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최근 시애틀 평강교회 집회를 마친 다음날, 오승현 전도사와 함께 후배 피아니스트 안선 집을
방문해서
오랜만의 반가운 회포를 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숙소가 넓은 만 건너편에 있는 관계로 페리
호를 타고 건너 야 했습니다.
가는 길 앞차들이 속력을 내지 않아 겨우 제 시간에 도착했는데 이미
만 차(boat is
full)였습니다. 코앞의 뱃길을 포기하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지요. 문득 시애틀에 사는
모 교회 선배 원순이 전도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선배는 1년 전에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
시애틀에 오면 문안하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돌아가는 길목 인근에서 15분 즈음 남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스케줄 상 이날이 아니면 방문이 불가능했기에 바로 달려갔습다.
 
금만 캐라
마중 나오신 선배 아버님의 갑작스런 접대로 저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저의
모교회인 서울 문화촌 소재 홍성교회에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다고
자식들까지 집에서 내 쫓는 무서운 분이셨지요. 그런데 그 분이 91년도에 미국에 와서 너무 심심해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3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까지 만도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셨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딸의 아픔을 가까이 겪으면서 신앙이 연단되셨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말도 안 되는 목사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장로들도 있어. 성도이건
목사이건 자
기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나 이런 것에 좌우될 필요는 없어. 목사님이 설교를 못해
도 불평할 필요가 없어. 금을 캐러
갔으면 금만 캐야지 돌까지 캘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설교를 엉
으로 해도 그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금이 있거든.”
 
머리에 망치를 한 대 맞는 듯 했습니다. 그토록 복음을 핍박하던 과거의 모습은 온대간대
사라졌습니
다. 암 투병 중인 딸의 아버지로
보기에는 그 고백이 너무 건강하고 힘찼습니다. 70대 노 성도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씀마다 제 심부를 찔렀습니다.
 
폐암을 이긴 여장부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선배를 만났습니다. 처음 얼굴을 본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처음 폐암을
발견해서 의사가 개복했을 때는 이미 폐의 좌우에 모두 번져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갔었습니다. 의사는 2달 안에 죽으니 집에 가서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그
런데 선배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나는
살꺼야!”였습니다. 몇 번의 진단을 통해 의사는 폐가 돌처럼 단단해져서 더 악화 되었다는
말만 반복했답니다.
그러나 선배의 내면의 소리는 단호했습니다. “나는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많아. 나는
살아야 해” 그래서 24시간 찬양과 기도하는 IHOP이라는 곳을 찾아
가서 하나님께
매달렸
습니다. 주위의 교회와 한국의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기도로
동참했습니다. 3개월 뒤,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의사들이 놀랐습니다. 아주 작은 혹 하나만 남고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써내려간 수기가 200페이지가 넘는다니 역시 죽음의 그림자는 선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헤어질 때 오히려 방문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선배의 목소리는 정상인강인한 듯 힘이
넘쳤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이날의 독특한 경험 때문인지 숙소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선배를
만나러
가면서 내심 예상했던 분위기는
어둡고, 자조 섞인 병실의 위로, 격려 모드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문
안 갔던 우리가 도전받고
돌아왔습니다. 오 전도사의 말처럼 ‘페리호를 타지 못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거꾸로 사는 삶입니다. 편안한 뱃길 대신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회복과
충전의 길이
되었습니다. 노년의 주름이라도 복음의 생명력에 젖을 때 오히려 청년보다 더 예리한 분별
력을
발휘합니다. 죽음의 그늘도 기도의 집중력에 노출될 때 그 사기(死氣)를
잃고 정상인보다 더
활기
찬 생기를 뿜어냅니다.
 
두 분의 삶은 거꾸로 사는 삶의 산 증거입니다. 선배의 아버지… 비록 병이란 병은 온몸이
다 지니고 있
는 아내와 함께 넉넉지 못한 삶을
사는 노년의 나이이시지만, 복음 안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는 세상
누구보다 부요해 보입니다.
원순이 전도사님… 비록 폐암 말기를 선언한 의사들의 사형선고 앞에 무능
력한 중년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고백한 불굴의 투지는 이미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승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눈 앞에는 외로운 노년의 위기는 간대없고 신앙에 올인하신 어르신의 단호한 낯 빛,
가장 극심
하다는 폐암의 고통을 참아내며
하나님의 치유의 강에 온 몸을 내어던진 선배의 여장부다운 패기, 그리
고 이미 99%의 암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꿈꾸는 그 생명력 넘치는 눈빛이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인터뷰 – 화종부 목사 (시카고 컨퍼런스 2008 오전 주제강의)

