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2006/11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은 충분치 않다. 그 믿음이 어떤 것인가 하는 설명을 스스로에게 또 주위사람들에게 해야만 하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때 신앙인들은 성경을 기준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줌으로써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 상기하였듯이. 여기서 신앙의 규준인 성경 외에 개인적인 신앙 탐구의 여정을 기록한 책들이 필요한 이유는 보편적인 말씀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를 봄으로써 새로운 시각에서 신앙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앙은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변증할 수 있다. 기독교적 신앙이 세상을 이해하고 예측하는데 가장 좋은 틀이라면 그것은 모든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 일관성있는 생각, 세상의 모순적인 파괴성 이런 상황에 대해서 적절한 해답을 주는 책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호 ekosta는 믿음을 새롭게 점검할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순전한 기독교”, C. S. Lewis, 홍성사
루이스는 상당한 기간 무신론자 혹은 불가지론자로 살아가다가 기독교적 유신론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꾼 사람이다. 그의 출발점 기본적으로 ‘자 우리 앉아서 잘 생각해보자’라는 것이다. 무신론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하는지, 유신론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하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적인 유일신론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기독교적인 유신론이 왜 가장 보편적인 설명인지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성적인 논변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의 전개 방식을 그 내용과 최대한 분리시켜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 사변의 과정을 통해서 기독교의 진실성을 이해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고의 내적 일관성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종교적인 질문에 대해 기독교적인 시각을 찾아보려는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 되겠다.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박영덕, IVP
술과 도박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한국의 젊은이로서 기독교에 접근할 때 흔히 접하는 어려움에 대해서 조언을 한 후, 신앙의 두 축으로 보편적인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의 역사성과 자신의 삶 속에 경험한 연속된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흔히 겪는 갑작스런 해방과 그에 따른 정신적 혼란 속에서 발견한 신앙을 재미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객관적 사실로서 부활을 제시한 후, 개인적인 경험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설명한다.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삶 속에서 어려워 보이는 현실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을 통해 신앙의 확신이 커져간 경험을 말하고 있다. 신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이고 이야기가 진리를 가장 잘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예수님이 어떤 삶을 사셨고 그분의 메시지가 어떤 것이었나 하는 의문을 충분히 자아낼 수 있는 신앙으로의 초대장이 될 수 있겠다.


“어느 무신론자의 편지”, Edward K. Boyd and Gregory Boyd, 미션월드
기독 변증학 교수인 아들 에드워드가 무신론자인 아버지 그레고리와 3년간 주고 받았던 편지를 묶은 책이다. 완고하지만 논리적인 아버지에게 예수님의 참된 복음을 전하고 싶었던 아들은, 아버지에게 편지를 통해 평소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기독교에 대한 질문을 주고 받는 기회를 갖자고 제안하고, 아버지가 흔쾌히 받아드림으로써 이야기가 시작된다. ‘너는 신학자고 나는 평범한 노인이니,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말고 설명하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의해, 쉽고 명료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왜 하나님은 네 엄마를 살려주지 않느냐?’ ‘세상에는 왜 이리 고난이 많으냐?’ ‘성경을 어떻게 진리라고 믿을 수 있다는 말이냐?’ 등의 무신론자가 기독교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질문들에 대해 조목 조목 답변하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무신론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은, 많은 경우에,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에서 벗어난 선지식과 오해에서 비롯하고 있슴을 지적하고 있고, 그런 오해와 의심이 하나님을 이해하는데는 큰 문제가 아님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신이 스스로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고 있으면서, 의심하고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의 오해를 바로 잡기에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책이다.


