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실] 소그룹의 힘 5: 모험과 경험, 상승작용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만들려고 재료를 사러 장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날 따라 블루베리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오늘 저녁 후식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라고 광고를 한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올 게 뻔해 꼭 만들어야 했는데,
블루베리가 아닌 다른 토핑(topping)은 아직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사과나 산딸기로도 만들 수 있지만 용기가 없어 결국 디저트로 과일만 내놓았다.
그날 저녁 가족들의 실망이 대단했는데, 특히 어느 식당엘 가더라도 먹어 보지 않은
음식은 절대 시키지 않아 늘 같은 음식만 먹는 작은딸이 한마디 했다.
“제게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하시더니 엄마는 왜 새로운 토핑을 시도해 보지 못했어요?”
그때 큰딸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엄마!
내일 우리랑 같이 만들어요. 저희들에게 치즈케이크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전 산딸기 치즈케이크를 꼭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다음날 우리는 블루베리보다 훨씬
더 맛있는 산딸기 치즈케이크를 후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주위의 모든 것이
급변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날마다 우리 삶 속으로 날아드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과 교회 리더십은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모험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리더십이 직면하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회의 성도들 중 많은 분이 아직은 모험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들의 사례를 통해 소그룹 사역이 바로 이 부분을 도울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은 혼자일 때보다 소그룹이 함께할 때 더 큰 모험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소도시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여태까지 친교 중심의 구역예배를 해온 모임들을 전도 목적 소그룹 모임으로 바꾸기 위해 목사님이 이름부터 다 바꾸자고 제안하시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장로님들이 반대하여 온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때, 목사님께서 소그룹에 관한
세미나를 해달라고 부르시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와달라고 하셨다. 갔더니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의
표정이 너무도 살벌했다. 마치 적군이 침입했다는 듯 무장을 하고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분들에게는 모임의 내용과 목적이 어떻게 바뀌느냐보다 이름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더 심각한 문제인 듯했다. 자신들이 익숙한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세미나를 통해 그분들은 소그룹의 목적이
개개인이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생명력 있게 성장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목적을 정확히 알고
모이는 것이 이름부터 다르게 바꾸고 시스템을 다 바꾸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게 된 목사님과 교회 리더들이 구역예배라는 이름은 그대로
둔 채 각 모임을 더 작은 규모로 나누고, 각 그룹에서 자신들의 소그룹에 맞는 좋은 이름들을 붙이도록 하셨다.
그리고 밥 먹고 친교하다가 헤어지는 소그룹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삶을 나누고,
불신자 전도를 위해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속한 소그룹의 성격에 따라 창조적인
이름을 붙이고 이 그룹의 이름으로 선교지를 후원하고 교회 안의 여러 기관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이름으로 시험에 들어 화가 났던 시간들이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그 교회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 소그룹 사역을 활발히 하면서 많은 불신자들이
찾아오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목적을 정확히 알고 소그룹원들이
함께 모험과 변화를 시도하면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는 일이 의외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서로 믿고 후원하는 소그룹 안에서는 큰
감정적 소요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 소그룹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교회 안의 소그룹 사역을
개혁하고자 하시는 목사님들은 이름이나 책임자를 먼저 바꾸는 것보다 새로운 목적과 비전을 심어주어 내면을 먼저 바꾸고 소그룹 안에서 그분들에게 맞는
겉옷을 각자 입도록 하면, 결국 소그룹의 힘을 통해 건강한 소그룹 사역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교회가 겉옷부터 바꿔 입히려다 분란이 일어나서 내면의 변화를 시도해 보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사소한 것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소그룹에서는 서로에게서 자신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일에 필요한 피드백을 얻게 되어 자신감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지금은 탁월한 소그룹 인도자로
사역하고 있는 한 집사님의 이야기다. 그분은 어릴적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 온 탓에 질문 만들기 세미나를 몇 번이나 듣고서도 교회로 돌아오면 자기도 모르게
다시 강의와 주입으로 인도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괴로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리더들이 다 모이는 리더모임을