2008 KOSTA/USA 시카고 컨퍼런스의 오전 주제강의를 맡아주셨던 화종부 목사님을 eKOSTA가 만났다.

eKOSTA: 목사님께서는 청년 사역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제자들 교회가 청년 중심의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하고 계신 청년 사역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 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청년의 때에 말씀을 많이 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영국에서부터도 청년 사역을 하고 싶어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청년 사역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많지 않지만 이번에 Joy의 이사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청년 사역의 기회가 있었으면 했는데 좋은 통로인거 같습니다. 저희 교회도 말씀하신대로 비교적 젊은 교회이고, 큰 교회는 아니지만 청년, 대학생이 200명 정도 있습니다.

eKOSTA: 교회 홈페이지에서도 많은 결혼 소식들이 있는 것을 보고 청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짐작이 되었습니다.
화종부: 네, 1년에 20번 정도 주례를 하고 1년에 30명 정도의 아기들이 태어납니다. 저희 교회 청년부는 바울이라고, 대학부는 디모데라고 불립니다. 청년부, 대학부, 그리고 장년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eKOSTA: 예전에 내수동 교회에서 섬기셨는데, 그때와 지금의 청년부가 다른 점이 있나요?
화종부: 그때의 청년들에게는 야성이 있었던 거 같고요, 지금의 청년들은 야성은 덜하지만 그때에는 없었던 창의력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든 장점을 최대화 해야겠지요. 지금의 청년들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인재들이 배출되는 거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있습니다.

eKOSTA: 지금 말씀하신 야성은 열의라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화종부: 그런 거 보다는, 체제가 도움이 많이 안되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그게 바로 들판에서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거지요. 지금은 체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으니, 들판에서 거칠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련되지는 못해도 선이 아주 굵직 굵직한 청년들이 아주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굵직 굵직한 청년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eKOSTA: 대략 15년 내지 20년 전쯤에는 한국 기독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이들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는 말들을 하거든요.   
화종부: 네, 그런 것도 다 포함될 수가 있겠죠. 우리 때에는 조국과 민족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개인과 세계가 화두가 되는 거 같아요. 개인에 너무 함몰되지 않도록 하면서 민족을 넘어서서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는게 더 좋은 거일 수도 있죠.

eKOSTA: 목사님 설교 중에서도 언급되시는 손희영 목사님, 백금산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신 거 같은데, 이분들과의 관계를 소개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손희영 목사님께서는 제가 자랐던 내수동 교회의 집사님으로 계셨습니다. 손희영 목사님께서 세브란스 병원에 의사로 재직하고 계셨을 때,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역자였고, 목사님께서는 집사님이셨는데, 뵐 때마다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지금 가끔 한국 오시면 저희 교회 부흥회도 해주시고, 그렇게 교제할 기회가 있어서 너무 많은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김남준, 백금산 목사님은 신학교 동기들입니다. 졸업한 이후로 20여년간 꾸준히 같이 공부를 해왔습니다. 혈육과 같이 너무 좋은 친구들입니다. 만날 때마다 많은 격려와 도전이 됩니다.

eKOSTA: 손희영 목사님은 작년에 저희가 인터뷰를 했었고, 올해도 세미나 강사로 오십니다. 작년에 강사 인터뷰를 했을 때,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은 받지 않으셨나요?
화종부: 저는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을 받지는 못했고, 대신에 저는 제 평생의 스승으로 여기는 로이드 존스 선생님을 책을 통해서 만났고, 그 영향으로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로이드 존스에 대한 관점이 같았기 때문이었고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이제는 존 오웬이나 청교도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저만 아직 로이드 존스에 머물러 있죠.

eKOSTA: 특별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화종부: 제가 전공했던 정치 외교학을 내려놓고 신학교로 부름 받았을 때, 한국 교회의 현실이나 신학교의 현실에 의해 방황하며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를 믿는 것이,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에 대해 그분이 책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미치신 거 같아요.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감격스러워하고 좋아하며 목회를 하고 있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참 귀한 선생이죠.

