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적용” – 김동록, 윤여재, 최인석

eKOSTA: 이렇게 좌담회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히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저는 김동록입니다. 코스타와 관계를 맺게 된 지는 약 6년째인데 코스타에서 서북미지역 멘토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씨애틀 근교에 살면서 조그만한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윤여재: 안녕하세요. 저는 윤여재라고 합니다. 코스타는 2003년에서부터 참석하고 있습니다. 현재 데이튼, 오하이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인석: 안녕하세요, 저는 최인석 입니다. 코스타는 2006년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동부 DC부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반갑습니다.


eKOSTA: 일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본인이나 혹은 함께 교제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보통 어떤 모습으로 연결하시나요?


윤여재: 지난 성경공부의 도입부분에서 세가지 하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첫째 하늘은 우리가 땅의 딛고 있는 이 세상이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야기하면서 마치 첫째 하늘과 셋째 하늘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곳처럼 묘사하면서, 물론 교재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물리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마치 먼 하늘나라 저 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것 같고, 저 또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기 보다는 눈과 귀로 쉽게 접하게 되는 세상의 삶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땅이 아니라 통치권이라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의 현장에 함께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통치권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이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적인 영역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내 하루 생활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QT), 기도, 또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내가  결정해야할 것들 등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는 것들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실때, 이런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나라”라는 말 자체가 집단이라는 성격이 들어가 있는 단어이니까요. 어떻게 보자면 통치권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보다는 “통치하시는 집단적 영역”이라는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을때 같은 그룹에서 당황해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아기자기한 기도는 드리지 말아야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있었구요.


최인석: 저는 요즘에 마태복음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에 초점을 맞추는 세미나가 여러번 있어서 대부분 현재적 의미의 천국도 많이 고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제가 변화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에서의 충만함, 그리고 왠지모를 자유감 등이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천국의 속성 혹은 맛이라면, 그러한 경험을 통해 천국에 대한 모습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되고 또 그것을 사모하게 된다고 자주 나눕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면, 확장되어 나갈 천국에 대한 모습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eKOSTA: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는 숨겨져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즉 하나님 나라의 은닉성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데요, 생각나시는 비유라든지, 혹은 성경 내용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더 와 닿았던 내용이 있으신가요?


윤여재: 오늘 아침 저의 큐티 본문이 요한복음 18장 후반부분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빌라도의 관정까지 끌여오게 되고,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저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의 한 면을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즉 하나님의 뜻, 계획하심 아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내가 왕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 말씀에서 저는 다시 한번 내가 섬기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김동록: 비유는 아니지만, 최근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왜 광야에서 사단이 돌더러 떡이 되게하라고 유혹한 그 기적을 예수님이 행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보니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인해 기대되는 정치적 인기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드시더군요. 이로 인해 오히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 버렸다고 나오고요. 또 이 일 이후로 단호하게 십자가의 길로 향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가 사회경제적 정치적 성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이시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인생의 방향성이 다시한번 크게 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실패한 듯 보이는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중심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심으로 인해 그분이 그렇게 원하고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또 하나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만드신 제자공동체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임이었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실 씨를 뿌리신 것입니다.


최인석: 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보물이 숨겨진 밭에 대한 비유가 와 닿았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귀함을 알 수 없기에,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eKOSTA: 하나님 나라가 부분적으로 이미 드러나 있지만, 또한 숨겨져 있다는 이러한 속성이 본인의 삶의 방식이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시나요? 예가 있으시면 함께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성경에서는 권속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도전을 감당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가 저와 제 주위에 있고 임하였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격려를 주고받으며, 함께 영원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공동체가 중요한 것 같고 교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공동체와 교회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때론 상처를 받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현재적 삶 속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저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김동록: 제가 언급한 현재적 소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강의를 하고 나서도 너무 현재적인 면만 강조를 했나 싶은 의아심과 함께 신앙의 열린 미래성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 하는 궁금증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히브리서를 공부하다가 우리가 안식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더군요.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고, 또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관점은 저 자신의 궁금점을 많이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삶이라는 의미도 깨닫고 나니 더욱 심각해지더군요. 제자들의 공동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미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최인석: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때문에 전도를 할 때에 천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때론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곤 해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eKOSTA: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 나라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시고 비밀스럽게, 다른 표현으로는 신비롭게 (mysteriously)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그 의도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여재: 원죄 이후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 예수 이전에는 아주 제한되었고, 예수님이 오심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고 임하고 있으며 오실 하나님 나라의 연속성을 나타내지만, 그 경험하지 못하였던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겨자씨 비유가 그렇고 밭에 숨겨진 보물이 그러한 예인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어느 한 두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 하나님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실 경우 오히려 명문화된 하나님 나라의 설명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기보다는 제한해 버리고, 또한 사람들이 율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최인석: 김동록 멘토님과 윤여재 형제님께서 잘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인식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도 이유가 될 것 같구요. 또한 비유를 통해서 오히려 그 속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청중에게 익숙한 삶의 특정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직관력과 연결시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고수의 방법 아닌가 합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이미 임하였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조금 옮겨가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말씀, 특히 산상수훈과 같은 가르침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윤리가 발견되는데요. 그런 가르침 실제 삶에 적용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또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요?


