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길]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으로 Part II

따라서 우리는 겸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아야 자신감 추구 보다 겸손을 더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 겸손에대해서는 이미 앤드류 머레이가 쓴
“겸손”이라는 소책자도 있어 사실상 그 책을 읽는것이 매우 도움이 될것이다. 따라서 이 브로그에서는 그곳에 나온 내용을
인용하거나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그 소책자를 꼭 읽기를 권하고 싶다.

겸손은 먼저 자기중심적 태도가 아니라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정직한 태도이다. 과학하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할 자세가 될 수 있다. 겸손한자는 공부할때 내가 어떤 주제를 남보다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에 겸손한자는 “그 주제의 실체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한다던가, 토론에 참여해 보면 겸손한자와 그렇지 않은자가 쉽게 구별된다. 겸손한자는 다루고 있는 어떤
주제를 자기가 발견하고 생각한 만큼 솔직히 다루려 한다. 더 적게 아는것 같은 비굴함을 취하지 않는다. 또 그랬다고 남보다 너
많이 알고 있다는 오만한 자세도 취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으로 부터 날카로운 질문이 들어오게 되면 방어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을 반가워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깊숙히 생각하려 한다. 아는만큼, 또 생각이 미치는 만큼만
대답한다. 그리고 청중의 생각을 물어 본다. “나는 이렇게 보지만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나 오만한자
(자신 만만한자)는 방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따라서 마땅한 대답이 없으면 당황해 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얼버무리다가 더 많은 질문을 받고는 오히려 자신의 짦은 생각이 들통나버리기도 한다.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이 좋은 질문하게 될때, 그러나 그 마땅한 대답이 없는 겸손한 교수는 오히려 학생들에게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함께 토론하려 한다. 그러나 오만한 교수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나도
그런적이 제법 있었다).

겸손한 학생/학자는 사실에, 현상에, 주제의 이해/파악에 더욱 큰 관심을 둔다. 그리고 다른이들과 함께 그것을 이해하려
애쓰는 태도를 갖는다. 그들은 오히려 정직하다. 학생으로서, 학자로서의 바른태도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유롭다. 논문발표나
토론이 부담이 되지 않는다. 사실을 사실대로 접근하려는 그의 태도를 주위 동료들은 오히려 존중해주며 더 신뢰해준다. 겸손은
자신뿐 아니라 남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것 이외에 진정한 겸손은 누구의 시선을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즉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영접한 새벽이슬같은 주의 군사들은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는 모든일에서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동기를
취하지 않고 매사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는 사람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는
행동뿐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날카롭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 가며, 그같은 시선으로 인해 안정감을 갖는다. 왜냐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은 그 눈을 내게서 다른데로 돌리시지 않을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은 겸손한 삶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살아가는자를 겸손한자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다.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신 하나님이 아닌 끊임 없이 바뀌는 기대와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혼돈이라는 가마솥에 빠져 버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변덕스런 생각과 감정, 상황에 따라
바뀌는 그같은 변화무쌍한 눈을 어찌 기쁘게 해줄 수 있단말인가? 소위 자신감 있는 자들은 이같은 상황속에 남의 비위를 잘 맞출
수 있는 능력이 될 수도 있다. 또 이같은 변화무쌍을 제법 담대하게 대할 수 있는 배짱을 가진 사람들을 놓고 우리는 자신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신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 정말 자신은 믿을만한 대상인가? 나는 나를 믿을 수 없을때가 너무 많다. 내
작심 삼일을 연약한 속성을 어떻게 믿는가?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도 일어나는 이 마음을 가진 나를 어덯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떤 물체가 내게 큰 충격을 주면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것 같은 내 연약한 몸을 신뢰하기
어렵다. 철인이었던 뉴욕 젯트 미식축구 선수였던 데니스 버드가 경기중 다른팀원과 강하게 부딛혀 그의 몸이 공중에 날았고, 땅에
몸이 잘못 닿아서 사지를 사용못하는 척수장애자가 되었다. 수백 파운드의 무게를 들던 그가 몇그램의 무게를 들 수 도 없는
사람으로 변했을때 그는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선언해 버렸던것을 알고 있는가? 인간은 믿음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을 믿는다. 믿으면 믿을 수록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믿으면 믿을 수록 더욱 믿음이 자라는 것이
하나님이다. 사람은 (부모일지라도) 실망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물론 하나님을 제대로 믿어보지 않았던 사람은
이같은 믿음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체험해본이들은 벼랑끝에 서있을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는 굳센 믿음을
갖게 된다. 이같은 믿음을 가진이는 99번의 실패를 해도 절망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자 하는 겸손한 태도와 하나님께서
인도하실것을 믿는 믿음으로 또 시도할 용기를 갖게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신감으로 살 수 없다. 또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자신을 신뢰하는
자신감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 믿음으로 살아가야 된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다는 믿음이 내게 힘을 주는 것이다.
그것으로 담력이 생기는 것이다. 골리앗 앞에선 어린 다윗은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 45) 라고 외친것은 철이없어 입으로 내 뱉은 객기가 결코
아니다. 또 12명중 절대 다수였던 10명의 가나안땅 정탐꾼들이 모세에게 보고 하기를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민 13: 33)라고 말할때 갈렙은 무엇이라 하였나? 그는 옷을
찟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민 14: 9). 갈렙이 자신을 신뢰하였던가? 그의 고백속에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이땅을 정복해야할 사명을 가진 우리들은 그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겸손한 자세를 더욱 사모해야
한다. “형제님, 자신감 가지려 애쓰지 마시고, 겸손하려 애써 보세요!”라는 답은 형제의 기대에는 잠시 벗어 났는지는 모르지만
(안그랬을것이라 추측한다), 하나님의 기대에는 벗어난것 같지 않다.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