“특종 믿음 사건”, Lee Strobel, 두란노
전 시카고 트리뷴 기자 출신으로써의 특유의 논리와 필체로 ‘예수는 역사다’ ‘창조설계의 비밀’의 책으로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리 스트로벨의 기독 변증에 관한 책이다. ‘The case for the faith’가 원제인 이 책은, 한 때 빌리 그래함의 동역자였다가, 불가지론자로 돌아선 찰스 템플턴과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찰스 템플턴은, 지독한 가뭄 가운데서 죽은 아이를 안고 하늘을 올려다 보며 비를 기다리는 한 아프리카 여인의 사진을 계기로 강한 회의를 지니게 된 사람이다. 그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비 뿐이었는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일까라는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으로 부터 회의를 가지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회의론자, 불가지론자가 가질 수 있는 기독교에 대한 8가지 질문들을 다룬다. ‘사랑의 하나님이 악과 고난을 허용할 수 있는가’, ‘비과학적 기적, 믿을 수 있는가’, ‘ 영원한 지옥이 무슨 필요인가’ 등의 보편적인 의문들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을 진행하면서 해답을 모색한다. 짧은 인터뷰를 통한 접근인 만큼, 깊은 신학적 접근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타당한 논리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Fransic Shaffer, 생명의 말씀사
프란시스 쉐퍼의 접근은 두 책과는 반대이다. 다른 전제로 출발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제대로 구현했느냐 하는 것이다. 성경적 세계관으로 뒷받침받지 않는 다양한 문화적 형태가 인간의 가치를 격상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되었다는 성경적 가치관이 함몰되면서 현대 사회의 많은 정신적 혼란이 발생하였고 그것이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을 기술하면서 세속화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지금 현재의 모습이 과연 옳은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인가 독자들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다. 그 내용은 자세히 서술하고 있지 않으나 절대적 표준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고 저자의 다른 책과 강연들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기독교의 핵심을 이야기 하고 있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문화 전반을 검토하려는 시도로 사회문제에 대해 책임있는 답변을 제시해야하는 기독 지성인에게는 가장 기초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각각의 내용에 동의할 수는 없으나 그 문제 제기의 틀 자체는 합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기독교 정치 운동에 깊은 영향을 준 저서로 알려져 있으며 책에 제기된 이슈 설정과 그 이슈의 논의는 깊이 있는 사고를 자극한다.


“목마른 내 영혼”, Alister McGrath, 복있는 사람
사람은 누구나 삶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에 목말라 한다. 우리는 그 자체로 현재 존재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에, 원래의 본향을 향한 영적 목마름이 있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복음주의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그런 인간의 본성을 기초로, 우리의 갈망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자는 동굴과 같은 여러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의 본성적인 갈망에 대해 아름답게 이야기 하고 있다. 동굴 안에서 바같의 다른 세상에 대해 동경하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바깥 세상이 감추어져 있는 것만은 아님을 이야기 한다. 쉽고 수려한 문체를 통해, 우리의 본성이 가지고 있는 초월자에 대한 갈망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편집부]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이달의
초점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eKOSTA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독자와 함께 하게 될 eKOSTA 좌담회, 오늘 그 처음 시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KOSTA 좌담회에서는 2002년 미주 코스타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면서, 받으셨던 은혜들을 나누고,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특별히 오늘 좌담회에서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일년을 살아가게 될 우리
코스탄들의 각 지역에서의 역할과 비전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코스타 이후 연중 지속되는 코스타로서의 postKOSTA 사역의
비전과 그 방향성에도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물론 postKOSTA 사역의 각 지역사회 및 지역교회와의 동역에 대한
논의도 빠져서는 안되겠지요.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되, 코스타에서 하셨던 역할 혹은 코스타와의 인연과 함께 짧게 말씀해 주세요.

차문희
저는 조지아주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고 Family Service를 공부하고 있는 차문희입니다. 이번에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저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짧은 시간에 섬기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라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최재범
저는 최재범입니다. 컬럼비아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이번에 미주지역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더군다나 기혼조의 조장이라 싱글일 때와는 기분이 다르더라구요. 작년에 뉴욕/뉴저지 지역의 gpKOSTA에 참석을 하면서 코스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김정숙
저는 현재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살고 있고요, 코스타는 93년 미시간에서 대학원재학 중 처음 참석하였고, 96년부터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맡았던일은 코스타 수양회 시작 전에는 오퍼레이션 부문에서 준비과정을 섬겼구요, 기간 중에는 프로그램
진행을 도왔습니다.

