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TA/USA 2004 참석자 좌담회 – 김우재, 여희영, 권오진, 최호진

이코스타 2004년 8월호

-  eKOSTA: 좌담회에 참석해 주신 코스탄 여러분을 환영합니다.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김우재: 저는 Ohio State University에서 심리학을 5년째 공부하고 있고요, 코스타 참석은 처음입니다. 아내와 5살짜리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14년 전인데, 미국에 와서 많은 성장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좋은 목사님도 만나 뵐 수 있었고요. 지난번 콜럼버스에서 열렸던 gpKOSTA에 참석하고, 미국 코스타에도 참석하는 등 올 한해가 제게는 참 중요한 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희영: 지난 여름에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international study로 석사를 마쳤고요. 교회 나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인데, 대학에 와서 UBF라는 선교단체를 통해 더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코스타는 이번이 처음이고요.


권오진: 지금 UCLA에서 통계학을 공부하고 있고요, 코스타는 2000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 있을 때 조장으로 참석한 경험이 있는데, 이제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최호진: 저는 DC에서 Bioinformatics 석사과정에 있고, 모태신앙입니다. 코스타는 2002년도에 교환학생으로 있을 때 참석했었고 이번이 두번째입니다.


-  eKOSTA: 이번 코스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라는 주제가 유학생들의 처한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으로 볼 때 적절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 주제가 집회과정을 통해 잘 드러났다고 보시는지요?


권오진: 저는 이번 주제가 이 시대의 우리 젊은이들에게 매우 절실하게 필요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적어도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기독교라는 간판 자체는 세속적인 관점으로도 더 이상 핍박이나 멸시의 요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신분과 계층을 암시하는 지표로까지 상징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단순히 세속적인 형통과 축복의 통로로 종종 잘못 이해되기도 하구요. 이런 시기에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라는 거룩한 선포는, 좁은 길을 피하고 넓은 길에만 모여 있으려는 위험한 움직임에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기대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범위가 제시된 것과는 달리 “고난”에만 치중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2004 KOSTA 주제를 접하고 가졌던 기대와 생각은 공동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 시대에, 그리고 분열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 기독교 공동체에게, 공동체적인 고난과 거룩함에 대한 화두를 던져줄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jjKOSTA에서부터 마지막날 파송예배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대한 내용은 아침QT를 제외하고는 다루어지지 않았구요, 따라서 “고난” 역시 개인적인 고난과 신앙의 성숙이라는 주제로 흐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도, 고난과 공동체를 모두 다루기에는 4박5일은 너무 짧은 기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주제 선정의 의도를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난과 공동체, 그리고 공동체적인 고난에까지 모두 다루려고 했던 것은 좀 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우재: 공동체라는 부분이 전체집회를 통해서는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공동체라는 주제가 신앙이 꽤 성숙한 사람들을 위한 주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코스타에 참석한 사람들의 신앙 상태를 고려할 때, 아직은 개인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코스타의 주제를 살펴보더라도, 작년에는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 제작년에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로 대부분 개인적 수준의 내용이었던 것 같고, 그래서 이번에는 주제를 개인을 넘어선 공동체를 주제로 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의 신앙 1세대가 이루어 놓은 전통 아래에서, 우리 젊은이들은 형통이나 혹은 기복이라는 왜곡된 형태로 나아가게 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안전을 넘어선 고난받는 신앙을 주제를 더 강하게 다룬 것은 아주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강사님들도 공동체라는 주제를 염두해 두셨겠지만, 전체 신앙 수준 등을 고려해서 고난에 초점에 맞추지 않으셨나 싶습니다.


최호진: 저 같은 경우도 대학 때 선교단체를 경험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코스타를 통해 메마른 상태를 벗어나 많은 회복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코스타를 통해서 공동체라는 부분을 다루기는 참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모여서 조별 활동정도를 하는 상황 속에서 공동체를 깊이 다루기 는 쉽지 않기 때문이죠. 차라리 같은 지역교회 사람들끼리 앞으로 공동체를 적용할 도전을 준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전 QT와 성경 강해에서는 주제가 비교적 잘 다루어진 반면, 저녁 집회 강의는 주제를 다루는 측면에서는 좀 산만하지 않았나 생각하고요.


