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훈]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이코스타 2001년 11월호

소설가 서영은씨의 초기 작품 중에 한 여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제목은 잊었지만 내용이나 서술이 기억에 남는 그런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별로 자신감이 없는 수수한 여인, 다른 이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며, 스스로를 가꾸지도 않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어느날 사랑에 빠집니다. 축복 받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었지만,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힘겹고 지고지순하게, 어쩌면 목숨을 건듯이 처절하게 그 사랑을 지켜 나갑니다. 자기를 이용만 하려 하는 남자에게 그토록 성실하게, 사회적 지탄도 외면하며 사랑에 매달립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자의 변화입니다. 평소처럼 부스스한 차림으로 시장에 가려던 그녀는 아, 우연히 그를 마주치면, 하는 생각에 다시 들어와 단장을 하고 나가지요. 장에서 물건 값을 깍으려다 그가 보면, 하면서 너그럽게 행상 노인에게 값을 치릅니다. 그녀의 모든 행동과 차림새에 그를 떠올리며 점점 나은 여인의 모습이 되어 갑니다. 언제나 그녀의 내부에는 그가 의식되어지기 때문에 그녀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고, 그녀가 치르는 헌신적인 사랑이 기쁨이 됩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강한 구속이며, 삶을 지탱하는 끈이 되어 갑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욕의 원천이 되어 줍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속성, 이기심 때문에 그 사랑은 짓밟히게 되어 버리지요. 소설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뒷부분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사랑의 구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직접적이지 않고 강제적이지도 않은 이 구속감! 사랑의 기대감 같은 것. 혼자 있을 때에도 수 없이 자신에게 말을 걸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하는 이 구속감을 힘겹게 생각하거나 불행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생기찬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얼마 전 먼 곳을 여행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막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얌전하게 달리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마구 속도를 내며 이리 저리 주행선을 바꿔 댑니다. 바로 레이져 감시 탐지기를 전후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감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심한 것일까 하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존재를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있는지, 나를 사랑의 기대감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속에 대하여 얼마나 자유(?)로운지. 보이지도 않는 그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분의 현존을 그렇게도 확신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모순.


아무도 보는 이 없이 홀로 그와 대면하고 있는 고요한 순간, 나는 마치 벌거벗은 아이와 같은 데도 감추려 하는 것이 많고 심지어 속이려 하고…. 지금 이곳에서 그가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분명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더 온유하고 단정하고 밝아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가 귀 기울이고 있다면, 성내고 비판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사악한 생각과 행위의 그릇됨이 부끄러워 차마 계속 죄를 저지를 수 없겠지요. 내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그를 찾듯이 순간 순간 그를 발견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어야 하겠지요. 나의 한 없는 사랑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며 그 또한 무한한 사랑을 내게 주기를 약속하였기에 나는 기쁨의 구속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이고 인위적인 감시망 보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두려워 하며, 그 빛에 이끌려 밝은 곳으로 가는 아름다운 영혼. 바로 이 순간 나를 변화시키며 아름다운 우정을 쌓기를 바라시는 그분,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시며,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내 존재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 내가 만난 그분을 나는 사모합니다. 그 사랑의 간절함으로 그를 찾고 부르며, 내가 나 아닌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 나길 간구합니다.

[함철훈] Give Thanks

eKOSTA 갤러리


Give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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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sion에서는 부모를 잃고 버려진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 곳곳에서 사랑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주었고 또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 아이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내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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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른들의 보살핌을 못 받고 본드를 흡입하며 길바닥에 뒹구는 아이들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 이 아이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어른들의 아주 작은 사랑이었습니다
주신 것에 감사(Thanks giving)하는 오늘의 삶에 추수 감사절을 맞아 Give thanks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못다한 말.
제가 캄보디아를 취재하기 얼마 전 베트남 비행기가 푸놈펜 인근에 추락했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우리나라 등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언론들은 충격적인 현장 사진을 내보냈습니다.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는 비행기 잔해 위에서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무언가 줍고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시체 더미를 헤치고 지갑을 꺼내고 반지와 시계를 빼는 장면 이였습니다. 그 기억 위에 킬링 필드의 현장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의 선하고 맑은 눈동자를 사진에 담으며 겪었던 제 마음의 갈등과 혼란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캄보디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양면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문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를 헤치고 다닌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나를 위해 모든 선한 일을 계획하시고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두 장의 사진을 더 찍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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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곳보다 사랑이 더욱 필요한 곳을 두 손으로 포근히 보담아 주시는 보이지 않는 손의 형상을 캄보디아 바탕방 하늘 크게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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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머지 다른 사진도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안종혁] 양식을 예비하고, 용사는 무장하라

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


양식을 예비하고, 용사는 무장하라


들어가는 말


본 칼럼은 유학을 마친 후에 장래의 진로로 고민하며, 이민을 고려하는 크리스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먼저 다시 지적해 두고 싶다.


