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재석 대표

KOSTA/USA-2010 Chicago 코스타 보이스에 실렸던 서재석 대표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서재석 편집장님, 오랜만에 코스타를 다시  찾으셨습니다. 코스탄들에게 하시는 일과 더불어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저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다섯 회 연속 코스타를 왔다가 7년 만에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IVP 와 복음과 상황에서 일하다가 2004년도부터는 Young2080 이라는 청년들을 돕는 단체에서 출판과 행정을 맡고 있습니다. 이번에 와서 그리스도인의 책읽기에 대해서 강의하고 또 여러 스태프들과 교제하고 참가자들과 대화하는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오랫동안 문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출판계를 지켜보시면서, 변화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금 현재 한국의 출판시장, 특히 기독교 출판시장은 10년 넘는 장기 불황을 맞고 있어요. 기독교 인구가 줄어든 원인도 있지만 기독교 서적은 늘어가는데 출판은 부실한 상황입니다. 특히 한국교회의 청년들은 오랫동안 기독교 도서를 읽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오랜 생활을 해 왔는데, 필요한 기독교적 지성을 많이 쌓기 위해서는 책읽기와 같은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자기 성장과 자기 훈련을 해 나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코스타에서 다양한 책들을 접하고 추천받고, 코스타 이후에는 그 책을 읽고 정리하고 또 자신이 속해있는 교회 또는 소그룹에서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포스트모던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포스트모던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사실 신앙적으로는 포스트모던시대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포스트모던시대에 역시 중요한 것은 크리스천 베이식이 아닐까요? Q.T나 기도 또는 자기 훈련을 겸한 독서생활. 이런 것들로 크리스천 베이식을 든든히 하는 것이 역시 포스트모던시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상황에서 편집장으로 일하셨습니다. 복음과 상황이 생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치열하며 고민하는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은 물론 복음과 상황이 시작되었던 시대적 상황과 다를 텐데요. 요즘 시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일까요? 이를 위해서 어떤 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며, 기독교계가 그 일들을 어떻게 하면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온라인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양하게 자기 목소리를 표출하는 시대가 되다 보니, 잘 걸러지지 않은 채로 여러 의견이 난무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가운데에서 ‘복음과 상황’이라는 잡지는 15년이 넘도록 기독교 복음주의권의 사회참여라던지 또는 복음주의적인 생활과 활동을 많이 강조했는데 여전히 그럴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 비해서 한국교회의 상황이 많이 나아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복음과 상황’ 같은 목소리를 내는 약간 중도적이면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는 잡지나 오피니언들이 필요한데, 청년들이 관심을 갖고 그런 분야의 좋은 필자로 개발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90년대 이후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점점 개인주의화 되고 물신주의로 나아가게 되면서 교회 안에서 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어요. 자신이 가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주일예배 정도로 만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데 그런 것은 굉장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특별히 코스탄들은 그런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섬김과 희생을 개발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가 25주년이 되어 코스타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 민족, 땅끝’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복음과 민족, 땅끝이라는 이슈에 코스타가 끼친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평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건설적인 비판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 코스타의 25주년은 기념비적인 행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른들이 뒤에서 후원을 해주셨지만 이름도 빛도 없이 섬겨주신 간사님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특별히 코스타를 통해 은혜를 받고 자각한 분들이 후배들을 섬기는 이런 전통이라든지 정신은 굉장히 놀랍습니다. 모국교회에서도 이런 운동은 찾아 보기 어렵기에 오히려 역수출되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태평 박사님도 코스타 보이스에서 말씀하셨지만, 하나의 조직이나 기관이 20-25년 되면서 하나의 터닝포인트를 맡게 되는데 이런 시기를 어떻게 건설적으로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와 같은 시카고 코스타의 분위기는 계속 유지되면 좋겠고, 특별히 복음적인 면을 더욱 강조해서 믿지 않는 분이나 신앙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와서 복음의 기초를 다시금 쌓고 회심할 수 있는 장이 계속 열렸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신앙적인 기초가 있는 분들은 더욱 튼튼해지셔서 그것을 자신의 학문영역과 신앙생활 또 지역교회에서 어떻게 섬길 것인가 깊이 고민하는 코스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번에 책읽기에 대해 세미나를 해 주시는데 세미나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약간 우스갯소리지만 사실 코스타에는 정말 뛰어난 간사님들과 찬양팀 그리고 좋은 소그룹 멤버들과의 환경 속에서 다른 때보다 조금 업그레이드된 듯한 분위기 속에 저희가 있게 되는데 한 주가 지나 다음 주 이 시간이 되면 우리는 우리가 소속된 곳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타에서 받은 좋은 영향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기도와 QT 같은 기본적인 신앙생활 뿐 아니라 코스타에서 소개받고 구입한 책들을 계획을 세워 천천히 읽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좋은 저자들 또는 관련된 주제별 책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30-40 권의 중요한 책 리스트를 자료와 함께 소개할 계획인데 이번 코스타에서 혹은 다른 방법으로 구입하셔서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특히 책읽기가 자기 자신을 더욱 성숙시켜 나가는 밑 재료가 되고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한 귀한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려고 합니다.
포스트모던 세대에게 특별히 소개해주시고 싶은 책이 있나요?
저자들 가운데는 고전적으로 훌륭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저자들이 많은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존 스토트 목사님이나 유진 피터슨, 필립 얀시, 이런 분들을 좋아하고 이런 책들이 여전히 많이 읽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포스트모던시대를 맞이해 많은 emerging writer 들이 있는데 그중에 브라이언 맥클라렌이라는 분이 쓰신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온다’ 라는 책은 이전의 책들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책인데요. 특별히 믿음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포스트모던시대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신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책이기 때문에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책을 관심 있게 보라고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집회에 참가한 코스탄들에게 좋은 조언 한 말씀 부탁하겠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신앙을 갖게 되지만, 신앙이 자라는 것은 공동체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단 한 사람만이 모든 은사를 소유한 것이 아니고 또한, 아무런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없기에 내가 가진 은사로 기꺼이 도움을 줄 필요가 있고 또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받을 필요가 있어요. 서로 함께 성장하고 함께 자라간다는 의식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이 속해있는 소그룹이라던지 자신의 지역교회나 캠퍼스 공동체에서 필요를 발견하고 돕기도 하고, 또 자신이 가진 은사는 과감하게 발휘해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재석] 새벽을 열었으니, 다음은 무엇인가?

