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호] 제 5 떡 – 광야의 축복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


크리스천으로서 만나의 체험이 있는가? 하늘에서 공급되는 광야의 떡, 만나…… 떡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만나를 알 필요가 있다. 만나를 알기 위해서는 광야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광야 체험은 반드시 홍해 체험에 이어서 따라온다.


우리 가족이 미국과 한국에서의 삶을 접고, 중국으로 들어간 사건은 적어도 우리 부부에겐 영원히 기억되며 자손들에게 들려줄만큼 깊고 생생한 홍해바다의 체험이었다. 그러나 홍해 바다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듯이 과연 우리의 믿음이 홍해를 건널만한 믿음이었는가 반문해 본다면 그렇지 않았음을 곧 깨닫는다. 10년전의 그 결단을 두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부부의 믿음에 탄복하며 더러는 칭찬한다. 그 당시 반대하고 이해 못하던 가족과 선후배들 조차 이제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임을 인정하고 심지어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당시의 연약했던 믿음으로 어떻게 그 홍해를 건넜는지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그같은 칭찬을 들을만한 사람도 아니며 그런 믿음을 가진 적도 없음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히 11:29h)”다고 기록하지만, 그 사건의 경위를 자세히 미루어 살피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수시로 모세를 두고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갈 것?요구하던 그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을 강제로 등 떠밀어,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무섭게 쫓아오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막힌 절체절명의 순간을 연출한 후에, 어쩔 수 없이 건너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세월이 지난 후에 오히려 슬쩍 “너희가 믿음으로 홍해를 건넜다”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다. 자식을 세워주는 부모의 마음이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 깊이 물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돌려 애굽을 떠나도록 하는 것은 바로의 마음을 돌리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애굽에 내려진 12가지 재앙은 비단 바로의 마음을 두렵게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떠나도록 허락하기 위한 것 뿐아니라 함께 그것을 목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죄와 욕심에 깊이 물든 인간들이 자기가 누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베데스다 연못가 행각 아래 들어누워 동냥으로 살아가던 삼십팔년된 병자는 죄와 죽음의 족쇄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전형적인 표상이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낫고자 하는 노력도 소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노예적 근성에 물든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자리는 최소한 자신들이 먹어야할 끼니를 제공하고 비를 피할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안전한 장소처럼 느껴졌고 오랜 습관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그곳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이미 죽을 수 밖에 없는 심각한 병에 걸린 병자라는 사실은 일상 속에서 잊혀진지 오래다. 요행히 물이 동할 때 먼저 연못에 들어감으로 병이 나을 수 있다는 속설은 그들이 베데스다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구실에 불과했다. 따라서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삼십팔년된 병자에게는 자신이 병을 고치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연못에 들어감으로 자신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체념이 그를 묶어두고 있었다. 오직 그의 관심은 그 자리를 고수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할 떡을 구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이 상황 속에서 그가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들고 벌떡 일어나는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예수를 만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를 만나는 체험, 그것은 바로(Pharaoh)의 통치와 바알(Baal)의 노예로 살아가던 자들에게 임하는 해방 선언이다. 떡의 노예로 살아가던 자들을 향해 외치는, 자유인으로의 부르심이다. 유월절 어린양의 흘린 피를 통해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너머선 후,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 은혜의 체험이다. 아직 자유인이 되기에 불충분하며 부자격하며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오직 예수의 피로 자유인으로 법적 선언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홍해 바다는 십자가 안에서 누리는 일회적인 구속의 사건일 뿐아니라 앞으로 지속적으로 임할 광야 생활에 대한 시작의 종소리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적인 자유를 너머서서 생활 속의 자유인이 되는 것은 지속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광야 생활, 그 특별한 체험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배워간다. 떡으로부터의 자유…… 그것은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떡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자녀들이 누릴 권리이기 때문이다.


우상이 되어버린 떡에는 힘이 있다. 떡이 우상이 되면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인간은 떡에 예속된 노예로 전락한다. 주종관계가 뒤바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떡을 숭배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떡은 단순한 물질을 너머 인격적, 영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예수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했을 때 사용한 단어가 그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물신(物神) 맘몬(Mammon)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떡은 더 이상 경제적인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고 조정하고 또한 파멸로 인도하는 영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 이외의 피조물에게 속박을 느끼는 순간부터 자유를 갈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온 자유의 영을 받아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다루어 왔다. 어떻게 떡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인가? 떡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으로 불가(佛家)에서는 무소유(無所有)를, 도가(道家)에서는 무위(無爲)을 이야기한다. 떡을 외면하든지 떡을 무시함으로써 떡을 초극(超克)하고자 하는 것이다. 전자가 적극적 도피라면 후자는 소극적 도피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은 다르다. 떡은 경계의 대상도 경시의 대상도 아니다. 떡은 떡일 뿐이다. 떡은 떡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지닌 피조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홍해를 향해 떠나라 하는 것이다.



(2)


해방의 기쁨은 잠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광야가 펼쳐진다. 광야는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오고 곧바로 모세를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발하게 된다. 차라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 회상하기 시작한다. 비록 노예생활이었지만 애굽의 고기가마 옆에서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던 기억이 나는 것이다. 그들의 원망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영광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의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도저히 광야에서 기대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아침마다 만나를 내리시는 것이다.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 진주처럼 빛나며 꿀처럼 달콤한 그 만나를 처음 대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어떻했을까? 만나는 단순한 일용할 양식 그 이정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나타내는 세미한 음성이요 속삭임이었다. 너는 내 것이라… 내 백성이라… 이제 내가 너를 먹이고 돌볼 것이다 하며 어루만지시는 임마누엘의 체험이었다.


중국으로 가기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마침내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평소에 우리 가족을 아껴주던 한 여집사님이 집을 찾아왔다. 아이와 아내를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해주던 그녀는 일어나면서 하얀 헌금 봉투를 내놓았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나는 그 봉투를 받아들고 일 순간 무척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분의 고마운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한편으론 야릇하게 마음이 상했다. 마치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추어두었던 남에게 보이기 싫은 치부가 들어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누군가 건드려서는 안될 내 자존심을 건드린 것 같은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예민한 아내 역시 그 느낌을 받았는지 집사님이 집을 떠나자마자 곧 울음을 터뜨렸다. 서럽게 엉엉 우는 아내를 안아주며 토닥거려 달래는 동안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갈 인생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지를……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와 내 아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믿고 살아가던 그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벌어서 먹고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그 땅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아내의 울음 앞에서 초라해지고 상실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그 순간 어디에선가 은은하게 내면의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진호야, 많이 아프냐?”
내가 아내를 달래며 어루만지는 그 손길로 하나님이 나를 만지고 계셨다.
“그 자존심, 네가 빼앗기기 싫어하는 그 자존심도 이제 나를 위해 내려 놓아라.”
그리고 출렁이는 감동으로 위로의 성령님이 찾아오셨다.
“아무 염려하지 말아라. 이제 앞으로는 내가 너희를 책임지겠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난 10년간 신실하게 지키셨다. 그 신실한 하나님을 체험했기에 이제는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10년이 두렵지 않다. 연변과기대의 모든 재정은 전 세계에 흩어진 동역자들의 후원에 의해 이루어진다. 해외에서 들어간 교직원 역시 자원봉사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연변과기대의 교직원들은 반드시 자신의 가정을 후원할 후원자들을 스스로 확보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른이 너머 늦깍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탓에, 교회 배경도 별로 없고 동역자를 구하기도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처음 작정하고 기도했던 만큼의 후원자를 정확히 붙여주셨다. 더러는 세월이 지나남에 따라 열정이 식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기억속에서 잊혀져간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 그만큼 새로운 단체와 개인들을 붙여주셔서 항상 우리가 필요한 만큼의 물질로 채워주셨다. 북경의 한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나서 사귀게된 L박사님은 우리 가정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 주었다. 초창기 연변과기대의 재정상황은 아직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우리 가정의 후원계정을 통해 학과 살림을 운영해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내 자신 역시 내 구좌에 잔고가 남아있는 한 그것을 어떤 모양이든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공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재정보다는 개인 재정을 써서 활동하는 일이 더 많았다. 그 당시는 항상 마음 속에 넘치는 은혜가 있었기에 풍성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학교일로 출장을 가도 내 구좌에 돈이 남아있는 한 으례 자비로 다녔고, 주말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먹이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했고 항상 감사했다.