윤여재: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하나 하나 따라가기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것에 따라 가려고 하면 때론 억울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즉, 내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속옷까지 주라, 십리까지 가라, 육체가 죄를 지으면 그것을 절단해 버리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말씀이 절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이 진리임을 알고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심령이 가난하게 될 것이고 박해를 받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이 복있다고 말씀하시며 천국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청량제와 같이 제 마음을 확 씻겨 내립니다.


김동록: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라서 (왼뺨까지 내어준다든지, 겉옷까지 준다든지, 원수를 용서한다든지) 실천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기 보다는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은 혼자서 하기는 힘이 드는데, 같이하면 좀 나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철저한 이해와 믿음이 있을때 적용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공동체에서 같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면 성령님께서 아주 큰 능력으로 그 공동체에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인석: 이런 어려움이 있는 데에는 지금 죄가 들어오고 왜곡된 상황에서 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국에서의 모습이 목표라고 한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변화를 받아서 회복되어져 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천국의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천국에 대한 경험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쳐서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 또 그와 함께 내 의가 높아지고 자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체화해나가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등을 통해서 또한 더 많이 변화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강조되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다’ 혹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라는 표현을 주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이 표현을 사용하실 때 혹은 들으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떠올리시나요?


최인석: 복음이 더 많이 전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한 천국을 알게 되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들이 이 지상에서도 부분이나마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확장이 아닐까요?


윤여재: 저는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부분과 사도행전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저희들에게 명령하신 것이지요. “가라”, “이르러”, ‘제자를 삼고 증인이 되라’하신 말씀에 힘입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눌리고 억눌린 자의 고난에 함께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구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성령 안에서 온전하게 거듭남이 있어야 겠지요.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중생함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니깐요.


김동록: 질적 양적 팽창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질적인 변화를 통해 양적인 확장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 개인의 이해가 깊어지고 삶이 깊어질 때, 즉 우리가 변화될 때, 우리 주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누룩의 비유가 그렇다고 할까요. 질적 변화가 있을 때 전염성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의 관계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현재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일텐데요. 지난해 주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와 연결시켜볼 때에, 이러한 모습은 세상의 삶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최인석: 저는 공부하는 학생이다 보니, 다른 문화와 믿음 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래 학생들과 그 동기에서 다른 부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성공과 다시 말해 부와 명예를 위해서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치닫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저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도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생각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갈수록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해야 하고, 이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여재: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기독인과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비기독인의 삶의 차이는 비기독인이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야한다고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깐요. 세상이 나를 기이히 여기지 않고 잘 섞여 살아간다면 그것을 이상히 여기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의 삶이 세상과 아무런 마찰없이 잘 지낼 때에 더욱 두렵습니다.


김동록: 우리가 전공이나 직장을 정할때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순수한 학문적인 또는 인문적인 관심만으로 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위대한 학자”, 성실하고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기를 꿈꾸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궁극적인 뜻이었다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꿈꿀때 생각하는 내용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허용해 주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마음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려는 태도라면 성공적인 사회인을 목표로 하지는 않겠지요. 또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는분들도 많은데 설사 실패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믿고 나갈 소망 안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소위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낮은 자리로 가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닮아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eKOSTA: 현재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의 균형이 깨어질 때에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나요? 혹시 생각나시는 예가 있으시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미래적으로 극단인 예인 것 같은데, 밀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다들 느끼셨겠지만, 교인들이 너무 착실하다는 것입니다. 착실하다 못해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또는 전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섬뜩한 것은 교인들과 제 모습에서 별 차이를 못느끼고 답답해 하던 저의 모습입니다.


또 현재적으로의 극단이라면 마치 고지론이라고 알려져 왔던 그런 신앙의 태도가 생각이 나는군요.