강의와 지침을 전달하던 시간에서 리더들이 각자 만들어 온 질문들을 나누고 서로에게서 그 질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시간으로 바꾸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그 집사님께서는 정말 지혜로운 선택을 하셨다. 왜냐하면 리더모임을 강의로 이끌면 그 리더들도 그들의 소그룹에서 강의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질문을 나누는 리더모임을 통해 질문을 잘 만들어 오는 다른 리더들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또 자신이 만든 질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서로가 주는 피드백을 통해 알아 가면서 소그룹 인도에서 더 건설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리더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질문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지고 인도하게 된다는 리더들을 자주 만나면서 새롭고 모험이라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소그룹 안에서 함께 의견을 나누고 알아가며
함께 시도하면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변화를 경험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원리는 가족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이고, 그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소그룹의 성원들은 서로 이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고 피드백을 주며 성장과 변화를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
둘째 딸은 큰아이와 달리 수줍고
글로 표현하기를 좋아해 사람들 앞에서 뭔가 발표하는 일은 늘 어려워한다. 그러나 미국 학교는 발표를 통해 학생들이 수업 진행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하기 때문에 자주
발표를 준비하게 한다. 5분 말할 것을 준비하느라 며칠씩 땀을 흘리는 딸에게 “엄마도 너와 똑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기도하며 열심히 노력했더니 이제는 8시간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아이가 준비한 것을 가족들이 먼저 시간을 재면서 들어주고, 좋은 점과 시정해야 할 부분들을
온 식구들이 나눠 주었더니 아이가 점점 자신감을 회복해 사람들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던 연약함을 조금씩 극복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서로를 더 믿고 신뢰하는 소그룹으로서의 가정이 되어 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소그룹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다른 세계관을 배울 수 있게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미국에서도 가정문제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결혼 전에 평안한 가정에서 지내다 결혼과 함께 힘든 삶이 시작되어 회의와 갈등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다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혼은 죄”라는 식의 피상적인 설교나 충고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심으로 교회와 소그룹을 떠나게 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이혼한 분들이나
미혼모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을 돌보기 위한 노력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고, 이분들도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30~40대의 이혼율이 20%를 넘긴
최근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분들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5년 전 남가주 얼바인에서
4명의 소그룹원과 함께 시작한 성경공부 모임이 2년 반이 넘어가면서
100여 명으로 늘고, 소그룹도 12그룹이나
새로 생겼다. 그중에는 자폐아를 둔 어머니들이 모인 그룹, 이혼한 분들이
모인 그룹,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를 뒷바라지하느라 바쁜 부모님들의 그룹,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새댁들의 그룹, 딸과 며느리를 돌보느라 여러 가지로 힘든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모이는 어머니들의 그룹 등이 있었는데, 특히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모이는 그룹은 모임에
나올 때마다 아기용품을 다 챙겨 들고 나오시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다. 리더들을 통해 그분들의 아픔을 듣기는
하지만, 직접 그 많은 분들을 돌보기에는 힘이 많이 부쳤다.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당하는 어려움은
고행할 때 겪는 어려움과는 또 다른 슬픔을 준다. 그래서 많은 경우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때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과 소그룹 활동을 함께 하며 말씀 앞에 자신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나가는지를 보면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현실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를 넓혀 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세계관을 통해 관계의 어려움과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되면서 건강한
회복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때 소그룹은 피상적인 충고와 정죄가 아닌 공감대와 슬픔을 함께 나누며
함께 기도하고 회복을 돕는 따뜻한 하나님의 손길로 쓰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소그룹은 자신들의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여 계속하기 두려워졌을 때, 친밀한 격려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용감한 시도에 대해 소그룹원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소도시일수록 남자들의 도박이
심각한 문제다. 미국 사람들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문화와 삶을 도태시키기 위해 그들의 생활비를 대주면서 보호구역(reservation)이라는 곳에서만 거주하도록 한 뒤, 그 주위에 도박장을 많이 세워 그들에게 주는 돈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도박이야말로 한 사람과 인종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번 도박에 빠지고 나면 목사님이 찾아가서 타이르고, 온 가족이 매달려도 고쳐지지 않는다. 급기야 목사님들이 벼락맞을 거라고 협박성 설교까지 해도
소용이 없다.