[이영길] 자신감이 아니라 겸손으로 Part I


얼마전 한 청년과 상담하며 귀한 시간 가졌다. 많은 이야기를 주안에서 나누다가 형제가 조심스레 묻는다. “교수님, 자신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사 너무 자신이 없어요.”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 자신감을 물어 오다니남들이 보면 나는 몹시 자신있는 사람같아 보인다. 많은 사람앞에서 설교도 하고, 학회에서 편안히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한다. 어떤 발제자들는 내가 나타나면 공연히 긴장마져 된다고도 한다.

강의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이 볼때는 백과사전같이 모든것을 다 알고 있는 교수같아보인다. 허긴 많은 논문도 쓰고, 잘팔리는 책도 쓰고, 또 많이 읽히는 책의 챕터 (Chapter)도 집필했다. 그러나 강의실 들어가며 마음이 쿵쾅거리는 조그만 긴장감을 그들이 어찌 알랴.  

분명 나도 그형제 처럼 자신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많은 청년들이 자신감이 없어서 힘들어 한다. 그래서 형제의 질문은 내게 생소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나의 대답이 형제가 기대하던것은 분명 아니었다. 나의 대답은 그형제에게 있어서 너무 엉뚱하였는지도 모른다. “형제님, 자신감을 가지려 애쓰지 마시고, 겸손하려 애써보세요.!” 나의 상담은 그날도 여지없이 상담을 받고 있던 형제의 기대를 벗어나고 있었다.

미국에 유학와서 느낀 미국인에대한 인상중 하나가 그들의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미국문화는 자신없어 보이면 마치 바보인냥 취급하는 괴상한 문화라고 보았다. 잘 몰라도 아는체 해야 토론점수를 따내고, 박사과정 오랄시험에서도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은 또한 자신의 조그만 업적도 자신의 이력서에 그럴싸하게 잘 꾸며서 집어넣은 PR지향적 민족으로 보여졌다. 그러니 겸손이 미덕인 대한민국에서온 유학생인 나에게 그것은 흉내내기가 좀처럼 어려운 행동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그랬듯이 오른손이 머리로 가서 머리를 극적거리며 띄엄띄엄, 불안하리 만치 조심스레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머리가 가렵지도 않은데 왜 으레 손이 그리로 가는지 모른다. 학생때 나도 그랬지만, 교수가 되어 한국학생이 다른 미국 교수와 그렇게 대화나누는 모습을 많이 목격하며 나는 조용히 미소짓는다. 나의 옛모습을 바라보기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교수가 되어 강의실에서나 학회에서 토론에 참여할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있다. 별 알맹이가 없는 내용을 열심히 유창한 영어로 침을 튀며 이야기 하는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바라본다. 물론 일부 교수와 학생들은 알찬내용의 것을 이야기 하여 나의속을 시원하게 하고, 또 도전을 줄때도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미국인들은 싱거운 내용의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고 자신있게 이야기 한다.

