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묵]영적 지도자의 가정(Family)

지난 주에 운전 중에 복음방송을 듣다가 많은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 나오셔서 한 분의 선교사님과 나눈 대화의 내용을 들었다. 선교사님이 사역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여 좌절감에 빠져 있는데 라디오에 나온 그 분이 그 선교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선교사님은 선교 사역에 실패한 분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면서 ‘왜냐하면 선교사님이 사모님과 좋은 부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씀드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사역인 가정 사역을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역은 그리고 우리의 선교는 우리의 가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가정 사역이 중요하다.


영적인 지도자가 건강한 가정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풀러 신학교의 클린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도자들이 잘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탈락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들을 살펴보면 많은 것이 지도자의 가정에 관련된 이슈라는 것이다. 치유되지 않고 용서되지 않는 상처, 가정의 경제 문제, 건강하지 않은 성관계, 부모의 권위주의, 자녀 문제 등의 이유로 인하여 많은 지도자들이 중도에 하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역은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가정을 통하여서 채우고 살아갈 기본적인 필요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네 가지 필요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가정 속에서 건강하게 채워지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정서적인 필요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의 말을 들어주고 동감해주고 함께 희로애락을 가치할 동료가 필요하다. 힘들 때에 위로가 되어주고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그것들이 정죄되지 않고 받아들여지는 필요를 가지고 있다. 주로 여성들이 많은 정서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지만 남자의 경우도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정서적인 요구가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 둘째는 경제적인 필요이다. 우리가 생활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경제적 필요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필요를 건강하게 채우고 사치는 아니더라도 휴가와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와 취미생활 등을 하기 위한 경제적인 필요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남성들이 이 분야를 감당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경제적인 요구가 커감에 따라서 부부가 함께 경제적인 요구를 위하여 일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셋째는 육체적인 필요가 있다. 집안 청소, 빨래, 밥하기, 설거지 하기, 애들 돌보기 등등의 많은 일거리를 감당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여성의 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경제적인 필요를 위하여 함께 일하면서 남성도 함께 이 일들을 나누어 하고 있는 경향이 많다. 육체적인 필요에는 이외에도 사랑스러운 접촉과 성적인 필요 등을 가지고 있다. 넷째로 전략적인 필요가 있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장기적인 자아 실현과 자아 발전을 위하여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 분야 역시 전통적으로는 남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들도 자신의 삶에 전략적인 측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 가지 위해서는 서로에게 이런 필요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채워주기 위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은 완벽하게 갖추고 살아가기는 힘들겠지만 자신의 필요들이 얼마나 채워지고 있는지 또 배우자의 필요가 어떤 부분에서 절실하며 또 얼마만큼 채워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채워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앞에서 말한 네 가지 필요들이 모든 필요를 완전하게 포함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가지고있는 기본적인 필요를 이해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가정 사역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는 가정 사역에 우선 순위를 두고 이를 위하여 실제적으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나는 상담 전문가 쟈수아 박 교수님과 가끔씩 만나서 교제의 시간을 갖고 있다. 가끔 만나서 시간을 갖지만 만날 때마다 상담 전문가여서인지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얼마 전에 만나서도 부부간의 대화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를 위하여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들도 많이 배웠다. 여러가지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었지만 그 중에서 “부부간에 구별된 시간을 가져라. 하나님께 주일날 예배를 정해놓고 드리지 않냐? 학교에서도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지않느냐? 부부간에도 친밀감을 위하여 정해진 시간을 드려라. 정기적으로 헌신된 시간을 통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가 생겨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헌신된 시간을 통하여 대화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의 기쁨을 위하여 데이트를 많이 하면서도 결혼하고 나서는 실제적으로 상대방과 함께 기쁨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부부도 데이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가정마다 다른 상황과 환경 속에 있기에 어떤 시간과 방식을 율법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를 위하여 헌신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가정 사역을 위한 좋은 책들과 세미나들이 많이 있다.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고 개성의 차이를 이해하고 어떻게 우리의 가정을 이루어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자료들이 많이 있다. 또한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는데 헌신된 사역과 상담가들도 많이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에 가장 힘들지만 가장 중요한 사역의 출발인 가정 사역에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가정을 건강하게 세우고 그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정을 통하여 우리 교회와 사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와 은혜 (Grace-Driven Leadership)

