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형]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까?

캠퍼스 사역 Q&A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까?


신명기8:3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한 후 만나를 먹게 하신 이유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기 위해서 중요한 필요 조건인 것 같습니다. 낮아지고 굶주릴 때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본조건이 결여되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이 세상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시 여기던 일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세상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알게(믿게) 됩니다.


먼저 생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명은 피조물에게 있어서는 창조의 틀(framework) 안에서만이 설명될 수 있는 개념 입니다. 우리가 현존하고 있는 창조의 틀 안에서 원래 창조될 때 define된 기능을 발휘할 때 “생명이 있다” 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은 원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원인/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그 원인이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1:30; 2:7).


모든 생명체는 미리 규정된 범위 안에서 활동을 합니다. 사자는 하늘을 날수 없고 참새는 얼룩말을 잡아 먹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들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define) 하셨다고 설명하심으로 각각 창조 안에서의 주어진 활동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창1장).


생명이 창조의 틀 안에서 설명될 수 있듯이 생명의 유지도 창조의 틀에 의존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창조 안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신진대사를 함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창조의 틀에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을 섭취하며 생존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설명하면서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를 만드시고, 기본 틀을 잡으시고 (이사야48:13) 마지막으로 그 틀 안에서 생명체들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1장). 이는 생명체가 창조 안에서만 존재하는 피조물의 제한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욥 38장).


창조의 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또 같은 말씀이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공급하는 근원입니다 (요1:3-4). 그러므로 창조의 틀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자 곧 말씀의 작품입니다. 창조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즉 의지의 표현으로 지금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1:3).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는 바로 하나님의 뜻의 계속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호흡하고 의식이 있다는 자체로 생명이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창조의 틀에서의 그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역할을 이행할 때 비로소 그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세계 안에서 단순하게 호흡하고 의식이 있어도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생명이 의미하는 것은 원래의 생명의 뜻이 아니라 육신의 세계 안에서 국한된 생명의 개념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육신의 세계 안에서 만의 생활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세계는 창조의 틀의 subset 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창조의 틀에 맞게 규정된 인간이 subset에 국한되어 생활할 경우 창조의 틀의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세계 안에 국한된 의식이 창조의 틀 안으로 팽창하고 그 창조의 틀에 의해 규정된 생활을 하게될 경우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 창조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11:1).


창조의 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고 있을 때 참 생명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세계는 잠시 있다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육신의 세계에 육신이 제한을 받고 살고 있지만 참 생명을 얻은 사람은 육신의 세계가 없어질 때 같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우리의 뜻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교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참 생명은 말씀을 통하여 유지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거절했음으로 육신의 세계에 국한되어 버린 인간의 의식수준에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 세상에 없어지고 사단이 제시해 주는 세상의 형상이 인간의 의식을 점령해 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셔서 인간의 육신의 세계 안에 표현되셨습니다 (요1:14). 그리고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 이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가르쳐 주는 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진리”, 즉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들은 말씀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빌3:9). 즉 육신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identity를 이해하고 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창조의 틀 안에서 자신의 참된 identity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육신의 세계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육신의 음식을 계속 섭취함으로 우리의 육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제 원래의 창조의 틀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whole being이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바로 창조의 틀의 음식은 창조의 틀을 유지하는 근원이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 번 진리를 받아들임으로 창조의 틀에서의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의 놀라운 보화를 질그릇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후4:7).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함으로 매일 나아가야 합니다 (히4:16).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의식 안에 들어와 우리의 삶의 영역이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틀에 의하여 지배될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까지도 온전히 지배하여 온전하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생명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김중안] Big Ten 지역 한국 유학생 사역의 단점

유학생 사역


Big Ten 지역 한국 유학생 사역의 단점


* 지난 호에서는 중서부 지역 한국 유학생 사역의 장점들을 나누었다. 이번 호에서는 반대로 단점과 힘든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문제점과 원인을 보는 시각에는 지역 교회의 사역자들과 거주자와 유학생들 사이에 공통된 의견과 동시에 이견들도 있다. 이 내용들은 현재의 유학생 사역과 사역자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여러 관점에서의 객관적 사실들을 언급함을 통해 유학생 사역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분석 진단하고 성경적이고 영향력 있는 유학생 사역을 위한 개선책과 대안을 찾는 데 기초자료로 사용되어지길 소망한다. 다음 호에서는 이를 기초로 바람직한 유학생 사역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사역자의 문제

유학생 사역에 문제점 중의 하나는 유학생을 위한 사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캠퍼스에서 유학생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학원촌에서 지역교회의 목회자로서 유학생 사역을 하거나, 이민자들이 많은 대도시의 교회에서 하나의 부서를 맡은 부교역자로서 유학생 사역을 하고 있다. Big Ten 지역의 30 교회 중 부교역자가 있는 교회는 5개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대학촌 지역에는 부 교역자가 2명 밖에 없다. 이는 교회의 규모와 재정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재정이 확보되더라고 시골 지역으로 유학생 사역을 위해서 기꺼이 가고자 하는 헌신된 사역자들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따라서 대학촌 지역의 사역자들은 혼자서 다양한 계층의 교인들(거주자, 대학생(under), 미혼자(single), 기혼자(married), 교환 교수, 언어 연수 학생, 주일학교)을 상대해야 하고 행정과 관리 설교 양육 돌봄 등을 책임지고 있기에 사역의 집중성, 전문성,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소모(burn out)되기 십상이다.