자신감은 흔히 머뭇거림없이 행동할 수 있는 어떤 능력 혹은 에너지라고도 얼른 정의내릴 수 있다. 또한 자신감은 또한 어떤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 요구되는 여러 행위를 조직하고 실행할 있는 개인 능력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라고 조금 딱딱한 정의를 내려볼 수 도 있다.  어찌했던 자신감은 일련의 성공의 경험이 가져다주는 “해 보니 되더라, 그래서 또 다시 하게 되면 별 문제 없이 할 수 있을것 같다”라는 일종의 믿음 같은것이다.

반면 심리학에서는 “무력감”이라는 개념이 있다. 실패를 반복할 경우,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 보았지만 그같은 실패가 자신에게서 기인했다고 믿는 신념에서 무력감이 생겨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번의 성공을 위해 99번의 실패를 해야한다는 에디슨의 충고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감의 다른 얼굴인가? 보통 몇번만 실패해도 자신감을 잃어 버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이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무력감을 갖는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이 아닐까?  

실패를 반복하고도 지속적으로 같은일을 시도할 수 있는 힘은 자신감에 있지 않고 겸손함에 있다고 본다.  [강의준비가 있어서 우선 여기서 멈추고 나중에 계속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 윗 사진은 Google Image Search (http://images.google.com/)에서 퍼왔다.

[이유정]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해마다 봄, 가을이면 교우들의 당면 과제, 교회의 필요 등을 고려하여 담임 목사와 부교역자들이 특새의 주제를 고르기 위해 고심합니다. 특별히 올 가을은 ‘전 세계 증시 공황상태’, ‘금융공룡 리먼 브러더스의 부도’, ‘1930년 미국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 ‘경기침체와 물가상승’, 한국 상황도 ‘환율 폭등’, ‘코스피, 코스닥지수 연중 최저점 경신’, ‘주가 18년 공든 탑 1년
에 무너지다’, ‘실물경기침체’ 등 연일 최악의 보도가 미디어를 장식해 왔습니다. 그 영향으로 미주 한인교회들 마저 헌금이 급감하는 등 ‘불황 찬바람’을 맞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맞은 특새의 주제는
의외로 쉽게 결정되었습니다. 처음 이 주제가 추천되었을 때에 예년과는 달리 모두들 이견 없이 찬성했습니다. 주제는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근거로 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입니다.

보통 한빛지구촌교회 특새 주제는 잘 알려진 찬양 곡 제목과 연결되어
결정되곤 합
니다. 예를 들어 “너는 내 것이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약한 나로 강하게”, “주만 바라볼지라” 등 모두가 잘 알려진 찬양곡 제목들과 동일하지요. 매일 새벽마다 통일된 주제의 말씀과 기도, 그리고 동일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교우들은 일주일 내내 진한 은혜의 감동에 젖어
곤 한답니다.

이번에도 ‘부르짖으라’는 주제의 곡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고 또
찾아도 적당한 곡이 없었습니다. 70년대 옛 복음성가인 “부르짖으라 내 응답하리라”는 곡이 그나마 알려져 있었으나,
너무 옛 스타일의 조용한 곡이라서 특새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또 뜨인돌과 최덕신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라는 곡은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수준 있는 곡이지만 이른 새벽
교우들이 소화해 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바로 곡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기도부
탁을 했습니다. 본래 강한 영적인 체험이나 특별한 동기부여가 있어야 곡을 쓰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든든한 기도의 후원이 필요했습니다. 하루 정도 예레미야 33:2-4절 말씀을 계속 묵상하고 다녔습니다.

