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최근 시애틀 평강교회 집회를 마친 다음날, 오승현 전도사와 함께 후배 피아니스트 안선 집을
방문해서
오랜만의 반가운 회포를 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숙소가 넓은 만 건너편에 있는 관계로 페리
호를 타고 건너 야 했습니다.
가는 길 앞차들이 속력을 내지 않아 겨우 제 시간에 도착했는데 이미
만 차(boat is
full)였습니다. 코앞의 뱃길을 포기하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지요. 문득 시애틀에 사는
모 교회 선배 원순이 전도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선배는 1년 전에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
시애틀에 오면 문안하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돌아가는 길목 인근에서 15분 즈음 남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스케줄 상 이날이 아니면 방문이 불가능했기에 바로 달려갔습다.
 
금만 캐라
마중 나오신 선배 아버님의 갑작스런 접대로 저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저의
모교회인 서울 문화촌 소재 홍성교회에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다고
자식들까지 집에서 내 쫓는 무서운 분이셨지요. 그런데 그 분이 91년도에 미국에 와서 너무 심심해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3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까지 만도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셨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딸의 아픔을 가까이 겪으면서 신앙이 연단되셨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말도 안 되는 목사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장로들도 있어. 성도이건
목사이건 자
기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나 이런 것에 좌우될 필요는 없어. 목사님이 설교를 못해
도 불평할 필요가 없어. 금을 캐러
갔으면 금만 캐야지 돌까지 캘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설교를 엉
으로 해도 그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금이 있거든.”
 
머리에 망치를 한 대 맞는 듯 했습니다. 그토록 복음을 핍박하던 과거의 모습은 온대간대
사라졌습니
다. 암 투병 중인 딸의 아버지로
보기에는 그 고백이 너무 건강하고 힘찼습니다. 70대 노 성도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씀마다 제 심부를 찔렀습니다.
 
폐암을 이긴 여장부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선배를 만났습니다. 처음 얼굴을 본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처음 폐암을
발견해서 의사가 개복했을 때는 이미 폐의 좌우에 모두 번져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갔었습니다. 의사는 2달 안에 죽으니 집에 가서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그
런데 선배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나는
살꺼야!”였습니다. 몇 번의 진단을 통해 의사는 폐가 돌처럼 단단해져서 더 악화 되었다는
말만 반복했답니다.
그러나 선배의 내면의 소리는 단호했습니다. “나는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많아. 나는
살아야 해” 그래서 24시간 찬양과 기도하는 IHOP이라는 곳을 찾아
가서 하나님께
매달렸
습니다. 주위의 교회와 한국의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기도로
동참했습니다. 3개월 뒤,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의사들이 놀랐습니다. 아주 작은 혹 하나만 남고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써내려간 수기가 200페이지가 넘는다니 역시 죽음의 그림자는 선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헤어질 때 오히려 방문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선배의 목소리는 정상인강인한 듯 힘이
넘쳤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이날의 독특한 경험 때문인지 숙소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선배를
만나러
가면서 내심 예상했던 분위기는
어둡고, 자조 섞인 병실의 위로, 격려 모드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문
안 갔던 우리가 도전받고
돌아왔습니다. 오 전도사의 말처럼 ‘페리호를 타지 못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거꾸로 사는 삶입니다. 편안한 뱃길 대신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회복과
충전의 길이
되었습니다. 노년의 주름이라도 복음의 생명력에 젖을 때 오히려 청년보다 더 예리한 분별
력을
발휘합니다. 죽음의 그늘도 기도의 집중력에 노출될 때 그 사기(死氣)를
잃고 정상인보다 더
활기
찬 생기를 뿜어냅니다.
 
두 분의 삶은 거꾸로 사는 삶의 산 증거입니다. 선배의 아버지… 비록 병이란 병은 온몸이
다 지니고 있
는 아내와 함께 넉넉지 못한 삶을
사는 노년의 나이이시지만, 복음 안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는 세상
누구보다 부요해 보입니다.
원순이 전도사님… 비록 폐암 말기를 선언한 의사들의 사형선고 앞에 무능
력한 중년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고백한 불굴의 투지는 이미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승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눈 앞에는 외로운 노년의 위기는 간대없고 신앙에 올인하신 어르신의 단호한 낯 빛,
가장 극심
하다는 폐암의 고통을 참아내며
하나님의 치유의 강에 온 몸을 내어던진 선배의 여장부다운 패기, 그리
고 이미 99%의 암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꿈꾸는 그 생명력 넘치는 눈빛이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인터뷰 – 화종부 목사 (시카고 컨퍼런스 2008 오전 주제강의)

2008 KOSTA/USA 시카고 컨퍼런스의 오전 주제강의를 맡아주셨던 화종부 목사님을 eKOSTA가 만났다.

eKOSTA: 목사님께서는 청년 사역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제자들 교회가 청년 중심의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하고 계신 청년 사역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 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청년의 때에 말씀을 많이 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영국에서부터도 청년 사역을 하고 싶어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청년 사역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많지 않지만 이번에 Joy의 이사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청년 사역의 기회가 있었으면 했는데 좋은 통로인거 같습니다. 저희 교회도 말씀하신대로 비교적 젊은 교회이고, 큰 교회는 아니지만 청년, 대학생이 200명 정도 있습니다.

eKOSTA: 교회 홈페이지에서도 많은 결혼 소식들이 있는 것을 보고 청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짐작이 되었습니다.
화종부: 네, 1년에 20번 정도 주례를 하고 1년에 30명 정도의 아기들이 태어납니다. 저희 교회 청년부는 바울이라고, 대학부는 디모데라고 불립니다. 청년부, 대학부, 그리고 장년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eKOSTA: 예전에 내수동 교회에서 섬기셨는데, 그때와 지금의 청년부가 다른 점이 있나요?
화종부: 그때의 청년들에게는 야성이 있었던 거 같고요, 지금의 청년들은 야성은 덜하지만 그때에는 없었던 창의력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든 장점을 최대화 해야겠지요. 지금의 청년들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인재들이 배출되는 거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있습니다.

