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 보이지 않았던 선물

F2 이야기


보이지 않았던 선물


2년 여 전, 결혼과 남편의 유학으로 인해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 타문화권으로 옮겨와 새롭게 삶을 시작하던 그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또한 타의에 의해 나의 것은 모두 버려진 듯한 생각으로 꽤나 눈물을 흘렸던 그 날들….


미국에 온 지 한 2개월 쯤 흘러 교회 청년부 모임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년부의 한 자매와 원투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자매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는데, 그럼에도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주부’라는 점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QT 나눔을 하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눈 후 기도로 마치는 형태로 만남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낸 후 자매는 자신의 삶에서 기도 시간과 QT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을 그날의 QT 시간으로 정하여 함께 성경을 보고 의문점이나 느낀 점을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더 흘렀을 때 이웃에 살며 인사하고 지내던 K주부를 그 만남에 초청했다. K자매는 집에 있으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나면 그 당시엔 재미있는 것 같아도 헤어지면 허무함이 남는다면서 우리 모임을 자신도 함께 나누고 싶어했다. 이제 모임 인원이 3명이 되었다. 한 명이 더 늘어난 모임이 되니, 궁금한 것도 많아져서 다른 참고 자료도 찾게 되었고, 의미 파악이 어려운 개역성경 대신에 영어성경(NIV)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세 명의 인원은 곧 다섯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K주부를 통해서 P주부가, 나를 통해서는 E주부가 모임에 오게 된 것이다. 우리 모임에 두 명이 더 늘어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그동안은 처음 원투원했던 자매가 박사과정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자매의 스케줄과 동선을 최대한 줄여주는 배려로 학교 식당에서 모임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된 E주부는 한 살이 좀 넘은 딸 아이 하나가 있었고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함께 학교까지 가자고 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한 살 박이 아기가 식당에서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집으로 모임 장소를 변경하게 되었고 5명이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보다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그 대신 학생이었던 자매에게는 라이드(ride)를 해 주었다.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 된 E주부는 한국에서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아기 키우면서 아무런 사역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모임에 와서 신학적 견해나 성경배경 지식 등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맡음으로서 자신이 전공한 것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모임이 깊은 나눔과 성경공부로 채워져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우리가 식당에서 모이고 있을 당시, 우리를 쳐다보며 몇 번 인사하고 지나가기만 하던 H자매에게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그녀에 대한 선입관, 주로 그녀의 독특한 성격과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기를 초청했을 때 놀랍게도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모임에 꼭 오고 싶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무척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H주부도 교회 청년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대다수인 이 모임에서 쉽사리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어려웠고, 유학생의 아내로서만 사람들로부터 인식되는 것처럼 느꼈으며, 임원들은 모두 유학생인 그 모임에서 어쩐지 주부들은 소외 당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는 나를 ‘나’로 여겨주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같은 주부이기 때문에 관심사도 비슷하고 편하다고 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던 이 자매가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고, 선택의 순간 앞에서 기도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이 생겨났다. 지난 청년부 수련회에서 중보기도 시간에 이 자매와 나 사이에 생긴 일이 하나 있다. “난 언니가 우리 모임에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라는 나의 말에 딱딱하게만 보였던 그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와요. 하나님께서 자매를 귀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나같은 주부들을 위해 계속 섬겨 주세요”라고 했던 말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성경공부 모임으로 굳혀진 우리 모임의 인원은 2년 정도의 주기로 새로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때문에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10명 내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간의 나눔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모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인원을 2개조로 나누었다. 또한 2개조로 나누다 보니 리더십을 키워야 하는 문제도 함께 대두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임을 같이해 온 우리들 중에서 추천을 받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지만 모임을 같이 해 오면서 구성원들이 리더십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조는 K주부가 맡기로 하고 다른 한 조는 내가 맡기로 했다.