삼년 후, 하나님의 뜻에 의해 한동대에서 연구년을 가질 때, 한국에 IMF 사태가 터졌다. 나는 마침 한국서 월급을 받게 되어 그 어려움을 무사히 통과했지만 중국에 남아있는 동역자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별히 한국에서 건너간 가정들은 후원이 끊기고 대폭 삭감되었다. 그들의 어려움을 전해들은 나는 어려운 가정 한 가정을 택하여 익명으로 조금씩 돕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질적 도움 이전에 한 몸을 이룬 지체와 동역자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기 위한 내 마음의 표시였다. 그러던 중 우리 가정도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가정의 재정 상태도 악화되었다. 어느 달은 마침내 (-) 밸런스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러자 먼저 떠오른 것이 우리 가정도 이렇듯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도울 형편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후원회에 연락을 하여 그 가정 돕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더 답답하고 불편했다. 이 작은 어려움에 쉽사리 흔들리는 내 자신의 믿음없음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며칠을 기도하는 가운데 다시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믿음으로 다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후원회에 재차 연락하여 그 가정 돕는 것을 계속하겠다고 부탁했다. 그러자 다시 평화와 기쁨이 밀려왔다. 그것이 바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달부터 우리 가정의 재정은 신속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매년 돌아가면서 한 가정씩 돕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중국에 오기 전에는 대학 강의와 개인 렛슨으로 항상 자신이 번 돈을 충족히 가지고 살아가던 아내가 중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겪어야 했던 어려움 중 하나가 재정문제였다. 이제는 항상 모든 재정을 남편에게 의존적으로 타서 생활할 뿐 아니라 그나마도 항상 부담감을 가지고 물건을 사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하기사 그 당시 연길의 백화점에서 무엇 하나 사려고 해도 살만한 물건도 없었지만, 미국과 한국서 자기가 벌어서 원하는대로 쇼핑을 하고 지내던 그녀에게는 그 생활이 여간 답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제대로 발휘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자신이 받고 있는 렛슨이 얼마나 값비싸고 소중한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더러는 약속 시간을 안지키고 빼먹거나 하면, 아내는 집에 돌아와 공연히 나에게 종알대곤 했다. “이 녀석들이 도대체 뭘 몰라도 한참 몰라. 미국서 한 타임 렛슨에 백불씩 받던 그 비싼 렛슨을 자기 맘대로 빼먹고…”
그러나, 기특한 것은 지난 10년간 더러는 힘들어 해 가면서도 그 공짜 렛슨을 한번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제자들을 키워냈다는 것이다. 아내에게도 홍해를 건널 때 자신이 받았던 은혜가 얼마나 컸던지, 만나는 모아두어서는 않된다는 점과 거저받은 것을 거져 주어야한다는 광야생활의 원칙만은 분명히 서 있었던 것 같다. 오직 그날 먹을 양식을 그날 공급해주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훈련, 광야의 만나는 우리 부부의 물질관을 서서히 바꾸어가고 있었다.



(3)


모든 종교에서 출가(出家)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소명(召命)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출가와 성경에 나타난 출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불교의 출가가 세상의 모든 명예와 소유와 욕심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는 것이라면, 성경에서 출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유를 지닌 채 떠난다. 어디 그 뿐이랴? 싯달타는 왕자의 지위와 처자를 모두 버리고 속칭 속세의 인연을 모두 끊고 집을 나섰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소유뿐 아니라 아내와 조카까지 데리고 집을 나선다. 불교의 출가가 속(俗)을 버리고 성(聖)을 취하는 것이라면,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적 출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삶의 방식과 거처를 옮길 수는 있어도 성속(聖俗)의 구분이 있을 수는 없다.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 그물과 배를 버려두고 떠나는 장면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시는 소명 앞에서 자신의 삶의 방식을 전환한 것이지 세상을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불교적 출가와 동일시 할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도 사역 현장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음을 기억하라.(고전 9:5) 또한 예수가 제자도를 가르칠 때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고 하신 말씀이나, 누가복음 14장에서 부모, 처자, 형제, 자매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며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도 의미를 바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제자가 된다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그 모든 것 보다 복음이 우선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복음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없다는 말이다. 복음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떤 소유 가치도 생명가치 보다 앞설 수 없다는 예수님 특유의 강조적 어법이다. 예수의 가르침 속에는 가족과 소유를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라는 불교적 출가의 개념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소유를 인정하되 그 소유를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도록 생명 가치 앞에서 상대화 시키는 것이다.


떡을 의식적으로 물리적으로 멀리하는 불교식 출가라면 오히려 문제는 쉬워진다. 그러나 기독교의 출가는 떡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의 부르심이기에 더 어려운 것이다. 그곳에는 내가 스스로 취하는 떡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존하여 살 수 밖에 없는 광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비로소 떡으로부터의 자유케 되는 방법을 체험적으로 배워가게 된다. 그것도 한 두해가 아니라 사십년 간을 말이다.


떠나는 연습은 우리 인생에 항상 유익을 준다. 이사를 가건 이민을 가든 혹은 유학을 위해 새로운 소망을 품고 떠나든지 살아가던 거처를 한번씩 정리해 보는 것은 정말 필요하다. 묵은 삶의 찌꺼기와 먼지들을 털어내고 내가 진실로 가진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는 중간 점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혹은 있으나마나한 것들을 껴안고 살아왔는지를 알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시는 비전을 따라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그것은 마치 영원을 향해 장막을 옮기는 순간을 미리 약간 체험해 보는 것과도 같다. 세상적 물질 가치의 덧없음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소유를 초월한 존재의 세계로 발길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10년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들이 있다. “노후 대책은 어떻게 할거냐?”, “앞으로 자녀 교육은 어떻게 책임질거냐?” 그 질문들 앞에서 당황하며 두려움에 싸인 아내와 아이를 안쓰럽게 돌아보던 생각이 난다. 성령께서 담대한 용기를 주셔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사후대책이 다 마련된 사람인데 왜 자꾸 노후대책 노후대책 합니까?”라고 반문했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 마음 속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타고 다니던 차를 처분했다. 중국으로 이삿짐을 부치고 난 후 이튿날 아침, 텅빈 아파트에 기대어 앉아 세 가족이 서로의 얼굴을 물끄럼이 쳐다보던 때, 갑자기 밀어닥쳤던 상실감과 두려움을 잊을 수 없다. 마치 내 것인양 붙들고 살아오던 모든 것들을 청산하고 마침내 하나님의 손에 우리 가족의 전 존재를 의탁한 그런 기분이 드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 순간 우리가 떡의 문제를 초월한 사람들이었다면 마땅히 평온과 기쁨으로 충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를 개인적으로 친히 찾아오셔서 세미한 음성으로 위로 하셨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내 속에서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그 말씀이 우리 부부를 여러 가지 어려움과 폭풍우 속에서도 지난 10년간의 광야 생활에서 흔들림없이 지켜주었다. 자기 소유의 차 없이 집 없이 살아가는 연길의 삶 속에서 나그네의 자유함과 천국의 소망을 배웠다. 큰 아들 다니엘은 반듯하게 잘 자라 주었고, 보석 같은 둘째 아들 데이빗을 얻었다. 비록 세상적인 건강보험(health insuarance)은 없었어도 10년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물론 아직도 노후대책이 세워진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은 더욱 투터워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내리실 때, 약속하신 40년 광야생활에서 뿐아니라 요단강을 건너가서 첫 유월절을 지킨후 그 땅의 소산을 먹기까지 닷새간 더 만나로 먹이셨던 그 세밀하신 하나님을 묵상하며 끝까지 책임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아간다.(수 5:12)


광야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나는 축복의 통로이다. 하나님만 바라는 삶… 그 속에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떡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김영봉] “두렵도다 이곳이여!” — 성전과 일상 (1)

이코스타 2004년 2월

시작하는 말


내가 제일 거북하게 느끼는 묵도송(頌)이 있다. “주는 성전에 거하시니 주 앞에서 잠잠해.” 어느 교회에서든 흔히 들을 수 있는 묵도송이다. 한때 나는 이 묵도송을 좋아했다. 이 찬양을 들으면서 “주여, 제가 주 앞에 왔습니다. 저를 받아주소서”라고 기도하곤 했다. 예배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찬양이 또 있겠나 싶었다.