eKOSTA: 지금 말씀하신 야성은 열의라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화종부: 그런 거 보다는, 체제가 도움이 많이 안되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그게 바로 들판에서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거지요. 지금은 체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으니, 들판에서 거칠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련되지는 못해도 선이 아주 굵직 굵직한 청년들이 아주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굵직 굵직한 청년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eKOSTA: 대략 15년 내지 20년 전쯤에는 한국 기독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이들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는 말들을 하거든요.   
화종부: 네, 그런 것도 다 포함될 수가 있겠죠. 우리 때에는 조국과 민족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개인과 세계가 화두가 되는 거 같아요. 개인에 너무 함몰되지 않도록 하면서 민족을 넘어서서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는게 더 좋은 거일 수도 있죠.

eKOSTA: 목사님 설교 중에서도 언급되시는 손희영 목사님, 백금산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신 거 같은데, 이분들과의 관계를 소개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손희영 목사님께서는 제가 자랐던 내수동 교회의 집사님으로 계셨습니다. 손희영 목사님께서 세브란스 병원에 의사로 재직하고 계셨을 때,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역자였고, 목사님께서는 집사님이셨는데, 뵐 때마다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지금 가끔 한국 오시면 저희 교회 부흥회도 해주시고, 그렇게 교제할 기회가 있어서 너무 많은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김남준, 백금산 목사님은 신학교 동기들입니다. 졸업한 이후로 20여년간 꾸준히 같이 공부를 해왔습니다. 혈육과 같이 너무 좋은 친구들입니다. 만날 때마다 많은 격려와 도전이 됩니다.

eKOSTA: 손희영 목사님은 작년에 저희가 인터뷰를 했었고, 올해도 세미나 강사로 오십니다. 작년에 강사 인터뷰를 했을 때,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은 받지 않으셨나요?
화종부: 저는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을 받지는 못했고, 대신에 저는 제 평생의 스승으로 여기는 로이드 존스 선생님을 책을 통해서 만났고, 그 영향으로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로이드 존스에 대한 관점이 같았기 때문이었고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이제는 존 오웬이나 청교도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저만 아직 로이드 존스에 머물러 있죠.

eKOSTA: 특별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화종부: 제가 전공했던 정치 외교학을 내려놓고 신학교로 부름 받았을 때, 한국 교회의 현실이나 신학교의 현실에 의해 방황하며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를 믿는 것이,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에 대해 그분이 책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미치신 거 같아요.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감격스러워하고 좋아하며 목회를 하고 있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참 귀한 선생이죠.

eKOSTA: 작년에 저희가 손희영 목사님 인터뷰 할 때, 목사님께서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언급하시면서 훌륭한 설교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목사님께서도 설교자로서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시나요?
화종부: 네 맞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또 특별한 이유는, 로이드 존스는 제자를 만들 때 자신과 똑같이 만들지 않고, 자기에게 속하게 만들지 않는 거 같아요. 대신에 그리스도에 속하도록 저를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입니다. 저도 그렇게 좋은 설교자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eKOSTA: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에서, 소그룹보다는 전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도록 하고 싶으시다고 하신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종부: 예배가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도구라고 생각이 되어요. 제가 제자 훈련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는, 잘 훈련 받아서 삶의 터전으로 보내는 것이 목적인데, 너무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많은 분들이 잘 양육 받아서 삶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도록 파송을 해야 되겠는데,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소그룹이 너무 많아지면 물리적으로 모임의 숫자가 많아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더 큰 모임에서 삶의 많은 문제들이 다뤄질 수만 있다면, 더 적은 시간내에 이루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삶의 자리로 보낼 수 있겠죠. 그런 면들이 예배에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또한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 수록 더 좋은 일꾼으로 길러지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한계도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그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예배가 가장 좋은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결과들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복주시리라고 기대하며 꾸준히 가고 있습니다.

eKOSTA: 개인적인 양육 보다는 좋은 말씀을 통한 목양이란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화종부: 네 목양도 중요하지만 저는 최대한 빨리 성도들이 저를 그만 사용하고 그리스도께로 붙기를 기대해요. 목양자가 제가 아니라, 그분이신거죠.

eKOSTA: 청교도에 관해 매우 긍정적이신 백금산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과 달리 손희영 목사님께서는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목사님의 청교도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화종부: 네 저도 동의하고, 존경하고, 따라 살고 싶어합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한국 교회의 필요를 청교도가 공급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물론 그분들이 역사 속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약점은 숨겨지고 장점들만 부각되는 면은 있죠. 그런 면은 조심해야 하지만 저도 조국 교회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죠.

eKOSTA: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고, 어떤 면에서 현재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을지 말씀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제가 목회를 하면서 부딪히는 것중의 하나가, 한국사람들의 정서는 너무 율법주의적이에요. 이렇게 율법주의적인 사람들에게 청교도 적인 것이 들어올 때,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더욱 묶어놓게 만드는, 그래서 위축되게 하고 억누르게 되는 경향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지금과 같이 물질이 풍부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고자 하는 열정은 참 귀하다 할 수 있겠죠. 너무 율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정신이 잘 사용될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eKOSTA: 목사님 설교 중에 들었던 표현 중에서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이란 말과 ‘조국 교회’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목회자로서 생각하시는 조국 교회의 약점은 어떤게 있을까요?
화종부: 저는 조국 교회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복음에 대한 무지함. 예수의 사건에 대해 너무 모르죠.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건지 잘 모르는 거에요. 주님이 하신 일과 그분의 성품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기 때문이죠. 또 많은 설교들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 가를 말해주고, 윤리적인 면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주지 않아서, 너무 약한 성도들을 만들어내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교회가 얼마나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을 잘 하지 못하고, 너무 개별적이고 효율 위주의 구조를 많이 생각하지요. 그러나 교회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세상이 말하는 지혜로운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조직이죠. 세상은 다 잘 따라오는 소수를 위한 구조를 갖고 살지만, 교회는 따라오지 못하는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보폭을 늦추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는 유일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교회의 교회 됨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한계에 부딪히고, 그리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못하는 그런 섬김들을 잘 하고 있지 못한다고 봐요. 이렇게 저는 구원론과 교회론이 한국 교회의 큰 약점이라고 봐요.