내가 아는 한 소그룹은 손가락을
잘라도 발로 도박을 하겠다던 한 형제의 도박벽을 함께 이겨냈다. 도박을 끊으려는 노력이 거듭 실패했지만, 그 형제를
결코 정죄하지 않고 유혹을 견디기 힘든 순간에 같이 있어 주고 기도해 주어 1년 반 만에 그분이 온전히 도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함께 있어 주고, 함께 돌봐 주는 소그룹의
아름다운 기능은 좋을 때보다 위기의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상승작용(Synergy)
시너지(Synergy)는 에너지(Energy)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로,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여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이루듯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 내는 어떤 핵 같은 힘을 말한다.
그 동안 소개한 소그룹의 원리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후원과 소속감의 원리, 학습효과, 변화의 힘,
상호책임의식,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모험과 경험의 원리는 다른 원리지만,
모두 서로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 원리들이 한 개인이 아니라 소그룹에
적용되었을 때, 많은 일들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성취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그룹원들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을 이루어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함께 일할 때 더 큰 동기를 부여하고
더욱더 헌신하게 되어 각각의 재능과 탤런트가 시너지를 일으켜 더 구체적이고 특별하게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몇 사람이 모여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님을 모셔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드는 통에 이분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난감했던 적이 있다. 유치부부터 성인 성경공부까지 교육부 일을 다 맡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사역하다 청년 소그룹 모임과 평신도 리더모임을 통해
여러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분들을 유치부와 유년부, 중고등부와
성인 소그룹의 리더로 훈련하여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교육부만큼은 든든하게 자리를 잡아 갈
수 있었다. 남자들이 모여 무슨 말을 할 게 있느냐며 시작을 꺼려하던 남성 소그룹은 몇 달도 안 되어 수가
배로 증가했고, 모든 교회일에 핵 같은 존재가 되었다.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도 소그룹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함께 모험을 시도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일을 위해 섬기는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다.
[백은실] 소그룹의 힘 4: 상호책임의식(Accountability) “담배 한 대 피우게 5분만 쉬었다 합시다!”
[백은실] 소그룹의 힘 2: 학습효과
지금부터 3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사춘기를 보낸 탓일까. 그 시절 나는 학교에 가고 싶은 날보다 가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모든 과목이 힘들었지만, 체육시간이 내게는 가장 끔찍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미국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 실기와 필기로 나뉘어 있었다. 한 운동종목의 규칙과 경기방법을 강의하고 시험을 본 후, 남은 시간에 실기를 하는 것이다. 체육시간에 A학점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하지만, 필기시험만은 항상 100점을 받았다. 규칙과 방법을 잘 이해해 시험은 잘 봤지만, 실제로 경기를 할 때는 늘 실수를 해 사고를 치곤 했다. 농구시간에 공을 잡아서 패스를 해야 하는데,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들고 뛰다가 제일 키 큰 남학생을 골대로 잘못 보고 점프해서 공을 그 남학생 코에다 박아 코피가 터지게 만드는가 하면, 미식축구 시간에는 공을 받아서 눈을 질끈 감고 뛰어야 할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서 모든 아이가 배를 잡고 구르게 하기도 했다. 수영시간에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한참 잘 가다가 물 속에서 기절해 선생님들을 다 물 속에 뛰어들게 만들기도 했다. 이론을 아는 것은 실제로 경험하여 알 때까지 배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터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듯하다.