여희영: 공동체라는 주제가 워낙 큰 주제이기 때문에, 이번 코스타에서 다룬 정도가 참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공동체에 대해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세미나에서 좀 더 심도있게 다루어졌어야 하지 않나 합니다. 사실 코스타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제가 무엇인가하는 부분보다는 개인적인 신앙 회복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너무 깊고 어려운 내용을 전체 회중에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공동체라는 범위를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둔 모임이라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즉 같은 믿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몸의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큰 의미의 공동체에게 주어진 고난이라는 주제는 참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나는 개인적으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참 힘든데, 선포되는 설교는 왜 이렇게 쉬워 보이는가 하는 갈등 등이 있었는데, 그런 갈등들이 많이 해결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주제는 대체로 균형 잡혔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우재: 제 생각에는 코스타의 주제는 결국 QT와 아침 성경 강해에서 다루어지지 않으면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녁집회는 나름대로의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 같고요. 제 생각에는 김진홍 목사님의 아침 강해가 이번 주제를 충분히 다루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세미나에서도 자세한 내용을 제공해 줄 수 있지만, 주제에 관한 큰 비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아침 성경강해와 홍정길 목사님의 특강은 특히 좋았다고 봅니다. 더구나, 겨레 혹은 민족에 대한 큰 그림을 보지 못했던 저에게는 김진홍 목사님의 설교는 많은 도전과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권오진: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주제가 잘 드러났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히 긍정적인 답변을 못 드리겠습니다. 다음 질문들에 세미나와 기타 프로그램들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 같으니, 우선은 전체집회에 대해서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먼저 월요일에 있었던 두 번의 말씀, 그러니까 개회예배 설교와 특강에서 주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참가자들에게는 이 두 번의 말씀이 2004 미국KOSTA의 첫인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오전에 있었던 김진홍 목사님의 성경강해에도 저는 이번 2004 KOSTA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성경강해보다는 설교에 가까웠던 김진홍 목사님의 말씀 세 번의 제목을 보면 “경륜 있는 신앙”, “하나님 사랑, 겨레 사랑”, 그리고 “비젼 있는 교회”입니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좌로나 우로나(특히 좌로) 치우치지 말고, 영성과 실력을 겸비하여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자.”라는 권면이었습니다. 중간에 한두번 고난”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기는 하셨으나, 그것은 작은 지류에 불과하였고 전체적인 흐름과는 무관했습니다.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되는 이 오전 성경강해 시간부터 이렇게 다른 내용이 다루어짐으로써, 주제를 집회의 구심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를 갖지 못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저녁집회의 경우 전통적으로 KOSTA에서 세번의 저녁 집회 중에서, 첫 집회는 구원 초청을, 그리고 마지막 날은 선교 헌신 초청을 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오전 집회에서의 주제 전달은 필수적인 부분이었음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인정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잠깐, 지금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오전 성경강해 시간이 주제 전달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구요, 김진홍 목사님 말씀 자체에 대한 평가는 아닙니다. 저희 조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번 오전 성경강해 시간에 은혜 받았다고들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제 전달 여부 이외의 부분에 대한 평가라면 다른 내용들이 많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나친 우 편향성을 들 수 있겠지요.


-  eKOSTA: 전체집회 이외에 더 다루어져야 할 부분인데 다루어지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여희영: 전체 주제가 다루기가 다소 어려웠다면, 세미나에서 그 주제를 잘 습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했습니다.