그런데 언젠가 문득 ‘이게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말씀을 생각한다면, 믿는 자들이 예배를 위해 함께 모인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더 충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배당 안에 들어오면 하나님께 가까이 오는 것이고, 예배당을 나가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따지고 보면, 의식적으로 그렇게 믿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예배당에 앉아 기도 드릴 때마다 내 마음은 “일 주일 동안 세상에서 헤매다가 이제야 아버지 앞에 왔습니다”라는 식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무의식중에 하나님이 계신 예배당과 하나님이 없는 세상을 나누어 생각했던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그렇거니’하고 살다가 언젠가 문득 정신이 든 것이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이 예배당 건물이 갇히실 리가 없지 않는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시 121:4), “너의 오른 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며”(시 121:5),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8)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말씀이 옳다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우리 오른편에 계시어 지켜 주신다. 그렇다면 왜 나는 예배당 안에 들어가 기도할 때마다, 마치 어린 아이가 하루 종일 바깥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 엄마 품에 안기는 것 같은 느낌을 가져왔는가? 물론, 그 느낌 자체는 나쁠 것이 없다. 예배당에 들어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안식을 느끼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문제는 그 다음이다. 예배당을 나와 집으로 향하면서 하나님 곁을 떠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것, 일 주일 동안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마치 주일에 하나님을 뵐 때까지 하나님 없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내가 어릴 적부터 배우며 자라온 교회 전통에 의해 길러진 의식이다. 중학생 때 교회에서 잊혀지니 않는 일을 겪었다. 한 겨울 어느 날이었다. 추운 몸을 녹이려고 교회 벽에 있는 스팀(‘라디에이터’가 정식 이름일 것이다)에 걸터앉아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장로님 한 분이 다가와 호통을 치셨다. 얼마나 심하게 혼이 났던지, 지금도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그분의 논지는 이러했다. “이 건물은 성전이야. 다른 건물과 달라.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집이란 말이야. 성전 안에 있는 물건은 모두 성물(聖物)이야. 거룩한 물건이란 말이야. 거룩한 물건을 함부로 하면 되겠어? 하나 하나 귀하게 다뤄야 해. 성물에 걸터앉는 법이 어디 있어?”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의 논리대로 하면 ‘성전’ 안에 있던 우리는 ‘성인'(聖人)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그 장로님도 성인인 우리를 그렇게 심하게 혼내면 안 되는 일이었다. 억지 논리를 펴자면, ‘속인’이 ‘성물’에 걸터앉으면 안되겠지만 ‘성인’이 ‘성물’에 걸터앉는 것이 뭐 잘못인가? 물론, 그것은 걸터앉으라고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니, 우리에게도 잘못은 있었다. 하지만 사춘기의 어린 영혼은 분명히 스팀보다 아니 예배당 건물 전체보다 훨씬 더 귀중하다. 그 장로님은 성물에만 생각이 갇히는 바람에 어린 영혼 하나가 얼마나 귀한지를 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와 비슷한 일들을 거듭 겪으면서 ‘예배당’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깊이 내 안에 각인되었고, 나는 여러 해 동안 그런 사고방식 속에서 세상과 성전을 오가며 살았다. 그 인식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것은 부끄럽게도 목사가 된 지 한 참 후의 일이었다. 늦게라도 눈을 뜬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다. 하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성전을 뚜렷이 갈라놓고 두 세계를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오해를 제거하는 책임이 목회자들에게 있건만, 실상은 목회자들이 이 오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학교 교수 시절, 나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목회자 세미나에 초청을 받을 때마다 이 문제를 역설했다.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제시하고, 예배당을 성전으로 오해했을 경우 생기는 신앙적 문제들을 설명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목회자들에게 있으니, 교인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런 과정 중에, 나는 내 호소가 외면당하는 것을 자주 느끼곤 했다. 목회자들의 반응은 대개 이러했다. ‘그렇게 가르치면 집회에 나오는 열심이 떨어집니다.’ ‘예배당을 짓자고 하면 헌신을 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짓자고 해야 헌금을 합니다.’ ‘성전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정성을 다합니다. 예배당이라고 하면 마음이 소홀해집니다.’


이해할 만하다. 목회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절박한 사정이 따로 있는 법이다. 그래서 목회자들은 자주 원론과 실천 사이의 거리감 때문에 고뇌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실천적 고려 때문에 성전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묵인해서는 안 된다. 교인들이 무조건 정성을 다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정성을 바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정성이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성전에 대한 잘못된 사고는 마침내 각 사람의 영성에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 시킨다. 그 치명적 해악을 제대로 인식해야만 ‘실천적인 유익’을 어느 정도 손해 보더라도 제대로 가르칠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례하여 성전에 대해 꽤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먼저, 예수님 이전까지 유대인들이 성전에 대해 어떻게 믿고 실천해 왔는지, 그 역사를 더듬어 볼 것이다. 배경에 따라, 이 역사 이야기를 지루하게 느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정도 참고 극복해 주기 바란다. 사안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1. 성전: 그 오해의 역사


“여기가 바로!”: 야곱의 성전


성전에 대한 오해의 역사는 매우 뿌리깊다.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이 처음으로 지었고, 솔로몬의 성전은 모세의 성막에 뿌리를 두고 있고, 모세의 성막은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제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경의 기록으로만 보면, 가인과 아벨이 처음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린 것으로 나오지만(창 4:1-5), 제사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직접적인 교제를 누리는 영예를 잃어버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하나님께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관습은 대대손손 이어졌다. 노아는 홍수 후에 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창 8:20), 이 전통은 족장들에게도 이어졌다.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단을 쌓는 데 정해진 곳은 없었다. 하나님의 현존과 은혜를 느낄 때마다 그들은 즉시 돌을 쌓아 제사를 드렸다.


야곱의 벧엘 이야기가 전형적인 예다.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유랑을 떠난 야곱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사막에서 돌을 베개로 삼아 잠을 청했던 야곱. 그의 돌베개는 그의 실존 상황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암시한다. 그래서 장준하 선생이 자신의 처지를 돌베개에 비유하곤 했던 것 아닌가? 야곱은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 때문에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깜빡 잠에 빠지고, 그 짧은 순간에 꿈을 꾼다. 그 꿈에서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깨닫는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나님의 문이로다”(창 28:16-17). 마지막 부분을 표준새번역으로 읽으면 이렇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야곱은 집에 있을 때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었을 터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자주 제사도 드렸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현존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이 혹시 계시다면 우주 저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일상 생활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바꿔야 한다고 믿고 온갖 술수를 동원하여 인생 역전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제 벧엘 광야에서 한 밤중에 하나님을 만났다. 난생 처음, 영적인 눈이 뜨였다. 눈을 뜨고 보니, 하나님이 거기 계셨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와 함께 있었고 모든 것을 보고 계셨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신이 행했던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는 말이 아닌가? 아무도 몰래, 혼자서 음흉한 흉계를 짜고 있을 때도 하나님은 그를 보고 계셨다는 말이 아닌가? 이 세상에 하나님을 피해 달아날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말이 아닌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아 두렵도다, 이 곳이여!”라고 탄식했다. 아마도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아 통회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한 참 후, 마음을 수습한 야곱은 베고 자던 돌베개를 세워 제단을 만들어 부모들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께 제사를 올렸다.


애당초, 제사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는 곳에서 단을 쌓아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 제사 드리는 날도, 제사 드리는 곳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언제든, 어디서든 하나님의 현존을 깨닫고 그분의 은혜에 감복할 때, 즉석에서 단을 쌓아 경배를 드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말하자면, 천하 어디나 성전이 될 수 있었다. 어디든 멈추어 경배 드리면 그곳이 성전이 되었다. 아니,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니, 어디나 성전인 셈이었다. 문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을 깨닫지 못하는 것에 있었다!


“그들 중에 거할 성소”: 모세의 성막


모세는 이집트로부터 백성들을 인도하여 40년 동안 광야 여행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陣) 가운데 계시면서 그들을 이끄신다.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당신의 임재를 드러내신다(출 13:21-22). 그분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 25:8)를 짓도록 명령하신 것은 한참 후 시내 산에서의 일이다.