김경수
저는 1993년부터 코스타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고, 지금은 비영리단체경영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는 조장 멘토로서
작년에 이어 2년째 조장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예, 다들 반갑습니다. 이번 2002년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은혜들과 코스타 이후 변화된 부분이 있었다면, 짧게 각각
한, 두가지씩만 나눠 주시죠.

최재범
전 제가 속한 공동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었던것들로부터 회복될 수 있었던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구요. 조모임을 통해서 우리
세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나 가정 그리고 학교나 회사에서…. 예전과는 달리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지요.

차문희
미국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언어와, 다른 문화적인 차이등을 비롯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미국에서
친구의 전도를 통해 만났는데요, 그다지 믿음이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 제일 은혜받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갖게된 것입니다. 신앙과 학문적인 비전 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과 기도로
치유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평보다는 하나님 측면에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 자신의 치유없이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김경수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 코스타에 참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로, 코스타에 참여하면서, 가족관계의 변화와 가족들 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신앙이 말씀 안에서 견고해져가고 있다는 것이고, 저 자신도 말씀과
가족공동체를 이끌어갈 힘과 지도력을 코스타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숙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저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던것이 가장 감사할 부분입니다. 아침 강해
설교에서 다루었던비전에 관련된 메시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저의 삶을 통해서 손수 이루어가시는 비전을 다시 한번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예, 다들 굉장히 많은 은혜들을 받으셨군요. 그럼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코스타의 주제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였는데 코스타 전체 진행을 놓고 볼 때 주제의 충실도는 어떻다고 개인적으로 느끼셨나요? (편집자
주 : 올해 KOSTA의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과 KOSTA 집회에 있어 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재평가는 eKOSTA 9월호의
좌담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차문희
세미나의 대부분과 새벽기도, 성경강해, 저녁설교와 일터의 현장의 메시지가 코스타 주제와 많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유학생들의 삶에 많이 중점을 두고 있어서 제 자신의 삶에 많이 비추어 보았습니다.

김경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주제에 충실했다고 보여집니다.

최재범
전 수련회기간 동안에 새벽예배가 가장 일관되게 주제를 맞추어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KOSTA
저희가 관심있는 부분은. 두가지 주제를 조금 나누어서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치유되는 자아를 구분한다면 (물론 궁극적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두 부분 다 충실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치유되는 자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어졌나요?

김경수
다분히 개인적인 치유 쪽에 더 치우쳤다고 봅니다.

차문희
예 그렇습니다.

최재범
제 생각도 개인적인 회복에 많이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전체적인 메시지의 비중을 따지자면 하나님나라의 회복보다는 개인의 치유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지문에
명시된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회복이 바로 “나”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나라/공동체의
회복은 코스타 후의 개인의 삶을 통해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코스타 이후에 개인의 삶에 실현시킬 수 있을 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군요.
이에 대한 의견들을 좀 주시죠. 이제는 딱딱한 질문과 대화체에서 벗어나 좀더 메신저 컨퍼런스의 생동감을 살릴 수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문희
글쎄요, 아마 내 자신의 신앙상태를 수시로 정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 하나님과 큐티를 하면서 큐티에서 얻은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며 하나님과 기도로써 교재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지요.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교회나, 학교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 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겠지요. 나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치유받기가 어렵겠지요.

최재범
저희 조에서 가장 많이 오고간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가정을 만들고 아이가 생긴 부부로서 어떻게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을
섬기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와 직장에 대해서는 결혼 전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많이 고민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별
문제가 없다가도,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을 시작하더군요…. 그 세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섬기는 모습…. 그것에
대한 소망은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힘든 것을 인정해 주시지 않고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시는 현실
앞에서 많이 힘들어 했지요.