김우재: 아까 권오진 형제님의 말씀대로 주제를 바로 전달하려면, 제 의견으로는 코스타의 주제를 정하신 주최측에서 한 분이 집회 시작 때 주제에 대한 취지를 간단히 전달하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목사님들께서는 그 주제를 선택하게 된 배경을 잘 모르실 수 있고, 또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있으시기 때문에, 코스타 주제를 정확히 전달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이 면에서도 젊으신 코스타를 준비하신 분들 중에서 주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권오진: 사실 교재에도 주제 선택에 대한 취지문이 있기는 하지만, 잘 읽지 않으시잖아요. 그 취지문의 내용을 코스타 준비하신 분들 중에서 간략히 설명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최호진: 세미나 중에 치유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내적 치유에 관한 내용이 전체 집회에서 다루어져도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현실성에 있어서는 좀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치유에 대한 세미나들을 통폐합해서 규모있는 시간으로 운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대학교 때 선교단체에서 여러 사람들과 모임을 하다보면, 가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하나님 만나는데 혹은 신앙생활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김우재: 저도 동의하는데요. 2년 전 치유를 주제로한 코스타에서 이 부분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적 치유라는 내용이 좀 깊이 다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저도 최근까지도 기독교를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는 면에서 내적치유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몇 권의 책과 코스타의 세미나 등을 통해서 그 중요성이 점점 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선교지가 물리적이고 지역적인 곳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내면이 바로 선교지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통 혹은 고난이란 것이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것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현대의 청년들에게는 많은 경우에 내면의 상처라는 부분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코스타에서 내적 치유에 관심을 더 기울여 주신다면, 복음이 전파된다는 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  eKOSTA: 세미나 내용이나 tmKOSTA 등에 대해서 좋았던 점이나 보강되어야 할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호진: 세미나는 전체적으로 좋았습니다. 다만, 제가 들어간 세미나 중에서 김승태 목사님의 ‘한국교회의 공동체와 고난’에 대한 강의는 너무 신사참배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전공이시긴 하시지만, 독재체제나 현대의 한국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도 듣고 싶었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tmKOSTA의 경우는 과학일반으로 들어갔었는데요, bioinformatics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stem cell에 관한 것 등 윤리적이 문제들이 더 깊이 다루어 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eKOSTA: 그런 부분은 코스타의 후속 프로그램에서 채워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은데요. 최호진: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여희영: 세미나에 100,200,300번로 번호가 붙어 있었기는 한데, 그 구분이 좀 모호하지 않았나 합니다. 코스타를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좀 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오진: 제 생각에는 각 세미나별로 미리 읽어오면 도움이 될 만한 추천도서가 미리 공지가 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세미나의 경우에, 미리 책을 읽어 왔다면 더 깊은 내용을 다룰 수 있었을텐데, 사전 정보가 부족해서 하지 못한 경우가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김우재: 그렇게 책을 미리 추천하다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도 같습니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부분인 것 같네요. 그리고 또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전공별 모임을 넘어서, 직업과 삶이라는 면이 코스타에서 좀 다루어졌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경우도, lab에서 보내는 많은 시간들이 과연 신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그런 구체적인 부분들이 코스타 전체집회에서 다루어졌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세계관 기초강의가 한번쯤 모두에게 다루어지면 좋겠다는 거지요.


-  eKOSTA: 전체적인 프로그램 진행에 대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여희영: 솔직히 저녁집회가 좀 긴 편인데, 휴식시간이 너무 없어서 좀 불편하기는 했습니다. 사람들이 중간에 그냥 다니기는 한데, 문이 한쪽만 열려 있어서 특히 자매들 경우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권오진: 저는 서점 운영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양적 질적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추천도서만이라도 충분한 양의 책이 구비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서점 운영을 두란노서원에 위임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코스타 본부에서도 좀 더 관심을 가져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저녁 집회 설교를 세 분이 한 번씩 하신 것에 대해 찬반 양론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결국 3번의 주제는 미리 정해져 있다면, 다양한 분들의 설교를 듣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 의견입니다만요.


김우재: 저도 다양한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여희영: 저도 동의합니다. 최호진: 저 같은 경우는 한 분이 저녁집회를 담당해 주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선교단체 수련회의 경우를 보면, 한 분을 통한 저녁 집회 설교가 주는 유익이 꽤 많았던 것 같네요.


김우재: 음… 제 개인적인 의견일 수 있겠지만요… 식사가 너무 풍성하지 않았나 싶거든요. 영양적인 면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좀 간소하게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여희영: 저같은 경우도, 음식이 너무 풍족한 것을 보면서, 어려운 형편 가운데 오신 몇몇 강사님들 보기에 조금 민망한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디저트같은 경우는 그렇게 다양할 필요는 없었던 것 아닐까 싶네요.


eKOSTA: 제가 알기로는 식사가 저희 KOSTA집회만을 위해 준비되는 것이 아니라, Wheaton colloge의 기숙사 음식을 저희가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네요.


최호진: 이번에 Handbook은 너무 잘 만드신 것 같아요.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handbook 안에 조별 활동을 위한 공간이 좀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월 목요일까지 조원소개, 기도제목들을 위한 페이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권오진: 저는 QT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QT가 좀 어려웠다는 피드백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주제와의 연관성이나 내용의 깊이, 그리고 적용의 구체성을 볼 때, 제가 지금까지 본 QT 가이드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어려웠다는 의견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네요. 그런 면에서, 조장들을 위한 QT 가이드가 좀 더 있었다면 더 효과적으로 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김우재: QT에 관해서는 내용보다는 그 양을 좀 줄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모든 내용을 다 다루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취사선택을 해서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안내가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조장들을 위한 가이드라인정도는 좀 더 보강될 수 있을 것 같네요.


