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윤영관 교수

KOSTA/USA-2010 Chicago 코스타 보이스에 실렸던 윤영관 교수님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윤영관 교수님 안녕하세요, 코스탄에게 간단히 본인소개 부탁합니다. 그리고 코스타와의 인연에 대해서도 말씀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윤영관입니다. 지금 현재 한국에서 미래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연구하는 ‘한반도평화연구원’의 원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코스타와는 인연이 깊은데 제가 유학생활을 하며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코스타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 코스타를 참석한 횟수는 올해로 네번째인데
요, 일본 코스타에도 한번 참석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평소에 학문과 신앙의 통합,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과 참여에 대해서 강조하셨습니다. 실제로 교수님으로서 가르치며,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으로 일하시며 이를 실천하고 계신데요.
사회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끊임없는 고민이기도 하고, 올해 주제와 연결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 참여’에 있어서 교수님의원칙이 있으신가요?
코스타 참가자들이 주로 미국에서 공부하는 분들인데 각 개인이 공부하고 있는 전공분야를 통해 어떻게 섬길 수 있을 것인가 연구해 보면 길이 다 열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제가 공부하는 국제정치학이 중요한 수단을 제공한 것처럼요. 성경을 보면 ‘화평케 하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에 근거해서 남북한 간에 어떻게 평화를 달성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그런 문제 의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런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국제정치학이라는 분야가 중요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공부하고 있는 국제정치학뿐 아니라 이공계열, 경제학 또는 다른 사회 인문학을 하는 분들 모두 그 전공을 통
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 섬길 수 있을까 연구를 해본다면 각자 제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섬길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공과 삶과 그 신앙이 아우러질 수 있는 그런 접합점이 모색될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안함 사태가 조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 전달되는 한국의 모습은 “의견이 극단적으로 양분화 되어 있다.” 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이 사건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라볼 때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남북의 평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일에 앞서서 더 중요한 어떠한 궁극적 목표는 남북의 화평 혹은 평화인데 이것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 특히 천안함 사태를 그 예로 볼 수 있겠는데 우리는 단호한 의사를 표명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북한 당국에 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이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질러서는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강력한 의지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북한 당국에서 더욱 빈번하게 이런 일을 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우리 측의 지나친 과잉반응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거에요. 한반도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강력한 의사는 전달해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무리하고 강력한 대응은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에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천안함 사태가 어떤 형태로든 종결을 위해 남북은 더욱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상호이익이 되는 어떠한 접합점들을 찾아서 접촉을 늘리도록 협력을 강화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수님께서 탈북자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탈북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바람직한 대처와 접근 자세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탈북자는 한국사회에 어느 소외계층과도 다른 측면이 있어요. 그들은 새로운 정치, 경제 체제에 적응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시장경제에 적응해야 하고 민주주의에 적응해야 하는데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기간에는 상당한 고통이 따르게 되어 있어요. 그런 특수한 상황을 우리 사회가 이해하고 한국 사회에서 순조롭게 적응하도록 도와야 하는데 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만 명 가까운 탈북자들을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면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통일을 위해서라도 탈북자들을 잘 포용하고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지원하는 노하우를 취득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이분들의 노동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통일 이후의 기업활동을 더 잘하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자세로 고용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지원을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그렇게 노력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도 보조금을 지원하고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탈북인들의 사고방식이나 관습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통일 이후의 북한지역에 투자하고 통일 시대의 기업을 희망하는 분들에겐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더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세미나를 올해 맡아 주셨는데요, 세미나 소개를 간단히 해주실수 있으세요?
한반도 평화의 문제는 국제정치와 깊숙이 연관되어 있기에 현재 국제 정세를 개괄적으로 요약할 생각입니다. 국제 정세하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요약과 북한의 핵개발이나 천안함 사태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한 북한 내부의 상황과 딜레마를 다룰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기독교입장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할 것인가? 요약하는 순서로 세미나가 진행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25년을 바라보며, 코스타에 해주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미국에 살며 공부하는 과정에서, 분단과 갈등이라는 아픈 상처의 현장 가운데 있는 한반도의 현 모습을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여기에 남아서 생활을 하든지 한국에 돌아가든지 여부에 관계없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영적인 부흥의 터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지난 25년처럼 앞으로 25년 또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어떠한 영적인 부흥의 터가 되고 부흥의 리더쉽을 행사할 수 있는 코스타가 되어주기를 희망합니다.

