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 2001 | 유학생 사역/캠퍼스 사역 Q&A
캠퍼스 사역 Q&A
어떻게 하면 침체되어 있는 청년부를 활성화 시킬 수 있습니까?
청년부의 목적을 확실히 정립해야 합니다. 먼저 청년회가 왜 존재하는지 또 그 목적에 비추어 보아 “활성화” 시킨다는 뜻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물론 각 교단에 따라 혹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보다 더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청년부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 중에 하나로서 젊은 사람들이 모인 신앙의 공동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 땅에서 표현된 하나님의 다스리심의 구체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 교회”를 포함한 para-church들, 즉 campus ministry과 또한 여러 선교 단체들의 종합체라고 개념지을 수 있습니다. 이런 종합적인 개념 안에서 청년부는 일반적으로 한 지 교회 안의 청년들의 신앙 공동체, 즉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년부의 목적을 정립하려면 신앙 생활이 무엇인지, 또 신앙 생활에 관련되어 왜 모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 모임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하나의 지체로서 어떠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청년부의 궁극적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우선적으로 제자를 양육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이루어질 수 있는 영역은 그의 나라, 즉 제자들의 삶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를 키우는 일은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부라는 지체로 조금 좁혀서 생각해 보면 제자를 키우는 일이란 청년들의 삶 가운데 깊이 파고 들어 그들을 온전히 주님께 순종시켜 평생을 주를 위하여 살 수 있는 사람들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의 삶 가운데 깊이 파고들 수 있기 위해서는 그들과 호흡을 같이 맞추고 그들의 생각의 수준으로 눈 높이를 조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눈 높이의 조절이란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 들인다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이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할 때 그들의 눈 높이로 전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은 말씀을 전하고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 결국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은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청년부 모임에서 설교 말씀 듣는 것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한 지체가 독립적으로 성경을 대하며 하나님의 살아 계시는 생동력 있는 말씀을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훈련시켜 주는 작업을 말합니다. 직접 말씀을 받아 들일 수 있는 단계에 이를 때 그 말씀을 또한 지킬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뛰어난 의지보다는 생동력 있는 말씀이 그 지체 안에서 움직이시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 입니다. 이런 작업은 한 인도자가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보통 한 인도자가 5명 정도 이상을 동시에 제자 훈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명의 지체를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세우기 위해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데는 (경험으로 보아) 약 3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준비되어 있는 인도자 없이 숫자적 부흥을 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 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지키게 하는 일은 완전한 헌신과 말씀의 붙들림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청년부를 인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완전히 헌신되어 있다는 뜻은 그것이 목회자이건 평신도이건 관계 없이 제자 삼는 것에 초점이 항상 맞추어져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점이 흐려지지 않는다는 뜻은 첫째로 자기의 계획하는 모든 바가 한 영혼 영혼에 대한 관심과 훈련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어느 프로그램이나 혹은 교회의 다른 일들을 위하여 일군이 필요하기 때문에 청년부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제자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순수성을 상실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자신의 삶 자체가 제자 삼는 일에 우선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자 훈련은 삶을 통하여 말씀이 생명으로 변화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의 삶 자체가 제자로서의 삶에 미치지 못 하면서 가르치면 위선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에 온전히 붙들린 자라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먼저 말씀에 깊이 빠져 있어야 합니다. 말씀의 깊은 묵상과 이해가 없으면 말씀 대신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청년부를 활성화시킨다는 뜻은 제자 삼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런 제자 삼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청년부는 활성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몇 사람이 모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라도 제자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헌신된 한 사람만 있으면 청년부가 활성화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제자의 삶을 사는 한 인도자가 있으면 청년부는 활성화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인도자가 한 명이면 그 청년부는 5명만 모여도 활성화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3년의 공생애 동안에만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선포 하셨지만 그의 삶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던 것은 자신이 선택한 12제자들을 훈련하시는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 함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가장 핵심적 표현은 다른 사람을 또한 제자 삼는 일 입니다. 제자 삼는 일은 전도, 양육, 돌봄과 사귐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 영접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다른 사람을 전도하는 일을 곧 시작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돌봄, 그 다음은 양육입니다. 사귐은 이 모든 과정 가운데 끝임 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사귐이 없이는 다른 제자 훈련의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청년부가 소속되어 있는 환경, 즉 소속되어 있는 지 교회 안의 특별한 사정이나 다른 para-church와 연관된 관계 등등에 의하여 조금 융통성 있게 운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소속되어 있는 지 교회 안에서 한 지체로서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에 동참하는 것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차세대를 양육하는 교사, 예배를 인도할 찬양 등을 예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것들이 일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잘 분배함으로 직접적으로 제자 삼는 일에 “해”를 입히는 일은 피해야 할 것입니다.