차문희
아직도 많은 한국 교회들 특히 이민 교회들은 기본적인 영적 치유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기 바라는 게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김정숙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이 자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문희
건강한 자아상,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불평만 하는 마음을 갖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경수
자아상, 이성(결혼한 사람은 가정), 진로문제 이 세가지가 현실적인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아마도 아직까지 회복된 자아가 나타나는 모습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차문희
맞아요.

김경수
최근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심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하는데요.

eKOSTA
문희자매님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숙간사님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서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으로, 그리고 재범형제님은 결혼에 관련해
교회와 직장과 가정으로까지의 하나님의 확대를 말씀하셨군요. 그렇다면 우리 코스타에 참석하는 유학생과 eKOSTA 독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나라의 범위 혹은 개념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김경수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웃과의 회복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일이 나의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에 확장될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오는 것이지요.

김정숙
저도 동감 합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가정, 교회, 삶의 터전의 영역도 포함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차문희
일단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와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왜 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교회만 나가서 구하기만 하고 봉사활동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그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의 나라에 일군으로 쓰시니까요. 즉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지요. 학문과 신앙에서 모두.

eKOSTA
예, 그렇군요. 문희자매님께서는 자아의 치유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내부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되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이 교회와 직장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고
보시는군요.

차문희
네.

eKOSTA
그런 의미에서 postKOSTA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경수
진정한 의미에서 코스타는 지금이 시작 아닌가요?

차문희
예.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어떻게 우리 삶이 변화하느냐가.

eKOSTA
올해의 아주 큰 특징 중 하나는 코스타 이후로 웹을 통해 아주 진지한 나눔과 교제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고 계시고 어떤 영향들을 받고 계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유학생들과 지역 교회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김경수
코스타 이후 공식적인 웹사이트 이외에 이미 있던유학생 모임 웹사이트나 코스타 이후에 생긴 사이버 클럽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숙
간사님 중의 한 분이 코스타 직후 함께 평가회를 하면서 코스타 마지막 날의 폐회예배의 명칭을 개회예배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는데,
다들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코스타는 그후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재범
저는 지역 게시판에 종종 들어갑니다. 비록 글은 많이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고민하고 힘쓰는 모습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문희
저는 jjKOSTA, eKOSTA, tmKOSTA 보드에서 활동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하는데, 기도 부탁합니다.

김경수
저희 유펜(UPenn) 성경공부 모임의 예를 들면 기존에 잠자던웹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정숙
코스타 이후에 개인이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는 게시판들이 영역별로 다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jjKOSTA, tmKOSTA,
각 조별 게시판, 전체 게시판 등

차문희
그런데, 아직도 많은 tmKOSTA의 전공별 모임들 중 활동을 개시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eKOSTA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postKOSTA를 힘써 이루어갈 수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어떤 부분들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계와 또는 주의할 점들은요?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jjKOSTA와 gpKOSTA를 합쳐서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문희
제가 있는 동남부 지역 jjKOSTA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참여율이 별로입니다.

최재범
지금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상황이 가장 좋은 매개체인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코스탄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이 postKOST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tmKOSTA 게시판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같은 전공을 가진분들과 전공과 신앙에
관련된 진지한 대화를 하기란 지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KOSTA
그렇군요. 지역 매개체와 전공매개체 둘 다 중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gpKOSTA와 jjKOSTA 둘 다 중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지역별 혹은 전공관심별로 약간의 차이들이 있군요.

김경수
아마도 지역별로 묶여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들 지역별로 활동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더군요.

eKOSTA
그렇다면 올해 jjKOSTA가 지역을 타겟으로 하고 사역한 것이 아주 중요하고 유효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최재범
그런데 tmKOSTA의 경우 공통 관심사를 갖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같은 전공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싶네요. 같은 전공내에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공보다는 “하는 일” 또는 “연구분야”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반도체를 하는 사람의 전공에도 재료, 전자공학, 물리 등 많은 것이 있으니까
반도체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이게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연구와 직장에서의 문제점들을 나누는 거지요. 제 경험상,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을 때, 전공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점만 고집하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 전공별 모임을 통해
나눈 지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또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를 자세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면서 성장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경수
재범 형제 의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는 미국에 남는 영프로페셔날들과 대학원생들 간의 교류가 필요해지리라고 봅니다. 이번 KOSTA에
젊은 교수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거든요.