이 말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 무슨 뜻인가? 성소를 짓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다. 목적은 성소가 아니라 백성들이다. 처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당신의 임재 사실을 좀 더 명료하게 하시기 위해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시내산에서 내려 온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성막을 짓는다. 공사를 다 마치고 하나님께 봉헌했을 때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고(출 40:34),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다”(40:38). 이로써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 되고, 삶의 방향이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증거였다. 60만이라는 어마 어마한 무리가 광야 여행에서 하나의 무리로 결집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중심에 성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을 떠나가려 하지 않았다. 성막에서 멀어지는 것이 곧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 갔다. 사실은,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성막이 가는 곳으로 백성들이 따라 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온전한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백성들이 옮겨갔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이끄시는 방향으로 성막을 이동하게 했고, 성막이 가는 곳으로 백성들은 따라갔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어느 한 장소에 고정시키지 않았다. 반대로 ‘이동성 성막’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성막을 보면서 “아, 하나님이 저 안에 계시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면(없었을 리 없다!) 그는 큰 오해를 한 것이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성막을 보면서 “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것이 성막을 짓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었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다윗의 갸륵한 열심


40년의 광야 방랑 이후 그리고 토착민과의 힘겨운 싸움 이후,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다. 그 이후로 ‘이동성 성막’은 한 장소에 머물러 있게 된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백성들의 제사를 돕는다. 백성들은 지파에 따라 땅을 분배받아 널리 흩어져 살아야 했기 때문에 항상 성막을 보고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멀리 사는 사람들은 특별한 축제를 위해 성막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해야 했다.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늘 성막을 중심으로 살아가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성막을 찾아가 제사를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의 뿌리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함께 하는 성막을 바라보며 “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했는데, 그것이 한 곳에 고정되면서 “아, 하나님께서 저기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막은 그들 자신을 제대로 보라는 상징이었다. 성막을 보고는 ‘여기 계시는 하나님’을 깨달으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막을 보고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면 ‘여기’에도 계실 수 있는가? 원리상으로는 그렇지만,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생각은 ‘여기에는 계시지 않다’는 뜻으로 아주 쉽게 곡해되곤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막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부르고 자나깨나 그곳을 사모하고 그리워했다. 그와 같은 심정이 시편에 자주 표현되어 있다. 가령, 시편 84편은 성소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보여준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


이동성 성막을 붙박이 성전으로 바꿀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사람은 다윗이다. 다윗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엄청난 피를 대가로 치루고 영광의 제국을 이룩했을 때, 그는 갸륵한 생각을 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호화로운 궁전과 이미 수 백 년 지난 낡은 성막을 생각하고는, 그것을 영광스러운 성전으로 대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선지자 나단을 만나자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삼하 7:2).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호화롭게 살고 있는데 내 주 하나님은 저 허름한 장막 가운데 계시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주님께 좋은 집을 지어 드려야겠다’는 뜻이다. 참, 갸륵한 말이다.


이 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이렇게 답하신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삼하 7:6-7). 처음부터 하나님의 관심은 호화로운 성전을 짓는 데 있지 않았다는 말이다.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할 정도로 지어지면 충분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값비싸게 지어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분명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느냐에 있다.


다윗이 성소의 진정한 의미를 알았다면 이런 ‘갸륵한’ 생각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성막을 하나님의 거처로 오해했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집을 지어 드리고 싶어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던”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다면, 자신의 궁전을 그렇게 호화롭게 짓지 않았을 것이다. 궁전은 그곳이 왕의 처소임을 드러내는 상징적 건물이면 충분했다. ‘백향목’은 당시로는 레바논에서 수입해 온 가장 값비싼 건축 자재였다. 오늘 우리 식으로 하자면 이탈리아제 대리석같은 것이다. 당시로서 최고의 자재로 지었다는 뜻이다. 자신의 궁전을 그렇게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지은 것은 하나님의 사람다운 일이 아니다. 욕심의 소산이다. 그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따르는 사람이었다면, 왕으로서의 집무를 보는 데 편리한 실용적이고 검소한 궁을 짓고 살았을 것이다. 욕심껏 호화로운 궁을 지어 놓고는 양심에 가책이 되자 하나님께 호화로운 성전을 지어 드리겠다는 생각을 지어냈다. (1)


하나님은 보기 좋게 그의 제안을 거절하신다. 그분이 원하는 것은 호화로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다. 사무엘하 7장의 후반부로 가면 더 흥미로운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11절). 말뜻은 이런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짓겠다고?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은 너 다윗이고, 그 집을 지을 사람은 바로 나 여호와다.’ 다윗에게는 이미 ‘백향목 궁’이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 집이 필요한 사람은 너 다윗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히브리어로 ‘집’은 ‘나라’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이 정말 관심을 가져야 했던 것은 호화로운 궁전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였다는 뜻이다. 영원한 나라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로 불필요하게 국력을 낭비하지 말라. 너는 오직 영원한 나라를 이루는 데 관심을 가져라. 너로서는 그 일을 하지 못한다. 나의 뜻을 따르라. 내가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이다. 너는 나의 종으로서 나의 뜻을 충실하게 따르라.’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 솔로몬의 오해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답하시면서 “네 수한이 차셔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삼하 7:12-14)라고 말씀하신다.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이 예언이 자기를 두고 한 말씀인 줄로 착각한다. 때는 솔로몬이 태평 성대를 이루었을 시점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영원한 나라’가 자신에게 이루어진 줄로 알았다.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사람은 바로 자신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 교만의 첫 번째 증상은 자기 착각이라 하지 않던가? 겸손은 자기를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을 가리킨다. 솔로몬은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솔로몬은 두로 왕 히람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리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당신은 명령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왕상 5:5-6).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백향목 성전을 지을 셈이었다. 아버지가 꿈꾸었던 것보다 더 화려하고 영광스럽게 지을 셈이었다. 그는 칠년 동안의 대 공사를 통해 성전을 완성한다. 하나님께서는 내내 침묵하시다가 마지막에 솔로몬에서 나타나셔서 율법을 잘 지키면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신다(왕상 6:11-13). 사후 추인 형식으로 그의 노력을 승인하신 것이다.


성전을 다 짓고 언약궤를 옮기면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왕상 8:12-13). 성막을 짓도록 명령하시면서 주신 애당초의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잊혀져 버리고, 성전은 ‘하나님의 처소’로 굳어져 버린다. 이후에 성전을 봉헌하면서 솔로몬이 드린 기도(왕상 8;27-53)에서도 ‘여기 계신 하나님’ 혹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성소의 의미를 찾아 볼 수 없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30, 32, 36, 39, 43, 45, 49절) “그 이름을 성전에 두셨다”(29절)고 말할 뿐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지상에 오직 한 곳, 예루살렘 성전에만 그 이름을 두셨다는 뜻이다. 예루살렘 성전 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을 뵐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거기 계신 분’이지 더 이상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 분’이 아니다!


솔로몬이 나단의 예언을 오해했다면, 그 예언이 말하는 ‘다윗의 자손’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다시 한 번 그 예언을 보자.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3). 앞에서 말했듯이, 히브리어에서 ‘집’은 ‘나라’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그렇다면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한다’는 말씀은 실제로는 ‘내 이름을 위하여 나라를 세울 것이다’라는 뜻이다. 다윗의 자손 중 하나가 하나님을 위해 나라를 세울 것이고, 하나님은 그 나라를 영원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솔로몬의 나라는 영원하지 못했다. 다윗에게서 난 그 어떤 자손도 영원한 나라를 건설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나라를 세우셨고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를 영원하게 만들어 주셨다. 이렇게 보면, 이 예언은 누군가가 후에 성전을 지으리라는 예언이 아니다! 누군가가 후에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데, 하나님이 그 나라를 영원하게 만드실 것이라는 뜻이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세운 성전은 처음부터 없어도 되는 것이었다. 모세 때에 지은 성막 형태로 그대로 두어도 되었다. 아니, 그렇게 두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언제든 움직일 수 있었던 성막을 건물로 대치하고 한 장소에 붙박이로 세워둔 것, 그것은 인간의 오해와 욕심의 산물이요, 그 이후로 하나님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빚어낸 문제의 원천이 되었다. 생각해 보라. 이 거대한 성전 종교 체제를 움직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필요했겠는가? 솔로몬이 성전 봉헌을 하면서 소 22,000마리와 양 120,000마리를 잡았음을 기억해 보라(왕상 8:63). 건물 유지 비용,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인건비, 끊임없이 이어졌던 제사에 따른 비용 등 몇 가지만 따져도 막대한 돈이 필요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고, 성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성전에 와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요아킴 예레미야스(Joachim Jeremias)는 일찍이, 도시 예루살렘이 번영하기에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중해 연안의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은 이 거대한 성전 종교 때문이었음일 지적한 바 있다. 이 거대한 부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교권을 가진 자들은 온갖 부정을 동원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왕국 분열 이후


예루살렘에 붙박이 성전이 지어진 후,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남북으로 갈라진다. 그의 신하 중 하나였던 여로보암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남왕국 유다의 왕이 된다. 솔로몬의 나라는 영원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성경은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왕상 11:9)고 설명한다. 솔로몬은 나단의 예언에서 말하는 그 ‘다윗 자손’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때로부터 두 왕국의 끊임없는 갈등의 역사가 시작된다. 우리는 남북의 갈등을 이제 50년 동안 겪어 왔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의 200년 동안(두 왕국의 분열–주전 930년–으로부터 북왕국의 멸망–주전 721년–까지) 겪었다. 그 뿐이 아니다. 이 갈등과 반목의 감정은 남북 왕국이 모두 멸망한 이후에도 수 백 년 동안 지속되었다.