풀러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할 때에 설교학 과목을 이완 왙슨이라는 교수님께 강의를 들었다. 아주 좋은 강의로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 분이 설교에 관하여 가르쳐준 기억에 남는 교훈 중에 하나는 설교 내용을 구성할 때에 “복음”과 “적용”을 7:3의 비율로 하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 있다. 설교의 내용 중에 성도들이 실제 삶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적용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루어져야하는데 그 이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지 선포하는데 70%를 먼저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원리는 설교의 메세지 뿐만 아니라 기독인의 삶의 전 분야에 해당되는 내용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우리가 많은 경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렇게 살아갈 능력과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의 근원이 된다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라고 더 깊은 은혜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일반적인 신앙생활 뿐만 아니라 영적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중요하다. 영적인 지도력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지도력이란 섬김의 지도력(Servant Leadership)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들은 잘 섬기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한다. 잘 섬기기 위하여 능력도 갖추고 잘 섬기기위하여 여러가지 지술과 지식도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보면 많은 지도자들이 도중에 탈진하고 탈락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왜냐하면 섬기다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게 되는 것이다. 힘이 바닥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지도자에게 있어서 특별히 효과적인 섬김의 사역을 위해서 무엇 보다 우선되는 과제는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나아가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를 체험하고 그 속에서 얻은 힘으로 사역을 감당할 때에 지속적으로 섬김의 사역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지도력의 또 다른 이름을 “은혜로 추진되는 지도력(Grace-Driven Leadership)” 이라고 하고 싶다.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지도자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바닥이 난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자기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바닥이 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지도자는 결국에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샘솟는 힘을 공급받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끼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속에서 자라는데 힘을 써야 한다.


지도자들에게 늘 부담이 되고 압력이 되는 것은 결과를 산출해 내야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에 의하여 자신의 지도력이 판가름 나기 때문에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늘 노력을 한다. 그리고 더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외부로부터는 압력을 또 내부로부터는 더 많은 일을 위한 유혹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결과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결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나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경험하면서 능력이 솓아나고 그 힘으로 여러가지 일들을 감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결과에만 집중하면 당장에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능력이 고갈되고 만다.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는 일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서는 그가 허락하시는 은혜를 경험할 수가 없다. 특별히 영적인 훈련으로 자발적으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마다 그 형식과 틀은 다르지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하여 하나님께 퀄러티 있는 헌신된 시간을 드리고 그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깊이 발견하고 체험해 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에 결과를 산출해 내는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시간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시간이라도 더 뛰어야지 라고 생각이 되지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 시간을 온전히 드릴 때에 당장에 무엇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감이 생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고난을 통과할 때에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다. 모든 고난이 자동적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절대자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 앞에서 그 문제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원망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럼으로 인하여 더 깊은 고난과 문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는 문제를 대할 때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인내할 것은 인내하며 그 모든 것을 계기로 하나님께 더 나아가고 인생에서 하나님 그 분을 목적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만족하고, 또 그 분과 함께 함, 그 분께 순종함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임을 발견해 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고난은 우리를 깊은 친밀감으로 인도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진정 기뻐하기를 배우게 된다.


영적 지도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에 나아가고 더욱 큰 은혜를 받고 또 은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은혜 속에서 자라라”고 하셨고 야고보도 그의 서신 가운데 “더욱 더 큰 은혜를 사모하라”고 권면하셨다.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영적 지도력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우리 적극적인 의미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친밀감 훈련을 통하여 부정적으로는 고난이라는 인생의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을 직면하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은혜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의 권위 통찰 (Authority insights)

지도자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권위”가 도전을 받는 시대 속에 살고 있고 “권위”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지만 나쁜 것은 권위를 내세우는 “권위주의”이지 참다운 “권위”가 사실상 어느 때보다도 더욱 절실한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참다운 권위를 가진 지도자에 대하여 목말라 하고 있다. 지도력은 참다운 권위에서 나온다. 그래서 한 사람이 지도자로서 성숙해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권위에 대하여 바로 이해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러면 지도자가 성숙해 가면서 특히 사역의 초반부에 지도력의 권위에 관하여 어떤 배움이 있어야 할까?