eKOSTA: 작년에 저희가 손희영 목사님 인터뷰 할 때, 목사님께서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언급하시면서 훌륭한 설교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목사님께서도 설교자로서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시나요?
화종부: 네 맞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또 특별한 이유는, 로이드 존스는 제자를 만들 때 자신과 똑같이 만들지 않고, 자기에게 속하게 만들지 않는 거 같아요. 대신에 그리스도에 속하도록 저를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입니다. 저도 그렇게 좋은 설교자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eKOSTA: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에서, 소그룹보다는 전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도록 하고 싶으시다고 하신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종부: 예배가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도구라고 생각이 되어요. 제가 제자 훈련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는, 잘 훈련 받아서 삶의 터전으로 보내는 것이 목적인데, 너무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많은 분들이 잘 양육 받아서 삶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도록 파송을 해야 되겠는데,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소그룹이 너무 많아지면 물리적으로 모임의 숫자가 많아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더 큰 모임에서 삶의 많은 문제들이 다뤄질 수만 있다면, 더 적은 시간내에 이루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삶의 자리로 보낼 수 있겠죠. 그런 면들이 예배에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또한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 수록 더 좋은 일꾼으로 길러지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한계도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그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예배가 가장 좋은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결과들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복주시리라고 기대하며 꾸준히 가고 있습니다.

eKOSTA: 개인적인 양육 보다는 좋은 말씀을 통한 목양이란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화종부: 네 목양도 중요하지만 저는 최대한 빨리 성도들이 저를 그만 사용하고 그리스도께로 붙기를 기대해요. 목양자가 제가 아니라, 그분이신거죠.

eKOSTA: 청교도에 관해 매우 긍정적이신 백금산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과 달리 손희영 목사님께서는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목사님의 청교도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화종부: 네 저도 동의하고, 존경하고, 따라 살고 싶어합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한국 교회의 필요를 청교도가 공급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물론 그분들이 역사 속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약점은 숨겨지고 장점들만 부각되는 면은 있죠. 그런 면은 조심해야 하지만 저도 조국 교회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죠.

eKOSTA: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고, 어떤 면에서 현재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을지 말씀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제가 목회를 하면서 부딪히는 것중의 하나가, 한국사람들의 정서는 너무 율법주의적이에요. 이렇게 율법주의적인 사람들에게 청교도 적인 것이 들어올 때,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더욱 묶어놓게 만드는, 그래서 위축되게 하고 억누르게 되는 경향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지금과 같이 물질이 풍부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고자 하는 열정은 참 귀하다 할 수 있겠죠. 너무 율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정신이 잘 사용될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eKOSTA: 목사님 설교 중에 들었던 표현 중에서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이란 말과 ‘조국 교회’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목회자로서 생각하시는 조국 교회의 약점은 어떤게 있을까요?
화종부: 저는 조국 교회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복음에 대한 무지함. 예수의 사건에 대해 너무 모르죠.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건지 잘 모르는 거에요. 주님이 하신 일과 그분의 성품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기 때문이죠. 또 많은 설교들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 가를 말해주고, 윤리적인 면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주지 않아서, 너무 약한 성도들을 만들어내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교회가 얼마나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을 잘 하지 못하고, 너무 개별적이고 효율 위주의 구조를 많이 생각하지요. 그러나 교회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세상이 말하는 지혜로운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조직이죠. 세상은 다 잘 따라오는 소수를 위한 구조를 갖고 살지만, 교회는 따라오지 못하는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보폭을 늦추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는 유일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교회의 교회 됨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한계에 부딪히고, 그리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못하는 그런 섬김들을 잘 하고 있지 못한다고 봐요. 이렇게 저는 구원론과 교회론이 한국 교회의 큰 약점이라고 봐요.

eKOSTA: 예전에 유학 전에 사역하실 때나 학생이실 때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비슷하게 갖고 계셨나요?
화종부: 네, 그랬습니다.