eKOSTA: 예전에 유학 전에 사역하실 때나 학생이실 때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비슷하게 갖고 계셨나요?
화종부: 네, 그랬습니다.

eKOSTA: 역사를 살펴보면, 예를 들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런 교회로 부터 독립된 교회론을 주장하셨고, 존 스토트와 같은 분은 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주장하셨던 걸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럼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시는 분으로서 이렇게 종교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방법에 있어 누구의 생각이 옳았을까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화종부: 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로이드 존스 선생님과 입장이 다릅니다. 영국에서의 유학이 저에게 준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학을 가기 전에는 로이드 존스와 같이 언제든지 부패한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서 거룩하고 성결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학을 가서 너무 뜻밖에 어거스틴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저에게 강하게 심어준 이미지는 교회의 하나됨, 한 몸으로서의 교회의 교회됨과 진리와 성결, 그 두 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두 개가 동시에 추구가 되어야지,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을 영국에 가서 굉장히 강하게 느꼈어요. 그런 것들이 로이드 존스와도 다르고, 친구들과도 약간씩 다른 부분이죠. 저는 그런 면에서 계속 교회로 들어가야 하고, 교회의 한 부분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eKOSTA: 그럼 하워드 스나이더가 주장하는 교회 내 교회를 주장하시는 것이네요.
화종부: 저희 친구들은 대부분 교회를 개척했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개척한 교회를 받아온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원하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교회를 개척했었겠죠. 그게 아니고 저는 기존의 한국 교회에 들어가서 그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섬겨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교회들의 모임에 할 수 있는대로 참석하고 도우려고 노력하죠.

eKOSTA: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제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했을텐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청년들을 위해서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지요?
화종부: 네, 20대나 30대에 그런 고민들을 해야한다고 봐요. 제가 50이 다 되어서 선택한 이 길을 지금의 20대가 선택하는 걸 저는 원치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정말 목회와 교회의 교회됨이란 것은, 한없는 인내와 기다림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20대, 30대가 지금의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20대 30대 때는 뒤집고, 반대하고, 고민하며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 일을 성실하게 하다가 와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타협할 수 있겠죠. 저도 스스로 조심하는 것은 너무 타협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타협하지 않고 정말 나이에 걸맞는 일을 해야되겠죠.

eKOSTA: 이전에 제자들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해 설교를 14번에 걸쳐서 하셨는데, 그렇게 강해 설교를 하신 배경이나 의도가 있으셨나요?
화종부: 제가 계속 하고 있는 설교는 본문 강해 설교에요. 그러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로 지식도 짧고 한계가 있어서 보통 그렇게 하지만, 때로는 특별한 주제를 다루기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강해를 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도 한 번 해봤죠. 여러 주제로 넓혀놓은 다음에 계시록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본문 강해 설교 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강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eKOSTA: 목사님 하나님 나라 설교 초반에 어서 계시록으로 가고 싶습니다 라는 말씀 정말 자주 하셨는데 그래도 또 하실 생각을 하시네요. (웃음) 저희가 설교 들으면서 조금 특이하게 느꼈던 점은, 목사님께서 upside-down 이란 말을 많이 쓰셨는데, 굉장히 개인에게 한정된 하나님 나라를 많이 말씀하지 않았나 싶어요. 교회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 나라라든가 우주적인 주권, 또는 구약에 나오는 모습 등의 하나님 나라라기보다는 개인에게 집중된 하나님 나라였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화종부: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한계라고 볼 수 있겠죠. 제가 에베소서를 하면서도 똑같은 것을 느꼈는데요, 역사적인 교회에 대한 논의들을 잘 다루고 나서 말씀을 보면 굉장히 넓게 다룰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본문을 다루는데 급급했어요.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이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주제와 관련하여 폭넓게 여러 관점에서의 논의들을 다뤘으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더욱 풍성하게 다룰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기에는 제가 준비가 너무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본문 자체만 다루고 끝냈죠. 조금 더 넓혀져야 한다고 봐요. 제가 그런 면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해야되는 거죠.

eKOSTA: 이번 코스타에서도 복음,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신다면, 짧게 하셔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측면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네요.
화종부: 네 그렇죠. 제가 개인적으로 계속 느끼는 것이 그런 거에요. 성경의 진리가 이상적인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게 아니고, 이게 정말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도 여러번 실패하고 안되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많다는거 저도 알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던지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절대 안해요. 저도 실패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아 정말 이렇게 살아야 진짜 사는 거구나 이런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아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바탕을 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요.

eKOSTA: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아주 추상적인 반면에, 사람들이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나 상황들은 너무 구체적인데, 이 두가지를 연결시킬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이번 코스타 주제에도 담겨있는 거 같아요. 저희가 개인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적용하며 살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세요?
화종부: 제가 목회를 하면서도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중의 하나가, 한국의 교인들은 목회자가 어떤 결정을 해서 교회를 이끌어 가주기를 원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계속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필요를 느끼는 자가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거든요. 기독교의 윤리라는 것이 절대로 공동체나 나라 전체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그 출발은 개인인거죠. 하나님 말씀에서 깨닫고 반응하는 그 개인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깨닫은 개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주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깨닫은 바를 댓가를 지불하면서 충성스럽게 전하는 거죠. 그게 제 개인의 경향이기도 하고 제가 계속 전하려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운동 차원의 것을 함께 해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보다는 개인이 변화되고 개인이 살면서 하는 것이 제 생각으론 훨씬 더 지혜롭고 효과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두 가지를 최대한 묶되, 적용은 철저히 개인과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KOSTA: 목사님도 유학 생활도 하셨고 이민 목회도 하셨는데, 다문화권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는 저희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은 어떤게 있으세요?
화종부: 제가 유학 생활을 통해서 얻은 것은 공부 자체보다는 그 외국 생활의 다양성에서 배운게 더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유학 생활 중에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정말 오늘의 삶을 사는 것이죠. 제가 만난 많은 한인 학생들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주 특별한 기간이고 삶이란 건 언제부터인가 한국 가서, 또는 직장을 얻고 나서 살려고 합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사는 것이 삶인 거죠. 그 생활을 특별한 기간으로 여기지 않고, 주님 앞에서 시간과 우선 순위를 충실하게 드리면서 삶을 살아주는 거죠. 언제부턴가 삶을 새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곳에 딱 맞는 형태로, 분명하게 헌신하며 성도의 삶을 살며 공부해야, 나중에 한국에 와서도 정말 우리가 기대하는, 빛을 비추는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삶의 현장에서 충성스럽게 믿음의 원리를 따라 사는 거죠. 그런 기대를 제가 전해주고 싶어요.