첫째, 한 사람이 권위를 실행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권위에 순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때로 우리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철학이 다를 수도 있고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가 그 권위에 저항하고 반발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권위 질서를 세우시고 교회와 가정 그리고 사회와 국가 속에 일정한 권위의 구조를 세워 두셨다. 그 지도자들에 대하여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물론 그 권위가 하나님에 대항하고 하나님을 거슬리는 것이면 우리가 저항해야 하지만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도자에게 반항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권위를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추종자가 지도자들에 대하여 불평을 하게 되고 객관적인 입장으로 비판한다고 이야기하기 쉽지만 사실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추종자들은 지도자처럼 전체를 보는 관점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비판할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 위치에 서 보면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한 지도자가 자신의 위의 권위에 대하여 순복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권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순복할 것을 요구한다면 누가 순복할 것인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에게 사람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한다.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예는 다윗의 경우이다. 사울 왕이 그를 원수처럼 여겨서 몇 번이나 죽이려고 하였지만 자신이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때에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이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세우신 권위 질서를 존중하는 다윗이였기에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사회에 팽배해 있는, 권위를 무시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시대 속에서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위의 권위에 순복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삶의 모든 분야에서, 즉 집에서는 부모에게, 직장에서는 상사에게, 학교에서는 스승에게 순복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지도력 개발에서 초반부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둘째, 지도자는 권위를 스스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지도력을 수행하는 지도자의 입장에서 그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하여 갈등을 경험할 수가 있다. 사실상 지도자가 바른 비젼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 갈 때 순종하지 않고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정말로 힘이 들게 된다. 지도자가 권위에 대하여 도전을 받았을 경우에 보이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은 그 도전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람이 나를 반대하고 공격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 사람을 공격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깊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지도자 개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의 권위, 즉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그 도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상처입고 반응하기 보다 하나님의 개입을 기다리는 것이 올바른 반응이다. 지도자가 보여야 할 반응은 자기 스스로가 심판자가 되어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우는 일에 정진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권위를 지키시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에 어떤 추종자가 문제를 일으킬 때에 만일 지도자가 그 문제 일으킨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공격하면 다른 추종자들은 그 지도자의 모습에 실망하고 도리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옹호하게 된다. 그러나 지도자가 도리어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용서하고 그저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면 그 모습들을 보고 다른 추종자들이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지도자는 결국 이런 갈등들을 지혜롭게 넘겨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에 순복하는 것을 건강하게 배우지 못하였다. 그들의 경험가운데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권위에 피해를 입었기에 권위에 순복하는 것이 힘든 경우가 많이 있다. 반항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감쌀 때에 그들도 권위에 순복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다. 지도력 개발에서 삶의 후반부에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셋째, 지도자는 바른 권위의 사용을 배워야한다. 권위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섬기기 위하여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주된 이유는 지도자들이 그 권위를 가지고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권위를 주장하는 권위주의를 가졌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권위주의를 세상의 이방인들의 것으로 규정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속한 자들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지도자들이 도리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영적 지도자들은 권위의 사용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물론 많은 경우에 삶과 사역속에서 지도자들이 이런 섬김의 지도력이 아니라 권위주의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우리가 그것으로 인하여 힘든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인 권위의 사용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또 좋은 영적 지도자들의 모범을 통하여 권위의 바른 사용, 섬기기 위한 사용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성경적인 권위사용의 가치관을 배양하지 않으면 우리의 부정적인 경험들이 우리의 지도력 사용에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은 우리도 똑같이 부정적인 권위사용을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깨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주워진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따르는 자들을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넷째, 지도자는 여러가지 종류의 권위를 가져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권위는 영적인 권위이다.
영적인 권위란 지도자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기 때문에 추종자들이 그 지도자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하도록 허락하는 권위를 말하는데 이는 주로 인격과 모범과 설득을 통하여 영향력을 발휘한다.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추구하는 어떤 능력이 아니다. 다른 지적인 권위나 지위의 권위 혹은 인격적인 배려에서 오는 권위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노력해서 취득하는 능력이지만 영적인 권위는 우리가 하나님께 점점 더 깊이 다가섬으로 인하여 생기는 열매이고 부산물이다. 우리가 권위를 목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한 분을 목적하여 나아가고 섬기고 동행할 때에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임재가 우리 삶과 사역가운데 나타나고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고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영적인 지도자들이 의지해야 할 권위인 것이다. 물론 우리 지도자들에게 다른 모든 종류의 권위와 능력도 필요하다. 지식도 지위도 인간관계도 때로는 보상을 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사역이 점점 깊어질수록 지도자들에게는 영적인 권위가 요구되는 것이다. 풀러신학교의 킬린톤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효과적인 지도자들은 영적 권위의 기반 위에서 사역을 실행한다고 한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가? 여러분들의 삶가운데 권위에 순복하는 일이 힘이 드는가? 그로 인하여 권위에 순복하지 못하여 지도자와 갈등하고 사역지를 떠나는 일들이 반복되는가? 여러분이 지도자로써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특정한 사람들이 반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가? 그것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가? 당신이 권위주의에 빠져서 권위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하는 그런 지도자 아래 있어서 힘들어 하는가? 무엇이 참된 권위요 지도력인지 가치관이 혼돈되는가? 아니면 당신의 참된 권위의 필요를 느껴서 찾고 갈구하는데 손에 잡히지가 않는가? 이런 문제들은 모든 지도자들이 그들의 지도력의 성숙을 위해서 겪어야 하는 일들이다. 권위에 대한 바른 통찰을 하고 참다운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와 능력 이양 (Empowerment)