이코스타 2004년 1월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새벽사람 전성기』

(규장, 2003), 오정현 지음, 207, 8천원


지난 가을, 서울 강남 사랑의교회엔 새로운 일이 여러 가지 생겼다. 1978년부터 이 교회를 개척, 성장시켜 온 옥한흠 목사에 이어 25년 만에 그의 애제자 오정현 목사가 새 담임목사가 된 것과, 오 목사가 부임하면서 연일 만당(滿堂)을 이룬 40일 특별새벽기도회(2003. 9. 8-10. 18, 이하 특새)를 열어 교계는 물론 일반 뉴스에서도 다루어지면서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40일간의 특새, 그 기적 같은 부흥의 비밀이 궁금하던’(뒷표지 문안) 터에 신속하게 그 전말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 주는 책이 규장에서 『새벽사람 전성기』란 제목으로 나왔다.



이 책은 새벽 불길, 새벽 축복, 새벽 성령, 새벽 믿음, 새벽 대첩이란 ‘새벽’(at Dawn)으로 시작하는 5개의 큰 주제 아래 오 목사가 전한 18편의 메시지를 나눠 수록하고 있으며, 각 장 말미에 특새에 참석했던 이 교회 성도들의 이런저런 짤막하지만 감동적인 소감과 간증을 ‘새벽 감격우리는 새벽파’란 꼭지로 묶어 소개한다. 이와 함께 규장 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챕터별 요약이 ‘새벽 신앙 불멸의 법칙’이란 꼭지로 곁들여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오정현 목사는, 한국교회의 7, 80년대 고속성장을 주도한 1세대 유명 목회자들의 명예로운 은퇴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의한 리더십 이양을 제대로 준비하지도, 단행하지도 못한 채 꼼수와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일부 그러나 영향력이 적지 않은 대형교회와 단체들이 세습의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한국교회 전체를 우울하게 하고 있는 가운데, 교회 안팎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면서 비교적 건전한 세대 교체의 주인공이 됐다. 특히 합동측 교회갱신 운동의 모체요 실질적 본산이며, 교계연합운동에서 제3의 기구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국목회자협의회의 중추적 구실을 하면서 복음주의권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교회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바톤을 이어 받아서 어떤 목회, 어떤 사역을 전개할 지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부흥회 식 전도를 넘어 교회성장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8, 90년대를 풍미한 평신도를 깨우는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이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6, 70년대의 전통적인 목회방식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특새란 뜻밖의 카드를 꺼내 일단 성공을 거둔 것은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펼쳐질 본격적인 사역을 준비하는 워밍업 훈련으론 제격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그래도 강남기독중산층을 대변하면서 나름대로 균형감을 잃지 않았던 이 교회가 점점 오른편으로 향하는 신호탄 아니냐는 염려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오 목사의 메시지들은 남가주 사랑의교회를 개척하면서 짧은 시일에 대표적인 이민교회로 성장시킨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주로 개인 구원의 감격과 대를 잇는 가족의 평안, 그리고 전도와 선교를 통해 교회의 성장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보수 신앙에 충실해 특새와 같은 시간대에 전달하는 메시지로 손색이 없다. 