우리 모임은 금요일 아침 11시부터 모여서 한 조는 거실에서, 다른 한 조는 방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다 – 모임 인원이 적은 날은 함께 하기도 한다. 텍스트로는 영어성경을 사용하고, 관주와 표준새번역, 성경사전과 성경지도 등으로 정확한 뜻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함께 나눈다. 그 다음엔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한다. 요즘에는 성경 말씀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를 위해 책 나눔도 하고 있다. 한 장(chapter)씩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질문과 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돌아보고 문제를 내놓고 함께 기도하면서 가정을 조금씩 회복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책 나눔을 통해서 공부할 예정이다.


2시간 정도의 모임 후에는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한 식탁에 놓고 먹으며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다른 조에서는 어떤 나눔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얘기하는 교제 시간을 갖는다. 보통 3시 정도까지 두 시간 정도를 함께 나누다가 급한 일이 있거나 아이가 있는 자매들은 집으로 가고, 남는 사람들끼리 쇼핑을 하거나 커피숍에 가서 티타임(Tea-time)을 갖기도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너무 오랫 동안 시간을 갖는 게 아닌가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부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꼭 점심 시간을 포함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의미 있고 깊이 있는 나눔을 원한다. 이런 사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으며 위로 받고, 또 위로하고픈 역동적인 시간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있는 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특이한 점은 주부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내 주위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싱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여드는 건 주부들 뿐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많은 위로 받음과 편안함으로 왔다가 점점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부분 그들의 남편은 학생이거나 박사후 연구원이었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늘 학교 공부와 일에 바쁜 반면, 아내들은 한국에서는 그런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자신 있게 살아왔다가 너무나 조용한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삶을 살면서 정체성을 잃었던 것이었다. K주부는 1년을 울면서 한국에 가고 싶어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남편들이 잘 해 주어도 이 자매들의 눈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해서 그들을 회복시키셨다. 처음엔 자신들의 한풀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이곳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만 2년이 되는 이 모임은 그들의 남편들과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도 인식되어서,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모임에 나오는 주부들의 남편들은 집에서 아내에게 잘 해야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잘 못하면 곧바로 이 모임에 기도제목으로 나오기 때문이라나? 어쨌든 남편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우리 모임은 왜 이렇게 자라게 되었을까? 처음 나의 의도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대학 시절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시작한 원투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6개월 안에 모임의 크기가 커지고 내용도 성경공부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을 섬기려다 보니 성경도 여러 번 보게 되고, 기도도 더욱 하게 되고, 자료도 찾게 되고 모임의 필요에 더욱 민감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원하고 계셔서 우리를 모아 주신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난 주부 모임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니까. 난 단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은 어디에 없을까’란 생각만 잠시 했을 따름이었다.


며칠 전 창세기에서 요셉의 삶을 공부했다. 그때 우리들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외국에서의 삶과 더욱이 감옥에서도 ‘성실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잃지 않았던 요셉처럼 F2의 삶을 살아가자고 기도했다. 타의건 자의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옛것에 대한 미련을 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성실함’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요셉이 만 2년 이상을 감옥에 있었지만 그것도 요셉의 삶의 한 부분이듯이, 지금 집안 일로만 하루를 보내는 삶이건, 무언가 공부를 시작했건, 일을 하게 되었건 간에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 온 ‘삶’인 것이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서 안달하거나 속상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보라. 정말 자신도 꽤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느낄 것이다.


나는 우리 모임에 대한 나눔이 부디 미국에 살고 있는 유학생 부인들에게 힘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는 짝을 만날 수 있도록, 아니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모여 당신을 알고자 힘쓴다면 그 모임을 결코 찢으시거나 망치실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난 결혼한 지 2년 반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주부 모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늘 주님이 함께 하셔서 만들어 가실 것을 믿는다.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김혜진] 귀국을 앞두고