지난 호까지 두 차례에 걸쳐 썼던 칼럼에서 강조하였던 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첫째 새로운 이민 생활의 결정은 자신의 욕망이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둘째 이미 이민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면, 하나님의 자녀요 또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당당하게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크리스천 이민자의 정체성이 확실히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막 유학 생활을 시작할 때 가지게 되는 문화와 언어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도, 몇 년 후에 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면 잊어지겠지라는 소망으로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이민 생활이란 끊임 없는 긴장감 속에서 새로운 관습, 문화, 언어를 배우며 살아야 되는 고된 삶이요, 또 가까운 친지들을 떠나 살아야 되는 외로운 삶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 없는 이민 생활과 크리스천 이민자의 정체성이 결여된 (주로 추후에 갖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민 생활은 승리를 장담하는 이민 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어렵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준비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서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또 응답하셨던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믿음의 사람이다.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두려움을 갖게된 듯 싶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는 말씀을 통하여 여호수아와의 동행을 약속하시므로, 그에게 담대히 맡은 소임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말씀으로 미지의 길을 가는 유학생 이민자들을 위로하시며 또 동행하심을 약속하고 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하심을 약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태도와 준비를 해야 되는 가를 배울 수 있다.


특별히 전문성을 갖춘 지성인으로서, 감성과 지성의 균형있는 신앙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유학생들에게, 여호수아의 태도는 본 받아야 할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데 매우 격렬한 전투가 다가 올 것을 예견하고, 백성들을 잘 준비시키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전쟁의 승리는 오직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것을 철저히 믿은 사람이었지만, 믿음만 의지하고 준비없이 맨손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런 신앙인이 아니었다. 믿음과 행동의 조화를 이루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잘 완수하였다.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 미지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인도 하에 네 가지의 중요한 준비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백성들에게 양식을 예비하고 또 용사는 무장하라고 요구한다(수1:11,14). 둘째는 정탐꾼을 보내어 여리고를 정탐한다(수2:1). 셋째는 온 백성에게 성결할 것을 부탁한다(수3:5). 그리고 넷째는 과감히 요단에 들어설 것을 요구한다(수3:8). 이제 미국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도, 마치 미지의 땅을 점령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했던 네 가지 준비 과정들을 유학 생활 중에 실제로 적용함으로서, 다가올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도록 하자.


1. 양식을 예비하고, 용사는 무장하라(수1:11,14)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면 이방 족속과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줄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리 하여 모든 백성에게 먹을 양식을 준비하라고 먼저 명령한다. 그리고 전투의 선두에 서게 될 루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의 용사들에겐 무장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며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는 필연코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고, 또 잘 훈련된 군사를 강한 마음과 좋은 무기로 무장시키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 아니겠는가? 미지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이룩하고자 준비하는 유학생의 마음가짐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가짐과 비슷해야 될 줄로 생각한다.


2. 전문성은 양식


이제 조금 후면 배우고 훈련받는 유학 생활이라는 광야 생활이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새로운 이민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야 될 형편에 곧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유학 생활 중에 양식을 충분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유학생이 유학 생활 중에 준비해야 될 양식은 바로 전문성에서 참 실력을 길러두는 것이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해 두는 것이요, 담대하고 성결한 신앙을 길러두는 것이다.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진짜 실력을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말하면 미국 사회가 실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지에 관하여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대학의 평가 기관에서 보고한 소위 미국의 일류 대학이란 곳에서 소정 기간 동안에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하면 저절로 실력이 인정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좋은 대학에서 좋은 연구로 실력을 쌓으면 인정 받기가 유리하긴 하지만, 결코 한국처럼 소위 ‘학교의 등위’라는 것으로 개인의 능력을 일률적으로 평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여러분을 초청하게 될 대학이나 회사의 인사 위원회는 철저하게 여러분의 창의적인 연구력과 발표된 양질의 논문 또는 연구로만 평가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오직 전문가는 철저히 전문성으로 말해야 하고, 또 전문성으로만 평가될 따름이다.