Apr 1, 2001 |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1년 4월호
‘교회’라는 형식을 빌든, ‘캠퍼스 모임’이라는 형식을 빌든 간에 상관없이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는 크리스천이 모인 곳이라면 그곳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엄히 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할 주체인 것이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지난 10여년 간 꾸준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시에 경작을 필요로 하는 ‘캠퍼스’라는 땅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기도와 헌신으로 물 주어 열매를 거둬 들이는 일을 해 온 캠퍼스 모임 Korean Bible Stduy(KBS)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동시에 KBS에서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과 씨름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어 현재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그곳 학생들을 향한 비전을 키워가고 있는 김창수형제와 DC에서 KBS를 통해 예수님을 알아가고 말씀을 알아가는 것에 달음질을 시작한, 그래서 본인 스스로를 ‘Green Christian’이라고 표현하는 김기한 형제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 보았다.
Korean Bible Study(KBS)는 이름 그대로 한국어로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하는 모임이다. 캠퍼스를 본거지로 시작이 되었지만 “캠퍼스 사역”이라는 사역의 한 구분으로서의 활성화 혹은 그 사역 내에서 KBS의 존재성을 구축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단지 한 사람이라도 더 말씀으로 양육하고 양육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KBS는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한 ‘활동의 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모임이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면, 1989년도 Washington DC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 현재 KBS의 대표간사이기도 한 이일형권사는 근무처 근처에 위치한 George Washington University(GWU)를 바라보며 그 캠퍼스의 학생들을 젊은 시절부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키우기를 원하시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2주가 지난 후 우연치 않은 연결고리들을 통해 마침 학교 내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찾고 있던 두명의 학생들과 만나게 되고 이 두명 이외에 한 손에 꼽을 만한 인원이 들락날락하며 함께 5년간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고 나서야 점차적으로 인원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GWU이외의 다른 캠퍼스를 향한 왠지 모를 마음의 부담과 함께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고, 1주일 만에 역시 예기치 못한 경로를 통해 Georgetown University(GU)에서 자체적으로 성경공부를 시작한 소수의 학생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결국 이것이 GWU 밖의 캠퍼스로의 첫 진출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 GU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한 ‘소수’의 학생중 하나였던 이창수형제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자. “당시대학 1학년이었던 저와 아는 형이 학교 간 성경공부 서클을 만들어서 건전한 교제를 하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헌신된 리더로서의 준비가 거의 없었던 것은 물론이고 성경에 대해 지식도 많지 않았던 저희는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5-6명이 모여 돌아가면서 리더를 하는 형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2-3주 후에 저희 모임을 알리는 포스터를 보고 들르게 되었던 한 자매를 통해 KBS와 연결이 되었고 그곳에서 리더로 계신 분이 조인하시면서 체계적인 양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이끄신,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라고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비슷한 과정 – 젊은이들을 제자 삼고자 하는 단순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사람들을 불러주시고 인원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그룹이 생성되는 – 을 통해 현재는 두 개의 직장인 그룹과 영어권 모임을 포함하여 7개 캠퍼스에서 (American U, Catholic U, George Mason U, Georgetown U, George Washington U, Northern Virginia Community College, U of Maryland) 15개의 그룹으로 모이고 있으며 DC KBS를 거쳐간 젊은이들이 타 지역에서도 North and South SBS (Seoul Bible Study), NY KBS 등의 이름 하에 같은 비전을 펼쳐 나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KBS의 초점은 ‘KBS’라는 모임의 성장이 아니라 한 영혼 한 영혼의 성장에 있다. 