F2 이야기


귀국을 앞두고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간다. 학기 중이라 바쁜 남편은 물론 함께 못 들어가고, 오직 나만의 휴가를 갖게 된다. 겨울 내내 있다 오겠다고, 겨울옷 몇 벌 싸고 나니 어느새 거실에 놓여진 커다란 이민가방 두 개. 한국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비행기 티켓은 6개월간 오픈으로 끊었다. 신혼여행을 못 갔던 것은 물론이고, 1년 10개월 간 시카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던 나에게, 이번의 한국행은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는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에 계신 교수님께 직접 추천서를 받아서, 오랜 기간 질질 끌어 왔던 유학 준비를 좀 쉽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근 2년을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교수님께 도무지 미국에서 추천서를 요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나 마나 너 누구냐?라는 반응을 보이실 것이 예상되었으므로, 차라리 한국에 들어가서 부탁드리기로 작정했다. 이런 이유로 결심하게 된 한국행이지만, 이번 한국행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먼저, 나는 이번 한국행이 나의 무력감을 깨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학생 와이프 생활이 2년이 다 되어가는 근래에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함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 유학생 배우자의 단조로운 생활이야 기혼자 유학생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의 생활 패턴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생활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내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텐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변함 없는 나태한 신앙 생활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감정의 무너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지극히 조용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더 내버려 두면 영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는 나은 자아상을 가지고 있던 그 장소로 돌아가, 그 때를 기념하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맛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물론 새로운 멤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기는 하겠지만, 예전의 그 공동체를 다시 경험하고, 그 때 함께 하던 동기들과 잠시라도 다시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또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그 동안, 유학에 필요한 시험 준비들이 내가 내 자신을 위해 한 일의 전부라고 해야 할 듯. 결혼 이후에, 또 미국에서 철저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를, 그리고 결국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니, 애써 고민을 회피했다고 이야기해야 함이 맞을 것이다. 아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뭔가 하고 있다는 대리 만족감은 유학생 와이프 생활에서 오는 폐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 생활에서 오는 생활 자체의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하루 하루를 의미 없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학위는 남편이 따는 것이지만, 물론 그러한 남편을 잘 지원함으로서 돕는 것이 와이프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결국은 진보하고 있는 남편과 퇴보하는 자신을 비교하며 허탈해 하는 모습들을 빈번히 본다. 나 역시, 오직 남편의 진행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내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금 내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국 생활은 더 힘겨울 것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모처럼 갖게 된,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짧은 기간을 통해서, 나는 앞으로의 미국 생활을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고,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이끄는 삶으로 만들고 싶다.


또, 나는 한국에서의 몇 달을 통해서, 나의 무너져 있던 생활 습관이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또한 한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밤새 붙들고 있던 인터넷으로 인해 얻게 된 불면증은, 한국에서 가족들과의 생활을 통해 바로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늘 집안에만 갇혀 있느라고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도 기대해 본다. 언제부턴가 학교의 체육관은 유학생 배우자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용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나마 운동하던 기회를 박탈 당했던 것이고, 또 의지를 내어서 운동을 하지 않게 된 것인데, 결과는 체중은 늘었지만 체력은 떨어져 약간의 노동에도 쉽게 지쳐 떨어지는 상태. 의도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게 될 한국 생활이 내 생활 습관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지 않을까. 물처럼 들이켜고 있는 커피와 다이어트 콜라도 끊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이러한 나쁜 생활 습성들은 몇 번이고 돌이키려 노력했던 것이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들이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자신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자신의 습관에 대해서 때때로 그렇게 느낀다. 자신을 성결히 지키고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들에 사로 잡히고는 한다. 내 자신의 의지를 내어서 고치기 힘들었던 악한 습성들이, 한국에서의 생활로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기대하며, 더불어 소망하는 것은 내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할 시카고에서 어떤 관계들을 맺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편은 인터넷 중독의 후유증이라고 장난 삼아 말하고는 하지만, 나의 대인 관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주일마다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경계하는 나의 마음이 그들을 나와 삶을 나눌 동역자로 인정하기를 꺼려지게 한다. 공동체 안에서 회개에 대한 권면과 책망은 없이, 환대와 위로만을 이야기하는 청년회의 리더와 멤버들을 끊임 없이 정죄하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의지인 것 같다. 이제는 함께 해야 할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동체에 들어갈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에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모든 소망들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도하시기를 원하는 소망이 있다. 1년 10개월간, 경제적 어려움들과 생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감정의 기복들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밀려 있던 것을 회개하며 고백한다. 어쩌면, 전체적인 내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경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나의 나태함을 변명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묵상과 기도와 학습의 훈련을 통해, 나의 영적 성숙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내 안에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항상 의지를 내어 그 사실을 되새기지 않으면 나는 다시 환경 가운데 매몰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를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하고, 또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싶다. 아마도 졸업 이후 학사로서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들의 모습이 내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 보니, 마치 수련회에 들어가기 전에 쓰는 선언문 같다. 어쩌면, 이번 한국행은 나만의 작은 수련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강사도 없고, 함께 기도하는 무리들도 없지만, 그 어느 수련회 때보다 커다란 소망과 기도를 품고 간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어 주실 것이다.