eKOSTA: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종부: 많은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옥수정] 코스타 간증문

<코스타 집회 간증
2008년 7월 2일 >  

– 옥수정 – 

제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지 이제 여섯 해가 되었습니다. 그전까지 무려
30년 동안 소위 ‘모태 신앙인’으로, 특히 목사의 딸로
자라면서 교회에서 시키는 것은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교인으로 살았지만, 사실 제 속사람은 날이
갈수록 황폐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순종적이어서 부모님께서 시키시는 일들을 기꺼이
다 하려고 했습니다. 골수 고신파답게 저희 부모님의
요구 사항 일순위는 주일 성수였습니다. 시험 기간이라도
주일날에는 절대로 공부하면 안되고, 쇼핑하거나 음식을
사먹어도 안되고, 심하게 아픈 게 아닌 이상 주일 예배를
빠져도 안되었습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요구들을 아무
문제 없이 만족시켰던 저는 부모님과 교회 어른들께
칭찬받는 ‘타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된
이후 기독교 신앙에 관한 질문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주의 창조자, 절대 초월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왜 그 신은 기독교의 하나님이어야만 하는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이 단지 기독교 집안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등등. 부모님께
조언을 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시간이 지나면 그런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의심과 회의는 어리석은 것이다’라는
식의 무관심에 가까운 부정적 반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항아가 되기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그런 고민과
괴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부
시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대했을 때, 제
자신이 믿는다고 생각했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게
당연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무엇을 믿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제가 구원받은 자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제 삶에 성령의 열매가
맺힐 리 없었습니다. ‘전도’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친구들에게 예수님
믿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힘들어하면서
겨우 순종하는데 남들에게 어떻게 이 짐을 지라고 하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크리스챤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일쑤였습니다. 각종 자격증 시험이 주일에
치뤄지기 때문에 손해보는 것이 많다고 느꼈고, 그
억울한 마음 때문에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지 않는 다른
크리스챤들을 보면 ‘가짜’라고 비난하는 가시돋힌
마음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 입시에서
실패했고, 집안의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워 재수하겠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 아버님이 가르치신 종말론
때문에 10년 이상의 먼 미래를 구상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따라 아버님이 권유하신 전문대 야간부를 다니며 낮에는
유치원 보조 교사로 일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지만, 저는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어떤 희생을 요구하셔도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 길이 인정받지 못하는 낮은
자리라고 생각해서 제가 ‘십자가’를 지고 간다는
은근한 자부심마저 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그 결정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이 종말론을
통해 줄곧 강조하셨던 것처럼92년에 등장하게 된다던
적그리스도의 앞잡이, 유럽 연합대통령이 결국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고, 제 마음 속엔 쓰디쓴 원망감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님의 종말론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는데도
아버지는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에 제 인생을, 창창한 청년의 미래를
전부 걸었는데 말입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진저리나게 싫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자리에 앉아도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설교하시는 아버지 얼굴을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눈을 마주칠 수 없을 정도로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잘못 들어선 제 인생길이 한탄스러워서, 겉으로 내색하지
못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 때문에 속앓이하면서,
아무도 없을 때면 골목길을 걷다가도 눈물을 쏟곤 했습니다.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하며 반 년을 보낸 후, 아버님 말씀대로가 아니라, 제
자신이 바라는 꿈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민 끝에 유아교육과 다닐 때 접했던 아동 심리학이
제 인생을 걸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금 벌어놓은 돈으로 재수를 해서 목표했던 심리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되어 너무나
감격스러웠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과외를 하면서 점점 지쳐갔고, 인생살이의 고달픔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기대했던 장학금 심사에서 밀려났을 때, 선배들이
나이많은 후배인 저를 대하기 어려워한다고 느꼈을
때, 과외하느라 학과 공부할 시간마저 부족했을 때,
그 모든 원망의 화살들은 어김없이 ‘아버지’라는
표적으로 날아가 꽂혔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이 꼬이게
된 것이 모두 아버지의 탓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제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꾸려가는 것이 너무 버거워
마지못해 사는 심정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가슴 속에 담은 채로 유학을 준비하기까지
이르렀고, 그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갈수록 더 웃음을
잃고 찡그린 표정만 짓는 살벌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제 동생이
다른 교회에 나가 그토록 찾고 찾았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제 동생은 그 기쁨과 감격을 혼자만 누릴 수 없어서
내켜하지 않는 저를 설득하여 그 교회로 초청했습니다.
너무나 낯설게도 그 교회 분들은 신앙 생활의 감격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밤새는 것을 예사로 여길
만큼 헌신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신앙의 원동력이 어디있는지 궁금해졌고, 결국 한 양육자
언니와 일대일 교제를 하게 되었습니다. 거듭되는 만남을
통해 제가 평생동안 큰 희생을 감수해가며 지켜온 신앙이
실상은 맹목적 신념일 뿐, 어떤 근거나 토대에 바탕을
둔 확신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수도 없이 읽고, 셀 수 없이 많은 설교를 들어왔지만,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의 실재성, 그중에서도 특히 예수님의
부활이 인류 역사에 전무후무한 충격적인 실제 사건이었음에
한번도 주의를 기울여 본 적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절대 일으킬 수 없는 그 부활 사건이 하나님의
실재하심,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심, 그리고 그분이
하셨던 모든 말씀을 신뢰할 수 있음의 확실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후 저는 마치 부러지기
일보 직전의 비틀거리는 의자에 엉거주춤 걸터앉아있다가
넓은 침대 위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쉴 수 있게 된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고 정말 기뻤습니다.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언니가 저에게 요한복음을 읽어보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2천년 전에 이스라엘 땅을 돌아다니시며
사람들을 만나실 때 무엇을 느끼셨을지,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발견해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 예로 요한복음
8장에 기록된 사건이 바로 제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게 묘사해주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말씀하시던 그 현장에 같이 동참하여
예수님 바로 옆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몰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느닷없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돌려보내신 예수님께서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시며 뭐라 하시는지 말해보라고요.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지한 언니의 기대를 무시할 수가 없어
답을 대충 만들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쓸 만한 말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고,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된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쩔쩔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
그렇게 텅빈 스크린 같았던 제 마음에 마치 타이프라이터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를 투둑 쳐서 새기는 것처럼
딱 하나의 문장이 튀어나왔습니다. “수정아,
내가 너를 위해 죽었다.”

