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진]제자로서의 나의 일상 생활

이코스타 2007년 3월호

일단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생활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 잘못된 부분, 작지만 소중한 부분, 들려 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을 보게 하시고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난 달인 12월 말 즈음에 시작하여 이런 저런 나름대로의 깊은 생각을 하며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제자로서의 삶’에 대한 글을 부탁하시는 말씀을 들었을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 평소 생활을 생각하면서 써보면 어떨까’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깊은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득, 하지만 선명하게 들었던 생각은 ‘제자가 자신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써야지 ‘제자로서의 삶’이지, 제자가 아닌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적어보면 그건 ‘제자의 삶’에 대한 글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직도 자신있게 ‘나, 제자입니다’ 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빡세게’ 기도 한번 하고 잘 써보자’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한 달㈏?시간이었습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것을 ‘제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내지는 ‘제자의 삶이란 이런 것일 것이다’ 라는 글이 아닌, 제 생활을 돌아보면서 어떤 삶이 제자의 삶인지 생각해 본 것을 짧게 나눠보고 싶습니다. 제자의 삶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은 이미 eKOSTA게시판에도 여러 좋은 글들이 있고, 많은 신앙의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이 많이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저기에서 인용해서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긴 시간과 많은 분량으로 다가와 부담이 든 나머지, 부끄럽지만 저는 제자로서의 일상의 생활이 어떤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는가, 제 생활을 생각해 보면서 나누겠습니다.


약 3년 반 전에 결혼을 하고, 저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어느 정도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보통 우리들이 살면서 겪어보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그렇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는, 그런 힘든 일들도 그 짧은 기간에 여러 차례있었습니다만…) 저의 생활에서의 주 활동 반경을 생각해 보면 크게 가정, 직장, 그리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캠퍼스 정도가 되더군요. (사실, 교회가 집에서 좀 멀어서 거의 주일에만 교회를 가고, 유치부 교사로 섬기는 일 외에는 여러 주 중의 다른 활동에 참여가 많지 않아 주 활동 반경에 포함하기는 조금 힘듭니다. 요즘 들어서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골3:23)


제가 늘 마음에 두는 말씀들 중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California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Thousand Oaks라는 곳에 있는 Amgen이라는 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부 때 전공이 Biochemistry여서 동부에 살 때는 주로 Lab안에서 조용히 일을 했는데요, 이 회사에서 IT쪽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그것도 management쪽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환경 가운데에 있습니다. 지금은 IT Project Management Consultant로 일하고 있구요. 사는 곳이 Southern California이고 다니는 직장이 Biotech에 IT라 그런지, 회사안에서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꽤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도인 인도인들인데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가끔 성경의 한 부분들을 나눠보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주로 금요일 성경공부를 위해 준비하는 본문의 말씀들을 금요일 성경공부 전에 또는 후에 주변 사람들과 나눠보기도 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성경공부 준비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들여다 보는 시간도 있고, 본문 말씀이나 다른 자료들을 프린트해서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옆에서 그걸 본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고 물어보기도 하고 (한국말로 써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씀을 놓고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다가가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말씀을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생각해 보게 되고, 또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고, 그러면서 함께 일하는 부분들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더군요. 문득, 어느 날 제 마음 한 켠에 두려움이 급습을 한 날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제가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크리스챤으로서, 우리가 흔히 세상에서 생각하는, ‘잘 할 것’을 저한테 기대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사실, 그것을 알게 된 후에 더욱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조심하게 되고 하는 일에도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더군요. 저는 솔직히, 너무 제 안의 교만함이 많아서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잘 될 때,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좋게 평가하며 함께 나누었으면 할 때, 너무나도 무서운, 평소에 늘 있으나 제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제 안의 무서운 점을 보게 됩니다. 그 때 마다 늘 골로새서 3장23절의 말씀을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일 을 할 때 조심합니다. 저는 또한 개인적으로 제 일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나한테 정말 맞는 일인가 묻는 경우도 꽤 있기는 한데요, 그러면서도 만족을 누리려고 하는 이유는이제는 제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이 직장에서의 제 생활이 제 자신안에 형성된 하나님의 디자인을 발견하는 의미있는 사역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자리로 어떤 모양으로 인도하실지는 모르지만 이런 직장과 이런 일에 저를 허락하실 때에는 그 위에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심을 확신합니다. 만족이라는 것이 일을 성취할 때의 희열이라던지, 나의 시간과 노력과 노동을 투자한 후에 얻는 금전적 또는 정신적 보상 등의 것으로도 물론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심으로 헌신과 정열을 다해 할 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그런 작은 일이지만 그 일을 하고 있는 나와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 주신다는 감사함이 들 때 꽤 깊은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눅17:10)