Tell me and I will forget, show me and I will remember. Involve me and I will learn.
(말해주는 건 잊게 되고, 보여주는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참여하면 배우게 된다.)
미국에 살면서 자주 만나는 말인데 생각할수록 만고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에드거 데일(Edgar Dale)의 『효과적인 배움』이라는 연구 조사서에 따르면, 배우는 방법에 따라 그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강의를 들었을 때는 5%를 기억하고, 혼자 읽었을 때는 10%를 기억한다. 그리고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는 20%를 기억하고, 누군가 시범을 보여주었을 때는 30%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토론에 참여했을 때는 50% 이상을 기억하고, 실제로 배운 것을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는 75% 이상을 기억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나누었을 때, 그러니까 배움의 적용을 바로 실생활에 응용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을 때는 90% 이상을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나눔이 살아 있는 소그룹에서의 배움은 확실하고 효율적인 교육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소그룹에서 확실한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목적과 건강한 나눔을 인도할 수 있는 훈련된 인도자와 확실한 교육자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소그룹 모임은 중요한 두 가지가 갖추어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그룹 사역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도자가 잘 준비되지 않았을 때이다. 소그룹 사역은 인도자에 그 사역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준비되고 훈련된 인도자는 배움이 있는 살아 있는 소그룹을 위해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교회마다 소그룹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목사님이 평신도들을 소그룹 리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여러 교회에서 소그룹 인도자 훈련을 진행하면서 평신도 리더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사역을 향한 열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막상 실제 소그룹 상황에서 인도자로서 알아야 할 방법들을 모르다 보니 점점 지치게 되어 기쁨으로 시작한 사역이 부담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교회들을 방문해 보면 너무 많은 사역을 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몇 가지 사역만 하더라도 그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평신도 사역자들을 위한 정기적이고 구체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평신도 사역자를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쁨과 의미를 느끼는 전문적인 사역자로 양성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열정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소그룹 사역자들도 나눔을 잘 인도하여 은혜로운 나눔을 통한 배움이 살아 있는 소그룹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기술(SKILL)이 부족한 것을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어떤 기술이든 기술은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방법들을 내려놓고 새롭고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향해 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방법들을 익히기 위해 스스로 도전하고 노력하면, 어느 방면에서든 전문가적인 기술을 가질 수 있다.
26년간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해 왔지만 15여 년 전, 성경발견학습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나기 전에는 소그룹 인도를 강의식으로만 해왔고,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서재에는 많은 주석서가 있었고, 매주일 주제별 성경교재를 가지고 여러 주석들을 동원에서 좋은 강의 하나씩을 준비해 가면 그룹원들로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 칭찬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강의하는 것이 좋아서였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미리 공부해서 전달하는 소그룹 인도자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리더십 개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을 때이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 소그룹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소그룹의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그룹을 나누어 인도자를 세우려고 하면 아무도 인도자로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처럼 주석이나 참고자료가 풍성하지도 않았고, 또 나처럼 아는 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데만 익숙했던 그들은 스스로 먹고 또 다른 사람들을 먹여주는 일 앞에서 도무지 자신이 없어했고 쥐어주는 숟가락을 자꾸만 떨어뜨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브레이크 인도자 훈련 워크숍에서 성경발견학습(Discover Bible Method)이라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방법은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귀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주입해 주는 강의를 편하게 들어왔던 소그룹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왜냐면 성경발견학습은 강의식으로 인도하는, 소그룹원들이 인도자 혼자 뛰는 운동경기를 관람자로 앉아서 구경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소그룹원들이 모두 함께 직접 경기에 참여하여 뛰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성경발견학습이란 소그룹의 성격에 맞는 열린 질문(개방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귀납적 학습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도입과 관찰, 해석과 적용의 점진적 질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학습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질문이다. 