문제는, 그것들을 넘어 이미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가 되어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이 교회가 세대 교체 이후 앞으로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에 걸맞는 메시지가 전해지고, 새로운 교회상()을 정립해 나갈 것이냐에 있는데, 이제 새벽을 연 데 불과하기 때문에 좀 더 느긋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한편 이 책에는 ‘새벽기도 로드맵’이란 재미있는 상자 기사들이 군데군데 나오는데, ‘부모의 새벽기도 자녀의 평생축복’ 같은 새벽기도 구호, ‘내 믿음의 전성기를 주옵소서’ 같은 새벽기도 격문, ‘저녁 9시 이후에는 절대로 영화나 TV시청을 하지 말라’ 같은 새벽기도를 위한 몸 관리 프로젝트, 12가지 건강비결, 새벽기도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5가지 습관, 영적 부흥을 위한 9가지 열쇠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 압권은 171면에 나오는 40일간의 특새에 개근 또는 정근한 성도들에게 수여한 기념 동판으로, 일명 ‘영적 마패’로 불리면서 평강과 은혜 마패, 제사장 마패 같은 위력이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 책과 함께 특새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테이프를 묶은 오디오북(테이프 4, 1만원)도 나와 있다.


[서재석] 화보로 보고 읽는 루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르틴 루터』

파울 슈레켄바흐·프란츠 노이베르트 지음, 남정우 옮김,


예영커뮤니케이션, 4×6배판/양장/438, 2만원


새해 첫 달을 루터를 읽으면서 시작하는 건 어떨까. 그것도 단지 두꺼운 텍스트를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135면에 달하는 풍부한 화보와 함께 보면서 읽는 루터와 종교개혁이라면, 어떤가? 솔깃해지지 않는가.


1916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루터의 종교개혁 400주년을 기념해 나온 이 책은, 독일에서 초판 10만 부가 완전히 매진되었다. 서문에 밝힌 대로 “이 책 어느 곳에서도 루터를 미화시키려는 시도는 볼 수 없고 그의 결점과 실수가 명확하고 노골적으로 지적”된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를 줄 만 하다.


이 책은 21장으로 나눠 서술한 전기, 화보, 주요 문헌자료, 인명·지명 색인 등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독특한 매력 가운데 하나는, 책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384점의 진귀하고 다양한 화보를 보는 재미인데, 회화·도화·동판화·목판화·메달 등에서 저자들이 직접 고른 신뢰할만한 사진 자료들은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구입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나온 책 가운데, 이 정도로 방대하고 풍부한 루터 관련 화보집은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루터와 관련된 주요 문헌자료에는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된 ‘95개조 논제’(1545)를 비롯해 루터의 주요 편지들이 수록돼 있어 쏠쏠하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은 화보 못지 않게 방대한 인명·지명 색인으로서, 100면 가까운 분량에 루터 시대 인물 134명과 30여 지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수록돼 있어, 이 책 한 권이면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습득하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서재석] BBC의 모델, 존 아저씨의 책들

2003/12




1977년 선배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회심을 경험한 나는 그 이후 지난 25년간 수많은 사람들과 책, 모임 등을 통해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아 왔다. 그 가운데는 내 정서와 기질에 맞아 따르거나 본받고 싶은 깊은 감동과 큰 영향력을 준 것도 있지만, 나와는 어째 영 맞지 않아 피하거나 멀리하고 싶게 만든 것들도 있다.