California에서 살게되면서 UCLA에서 UCLA학생들, 또는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싶어하는 UCLA주변의 자매님들, 형제님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3년여가 지난 지금은 LA서쪽의 Santa Monica에 있는 Santa Monica College(SMC)라는 Community College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사랑과 헌신으로 섬기시는 많은 지체들과 각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열정과 계획을 갖고 참여하는 지체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도전을 받습니다. 성경공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성경공부를 통해서 만나게 된 여러 자매님들, 형제님들과 교제를 나누며 삶의 많은 부분들을 배우기도 하구요. 성경공부를 함께 하다보면,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지체들의 숫자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고, 저를 포함해서 성경공부 식구들이 나름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듯 하다가 멀어지는 듯 하기도 하고, 멀어지는 듯 하다가 가까이 나아가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서, 믿음이 잘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안타깝게도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아서 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구요. 함께 성경공부를 통해 섬기시는 간사들 가운데에 저는 딱히 UCLA에 소속을 두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서, 지금은 옆 동네 학교인 SMC에서 섬길 수 있는 특권도 누리고 있는데요, 이 성경공부 모임은 이제 막 (2006년 가을 학기부터 시작) 시작한 모임이라, 서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나누기를 소망하며, 그런 날이 올 것을 믿으며, 서로 ‘모이기에 힘쓰는’ 모임입니다. 캠퍼스를 섬기며 갖게되는 작은 소망은 이런 저런 작은 모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일꾼들이 길러지는 하나님의 귀한 캠퍼스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에 미국에 와서, 처음에 영어에 익숙하지 않고,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아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에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의 보살피심이 있어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고생스럽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캠퍼스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올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통해 자신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함께 발견하고, 또 발견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에 이 정말 쓸모 없는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조용히 사라져 또 어느 곳으로 옮기실 지는 모르지만 그 준비를 겸손하게 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곳을 향하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거룩함과 겸손함과 순종함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여러 곳에 여러 모양으로 흩어져서 곳곳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한 마음을 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계속하여 세우시고 성령의 끈으로 연결시켜 주시는 그 일에 계속 동참하고 싶습니다.


“너의 헛된 모든 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전9:9)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신 6:5-7)