다음날 찬양 준비하던 늦은 저녁, 후렴 부분의 멜로디가 떠올랐습니다. 평소 제가 쓰는 화성이나 멜로디 스타일이 아니어서 쓰고 나서 무척 생소했고, 또 불러보니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 멜로디가 맴돌아서 후렴을 중심으로 흥얼거리다가 갑자기 로마서 8:35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극한 상황이더라도 예수의 사랑을 끊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 말씀을 근거로 1절 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고통과 시련이 내게 닥쳐와도 나는 쓰러지지 않네.
누구도 우리를 주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네.”

이는 어찌 보면 다급하기까지 한 주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의 현대적 상황을 표현하는
가사였습니
다. 수천 년 전의 텍스트(text)를 오늘의 콘텍스트(context)화
하는 것이 설교론의 핵심 이슈인 것처럼, 곡
을 쓰는 저에게 성경구절의 현대적 적용은 작곡할 때마다 항상 우선적인
과제입니다. 곧 2절이 흘러 나
왔습니다. 조금 더 적극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세상은 변하고 날 배반하여도 예수는 변치 안네.
우리도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승리해.”

보통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인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를 중심으로 후렴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전후 문맥을
묵상해보니
사실 이 말씀을 더욱 권위 있게
하는 말씀은 2절이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
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이 말씀을 여러 번역본으로 비교정리해서 “땅을 만드신 주, 세상의 주관자, 통치하시는 왕, 그 이름 여와”로 정리되었고, 이 가사를
강조하기 위해 브리지(bridge)로 표현했습니다. 브리지 부분의 음악 양
식은 행진곡 풍으로 했습니다. 이
브리지의 가사 초본을 보신 장세규 목사님께서 제안하신 아이디어로
동일한 멜로디에 가사
“나를 지으신 주, 내 삶의 주관자, 다스리시는 왕”
추가되었습니다. 그러면
브리지는
자연스
럽게 “주가
말씀하시네~”
고백으로 전조 되어 한층 고조된 후렴으로 연결이 되도
편곡을 했습니다.

결국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 기도로 완성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주제곡에 대한 반응이 의외로 좋습니다. 특히 가사에 큰 힘을 얻는다는 반응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렇게
힘든 때에 이 찬양이 한국교회에서
많이 불릴 수 있도록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모 집사님의 격려도 감사했습니다. 아무튼 이 곡으로 이번
특새는 주제 찬양도 없는 썰렁한
특새로 남지 않아도 되었고, 더 나아가 많은 분들의 기도로 우리의
고백과 상황에 맞는 찬양으로 매일 새벽을 깨우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지
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최주희] 그 멀리 하늘에서…

  저녁 준비를 하며 5시 뉴스를 듣고 있었다.  대전 지역 방송 중, 어느 50대 남자가 장애인 아내를 살해하였다는 소식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참 나쁜 사람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 교회 아는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아저씨가 큰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김
아저씨는 다리가 불편하여 휠체어를 사용하는 아내와 20여년 이상을 살아오셨다.  우연히 김 아저씨 네를 알게 된 전도사님과 몇몇
분의 권유로 우리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다.  조용하고 여성스러우신 아내와 다혈질의 급한 성격이신 남편은 곧잘 토닥거리셨지만
그런대로 늘 함께 다니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장애인 아내는 건강한 남편이 밖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과 교회에서 이 사람 저사람 만나는 것이 늘 궁금하였고, 특별히 남편이
여자들과 대화하는 것에 대해 예민했었던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나라도 몸이 불편하여 집에만 있게 되면 남편의 행동을
예민하게 관찰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다툼이 갑자기 큰 다툼으로 번지면서 마침내 다혈질 김 아저씨가 칼로 아내를
내리쳤던 것이다.