[김혜진] 유학생 배우자의 소고

F2 이야기


유학생 배우자의 소고


열시 쯤 연구실로 출근하는 유학생 남편에게 맞추어 아홉시 쯤 기상.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나서 점심식사 준비. 열두시 쯤 칼같이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는 남편과 점심식사. 주섬 주섬 설겆이와 청소를 마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스런 미국 토크쇼 두 개를 보고 나면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 여섯시 삼십분에 수업을 들어가는 남편을 보낸 후에, 한국 TV의 드라마 몇 편을 보면서 집안 일을 하고 있노라면 남편이 돌아온다. 그날의 수업 내용을 리뷰하는 남편 옆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한국의 소식을 접한다. 가끔 괜찮은 레서피도 다운 받고, 여러 개의 사이버 카페에 들러 수다를 떤다. 그리고 한 시 쯤 잠자리에 든다. 일주일에 두어 번 근처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무료 영어수업을 받는 걸 제외하곤, 매일 매일이 동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없다면, 대부분의 유학생 배우자들의 사는 모습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간혹 남편의 도시락을 쌀 때도 있고, 남편이 일찍 출근한다면 같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드물게는 남편과 함께 학위를 밟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와이프들은 요리와 TV 시청, 인터넷과 함께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이런 생활 이면에도 갈등과 문화적 충격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학생인 남편을 향한 배우자의 배려 속에서, 때로는 피곤한 남편의 외면 속에서, 이러한 갈등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날이 갈수록 증폭되기도 한다. 훈련과 사역의 장에 가정의 영역이 포함되는 것이라면, 유학생들과 같이하는 유학생 와이프들의 삶과 생각이 그 장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다음의 글에서, 유학생 와이프로서 가지고 있는 나의 갈등과 불만들, 문화적 충격 등을 나누고 싶다.


1. OO 씨 와이프, 내 이름은 어디로?


결혼과 동시에 나의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학 졸업식도 전에 결혼한 나로서는, 이런 풍토에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민) 교회에 가니 부인 성을 남편 성과 갈아 치우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사실. 다른 곳도 아닌 한국 교회에서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살려고, 진학도 직장도 고려치 않고 유학생인 남편과 결혼한 내게, 내 남자의 와이프로서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억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누구 누구에게 얹혀 사는 누구’라는 인상을 주는, 씨 와이프, 이 호칭이 전혀 달갑지 않다. 배우자는 달랑 이름과 생년월일만 기재하게 되어 있는 KOSTA 신청서를 받고 나서, 내년에는 내 이름으로 신청한다고 남편을 달달 볶던 일이 생각난다. 내게도 관심 영역이 있고, 전공이 있고, 훈련받은 공동체가 있는데, KOSTA 역시 배우자는 유학생에게 얹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싶어서 두고 두고 서운했다. 물론 배우자들을 배려해서 통곡의 방까지 운영하는 KOSTA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김혜진이라는 개인에게 관심이 없는 듯한, 교회 공동체나 유학생 공동체에 나 역시 관심을 갖게 될 리가 없다. 남편 때문에 시카고로 오게 된 것, 남편이 다니는 교회에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다니게 된 것, 내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었던 것마저 억울한데 말이야.