김정숙
최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전공자체가 공동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더 친밀한 공통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eKOSTA
tmKOSTA는 더 세부화된 전공혹은 관심(하는 일)들로 묶여서 아주 적은 인원이나마 전공혹은 일속에서 동역자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군요. 그리고, 김총무님이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KOSTA에서의 젊은 교수님들과 더불어 젊은 목사님들의
약진도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 교수님 혹은 전문직 종사하시는 분들과 대학원생들의 네트워크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교수님과 직장인님(?)과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요..

eKOSTA
그리고 지역별 사역들이 언급되었었는데요, 어떤 방향으로 지역별 네트워크가 진행되면 좋을지 의견들을 주세요. 지역이 캠퍼스 사역일
수도 있고, 또 지역 교회의 갱신과 연합 등일 수도 있고 한데요….

김경수
소위 말하는 Social Capital 개념인 네트워크가 KOSTA 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즉, 일년에 한번하는
수련회가 KOSTA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KOSTA가 되는 것이지요

차문희 그런 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좀 더 비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김경수
재범형제가 생각하는 네트워크를 모델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대도시 중심으로 말이지요.

차문희
네트워크 KOSTA, 상상만 해도 기대가 큽니다.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지역 내에 있는 학교에서 일단은 찬양집회를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찬양집회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집회는 그 지역의 교회와 성경공부그룹이 협력을 하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지역의 캠퍼스사역에 동역하는 거지요. 어느 교회나 단체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냥 학생들의 모임으로 말입니다.

eKOSTA
와! 벌써 구체적인 모임들이 시작되고 있군요! 정말로 그런 실제적인 네트워크와 사역들이 미국 각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김경수
제 견해로는 찬양집회만으로는 약하다고 봅니다. 연합모임의 경우 말씀에 기초한 기도운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네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 합니다.

김정숙
구체적으로 그런 모임들을 주선하려면 어떻게 시작을 하시나요? KOSTA에 참석한 분들과 연락망을 사용해서 일단 모이게 되나요?

최재범
글세요, 그냥 일단은 시작을 하면서,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모임 등으로 모임을 서서히 키워 나갈 예정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차문희
그런데…, 그런 모임이 큰 지역은 가능하지만….

김경수
저희 필라에서도 UDT(Upenn, Drexel, Temple) Network Zone(가칭)이라는 모임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교회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유학생 출신들과 영프로페셔날, 유학생 이상의 세그룹이 만나는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재범
저희는 일단, 지역 내의 공동체에 대한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 내에 장소를 섭외할 곳, 찬양을 인도해 주실 분,
설교말씀을 주실 분을 분담했습니다.

차문희
저 역시 제가 속한 교회에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들과 힘을 모으는 중인데, 기도해 주세요.

eKOSTA
그러한 연합모임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 사역과 방향의 범위 등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차문희
교회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겠지요. 작은 지역과 큰 도시를 함께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역의 목표와 미래의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재범
사역의 목적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저희는 저희 학교나 맨하탄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전도와 성장이 주목적이라고 정했습니다. 문제는
각 유학생이 지역교회의 활동과 캠퍼스 내에서의 활동을 어떻게 조율하는가 하는 거구요.

김경수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이 시작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유학생 연합운동은 이제 그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KOSTA
예, 최형제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와 양립될 수 있는지, 혹은 자칫하다가는 지역교회의 반대에도 부딪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김경수
지역교회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학생사역으로 지역교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김정숙
제가 있는 지역같은 경우에는 4-5개 되는 교회들 간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연합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할때 아주 리스키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문희
(김경수총무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김정숙간사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이 작고 교회
수가 작다 보면 단합은 힘들 것 같은데요.