  놀란 가슴으로 경찰서에 갔더니 교도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성경책을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도소에 갔다.  아마 내 평생 처음
교도소를 방문한 것 같다.  더욱이 그 엄청난 살인죄를 지은 사람의 얼굴도 처음 보는 경험이었다.  창살을 가운데 두고 아저씨의
얼굴을 보자 나도 모르게 “어쩌자고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어요?”라고 울며 소리쳤다.  김 아저씨는 창백하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사모님, 나 성경책 좀 넣어 주세요!  정말 잘못했어요.  내가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김 아저씨도
울었다.  솔직히 장애인 아내를 가진 남편도 건강한 남편을 가진 아내도 다 이해가 되었고, 두 분 다 너무나 불쌍하고 딱하게
여겨졌다.

  지금까지 5년 정도의 기간을 보내며 김 아저씨를 만나러 가끔 교도소에 간다.  편지도 주고받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조금씩 변화되어 가는 김 아저씨의 모습이다.  하나님 앞에, 그리고 아내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흉악하고 엄청난 죄인지
철저히 회개한다.  “제가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사모님, 아내가 보고 싶어요…”  교도소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며 받은 빵은 같은 방에 수감된 다른 사람에게 준다.  연로하여 몸이 아픈 수감자의 소변과 대변 심부름도 자신의
몫이다.  엄청난 죄를 저지른 자신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해서 이미 전도된 사람도 많다.  자신의
몸을 장기기증도 하였다.  또한 성경을 손으로 오랜 기간 정성껏 필사하여 벌써 한 세트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면 김 아저씨가 손으로 쓴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기쁘게 만나리라.

  언젠가 김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저씨, 이곳에서 모범수로 잘 계시다가 일찍 출감하시면 좋겠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닙니다.  저는 이곳에서 제 죄의 대가를 철저히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감하면 장애인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의 편지에는 늘 “하나님의 아들 김** 드립니다.”라고 편지가 마무리 된다.  철저한 회개와 완벽한 용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김 아저씨가 대전에서 여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여주는 내가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길눈이 어둡고 방향감각이
없는 나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 여주 교도소에 갈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이 정도만이라도 김 아저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며, 이것으로 내 몫은 끝났다고 정리하였다.  하지만 QT를 하면서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였는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멀리 하늘에서 친히 인간 세상으로 오신 것이었다.  이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감동이었다.  창조주 하나님, 만유의 주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사랑하셔서 그 먼 하늘에서 이 구석진 땅까지 오셨구나…  주님,
어떻게 이렇게 멀리 오셨나요…

  마음이 달라졌다.  대전에서 여주가 비록 나에게는 먼 여행길이라 할지라도,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신 주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편에게 묻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전화로 확인하였다.  마음에 몇 번이고 되새기며 외우고 또 외웠다. 

  떠나는 날 아침 출근길의 남편은 몇 번이고 종이를 꺼내어 가는 길을 확인해 주었다.  아침 일찍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이천 행 버스를 탔다.  이천에 도착하여 여주 교도소 직원이 알려준 대로 시내버스를 갈아탔다.  아뿔싸!  기사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예약 시간 까지 도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다.  도중에 내려 택시로 갈아탔다.  겨우 시간 내에 도착하여 먼저
영치금과 한 방 8명의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넣어 드렸다.  제 시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김 아저씨와 방 식구들이 함께 모여
치킨과 과일과 과자로 잔치벌일 생각을 하니 온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창살너머로 김 아저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멀리 여주까지 어떻게 왔냐며 너무나 기뻐하셨다.  김 아저씨는 여전히
그 안에서 회개와 감사 그리고 섬김과 전도에 열심이셨다.  돌아설 때 마다 잔소리처럼 꼭 하는 나의 한 마디 “아저씨, 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그곳에서 절대 성질부리지 마셔요!”  무슨 말인지 김 아저씨도 알고 계실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 달랐다.  갈 때는 행여 길을 잃을까, 차를 놓칠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얼마나 불안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은 달랐다.  시골 넓은 들판 굽이굽이 버스 길 지나며 넓은 고속도로 힘 있게 먼 길 달려가며,
주님께 나지막이 계속 여쭈어 보았다.  ‘주님, 어떻게 그리 멀리 오셨어요?  하늘에서 땅까지…  우리가 뭔데…  주님,
감사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멀리 하늘에서 오신 나의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