2. 영어, Culture Shock의 시작


남편의 학교는 흑인 주거지역인 시카고 남부에 위치해 있다. 인적이 드물어 조용한 학교 도서관 안. 이 학교는 어떻게 된 건지 도서관에 사람이 없다. 갑자기 접근하는 흑인 아이 두 명. 영어로 말을 걸어온다. 이웃집 아줌마는, 이런 경우 무조건 내 빼라고 하였지만, 나, 영문학 전공자다. 내 비록 영어는 서툴지라도, 다가오는 도전(challenge)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곰곰히 뭐라고 하나 귀 기울여 듣는다. 돈을 달라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아이들 표정이 험상궂다.



헤이, 레이디, 나 너의 태도가 맘에 안들어!


이쯤 되면 도망갈 채비를 한다. 아무래도 “돈을 좀 주세요”가 아니라 “돈 내놔!”였었나보다. 사전과 책을 주섬 주섬 챙기는데, 진땀이 흘러 손이 더디다.



어쭈? 도망가려고?


끝까지 날 협박하는 지긋지긋한 아이들. 더 험한 꼴은 안 당하고 빠져 나왔지만, 옆에 다른 인도인 남자도 있었는데, 내게 접근한 이 흑인 아이들이 어처구니없다. 동양여자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소리도 못 지르고 도망갈 생각만 한 나도 참 담력이 없다.


그 후론 한 동안 영어가 싫었다! 텔레 마켓팅으로 걸려오는 전화도, 가끔 찾아가야 하는 하우징 오피스의 아줌마도, 무료 ESL 코스의 사무실 직원도, 길을 묻는 아랍인도, 마주하기 싫었다. 영어로 따라가는 수업이 고달프다는 남편들의 한숨은 오히려 사치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요즘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이곳의 유학생 와이프들은 그냥 숨 안 쉬고 산다. 날마다 무능해지며 작아지는 자신을 느낀다.


3. 예기치 않은 Culture Shock, 한국인 유학생 커뮤니티


72년생인 남편은 유학 4년차이다. 하지만, 불과 일년 전만 해도 과 한인 학생회에서는 막내였다. 아무리 막내라고 해도, 나에게는 하늘같은 남편인데, 이것 저것 시키는 과 선배들의 태도는 참을 수가 없었다. 반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불러내는 것은 물론, 꼭 하기 싫은 일들은 나이 어린 사람을 시킨다. 한국인 유학생들이야 늘상 겪는 일이기에, 구태여 내가 길게 이야기 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유학생 와이프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있다는 것.


76년생인 내가 미국에 왔을 때, 만 23세였던 나는 명실상부한 막내였다. 막내라고 귀여움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이가 어리다고 그토록 무시를 당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이가 어린데 결혼부터 덜컥 했다고 생각없는 아이라고 무시함, 직장 경력이 없다고 무시함, 공부를 하고 싶다니까 어려울 거라고, 철이 없어서 그런다고 무시함, 요리를 못 한다고 무시함, 아이를 돌볼 줄 모른다고 무시함. 한국에서 그래도 전문직에 있던 사람들이 남편 때문에 이 곳에 오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그 스트레스를 다 푸는 것은 아닌지. 여자 싱글 유학생 역시 와이프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이다. 그럴 때는 자신들이 결혼했다는 사실이 큰 자랑이 된다.