그 대답을 언니에게 말해주는데, 왜 그런지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님의 생생한 음성을 들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니지만, 그
일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저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말은 셀 수 없이 많이 들어왔고
그런 가사의 찬송을 수도 없이 불러왔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옥수정이라는 이 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온통 쏟아부으시는 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십자가의 죽음이 저를 향한
하나님의 가슴아픈 사랑의 고백임을 모른 채, 들어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로 30년을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저 온 인류 중의 한 사람, 수 백억 분의
일이라는 미미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로지
저를 위해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소중한
그 한 사람임을 깨닫고 나서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행복한
사람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제 자신의
힘으로 꾸려가야 한다고 믿으며 꾸역꾸역 짊어졌던
고달픈 인생의 무게, 그리고 어둡게만 보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유와
평강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아버님의 얼굴조차 쳐다보기 싫을 만큼
지독하던 그 원망과 미움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샌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미움이 모두 사라진
마음이 얼마나 가볍고 자유롭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남에게는 별 관심도 없이
제 자신의 일만 생각하며 전전긍긍 살았던 저의 좁은
시야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부어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로
이 세상이 가득하구나! 그리고, 제 남은 삶을 드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시는 일에 쓰임받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처럼 놀랍고 감사한
새생명의 축복들을 맛보기 시작한 다음 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며 미국에 오긴 왔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왜 이 길을 허락하셨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하나님께서 박사과정 그만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 시장에서 생선팔아라 하셔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종 ‘살기 힘든 이 땅에서 굳이 더 살 필요가 뭐 있나?
하나님 곁으로 빨리 불러주시면 그게 제일 좋겠다’라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기쁨만으로
너무 만족스러워서 이 땅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제게 이 땅에서 살
시간을 더 주시는 이유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잃어버린
영혼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제가 누리게 된 은혜와
축복에 동참하도록 돕는 것임을 알았지만, 제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굳이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은 곧바로
제게 한 영혼을 맡겨주셨습니다.
 

입학하자마자 나가기
시작한 대학원생 성경공부 모임에서 하나님을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질문을 계속하는 신입생
한 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던 중 그 친구가 우울증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했왔고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나님께서 저를 이 학교에 보내신 이유는 그
친구가 온전한 생명을 되찾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했고,
그 확신만을 붙들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한동안은 연구와 수업을 완전히 접고 그 친구에게 붙어
있기도 했고, 지금은 룸메이트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지난 2년 간 많은 위기가 있었고,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는
과정 속에서 결국 제가 그 친구를 돕는데 철저히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년 전 처음으로 그런 무력감과
절망을 경험했을 때, 너무나 힘들고 답답해서 새벽기도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연일 통곡하며 기도하던 중 에스겔이
본 마른 뼈 환상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와서 성경을
찾아보니 에스겔 37장이었습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4-5절)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 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3-14절)
이 약속의 말씀이 저를 붙들어주는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몸은 살아있어도 죽음의
나날을 보내는 그 친구에게 기적처럼 생기 넘치는 삶을
되찾아 주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된 후로 지금까지
그 친구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담대할 수 있는
평안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를 알아온 5년
동안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스케일로 일을 해나가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제가 아무리 원해도 제 힘으로는 그 친구를
도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으면서 시편 46편
10절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Cease striving and
know that I am God; I will be exalted among the nations, I will be exalted
in the earth.”(NASB)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어려운
일을 앞에 놓고 생각해야 할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임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안과 절망 속에 빠져있는 그 친구를 돕기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고민이 들 때마다 제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너는 도울 능력도 없으면서
무슨 궁리를 하고 있는거니? 그럴 게 아니라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봐야지! 네가 해야할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꼭 알려주실거야. 걱정마…’
 

한 가지 더 깨달은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가슴아픈 것인가였습니다.
한동안 그 친구의 상태가 좋아졌을 때, 다른 친구들과는
즐겁게 어울리면서 정작 저를 멀리했기 때문에 제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어째서 자신을 도우려 애쓰는
저를 무시하고 거부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때때로 서러울 정도로 속상하고 슬펐지만, 결국은 그런
고통의 경험이 제 안에 사랑없음을 깨닫게 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게 하는 유익이 되었습니다. 나를 반겨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만, 나를 무시하고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날카로운 가시를 삼키는 것처럼 아프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 손에 의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닮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며 저도 그 사랑을 품을 수
있게 되길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이후 4년간 확신과
도전, 응답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는 남부러울게 전혀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확신, 감격, 기쁨, 감사, 평안,
열정…30년을 껍데기 크리스챤으로 살면서 절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한꺼번에 다 얻고 나니 그 희열에 들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룸메이트를 돕는 일로 때론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항상 제 편이셨고
또 제 기도에 즉각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마음을 품고 있던 저를 하나님께서 크게
치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년 1월, 운전시작하지
얼마 안되서 갑자기 폭우를 만났고, 당황한 마음에
앞차를 들이받아 크게 부서진 그 차가 견인되고 등이
아프다는 운전자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왔는데, 전혀 기도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고가 날 때 하나님은
도대체 뭘하고 계셨단 말인가? 전지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왜 그 사고가 나는 걸 막지 않으셨나?
이런 회의와 의심이 석 달 넘게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기도 부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보험회사에서 모든 걸 처리해주길 노심초사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협상에 쉽게 동의하지 않아서 제가
고소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는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돈도 한푼 없는데 어떻게 재판을 치루나, 피해보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 학업을 중단해야하겠지 등등, 끝도 없는
고민들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너무나 막막했고 사람들에게는
말하기조차 싫어서 할 수 없이 하나님께 따져보기라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
 