저는 제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UCLA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어서, UCLA학생 아파트에서 약 3년 정도 살다가 지금은 LA에서 약 30마일 정도 떨어져있는, 제가 다니는 회사로는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Calabasas라는 꽤 시골 분위기가 나는 조용한 곳에 살고 있는데요, 제 아내가 공부를 해서 그런지, 아직 아이가 없어서인지 집안 분위기는 꽤 조용하고 차분한 편입니다. 항상 서로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고요. 매일 금요일에 있는 성경공부를 서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경공부가 있는 금요일 전 후로 그 주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구요. 제가 좀 TV를 오래 보거나 잠깐 졸려고 하면 가차없이 지적을 (꽤 부드러운 표현입니다만) 하기도 하구요. 사실 결혼을 하면서 전도서 9장 9절의 말씀이 새삼 감사하게 받아들여 졌습니다 –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사는 동안에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라는 말씀. 이 구절, 사실은 저희들의 주례설교를 해 주셨던 목사님께서 주신 칼라 성경책에 빨간색 밑줄이 쫙 그어져 있는 구절이거든요. 꽤 오랜 기간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해서 그런지, 전 제 아내를 많이 사랑합니다. 제 아내도 저를 많이 사랑하구요. 저의 생활의 다른 주된 공간인 직장에서나, 성경공부를 하는 캠퍼스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쉼을 허락하실 때에 참 깊은 감사가 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을 함께 나눌 때도 물론 그렇구요. 그런데, 전도서 9장 9절의 말씀이 전도서라는 책의 본문의 위치나 앞 뒤의 내용 구조를 볼 때, 그리고 또 그 때에는 아내와 더불어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첩들 내지는 다른 방법으로 즐기는 것들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에서 나오는 잠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원하는대로, 이 한 구절 말씀만으로 ‘가정에 대한 의미를 ‘힘든 삶 속에서의 쉼터’, 내지는 ‘아내와 즐기는 곳’으로 한정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는 믿는 사람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당연하게 매우 기본적이며 또한 당연히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말씀의 다른 부분들을 생각할 때,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바로 그 도를 전수하는 터이며 (신4:9-10, 신 6:5-9),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행10:2), 바로 ‘부부’라는 두 사람이 동역하며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사역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7)


제 생활의 주된 부분의 단면들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며 제가 하고 있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활을,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많은 것들을 제 삶에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별 큰 어려움이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점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들 마저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제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임을 깨닫게 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그 사랑의 바탕위에서, 직장에서 진실되게 충성하기를 원하시고, 저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일들 가운데에서 거룩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며,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시고, 제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며, 헌신하는 사역의 출발점이 되도록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를 데려가실 때에 디모데후서 4장7절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늘 원합니다. 그리고 밑에는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 434장입니다. 1, 2, 3절 다 감사하고 좋은 데요, 1절 만 적습니다.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중간 중간의 말 뜻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던 때 부터 좋아하던 찬송이라, 어른들께서도 이상해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요…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항상 인도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한나]제자의 삶…

이코스타 2006년 10월호

제자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지도 못한 제가 이런 글을 부탁 받아서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변변치 못하지만 제가 겪은 얘기를 조금 하겠습니다. 전 캠퍼스 성경공부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아리조나에 오게 된 후로는 지역 교회 중심으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달 전 까지만 해도 좀처럼 하나됨이 느껴지지 않는 청년부 공동체 안에서 갈등하며 거의 이년 동안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사람으로 인해 생기는 상처들과 오해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져가는 공동체를 바라보며 기도할 때마다 화도 나고, 때론 마음이 저려오며 눈물이 났습니다. 뿔뿔히 흩어진 마음으로 감동이 없는 찬양과 메마른 교제와 예배를 생각하면 속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보실 때 얼마나 슬퍼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년 예배 때 찬양이 시작되어 들어서면 스무 명쯤 되는 청년들이 긴 벤치에 한명씩 다 흩어져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듯해 보였습니다. 어쩜 두명조차도 함께 앉아 있지 않을까…? 힘이 빠졌습니다. 그저 명목상의 예배였고 모두 굳은 얼굴로 서로 눈치를 보며 빨리 끝나기 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예배 후 소그룹 성경공부 시간이 되면 시작하기도 전에 한 형제가 말하기를, “빨리 끝내고 집에 가죠.” 그럽니다.