나라를 반으로 갈라 분리해 나간 여로보암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하나 발견한다. 자신의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남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자주 왕래한다는 사실이다. 여로보암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남왕국]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가리로다”(왕상 12:27).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북왕국 백성들은 제사 드리기 위해 그곳으로 가야한다고 믿었다. 그러는 와중에 자기 백성들이 남왕국 유다에게 더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할 것을 여러보암은 우려했다. 그는 구테타로 정권을 탈취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문제가 더욱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자기 영토의 남쪽 끝에 있는 벧엘과 북쪽 끝에 있는 단에 제단을 세우고 금송아지 상을 만들어 놓고 백성들을 설득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명령이 되었고 불복종하는 사람들은 처벌을 받는다.


이로써 북왕국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이제 완전히 막혀 버린 것이다. 벧엘이나 단에 있는 제단에 하나님이 계실 리 없었다. 게다가, 여호와를 섬기던 사람들이 어떻게 갑자기 금송아지 앞에 제사를 드리겠는가? 그러니 이제 하나님을 뵐 희망을 모두 접고 포기할 밖에! 만일 야곱이 믿었던 하나님을 그들이 알았더라면! 만일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으면 그곳이 바로 성전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았더라면! 만일 성전은 하나님께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임을 그들이 알았더라면! 그랬더라면, 그들은 하나님 만나기를 포기하고 살다가 결국 가나안 토속 신앙에 빠지는 잘못을 범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산당이 많이 지어졌던 것은 그들에게 우상 숭배의 속성이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 곳에서는 언제나 우상 숭배가 무성히 자라나는 법이다.


남왕국 유다 백성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주전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후에도,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한 동안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다. 문제는 주전 586년에 바벨론이 남왕국 유다를 점령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시키고 많은 유다인들을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포로 생활을 시키면서 시작되었다. 본토에 남겨진 사람들은 폐허가 된 성전터를 보면서 ‘하나님의 부재’를 목격했고,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멀어진만큼 하나님께로부터도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시편 137편은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의 눈물 어린 심정을 잘 그리고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1절). 이렇듯 간절하게 그들은 예루살렘과 성전을 그리워했다. 그 이유는 하나다. 그것이 하나님의 도시,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이었다.


539년, 새로 패권을 잡은 페르시아의 정책에 따라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한다. 그들이 귀환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는 솔로몬이 지었던 옛 성전의 위용을 회복할만한 국력이 없었다. 힘닿는 대로 정성을 다했으나, 그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북쪽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는 데 힘을 합침으로 신앙적 통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북쪽 사람들이 피가 이미 이방인들의 ‘더러운 피’와 섞였다는 이유로 도움을 거절했다. 북쪽 사람들은 적개심에 불타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방해하는 동시에, 사마리아에 있던 그리심 산에 그들만의 성전을 지어놓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시온 성전을 중심으로, 북쪽 사람들(2)은 그리심 산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된다. (3)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성전과 제도와 신조를 만들어 놓고는 자신의 종교에 더 정통성이 있다고 다투었다. 북쪽 사람들은 지역적 위치 때문에 그리심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만 ‘혹시 하나님이 예루살렘 시온 성전에만 계시면 어떡하지?’라는 의구심에 자주 사로잡혔다. 남쪽 사람들은 시온 성전에 정통성이 있음을 믿었지만, 여전히 ‘혹시 하나님이 그리심 산에 계시다면?’이라는 의문을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자신이 드리는 제사가 유효하려면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드려야 하는데, 어디에 하나님이 계신지 확신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불안함! 그것이 당시 사람들의 신앙적 고민이었다. 반면, 교권을 쥔 사람들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자기들의 성전에 예속시키기 위해 온갖 고안을 해 냈고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심하게 왜곡되고 진리는 외면 당했다. 이 같은 타락과 착취를 참다못해 성전 종교의 정통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갱신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4) 그러면 그럴수록 보통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예수님이 나타나실 당시는 가히 영적 암흑기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상태였다.


오해의 역사의 의미


이것이 예수님 당시까지 이어져 온 성전과 성전 신학의 간단한 역사다. 신학(神學)은 삶의 문제다.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이 전혀 달라진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의 변천 과정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오해하게 되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독자들이 지루함을 느낄 것을 각오하고 장황하게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 보았다. “두렵도다 이곳이여!”라는 야곱의 깨달음처럼, 우리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께 경배 드리는 것으로 시작된 제단!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가시적 상징으로 시작된 성막! 그러나 그것이 한 장소에 고정된 건물로 변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집’이 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된 성전! 이로 인해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 그들 중에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하늘에 계시어 성전에 이름만 두신 하나님을 생각했던 백성들! 하나님 없는 세상에 살아야만 했던 그들의 방황과 갈증!


반면, 이러한 왜곡된 신앙을 더욱 강화시키며 종교적 착취를 자행하던 제사장들! 성전 제도를 지속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그 많은 교리와 신조들! 나중에는 ‘보물 창고’로 여겨질 만큼 거대한 부를 축적한 성전! 그 부를 중심으로 기생했던 많은 종교 귀족들 그리고 그들의 타락과 위선! 그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행되었던 은밀한 음모와 결탁!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이 당해야 했던 무거운 짐! 그 짐 아래에서 신음하며 시들어가던 그들의 영! 하나님께 이르는 안내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방해하는 존재가 된 성전, 교리 그리고 교권! 그 모든 참상을 지켜보며 아파하시던 하나님!


이 총체적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살아 계신 여호와 신앙이 ‘성전 종교’로 고착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아, 이것이 과거의 이야기로 그쳤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하게도, 이 타락의 역사는 그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오늘 여기! 선교 2세기를 맞는 시점에서 총체적인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교회의 사고와 행태에서 이 오류를 목격한다. 그렇다면, 이 성전 종교에 대해 예수께서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가? 이것 역시 간단히 설명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중요성에서 보거나 복잡성에서 볼 때, 독자들은 또 한 번의 지루한 독서를 각오해야만 이 문제를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계속)



(1) 사업가인 어느 교인이 최고급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자신의 목사에게도 똑 같은 차를 사 주었다는 이야기가 이 대목에서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무슨 영문일까? 이 경우, 목사는 그 차를 받아도 될까 아니면 사양하는 것이 옳을까? 다윗의 제안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생각해 보면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2) 어느 때부터인가 북쪽 사람들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북한 사람들을 ‘평양사람들’이라고부르는것과 같은 셈이다. 남쪽 사람들은 남왕국 형성의 중심 세력이었던 유다 지파의 이름을 따서 ‘유대인’이라고 불렸다.
(3)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발전된 여호와 신앙을 ‘유대교’라고 부르고, 그리심 성전을 중심으로 발전된 여호와 신앙을 ‘사마리아교’라고 부른다. 남쪽 사람들은 계속 혈통과 전통을 지킴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세력의 유대 민족이 되었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에 비해 혈통과 전통을 지키려는 열심이 부족했던지 지금 그 자취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약해졌다. 아직도 그리심 산을 순례하는 사마리아교인들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4) 에쎈파라 불리는 광야 공동체가 대표적인 예였다. 이 파는 예루살렘 성전의 효력이 끝났다고 선언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창안을 부르짖었다. 에쎈파의 하나였던 쿰란 공동체의 문서(쿰란 문서 혹은 사해 문서)를 보면, 예루살렘 성전과 제사장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자신들의 공동체가 참된 성전이라는 주장을 볼 수 있다.

OB KOSTA 보고서


OB KOSTA: Old Boys KOSTA


미주 코스타를 참석했던 코스탄들의 한국내 동문 모임의 공식 명칭. 모임의 구조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독립성과 자립성을 유지한다.


의의: 20회에 이르는 미주 코스타 집회를 통해 세상으로 나간 코스탄들의 현주소 점검.


목표: o 한국으로 돌아온 미주 코스탄들의 교제 o 코스타에서 받은 도전과 결단을 삶으로 연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 o 평신도 사역의 전진 기지로서의 역할 수행 o 미주 코스타와의 지속적인 연계로 향후 미주 코스타 사역의 방향성 제시


사역 방향


1.Alumni Network: 한국내 코스탄 동문 Data Base 구축 설문을 통한 현황 파악 ( 영성,생활..) 지역 코디 세우기( 대전,강북,강남..) 인터넷 ( 카페,홈페이지 운영..)


2.사역의 장 : 코스탄들의 Spiritual Follow Up


-  영성 훈련
-  비젼과 소명 고취
-  평신도 사역자로의 교육,양육


평신도 사역자 교육및 양육


-  멘토링 관계 구축 (강사, 선배 코스탄등의 멘토 발굴, 멘토링 관계 정착)
-  리더쉽 훈련.
-  설교, 성경공부 인도 훈련….
-  기타 평신도 사역자 양육 프로그램 가동


전문 운동 영역


– 전문 분야 Grouping 및 Network
-  기독 전문운동 연결


사회 환원 활동


-  봉사와 사역 (사회 봉사, 구제 사역, 한국 내 타국 유학생 사역…..)