성경 본문을 위한 귀납적 질문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한국에서 여러 기관이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발견학습과 기존의 귀납적 공부와의 차이는 맞춤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미 교재에 다 나와 있는 질문이 아니라, 뼈대가 되는 질문이 어느 정도 나와 있는 교재를 가지고 그룹의 신앙 정도와 성격에 맞는 보충질문을 인도자가 만들어 쉽고 마음에 와닿는 진행으로 인도하는 것이 성경발견학습이다. 보충질문들은 도입질문과 관찰질문, 해석질문과 적용질문들로 본문 속에서 만들어 내고, 인도자는 강의를 하지 않고 그 질문들을 통해서 소그룹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그 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소그룹의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는 까닭은 질문을 받고 스스로 고민하고 애써서 발견한 진리는 강요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강의식 인도를 하면서도 가끔 질문을 던지곤 했지만, 질문 만들기를 배우고 나서 뒤돌아보니 나의 질문들은 대부분 주입식 질문이었고 폐쇄형 질문이었다. 좋은 질문 만들기 강의를 통해 확실한 답을 얻은 나는 새로 배운 발견학습방법을 소그룹에게 바로 적용해 보았다.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던 시간에 머리를 싸매고 질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질문들을 소그룹에 던져 보았다. 그 후 내가 인도하고 있던 소그룹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소그룹원들이 말씀을 그들의 삶에 적용하고 주중에도 전화를 걸어 말씀이 자신들에게 준 놀라운 발견들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한 듯한 기쁨이 찾아왔다. 모일 때마다 풍성한 나눔의 장이 열렸고, 말씀과의 깊은 만남은 사람들을 실의와 절망에서 일으키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새로운 리더들이 기쁨으로 헌신했고, 많은 소그룹이 교회 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교회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서 담임목사님이 6개월도 넘게 공석일 때가 있었다. 이민 교회 현실에서 상당히 이동이 많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 명의 교인도 요동하지 않고 교회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후원해 주며 말씀을 깊이 배우고 나눌 수 있었던 소그룹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소그룹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십수 년을 구체적인 교육 없이 강의식 인도자로 살아왔던 나는, 성경발견학습으로 인도하면서 건강한 나눔이 얼마나 엄청난 학습효과를 주는지 현장에서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다. 힘든 노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했지만 성경발견학습법을 열심히 익히며 맞춤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던 중, 전혀 기대하지 못한 때에 미국 교단의 부름으로 소그룹 사역자들을 훈련하는 강사로 서게 되었다.
소그룹 인도자 워크숍에서는 성경발견학습과 소그룹의 원리, 상황 대처법, 소그룹을 통한 전도와 실습 등을 훈련하게 되는데, 참석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성경발견학습이다. 이 학습법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 만들기’를 학습하고 직접 질문 만들기를 해보게 하고, 만든 질문들을 수정해 드리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어문화가 질문보다는 주입식이기 때문에 질문 만들기를 힘들어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소그룹 모임을 시작할 때는 어색함과 침묵을 날리기 위한 도입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적인 질문보다는 일반적인 질문, 심오한 질문보다는 재미있는 질문, 성경적인 지식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질문이면서도 오늘 나눌 말씀과 연관될 수 있는 질문이 좋은 도입질문이다. 도입질문으로 나눔을 시작하고 본문을 합독한 후, 관찰질문과 해석질문으로 들어간다. 관찰질문은 본문 속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고, 해석질문은 답이 본문에 그대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본문을 근거로 관찰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성경발견학습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적용질문으로 하는데, 적용질문을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를 질문하여 다른 사람이나 교회를 비판하는 적용보다는 스스로에게 주시는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과 과거 상황에서의 적용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오는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를 질문하여 미래지향적인 답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이 학습법은 그 후 15여 년이 넘게 맡아 인도해 온 모든 소그룹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했고, 귀한 분들과 나눈 아름다운 시간들과 말씀들은 내게 생명과 같은 배움과 축복을 주었다. 수없는 감동의 나눔들이 기억 속에 있지만, 여호수아서를 공부할 때 소그룹에서 나눈 것들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싶다.