사역자의 수 뿐만 아니라 질적인 문제도 있다. 이는 일반적인 전임 사역자로서의 자질보다는 유학생 사역에 적절성에 관한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적인 한국 교회 사역이나 이민자 중심의 사역에 적절할 지는 모르나 유학생 사역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역자들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청년 대학생 사역의 경험이나 소그룹과 양육과 제자훈련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역자들은 유학생 사역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교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기본적인 관리만 하고 현재의 사역지를 더 큰 이민교회로 가기 위한 중간 역할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역자들의 자세에 대한 불만들도 토로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의 실정상 목회자 한 사람의 목회 철학은 교회의 방향과 사역의 구조와 내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전통적인 목회철학과 스타일을 가지고서는 출석 교인의 절대 다수인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외면하고 소수의 이민자들의 기호에 맞추려는 사역으로 기울게 된다.

2. 교회의 문제

교회 안의 문제로는 무엇보다 재정의 문제를 지적한다. 재정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하고 교단의 지원을 계속해서 받고 있거나 목회자의 사례비를 겨우 주고 다른 사역에는 여력이 없는 교회들이 다수이다. 재정의 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사역에 사역자를 세우지 못하거나 지역 교회로서의 교육과 양육과 선교와 구제 등 균형잡힌 사역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직업을 갖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교민들 중에도 헌금을 유학생 수준으로 적게 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거나, 나는 학생이니까 하면서 거의 헌금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할 때 재정적인 문제가 심각해진다. 헌금에 대한 강조를 하다 보면 불신자와 초신자들이 많은 유학생 교회에서 상처받거나 시험에 드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교회 안의 이민자와 유학생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이민자들은 유학생들이 헌금도 적게 하고 잠시 있다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목회자의 사역 중심이 자신들에 초점을 맞추어 주기를 요구한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이 다수인데 교회 봉사자로만 전락되어지고 사역내용과 교회의 운영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있음에 불만을 토로한다. 이 문제는 자신들이 소속된 교회의 존재 목적과 사역의 방향과 중심 내용에 대한 하나된 마음이 없을 때 더 심화된다. 그리고 목회자의 목회 철학과 방법론의 부재, 교민들의 선교의식 부재, 유학생들의 주인의식과 헌신의 부족 등이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역 교회들이 캠퍼스를 선교지로 보지 않고 학생들을 자기 교회 안으로 끌어 들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좁은 지역 내에서 교회 간의 갈등과 경쟁을 심화시키고 개 교회 중심주의로 치우쳐 협력과 동반자 관계에서의 효과적인 학원 사역을 못하게 된다.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게 되고 전도의 문을 막는 꼴이 되어진다. 자기 교회가 주체가 되어 자기 교회 안에서 하지 않는 한 다른 교회 청년들과의 연합이나 협력 사역은 지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도시의 교회들도 캠퍼스 내에서의 학생 사역을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개 교회에 이름을 내고 교회 내에 수적인 성장의 유익이 있을 때에만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삶의 현장인 캠퍼스를 외면함으로써 유학생들을 위한 온전한 사역이 이루어 질 수 없게 된다. 이원론적 현상이 일어나 학생들의 신앙을 교회 안으로만 가두어 전공과 신앙, 학문에서의 주되심, 직업과 소명, 영적 전투와 선교적 책임, 캠퍼스와 세상 속에서의 영향력 있는 삶,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과 동역에 관한 도전과 훈련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는 교회 출석과 봉사를 잘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기복 신앙과 이원론적인 신앙 생활을 부추기게 된다.