3.미주 코스타 지원 :


코스탄 출신 강사 육성 재정적 지원—코스타 집회 등록 보조 장학금 코스타 사역을 위한 Fund Raising 코스타 세미나 리뷰 코스탄의 현장 ekosta 필진 발굴


4.Returnee Ministry :


( 한국으로 돌아와 재 적응하는 코스탄 혹은 비코스탄들의 신앙, 생활, 문화, 직업상의 어려움을 나누고 준비하는 사역)


문화적 적응 교회/공동체 연결 교제와 나눔 영적 지원 한국 생활의 적응 지원 ( 직장,자녀 교육,이사,주거..) F2


해결 과제:


OB KOSTA 모임의 당위성 확립.


크리스천 society 내 다른 집단과 예기 되는 갈등 및 위화감 해소의 숙제


소수 인텔리 집단으로 안주 가능성 경계


모임 일정


준비 모임: 12월 6일 오후 6시 IVF서부지부 사무실. 장평훈,김재석,성기현,김중안,윤은성,김석우,한창호,김준 참석. ( OB KOSTA의 방향 설정, 조직안 작성)


1회 모임 : 12월 13일 오후 5시 IVF 중앙회관 지하 강당 김재석,김중안,성기현 외 14명의 코스탄 참석. (교제, 찬양, 나눔,식사, 모임의 방향에 관한 토의,기도.)


2회 모임: 1월 3일 오후 6시 정신여고 강당 5층 회의실 장평훈,성기현,팽동국 외 14명의 코스탄 참석. (교제, 찬양,나눔, 식사, 구체적인 모임일정등 토의,기도)


매월 첫주 토요일 오후6시 정기적인 모임으로 결정.

[성기현] OB KOSTA모임을 참석하고


“KOSTA” 이 단어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쉽지만은 않은 미국 유학생활 속에서 조국을 생각하게 하고, 복음을 향한 열정을 불태우게 하였을 뿐 아니라 KOSTA탄생부터 7회까지 준비위원으로, 간사로서 너무나 귀하신 강사님들을 통해 조국과 복음에 대한 열정과 섬김의 모습을 배우며, 마이애미에서부터 Wisconsin, LA, TX를 비롯하여 전 미국땅에서 달려온 많은 유학생들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기에 KOSTA는 내 마음 속에서 언제나 뭉클하게 하는 그 무엇이다. 별 볼 일없는 나에게 그런 축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언제나 감사를 드렸는데, 이제 OB KOSTA모임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이상의 축복이 아닌가?


1 회 KOSTA’86에서부터 KOSTA출신들이 OB KOSTA모임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언제나 줄 곧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진행되지 않았던 모임이 이제야 20주년을 앞두면서 생길 수 있었다는 것은 이제야 이 모임을 할 수 있는 base가 형성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시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번의 OB KOSTA모임에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선 내 자신이 92년 귀국 후 KOSTA에 대하여 무관심할 정도로 지냈다는 자책감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KOSTA에 참석하여 간사로 섬기셨던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지금까지도 KOSTA가 초기의 귀한 spirit을 이어가며 너무나 잘 운영되었으며, 세계적인 모임이 확장되었음에도 어떤 불연속 구간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KOSTA 초기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책임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난 2년전 KOSTA alumni party를 참석했을 때에도 KOSTA이름이 어떻게 지어졌고, 어떻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을 느꼈었지만. (그것이 전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KOSTAN Spirit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노파심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OB KOSTA모임은 시작되었다. 특히, 최근 KOSTA모임에 참석하고 귀국한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통해 OB KOSTA모임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더욱 mobilize할 때가 되었다. 우리에게 허락하셨던 유학의 귀한 축복을 조국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때인 것이다. KOSTA시작할 때처럼 조그맣게 필요에 의해서, 어떤 모임이나 조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섬김과 열정을 가지고 모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축복과 우리를 향하신 mission and vision을 이루기를 기도하면서 모이면 되는 것이다. KOSTA초기에는 아무도 이렇게 KOSTA모임이 미국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디아스포라의 유학생들을 위한 모임으로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순수한 섬김의 정신으로, 복음과 조국을 향한 열정을 가지고 모였다는 그 하나만으로 이 KOSTA를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셨고, KOSTA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셨던 것이다.


이런 정신을 가지고 지금까지 쌓아온 base를 토대로 OB KOSTA모임을 가졌을 때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기도한다.

[신나미]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나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Gp kosta 전야, New Year’s Eve.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그 첫 순간만큼은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을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새해 첫 순간의 문턱을 넘어 내딛는 나의 첫걸음을 무슨 말씀으로 인도해주시려나 하는 기대를 갖고 하나님께 얼굴 도장도 찍을 겸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던 기억이, 그것도 가족이 함께 섬기던 Northern Virginia의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 온가족이 매년 송구영신 예배를 다같이 드리던 기억이, 가족들과 뚝 떨어져서 혼자 연말연시를 보내는 이번 겨울엔 더욱 새삼스러울 만치 그립다.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돌아보노라니, 해마다 설날이 시작됨과 동시에 시작되곤 하던 12일의 전교인 신년 금식 기도회에 가기 위해서 차를 몰고 속속 수양관으로 올라가던 낯익은 성도들의 무리들 속에 한데 묻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가던 나의 모습도 언뜻 보인다. 마음에 받아올 하나님의 말씀을 고대하고 그분께 올릴 나의 기도 제목을 하나하나 가다듬어 보던 표정이 떠올라 공연히 마음만 아련해진다. 내게는 제 2의 고향인 정든 버지니아의 집과 교회를 떠나 이 곳 미시간까지 온 게 벌써 5년째. 그래도, 올해는 GP KOSTA11일부터 23일간 열리니까, 오랜만에 신년 초를 하나님과 제대로 보낼 수 있겠군 하는 생각에 이르자 요 근래 가라앉듯 지쳐가던 내 마음자락에 한 움큼의 위로가 그나마 들어앉는 것 같다. 정초에 있을 GP KOSTA를 준비하는 부담 때문에, 몇 달 전부터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여 보내려고 고대해왔던 겨울방학 계획도 결국은 취소하고 혼자 Ann Arbor에서 지내야했다. 그래서일까, 미시간의 우울한 연말을 내내 홀로 지내며 GP KOSTA를 준비하게 하신 이유가 있겠지 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실 남모를 은혜가 기대되기도 한다.


새해 아침에 하나님을 만나러 올라갑니다



, 설날이지, ! 혼잣말까지 해가며 새벽에 벌떡 일어났다. 미시간은 지리적으로는 중부지만, 시간은 동부 time zone을 따르기에 환해야 할 아침이어도 어둑어둑한 날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흐린 날도 잦은 편이니 일찍 일어나 봤자 바깥이 캄캄하다는 걸 핑계삼아, 환할 때 기분 좋게 일어난다는 것이 그만 늦잠 자는 고약한(?) 버릇을 키워버렸다. 그러고 보니 새벽을 깨우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내게 들려주실 하나님의 음성을 고대하며 새벽잠에서 스프링 튕겨나오듯 가뿐히 일어나곤 하던 시절도, 마치 늦잠 잘 때 꾸는 꿈인 양 여겨질 정도다. 이제는 몸을 비틀어가며 괴로워하다가 간신히, I love you, Lord, My strength (Psalm 18:1)–수 년 전 코스타에서 말씀을 전하신 이 동호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그때부터 목사님처럼 나도 이 구절을 하나님께 7 년 전부터 아침인사로 드려왔다를 외치듯 탄식하듯 하나님께 아침 인사를 하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곤 한다. 그래도 오늘은 어렵지 않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직도 밖은 어두컴컴하지만 일찌감치 선발대로 여럿이 모여 함께 떠나기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 새해다. 새 날이 동터온다. 나도 덩달아 새로워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뜨거운 커피를 mug에 가득 담아 홀짝홀짝 마셔가며 하얗게 서리맞은 채 얼어있는 집 앞 파킹장에 나갔다. 어둑어둑하고 인적도 없는 새해 벽두부터, 하나 둘 모여든 차가 꼭 무슨 접선하러 나온 자들 같다. 설날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은 Gp kosta를 준비해온 우리들밖에 없을 거다,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 새해 아침을 시작하고,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사실이, 코스타 막바지 준비로 밤을 꼬박 새서 피곤은 했어도 내심 뿌듯하다. , 출발!