3. 본토에서 고생하는 영어


영어는 미국 이민 생활에서 필수적인 무기이다. 대체적으로 한국 유학생들은 전문성에서는 좋은 실력을 갖추어서 상당히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다. 그러나 영어 구사력에서는 거의가 자신이 없어하고, 이 부족한 의사 소통력이 마음을 항상 짓누르고 이민 생활을 고려하는데 겁을 먹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 수 년 동안 공부하고, 박사학위 논문최종 발표시에 머리 속에서 한국말이 영어로 통역되는 번역기를 거치지 않고 영어로 논문을 방어(defense)할 수 있는 유학생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인문사회 전공을 하는 극소수의 유학생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모든 유학생들이 학위논문 심사 발표시에 영어로 논문 발표를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너무 과장된 판단일까?


비록 언어의 구조가 다르고 또 한국에서 말하기와 듣기 훈련이 부족하였다고 하더라도, 한국 유학생의 영어가 본토에서 심히 고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왜 한국 유학생들이 영어를 정복하지 못하고, 취득한 학위만 달랑 들고서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영어로 공부하면서도, 한국 학생끼리만 모이고, 학교에서조차 서로 한국말만 쓰기로 철저히 단합이 된 탓이다. 어느 학교든 학생 식당에 가보라. 특히 점심 시간이면 유독 한국 유학생끼리만 모여서 떠드는 것을 보는 것은 다반사다. 점심 시간마다 자기 연구실의 미국 학생동료와 점심을 나누며 보낸다면 아마, 틀림없이 좀더 빠른 시간 안에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릴 것이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한국말로 담소하는 것을 나쁘다고야 할 수 없지만, 몇 년을 미국에서 공부하고서도 학생 식당 샌드위치 샵에서 샌드위치 하나도 제대로 시켜 먹을 수 없는 유학생이라면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어차피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삶이 이민 생활이다. 참석하는 한국 교회에서 맡은 직무에 소홀함이 없다면, 일주일에 한 번 쯤 인근 미국 교회의 수요 예배나 또 금요 성경공부에 참석해 볼 것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미국 형제자매와 주안에서 좋은 교제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극복할 수 있는 참 좋은 대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추후에 선교 사역, 국제유학생 사역, 또는 Tent-maker 사역을 마음에 두고 있는 유학생에게는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영성이 풍부한 미국 목사님들이 전하는 말씀으로 새롭게 도전받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유학 생활 중의 특권이요, 균형 있는 영적 양식을 먹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문성에서 참 실력의 양식으로 준비하고, 대화 소통에 자유로운 영어로 무장된다면, 이미 이민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는 양식과 무기는 일단 잘 준비된 셈이다.


4. 정탐하라(수2:1)


가나안 땅의 정탐은 여호수아에게는 만감이 교차되는 민감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믿음의 눈을 갖지 못했던 열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가나안 정탐 보고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훈련받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살아서 지금 요단강을 건널 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수아는 다시 정탐꾼을 먼저 여리고성에 보내어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가나안 땅의 동정을 파악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정탐 결정을 믿음이 없는 행동이라고 그 누가 비난할 것인가?


5. 정보시대


결국 가나안 땅의 첫 번째 정탐꾼은 실패하여 40년 동안 광야 훈련을 더하여 주었지만, 두 번째 정탐꾼이 라합을 통하여 가져온 보고는 “온 가나안 거민의 간담이 녹더이다”(수2:24)라는, 승리에 자신감을 더해 주는 정보였다. 결국 정확한 여리고성의 정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사기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 그렇지”하는 믿음을 통한 승리의 확신으로 요단강을 건널 마음의 준비를 확신 시켜준 귀한 정보이다. 사실 “정보가 생명”이요, “정보의 시대”라는 말은 이미 여호수아 때부터 생긴 말인 셈이다.


이 시대는 정보의 시대이다. 더욱이 미국은 정보 활용의 첨단을 걷는 나라이다. 정보를 바로 얻지 못하고 또 활용할 줄 모르는 자는 결코 살아 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어떤 나라인지,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잘 정탐해 두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지름길은 역시 매일 TV News를 보고, 미국 일간 신문과 시사 주간지를 읽으며, 또 라디오의 Talk Show를 듣는 것이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미국의 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한다면 또한 (앞서 말한)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게도 된다. 수 년 전에 미국에서 학위를 갓 마치고 직장을 찾기 시작하는 형제와 함께 미국의 고급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되었는데, 무슨 미국 음식을 어떻게 주문할 지를 몰라 당황해 할 뿐만 아니라, 웨이터의 질문에 계속 동문서답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단순히 미국 식당의 문화와 관습을 모르는 탓이다. 대부분의 대학이나 회사에 Job 인터뷰를 가면, 대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인사 위원들과 담소하는 시간을 꼭 갖게 되는데, 이는 그 사람의 됨됨과 매너를 관찰하기 위함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미국의 관습과 매너는 꼭 배워 두어야 할 것이다.