3. 사역의 구조와 내용의 문제

유학생 사역이 효과적으로 잘 되어지고 있는 교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목회자가 유학생 사역에 대한 뚜렷한 목회 철학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가 전통적인 한국 교회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역 구조와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한국 교회의 구조와 내용을 유학생 사역에 그대로 접목하고 있다. 주일 대예배가 제일 우선 순위에 있고 수요저녁 예배, 주일 저녁 예배, 새벽 기도회, 금요 전교인 기도회, 주일 오후 예배, 구역 예배, 부활절 성탄절 등의 절기 행사로 바빠 평신도 리더 훈련과 체계적인 양육과 제자 훈련을 할 여력이 없다. 성가대가 주일 학교 교육보다 우선되고, 여 전도회와 구역모임은 주일날 전교인 식사 교제 준비가 제일 큰 사업이다. 싱글들은 청년회라는 부서로 묶어 놓고 기혼자들은 구역 모임으로 편성한다. 구역 모임은 깊은 나눔과 말씀을 통한 양육보다는 피상적 식사 교제와 형식적인 예배로 일관 되어지고 있다. 구역장들을 교육하고 돌아보지(care) 않고 책임만 주고 관리만 하게 하는 것이다. 소그룹을 통한 양육 구조가 아닌 관리 구조인 것이다. 청년회 모임도 훈련과 양육이 없고 지도 교사나 부장 집사가 전체로 모아서 가끔식 가르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청년회는 말씀을 통한 양육보다는 찬양 모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청년회의 제일 큰 사명은 교회의 행사나 인력을 요구하는 일에 제 때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면 장로님과 제직들은 우리 청년회 잘 모이고 잘 된다고 평가한다.

제일 안타까운 사실은 출석인원 중 불신자와 초신자가 1/3이 넘는데 이들을 위한 전도 성경 공부나 초신자 교육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면 신자로 간주(assume)하여 기혼자는 구역으로 편성하고 미혼자는 청년회로 편성한다. 교회 출석과 봉사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믿음이 자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복음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영접한 경험이 없고 아무런 양육도 못 받은 가운데서 유학 시절 동안 교회에 출석하고 임원으로 직분자로 활동하다가 졸업하고 떠나는 사례들도 허다하다. 실제적으로 내가 만난 많은 학생들이 교회 내에서 전도와 양육을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전통에 따라 굳어진 교회의 구조의 벽에 부딛혀 좌절하고 있었다.

학기 초에 정착을 위해 교회의 도움을 받고 출석했던 학생들의 반 이상이 학기 중간에는 보이지 않는다. 말씀의 능력과 사랑과 치유와 나눔과 소망으로 가득한 건강한 공동체성이 없고 삶과 인격으로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흡입력이 있는 소그룹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신자들 중심의 구조와 내용을 지속하고 있기에 불신자들과 초신자들이 적응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 구조와 내용이 유학생 사역에 맞게끔 전도하고 양육하여 영적 지도자로 훈련하여 파송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는 한 유학생을 위한 온전한 사역을 기대할 수가 없다.



4. 사람의 문제

유학생 교회의 목회자들이 지적하는 제일 큰 어려움으로 공통적으로 뽑는 것은 일군이나 평신도 사역자가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 교회 스타일의 교회들은 항상 그 해에 새로 오는 신입생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런 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자가의 개념이 아닌 교회를 운영하고 섬길 일군을 필요로 한다. 어떠한 사람이 오느냐에 따라 교회의 사역의 내용과 질이 바뀌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보다는 교회에 오랜 다린 베테랑 신자를 선호하고 꼭 붙잡으려고 노력한다. 이에 상처를 받고 다른 교회로 옮기거나 아예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양육 중심의 교회들도 리더들을 세워 일할 만하면 떠나 버리게 되어 안정적으로 리더십을 이어 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리더로 서는데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실제로 사역할 수 있는 기간은 많지가 않다.

전체 유학생들의 숫자에 비해 한국에서부터 잘 양육되고 준비된 리더들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준비된 일군과 사역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이 불신자, 초신자, 교회만 출석하는 맹목상의 신자들이다. 일설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선교 단체나 교회 대학 청년부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하던 학생 리더들은 유학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적게 유학을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가지는 시간적인 한계들이 있다. 학업과 학교 일에 쫓기다 보면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고 가정에서 책임이나 교회 출석도 간신히 있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유학생 교회와 사역자들은 신앙의 성숙보다는 학위와 직장을 잡는데 최우선 순위가 있고, 단기간 있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주인의식이 부족하고,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신세대의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도전하여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함철훈] Be Still

eKOSTA 갤러리


Be Still!
내 앞에 잠잠할 지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10월 느림과 11월 Give Thanks로 연결 시켜본 캄보디아의 영상을 이 사진으로 마감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두려움과 생소함 앞에 당황해 하는 우리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것들을 시간이라는 놀라운 방법으로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때 나와 만물들은 그분의 영광 아래 잠잠할 지어다. … Be Still! …