-  eKOSTA: 그럼 KOSTA 이후 후속 조치 (follow up)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여희영: 저의 조 안에서도 카페같은 온라인을 통해 계속 교제를 하자는 의견이 있기는 했지만, 저같은 경우에는 그런 교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솔직히 좀 의심스럽거든요. 그런 면에서 gpKOSTA가 좀 더 활성화되는 것이 좋은 후속조치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권오진: 동의합니다. 온라인을 통한 교제가 길어야 일년 정도 존속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지 않습니까? 사실 많은 KOSTAN들은 지역교회와 성경공부 모임에 참가하고 있는데, 공동체의 수를 하나 더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KOSTA가 지역 교회의 자리를 차지하는 대안이 아니라, 이를 돕는 위치로서 자리해야 함을 생각할 때, 결국 KOSTA는 KOSTAN들이 미국 전역에서 바른 신앙인으로서 여러 가지 섬김을 잘 할 수 있도록 source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eKOSTA나 gpKOSTA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이 부분은 KOSTA 집회의 성격과도 연관된 부분인데요, KOSTAN들의 신앙 성숙을 위한 훈련이 아닌 소위 “신앙의 부흥과 영적인 회복”에 치중한 집회에 이어질 수 있는 follow up은 KOSTA 집회를 더 자주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KOSTAN들이 영적으로 지칠 때마다 KOSTA conference를 해야 하는 거죠. 따라서 저는, KOSTA가 참가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우재: Follow-up이 잘 안된다고 해서 그 면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코스타가 개인적인 영적 부흥에 더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코스탄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학생활을 통해 지치고 낙담한 사람들을 제 위치로 올릴 수 있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최호진: 저같은 경우는 gpKOSTA가 정말 많은 도전을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삶에서 살아야하고, 제자를 살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결국 gpKOSTA가 코스타의 follow-up으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면, 각 주제별 추천도서 목록이 handbook에 포함되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eKOSTA: 마지막으로 이번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거나, 특별히 좋았던 점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우재: 코스타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습니다. 한국교회는 사실 복음 그 자체만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코스타를 통해서는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복음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현모 교수님의 강의같은 경우, 차가운 머리로 듣는다면 또 한번의 복음에 관한 이야기겠지만, 마음에 큰 감격을 주었습니다. 또 이일형 권사님의 제자의 삶에 대한 세미나가 현실적이고 해서 참 좋았습니다.


권오진: 집회 기간 중의 프로그램 중에서는 목요일 점심시간에 있었던 금식기도회가 저에게는 가장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제시되었던 기도제목들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으며, “김선일 형제의 핏값을 이라크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기도 제목은 그 날 저녁 시간의 유은하 자매의 영상 간증 시간에 한층 더 뼈저린 제목으로 제 가슴에 남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여희영: 저도 금식기도회가 기억이 많이 남네요. 또 강사님들 목사님들의 섬김도 보기 좋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섬기시는 간사님들의 모습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권오진: 개인적으로 많이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조별 활동을 통해서도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최호진: 오전에 있었던 김 진홍 목사님의 성경강해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eKOSTA: 오랜 시간 함께 해 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박소영] 초보 간사의 일기

이코스타 2004년 8월호

코스타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아니 듣기는 들어 봤죠. 위로 둘 있는 언니들이 가는 열띤 집회라는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카고에서 열린다는 것도 알고 있었구요. 그러나 그것 말고는 아는게 없었으므로 거의 모르는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는게 참 많이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코스타에 대해 알게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제 모습 또한 변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고 일을 하면서 저의 믿음을 여러각도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하는 하나님께서는 좀 특이하게 일을 하시는 것 같다고 느낄때가 많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끔 만드시는 일이 요즘들어 더 잦은것 같기도 하구요. 제가 기대치도 않았던 곳에서 하나님 자신에 대해 가르쳐 주실 때가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못한 순간 역사하심을 나중에야 알게되기도 합니다.


이번 코스타때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가령 돈 계산을 할 때 라든가, 복사를 할 때라든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그 때. 그 바쁜 와중에도 하던 일을 멈추고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혹시 코스타랑 돈이랑 복사랑 자판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저의 신분을 밝힙니다. 저는 코스타 사무일을 보는 사람입니다. 사무일과 코스타 상관이 아주 많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코스타에서 어떤 경험을 하였을까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무얼 볼 수 있었고 무얼 느끼게 되었는지 글을 쓰면 혹시나 발견하게 되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생각에 이것 저것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적어도 마우스를 누르는 손가락에 쥐가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휘튼 칼리지 도착하던 순간부터 제가 무엇을 볼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휘튼이 너무 커 보였습니다. 이래가지고는 강의실 묻는 학생들에게 뭐라고 설명을 해준단 말인가! 나도 처음인데! 하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피셔로 향했죠. 피셔에서 등록을 한다더라…라고 듣는 순간 짐들은 옮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떻게 싼 짐인데 그 아까운걸 다 푼단 말인가” 하는 황당한 멘트를 제 자신에게 던지고 맙니다. 코스타중 필요한 사무용품 등등을 싸는게 저의 임무였기 때문에 왠지 싼짐을 지켜야 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무감에 불타올라 그만 다음 임무는 잊어버렸습니다. 사실 짐은 풀려고 싸는것 아니겠습니까? 이사를 많이 다녀 보신 유학생님들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싸는것도 막막하고 또 푸는것도 막막하고 머 그러면서 이사는 하게되지요. 아무튼 봇물 터지듯 일들은 여기저기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경험많으신 간사님들께서 이삿짐 센터맨들보다도 더 실속있게 정리하시는걸 보게되었습니다.