며칠 지나니 모임의 맏이쯤 되는 한 언니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유학 온 남편의 졸업이 예상보다 한참 늦어지게 된 것. 또 한 언니가 안 보였다. 남편이 박사과정 자격시험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진 것. 유학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들도 그렇겠지만, 남편들 때문에 와이프들 역시 맘 졸이고 몸 상하며, 와이프들 사이에서의 눈길에 민감해진다. 지난 학기 남편이 석사 디펜스 했을때, 나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


얼마 전, 자주 들리는 유학준비 사이트에 유학생 와이프들을 위한 게시판이 생겼다. 고달픔을 토로하는 유학생 와이프들과, 정신과 상담이나 받으라는 싱글 여학생들과, 와이프들의 글에 불만이 가득한 남성 유학생들의 글로 연일 싸움판을 방불케 한다. 정녕, 해결책은 없는 걸까?


4. 네 이웃을 사랑하라구요?


남편이 다니는 학교는 유독 인도인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도 열 두 가구 중 여덟 가구가 인도인들이다.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이웃집에 세 명의 인도 처자들이 이사왔다. 인도인들이 가까이 살 경우, 그네들 집에서 나오는 솜털 먼지가 복도를 돌아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것은 예사이고, 때때로 그 집의 바퀴벌레 등의 설치류들이 침입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자들이 이사를 왔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러던 며칠 후, 건장한 인도인 남자 두 명이 큰 트렁크를 들고 그 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키 작은 인도인이 학기 내내 열쇠가 없어 그 집 문을 두드려 누군가가 열어주길 기다리는 걸 보게 된다. 도대체 이 집에는 몇명의 남녀가 동거하는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워낙에 지저분하기로 소문난 인도인들이지만, 더욱 분개하는 것은 그들이 너무나도 불친절하다는 것. 미국인들에게 무시 당하는 것 역시 억울한데, 학교 편의점에서 일하는 인도인 직원은 거스름돈을 잘못 주고도 상대편 잘못이라고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다. 남편이 들어가는 수업의 TA 역시 인도인인데, 질문에 불친절하게 대답했다가 교수에게 보낸 남편의 이메일로 단번에 수그러들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 아니 영어를 못하는 자에게는 강한 척 하는 그들, 포용하기 힘들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인도인들도 있다. 유학생 와이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인도인 여성이 한 명 있는데, 이 사람은 늘 자기는 다른 인도인들과 다르다는 것을 강조한다.


문화에서 오는 다른 점들을 극복하고, 각각의 문화와 사람들로부터 장점들을 배워야 외국 생활의 잇점들을 진정으로 누렸다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러한 이웃사촌들과 같은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꺼려지니 어쩌면 좋을까. 수업에서 이들과 부대끼는 남편들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웃을 사랑하기란 뼈를 깎는 고통이다.


5. 무인도에서 표류하기


유학생 와이프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무인도에서의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공동체의 소중함. 대학시절을 부대낀 공동체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15년을 동고동락한 지역교회의 동기들과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다가올 줄 알지 못했다. 어학연수 때문에 일년 간 떨어져 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외로움. 언제 돌아갈 지 모르고, 갈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삶.


무인도에서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가? 물론, 이전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큐티시간은 얼마나 감미로우며, 혼자 드리는 찬양의 재미는 또 어떤가. 내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가끔은 공동체 안에서의 사역이나 내 신앙에 대해 깊이 점검할 수 있는 값진 시간들. 내게도 광야가 필요해! 하고 절절히 외쳤던 때도 있었으니. 그러나, 신앙생활은 역시 무리지어서 할 일인 것 같다. 대학시절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큐티를 나누고, 기도 모임을 갖고, 후배들 때문에 울어도 보고, 그 때처럼 열심히 성경 연구를 할 수는 없겠지만, 세워 주고 세움 받는 공동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격려받는 공동체, 정말로 필요한 것 같다. 오랜 광야 생활, 무인도 생활 속에서, 나와 같은 일반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때로는 잘못된 생각과 상상력을 쌓아간다.