윤여재: 하나님 나라는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예수님도 처음에 말씀하실 때, 천국이 가까와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꼭 미래에 올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한 긴장감은 좋은, 유익한 긴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깨어질 때는 좀 극단적인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예를 드러,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게 되면 예수님 시대의 열심당원들과 초기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는 봐와 같이 이 땅에서 물리적인 무엇을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구요. 지금 우리에게도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안에 기복적인 성향을 강화시키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여 그쪽으로 치달으면 우리가 많은 들어 왔던 극단적인 이단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 가 싶습니다. 즉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벗어나기 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 둘의 긴장이 중요하지 않는 가 생각합니다.


최인석: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묘사나 속성에 대한 설명 혹은 상상등이 치우쳤다고 발전시키신 형제님들의 말씀에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처음 입교식을 할 때였습니다. 전도사님께 솔직히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전도사님께서는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천국은 너~~~무 좋은 곳이예요”라는 말씀만 반복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의미로서의 천국보다 다가올 천국에 대한 것만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이렇게 공감하기 힘든 천국의 이미지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KOSTA: 2008년 코스타의 주제가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를 통해 기대하시는 바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의 코스타 주제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이 시대, 이 세대의 가치관을 휘어잡고 있는 물질주의적, 자기 중심적, 이기적 세계관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화평의 세계관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푯대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소원하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예수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코스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이, 사도바울이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김동록: 2007년도 주제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였었는데, 어느정도 부정에 의한 진리찾기라면, 올해는 더 발전해서, 이 시대에 가야할 진리의 길이 저희들에게 보여지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주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서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핵심개념이 참석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서 좋은 신앙갖기를 넘어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인석: 저도 개인적으로 이번 코스타의 주제문구가 참 마음에 듭니다. 작년에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라는 주제로 이 세대의 가치과 세계관 등과 성경적인 가치와 세계관에 대한 구분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과 생각등을 남겼다면, 올해는 그렇다면 “바른 길”은 무엇인지 조금더 나아간 적용을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08년 코스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eKOSTA: 오랜 시간 좌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여재] tm KOSTA, 그 목적과 취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변화상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

이코스타 2005년 9월호

tm KOSTA의 목적과 취지
tm KOSTA는 복음, 민족,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KOSTA의 3가지 Core Value 중에서, 특별히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세번째 Core Value를 바탕으로 둔 코스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tm이라는 것은 task major를 의미하는 것으로 자신의 전공분야 혹은 직업의 소명을 받은 분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그래서 tm KOSTA는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하여 신앙과 학문의 통합된 삶을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을 지원하려는 사역입니다.


tm KOSTA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헌신이, 소명 받은 전공분야 및 관심분야에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도록 지금까지 두 가지 영역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지원사역은 전공과 관심자별로 기독 학생, 기독 학자, 전문사역자 간의 연락망(Network)을 구축하는 것을 돕는 것입니다. 여기에 매년 KOSTA 수련회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전공자와 관심자들이 만나서 긴밀하게 연락 및 토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과 tm KOSTA 홈페이지(http://tm.kostausa.org/group.html)를 통하여 Network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tm KOSTA가 지원하는 사역은 전공별 및 관심자별 resource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Resource를 제공하는 방법에는 Networking을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련회장에서 직접 tm KOSTA 세미나에 참가함을 통하여 전문가로부터 resource를 제공받고 그들의 앞선 고민과 과제 및 방향들을 듣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공별 및 관심자별 resource를 홈페이지 (http://tm.kostausa.org/resources.html)를 통하여 언제든지 찾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tm KOSTA의 변화상
매년 20여가지 전공별/관심자별 이슈들을 코스타 수련회 마지막 날에 전체 코스타 참석자들에게 참석할 수 있도록 하였지만 이에 대한 참석자들의 반응이 너무나 다양하여서 올해부터는 수련회 첫번째 세미나 시간에 기초 신앙에 관심을 갖는 분들과 함께 tm KOSTA를 진행함으로써 영적인 충족을 바라는 분들에게는 기초 신앙 세미나를 들을 수 있도록 하고, 특별히 tm에 관심을 갖고 있는 참석자들에게 tm 세미나를 진행하는 양극화를 통하여 더욱 효율성 있는 세미나를 이루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련회장에서의 논의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지협적일 수 있기 때문에, 이상에서 언급해드렸던 Networking과 Resource를 병행한 지원사역이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래는 올해 진행되었던 전공별/관심자별 주요 이슈들입니다.