[코스타 보이스 – 2010] 시카고 (PDF)

2010년 시카고 컨퍼런스의 코스타 보이스 PDF 파일입니다.

월요일 – 제 25권 1호 통권 128호
cfile7.uf.1972BE164C40B6790BF0FB.pdf화요일 – 제 25권 2호 통권 129호
cfile24.uf.183A1E154C40B6B228F882.pdf수요일 – 제 25권 3호 통권 130호
cfile3.uf.1973DB194C40B6EC1DE417.pdf목요일 – 제 25권 4호 통권 131호
cfile23.uf.1372E1164C40B7151A6B9E.pdf금요일 – 제 25권 5호 통권 132호

[이유정] 나르시즘 콤플렉스 극복하기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 12:25)

그리스 전설 가운데 자신의 미모에 너무 반한 나머지 매일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결국 못에 빠져 익사하고 마는 나르키소스 여신 이야기가 나온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Alchemist는 나르키소스보다 더 한 강적을 보여준다.

오스카 와일드의 나르키소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여신들이 호숫가에 왔다. 그들은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여신들이 물었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호수가 답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호수가 물었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놀란 여신들은 호수의 반문을 의아해 했다.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호수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울고 있는 거예요.”

우리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세속화의 파편에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나르시즘이 주는 마취제에 도취되어 상처 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추구하는 가치도 이웃과 함께 하는 삶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가꾸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자기밖에 모르는 어른의 특징을 한 마디로 ‘자기중심성egocentrism이라고 한다. 자기중심성은 아동심리학 용어로서 아이들이 무슨 일이든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삶의 책임을 지고 인생을 주도적으로 영위해야 할 성인이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 같은 어른으로 사는 모습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 4월, 타이거 우즈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하는 장면을 애틀랜타 공항의 TV 스크린에서 보았다. 깜짝 놀랄 섹스 스캔들로 때문에 세상을 실망시켰던 그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자리였다. 그는 부적절하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백했다.

그때 내 귀를 사로잡은 한마디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고통을 준 사람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 대신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위해 충분히 헌신했고, 이루었으며, 그래서 그 만큼 내가 즐길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의 위험성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인기로 인해 얻은 돈과 명예로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향락에 쏟아 부은 것이다. 자기가 돌보아야 할 아내와 가족, 후원자, 주니어 하이 골프 학교, 친구들, 업계 종사자들을 생각하지 않았다니 얼마나 이기적인 삶인가? 이것이 바로 세상문화가 “자신을 기쁘게 하라”고 가르치는 삶의 결과 아닌가? 현대인은 언뜻 보면 정상인 것 같지만 조금만 눈여겨보면 온통 자기 관심사에 빠져있다. 이것이 바로 ‘나르시즘’Narcissism 콤플렉스에 절어있는 21세기 문화의 단면이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였던 프리츠 쿵켈은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병든 4가지 비극적 자아중 하나를 ‘스타형 이상성격’이라 했다. 이들은 어떠한 대화나 만남이든지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고 찬사를 끌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예배는 이처럼 세속화에 물든 이기적인 본성, 메뚜기 신드롬, 나르시즘, 자아도취, 자기중심적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고 있거나, 무력하게 무릎 꿇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생명력 있고, 매력적이며 패기에 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도전하는 현장이다. 그 결과 자기중심성에 물든 우리의 자아가 하나님 나라의 건강하고 강인한 영적 존재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돈 많이 벌어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역전은 바로 자기중심적 자아가 이타적인 희생적 자아로 변화되는 것이다.