문제는 어떻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것인가이다. 여러 군데 찾을 것 없이, 지금 속한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일이겠지만, 한인 교회에서도 내가 설 곳은 없다. 교회 청년회의 사역 대상은 분명 유학생이며, 유학생 와이프는 인원을 채우기 위한 덤일 뿐이다. 하긴, 교회 전체적으로 보면 유학생이 사역 대상인 것도 절대 아니다. 그저 궂은 일을 시키기 위한 일꾼들일 뿐. 어쨌거나 이름뿐이라도 유학생들을 위한 청년회가 존재하는 반면, 그것들도 싱글인 학생들을 위한 청년회이며, 더군다나 유학생 와이프들은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의 결과로 참여하기는 하지만 내 공동체로 삼기에는 이질감을 느끼는 그런 청년회이다.


내가 아는 것은 시카고에서의 상황뿐이다. 한국의 대학 선교단체에서 수년 간 간사를 하신 분(역시 유학생 와이프)도 소그룹 시작하기를 어려워하는 곳이 시카고라고 하니, 간혹 유학생 와이프들이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 지역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어떻게 그러한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6. 남편은 화성인, 난 금성인


신혼부부에게는 누구나 깨어질 환상이 있다. 사랑만 있으면 서로의 어떤 부족한 점도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던 시절은 금방 지나간다. 2년 여를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으며, 대학에서의 성 관련 수업과 각종 데이트와 결혼에 관련된 서적, 남성과 여성 심리, 가정생활에 관한 서적으로 무장을 하고 결혼했던 우리 부부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열린 도은미 사모님의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남편의 노력과, 여러 가지 좋은 책들을 함께 읽은 결과로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유학생 사회를 보면, 유독 특별하게 결혼한 부부들이 많다. 많은 유학생들이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 있다 보니, 선이나 소개팅을 통해서 한 두달 사이에 급속으로 결혼을 진행시킨 경우가 잦다. 이런 경우에, 서로의 단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되고, 이것이 고달픈 유학생활과 더불어 냉담한 부부관계로 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꼭 유학생 부부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유학생 부부에게 더 큰 문제가 되기도 하는 이유는 남편은 시간이 없기 때문. 가령 아버지 학교가 모 교회에서 열린다고 하자. 금, 토, 일요일에 있는 이 학교에 꿈같은 주말을 할애할 유학생 남편들이 얼마나 될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부부가 같이 딱 한 번만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어 권하면, 와이프들은 그것에 호의적인 반면, 공부하는 남편들은 학업 외의 또다른 책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와이프나 남편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무뎌지고, 포기할 때까지 그들의 서로에 대한 불만은 쌓여만 간다.


1999년 전공별 모임을 잊지 못한다. <여성학>이라는 이름 하에 모인, 유학생 남편으로 인해 상처받은 많은 와이프들. 아무런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자신의 하던 일도 버리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아이들 기르며 고생하는, 때로는 한국에서 방문, 유학오는 다른 가족들까지 수발해야 하는 와이프들에게 불만이 없을 리 없다. 2000년 KOSTA에서는 참으로 좋은 부부관련 세미나들이 열렸는데, 안타깝게도 참여가 저조했다고 들었다. 그 이유가 남편들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근거없는 내 생각일까?


주변을 보건대, 많은 유학생 와이프들이 ‘이러한 고민들은 시간이 해결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랜 유학생 와이프 생활 끝에 고민과 긴장에 대해 무뎌지고, 익숙해지며 포기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유학생 와이프들의 문제 해결은 자신의 노력 뿐만 아니라, 유학생 남편들의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유학 사회 안에 제대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유학생 와이프들의 정체성 회복, 가정 안에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인식, 그들의 잠재력을 하나님께 헌신된 사역으로의 인도하기 위한 대안이 기독 유학인 사회 안에서 고민되어져야 한다.


유학생 배우자로 2년을 채 살지 않은 나의 경험들이, 모든 유학생 배우자들의 경험을 대표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글을 통해서 다른 선후배 유학생 배우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tmKOSTA의 F2/배우자를 위한 웹 보드를 활용하여, 안으로 숨겨져 있던 문제들을 고민하고 나누면서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역시 기대하는 것은, 이런 열려 있는 공간을 통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배 배우자들의 모범을 접할 수 있으리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