최재범
아직 저희는 활동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지만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 입니다. 저도 김총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지역교회를 바꿀 수는 없지요. 단지, 그 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부탁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저희가 하는 거지요.

김경수
문희자매님의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바로 불신 유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이구요.
기본적인 제자훈련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서 아시아권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외에도 더 많습니다.

최재범
이에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저희 학교 예를 들면, 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단체 이외에는 절대로 건물을 빌려 주지 않거든요.

차문희
김총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의 이민자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유학생들이 돈이 많아서 돈 쓰러 왔다고 편견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최재범
사실 유학생들에 대한 그런 편견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유학생들 간의 신앙훈련이 더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 부분도
지역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좀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되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KOSTA
김경수 총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로는 한국 유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지역교회와 그 연계성이나 결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전도한 사람들이 속하게 되는 개교회), 아시아권 유학생들이나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선교의 개념으로
간다면 지역교회들이 함께 해 나가야 될 큰 명분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교회와 캠퍼스 모임 등과 같은 다른 사역들의 협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데요, 중서부 지역같은 경우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지역교회와 캠퍼스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KOSTA
저희도 정숙 간사님 말씀을 십분 이해하며,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갖게된 것이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선교차원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수
정숙간사님이 계신 곳의 상황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지역적인 한계라고나 할까요. 제가 주장하는 연합은 대도시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소수의 교회들은 지도자들의 결정이 연합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야 일은 유학생(KOSTA) 출신 중에서 사역자가 나오도록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숙
김경수총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서부 지역 같은 경우에는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김총무님 말씀대로 목회자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김경수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전도와 제자화에 힘쓰고, 영프로페셔날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사역자화에 힘쓰는 것이 개념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차문희
네 동의합니다.

최재범
이런 학생 운동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교역자분들은 이해하시기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경험상 이해를 못하시는 것이지요….

김정숙
최형제님과 eKOSTA의 말씀대로 단시간에 교역자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시도는 해야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수
“설득”이라는 말보다는 “동역”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봅니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하면서 그 분들과 동역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봅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집회가 끝난 바로 순간부터 KOSTA는 시작된다”는 사고의 전환과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사역으로의 발돋움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차문희 저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최재범
요즘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지역교회와 학생운동 간의 괴리에는 학생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KOSTA
같은 모임에서 지역교회에 문제점이 많은 것처럼 느끼고 가서 지혜롭게 해결하기 보다는 젊은 혈기에 부딪힌 분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땐 그랬던거 같구요.

김정숙
최형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사역을 하면서 KOSTA에 참석하고 각자의 지역교회로 돌아온 분들을 볼 때 가슴이
“조마 조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김경수
KOSTA 운동 즉 유학생운동이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믿어왔고 또 앞으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정말 더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죽고 삶으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유학생운동을 통한 교회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조국의 갱신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문희
앞으로 우리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eKOSTA
시간이 많이 되어서 이제 정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eKOSTA와 eKOSTA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차문희
eKOSTA의 독자광장코너에 유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면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요.

최재범 유학생활을
통해 느낀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나그네” 입니다. 나그네 동안 잃을 것도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문희
좋은 말씀해 주셔서 저도 오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그래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한 말씀들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독 유학생의 엘리트 주의

이달의 초점


기독 유학생의 엘리트 주의


유학을 한다는 것,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 자신을 던져 더 나은 학업환경을 찾아 나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모험을 감수하는(risk-taking)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학을 나온 유학생들 가운데에서 그러한 모험 감수(risk-taking)를 하고서도 자신이 원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나선, 적극적, 진취적, 모험적 엘리트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허들을 뛰어 넘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성향을 가진 유학생들이기에 그들이 보이는 삶의 방식과 태도도 그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 그것은 그들이 매우 목표 지향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며 행동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학위’로 상징되어 질 수 있는 어떤 ‘성공’을 바라보지 않고서 대부분의 유학생들에게 이러한 모험 감수는 그 자체로 절대로 매력적인 것일 수 없다.