*1998년 5월 World Vision의 official photographer로서 오재식 회장님과 김혜자 대사님 그리고 SBS 팀들과 캄보디아 취재를 마치고 기아 대책 기구 팀들의 깜뽕솜 어촌 하기훈련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푸놈펜 중앙 시장 바닥에서 본드를 흡입하며 뒹구는 가여운 아이들, 아직도 킬링 필드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바탕방의 지뢰밭 위에서 논과 밭을 갈며 살아야 하는 농민들, 4바퀴 차길이 없어 3시간 오토바이 꽁지에 메달려 엉덩이 얼얼하도록 들어가본 농촌 축. 그곳 농촌 교장 선생님의 16살 짜리 아들 아바트낙이 어느날 지뢰로 두 눈을 실명한 후 일년 반 동안의 본인과 가족들의 얼굴과 마음의 상처. 정글 숲에 감춰져 있던 앙코르 와트의 유적들과 통네 호수의 수상 가옥을 본 후에, 캄보디아의 아픔은 전이 되어 깊은 숨이 쉬어질 때의 깜뽕솜 남지나 海(해)의 해(일)는 숙연함을 넘어선 큰 위로였습니다. 내 앞에 잠잠할 지어다.


Be still, ye inhabitants of the isle; …(Isaiah 23:2)

[이지은] 보이지 않았던 선물

F2 이야기


보이지 않았던 선물


2년 여 전, 결혼과 남편의 유학으로 인해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 타문화권으로 옮겨와 새롭게 삶을 시작하던 그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또한 타의에 의해 나의 것은 모두 버려진 듯한 생각으로 꽤나 눈물을 흘렸던 그 날들….


미국에 온 지 한 2개월 쯤 흘러 교회 청년부 모임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년부의 한 자매와 원투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자매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는데, 그럼에도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주부’라는 점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QT 나눔을 하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눈 후 기도로 마치는 형태로 만남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낸 후 자매는 자신의 삶에서 기도 시간과 QT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을 그날의 QT 시간으로 정하여 함께 성경을 보고 의문점이나 느낀 점을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더 흘렀을 때 이웃에 살며 인사하고 지내던 K주부를 그 만남에 초청했다. K자매는 집에 있으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나면 그 당시엔 재미있는 것 같아도 헤어지면 허무함이 남는다면서 우리 모임을 자신도 함께 나누고 싶어했다. 이제 모임 인원이 3명이 되었다. 한 명이 더 늘어난 모임이 되니, 궁금한 것도 많아져서 다른 참고 자료도 찾게 되었고, 의미 파악이 어려운 개역성경 대신에 영어성경(NIV)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세 명의 인원은 곧 다섯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K주부를 통해서 P주부가, 나를 통해서는 E주부가 모임에 오게 된 것이다. 우리 모임에 두 명이 더 늘어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그동안은 처음 원투원했던 자매가 박사과정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자매의 스케줄과 동선을 최대한 줄여주는 배려로 학교 식당에서 모임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된 E주부는 한 살이 좀 넘은 딸 아이 하나가 있었고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함께 학교까지 가자고 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한 살 박이 아기가 식당에서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집으로 모임 장소를 변경하게 되었고 5명이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보다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그 대신 학생이었던 자매에게는 라이드(ride)를 해 주었다.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 된 E주부는 한국에서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아기 키우면서 아무런 사역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모임에 와서 신학적 견해나 성경배경 지식 등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맡음으로서 자신이 전공한 것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모임이 깊은 나눔과 성경공부로 채워져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우리가 식당에서 모이고 있을 당시, 우리를 쳐다보며 몇 번 인사하고 지나가기만 하던 H자매에게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그녀에 대한 선입관, 주로 그녀의 독특한 성격과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기를 초청했을 때 놀랍게도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모임에 꼭 오고 싶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무척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H주부도 교회 청년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대다수인 이 모임에서 쉽사리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어려웠고, 유학생의 아내로서만 사람들로부터 인식되는 것처럼 느꼈으며, 임원들은 모두 유학생인 그 모임에서 어쩐지 주부들은 소외 당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는 나를 ‘나’로 여겨주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같은 주부이기 때문에 관심사도 비슷하고 편하다고 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던 이 자매가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고, 선택의 순간 앞에서 기도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이 생겨났다. 지난 청년부 수련회에서 중보기도 시간에 이 자매와 나 사이에 생긴 일이 하나 있다. “난 언니가 우리 모임에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라는 나의 말에 딱딱하게만 보였던 그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와요. 하나님께서 자매를 귀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나같은 주부들을 위해 계속 섬겨 주세요”라고 했던 말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성경공부 모임으로 굳혀진 우리 모임의 인원은 2년 정도의 주기로 새로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때문에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10명 내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간의 나눔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모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인원을 2개조로 나누었다. 또한 2개조로 나누다 보니 리더십을 키워야 하는 문제도 함께 대두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임을 같이해 온 우리들 중에서 추천을 받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지만 모임을 같이 해 오면서 구성원들이 리더십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조는 K주부가 맡기로 하고 다른 한 조는 내가 맡기로 했다.