그래서 새벽기도를 다시
나간 그날의 본문이 스가랴 13장이었습니다.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스가랴 13장9절) 이 말씀 앞에서 깜깜한
터널을 통과하다 저멀리에서 빛이 들어오는 출구를
본 것 같았습니다. 그제서야 제 믿음이 얼마나 연약하고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어려움이 닥치자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의심하고, 그동안 누렸던
기쁨과 감사를 모두 잃어버릴 정도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이라는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 어려운 상황의 끝에는 제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드러내
보여주는 결과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나타날 것이고,
결국 ‘나의 하나님’이 그 어둠의 골짜기를 통과하도록
인도하셨노라고 자랑하게 될 것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넉 달이 흘러가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어 답답해하던 중 다시 피해자가 고소할 것 같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최종
결과까지 기다려 보기로 마음을 다잡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시는 하나님이시니
두려워말라’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이 말씀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그 힘든 나날을 버틸 수 있었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고가 난 후로 열 달을
채우고 나서야 해결되었습니다. 그렇게 연단받아야할
만큼 저의 믿음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이었고, 저의
교만함은 하나님 앞에 심히 가증한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그 일을 통해 제 믿음이 조금이라도
더 든든해졌기 때문에, 제 교만함이 조금이라도 허물어져서
제가 가야할 낮은 자리에 좀더 가까와졌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해지기 위해 얼마나
더 배워야하고, 변화되어야하는지, 제가 앞으로 가야할
그 먼 길을 흘낏 본 것처럼 조금은 감잡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너무나 감사합니다.
 

6년 전 여름, 저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벧전2:9) 들어오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 인생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요5:24) 옮겨주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제 안에 일으키신 변화는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하고
또 감사합니다. 오늘의 저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여섯 해를 보낸
지금도 아직 변방에 있는 것 같아 쉬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의 변화가 너무나 기대됩니다. 비록
지금도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절감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사용하셔서 이루시려는 일이 있다면 제게 이 땅에서
살아갈 날을 더 허락하시고 또 감당할 힘과 능력도
주시리라 믿고 바라며 하루하루 하나님만 의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양승혜] 코스타 간증문

코스타 간증문

양승혜 

이 자리에 대한 콜링을 받고
가장 많이 망설였던 이유는 몇년 전 하나님께 했던
기도가 생각나서였습니다. 그당시 주님의 다루심으로
엄청나게 굴러다니고 있었을 때였는데 앞으로 어떤
사역을 하던 저를 주님의 뒤에 그림자처럼 감추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만나 온 하나님은 늘
신실하셨고, 언제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때가 언제나 제가 기대했던 순간은 아니었지만
제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주님도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어내셨습니다. 그런 기도를 했다고 하니까 주변의
어떤 사람이 어쩌자고 그런 위험한 기도를 했냐고 하더라구요.

터닝포인트

여러분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닝포인트가 된 계기나 또는 그렇게되도록 여러분의
삶의 영향을 끼친 사람이 있을것입니다. 저에게도 그런
시점과 사람이 2명 있었는데 저희 어머니와 제 여동생입니다.
어머니는 어렸을때 교회를 다녔지만 믿지 않는 남편을
만나면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몇년
동안 외국 생활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무신론자에 기독교를 예수쟁이라
불렀던 아버지의 오랜 핍박에도 불구하고 10년동안의
기도 끝에 아버지를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여동생은
딸셋 중 가장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중학교때 예수님을
만나고 대학교때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마음을 품고 준비해온 10년만에 지금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고, 선교에 대한 비전이 없는 남편을 만나 4년여동안
기도한 끝에 남편이 함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집에서 자라났는데도 저는 꿋꿋하게 선데이크리스천으로
30여년을 잘 버텨왔습니다. 어머니와 동생이 나누는
대화가 시끄러운 녹음기를 계속 틀어대고 있는 것처럼
듣기싫었고, 그들의 삶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면서도 청개구리마냥 자꾸 반대로
튀고싶어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늘 꼬리 두개 달린
원숭이들 틈에 낀 꼬리 한개 있는 원숭이처럼 느껴졌고
나는 정상, 그들은 비정상..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출발

학교를 졸업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인생을 살아왔는데 서른을 앞에 두고 바라본 제 인생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렇게 살다가 인생이
끝나는 것인가, 허무함에 시달렸고 하는 일마다 계속
잘 풀리지 않는 어려움 가운데 처해지자 어렸을때부터
들어왔던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심정은 인생의 가파른 절벽 가운데 떨어질 듯 서있다가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혼자 떠나 예수원이라는 기도원에 갔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고 그 때 지금까지는 내 멋대로, 내가
하고픈 대로 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하라는 것만 하며 살겠습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년 동안 준비한 후 스웨덴에서
선교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는데
한국을 떠나면서 비장한 각오로 말하기를 ‘나를 기다리지
말아라…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된다고 느낄때
돌아오겠다’ 머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새로운
인생을 기대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달라진 나,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만나주셨던 그 날 주신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말씀처럼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교훈련 및 영국유학생활

훈련은 정말 값진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강의를 들으면서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를 용서했고,
제 안에 무너졌던 나를 주 안에서 다시 세워가기 시작했습니다.
9개월 동안 훈련과정을 마치고 주님께서 영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셔서 언어공부를 시작하게되었습니다.
그곳은 저에게 단지 유럽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현장 가운데로 나와 정말 예수의 제자가
되었는지 살아보는 또다른 훈련의 장소였습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유학생활에 살인적인 물가를 감당하기
위해 아침, 저녁으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당시
랭귀지를 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나
취업을 앞두고 언어를 준비하기 위해 온 젊은, 저보다
어린 학생들이 주였습니다. 저처럼 왜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지
잘 모르는 노처녀는 그닥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특별히
하고 싶은 공부도 없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제가
했던 일을 다시 하면서 또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목적을 발견하기까지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랭귀지만 하고 있을 수는 없고…하나님은
아무 말씀 없이 2년동안 저를 그렇게 두셨습니다. 아는
한국사람도 없이, 돈도 없이, 영어도 잘 못하면서 무슨
깡으로 그 시간을 버텨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국에 오자마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에게는 전도대상자들이었고, 특히
학교에 가면 옆자리에 앉은 학생을 어떻게 전도할 수
있을까 늘 생각했었습니다. 제 마음은 가난해졌었고,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이 가득했으며, 외로웠고,
배고팠으며, 의지할 곳은 주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작은 신문사이지만 취재기자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나름 케리어를 쌓아왔었는데 이 낯선 땅에서
나는 이름도 제대로 불려지지 못하는 웨이츄리스로
산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진짜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나의 정체성을 결정했던
저에게는 큰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부르심