새해 꼭두새벽부터 GP KOSTA로 모여드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배려덕분인지 화창한 햇볕을 하나님이 잔뜩 몰아다 주셨나보다. 미시간에서 오하이오까지 운전하고 가는 3시간 내내 주말에 여유부리며 드라이브 나온 것 마냥 운전하기에 너무나 쾌적하다. 안 그래도 근래 들어 독감이 극성인데다가 으레 있을 법한 폭설이나 강추위라도 오면 어쩌나해서 코스타를 준비하는 섬김이들이 기도들은 해왔지만, 정말 날씨가 이상스러울 만치 온화하다. 동요 노랫말대로 햇볕은 쨍쨍, 하이웨이는 반짝 할 만큼 눈부실 지경이었다. , 이제 좀 있으면 gp KOSTA가 시작된다지금 운전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바삐 돌아갈 집회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으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인 셈이다요 근래, 그동안 지고 있던 마음의 짐들에 눌려 도저히 혼자서는 덜어내지 못할 것만 같은 무력감에 지쳐있는 나를 보곤 한다. 이제는,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다 생각 덩어리들과 그동안 나의 심령을 할퀴던 예민한 감정들의 무게를,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내려주시고 벗겨 내주시기를 바라면서, 가만가만 짚어 가는 시간을 갖고 싶다.



영적 무력감이라고 해야 할까? 불감증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님의 코드를 읽어낼 때마다 살아 반응하는 세포의 호흡이 아니라 하나님께조차 경직되어 가는 내 심령의 세포에 내심 당혹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알고도 묵인한 사이에 내 영성에 달라붙기 시작한 군살과 그때그때 떼어내지 않은 게으름이 어느 새 굳은살이 되어 내 살이 되어버린 걸까? 왠지 내 자신이 버겁기까지 하다. 받아야 할 훈련을 게을리 해오던 군사 마냥 경건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영적 비만의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노상 활기차있던 내가 어쩌다 이렇게 심드렁해졌지? 하며 내심 놀라는 척도 한다. 하긴 학생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7년째로 들어서면서, 지겹다고까지 느끼고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받아들 때마다 신기해하고 기뻐하며 필요한 양식을 제때에 기가 막히게 내려주시는 하나님께 마음으로 드리던 감사가, 언제까지 이런 만나와 메추라기만 먹어야 하는지 물리는 양 싫증나기까지 한다. 다시 이전에 누리던 물질적으로도 여유 있고 넘보기에도 그럴듯하게 두려움과 걱정 없는 양 살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더욱 이 생활이 불만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광야만 벗어나면 지금보다 훨씬, 아니 광야 이전보다도 더 풍요롭고 남부러워 할 만치 멋있게 살아갈텐데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은 조급해지는데, 광야의 끝은 과연 올까 아니 가나안은 정말 주어지는 걸까 싶어 두려워진다. 그렇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를 바라보며 충동을 받았을 이브를 십분 이해한다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라고 이브를 편들어주고도 싶어진다. 나의 아버지 되어주시는 선하신 하나님 때문에 또 선배 이브의 실수와 그 이후 그녀가 톡톡히 치른 consequence를 알고 있는 부담감 때문에 차마 그 나무의 열매를 아직까지 따먹지는 못했어도, 때때로 아직도 그 앞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본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지만 이 나무를 만지는 거 갖고는 뭐라 안 하셨지? 하면서, 이 걸 먹어, 말아? ?? 신음소리까지 흘리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그 나무를 여전히 만지작거리고 있다. 차마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열매까지는 못 따먹는 나의 처지가 아쉬워 공연히 입맛까지 텁텁해지고 쓰다. 이렇게 괴로워하면서까지 불순종을 두려워해야 하나 싶어 하나님께도 은근히 삐진다. 남들은 잘도 따먹는데, 따먹고는 좋아들 하는데



그리고 그 나무의 열매를 맛있게 따먹는 나무 주변의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는 속상했더랬다.



수년간의 안정된 직장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재충전을 하기 위해서라며, 보아란 듯이 나의 20대의 매력적인 무대가 되어준 Washington DC Northern Virginia라는 대도시, 그리고 익숙한 일상과 정든 모든 인간 관계를 미련 없이 뒤로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스러운 학교 타운으로 떠나던 날이 기억난다. 더 이상 사회인이 아닌 홀가분한 풀타임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축하면서도 기대에 찬 설레임과 불러오는 긴장감을 수시로 드나들며 겨울비 내리던 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버지니아 대학으로 훌훌 떠나갔다. 운전하고 2시간을 내려가는데, 차밖에는 주룩 주룩 겨울비가 내리고 그 빗물 마냥 차안에서도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 없이는 드릴 수 없는 나의 신앙 고백을 전심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다 들어주시고 받아주시며, 조금의 빈틈도 없이 꾸역꾸역 짐을 싣고 University of Virginia (UVa)로 내려가는 내 좁디좁은 차안에 내내 동승해주셨다. 7년 전의 나는, 미국의 수준 있고 매력적인 대도시 환경에서 보통의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양질의 삶과 능력 있는 싱글 라이프의 멋을 누릴 만큼 누려봤다는, 그래서 더 이상 아쉬울 게 없다는 그럴듯한 자족 감마저 갖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나 여겨질 만큼, 어느 새 단조롭고 사소로와 보이기까지 하는 대학원생 생활에 너무 안주 해버린 듯 먼 옛날 얘기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당시에 갖고 있던 일종의 자족감 덕분에, 비록 닥칠 수 있는 두려운 순간들을 각오하고라도 수년 간 일궈온 안정된 테두리를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모험을 해서라도 시냇물을 찾는 목마른 사슴처럼 변화와 발전을 찾아 떠날 수 있었기에, 나 자신을 스스로 대견히 여기기도 했다. 그토록 원해서 자초한 환경의 변화는 겸허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생활의 pattern을 신년 금식기도 이후에 곧 있었던 개강과 함께 대학원 첫 학기부터 어렵지 않게 잡아갈 수 있었다. 점차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마음을 비워가고, simple life를 스스로에게 되뇌어가며 사회인이었을 때와는 달리 물질이나 시간의 씀씀이도 소박하고 절제 있게 관리해 가는 훈련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덕분에 모처럼의 학생신분은 불만과 불안이 아닌, 내게는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이요 특권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원해오던 학업의 길을 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활짝 열어주신 하나님의 time table의 완벽한 섭리를 수시로 생각하며,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과 나를 UVa에 있게 하신 그분의 목적을 기대하며, 하나님 없이는 하루를 시작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하나님과 친밀히 지낼 수 있는 단조로운 시간과 환경 속에 살아가는 것이 소중하기만 했다그렇게 하나님께 민감하게 살아있던 나였는데, UVa에서 또 다시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붙들고, 10시간을 운전해서 앤아버의 미시간 대학까지 올 때만 해도, 아니 지난 몇 년간도 나의 임마누엘 하나님께 감격해서 뛰어다니며 호흡하던 내가, 어쩌다 숨을 쉬어도 제대로 쉬는 것 같지 않는 가슴 답답증까지 느끼며 터벅터벅 신발을 끌듯 걷고 있는 걸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첫날 저녁에 주신 이 일형 권사님의 그리스도인의 세계관 강의는 그동안 struggle해온 나의 갈등의 뿌리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는, 은혜로운 단비 같았다. 말씀을 듣는 매초 매순간,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던 온 신경이 하나님께로 한 가닥 두 가닥 차례로 반응하며 살아 오르는 것 같았다. 살 떨리게 동감하며 속으로 울면서 하나님께 순간순간 기도로 응답한 저녁이기도 했다. 온전해져야 할 나의 영성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며 이를 향해 성큼 나아간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라 하실 때까지는 매일매일 부지런히 정돈해가지 않으면 금새 엉망이 되어버리고 어수선해지는 내면 세계를 위해 다시 열심히 청소해가고 대수롭지 않은 먼지라도 쌓이기 전에 털어 낼 용기를 얻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 23). 이제껏 살아오면서 대체로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감히 자부했던 나의 가치관의 영역에서도, 아직까지 덫에 발목이 잡힌 듯한 나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기로 작정했다. 영의 세계의 회복 없이 타락하고 왜곡된 육의 세계에 갇혀 사는 자들과 달리, ??라는 자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인식해 갈 수 있는 놀라운 영의 세계를 온전히 회복해 가는 자다. identity를 귀히 여기고, 따라서 육의 세계에만 거하는 자들이 구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로마 8:5-6).