이러한 이들의 삶의 방식은 매우 자주 그리스도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든 유학 생활 도중에 만난 사람이건, 이미 유학을 오기 전에 그리스도인이었건 간에 이들의 신앙 행태는 매우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목표 지향적이고 성공지향적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회심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질이나 성품 등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러한 기질과 성품도 분명히 ‘거듭나야’함을 생각해 볼 때 유학생들의 일반적인 신앙의 모습들은 한번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1. 목표 지향적 자세의 문제


긍정적인 목표 지향적 자세의 모델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빌립보서 3:14)을 그리스도인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목표 지향적인 자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목표가 어디에서 기인했느냐, 그리고 그 목표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거의 모든 기독 유학생들의 ‘목표’는 비기독 유학생들의 목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저 ‘공부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허울 좋은 합리화를 한다는 것을 굳이 차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목표 지향적 자세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목표를 학문적/직업적 성취로 설정해 놓고 있는 유학생들에게 신앙 훈련/신앙 교육의 필요를 인식시키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유학생들에게는 아주 기본적인 신앙 훈련이나 성경공부도 자신의 목표를이루는 장애물로 여기지기 십상이다.


2. 성공 지향적 자세의 문제


이 역시 소위 ‘성공’에의 기준과 동기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자세의 건강함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 경우에도 세속적 가치관에 근거한 성공주의와 전혀 다르지 않은 성공 지향적 자세들이 유학생들과 같은 소위 ‘엘리트’ 그리스도인 사이에 편만한 듯 보인다.


대부분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있어, 노력(성실함)과 성공(성취) 사이에 하나님의 자리는 없다. 모든 노력을 기울여 성실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은 분명 하지만, 모든 성실함이 언제나 성공으로 이끌어 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인도하심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신실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노력을 했음에도 성공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도 선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러한 사람들은 실패자이자 낙오자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세속적 성공주의에 물들어 있는 사람들은 소위 ‘고지론’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 자신의 성공을 하나님의 뜻으로 합리화하는데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을 “기도와 믿음으로 담대히” 물리치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3. 행동 지향적 자세의 문제


“40일 금식기도 3회” 어느 ‘부흥사’의 명함에 이런 ‘경력’이 써 있었다고 한다. 40일 금식기도를 몇번 했다는 것이 신앙의 이력에 들어가는 것도 우습거니와, 어떤 신앙인의 모습이 어떤 일을 행했는지로 판단되는 모습은 더욱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소위 ‘엘리트’ 기독 유학생들 사이에 너무나도 많이 발견되는 모습들이다. ‘예수를 믿으면 이런 것들은 해야지’ 하면서 여러 가지 신앙의 행동들을 시도해 보는 모습들. 그래서 흔히 ‘헌신’의 핵심을 ‘행함’에 두는 모습을 흔히 발견한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어떤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너무나도 자주 눈에 뜨인다. 지역교회에서도 당장 이처럼 눈에 띄는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여기기 마련이고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진정으로 이르는 길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쉽게 지치게 되고, 고갈이 되고, 상처를 받게 된다.


금년 코스타의 주제를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치유되는 자아”로 잡은 것은 어찌보면 매우 일반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유학생들의 성향에 매우 반대되는 것처럼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비정상적이고 비성경적인 (기독) 유학생들의 흐름이 이번 코스타 한번으로 완전히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다소 비상식적인 낙관적 기대이겠으나, 적어도 소수의 사람들이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유학생 문화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품게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언급한 유학생들의 문화 속에서 상처를 받고 고갈된 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풍성한 “치유”를 경험하는 일들이 있었으면 한다.


하나님께서 또 다시 크게 일하실 코스타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