지도력의 상황적 이론을 전개한 Paul Hersey 와 kenneth H. Blanchard라는 사람은 지도자가 사람들의 성숙도에 따라서 적절한 종류의 지도력 스타일과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도자라면 여러 가지 종류의 파워를 소유하고 그들이 이끄는 사람들의 성숙도에 따라서 적절한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고 기술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위협이나 보상 혹은 지위와 같은 저 차원적인 파워를 사용하고 숙련된 기술과 동기 부여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문기술 제공 혹은 인격적 대우 등과 같은 고차원의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사실상 최고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지도력의 스타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잘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지도자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력의 스타일을 사용하여 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도를 받는 사람들의 성숙도를 발전 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다시 쉽게 말하면 참된 지도자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동시에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감이 없을 때에는 격려해?자신감을 심어주고 그들이 기술과 지식이 부족할 때에는 그들이 지식과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공급해 주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파워를 나누어 주는 일들을 통하여 추종자들이 하나의 지도자로 성숙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한 지도자로 세워 나아가는 데에 가장 힘드는 부분이 파워를 나누어주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서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파워를 소유하고 사용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지도자들이 자기만이 파워를 소유하고 사람들에게 파워를 나누어 주지 않아서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세워 나가는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워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참되고 현명한 지도자는 사람들의 성숙도에 맞게 파워를 나누어 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파워를 실행해 보면서 지도자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사역의 기회를 함께 나누고 적절한 영역에서 의견을 물어보고 함께 상의하여 결정하는 과정들을 통하여 파워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능력을 추종자에게 이양해 주는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 사이에는 파워를 바라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어떤 지도자는 파워는 남에게 주면 자신에게 그 만큼 파워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지도자는 파워를 추종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능력 이양을 이루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들은 파워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아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파워를 나누어 주고 그런 경험을 통하여 추종자들이 능력 이양을 경험하게 되고 지도자는 더욱 더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파워를 자신만이 소유하고 나누어 주기를 거절하고 사람들을 사용하기만 하려는 지도자는 사람을 세우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던 클링톤 교수님의 지도 아래 학위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같은 원리였던 것 같다. 그분이 다른 교수님에 비하여 특별히 나에게 준 것은 없다. 장학금을 준 것도 아니고 학점을 특별히 잘 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준 것은 강의 시간에 나에게 도전을 주고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계속적으로 나의 은사를 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움을 준 데에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비교적 영어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공부는 할 수 있었지만 수업시간에 질문을 한다거나 앞에서 나가서 발표하는 것을 엄두를 못내던 나에게 수업에서 20분짜리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것에 대해 인정해 주고 또 나중에는 나의 연구한 글을 가지고 1시간 짜리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여서 나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은사를 발견하게 해 주신 것이다. 그분은 학교의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지도자로 서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강의를 하는 파워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줌을 통하여 강의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동시에 가르치는 지도력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간다.


좋은 지도력이란 무엇일까? 사람을 선택하고 함께 일하면서 단순히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통하여 어떤 일들을 성취하는 것에서 끝이 나지않고 그 과정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세우고 키워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도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교회 속에서도 담임 교역자가 부 교역자들에 대하여 또 교육자는 평신도들에 대하여 또 사회 속에서 평신도들은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을 통하여 어떤 과업을 성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들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실제적인 발전이 있도록 또 그들이 지도자로 서갈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이 참다운 지도력인 것이다.


James MacGregor Buns는 퓨리쳐상을 받은 그의 저서“Leadership”에서 변화를 시키는 지도력(Transforming leadership)은 “임무가 완성되는 것을 넘어서 관련된 자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지도력”이라고 말하였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태도 비전과 가치관 또는 신념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의 그들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보고 그들과의 관계에 투자하여 그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도하신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참다운 지도력이라는 것이다.