우리 모임은 금요일 아침 11시부터 모여서 한 조는 거실에서, 다른 한 조는 방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다 – 모임 인원이 적은 날은 함께 하기도 한다. 텍스트로는 영어성경을 사용하고, 관주와 표준새번역, 성경사전과 성경지도 등으로 정확한 뜻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함께 나눈다. 그 다음엔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한다. 요즘에는 성경 말씀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를 위해 책 나눔도 하고 있다. 한 장(chapter)씩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질문과 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돌아보고 문제를 내놓고 함께 기도하면서 가정을 조금씩 회복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책 나눔을 통해서 공부할 예정이다.


2시간 정도의 모임 후에는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한 식탁에 놓고 먹으며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다른 조에서는 어떤 나눔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얘기하는 교제 시간을 갖는다. 보통 3시 정도까지 두 시간 정도를 함께 나누다가 급한 일이 있거나 아이가 있는 자매들은 집으로 가고, 남는 사람들끼리 쇼핑을 하거나 커피숍에 가서 티타임(Tea-time)을 갖기도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너무 오랫 동안 시간을 갖는 게 아닌가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부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꼭 점심 시간을 포함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의미 있고 깊이 있는 나눔을 원한다. 이런 사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으며 위로 받고, 또 위로하고픈 역동적인 시간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있는 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특이한 점은 주부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내 주위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싱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여드는 건 주부들 뿐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많은 위로 받음과 편안함으로 왔다가 점점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부분 그들의 남편은 학생이거나 박사후 연구원이었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늘 학교 공부와 일에 바쁜 반면, 아내들은 한국에서는 그런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자신 있게 살아왔다가 너무나 조용한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삶을 살면서 정체성을 잃었던 것이었다. K주부는 1년을 울면서 한국에 가고 싶어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남편들이 잘 해 주어도 이 자매들의 눈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해서 그들을 회복시키셨다. 처음엔 자신들의 한풀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이곳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만 2년이 되는 이 모임은 그들의 남편들과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도 인식되어서,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모임에 나오는 주부들의 남편들은 집에서 아내에게 잘 해야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잘 못하면 곧바로 이 모임에 기도제목으로 나오기 때문이라나? 어쨌든 남편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우리 모임은 왜 이렇게 자라게 되었을까? 처음 나의 의도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대학 시절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시작한 원투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6개월 안에 모임의 크기가 커지고 내용도 성경공부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을 섬기려다 보니 성경도 여러 번 보게 되고, 기도도 더욱 하게 되고, 자료도 찾게 되고 모임의 필요에 더욱 민감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원하고 계셔서 우리를 모아 주신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난 주부 모임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니까. 난 단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은 어디에 없을까’란 생각만 잠시 했을 따름이었다.


며칠 전 창세기에서 요셉의 삶을 공부했다. 그때 우리들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외국에서의 삶과 더욱이 감옥에서도 ‘성실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잃지 않았던 요셉처럼 F2의 삶을 살아가자고 기도했다. 타의건 자의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옛것에 대한 미련을 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성실함’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요셉이 만 2년 이상을 감옥에 있었지만 그것도 요셉의 삶의 한 부분이듯이, 지금 집안 일로만 하루를 보내는 삶이건, 무언가 공부를 시작했건, 일을 하게 되었건 간에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 온 ‘삶’인 것이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서 안달하거나 속상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보라. 정말 자신도 꽤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느낄 것이다.


나는 우리 모임에 대한 나눔이 부디 미국에 살고 있는 유학생 부인들에게 힘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는 짝을 만날 수 있도록, 아니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모여 당신을 알고자 힘쓴다면 그 모임을 결코 찢으시거나 망치실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난 결혼한 지 2년 반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주부 모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늘 주님이 함께 하셔서 만들어 가실 것을 믿는다.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승률 장로와의 대담

eKOSTA 인터뷰


이승률 장로와의 대담


eKOSTA 이승률 회장님, 이사님으로도 알려지셨고, 장로님으로도 알려 지셨는데요, 어떤 호칭으로 불러드리는 것이 좋을지요 ?


