신을 요구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진지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막대한 대가를 치뤄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반드시 잊지 마십시다. 이 길은 매우 즐겁고 흥분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나의 인생의 여정에 앞서 가시는 주님의 흔적을 기적과 같이 날마다 체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기독 유학생의 열 두 가지 다짐을 위한 기도 제목

우리는 코스타의 마지막 날 밤에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갖고 헌신의 기도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이 기도 제목들은 “헌신”의 시간을 위한 기도 제목들이었지만 사실은 앞서 언급한 잠언의 약속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 “축복”의 기도 제목들입니다. 이 잠언에 약속된, 주님의 앞서 가시는 동행하심의 축복은 이 기도들이 나의 삶 가운데에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경험되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감성적 체험의 폭이 넓어짐과 더불어 지식의 자라감과 의지적 순종이 다음 일년 동안 우리의 삶에 경험되어지기를 바라십시다. 이를 위해 이제 다음의 다짐들이 날 마다 나의 삶에 더 성숙한 모습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또 한 해의 경주를, 기도하며 같이 시작하십시다.

1) 주 되심(Lordship)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개인적인 구주(Savior)일뿐 아니라 내 삶의 주인(Lord)이신 것을 고백한다. 또한 그분이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인 것을 고백하며 살 것을 다짐한다.

2) 경건의 시간(Quiet Time) … 우리는 매일 일정 시간(30분 이상)을 떼어 놓고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갖기로 다짐한다.

3) 중보 기도(Prayer) …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우리가 속한 공동체와 조국, 교회, 민족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고 수행할 것을 다짐한다.

4) 성경 연구(Bible Study) … 우리는 성경 말씀을 우리 삶의 좌표로 삼고 순종하기 위하여 매 주 일정 시간을 떼어 놓고 성경 연구에 투자할 것을 다짐한다.

5) 가정(Family) … 우리는 가정을 허락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여, 아름답고 건강한 가정을 이룰 준비를 할 뿐 아니라 이미 주신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6) 교회(Church/Community) … 우리는 매 주일 정기적으로 캠퍼스 혹은 지역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

7) 학문과 신앙(Study and Faith) … 우리는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위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지성을 훈련하며, 지혜롭게 사용할 것을 다짐한다.

8) 복음 전도(Evangelism) … 우리는 복음 전도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인식하고 매 학기 1명 이상에게 복음을 전하여 크리스천 공동체로 인도할 것을 다짐한다.

9) 해외 선교(Mission) … 우리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문인 선교사 혹은 보내는 자로서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10) 이웃 사랑(Social Action) … 우리는 어떠한 형태로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웃이 되고, 사회의 불의한 분야를 밝히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할 것을 다짐한다.

11) 통일 한국(Unification) … 우리는 곧 현실화될 통일 한국을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전공 분야에서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12) 섬기는 리더십(Servant Leadership) … 우리는 섬기는 리더십이야말로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알고, 캠퍼스와 앞으로 진출할 사회에서 예수님의 모범을 좇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