피셔에서 이루어진 등록 및 방배정을 물론 제가 하지 않았죠… 일년동안 그걸 위해 준비해오신 간사님들께서 다 하고 계실때 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대기는 오래 못가더군요. 코스타엔 “대기”가 분명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리하여 바로 등록자봉으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쓴 단 한개의 일기가 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07/05/04 KOSTA


새벽 4시. 장난이 아니다. 아… 여기계신 분들은 신기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밤을 샌다. 놀라워라…
나는 덩달아 새고 있다. 나도 신기하다. 졸린듯 안 졸린듯.
내 정신상태는 희미-몽롱-바보-몽롱-희미의 순으로 회전을 한다.
지금 내가 보고있는 일들이 마치 꿈인듯 한 생각이 방금 들었다.
어쩌면 꿈인지도…
내일은 월요일…드디어 큰 코스타가 시작이 된다.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싶다. 맡길 수 밖에 없다.
생각을 여기서 멈추고 싶다.
그런데 나의 뇌는 통제를 할 수 없는가 보다.
머리는 자는데 손이 계속 놀려진다.


이걸 끝으로 일기는 더 없습니다. 더 쓰질 않았더군요…


계속해서 피셔에 조장님들 도착하시고 그리고 조원님들 도착하시고.. 하면서 삼박사일이 흘렀습니다. 저는 7월5일날 짐 쌀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한 일주일쯤 지낸것 같다는 착각에 갈 때가 됐겠거니 생각했나 봅니다.


근데 왠걸…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그렇게 코스타가 시작이되고 또 진행이 되었습니다. 집회, 식사, 세미나, 엑스포 …가 진행이 되고 있을때 코스타 초보 사무인 저는 이유 없이 정신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지도 않지만 뭔가 대기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 Waterboy정신이었을까? 머 그런 느낌도 있었구요. 마치 그런 기분 아십니까? 떠나버린 버스를 잡으려고 질주를 해보건만 신고있는 구두와 교복이 협조를 안해줘버리는 그런 느낌. 그런 와중에도 방향이 희미하다거나 길을 잃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왜일까… 그때 제가 볼 수 있었던게 또 한가지 있었는데요. 무슨일이든 성실히 감당하시는 간사님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뭘 할지 몰라 당황할때,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홍반장 혹시 아시나요?, 그게 좀 과장일진 몰라도 하여간 계셨습니다.


이렇게 2004년 열 아홉번째 코스타에서 하나님께서는 제가 돈을 세고 있을때는 헌금에 대해 생각나게 해주시고, 또 강의내용을 복사할 때에는 말씀에 도전받게 해주시고, 또 컴퓨터 앞에 앉아 등록자봉을 할때에는 형제, 자매를 만나게 해 주시더니, 당황할땐 도움의 손길도 아주 많이 보내주셨습니다. 그외에 보고 배운것들에 대한 발견은 지금도 하고있습니다. 아마 줄창 하게 될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무는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배움도 계속 되겠죠. 제가 머 수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재도 아니고 그럼 천재는 더더욱 아닐테므로 배울게 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년 코스타도 기대되구요.


다들 배운것들을 실천하고 계시겠지요. 저는 실천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안녕히계세요.