과연 몇 퍼센트의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의 주요 일간 신문이나, 경제신문 또는 지방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중의 몇 명이 미국 주요 TV News를 매일 정기적으로 시청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국 식품점에 갈 때마다 한 팔 가득히 빌려오는 한국 비디오를 날 새워 보고서, 벌건 눈으로 “한국 풍속도”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올려도, 미국 정치, 경제 및 사회 이야기가 나오면 몇 몇 정치 및 경제학도를 제외하고는 꿀먹은 벙어리가 대부분이다. 학과 공부와 연구에 바쁜 탓에 그까짓 것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또 실제로 들어도 별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탓이라고 간주해 버린다면, 조만간에 앞에서 예를 든 유학생 형제처럼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정치, 경제와 사회의 구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결국 승리하는 이민 생활을 누릴 수가 없다. 미대통령의 국회연설이나, 상하원의 법안 통과 정보 등을 놓쳐 버리면, 대학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다가올 세대의 연구의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되고, 연방정부의 연구비 투자 방향과는 반대로 연구의 방향을 잡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이는 대부분의 교수와 연구원들은 워싱턴의 연방정부와 자기가 살고있는 주정부의 행정과 경제 동향에 정통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미국에 이민하여 살고자 하는 유학생은 지금부터라도 매일 읽던 한국 일간지를 미국 일간지와 겸하여 읽도록 하자. 끝 없이 짝짓고 헤어지고 또 당짓기에 신물 난 서울의 정치 이야기도 알아야 하지만, 왜 미국 흑인의 90%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였으며, 또 부시 대통령은 최근에 미국을 방문한 멕시코 대통령을 국빈으로 예우하고, 환대하였는지를 바로 알아야, 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의 역학 구조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의 허물을 잡기 위하여 정탐하고, 회사의 정보를 빼내어 팔아 먹는 사기꾼 정탐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지만, 미국을 알고 또 이해하며 이민 생활을 잘 정착하기 위한 정탐은 부지런히 할 수록 좋다.


6. “라합”같은 친구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물론 준비된 “라합”같은 믿음의 미국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전문학회 모임은 대개 관광을 겸하여 할 수 있는 관광 도시에서 갖게 된다. 학회와 학술 발표회(연주회)에 좋은 연구 논문(연주)을 가지고 가서 발표하는 것은 자기가 속한 전문학회의 유명한 석학이나 최고의 연구가(연주가)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나는 감히 전문학회의 발표장은 새로운 신인 배우들이 스타로 탄생되는 연회장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연회장에서는 연회를 베푸는 주인이 으뜸이다. 전문학회 발표장(연주회장)에서는 논문 발표자(연주자)가 주인이다. 전문학회 발표장에 모인 수 백명의 참석자는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 즉 연회를 베푸는 주인에게 눈을 고정하게 되어 있다. 바로 이 때가 모든 참석자를 당신을 인정하고, 지원해 주는 친구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논문 발표(연주 발표)가 끝나면, 부지런히 그 분야의 전문가 참석자들을 찾아 다니며 논문(연주)에 대해 다시 토론하고 또 조언을 들음으로써, 참 기억하기 힘든 여러분의 한국 이름과 연구 업적을 기억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친구로 사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취업을 하려면, 지도 교수를 포함한 다른 교수(특히 재학하는 학교 이외의 대학)들의 추천서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승진이나 직장의 이동 때마다 이 추천서의 역할은 계속 증대되어 간다는 것을 꼭 알아 두기 바란다. 논문발표가 끝나자 마자 학회는 뒤로해 두고, 관광에 열중하는 유학생은 결국 연회를 베풀어 놓고 연회장을 떠나 버리는 주인과 같은 꼴이다. 이러한 학생은 틀림 없이 이력서에 써야 되는 추천인으로 자기가 졸업한 학교의 논문 심사위원의 이름만 기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는 이런 이력소유의 지원자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대학 교수는 한국에서처럼 판에 박은 미사어구의 추천서를 결코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학생을 직접 평가한 사실대로 꼭 쓴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비록 자기 밑에서 학위를 받은 학생일지라도 말이다. 학위과정에 있을 때에 많은 명망있는 교수와 전문가들을 “라합”같은 좋은 친구로 만들어 두기 바란다.