– 이유정 목사


[최주희] 회개와 회복

이번 달 칼럼은 지난 달 칼럼 “혼전 성관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후속 편이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진실을 올바르게 인식했다면, 이제는 이미 혼전 성관계를 경험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회개”이다. 회개는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즉 “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혼전 성관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바른 인식이 먼저 필요하다. “사랑하기에… 유혹적인 환경에서 실수로… 잘못인지 알지만 그 사람의 요구가 너무 강하고 거절하면 떠날 것 같아서… 결혼을 약속하였기에 조금 일찍 성관계를 가지는 것은 괜찮을 것 같아서… 몸을 함께 했습니다”가 아니다. 단순하지만 명백하게 “하나님 앞에 간음죄를 범했습니다”라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여야 할 것이다. 간음은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십계명을 비롯하여 구약과 신약 구석구석에서 죄로 선포하고 있다.

간음죄를 비롯하여 여러 죄악들을 행하는 데까지 이르는 과정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엡4:18-19)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고 그것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가치대로 자기 성격대로 말씀을 해석한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믿는다. 다음 단계는 마음이 굳어진다. 이렇게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떠나게 만들며 영적인 감각을 잃게 한다. 결국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고 모든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fear and respect)하지 않았음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가치대로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지 않았음을 먼저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악한 길, 불의한 생각 가운데 있지 말고 거룩하고 도덕적인 삶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신다.(사55:7, 시103, 요일1:9)

두 번째는 혼전 성관계를 가지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약점을 고치고 보완하여 또다시 죄를 범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원인으로 내실 있는 이성교제가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부족했는지(이성교제가 서로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며 건전하고 성숙한 관계가 되도록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자의 지나친 노출 패션이 남자에게 성적인 자극을 주지 않았는지, 만나는 장소가 은밀하거나 고립되어 있어 유혹적이지는 않았는지,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한 성격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섬세하고 예민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다시는 제공하지 않도록 한다.

세 번째는 성 에너지 관리를 위해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며 야한 동영상을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분하에 폭력적이고 음란한 게임을 즐기며 심지어 사이버 섹스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이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만드는 일이다. 운동과 자연을 많이 접하는 산책은 우리의 정신건강을 좋게 하며 성 에너지도 건전하게 관리해 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음란물에 중독되어 있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영적 싸움으로 단정하고 그저 사단을 대적하는 기도 소리만 높이 부르짖고 돌아서면 다시 음란물을 접한다. 그러고는 사단이 너무 강하여 자신은 무기력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다며 자포자기이다. 혹은 자기 조상의 죄 때문에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다며 묶는 기도, 끊는 기도에 몰두한다. 사람들이 이런 식의 접근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옳지 않은 행위를 사단이나 조상에게 책임전가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해서 자신의 죄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성경적인 잘못된 교리이다.

창조주, 만왕의 왕,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승리하셨으며 사단에게 전혀 영향 받지 않으신다.(욥1:6-7; 엡1:10-13, 20-22, 6:10-20; 야4:6-8; 벧전5:8-9…) 또한 아들이 부모의 죄악을 담당하지 않는다.(렘31:29-30, 겔18:20) 오히려 사단은 우리가 자기관리에 소홀하여 실수할 때 그 실수를 가지고 우는 사자처럼 삼키려 덤벼든다.(벧전5:8 ‘근신하라’는 영어로 ‘Be self-controlled’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절제를 통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또한 믿음을 가지고 진리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삶이다.(엡6:14-17)

야하고 음란한 것들을 피하고 운동과 산책을 규칙적으로 하는 자기관리가 성적인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네 번째는 매일 주님께 자신의 약점을 내어 놓고 도우심을 구한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기를 관리하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다. 물론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들을 벗어버리기 위해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인내해야 하는 우리의 몫이 있으나(히12장),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시다.(대하16:9) 더욱이 주님의 가르침대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려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넉넉하리라 믿는다.(고후7:1, 롬8:37)

하나님의 법도대로 결혼을 통한 부부관계 속에서 떳떳하고 자유롭게 성관계를 즐기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매우 놀라운 축복이다. 하지만 혼전 성관계를 이미 가진 사람들도 철저한 회개와 위에 언급된 회복의 과정들을 온전히 거침으로 충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구세주(Savior)이시며, 동시에 주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인생의 주인(Lord)이 되신다. Praise the Lord!