그 가운데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책으로 만난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이다. 존 아저씨라고도 불리우는 이 분의 책을 읽으면서 기독교 신앙이란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됐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눈뜨게 된 것 같다.


우연히 접하게 된 생명의말씀사에서 나온 문고판 『기독교의 기본 진리』(Basic Christianity)를 읽으면서 제목 그대로 기독교의 베이직(Basic)을 견고하게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애매모호하기만 하고, 아무도 명쾌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서 그저 믿으라고만 하던 죄의 정의, 부활의 확신, 그리스도를 영접(초대)한다는 것의 의미 등이 쉽고 분명하게 정리돼 있는 이 책을 통해 나는 비로소 기독교인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이 책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내수동교회 형제자매들의 신앙고전이 되면서 소그룹 모임 등에서 널리 읽혀지고 이야기되면서 사랑 받는 책이 되었다.


존 아저씨(Uncle John)의 책들은 한 마디로 BBC 신앙을 길러 주었다. BBC는 성경적이고(Biblical) 균형잡힌(Balanced) 기독교(Christianity)의 약자로, 비성경적이거나 부분 성경적인 가르침이 편만해 있고, 아무런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이상하고 왜곡된 기독교를 좋아하는 한국 교회 풍토에서 자란 우리들에게 성경적으로 생각하며 자라 가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생각해 보면 우리네 신앙이라는 게 내가 알고 영향 받은 어느 하나의 사상과 흐름에 사로잡힌 채 다양하고 폭넓은 이해와 실천에 어색해 하는 균형 잡히지 않은 신앙인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존 아저씨의 책들을 통해 이런 게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식의 편협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영국 성공회 목회자인 존 아저씨의 성경해석과 신학사상은 건전하기로 정평이 나있는데, 특히 그가 책임편집자로 신구약이 거의 완간된 강해설교 BST(Bible Speaks Today) 시리즈는 성경공부와 성경묵상을 훈련받는 청년 시절에 꼭 읽어볼 책들이다. 존 아저씨는 이 시리즈의 산상수훈, 사도행전,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데살로니가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주로 IVP에서 역간되었다)를 특유의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저술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귀로 듣는 설교와 함께 눈으로 읽는 설교의 전범을 꼽을 때 마틴 로이드존스의 책들과 함께 첫손가락에 꼽는 책들이다. 웬만한 주석에 비해 나으므로 관심 있는 독자들은 구입해 가까이 두고 읽어보자. 에베소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God’s New Society)라는 제목이 보여 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잘 풀어 주고 있어 성경 이해는 물론 구원에 대한 이해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존 아저씨는 설교만 잘 하는 전형적인 목회자가 아니다. 그의 관심은 현대 사회 문제와 전도와 선교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민하고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슈들과 관련해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성경만이 아닌 사회로부터도 이중적인 귀기울임(dual listening)을 해야 할 필요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존 아저씨에 대한 내 관심은 그의 기독교적 지성(Christian Mind)과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성경관찰, 해석, 탁월한 문장에서 영향 받은 바 크지만, 뜻밖에도 그는 전도만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강조해 지난 30여년간 복음주의 운동권의 이정표를 세운 로잔언약(1974)을 기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어바나 선교대회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학생사역을 방문해 말씀으로 돕고 격려한 전도와 선교의 대가이기도 하다.


이제는 80을 넘은 노년기를 살아가는 그의 삶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기도 나와 있는데, 출생에서 1960년까지 전반부 생애를 다룬 작은 글씨에 6백쪽이 넘는 티모시 더들리 스미스가 쓴 『존 스토트』 같은 전기는 큰 맘 먹고 이 가을밤 한 주간 정도 깊이 빠져 볼만한 책이다. 같은 편집자가 존 아저씨의 50여종의 책들에서 주제별로 발췌해 만든 『진정한 기독교』(Authentic Christianity) 같은 책은 존 아저씨의 신앙과 신학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괜찮은 다이제스트이므로 한 권쯤 구비해 두자.