결국 정탐을 잘하여 미국의 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하게 되면, 미국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자신감 때문에 여러분의 “간담은 더욱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본 칼럼에서 지적한 것을 이미 잘 갖추고 새로운 미국의 이민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수 많은 유학생 출신 신이민 세대에게 갈채를 보낸다.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백성은 양식을 준비하고, 용사는 무장하고 또 여리고성의 정탐을 마쳤다. 이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백성을 성결케 하고, 요단강을 밟으라고 명령하셨다. 다음 회에서는 계속하여 여호수아의 요단을 건너기 위한 네 가지 준비 과정 중 셋째, “온 백성에게 성결을 부탁한다” 와 넷째, “과감히 요단에 들어설 것을 요구한다”를 유학생활 중의 준비 과정에 적용해 보기로 하겠다.

장평훈 교수와의 대담

eKOSTA 인터뷰


장평훈 교수와의 대담


eKOSTA 장평훈 교수님은 코스타가 생성될 때부터 기여를 하신 코스탄의 원조이면서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코스타를 참석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스타가 생성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코스타에서 받으신 일반적인 은혜들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제가 이해하기로는, 코스타가 처음에 시작되었던 계기는 이렇습니다. 그 당시, 미국 워싱턴 DC, 보스턴, 그리고 Triangle Area(North Carolina), 이렇게 세 지역의 성경공부 모임이 굉장히 좋고 효과적이었어요. 이 모임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가르치시던 홍정길 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께서 지역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한 번 모아서 해 보자 해서 코스타가 출발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보스톤 지역에서 모였던 성경공부 모임이 Gate Bible Study이었고, 저도 그 모임에 속했던 지라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87년도에 졸업을 한 다음에 88년부터 강사로 오게 되었어요. 그 뒤부터는 가기 싫을 때는 홍 목사님에게 끌려서 오고 (웃음) 어떤 때는 제가 좋아서 오고, 아마 제 기억에는 한 해 빠지고 계속 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코스타가 늘 6월말이나 7월초에 하게 되니까, 1학기 마칠 때쯤 되는데, 그 시기는 늘 할 일들이 많이 밀려 있고 해서 올 때마다 갈등하곤 합니다. 그래도 이기고 코스타에 오면, 늘 영적으로 풍성해지고 또 공급을 많이 받으니까, 그게 제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또 다가올 한 학기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참 중요한 도움이 되곤 했었지요. 그리고 학생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보람이 되고 그런 은혜 가운데서 이렇게 참석하게 되었어요.


eKOSTA 코스타를 첫 해부터 참석하셨는데요, 16년 동안 코스타가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코스타가 어떤 경향으로 발전되어 왔고, 그 변화 과정이 어떠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해나 사건이 있었다면 회상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벌써 16년이 되었군요(웃음). 출발할 때는 약 250명이 모였는데, 주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것 같아요. 정말 여러 가지로 찌드러진 상태에서 마음도 많이 상해 있어서, 그야말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셈이었지요.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은혜가 참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코스타에 참석하는 강사님들도, 이 모임에서 물질적으로 뭐 얻을 것은 없고 오히려 퍼 줘야 되는 입장이었는지라, 오히려 정말 마음(Heart)이 있는 분들만 오실 수 있었지요. 그래서 강사님들과 학생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모임을 했던 것은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는 집회의 노우하우(know-how)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왔다 갔다 하며 엉성하기만 했지요. 그후에 세월이 지나고 횟수가 반복될 수록 계속해서 사람들이 늘고, 그 다음에 강사들도 많아지고, 더불어 세미나도 많아지는 등 내용이 풍성해졌는데, 그러다 보니까 어떤 모임이나 다 그렇듯이 초기의 ‘진함’이 희석이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좀 있어요.


코스타가 크게 변화되었던 계기가 글쎄요, 노태우 대통령이 1987년 6.29 선언을 할 때 코스타가 바로 직전에 모였었습니다. 그때 조국을 위해 무척 기도했어요. 온통 울음 바다가 될 정도로 열심히 기도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저는 믿고 있지요.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를 하나님께 들어 올린다는 코스타의 정체성(identity)를 찾았던 그것이 기억에 새로와요. 나머지는 꾸준히 매년 주제를 달리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초기의 코스타 정신(Spirit)을 되찾는데 있어서 올해의 ‘낮아지신 그리스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가 참 적절한 것 같아요.


eKOSTA 코스타가 16년이나 되었는데,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십니까? 아직 가시적인 영향이 별로 없어서 인지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코스타의 영향이 없었다”고 까지 평가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교수님은 코스탄들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대한 영향력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장평훈 제 생각에는 코스탄들이 코스탄이란 이름을 가지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 무엇을 했던 것은 별로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코스타에 와서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면, 그 만큼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여(contribution)를 하지 않겠느냐는 다소 막연한 기대는 가져 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솔직히 이 점에 대해서는 마음에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한 코스타가 정말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점이기도 합니다.