[고지영]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니

이코스타 2004년 8월호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하신 일을 다른 지체에게 전하는 저를 인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장으로 섬기는 기회의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가까이 계심을 느끼게 해 주시고, 각 사람을 통해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에 진정 도움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대학졸업 후 유학을 준비하면서 보냈던 바쁘고, 안정감 없었던 2년 동안 하나님은 늘 저에게 제가 원하는 이상의 리더로서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저의 리더로서의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최소의 믿음으로 인한 거부 할 수 없는 그러나 기쁨이 되지는 못하는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제가 계획한 만큼 준비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꼈으며, 조원들에 대한 책임감과 의무감은 저의 스트레스였습니다. 이런 시간이 계속 되면서, 저는 하나님께 늘 죄송했고 그래서 하나님을 피했고, 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습니다. 누군가를 섬긴다는 자체에 대한 기대보다는 구속감까지 느낀 것 같습니다. 받는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받는 것 같이 보여야 할 것 같았고, 더 기쁨이 있어 보여야 할 것 같고 조원들에게 사실보다 더 관심 있는 척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음 깊은 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저의 영적 저항력은 참으로 약했고 영적 전쟁은 커녕 제 마음과 몸까지 아프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무슨 불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저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구하고 바라지 못했었습니다. 제 안의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안아주시면서, 저를 살리시고 저를 통해 일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같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는 기독교인이지만, 뭔가 굉장히 갑갑한 인위적인(artificial)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경험을 한 동안 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제가 빈털터리의 심정으로, 진정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서 주님을 의지할 때까지 저를 그냥 놔 주셨습니다. 제가 주님께 숨겼던 저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 분께 다가가자 그 때서야 주님은 저에게 성경 말씀에 감동 받게 하시고, 울게 하셨고, 더 이상 제가 가지고 있는 강함이나 약함에 구애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제가 제 조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지 못했던 이유는 제가 주님께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큰 지 그리고 그 사랑이 세상이 할 수 없는 얼마나 값지고 큰 일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도 사랑 받는다는 생각이 제 마음속에 자리잡자 다른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인위적이고, 가식적이고, 무엇보다 기쁘지 못했던 아픈 마음들을 주님은 그 분의 신실한 사랑과 주님 원하시는 방향으로 포기함 없이 저를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심으로 통해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1년 전 미국에 법 심리학을 공부하러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1년 동안 미국에서의 학교와 생활에 적응하는 동안 그 감동 받음을 또 까맣게 잊고 있다가 조장으로 코스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조장은 왠지 마음 속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신청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능력은 별로 고려치 않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는 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조장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의지와는 달리 조장 훈련을 성실히 받지 못했습니다.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도망가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가기 2일 전 조원들한테 메일 한 통 보낸 것이 모든 준비였습니다. 제 자신에게 실망스러웠습니다.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마음, 이번에 우리 조원들이 받을 은혜를 계속 부정하는 마음, 영적 전쟁에서의 실패를 예비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꼭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갖가지 방어기제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주일도 안 되는데 인간적인 성의만 보이자, 그 동안 얼마나 가까워지겠어 등등. 그런데 마음이 참 안 좋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꼭 타협하는 것 같았습니다. 코디님과 멘토님들을 만날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제 자신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준비 안 한 조장이라고 보여질까봐 벽을 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던 저의 지역에서 온 다른 조장들과 멘토님들 그리고 코디님은 저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저에게 하나님께서 저에게 보여 주셨던 것 같은 조건 없는 사랑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그들의 조원이었던 저를 정말로 아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과 다른 형제 자매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던 저만의 벽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순수하지 못했던 저의 마음에 대한 회개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괴롭고 답답하지 않았고 너무 신선했고 좋았습니다. 몇 년 전 하나님께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하도 이해가 되지 않아 왜 저를 사랑하시냐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던 시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 “내가 너를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니?“라는 한 마디가 다시 제 마음을 감동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분들의 도움으로 저는 다시 하나님 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바로 서 있는 지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는 놀라운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코스타에 대한 기대, 조원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 하나님 안에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부족한 나를 통해 이루실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단호한 믿음이 생겨났습니다. 1박 2일의 조장수련회는 하나님 안의 평안을 누림과, 동시에 내가 조장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조원들에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 부여의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사님들의 강의 내용과 열정, 스태프들의 애쓰는 모습들, 하나님의 일들을 잘 감당해 내려고 하는 조장들의 모습, 열정, 그 과정에서 바닥나지 않게 계속해서 주시는 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기쁘고 힘있게 조원들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 본 조원들과의 만남은 그 자체로 기적들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매개로 해서 그들과 마음이 만나는 과정들이 필요했습니다. 특별히 테크닉은 없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그러나 순수히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만난 하나님을 보여주고 싶었고, 나의 삶을 통해 일하시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하나님께서 내 안에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계획하시고, 나를 변화시키시고,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을 이루시고, 세상이 줄 없는 평안과 소망을 주시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각 사람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얼마나 노력하시는지 저의 삶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조원들 스스로에게 하나님께서 그들 각각에게 지금 계획하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도와주는 일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드러내는 일 쉽지만은 않았고, 피곤한 일정 속에 저의 진심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를 지치지 않게 하셨습니다. 순간순간 드는 인간적인 교만과 판단은 기도를 계속하게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이번 코스타를 조장으로 섬기는 과정에는 만난 하나님은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후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결국은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에 대한 의지함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두 배 세 배 열 배씩 그 때 그 때 갚아주셨습니다. 정말 피곤해서 한 마디 밖에 기도하지 못할 것 같았을 때였지만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단호한 마음, 그리고 많이 기도할 시간이 없으니까 나는 너무 많이 받았으니까 조원들을 위해서 진심으로 한 마디씩이라도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한 그 마음들을 하나님께서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은 저희 조원들과의 교제(interaction)로 인해 오히려 제가 더 많은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하나 다 쓸 수는 없지만 조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간의 눈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는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경험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귀중했고, 아름다웠고, 그들이 아픈 이야기를 할 때 제 마음도 아팠습니다. 저희 조원들이 저한테 더 잘했습니다. 서로 바쁘니까 자주 연락하기 힘들 수는 있어도 아마 힘들 때, 또 행복할 때 꼭 생각나는 서로에게 귀중한 친구들이 된 것 같습니다. 육체적인 강인함도 허락해 주셨고 저에 대해서 집중하고 기도할 수 없었던 저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씀 시간을 통해, 찬양시간을 통해 어쨌든 정신 없었던 그 5박 6일 동안 결국 저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부족함없이 다루어주시고 도전을 주시고 평안과 확신을 주셨습니다. 10년 이상 해결 못하고 제쳐 놓고 있었던,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문제인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치료하시고 처방 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게 주신 시간과 힘과 돈과 에너지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다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 받게 하셨습니다. 코스타가 끝난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저는 저의 아직 조원들에 대한 사랑과 섬김의 결과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습니다. 이런 마음이 저는 제 안에서 나왔다고 감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제 안에서 안 나온 것일수록 제 안에서 가장 영향력과 기독교인으로서의 바른 영향력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장으로 섬기는 과정으로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것 다시 말해서 나의 형제와 자매를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는 확실하게 맛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자신을 보면 소망이 없어지지만,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저를 사용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주님을 믿기 때문에 저를 통한 제 주위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과 치유의 mission”에 대한 기대가 충분히 있습니다. 조장이라는 것 제가 가지고 있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질과 역량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서로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가지고 믿는 마음으로 구하고, 받은 힘과 통찰력(insight)을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행동으로 옮기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다 만드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창희] 다니엘 콤플렉스