자기 시간과 삶 전반에 걸쳐 헌신된 모임의 인도자들은 먼저 본인의 삶을 변화시킨 말씀의 능력이 모임의 구성원들의 삶에도 적용되도록 하기 위해 하루에 ‘최소한 두 시간씩’ 그 주에 공부할 성경본문을 묵상함으로써, 또한 코디들은 각 영혼을 생활적인 면에서 돌보고 일대일로 제자 삼는 일에 실질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림으로써 그들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발자취를 좇는 제자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성경공부 참석자들은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가운데 결국에는 스스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마르지 않는 생수를 직접 공급받는 법을 배우는 제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창수형제는 KBS에서는 말씀에 대한 중요성을 ‘오이지’로 비유한다고 했는데 “오이지가 짠맛을 내기 위해서는 소금물에 완전히 절어야 되듯이 우리가 제자의 맛을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절여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김기한형제 역시 친구의 권유로 처음 KBS모임에 참석했을 때 헌신된 리더가 전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성경에 대한 깨달음과 예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강하게 느끼게 되어 자연히 지속적인 모임에 참여하기를 결심하게 되었으며 그 첫 발걸음이 그를 거듭나게 하는 첫 단추가 되었다고 하니 말씀의 파워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캠퍼스를 중심으로 한 소그룹 성경공부 외에도 두 번 정도는 각 캠퍼스 모임이 속한 지역(현재 KBS 1-2-3, 세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지역당 3-5개의 모임이 속해있다)의 전체모임을 통해 대표간사님들의 말씀을 듣는 기회를 마련하며 한 학기에 한 번 그 학기의 주제 하에 전체 수양회를 열고 있다. 또한 매주 두 번 – 한 번은 주중에 각 캠퍼스에서, 다른 한 번은 토요일 아침에 지역별로 모여서 – 열리는 기도모임을 통해 말씀과 기도의 기초 위에서 양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창수형제는 고린도전서 4장 15절의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 ” 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씀의 가르침에 더하여 사랑의 기도와 섬김으로 자신이 변화되었다며, 한번은 그가 학업의 부담이 너무 크고 힘들어서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새벽에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을 때 함께 기도하고 있던 간사님께서 다가와 아무 말씀 없이 손을 얹고 중보해 주었을 때 스승의 사랑뿐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양육된 형제 자매들은 성장하는 캠퍼스 모임 내의 리더로 혹은 인근 캠퍼스 모임의 인도자로 파송되어 그곳의 영혼들을 양육하는 일을 맡아보게 된다. 모임의 성장이 곧 캠퍼스 내의 다른 영혼 및 주변 캠퍼스의 성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두드러져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지역교회가 주로 교회성장에 집중함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교회 바깥에 있는 청년들, 특히 성경공부 이전에 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그 공백부분을 바로 KBS와 같은 캠퍼스 사역단체가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캠퍼스모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KBS에 참석했던 학생들이 하나 둘씩 교회로 연결되면서 한때 30대 초반이 가정 젊은 층이었던 교회에 청년부가 세워게 되었고 교회 또한 KBS의 교회외부 사역의 무리없는 진행을 돕는 기반(base)이 되었다. 또한 현재 KBS 고문으로 섬기시는 지역교회 담임목사님이 캠퍼스 사역에 대해 가지고 계신 이해와 수양회 혹은 전체모임 등을 통해 사역에 동참하시는 의지는 KBS를 통해 연결된 젊은이들이 지역교회에도 잘 적응하고 주일에 교회의 모임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은혜 또한 놓치지 않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기한형제의 경우 KBS성경공부에서 받은 말씀에 대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어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고 목사님의 말씀과 이어지는 청년부 내에서의 설교말씀 묵상을 통한 나눔가운데 그동안 궁금하게 여겨오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 ‘아는 지식’을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신앙생활’의 의미가 지역교회의 ‘내부봉사’에 제한되어지다보니 남에게 잘 알려지지 않으면서도 단기적인 안목에서 거둬지는 열매가 상대적으로 적은 캠퍼스 사역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꾼 혹은 그러한 헌신에 대한 후원이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다. 혹은 청년들이 교회봉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캠퍼스 사역에 더 많은 시간과 자기능력들(resources)을 투자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교회 어른들의 불만과 그에 따른 압력이 따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은 신앙인의 자세가 ‘지역교회'(local church)를 초월하여, 목회자와 지역교회를 중심으로하는 틀에서 우주교회적인(Universal Church) 틀로 의식이 바뀔 때야 비로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KBS와 그 연결교회들의 경우처럼 캠퍼스 모임의 인도자들과 지역교회 목회자들의 포용력있는 관심과 배려가 전제된다면, “한국어권 모든 유학생들이 양육을 받아 하나님의 일군이 되도록 해 달라”고 KBS인들이 눈물로 뿌리는 기도의 씨앗이 시편 126장 5절 말씀처럼 “기쁨으로 그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