글쎄 어떻게 구현(implement)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코스탄들이 이곳에서 동기부여를 받고 새롭게 도전(challenge) 받았던 일들을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네트워킹(networking)이라든지, 교제(fellowship)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서 받은 충격(impact)이라는 것이 상당히 역동적(dynamic)이기 때문에, 한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좀 좋은 영적인 기반이 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여기서의 귀한 도전이 별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코스타가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eKOSTA 그러한 일환으로 작년부터 eKOSTA와 tmKOSTA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좋은 동기로 시작되어졌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서 자리 매김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eKOSTA와 tmKOSTA의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과 자리 매김과, 그리고 한계나 주의할 점 등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아, eKOSTA참 좋아요, tmKOSTA도 그렇구요. 우리는 미주 코스타가 ‘7월초 시카고 휘튼’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7월초 시카고 휘튼에서 이루어지는 코스타는 코스타 lifestyle의 initiation 정도로 생각하고, 그 후에 eKOSTA나 tmKOSTA를 통해서 매일의 삶 속에서 코스타 집회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코스타 집회를 연중 내내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가능해지도록 eKOSTA나 tmKOSTA는 ‘반드시'(definitely) 계속해서 활성화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feedback)을 하고 나눔(sharing)이 이루어지고 좋은 사람들이 발굴이 되기도 하고, 가상공간(cyberspace)이긴 하지만 거기서 교제(fellowship)가 이루어짐으로써, 코스타가 일회성 집회가 아니라 이제는 만남의 장이 되고 네트워킹(networking)이 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훌륭하잖아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싶구요. 또 하나 바램은 한국에도 이코스타가 더 잘 알려졌으면 하는 것인데, 현재 한국의 코스타 출신들은 eKOSTA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코스타 출신들에게 여기 있을 때부터 eKOSTA가 많이 알려지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늘 이곳을 확인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네트워킹(networking) 등 많은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이제는 화제를 좀 바꾸어서, 교수님께서는 신앙과 학문을 잘 조화시킨, 우리 유학생들로서는 귀한 본이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어떻게 기독 신자로서 또 동시에 연구와 학문을 하는 대학 교수로서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고 관련지어서 하고 계신가요?


장평훈 전공을 하면서 학문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고 있는 전공이 좀 더 가시적으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바램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를 하면서도, ‘나의 연구 분야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이 있어요. 마치 의사들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듯이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인 학문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최근에 하는 일은 수족을 못 쓰는 장애인들을 도와 주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고, 또 화재가 났을 때 사람을 구하고 화재 진압을 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등 인간 복지와 관련되는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또 ‘잘 찾아보면 학문과 관련된 일에 이런 것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요.


eKOSTA 올해 코스타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장평훈 교수님이세요, 아니면 목사님이세요? 하며 질문할 정도로 너무도 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현재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교수 생활하기도 바쁜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목사님이나 사역자들도 하기 힘든 주제 성경공부를 어떻게 이렇게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충실한 주제 강의를 하실 수 있었는지,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그 비결을 좀 공개해 주시지요.


장평훈 우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된 것은 ‘모든 학문은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하는 일이나, 연구를 하는 일이나 다 통하는 것 같아요. 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면, 연구를 함으로써 성경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skill’을 정진시킬 수 있고, 또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시너지(synergy)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런 효과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때가 많아요.


목사님들이 종종 신학을 했느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그런 말 듣기가 미안할 정도로 신학은 한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건대, 아마 유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성경공부를 해 왔던 것들이 쌓인 결과라고 봅니다. 그냥, 함께 말씀 나누고 또 삶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또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신학 서적도 찾아본 것들이 나름 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평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암송하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베푸신 많은 은혜를 통하여 오늘 저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학생 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에 잘 적용하면, 어느 시점에 충분히 자기 몫을 훌륭히 할 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자꾸 많이 나와 주어야 한다고 저는 바라고 있어요. 사실 그것이 코스타를 통한 저의 아주 간절한 바램입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 주제 성경말씀을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장평훈 이렇게 주 강사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마음에 부담이 되었고, 특히 이번의 주제(theme)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큰 부담이 되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도전도 되기도 했구요. 그러면서 많이 기도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본문 자체는 늘 하던 대로여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었는데, 강해 설교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노력을 더 많이 기울였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가 어떻게 보면 주제도 그렇고, 평신도나 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던 점에서 전환점의 한 계기나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코스타를 계기로 앞으로 코스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주의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장평훈 작년 코스타까지는 참석 인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코스타가 좋다니까 한 번 가보자’라고 마지막 순간에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온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또 집회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에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코스타는 그런 사람들도 다 수용하고 포용해야겠지만, 그래도 준비된 마음이 있는 곳에 은혜가 크겠다 싶어, 좀 더 준비된 마음으로 왔으면 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어요.