이승률 이코스타 독자들이니까 아무래도 장로가 더 익숙하고 좋을 것 같네요.


eKOSTA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장로님 소개를 해 주시고, 더불어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셨으며 그 느낌은 어떠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


이승률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 서울에 반도환경개발주식회사라는 종합 건설업체에 회장으로 있습니다. 1990년도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 실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해 오다가 공식적으로 1992년도에 한국기독실업인회 내 서울영동기독실업인회의 커미티(committee)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만난 분이 김동호 목사님이셨고, 우리 커미티의 지도목사님이기도 하셨지요. 거기서 김 목사님으로부터 (성경)말씀 뿐만 아니라 또 코스타에 대한 여러 가지 소개를 듣고 나서는 코스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고, 해외 유학생들에게 실제로 협력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김동호 목사님을 따라서 코스타에 출입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2년에 한 번 정도 왔기 때문에 서너 번 정도 밖에는 못 왔지만 코스타가 발전하는 모습을 잘 보아왔고, 코스타의 리더가 되는 이동원, 홍정길, 오정현 목사님, 또 배후에서 돕고 있는 옥한흠, 하용조 목사님 같은 분들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젊은 목회자 분들이나 일터의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을 이 코스타를 통해서 많이 만나면서 특별히 세계 선교라든지, 평신도 전문인 선교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지요.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것이, 1990년도부터 중국의 연변과학기술대학 재단이사로 참여를 하고 있고, 또한 겸임교수로서, 코스타를 통해서 우리 학교에 교수, 교직원으로 오실 분들을 리쿠르트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코스타와 좋은 인연을 맺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KOSTA 코스타랑 연관을 맺은 지가 꽤 오래 되셨는데, 코스타가 혹은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를 하시는지요 ?


이승률 김동호 목사님께 들은 말씀인데요, 약 10년전,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에 이동원 목사님께서 대전의 대덕 연구단지에서 말씀하실 때, 코스타 출신들이 얼마나 되냐고 손을 들라고 했더니, 한 100여명 정도가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유학생 출신들 중에 특히 교수, 연구직 같은 지식계층에서 코스타 출신들이 점하고 있는 위치가 굉장히 높고, 또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 유학생 출신들이 이와 같이 지식 계층에서 많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들 뿐만 아니라 사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관계라든가 여러 비즈니스 리더들 중에도 코스타 출신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나는 봐요. 그만큼 유학 기간동안에 열심히 공부하며 고생스러운 가운데서도 이 코스타를 통해 영적으로 다시 거듭나고 꿈을 새롭게 하고 자기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는 얘기죠. 뿐만 아니라 코스타를 통해 얻어진 더 큰 자부심이 하나의 비전이 되어 각자의 앞날을 새롭게 이끌어 주어서 각 계층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는데 코스타가 영적인 큰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eKOSTA 예, 그렇군요. 한편으로는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면서 코스타에서의 비전을 잊어버리고 그 기득권의 일부에 속하게 됨으로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별히 기업을 하고 계신 입장에서, 우리 코스타 출신들이 이곳에서 받은 은혜와 비전을 가지고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좀 말씀해 주시지요.


이승률 이 문제는 코스타 뿐만 아니라 각 교회 목회 사역이라든가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선교 이후에 미칠 영향력이라든지 어떤 사역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라고 봐요. 하나의 현장에서 얻고 배우고 깨달은 열정이나 믿음의 진보가 생활 속에 즉 현실 속에 파고 들고 녹아지고 그것이 실제화되는 과정(process)이 참 중요한데, 우리 코스탄 출신들이 유학기간 동안에 가졌던 영적 체험을 자기의 현실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되겠죠. 코스타 출신들이 학자나 연구진으로 많이 나가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정·관계나 행정, 비즈니스에도 나가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리더십 교육이라는 것은, 즉 리더는 늘 새로운 환경에서 창조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정신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리더가 한 번 가졌던 생각을 기득권 형태로 누리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리더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새롭게 창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끌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리더쉽에 대한 문제를 우리 코스탄들이 좀 더 명확하게 깨닫고 자기의 현실 생활을 헤쳐나가 주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제3세계나 후진국,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유학생들이 그 사회 지도층으로 부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유학생들이 지도층이 된다는 함수관계를 통해서 자신에게는 현실 세계에 있는 한국을 개혁하고 이끌어 나가야 될 지도자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깨어있길 바래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추기 위해 항상 자기자신의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그런 극기와 이타주의의 리더십에 관계된 것을 명확히 해서, 사명감과 현실 속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기능, 즉 전문성을 잘 접목하면 코스타를 통해서 얻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현실에 적용해 나가는데 많은 밑거름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eKOSTA 예, 아주 명쾌하게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앞으로 어떻게 리더십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영성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잘 조명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이승률 장로님께서 이번 코스타에 참석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이승률 구체적인 목적을 얘기하기 전에 아까 하던 얘기를 덧붙여 하고 싶군요. 우리 코스탄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코스탄들은 유학생들이고 고학력, 지식층 인력이며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을 갖고 있기에 특히 지식층 신앙인들이 지식과 신앙, 투지와 기술 이런 양면성을 어떻게 잘 융합(fusion)하여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참 중요하다고 봐요. 여담으로 fusion이라는 말은 future vision이라고 할 수 있어요. fusion을 늘리면 future vision이고 future vision을 줄이면 fusion이 되죠. 하나의 선교적 삶의 현장에서 신앙적 열정과 그리고 자기의 전문 지식을 어떻게 잘 접목, 융합시켜서 제 3의 새로운 사역의 길로 신앙과 지식을 아름답게 표출해 나갈 것인가가 코스타와 코스탄들이 연구하고 개척해 나아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21세기의 진정한 리더십이 도출된다고 보거든요.