하나님, 썩어 없어질 밥그릇의 먹이를 두고 그들과 다투는 사람은 결코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를 실족케 할 선악과나무를 바라보게 될 때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기도 한 그 나무의 열매를 더 먼저 더 많이 따먹기 위해 아옹거리는 주변 사람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 나무 주변을 서성이고 열매를 만지작거리며 차마 먹지 못해 신음하는 제 모습으로 인해 스스로 정제하게 될 때마다, 그 나무 저편에서 저를 안타까이 바라보고 계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좀 도와주십시오. 거침없이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은 자들이 망해가기는 커녕,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저를 넘어뜨리려고 달려들거나 덤빌 때마다 너무 속상했었습니다. 기가 펄펄 살아있는 그들에게 두들겨 맞거나 악에 찬 비방까지 들어도 묵묵히 견뎌내고 걸어오는 싸움에 져줄지언정 응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integrity를 이뤄 가는 순종을 이루어가고 싶지만, 너무 힘들어 순종해가다가도 다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맥이 빠집니다. 불순종의 유혹과 위험도 어렵게 피하는데, 하물며 순종을 힘겹게 하는 저로서는 이런 나약한 저를 볼 때마다 자기연민까지 생겨 괴롭습니다…. 모양은 달리해도 결국 본질은 같을 수밖에 없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그럴듯한 열매들이 주변에 수시로 나타날 때마다 일일이 분별 해 내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과연 도처에 달린 듯한 열매를 따먹게 되는 불순종을 범하지 않을 수 있을는지,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어금니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아야 불순종에서 가까스로 돌이킬 수 있는 저로서는, 그렇게 힘들게 지켜 가는 순종의 결과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곧잘 회의와 실망과 분노에 이내 빠지기도 했었습니다.



오히려, 제게 악을 행한 자들이 당당하게 보이고 잘 풀려 가는 걸 볼 때마다 괴로웠었습니다. 하나님, 다 아시죠? 이로 인해 상한 제 맘을 좀 달래주십시오. 번번이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니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종종 있을 터인데,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위축되고 메말라가던 이제까지의 내 심령은 어느 새 터진 뜨거운 눈물샘으로 씻기어지고 있었다.



Gideon의 소수 정예 군사로 자원합니다.



나는 종종 출애굽 이후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광야 길을 가던 이스라엘 민족들과 나를 동일시하곤 했다. 하루하루 일용한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이 내일도 모레도 만나를 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썩어 없어질 만나를 쌓아두지 않는 훈련, 아직 내리지 않은 내일의 만나로 인해 오늘부터 혹은 어제부터 불안해하지 않는 훈련,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한 스텝 한 스텝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며 그분보다 앞서가지 않는 훈련, 나의 가나안 입성을 위해 하나님이 계획하신 time table의 진행속도를 답답히 여기지 않는 훈련을, 매일의 삶에서 체득해갔을 이스라엘 민족처럼 나도 내 인생의 광야 길을 걸어가며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오곤 했다. 그러다, 불손과 불순종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게다가 그로 말미암아 벌까지 받아야 했던 그들의 미련함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악하고 어리석을 수 있을까 신기해하며 그들을 맘놓고 한심하게 보곤 했었다. 그들과 묵묵히 함께 걷는가 했던 순간들은 어느 새 걷혀지고 나는 그들과 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는 건너편에 서서 딱하게 그들의 추한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 당신들과는 달라. 나는 그런 속물이 아냐. 내게는 고상한 꿈이 있고 포기할 수 없는 선한 목적이 있어. 이렇게 선하고 깨끗해 보이는 나의 모습은 분명히 지저분한 그들과는 겉보기엔 분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에 누리게 된 자유된 자의 감격과 갈라진 홍해를 건넜다는 기적을 몸소 체험한 그 흥분마저 어느 새 다 까먹고 광야 길을 지겨워하며 불평도 수시로 터뜨려 가며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무리들의 무표정 속에, 언젠가부터 나와 닮은 얼굴이 발견되는 때가 있었다. 부인하려 해도 문득 문득 내 눈에 굳이 띄는 그런 나의 모습은 처음엔 경악으로, 그 다음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명으로, 그리고 이제는 무덤덤한 체념과 무표정으로 침몰해가듯 꺼져 가는 듯했다…. 그뿐인가! 그네들처럼, 공연히 나까지 미시간 땅에서 뻉뺑이 돌려지고 있는 거 아냐? 하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하나님을 흘낏 치켜보고 슬금슬금 째려도 보면서 불신하고 두려워하고 원망도 했었다….


I am the LORD your God; consecrate yourselves and be holy, because I am holy (Lev. 11:44) 그래요, 하나님! 하나님에게서 오는 만나와 메추라기 외에는 세상의 것들을 바라지 않는 순결함을, 거룩함을 주세요. 어떤 만나든, 나의 것을 남의 것과 비교하지 않게 해주세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만나에 자족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리 되기 원합니다. 어느 새 바람 난 여자 마냥, 하나님과 눈 마주치기 싫증난 듯 그럴듯한 선악과를 바라보며,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하나님 아닌 다른 대안을 찾기까지 하려했던 나의 물리지도 않는 끝도 없는 듯한 가치관의 전쟁…. 그 상흔을 안고 갈급함과 무력감속에, 혼돈 아닌 혼란 속에 터벅터벅 올라왔었는데 아, 좋으신 하나님저는 요,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에 울고 웃는 인생이 아니라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신을 신뢰하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다. 진정 그리 되기 원합니다.



아침 조별모임 시간에 가진 QT 모임은, 말씀 본문에 담긴 생명력이 내 안에 성육신 할 수 있기에 충분할 만큼 깊이 있는 시간이 되었다. 코스탄들이 주어진 시간 안에 은혜로운 묵상과 나눔을 가질 수 있도록 섬세하고도 깊이 있게 QT 본문을 다뤄주신 황 지성 집사님의 영성과 지혜가 엿보인다. QT 본문 말씀인 마가복음 5:25-34에는 회당장 야이로의 아이를 살리러 급히 가시는 예수님의 일행과 예수님을 보러 나온 수많은 무리들, 이런 밀리는 인파 속에 묻혀서도 손을 뻗어 가까스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여인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동안 혈우병에 시달리느라 있던 물질도 다 없애고 몸은 몸대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옆에 있어줘야 할 그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오랜 병을 앓는 그녀 곁을 지쳐 하나 둘씩 떠났다. 어디 몸뿐인가, 마음은 마음대로 얼마나 다쳤을까. 이런 여인이 예수님으로 인해 병 고침을 받고 온전하게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다.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구하는 자의 절실한 모습이 상대적으로 예수를 구경하러 혹은 호기심에 만지러 나온 다른 숱한 이들과의 대조를 통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전심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구하는 자를 위해, 예수님은 바삐 가시던 길을 멈추시면서 까지 애써 찾으시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시는 모습이 실감 있게 다가온다. 게다가, 그 현장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리들 가운데 오직 이 여인만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예전에 분명히 읽었던 내용인데도 새로운 조명을 밝힌 방처럼 내 마음에 확연하게 들어선다. 예수님은 당신을 전적으로 trust하며 그분만을 전심으로 구하며, 예수님 외에는 아무것에도 의지할게 없는 한 여인을 찾으셨다는 얘기가 나의 마음을 울린다. 예수님도 당신을 전심으로 찾으시는 자를 애써 찾으시는구나.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affliction. (Mark 5:34)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돌아오는 길



GP KOSTA가 열리는 동안엔 운치 있게(?) 겨울비가 내리더니, 앤아버로 돌아오는 늦은 밤길은 짙은 비안개와 폭우의 연속이다. 그래도 코스타가 끝나는 다음날부터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진단다. 추위까지 잠시 내쫓아주신 하나님의 배려가 느껴진다. 설날 아침에, GP Kosta에 터벅터벅 올라가던 길은 무겁고 갑갑하기만 했었는데, GP Kosta에서 내려오는 길은 병 고침을 받은 여인 마냥 가볍고 매인 것에서 자유케 된 자의 잔잔한 감격마저 있다. 예수님의 제자 되기를 원하면서도 두려워해 오던 내게, 이번 코스타는 이미 제자 되어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애쓰시는 귀한 분들과 가까이서 지내면서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깊이 사모한다는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진지한 말씀 연구와 철저한 준비, 깊은 묵상의 힘과 경건한 기도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간접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게 헌신되고 훈련된 예수님의 제자들 덕분에, 그들이 거하는 자리마다 주변의 지체들이 그들을 통해 은혜로운 영향과 도전을 받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예수님을 통해 오늘도, 2004년 정초에도 그분의 제자 되기 원하는 자들을 통해 여전히 쉬지 않고 세워져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 또한 크다. 생명을 살리고 transform시켜 예수의 또 다른 제자를 키워내는 사역을 사모하게 하시고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할 뿐이다. 몸은 무너지듯 피곤해도 감사한 맘뿐이다. 귀한 분들과 동역의 즐거움을 누린 지난 1달 반이었다. , 좋으신 하나님



여러분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