하나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 받고 분노하고 극복하려 발버둥 치기를 반복하며 멤버들은 고사하고 리더들 마저 그렇게 지쳐갔습니다.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막막했고 제 자신도 지쳐감을 발견했고 저 조차도 교회 가는 것이 힘이 들고 교회가도 웃음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교회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이제껏 교회는 사람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고 가는 거라고 외쳐왔기에 옮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혜도 없고 뾰족한 수도 없고 막막함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할수록, 이런 상황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기도하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보이실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당시 제 기도는 무척 단순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좀 해 주세요.” 기도하던 중 하나님은 지쳐있던 리더들을 한 자리에 모아주셨고 함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했습니다. 더 이상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기도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의지했을 때 하나님은 조금씩 우리 안에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리더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서서히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며 의논하며 구체적인 새 계획을 세워갔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리더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셨고 새로운 계획과 마음으로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두 달이 되어갑니다. 저에게는 이 변화가 하나님의 손길로 이루어 진 것임이 확실합니다. 한가지 뚜렸하게 달라진 점은 사람들의 표정입니다. 많이 밝아졌고 이젠 예배 후에 하는 성경공부를 한 시간 안에 끝내 달라고 당부해도 꼭 한시간 반씩 끄는 조가 한둘이 아닙니다.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얼 믿고 자꾸 우리에게 새로운 영혼을 보내 주시는 지…새 학기가 시작하고 두 달이 다 되어가는 10월 중순인데, 저번주 청년부에 세 명 더 왔습니다. 사랑과 지혜로 그리스도의 몸을 잘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강수욱]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통한 제자삼기

이코스타 2006년 6월호

제자 삼는 삶으로의 부르심은 내가 살아가는데 있어 참 기쁨과 소망, 그리고 모든 열심의 이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직 관심이셨던 영혼구원과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가는 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마땅히 주인이 걸어가신 길을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였고, 그 부르심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그저 짧고 부끄러운 사역이었지만 지금까지의 제자 삼은 사역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난 할 수 없구나.’ ‘안 되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것들을 통해서 ‘나’라는 사람을 더 알아 갈수 있었으니, 난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구하며 살 수 밖에 없음’을 계속해서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


사역의 한 term을 마친 후 한때 긴 고민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름대로 좌절에 빠져 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제자로써의 부르심 앞에 처음 섰을 때부터, 그 사역에 임하면 임할수록 다른 믿음의 선배나 동지들처럼 괜찮아 보이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거나, 듣던 대로 ‘성화’되어 가는 모습은 나한테서 절대로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불안정하고 미울 만큼 싫은 내 모습들이 더 분명히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제자 삼는 사역에 열매 없음은 내겐 큰 영적고난으로 다가왔습니다. 왜 그런 걸까? 나름대로 난 분명whole heartedly 하나님사역에 열심과 충성을 다하였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내게 맡겨진 지체들에게 나름대로 난 자신 있게 늘 말하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내 제자가 아닌 예수님의 제자로 세움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날 보며 따라오면 안 되고 오직 예수만을 보고 직접 배우고 따라가세요.’라고… 얼핏 들으면 굉장히 겸손한 모습인 것처럼 보일수도 있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 motive는 죄 성으로 가득한 내 실질적인 삶이 드러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의한, 회피 하고픈 hidden agenda일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난 십자가 뒤에 비겁하게 숨어 버린 것일 수도 있겠고, 십자가라는 도로상에 off road에 서 있는 signage처럼 방향제시자였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입니다.’ 라는 표시처럼.


그렇지만 성경에서 바울의 가르침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봅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 4:9) 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씀 앞에서 난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바울은 얼마나 완벽한 사람이며, 또한 그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사람 앞에서 얼마나 당당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겸손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자신 있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담대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난 나 스스로에게 수많은 question mark들이 생겨났습니다.
‘난 그리스도의 참 제자인 것 일까?’ 바울과 같은 고백을 1%정도라도 따라 흉내 낼 수 있는 당당함이 하나님 앞에서 있는가? 내 삶에 실제적 열매로 드러나고 있는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역에 열매 없음의 원인은 결과적으로 내 첫 번째의 고민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삶을 볼 때 내가 가르치는 말씀과 내 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는 찬양의 말들과 결코 일치 되지 못함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난 그것이 부끄러워서 복음 뒤에 내 모습을 감추려 했었을 지도, 어쩌면 실질적인 내 모습에 관해 denial stage에 머물러 있었지 않았나 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투명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가 될 수 있을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요한복음 15:7-12)


참 제자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하든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하나님이 되심을 내가 알고, 그 앞에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아가는 것이지 않는가. 주되신 그리스도 예수가 걸어가신 길, 종 된 내가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그것이 무슨 고난의 길을 걸은 것 마냥, 오버를 하지 않았나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예수님 말씀대로 참으로 하나님 말씀에 붙들려 살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산다면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다 하실 텐데 말이다. 그렇게 당연한 이치를 매번 인식하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운 것일까?