[서재석] “아는만큼 누리는 예배” 송인규 지음

2003/11




정말 제대로 알고 예배 드려야겠군!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 (홍성사, 2003),

송인규 지음, 233, 78백원


 


요즘은 조금 뜸해지고 그 열기가 식긴 했지만, 80년대 중후반과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송인규’란 이름 석 자는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다. 그는 여러 책과 강의를 통해 기독교적 지성(Christian Mind),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 등 당시만 해도 고답적인 신앙 풍토가 만연하던 시절에 신앙 생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신선한 개념들을 많이 소개했으며, 기독 청년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그의 독자들은 통과의례처럼 그의 책을 탐독하면서 비로소 궁핍한 시대를 넘어 무언가 말할 게 있고, 생각할 게 있고, 따져 볼 게 있는 기독교와 신앙 생활에 입문하게 되었다.



예배에 대한 설교식 에세이


저자로서의 송인규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번역서와 설교 녹취 위주의 우리네 기독 출판계,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권에서 아마도 본격적인 의미에서 저술 작업(Original Writing)을 해 온 선두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 이전에도 훌륭한 자질을 지닌 한국인 기독 저술가(Korean Christian Writer)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무언가 아쉽고 여전히 가려운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의 여러 특장점 중 하나는 본문성경공부에 탁월하다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성경에 정통하다는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고 비교적 쉽게 그 본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설과 질문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IVF를 중심으로 한 그의 선교단체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터인데, 교회나 선교단체를 통해 성경공부를 충실히 해 온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 교재나 글로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이들이 희귀한 상황에서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아볼로 성경공부〉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 3부작 성경공부교재는 시중의 교재들과는 유가 다른 이 말이 꼭 누구에게나 최고의 교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원숙한 면모를 보여 준다.



본지에 오래 연재되면서 평신도 신학의 새 지평을 열었던 『정말 쉽고 재미있는 평신도 신학』을 묶어 두 권으로 낸 바 있던 홍성사가 <송인규 교수의 신앙카페> 시리즈를 내기 시작해 그 기획과 구성에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책으로 저자가 사역하는 새시대교회에서 3년 전 이맘 때 10주 연속으로 전한 “예배란 무엇인가?”란 주제별 설교를 독자들을 위해 새로 쓴 설교식 에세이(sermonic essay)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말을 통한 설교와 글을 매개로 한 책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든 표현과 설명을 읽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고, 일반적으로 간략하고 단순히 전달되어야 하는 설교와는 달리 어떤 주제를 깊이 다루고 필요한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있으므로 설교 때보다 그 내용을 훨씬 자세히 정리”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섬김과 부복(俯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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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키워드


만약 우리에게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 10주 동안 혹은 열 개의 주제로 나눠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주제들을 선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매주 드리는,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주일예배에 대해 할 얘기가 많지 않을까? 저자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열 장 중 2장부터 8장까지 일곱 장을 주일예배의 각 구성요소랄까 순서에 할애하고 있다. 말씀기도찬송신앙고백헌금성례축도가 그것이다. 각각의 의미와 한국 교회 예배에서의 문제점 그리고 보완책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그 앞뒤로는 예배 본질로의 회복과 생활예배를 다룸으로써 예배에 관한 우리들의 고민과 불만, 무지와 편견, 관행과 전통을 두루 살피고 있다.


1장 “예배, 본질로의 회복”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예배의 키워드는 섬김과 부복(俯伏)이다. 이는 곧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드리는 예배 정신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정한 앎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중심과 내면, 우리의 심령으로 예배”(23)하는 것을 말한다. 이어서 저자는 현대 예배의 예배 순서와 예배의 본질 또는 태도가 과연 연결이 되고 있는가에 의문을 던지면서 예배 의식 또는 순서로서의 예전(liturgy)의 필요성을 몇 가지 열거한다. 즉 예배에는 어떤 형식 혹은 일정한 틀이 필요하며, 질서와 일치 그리고 통일성을 위해서, 무시할 수 없는 전통으로서, 거룩한 공회(universal church)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도입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예전이 참 예배의 정신을 잡아먹는다는 데 있다”(26). 이후 저자는 이어지는 일곱 장에서 예전 즉 각각의 예배 순서를 하나하나 도마에 올려놓으면서 분석하고 있다.