-  미국 교육계의 “No Child Left Behind” 법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
-  교회지도자(목회자)와 정치참여
-  Computer Science 전공자로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들
-  기독 의료인들에게 요구되는 영성과 전문성을 갖춘 섬김: (Compassionate Heart and Touch)
-  Widening the Spectrum of Music for the Church Year
-  그리스도인과 직장생활
-  기독교 세계관으로 바라보는 과학기술
-  인문학 속의 크리스찬들
-  한국교회 예배와 찬양 운동 – 그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
-  통일의 꿈, 평양 과기대
-  현대 미술과 기독교
-  캠퍼스 미니스트리
-  오늘의 대중문화 현상


tm KOSTA의 방향성
tm KOSTA의 앞으로의 방향성을 생각하면,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떠오릅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마9:37 38).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보시고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것을 보시고 민망히 여겨,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있는 말씀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특별히 학문하는 영역 가운데서 기독 영성을 갖춘 전문 기독인을 부르시고 있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러한 부르심의 영역들이 학문의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부시 대통령이 일반 공교육에서도 진화론과 더불어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이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다시 한 번 더 진화론과 창조론, 진화론과 지적설계, 창조론과 지적설계이론이 다시 뜨거운 논쟁의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적설계 이론은 이전의 진화론과 창조론의 서로 다가설 수 없었던 거리를 더욱 좁혀서, 과학적인 언어와 논리로 생명체의 정보와 복잡성을 우연의 법칙이 아닌 어떤 무엇인가에 의한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적설계 이론이 이제 십여년의 연구활동으로 인하여 이론의 미비점이 많지만, 적어도 과학적인 언어로 진화론자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하여1987년 미 법원에서 창조론이 종교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이유로 공교육에서 제외되었던 이후에 지금 미국에서 몇 개의 주와 카운티에서 진화론과 함께 지적설계 이론을 함께 교육함으로 학생들에게 두 이론을 동시에 비교하며 논쟁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습니다.


이 지적설계에 대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 필립 쟌슨, 마이클 베어, 윌리엄 뎀스키를 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윌리엄 뎀스키는 한국의 지적설계 이론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고, 최근에 윌리엄 뎀스키의 “지적설계”책이 서울대 창조과학회에서 번역하여 IVP를 통하여 출판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지적설계의 운동은 미국에서 지적설계 운동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각 전문영역 가운데서, 믿지 않는 세상의 언어로 함께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그 가운데 창조주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궁극적으로 모든 만물 가운데 영광받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이야기했던 것처럼, 고통과 탄식 가운데 있던 모든 피조 영역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롬8:21)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해방되어, 태초에 “보기 좋았더라”의 원위치로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길이 tm KOST가 걸어 나가야 하는 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여재] 학위를 마치며

이코스타 2004년 10월호

이제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으로서의 생활을 마칠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15년 정도의 대학교 생활, 그 사이에 군대를 갔던 시기를 제외하면, 거의 대학교 안에서만 생활해 왔습니다. 중간에 때때로 왜 내가 지금 이 길에 있는가라고 몇번씩 생각하고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을 지금껏 걸어왔습니다. 그 15년 동안 내가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했던가 되돌아 보면 여러가지 반성이 많이 됩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안에 공부하는 것이 꼭 비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사회에 나가서 사회의 일원으로 무슨 일을 해야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생산적인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 지금은 준비하는 단계,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너무나 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순간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달성된 목표뿐 아니라 순간순간 자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서 리더 훈련을 위한 교재,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1)를 읽으면서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로 교재 제목에서도 나와 있는 것 처럼 서로 모순(oxymoron)되는 듯한 Servant와 Leader로서의 모습을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주셨고 그러한 본을 우리에게 또한 요구하심을 다시금 되새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한 섬기는 자로서의 리더쉽이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학문의 영역에서도 분명히 나타나야한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부담감을 계속 가지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삶을 완전하게 성취하시는 모습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목표만을 향해서 돌진하는 그런 모습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가운데에서 어떤 불협화음이나 충돌없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시는 삶을 사신 모습이 두번째로 나에게 다시금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럼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를 왜 이 길로 인도하셨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큰 과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학문의 영역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식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흔히 전문인으로서 하는 학문영역이라고 정의해 두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말자체가 좀 우습기는 하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를 말하면 좀 떨어지는 학문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세태가 말입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는 기독교 사상이 삼류로 되어버린 지는 오래되었고 과학이나 공학에서는 철저하게 믿음과 신앙적인 것은 배제되고 인과법칙에 따른 논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학을 공부하는 한 신앙인으로서 저 또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질문들의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저로 하여금 이 길을 걷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이것이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를 위해서 장막을 짓는 일을 함께 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부담을 지우지 않게 했던 것처럼, 저에게도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난 5년동안 연구했던 것을 쉽게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자신도 같은 과에 있는 사람들의 세미나를 들을 때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할 때가 너무 많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학문이 너무나 전문화되어 몇몇 사람들만 공유하는 그런 암호가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학제간 (interdisciplinary) 연구도 많이 하는 듯합니다.