어느 자매가 한 이야기처럼 이번 코스타가 여러 가지 면에서 거품이 빠졌다 하는 얘기가 정말로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준비된 사람들이 준비된 심령으로 왔던 것이 두드러진 것 같아요. 올해 주제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인 것 같아서, 이번 코스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거품이 빠지고 생각도 다시 한 번 해 보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기 원하는가를 좀 민감(sensitive)하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eKOSTA 교수님께서 살아 오시면서 많이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 현재 살아 계신 분도 괜찮고, 과거의 역사적 인물도 괜찮으니 저희 독자들에게 나눠 주시죠.


장평훈 세 사람을 들고 싶은데 첫째는 홍정길 목사님인데, 그분이 하나님 사랑하는 자세, 그리고 자기의 의지를 쳐서 복종시키는 그 태도, 그 다음에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나한테는 좋은 귀감(role model)이 되었어요. 끊임 없이 좋은 교제를 가지면서 격려를 받았던 것이 오늘날 제가 서게 되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또 한 분은 김인수 장로님인데, 역시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표 안 나게 계속 신경 써 주시고, 또 평신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 가시는 모습이 많은 도전이 되었어요. 또 저와 같이 교직을 갖고 계시니까 계속 쳐다보게 되는데, 그 어른을 생각할 때마다 늘 그분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한편, 사표로서 바라볼 분이 주위에 계신다는 점이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또 한 분은 존 스토트 목사님인데요. 그분은 글을 통해서 나한테 스승이 되었어요.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한테는 굉장히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 분이 얘기했던 내용은 때때로 기억하지 못 할지라도,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태도는 많이 배운 것 같고, 그 다음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는 자세가 적지 않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eKOSTA 또한 교수님에게 영향력을 많이 끼친 책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장평훈 두 권의 책을 얘기하고 싶은데, 역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뭐 그분 책은 뭐든지 다 좋은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기독교의 기본진리>(Basic Christianity), 그 다음에 이번 코스타에서도 소개된 <예수님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 그 두 권, 아, 그리고 로마서 강해 이 세 권은 참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수훈> 그 책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그리고 자꾸 생각이 나는데….


eKOSTA 많이 소개해 주시면 더 좋죠.


장평훈 J.I. Packer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의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Spiritual Discipline) 등이지요. 그리고 꼭 권하고 싶은 책은 M. Adler의 <How to Read a Book>인데, 이 책이 없었다면 이번 본문 강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성경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책보다 더 도움이 되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eKOSTA 교수님은 원서로 읽으시나봐요.


장평훈 예 그렇습니다. 그때는 번역이 안 된 책도 있고 해서 영어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 때문에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신학서적의 영어가 만만치 않은데, 정말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읽다 보니까 영어가 늘더라구요.


eKOSTA 끝으로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유학 생활 선배로서 유학 생활에서 신앙과 학문을 함께 해 나가야 되는 점에서 학문을 하시는 신앙 선배로서 조언과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장평훈 역시 순수성과 그 다음에 균형성, 그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순수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삶의 문제에 있어서 불순물들, 즉 허영심, 자긍심, 탐심, 성적인 문제들을 발견하는 대로 빨리 빨리 제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균형성인데, (신앙 공동체와 관련된)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가정 생활, 사회 생활, 그리고 학문도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도 성서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정확성과 정직성, 그런 것이 학문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학문을 하는 데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나름 대로의 좋은 모델을 개발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김혜진] 귀국을 앞두고