“좋은 리더가 떠나고 새 리더가 섰을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라는 도입질문으로 시작했더니 진지하고 재미있게 한국에 살 때 대통령이 바뀌던 때의 심정부터 교회에서 목사님이 바뀔 때의 느낌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여호수아를 합독하며 관찰질문과 해석질문들을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을 남겨 준 발견질문이 있었다.
“3절 말씀에서 어떤 땅을 다 주신다고 하셨나요? ”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주신다고 하시네요.”
해석질문으로 “그때 당시 누가 땅을 발바닥으로 밟고 다녔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을까요?”라고 질문하자, 모든 소그룹원이 아마 노예들, 종들이었을 거라고 대답하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왕과 같은 자세로 그 땅을 정복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수고하고 섬기고 순종하며 그 땅에 나아가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명하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나요?”라는 적용질문이 던져지자 많은 소그룹원이 편하게 어떤 일을 이루어 보려고 기도하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자신들이 맡은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갈 때, 왕같이 군림하고 편안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수고하고 더 노력하며 섬기는 자세로 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나누어 주셨다. 그 다음주에 세미나 인도를 위해 한국을 나왔을 때 짧은 기간 안에 여러 도시와 교회를 다니며 긴 일정을 소화해야 했을 때, 좀 쉽고 편하게 사역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그 때 주신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나의 심령을 바로잡아 주었다.
소그룹은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많은 여건을 갖춘 곳이다. 후원과 소속감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말씀을 앞에 두고 깊이 경청하며, 또 좋은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져서 고민하고 생각하면, 그 시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각자에게 꼭 필요한 적용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신다. 소그룹은 참석자들로 하여금 대화의 기술과 발표력, 관계 형성의 중요한 윈리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원리들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중요한 기술이다. 특히 질문 대화법은 일상 생활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대화의 삶을 여는 소중한 재산이 된다.
[백은실] 소그룹의 힘 1: 후원과 소속감
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은 전 미국을, 아니 온 세계를 충격과 슬픔 속에 몰아넣었다.하지만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조승희 사건 같은 대형사건 외에도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자식이, 친한 친구들이 서로 때리고 죽이고 자살하는 끔찍한 일들이 곳곳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이제 미국은 사회단체와 학교, 병원이 힘을 모아 사람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분노와슬픔이 얼마나 심각한 살상무기로 변할 수 있는지 인정하고, 예방과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실행하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람의 내면을 세심하게 돌보는 일은 많은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하기 어렵다. 소그룹 모임에서, 특히 소그룹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각 개인의 마음이 열리고,용납받고, 상처가 치유되고, 돌봄을 받아 건강한자아상을 회복하는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최근 각 분야에서 소그룹 안에서 일어날 수있는 놀라운 역사들을 인식하면서 많은 한국 교회와 기업들이 소그룹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도입하고 있고, 가정 사역도 더욱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모든 리더가 소그룹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교육을 통해서 영혼 구원과 전인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작은 교회로서의 소그룹을이끌어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소그룹 전문 사역자로 미국의 여러 교회와유수한 기업체의 소그룹 리더들을 훈련하고 멘토하시는 데이비드 스탁(David Stark) 목사님으로부터, 소그룹의 원리와사람들이 소그룹을 통해 어떻게 단계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해 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 막연히‘소그룹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어야 한다’ 정도만 알고 있다가 구체적인 원리들을 배우고,또 그 원리들을 실제 소그룹 활동을 통해 확인하면서 소그룹에 대한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정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소그룹의 주요 원리가 숨어 있는단계들을 거치면서 믿음이 성장하고 삶이 변화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먼저 후원과 소속감으로 소그룹의 일원이 되는 기본적인 단계를 거친다.그리고 함께 공부하면서 혼자 할 때보다 더 엄청난 학습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그 후, 삶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또, 변화되는 삶을 위한 서로의 결심과 노력을 존중하고 도와주는 상호 책임의식은자신 없고 두렵지만 새로운 삶과 습관을 시도해 보려는 모험을 가능케 하고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한다. 이 모든 단계를 거쳐 결단하고 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리더십의 단계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을 후원하고 소속감을 주며 양육할 수 있는새로운 리더가 탄생하게 된다. 이 모든 단계들이 어우러져서 성공적인 소그룹의 반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들은 이 보이지 않는 원리가 건강하게유지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는 시각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소그룹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소그룹을 편안하면서도 건강한 유기체로 성장시킬 수 있다.