이코스타 2004년 8월호

내가 알던 어떤 후배 가운데 신앙이 좋은 약사 자매가 한 명 있었다. 그 자매는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새로이 약국 일을 시작하기 위해 기존의 다른 약국을 그대로 인수하기로 하고 대금을 치렀다. 마침 그 약국의 전 소유주도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모든 매매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인수인계를 하던 중, 약국과 관련된 업무를 하던 관공서에서 어떤 공무원이 조사를 나왔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업무가 끝났는데도 가지 않고 계속 서성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자매는 처음 이런 일을 경험하는지라 ‘왜 그럴까’ 하고 의아해 하고 있는데, 전 소유주가 저것은 이른바 떡값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이 자매는 ‘내가 왜 뇌물을 주어야 하냐!’ 하면서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전 소유주가 ‘만일 다니엘처럼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면,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서 적당히 돈을 주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면서 아직도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이 자매를 위해 대신 돈을 집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비단 이 자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일일 것이다. 뇌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막상 세상 속에 들어가 살다보면 그것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고민하던 사람들도 점차 순수성을 포기하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게 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손해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금전상이나 혹은 다른 불이익이 가장 두려운 것이다. 두 번째는 나 하나 잘한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 하는 패배의식이다. 세 번째는 오늘 예에서 나온 것과 같은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적당하게 살자’는 자포자기 의식이다. 나는 특별히 이것을 ‘다니엘 콤플렉스’ 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이것에 대해 좀 말해보고 싶다.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보면, 다니엘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인물이었던가 하는 것이 잘 소개되어 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해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 6:3-4)