F2 이야기


귀국을 앞두고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간다. 학기 중이라 바쁜 남편은 물론 함께 못 들어가고, 오직 나만의 휴가를 갖게 된다. 겨울 내내 있다 오겠다고, 겨울옷 몇 벌 싸고 나니 어느새 거실에 놓여진 커다란 이민가방 두 개. 한국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비행기 티켓은 6개월간 오픈으로 끊었다. 신혼여행을 못 갔던 것은 물론이고, 1년 10개월 간 시카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던 나에게, 이번의 한국행은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는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에 계신 교수님께 직접 추천서를 받아서, 오랜 기간 질질 끌어 왔던 유학 준비를 좀 쉽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근 2년을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교수님께 도무지 미국에서 추천서를 요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나 마나 너 누구냐?라는 반응을 보이실 것이 예상되었으므로, 차라리 한국에 들어가서 부탁드리기로 작정했다. 이런 이유로 결심하게 된 한국행이지만, 이번 한국행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먼저, 나는 이번 한국행이 나의 무력감을 깨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학생 와이프 생활이 2년이 다 되어가는 근래에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함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 유학생 배우자의 단조로운 생활이야 기혼자 유학생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의 생활 패턴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생활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내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텐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변함 없는 나태한 신앙 생활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감정의 무너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지극히 조용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더 내버려 두면 영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는 나은 자아상을 가지고 있던 그 장소로 돌아가, 그 때를 기념하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맛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물론 새로운 멤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기는 하겠지만, 예전의 그 공동체를 다시 경험하고, 그 때 함께 하던 동기들과 잠시라도 다시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또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그 동안, 유학에 필요한 시험 준비들이 내가 내 자신을 위해 한 일의 전부라고 해야 할 듯. 결혼 이후에, 또 미국에서 철저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를, 그리고 결국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니, 애써 고민을 회피했다고 이야기해야 함이 맞을 것이다. 아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뭔가 하고 있다는 대리 만족감은 유학생 와이프 생활에서 오는 폐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 생활에서 오는 생활 자체의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하루 하루를 의미 없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학위는 남편이 따는 것이지만, 물론 그러한 남편을 잘 지원함으로서 돕는 것이 와이프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결국은 진보하고 있는 남편과 퇴보하는 자신을 비교하며 허탈해 하는 모습들을 빈번히 본다. 나 역시, 오직 남편의 진행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내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금 내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국 생활은 더 힘겨울 것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모처럼 갖게 된,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짧은 기간을 통해서, 나는 앞으로의 미국 생활을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고,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이끄는 삶으로 만들고 싶다.


또, 나는 한국에서의 몇 달을 통해서, 나의 무너져 있던 생활 습관이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또한 한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밤새 붙들고 있던 인터넷으로 인해 얻게 된 불면증은, 한국에서 가족들과의 생활을 통해 바로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늘 집안에만 갇혀 있느라고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도 기대해 본다. 언제부턴가 학교의 체육관은 유학생 배우자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용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나마 운동하던 기회를 박탈 당했던 것이고, 또 의지를 내어서 운동을 하지 않게 된 것인데, 결과는 체중은 늘었지만 체력은 떨어져 약간의 노동에도 쉽게 지쳐 떨어지는 상태. 의도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게 될 한국 생활이 내 생활 습관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지 않을까. 물처럼 들이켜고 있는 커피와 다이어트 콜라도 끊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이러한 나쁜 생활 습성들은 몇 번이고 돌이키려 노력했던 것이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들이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자신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자신의 습관에 대해서 때때로 그렇게 느낀다. 자신을 성결히 지키고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들에 사로 잡히고는 한다. 내 자신의 의지를 내어서 고치기 힘들었던 악한 습성들이, 한국에서의 생활로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기대하며, 더불어 소망하는 것은 내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할 시카고에서 어떤 관계들을 맺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편은 인터넷 중독의 후유증이라고 장난 삼아 말하고는 하지만, 나의 대인 관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주일마다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경계하는 나의 마음이 그들을 나와 삶을 나눌 동역자로 인정하기를 꺼려지게 한다. 공동체 안에서 회개에 대한 권면과 책망은 없이, 환대와 위로만을 이야기하는 청년회의 리더와 멤버들을 끊임 없이 정죄하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의지인 것 같다. 이제는 함께 해야 할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동체에 들어갈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에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모든 소망들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도하시기를 원하는 소망이 있다. 1년 10개월간, 경제적 어려움들과 생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감정의 기복들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밀려 있던 것을 회개하며 고백한다. 어쩌면, 전체적인 내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경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나의 나태함을 변명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묵상과 기도와 학습의 훈련을 통해, 나의 영적 성숙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내 안에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항상 의지를 내어 그 사실을 되새기지 않으면 나는 다시 환경 가운데 매몰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를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하고, 또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싶다. 아마도 졸업 이후 학사로서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들의 모습이 내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 보니, 마치 수련회에 들어가기 전에 쓰는 선언문 같다. 어쩌면, 이번 한국행은 나만의 작은 수련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강사도 없고, 함께 기도하는 무리들도 없지만, 그 어느 수련회 때보다 커다란 소망과 기도를 품고 간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