[신선묵]영적 지도자의 집중(Focus)

학교에서 사역을 하다 보면 학생들을 개인적으로 상담해 주는 일이 가끔 있다. 대체적으로 많은 상담 내용 중에 하나는 학교를 중단 하던지 혹은 학교를 옮기던지 하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사정에 따라 피치 못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뚜렷한 대안도 없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학교생활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 때마다 나는 “도둑질하는 것과 같이 나쁜 짓이 아니면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내라”고 권면을 한다. 아닌 것 같다고 학교를 중단하거나 학교를 바꾸고 하는 일을 반복하다가 보면 귀중한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뜻이 있어서 시작을 하였으면 모든 난관을 헤치고 마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것을 통하여 어떤 성취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일단 한 단계를 마치면 자신에 대하여 자신감도 생기고 또 결국은 다른 일을 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좋은 자산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단된 것은 쓸모가 없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으면 그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 물론 책을 읽을 때에 모든 책을 글자 글자 한자씩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읽던지 그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책을 읽을 때에 도중에 그만 두는 경우가 많이 있다. 책이 흥미로워서 골랐지만 실제로 책이 독자인 우리의 지적 능력을 도전하는 어려운 내용이 나오거나 혹시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이 나오면 끝까지 읽어보기도 전에 여러 가지 핑계로 그 책을 읽기를 포기한다. 그러면 실제로 그 책을 통하여 자기에게 있을 수 있는 발전과 변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책은 완전히 읽을 때까지 읽은 것이 아니다. 책을 다 읽어야지 그 저자의 생각에 대하여 도전하고 반대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 읽기 전에는 그 저자의 생각에 도전을 할 수가 없다. 시작한 책은 끝을 보아야 한다. 한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은 가치가 없는 책이라고 결론을 내어도 좋다. 그것도 하나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리면 최소한 다시는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사역을 하면서 매주 설교를 하면 어떤 설교를 해야 할 것인가 갈등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는 설교준비를 하다가 마지막 순간까지 두개의 설교를 가지고 어떤 것을 가지고 설교할까 갈등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면 설교를 깊이 있게 준비하지 못한다. 물론 하나의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좋은 다른 설교의 영감이 떠오를 수가 있다. 그런 때는 그것을 메모해두면 된다. 좋은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이것을 해 볼까 아니면 저번에 준비하던 것을 해볼까 하는 식으로 갈등을 하면 깊이 있는 설교를 할 수가 없다.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깊이 있는 말씀을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求? 돋보기가 태양빛을 모아 집중을 시킬 때에 불을 일으킬 수가 있는 것이다. 집중하는데 파워가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 주위에 보면 재능이 많은 사람인데 인생에 있어서 성공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재능이 없는데 한가지에 집중하여서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볼 수 가 있다. 한가지 일, 한가지 기술에 집중하여서 전념하다 보면 과정 속에서 장애를 뚥고 어려움을 넘기면서 깊이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설사 재능이 좀 부족하여도 한가지를 붙들고 승부를 거는 사람은 성공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 속에 “ 한 우물을 파라”는 말씀이 있다.


최근에 나온 서적 중에서 공병호 박사의 “명품 인생을 만드는 10년 법칙”이라는 좋은 책이 나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바로 집중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가지 일에 최소한 10년은 투자를 해야 결실을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몇 년 하다가 포기하면 우리는 한 분야에서 진정한 의미의 프로가 될 수가 없다. 앤드류 카슨(Andrew Carson)박사는 “어떤 특별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 분야에서 지속적이고 정교한 훈련을 최소한 10년 정도는 해야만 한다.”고 말하였다. 10년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 그리고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말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한 분야에서 상당 수준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의 지속적인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능력보다도 이런 집중하는 자세가 성패에 더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만은 사실이다.


누가복음 9장 5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십자가를 지러 마음을 굳게 정하고 나아가시는 장면이 있다. 풀러신학교의 클린톤 교수는 이 말씀을 가지고 집중된 삶에 대하여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맡기셨고 그 동안 공사역을 통하여 감당하셨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명인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나아가는 싯점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도 우리 삶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미션을 바로 이해하고 그것을 향하여 집중해 가는 삶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은사를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이것저것 다하려고 하는 욕심보다는 자신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은사를 인식하여 그것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집중된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를 다하려고 하면 집중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가지치기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들에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집중하는데 있어서 제일 방해가 되는 것은 아주 중요하지 않는 별 볼일 없는 이들이 아니라 상당히 중요해 보이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은 일들이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이런 일들을 거절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중된 삶을 산다는 것은 말하기는 쉬워도 어떤 의미로 금욕의 길이요 포기의 길인 것이다.


당신은 인생에서 어떤 것에 승부를 걸고 있는가? 어떤 분야에서 또 어떤 지식 혹은 기술의 분야에서 최고의 장인이 되기를 추구하고 있는가? 당신이 가장 자랑하고 자신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무엇에 당신의 시간과 정열을 집중하고 있는가? 혹시 현재 어떤 일을 포기하고 싶습니까? 한 단계 깊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시고 인내하며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지금 포기 하려고 하는 그 일에서 당신은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