내가 하나님 임재 안에서 – 그 사랑 안에서 –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 안다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완전히 녹아 없어질 텐데…그리고 내 안에 하나님만이 드러날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내가 사용된 사역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 날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곧 더 이상 나의 열심이 아닌 나를 통해 드러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참 사역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에 사로잡혀 하는 사역을 내가 할 때 비로소 내가 그리스도의 본받는 참 제자가 되어갈 것이며, 열매를 바라는 사역 이라 믿습니다.


내 안엔 창조의 능력이 없지 않는가! 하나님이 하시지 않는 일엔 열매가 없는 건 당연 한 것이지 않는가! 하나님이 하셨구나…라는 고백만이 나의 고백이 되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먼저 가신 그 길, 제자의 모습으로 살길 원합니다. 겸손함을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방자함으로 오버하지 않고, 그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녹아 없어지기를 먼저 구합니다. 그렇게 내가 십자가 앞에서 투명 순결해질 때, 바울의 가르침처럼 그 신앙고백이 내 고백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가르침을 행하는 제자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체험되어 변화되어가는 being으로써 내가 훈련되어지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어가는 제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김하나]소그룹을 통한 제자의 삶

이코스타 2006년 5월호

항상 그래왔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하거나 준비해야 할 때 변함없이 내 자신에게 나의 자격과 능력에 대해 질문해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볼 때, 늘 실수투성이고 부족한 내 모습 가운데 역사하시고 인도하셨던 그분의 손길을 다시 한 번 내 마음에 되새겨 본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거룩한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것이 내게 있었다면 ‘제자의 삶’ 이였던 것 같다. JJkosta를 통해 가서 제자 삼으라는 지상 명령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었음을 발견했었지만, 내성적인 나의 성격으로 말씀을 전하고 외치는 삶이 크고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늘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다가 내게 용기와 결단을 하게 해 주었던 것이 작년 3월 조지아 주에서 있었던 gpkosta이었다. 그 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준비하여 드디어 한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삼는 일이 KBS(Korean bible study)모임을 통해 시작되었다.


6명의 자매들과 QT 훈련과 나눔을 시작으로 말씀 모임이 시작되었다. 말씀의 기초가 없었던 자매들이여서 어떻게 하면 내게 허락하신 이 소그룹을 통해 효과적이고 건강하게 제자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다.
우리 모두가 구원의 대상자들이어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며 변함없이 영원토록 오늘도 사랑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더욱 사랑하는 지름길은 기도임을 발견했다. 기도는 그분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 모임과 제자 삼는 삶의 열매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기 시작했다. 한 영혼, 한 영혼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할 때, 진정으로 섬길 수 있는 마음이 생김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섬김의 목적으로 이 땅에 오신 것처럼, 나를 드러내지 않으며 각 영혼에 대한 눈높이 사랑으로 맞추어 갈 수 있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자매, 감정 기복이 심하던 자매, 주제와 늘 어긋나게 대화를 이끌어 갔던 자매 그리고, 말씀이 어렵다고 투덜거리던 자매에게 나의 원래 모습과 감정과는 상관없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그 영혼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혼을 다스리는 것이 아닌 진정 섬기고 사랑하는 귀한 훈련이 되어가며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들었다.