인터뷰 – 김태평 목사

KOSTA/USA-2010 Chicago 코스타 보이스에 실렸던 김태평 목사님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코스탄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습니다.
저는 미국 코스타를 처음 알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코스타가 좋아서, 코스타에 오는 식구들을 만나고 교제하기 위해서 오고 있는 김태평 목사입니다.
코스타와 남다른 인연을 가지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처음에 코스타에 오시게 되었나요?
1982년에 유학을 나와서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1984년부터 모임의 다른 분들과 함께 워싱턴 지역을 미국의 영적인 예루살렘으로 삼아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86년에 워싱턴지역에 젊은이들을 위한 수양회가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고, 이것이 저희 기도의 응답일지 모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클리블랜드에서 여덟 분과 함께 코스타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렇게 집회에 참석하며 코스타가 하나님께서 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 이후에 코스타에 계속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럼 1회 때부터 계속 참석하신 건가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한 번 참여하지 못했는데, 그것을 제외하고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시면서 이렇게 계속 코스타에 참석하시려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우여곡절은 없었나요?
아버님께서 위독하셔서, 한국에 나가야 했던 해에 참석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번은 코스타가 열리는 주에 회사의 프로젝트 마감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회사에서 누구도 휴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직장 상사에게 휴가를 요청하였다가 거절을 당한 저는 회사의 사장님께까지 휴가를 요청했다가 결국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일 후에 기도하며, 생각을 정리하였습니다. 저는 회사와 집회 참석이 둘 다 중요하고, 집회 참석이 회사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필요를 채우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모두 희생하지 않고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런 생각에도 회사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휴가를 받지 못한 채 해고를 각오하고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제가 집회에 참여하기로 한 후 저 뿐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팀 모두가 열심히 힘을 모아 일했고, 그 결과 프로젝트를 미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프로젝트의 결과가 좋았던 것 물론입니다. 그 이후에 회사에서 제가 코스타에 참석하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코스타의 지난 25년을 거의 다 지켜보셨는데요, 그동안 코스타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처음에 180여 명, 그리고 230여 명이 참석하던 코스타가 오늘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스타가 한 영혼 한 영혼을 복음으로 품었고, 이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여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초창기에는 강사들이 밤새 모여서 집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거기서 나온 의견을 가지고, 다음 날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기존의 프로그램을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큰 역사를 많이 경험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런 식으로 변화를 추구하기에 코스타의 규모와 조직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령님의 역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좋은 멘토링과 상담 시스템도 생긴 것 같습니다.
25주년이 된 코스타에 제안하시고 싶은 점이 있나요?
지금까지 모든 것들이 다 좋지만, 굳이 제안하자면, 복음이 더욱 강조되었으면 합니다. 초반 미국 코스타의 예를 들자면, 집회 참석자의 삼분의 일정도가 복음을 접하고, 받아들이고, 이로 인해 삶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두번째로는 목회자들과 평신도 사역자들, 조장, 조원들이 함께 갈 수 있고, 지역 교회가 서로 더욱 좋은 방향으로 동역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교회에서는 청년을 코스타 집회로 보내고, 청년들도 돌아가서 지역교회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교회의 부족함을 채워서 교회의 덕을 이루며 아름답게 함께 나아 갔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25년을 바라보시며, 코스타를 향해 기대하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제가 경영을 공부했는데, 인간에게 수명이 있는 것처럼, 조직에도 수명이 있습니다. 보통 20년에서 25년을 조직의 수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100년을 가는 조직이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에 특이한 점은, 조직 가운데 지속적인 변혁과 진취가 있지만, 기본적인 가치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코스타가 25년간 주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왔다면, 앞으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길을 주의 깊게 따라갔으면 합니다. 코스타의 기본 가치인 복음과 학문을 가지고, 코스탄들과 그것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께서 코스타에 주신 고유한 것들을 유지해 나갔으면 합니다.
한가지 일화를 말씀드리자면, 1회부터 3회 정도까지 코스탄들의 뜨거운 고민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제가 신학교에 가야 합니까?” 였습니다. 물론 목회자의 길을 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그 이외의 길에 대한 말씀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코스타는 은혜를 받은 분들께 캠퍼스가 mission field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고민하던 많은 학생에게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포스트모던, IT 시대의 코스탄들에게 갈 길을 어떤 식으로 제시해야 할 가를 코스타가 고민하고 제시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