eKOSTA: 역사를 살펴보면, 예를 들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런 교회로 부터 독립된 교회론을 주장하셨고, 존 스토트와 같은 분은 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주장하셨던 걸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럼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시는 분으로서 이렇게 종교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방법에 있어 누구의 생각이 옳았을까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화종부: 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로이드 존스 선생님과 입장이 다릅니다. 영국에서의 유학이 저에게 준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학을 가기 전에는 로이드 존스와 같이 언제든지 부패한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서 거룩하고 성결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학을 가서 너무 뜻밖에 어거스틴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저에게 강하게 심어준 이미지는 교회의 하나됨, 한 몸으로서의 교회의 교회됨과 진리와 성결, 그 두 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두 개가 동시에 추구가 되어야지,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을 영국에 가서 굉장히 강하게 느꼈어요. 그런 것들이 로이드 존스와도 다르고, 친구들과도 약간씩 다른 부분이죠. 저는 그런 면에서 계속 교회로 들어가야 하고, 교회의 한 부분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eKOSTA: 그럼 하워드 스나이더가 주장하는 교회 내 교회를 주장하시는 것이네요.
화종부: 저희 친구들은 대부분 교회를 개척했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개척한 교회를 받아온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원하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교회를 개척했었겠죠. 그게 아니고 저는 기존의 한국 교회에 들어가서 그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섬겨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교회들의 모임에 할 수 있는대로 참석하고 도우려고 노력하죠.

eKOSTA: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제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했을텐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청년들을 위해서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지요?
화종부: 네, 20대나 30대에 그런 고민들을 해야한다고 봐요. 제가 50이 다 되어서 선택한 이 길을 지금의 20대가 선택하는 걸 저는 원치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정말 목회와 교회의 교회됨이란 것은, 한없는 인내와 기다림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20대, 30대가 지금의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20대 30대 때는 뒤집고, 반대하고, 고민하며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 일을 성실하게 하다가 와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타협할 수 있겠죠. 저도 스스로 조심하는 것은 너무 타협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타협하지 않고 정말 나이에 걸맞는 일을 해야되겠죠.

eKOSTA: 이전에 제자들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해 설교를 14번에 걸쳐서 하셨는데, 그렇게 강해 설교를 하신 배경이나 의도가 있으셨나요?
화종부: 제가 계속 하고 있는 설교는 본문 강해 설교에요. 그러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로 지식도 짧고 한계가 있어서 보통 그렇게 하지만, 때로는 특별한 주제를 다루기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강해를 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도 한 번 해봤죠. 여러 주제로 넓혀놓은 다음에 계시록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본문 강해 설교 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강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eKOSTA: 목사님 하나님 나라 설교 초반에 어서 계시록으로 가고 싶습니다 라는 말씀 정말 자주 하셨는데 그래도 또 하실 생각을 하시네요. (웃음) 저희가 설교 들으면서 조금 특이하게 느꼈던 점은, 목사님께서 upside-down 이란 말을 많이 쓰셨는데, 굉장히 개인에게 한정된 하나님 나라를 많이 말씀하지 않았나 싶어요. 교회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 나라라든가 우주적인 주권, 또는 구약에 나오는 모습 등의 하나님 나라라기보다는 개인에게 집중된 하나님 나라였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화종부: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한계라고 볼 수 있겠죠. 제가 에베소서를 하면서도 똑같은 것을 느꼈는데요, 역사적인 교회에 대한 논의들을 잘 다루고 나서 말씀을 보면 굉장히 넓게 다룰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본문을 다루는데 급급했어요.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이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주제와 관련하여 폭넓게 여러 관점에서의 논의들을 다뤘으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더욱 풍성하게 다룰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기에는 제가 준비가 너무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본문 자체만 다루고 끝냈죠. 조금 더 넓혀져야 한다고 봐요. 제가 그런 면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해야되는 거죠.

eKOSTA: 이번 코스타에서도 복음,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신다면, 짧게 하셔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측면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네요.
화종부: 네 그렇죠. 제가 개인적으로 계속 느끼는 것이 그런 거에요. 성경의 진리가 이상적인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게 아니고, 이게 정말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도 여러번 실패하고 안되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많다는거 저도 알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던지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절대 안해요. 저도 실패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아 정말 이렇게 살아야 진짜 사는 거구나 이런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아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바탕을 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요.