탁월한 업무 능력에 성실성, 그리고 순수성을 겸비한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일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흠잡을 일이 없이 정직하고 완벽하게 모든 일을 행하는 이러한 다니엘의 모습이야 말로 모든 세상속의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될 만하다. 이 다니엘은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다니엘의 훌륭한 모범이 때로는 반대의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은 너무나 완벽하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별종의 사람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성경을 읽으면서, ‘나도 다니엘처럼 살아야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기 보다는 ‘다니엘이니까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이야 뭘’ 하는 의식으로 대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이 다니엘의 모범은 나의 삶의 모델이 아니라 거꾸로 나의 현실을 정당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앞에서 제시된 자매의 사례는 그것을 단적으로 잘 보여 준다. 그 그리스도인의 경우에 있어서, 다니엘의 모범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어떤 표준이 아니라 거꾸로 그 모든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니엘처럼 완벽하게 모든 법과 규범을 지킬 수 없다면, 아예 포기하고 적당히 뇌물을 주면서 살자.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과 타협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의식, 즉 ‘다니엘 콤플렉스’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경험하는 심리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비가 와서 질퍽한 길을 신발이 젖지 않도록 애쓰면서 걷는 사람이 있다. 조심스럽게 걸어왔지만 그러나 곧 한쪽 신발이 진흙 속에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그는 나머지 한쪽이라도 지키려고 하기 보다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일부러 두발을 다 진흙 속에 넣어 버린다. 그러면서 점차 진흙 속에 걸어가는 것을 즐기게 된다. 그와 더불어 조심스럽게 걷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도 흙탕물을 뿌려 억지로 자기처럼 되도록 만들고자 한다.


이것은 많은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 속에 들어갔을 때는 신자로서 깨끗하게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곧 일부의 순수성이 무너지면서 자책감에 빠지게 된다. 그와 더불어 ‘에라 모르겠다, 나는 어차피 다니엘처럼 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 속에 오래 있으면서 이제는 그것을 즐기게 되고, 좀 더 심한 경우는 다른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을 보면 억지로라도 자기처럼 만들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점점 세속화되는 과정이다.


우리가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니엘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완벽하지 못함에 대한 절망이 다른 극단으로 흘러버리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는 다니엘처럼 완벽하게 법을 지키면서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대다수의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설 수 있는가?


먼저 우리는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과연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있다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영역을 좀 더 좁혀서 세상의 법과 규범에 한정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완벽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다니엘처럼 완벽할 수 없음을 처음부터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 주님도 우리가 완벽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죄를 전혀 짓지 말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지은 죄를 고백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족하다 하더라도 주님이 그것을 이해하고 계신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가 올바로 살도록 노력하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에 대한 인식이 자포자기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삶에의 노력으로 이어지려면, 주님은 우리가 연약한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을 언제나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완벽함을 기대하시기 보다는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올바로 살도록 노력하는 것을 기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함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올바로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네 번째,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그것을 숨기려 하거나 혹은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절망하지 말고 그것을 회개하고 곧바로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의 죄를 짓고 그것을 숨기려고 하면, 그보다 더 큰 죄를 계속 지을 수밖에 없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을 숨기려다 결국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게 하는 더 큰 죄를 짓고야 말았다. 만일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뇌물을 준다거나 다른 부정한 일을 한다면, 그는 그것이 또 다른 올무가 되어 점점 더 개미지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영원히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더 큰 죄로 이어지기 전에 그 죄를 회개하고, 때로는 법적인 처벌을 달게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볼 때 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면 그를 다시 받아들이려는 수용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우리가 한 가지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솔직히 고백하기 보다는 그것을 숨기려고 계속 다른 죄를 저지르게 되는 이유가운데 하나는, 그것을 고백했을 때 오게 될 비난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간혹 언론에 어떤 사람의 과실이나 범법사실이 알려지면, 지나칠 정도로 그 사람에 대한 극심한 돌팔매질이 이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과실이 언론에 공개된 후 거의 사회적으로 매장되다 시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그것이 두려워 잘못을 숨기려고 제 2, 제 3의 범죄를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잘못을 보았을 때, 정말 습관적이고도 악의적인 범죄가 아니라 실수에 의한 것일 때는 그 죄는 미워하고 분별하되, 나도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람들 가운데는 100가지 일 가운데서 99가지 일을 다 잘 하다가 한 가지를 잘못해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100가지 가운데서 10가지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10가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1가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그러므로 내가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의 완벽하지 못함에 대해서도 다소 이해심을 가지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기독교세계관을 비교적 오랫동안 공부하면서 나름대로 성경말씀대로 올바로 살려고 노력해 왔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내가 그것을 완벽하게 다 지킬 수 없음을 느낀다. 그것은 마치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도리어 그것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로마서의 말씀과 마찬가지이다. 아마도 ‘성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일수록 ‘고백록’이니 ‘참회록’이니 하는 책들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연약함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길은, ‘all or nothing’식의 다니엘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서 연약함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일 것이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이 나타날 때에는, 그 부족함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그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 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런 자세로 임한다면, 좀 더 이해심 있으면서도 함께 밝아지는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