주님은 그 긴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하던 상관없이 나를 당신의 자녀라
부르시는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에게 좋은
교회와 사람들을 붙혀주셨고, 돕는자를 보내주셨으며,
잘 곳을 주셨고, 일할 곳을 허락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엇을 해야하는 지 모르는 상태에서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2년의 시간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주님은 제가 모세가 아님을 아시고
더 긴 시간을 기다리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2년뒤 어느
날, 주님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너무도
명료하고 또 뜻밖이서 저는 마구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첫째 아~ 드디어 주님이 내게 뭔가를 말씀하시는구나라는
것과 둘째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제게 신학을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당시
제게 진짜 뜬금없는 발언이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신학을 공부할 거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고, 동생이
선교사로 헌신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터라 제가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잘못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사실, 그 일이 있기
전에 제가 섬기고 있던 교회 선교사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너를 선교사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팔짝
뛰면서 그런 말씀 마시라고 했었거든요. 갑자기 그
말이 오버랩이 되면서…주님 아니지요? 제가 잘못 들은거지요?
되묻기도 했습니다. 3일 지났는데도 제 마음 가운데
울렁증이 가라앉지 않았고, 밥을 먹을때도 길을 걸어갈때도
그저 멍한 상태로 지내다가 결국 순종의 카드를 들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영국에 있는 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단 한번도 내가 선교사가 될꺼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제가 이제는 선교사가 아니면 하고픈 것이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한국 귀국 후

제 삶의 목적을 발견한 후,
저는 마치 움츠렸던 개구리가 뛰어오르듯 그 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곳에도 모자란 저의
모습 때문에 무수히 많은 눈물을 흘려야했만 하나님은
저와 함께 하셨고 선교사의 길에 대해 확신없는 저에게
차츰차츰 분명한 부르심에 대한 확신도 심어주셨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근처 다른 대학 캠퍼스에 있는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에 참여하면서 캠퍼스 사역과 제자훈련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훈련과 공부를 마치고
5년이 넘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을때
저는 아마도 당장 선교사로 나갈 수 있다는 당돌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이 부르셨고, 훈련시키셨고,
부르심에 대한 확신도 주셨으니 길을 여실꺼라는 완전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파송교회도 없었고, 결혼하지 않은
나이 많은 여자 평신도 였으며 적어도 파송을 받고
나가려면 또 몇년을 한국교회에서 섬겨야만 했습니다.
길은 막힌 것 같았고, 한국에서 제가 설 자리는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돈을 벌어야 하나,  취직을
할까, 결혼도 해야하는데…또다시 현실이라는 이름이
저에게 벽처럼 다가왔고 나는 무엇하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멍하게 한국의 현실을 받아드려야 했습니다.
그 당시 호주에서 사역하고 있던 동생부부가 아기를
낳고 한국에 들어와있었고, 파송을 받고 아프리카로
나가려고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들의 안정된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또 나는 얼마동안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나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러던중 친구의 소개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집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날
다른 약속이 있었는데 주님께서 제 마음 가운데 그곳에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약속을 취소하고 그곳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강사이신 선교사님은 그 집회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만큼 강의는 현실 가운데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타협점들과 선교에 대한 헌신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한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직장이든, 가족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주님,
이거 한가지는 안돼요 하는 것이 있다면 생각해보라고
하신 뒤  잠시 시간을 주시고 그것을 지금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직장도, 가족도,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데(사실 없었기 때문에)… 나는 뭘까? 고민하다가
주님의 나즈막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선교’ 순간
저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사람처럼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주님, 선교라뇨? 그것은 주님이 저에게 주신 거잖아요?
저는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하겠다고 버팅길때는
떠밀어서 보내놓고, 이제 하겠다고 하니까 하지말라는
겁니까? 제 마음 가운데 심하게 요동치는 혼란의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와서 선교사인 동생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침을 튀겨가며, 오늘 주님이 나보고 뭐라셨는지
알아? 하면서 흥분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흥분된 모습과는 달리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던 동생은
침착하게 단 한마디를 내뱉었습니다. ‘주님이 가지말라면
말아야지’ 그러면서 자신이  대학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선교훈련을 받던 강의 중에 강사님이
그러셨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선교지로 가기 위해
가방을 다 싸놓았고, 티켓이 손에 들려있으며 이제
집 문을 열고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님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중에서 지금 가방을
내려놓고 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이 방에서 나가십시오.

선교에 대한 내려놓음

그랬습니다. 주님은 제가 멈추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3일동안 주님앞에 나와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주님~왜이러세요. 지금와서 어떻게 포기해요~하지만
또다시 주님 앞에 순종의 카드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선교를 내려놓았습니다.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동안 흘렸던 눈물들이 2배가 되어 쏟아져나왔습니다.
내려놓겠다고 고백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는데 뭔가
모르게 자꾸 서러워서 많이 울었던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니 다시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승혜야~ 너는
왜 나를 신뢰하지 않는거냐? 내가 약속을 지키는 하나님인
것을 모르느냐? 내가 너를 불렀다.

주님 그렇습니다. 나를 부르신
것은 주님이십니다. 내게 비전을 주신 것도 주님이십니다.
저는 주님앞에 회개했습니다. 선교사가 되는 것이 저의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더욱 알아가고 당신을 예배하며
순종하는 것이 제가 지은바 된 이유입니다.