특히 코스탄들이 좀더 사명감을 갖고 지식과 신앙을 겸비한 일꾼으로 자라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 제 부탁이에요. 앨빈 토플러가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 Technology) 이런 분야를 잘 융합해서 제 3의 신기술 분야로 잘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조직적인 형태를 High Choice System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전문 전공 지식의 “High Tech”한 능력과 신앙을 통한 열정, 비전 등의 “High Touch”한 부분을 잘 융합(fusion)시켜서 마침내 코스타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High Choice System”으로 발전했으면 하고, 이 믿음을 기초로 한 High Choice System이 곧 지속적인 발전개념의 신앙 공동체요, 또 새로운 개념의 21세기 교회운동(movement)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이것이 코스타가 진정으로 추구해 볼 만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리더십의 비전과 목표를 위해서 코스타에 와서 제가 늘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을 위해서 필요한 교수 교직원 인력을 리쿠르트하고 상담하고 준비시키고 또 비전을 주고 하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임무이고, 특히 여기서 만난 분들의 여러 가지 애로 사항과 학습 전공 분야를 잘 파악하면서 학교의 커리큘럼이라든가 신설 학과 개설, 또 새로운 교수 인력들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계획도 세우고 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위한 비전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왔는데, 처음부터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제시해서 어떻게 준비한다기 보다는 하나의 뉴스를 전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이라는 큰길에 있어서 앞으로 북한사회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동기(motivation)를 전하려고 왔습니다.


특히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연변과학기술대학과는 달리 “남북관계”라는 문제가 있고 국제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며 특히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또 중국, 일본 한국과의 국제 외교와 관련된 지정학적인 미묘한 관계같은 것들이 중첩되는 현실이 있어요. 평양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지식 산업 복합체 형태로 운영할 터인데, 그 점에서 우리가 평양 프로젝트를 어떠한 인력으로 어떻게 기획·준비하고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새로운 원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인이라든가 벤처 그리고 신기술 전문 집단들과 학문이 어떻게 잘 조화되어 나가야 할 것인지를 기획하고 모색하는 기초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뉴스로만 전하고 내년 17회 코스타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의 커리큘럼과 그에 따른 필요한 인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상담하고 리쿠르트할 작정입니다.


eKOSTA 아직 구체적인 전공이나 핵심분야 등은 계획이 안 나온 것인가요?


이승률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어떤 큰 하나의 계획으로서 전체 커리큘럼의 40% 정도로 IT 분야 학과개설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BT 분야가 25 %, 그 다음에 MBA 분야가 25 %, 그리고 기타 부문을 10% 정도 계획하고 있구요. 기타라 함은 외국어 교육을 포함한 교양학과 개설입니다. 그래서 IT가 중심이 되면서 BT와 MBA를 겸하며 국제사회에 필요한 교양과 언어학습 능력을 길러 나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육 커리큘럼을 정할 거에요. 그리고 그에 따른 세부적인 전문학과나 학습 내용은 KAIST같은 연구 중심 대학을 하나의 모델로 해서 대학원 과정, 북한에서는 이것을 박사원 과정이라고 하는데, 이 박사원 과정을 먼저 신설해서 2003년 3월 학기에 1단계 개교를 할 예정이고, 이 박사원 과정과 함께 한국이나 미국, 혹은 유럽에 있는 신기술 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함께 합류(join)를 해서 지식 산업 복합체 형태로 운영을 함으로써 북한의 유수대학 출신의 청년 인력들을 동참시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산업활동을 경험하게 하고, 거기서 경영과 무역에 대한 부문, 국제 시장경제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도록 돕고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에요. 초기에 우수 인력을 박사원 과정으로 유입을 해야 되는데, 여기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졸업생들과, 또는 KCC(조선컴퓨터센터), PIC(평양정보센터)에 있는 인력들을 먼저 리쿠르트 해서 초기 학생층을 이루고 후에 계속해서 박사원 과정을 진행하면서 학부를 신설하고 기초 인력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연구 중심 대학으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운영하려는 계획입니다.