“Formation and Breakdown of Chromate Conversion Coating on Al-Zn-Mg-Cu 7×75 alloys” 이것은 저의 학위논문의 타이틀입니다. 그리고 아래 있는 영화 포스터는 저의 연구 배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 예를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보셨을 영화, “Erin Brockovich”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법정 영화입니다. Julia Roberts가 열연했던 Erin Brockovich는 PG&E(Pacific Gas & Electronic) 회사로부터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3억3천만불의 소승에 승소하였습니다. 그 PG&E회사가 chromate (Cr6+)를 그들의 엄청난 시설물의 부식, 즉 녹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했는데 이 chromate가 어떠한 오염방지 시설이 없이 결국에는 식수까지 오염시켰고 회사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질병, 유산, 심각하게는 여러 종류의 암까지 유발했음이 판명되었습니다.









(출처: www.erinbrokovich.com)


이 chromate가 저의 학위논문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였습니다. 학위 내내 지원을 받았던 Department of Defense, Department of Energy, 그리고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는 이 chromate의 심각성을 알고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 지원 해 오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의 프로젝트는 항공재료에 있어서 chromate의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항공재료는 가벼운 알루미늄이 많이 쓰이는데, 순수 알루미늄으로는 항공재료로서 강도가 약하기 때문에 다른 물질을 첨가하여 알루미늄합금을 만듭니다. 그 중에서 아연, 마그네슘, 구리등을 첨가한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합금이 보잉747, 777 그리고 전투기 등의 항공재료에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알루미늄합금 자체로는 아직도 부식 등의 위험이 있기에 여러가지 코팅을 입힙니다. 그 중에서 chromate를 기본으로 하는 chromate conversion coating이 코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씀 드린 것처럼 chromate가 사람에게 아주 유독하기에 앞으로 몇년 안에 chromate 사용이 금지될 것으로 판단되어 지금 많은 연구가 대체 물질을 발견하는 쪽으로 투자, 연구되어 왔지만 아직도 chromate와 같은 혹은 더 뛰어난 물질을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연구의 방향이 chromate의 특성을 분석하는 연구로 돌아왔습니다. 대체 물질을 발견하기 위해서 Chromate의 특성을 더 완전히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저의 연구는 이 7000번 계열의 알루미늄 합금에서 어떻게 chromate 코팅이 형성되는지를 연구했고 그리고 어떻게 이 코팅들이 여러 상황 속에서약화되고 결국에는 붕괴되는지 연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첨가한 물질과 불순물로 인해서 코팅의 취약한 부분이 있었고 이것이 코팅 전반적으로 치명적인 붕괴의 원인을 제공함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원인들과 결과를 찾기 위해서 여러가지 장비를 이용하고 결과를 제시했던 것이 제 논문의 큰 줄기였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제를 5년동안 연구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계속 현상들을 알아갈 때 그만큼 모르는 것도 더 많아 짐을 느낍니다. 밝혀진 사실들이 언제든지 더 발달된 기술을 통해서 더 정확히 밝혀지고 이전의 사실들이 수정 혹은 변경될 수 있음을 느끼면서 겸손할 수 밖에 없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하나의 논문을 마무리하면서 마음에 많이 남는 것은 제 자신의 능력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도 교수님과의 토론이 제에게 늘 도전이 되었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고, 실험실에 다른 학생과의 대화 속에서, 세미나 속에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학위 논문이 결코 나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게 힘이 되어준 많은 분들이 계심을 역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평생 고민해야 할 쉽지 않는 신앙과 학문의 통합이라는 주제는 적어도 저에게는 주어진 일에 주께 하듯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원론적인 결론으로 이르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혹시 저에게 다섯 달란트가 아닌 두 달란트를 맡기시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계신지 모르니깐요. 저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명을 주어진 삶과 일의 터전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 것이 신앙과 학문이 통합되는 시작이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1) C. Gene Wikens, “Jesus on Leadership: Becoming A Servant Leader”, Nashville, Tennessee: LifeWay Press,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