(커피브레이크
소그룹 인도자 워크숍 강의안 10쪽)
소그룹이 주는 후원과 소속감
소그룹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영적 변화의 단계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후원과 소속감의 원리는 소그룹 사역자와 리더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가장 소홀히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구든 개인적으로, 또 영적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 반드시 소속되어야 하는 간절한 필요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신 후 홀로 있음을 보고 “보시기에 좋지 못하다”고 하셨다. 관계의 하나님께서 우리도 관계를 열망하고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셨기에, 우리는 관계에서 아픔을 겪고 난 후에도 또 다른 관계를 열망하며 끊임없이 어딘가에, 또 누구에겐가
소속되기를 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미국에도 갱단 조직이 많다. 슬픈 것은 그 갱단 중에 한국 청년들로 구성된 조직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청년들 중에는 의외로 이민생활에 성공하여 기반도 든든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가정의 자녀들이
많다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좋은 집을 두고 왜 이렇게 길에 나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사느냐고 물으면 “I
belong here!”(난 이곳에서 소속감을 느껴요!)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가족과 집에서
느끼지 못한 소속감을 갱단의 친구들에게서 느끼게 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사랑과 구원을 부르짖는 가정과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것일까?
결혼하고 나서 약 15년을 남편의 연구소가 있는 미국 남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며 주일학교와 새신자 소그룹을 맡게 되었다. 인근 대학교에서 한인 학생 성경공부 인도도 함께 하고 있었지만, 학생 사역은 학생들의 섬김으로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주일학교도 몸이 힘들긴 해도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서 나름대로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가장 어려운 사역이 새신자 그룹 인도였다.
처음 새신자반 소그룹을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좀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 사역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돌보아야 할 사역 대상자들이
거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예전에 잠시 믿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그들 모두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소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그룹의 구성원은 거의 대부분 국제결혼을
하신 분들이었다. 국제결혼도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적부터 공부하며 미국인과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만나 결혼한 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온 분들도 있다. 그때 그 소그룹 구성원들은 거의 두 번째 케이스로 남편을 따라와서 낯선 곳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한 탓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님의 사랑과 비교하여 설명할 수도 없었다.
소그룹 사역을 향한 나의 비전과 헌신, 대학교 때부터의 경험과 훈련 같은 것들은
그분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었다.
그분들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토해 냈다. 요리책을 보고 열심히 김치를 만들어 가져다
드리면 “이렇게 맛없는 김치는 찌개를 해도 맛이 없어”라고 하셨고, “내가 그쪽같이 좋은 부모 만나 공부하고 결혼 잘 해 잘 살면
나도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 믿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찾아갈 때마다 거부감을 표현하는 거침없는 말들 앞에 목까지 올라오는 눈물을 삼킨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꽤 늦은 밤에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을 늘 부정적으로 말하며 가장 험악하게 거절하던 자매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손목을 그었다가 다행히 목숨은 건졌는데,
너무 이상한 것은 정신이 들자마자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절박한 순간이 오니 하나님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그분이 병원에 있는 동안 곁에 있던 내게 마음을 여시더니 두 살 때 길에 버려진 이후
기구했던 자신의 삶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그동안 내게 찾아온 힘든 나날들, 병약했던 어린 시절들을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친해지게 되었다.