저는 왜 주님이 저에게 선교를
내려놓으라고 하셨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주님은 제가
선교를 위한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배자로
있기를 더욱 갈망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을
더욱 깊이 알게되고 하나님을 마음을 닮고자 한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됩니다.
그분이 정말 관심있어하고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것은 당신과 깊이 교제하며 그 안에서
자녀된 삶을 누리는 것이요, 또 그렇지 못한 자들을
안타까워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영혼구원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아~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지? 이제 선도
보고 결혼도 하고 지역교회도 섬기며 구역예배도 참석하고
그러면 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던 중 우연히 동생을
통해 NGO단체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콜링을 받게 되었습니다.
NGO단체는 타 선교단체와는 달라서 파송교회 없이도
선교지로 나갈 수 있으며, 복음이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이기때문에 신분상 NGO였지만 실제로는 선교사를
원했습니다. 저에게 조심스럽게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본
나라는 아프카니스탄이었고 그때는 사건이 생기기
3개월 전이었습니다. 한번도 어느 나라를 가겠다고
생각해 놓은 곳은 없었지만 그곳은 뜻밖의 나라였고
그때도 여러가지 사건으로 인해 위험하기도 하고 말이
많던 곳이었기에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며칠을? 네~3일을요.
말씀묵상을 통해 주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승혜야~
니가 갈 수 있겠느냐? 나를 위해서? 저는 제가 가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자이고,
부모님도 걱정하실테고 아직 결혼도 안했고, 한번 가면
5년이라는데, 거긴 너무 위험하고, 죽을 수도 있고 등등….하지만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질문 앞에 이것때문에 안된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네! 주님. 제가 가겠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후 가족들에게 이야기했고 그당시 함께
중보했던 가족들 역시 믿음으로 응원해주셨습니다.
결혼도 안한 딸을 다시 위험한 타국으로 보내야하는
부모님이셨지만 어머니는 선교사로 헌신한 딸들은
이미 주님께 드린거다, 살던지 죽던지 주님의 몫이며
어차피 사는 인생, 주님을 위해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만큼
영광이 어딨겠냐고 비장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동생은
막 웃으면서 언니~ 걱정마~ 절대 안죽어. 주님이 그런
영광을 언니한테 주시겠어?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원서를 내도 꼭 가게 된다는 보장이 없었고 현지에서
함께 동역할 사람의 agreement가 있어야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내려놓았을때 다시 주님이 길을 여셨고, 어떤
것이든 제가 순종했기에 주님이 이미 저의 마음을 받으셨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몇개월동안 서류준비와
절차를 거쳐 면접만을 남겨놓은 상태였는데 이상하게
면접날짜가 3번이나 바뀌면서 계속 늦춰쳤습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통해 동생이 우연히 발견한 선교단체 간사
자리에 동생이 직접 원서를 넣어 어플라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별 기대없이 면접을 봤는데 (그날이 NGO단체 면접이
취소된 날이었습니다) 붙게되었고, 다시 주님의 뜻을
구하던 중 그 당시 결과를 통보하기 전에 3일동안 미션캠프에
참석하였는데 제가 이곳에서 좀 더 배우고 교회를 섬기며
동역자를 만나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3개월 뒤, 아프카니스탄 사태가
터졌고 저보고 그곳에 간다고 미쳤냐고 말했던 사람의
전화가 쏟아지면서 안가길 잘했다는 말을 들었을때
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하나님이 왜 갑자기 다른
길로 저를 인도하셨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서류까지 다 통과하고 거의 가는 것으로 확정이 된
상태에서 왜으로 선교단체 간사로 섬기게 하시는지
그때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결혼 그 이후

사실 서른살에 한국을 떠날때는
주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기에 결혼에 대한 마음이 별로 없었는데 타국
생활을 하면서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리스트를 만들어서 구체적으로 기도해야한다고
해서 적다보니 20개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횟수가
지날수록 리스트가 점점 짧아지면서 한국에 온지 1년동안
무수히 많은 선을 보고 거의 포기 상태로 갈 무렵 단
세가지 기도제목만 남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선교헌신자를
만나야한다는 생각에 대상자를 거의 제안하고 있었기에
어려움이 더 많았고 실제로 만나본 사람들중에 사역자나
선교사 또는 헌신자가 있었지만 이성적으로 끌리지않았습니다.

저의 세가지 제목은 첫째는
나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예수님이 삶의 수선순위인
사람이었고 둘째, 교제하면서 신앙의 깊이 있는 부분을
나눌 수 있고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사람, 셋째,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남편을
소개해주신 형제님이 소개 전에 저에게 물으시기를
반드시 선교 헌신자여야만 하냐고 물었을때 저는 꼭
그렇진 않아도 되는데 진짜 크리스천이어야 된다고
대답했었습니다. 그당시 남편은 미국에서 공부중이었고
저는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았었는데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그를 알게되면서 여러가지 상황을
통해 하나님이 저에게 보내신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보고싶어져서
결국 미국으로 날아가는 결단을 감행했습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 결혼을
앞두고 계신 자매님들은 귀한 믿음의 형제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한 액션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워낙 이 세계가 형제가 귀한 곳이라서요. ^^; 우리 두사람은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 그것도 우리가 서로 기도해왔던 배우자를
정말 기가막힌 방법으로 만나게 되었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알게 된지 6개월만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방법이나 이치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우리 안에 계시는 동일한 성령님으로 인해 우리가
서로의 ‘그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참으로
오랜 시간을 기도와 인내로 싸워가며 말도 안되는 배우자상이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음으로 주님의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현재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한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퍼스 사역을 하고 있고,
이번 가을부터는 저도 함께 간사로 섬기면서 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영국에 있을 때 캠퍼스 사역에 대한
비전을 주시고, 학생들에 대한 마음을 주셨던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나의 상황과 여건때문에 주님이
주신 비전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비전이 아니라 야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교를 내려놓고 주님앞에서
빼앗긴 사탕때문에 아이처럼 울고있을때 주님이 저에게
약속을 지키실꺼라 말씀하셨고, 저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는 한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연을 만드시지 않습니다. 제가
있는 이 자리가, 이 사람들이 지금은 제게 주신 선교지임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