eKOSTA 지금 현재의 계획에 의하면 연변 과학기술대학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은 학부 중심이고 “교수”(敎授, teaching) 중심인데 반하여,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정보-산업기술-대학원과정의 복합체로서의 시너지(synergy)를 예상하는 “연구”산업 중심의 학교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승률 예, 맞아요. 산학협력 복합체 형태로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고, 사실 그것이 북한 사회에 가장 긴요하고 절실히 필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생산 수단이 되고 창조적인 사회구조의 기본을 이루는 생산 활동이 되기 때문에 북한을 변화시키는 좋은 모델이 되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과 같은 지식 산업 복합체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중국과 접한 신의주, 그리고 한국과 가까운 개성공단, 일본에 근접한 원산 공업단지, 또 러시아와 UNDP지역에 인접한 라진 선봉같은 특정 지역에 이와 같은 지식기술 복합단지가 형성이 되고, 창의성 있는 신기술 산업활동이 전개되면 그것이 곧 북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upgrade) 하면서 새로운 남북간 지식산업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길이 되지 않겠어요? 평양정보과기대가 이와 같은 한반도 지식산업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개척자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KOSTA 몇 년 전까지 라진과학기술대학을 세우려고 추진하며 그곳에 유치원 같은 것도 이미 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project)가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로 바뀐 건가요? 아니면 라진과학기술대학과 병행하는 독립적인 프로젝트인가요?


이승률 원래 96년도 말에 라진과학기술대학을 북한이 승인을 해 주었고, 한국정부도 97년도에 승인해 주어서 양국 정부가 공히 라진과학기술대학을 설립 허가를 했는데, 부득이한 상황의 변화로 2년 반 동안 유보되어 있다가, 지난 1월 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해 포동 지구를 다녀와서 신기술 첨단 산업의 발전상을 보고, 북한도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 아래, 과거 96년도에 라진과학기술대학 설립을 허가했던 것을 근거로 하여 위치를 평양으로 옮겨서 연구중심의 과학기술대학을 세워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청이었어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은 학부교육부터 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박사원 과정을 하면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식-기술-산업” 복합체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하는 차원에서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과거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가 평양으로 옮겨진 것이 기정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도 나중에 필요가 있게 되면 그대로 부활을 시켜서 그 지역에도 과학기술대학을 중심으로 산업을 일으킬 계획으로, 지금 현재는 유보되어 있는 상태지요.


eKOSTA 내년에 구체적인 홍보와 교수임용 계획이 있겠지만 관심있는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전 작업 준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이승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 참여하고 싶은 우리 코스탄들은, 곧바로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공산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여러 가지 생활을 하는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나는 보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먼저 지원해서 그것을 통해 조선족 사회나, 사회주의 체제하의 상황이라든가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그 쪽 지역의 여러 가지 교육현황 등을 실질적으로 체험한 후에, 거기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서 필요한 커리큘럼과 임용 계획에 따라 학교와 협의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하나의 방법이 되겠고, 또 한 가지 방법은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연변과학기술대학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것 같으니, 지식산업 복합체에 합당한 생산성을 바로 유발해 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교수(teaching)만을 하러 들어갈 것만이 아니라 기업체의 한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도 있겠죠. 그보다 더 특별한 전문성과 학력, 자격증(licence)을 갖추고 있다면 그런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나 외국인들도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박사원 과정에 합당한 일꾼들은 나중에 지식산업 복합형태의 인력으로 학교와 산업, 컨설턴트(consultant)라든가, 여러 가지 조력자(assistant)로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가 연구하고 가르칠 분야의 현지 실정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되고, 또 장기적으로 혹은 단기적으로 갈 것인지의 스케줄(schedule) 문제도 있을 것이고, 가족과 함께인지, 아니면 개인만 들어갈 것인지 하는 가족생활계획의 문제도 매우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내년 코스타에서 구체적으로 사례를 제시할 것입니다.


참고로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착공하고 나서 박사원 1단계 개교를 위한 교수임용계획을 구체화해 나가려고 하는데 그때 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상담을 하고, 관심을 갖고, 뉴스를 계속적으로 듣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따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한 사무실이 서울에 있어요. 서울사무실의 전화는 (02)561-2445이고 fax는 (02)566-1450입니다. 미국 LA에도 후원회 사무실이 있는데 연락처는 909-843-6327∼8, fax는909-843-6527입니다. 그리고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 학교당국의 연락처도 있습니다. 웹주소는 www.yust.edu이고, 전화번호는 86-433-291-2500, fax는 86-433-291-2510입니다. 저 개인의 이메일도 있으니까 이 코스타에서 만난 분들은 ban1117@chollian.net으로 저에게 자기 정보나 자료를 보내주시면 그것을 잘 정리하여 문서화해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담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자신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학교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코스탄들이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한반도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History Maker”가 되고 또한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제사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넘쳐나게 하는 “Peace Maker”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한 일꾼들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KOSTA 예, 장로님, 바쁘신 중에도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