둘째, 제자의 삶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것을 우리는 다 알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헌신하기까지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는 우리 모임의 꿈과 목적은 말씀을 가지고 고민하는 삶이었다. 나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입장에 있을 때 비로소 내 안에 얼마나 말씀이 부족하고 지식이 없는지 깨닫게 되어서, 말씀을 더욱 붙잡고 씨름하며 고민하며 나중에는 더욱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각 영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은혜를 부어주시지만, 말씀을 알고자 배우고자 갈망하는 모습들을 점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을 갈망할 때 비로소 말씀에 지배되며 이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섬김과 순종의 삶을 보여 주신 것처럼, 말씀을 인도하는 입장에서 내가 먼저 말씀에 순종하고 반응하는 삶을 보여서 그들에게 말씀에 대한 오묘한 맛과 능력을 증거하고 싶었었다. 말씀으로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삶을 다스리며 조정 할 줄 알아야 함을 깨달았다. 말씀이 내 삶을 흔들 때 나의 삶을 되돌아보며 고민하게 되고 결국은 말씀에 이끌리는 삶을 살게 된다는 원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한 영혼씩 말씀에 귀를 기울여갈 때, 조금씩 반응하며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바라봤을 때 더욱 기쁜 마음으로 말씀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용기가 더욱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다.


소그룹을 통해 말씀을 가르치며, 양육하고 돌보며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참된 종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영혼을 품고 사랑하며 말씀으로 함께 뒹구는 시간들 속에 함께 일하셨던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여유와 믿음으로 제자의 삶에 더욱 헌신하며 씨앗을 뿌리는 삶이되길 소망하며 기도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2:4-5)

[최규진]제자

이코스타 2006년 4월호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후, 그 분의 부르심대로 살아갈 때 고민할 수 있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제자라는 개념인 것 같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솔직히, 필자도 “제자가 되는 것” 과 “제자 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가 때때로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사명이란, 모든 민족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가르치고, 또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항상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또한, 생각한만큼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과 전한 복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지키게 하는 것이 제자의 소명이라면,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필자가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NIV; 1 Corinthians 15:58)


첫째, 제자로서 살아가려면 흔들림없이 굳건히 그 분을 믿는 믿음안에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을 “stand firm” 이라고 표현했다. 즉, 세상의 어떠한 것들에 향해서도 자신의 믿음은 흔들림없이 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믿음을 흔드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번 흔들리게 되는 것들은 다시 그 문제로 인해서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이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 문제에 흔들림없이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바로 그 중심의 흔들림없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경험했을 것이다. 즉, 세상의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 제자로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로 아들을 바친 아브라함의 믿음이 바로 이것에 해당하며, 히브리서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이 가졌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가치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Some faced jeers and flogging, while still others were chained and put in prison. They were stoned; they were sawed in two; they were put to death by the sword. They went about in sheepskins and goatskins, destitute, persecuted and mistreated the world was not worthy of them…” (Hebrews 11:36-38)


Do not deceive yourselves. If any one of you thinks he is wise by the standards of this age, he should become a “fool” so that he may become wise.” (1 Corinthians 3:18)


둘째,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고 강하다.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딜레마에 빠질 수 있는 부분중에 하나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 말씀을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지 못하고, 복음만 전하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속이는 자들에게 향하여 신랄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필자는 귀신을 쫓아본 경험은 없지만, 복음에 권능이 있다는 것을 매번 체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해도, 자신을 속이는 자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즉, 경건의 모양도 있고, 능력도 간혹 나타나지만, 자신을 속일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이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또한, 나 자신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부류의 사람들이 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므로, 내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 자체도 그 분 안에서 치유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 날마다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불러주신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자로다” (고린도후서 6:8-10)


셋째,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 땅에서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에서조차 자신의 사도됨을 의심받았다. 심지어 사기꾼 취급을 당하기도 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자신이 양육한 자들에게조차 버림받기도 하며, 또한 인정받지 못할 경우도 있다. 제자의 모습은 우리 육신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제자로 살아가야 한다고 묻는다면, 그 곳에 숨은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명령에 순종했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 비밀은 제자로서 살아갈 때 비로서 깨달을 수 있다.


앞서 말한 세 가지가 필자가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깨달은 것들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죄인된 나를 제자로서 불러주신 은혜를 깨닫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셨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했는가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누가복음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