eKOSTA: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아주 추상적인 반면에, 사람들이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나 상황들은 너무 구체적인데, 이 두가지를 연결시킬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이번 코스타 주제에도 담겨있는 거 같아요. 저희가 개인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적용하며 살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세요?
화종부: 제가 목회를 하면서도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중의 하나가, 한국의 교인들은 목회자가 어떤 결정을 해서 교회를 이끌어 가주기를 원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계속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필요를 느끼는 자가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거든요. 기독교의 윤리라는 것이 절대로 공동체나 나라 전체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그 출발은 개인인거죠. 하나님 말씀에서 깨닫고 반응하는 그 개인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깨닫은 개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주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깨닫은 바를 댓가를 지불하면서 충성스럽게 전하는 거죠. 그게 제 개인의 경향이기도 하고 제가 계속 전하려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운동 차원의 것을 함께 해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보다는 개인이 변화되고 개인이 살면서 하는 것이 제 생각으론 훨씬 더 지혜롭고 효과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두 가지를 최대한 묶되, 적용은 철저히 개인과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KOSTA: 목사님도 유학 생활도 하셨고 이민 목회도 하셨는데, 다문화권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는 저희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은 어떤게 있으세요?
화종부: 제가 유학 생활을 통해서 얻은 것은 공부 자체보다는 그 외국 생활의 다양성에서 배운게 더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유학 생활 중에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정말 오늘의 삶을 사는 것이죠. 제가 만난 많은 한인 학생들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주 특별한 기간이고 삶이란 건 언제부터인가 한국 가서, 또는 직장을 얻고 나서 살려고 합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사는 것이 삶인 거죠. 그 생활을 특별한 기간으로 여기지 않고, 주님 앞에서 시간과 우선 순위를 충실하게 드리면서 삶을 살아주는 거죠. 언제부턴가 삶을 새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곳에 딱 맞는 형태로, 분명하게 헌신하며 성도의 삶을 살며 공부해야, 나중에 한국에 와서도 정말 우리가 기대하는, 빛을 비추는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삶의 현장에서 충성스럽게 믿음의 원리를 따라 사는 거죠. 그런 기대를 제가 전해주고 싶어요.

eKOSTA: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종부: 많은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이유정] 광우병사태와 인간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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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찹찹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도, 초등학생까지 참여하는 국민적 촛불시위도, 종교계의 대처 그 어느 곳에서도
가슴 시원한 해법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천민 민주주의’ 등 유희적 논쟁으로 매체가 들끓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의 소리가 더 깊은 불신의 병을 낳을까 염려됩니다. 광우병을 둘러 싼 몇몇 입장에 묘한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시민들과
야당, 국민대책본부가 여당과 정부,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는 성난 목소리, 그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졌습니다. 플래카드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난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질책을 넘어 인격 모독입니다. 대통령을 무슨 길거리 촌부 취급합니다. 참여정권을 심판한다는 국민의 힘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뽑힌 대통령이 100일도 안 되어 그 국민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국민의 권위가 국민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나라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생명이 담보가 될 소지가 있는 소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을 배려한 최선의 신뢰적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터지고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 국민의 입장에서, 민초의 마음을 읽으려는 낮은 자세도 없었습니다. 국정의
책임자들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국민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크리스천 정치인이나 목회자가 ‘사탄의 세력’ 운운하는 것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비 신앙인도 인간의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긍휼과 사랑의
언어로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성속의 이분법적 태도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최근 사회에 기독교 불신과 안티세력이 급속도로 커져가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반기련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안티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사회에 패악질을 일삼는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도전합니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를 한국교회 총체적
난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자정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이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며, 교육의 핵심개념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인간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존엄합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형수라도 형틀에서 마지막 죽기 직전의 순간만큼은 엄숙합니다. 바로 생명 그 자체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기치로 삼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성숙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 입니다. 80년대와 사뭇 달라진 좌파우파의 논쟁도, 물고 뜯기가 끝없는 국회의 야당과
여당도, 권력의 추가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동하는 시국현장에서도, 노동자와 사주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인간존중의 언어와 소통의 미는 없고
비난과 반목질시만 난무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역행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으로 취급했기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생을 마쳐야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제 당신은 안 돼요! 이 병은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합니다!” 병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말합니다.
“당신은 부정한 여인이요!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마시오.” 종교적 기준으로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가능과 절망, 비난의
소리에 갇혀 있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문을 박차고 무리를 뚫고 예수께 가까이 가서 그 옷자락을 만진 순간 즉시 혈루병의 근원이
말랐고 병이 나았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12년 동안 짓밟혀 있던 이 여인의 가치는 그 짧은 순간 예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외형적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난, 불신, 정죄, 절망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이름 난 대형교회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그 어떤 정치적 입장, 이데올로기, 학술적 권위, 종교적 허울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존재의 회복을 열망하는 솔직한 한
생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예수 복음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신념의 근본적인 회복과 변혁을 가능케 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번 광우병 사태의 위기가 오히려 실종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이유정
/ 한빛지구촌교회 예배목사, CCM 남성듀엣 좋은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