병문안 온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삶을 포기하려고 손목을 그은 그
자매를 눕혀 놓고,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서글픈 자신들의 삶을 서슴없이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방인처럼 나를 대하고 무섭게 거절하던 분들까지 만삭의 몸으로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것에 감동하셨다며 귀하게 여겨 주시고
돌봐 주기까지 하셨다.
그분이 퇴원한 후 우리 소그룹은 수가 두
배로 늘었다. 그분들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공감대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아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면 모두 가면을 벗고 서로의 아픔과 연약함, 슬픔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것 같았다. 소외되고 외롭던 그들에게 소속감을 준 소그룹 모임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의 밭이 부드러워지고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나님의 말씀이 재미있다며 동네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의 삶이 회복되도록 서로를 돕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손목을 그었다가 퇴원한 자매가 몸을 회복하기까지 모두들 함께 도왔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도록
힘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골수암에 걸린 자매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을 때에도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을 해다 주며 다시 일어설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도 모두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오셔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소그룹 모임을 인도할 때나 다른 교회
일을 해야 할 때는 차례로 우리 아이들을 업고 안고 돌보아 주시기도 했다.
우리 소그룹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기 시작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신이 아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후원해 주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어딘가에
속하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도움과 후원을 받고 싶었던 그들은, 교회보다 먼저 소그룹에서 하나님을 어렴풋이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같은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후원을 주고받는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들의 마음이 소그룹의
돌봄과 사랑으로 부서지고 부드러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풍요롭게 준비되어 갔다. 그리고 그들은 기쁨으로 교회에 등록했고,
성가대와 아기방에서 봉사하고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며 말씀 가운데 삶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 새신자 소그룹은 어려웠던 개척교회를 잘 섬기고 부흥시킬 일꾼의 산실이자 요람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서 빨리 그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지난 25년간의 소그룹 사역 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나고 그리운 소그룹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 얻은 소중한 경험은 이후의 소그룹 사역을 풍성하게 해주는 보석 같은 재산이 되었다.
먼저, 사람을 개발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소속감과 후원임을 많은 사례를 통해 체험하게 되었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이 소속감을 얻고 힘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 바로 소그룹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를 후원하는 아름다운 소그룹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리더부터 힘빼기를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몸에 힘을 빼야 물 위에 뜰 수 있는 것처럼, 리더라는
위치로 누르거나 지배하려는 힘을 온전히 뺄 때,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영적인 권위를 주어 띄워 주시는 것이다.
그런 소그룹은 사람들의 연약함과 실수를 받아주고
용납해 주고 안아 주는 그런 공동체이다. 리더가 자신의 연약함을 투명하게 나누면 그때부터 힘빼기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리더
앞에 자신들도 투명해지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안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들이 연약함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리더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함이 자랑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시듯,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재촉하거나 협박하지
말고 곁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소그룹원과 리더의 역할이다. 강요로는 마음을 열고 나누는
일을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처와 절망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의 가정이, 큐티방이,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이 그들을 안아 주어야 한다. 그들의 내면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도울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와주고, 그들이 소속감과 기쁨을 누리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소그룹이 되어 주어야 한다.
도움을 받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하나님에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느끼고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인도할 친밀한 소그룹이 먼저 필요하다. 친밀한 사람들끼리는 나눔이 자연스럽다. 나눔은 내면의 회복을 준다. Depress(눌림)의 반대말은
express(표현)이다. 자신을 표현하기에
안전하고 편안한 소그룹은 치유와 회복을 주고,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시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고 그들의 필요를 후원해 주는 친밀한 소그룹이야말로 하나님을 모르거나 떠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강력하고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과
소그룹 모임들이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안내하는 세상의 소망으로 곳곳에 우뚝우뚝 푸르게 심어져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