한 번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


예배 순서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이며 따뜻한데, 이는 신학교 교수이자 현실 목회를 하는 처지에서 당연한 것으로 사료된다. 아마도 예배의 다른 당사자인 평신도가 이런 주제의 책을 썼다면 조금 또는 훨씬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은 현재와 같은 예전(禮典)에 별 문제가 없으며, 일부 보완하면 될 거라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예배에 수동적으로 일방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성도들의 관점에서 현대 예배들의 예전은 개선의 여지가 도처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의 해설이나 지적이 그렇고 그런 수구적이며,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정도로 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또 대단한 오해이다. 추측컨대 대부분의 교회들은 저자가 논구(論究)하는 바 예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교묘하게 편의적으로 왜곡해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예배 순서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교육을 하는 교회가 드물기 때문에 성도들은 알아서 눈치껏 따라가야 한다는 게 입증한다. 그러다 보면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예배 각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남이 하니까 따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 신자들에 대한 예배 교육 입문서로 적당하다. 비록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예배학 입문서나 예전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며, 또 전통적 의미에서의 예배 갱신을 위한 안내서도 아니다”(6)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목회자나 신학생들이면 몰라도 성도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실제적이며 유용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각 장 말미에 세 개씩 들어 있는 “송인규의 Think and Act”는 내용을 요약하면서 독자 자신의 예배 생활을 점검하고, 개선하도록 도와 주는 질문들이어서 소그룹에서 읽고 나누기에도 적당하다.



예배를 볼 것인가 아니면 예배할 것인가


예배의 여러 순서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저자는 9장에서 예배와 관련된 통념들을 한시 바삐 던져 버리자며 ‘예배를 보다’에서 ‘예배를 드리다’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예배하다’란 말을 쓰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적 예배를 구성하는 세 요건으로 예배 정신, 공동체적 질서, 다양한 표현 수단을 거론하면서 “한국 교회의 예배는 예배에서의 공동체적 질서를 강조하고 음악이나 분위기 등 다양한 표현 수단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으면서도, 정작 그런 것들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예배 정신에 대해서는 경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201)는 통렬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마음의 강퍅함과 미혹에 얽매인 채 위선과 이중성으로 가득 찬 거짓 예배를 연출”하지 않기 위해 피해야 할 왜곡된 마음 상태로 외관주의(外觀, externalism), 형식주의(formalism), 수동주의(passivism), 감상주의(感傷, sentimentalism), 이분주의(二分, dichotomism)를 들며 경계하고 있다(207-9).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 각 개인과 한국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린 예배와 삶 사이의 파편화된 분리를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활 예배’로 독자들의 시선을 옮기고 있다. 주일 예배와 같은 의식으로서의 예배가 아닌 일상 생활을 통한 예배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아직 많이 생소하고 생경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생활 예배야말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과 주인으로 높이는 일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의 배경 자체가 시리즈 설교에서 착안된 것으로, 저자가 친절한 설명과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다소 이론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논리적인 모색을 하는 바람에 단조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는 저자가 붙인 바 ‘설교식 에세이’가 갖는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겠고, 한자가 섞인 개념어를 즐겨 사용하는 기성 세대들의 공통된 글쓰기 습관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예배의 본질과 순서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면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나 일상 생활 속의 생활 예배를 좀 더 풍성하게 누리는 소득이 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제나 오늘이나 총론과 원론 수준에만 머물면서 디테일(detail)엔 무디고 약한 우리로선 이런 책을 통해 서둘러 변화와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의식 있는 목회자들이라면 그저 관행에 안주하지 말고 이 책을 읽고 연구하면서 예배의 참된 의미와 예전의 바른 시행을 결심하면 좋겠고, 아울러 특히 젊은 독자들의 일독과 활발한 토론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