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이달의
초점

post
KOSTA 사역의 방향과 비전

eKOSTA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독자와 함께 하게 될 eKOSTA 좌담회, 오늘 그 처음 시간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KOSTA 좌담회에서는 2002년 미주 코스타를 뒤돌아보고 정리하면서, 받으셨던 은혜들을 나누고, 아쉽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특별히 오늘 좌담회에서는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를 가지고 앞으로 일년을 살아가게 될 우리
코스탄들의 각 지역에서의 역할과 비전 등을 살펴보고, 아울러 코스타 이후 연중 지속되는 코스타로서의 postKOSTA 사역의
비전과 그 방향성에도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그러자면 물론 postKOSTA 사역의 각 지역사회 및 지역교회와의 동역에 대한
논의도 빠져서는 안되겠지요.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시되, 코스타에서 하셨던 역할 혹은 코스타와의 인연과 함께 짧게 말씀해 주세요.

차문희
저는 조지아주에서 교직에 종사하고 있고 Family Service를 공부하고 있는 차문희입니다. 이번에 처음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용기를 내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저하고 비슷한 환경에 처한 형제, 자매들을 짧은 시간에 섬기면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라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최재범
저는 최재범입니다. 컬럼비아에서 재료공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이번에 미주지역 코스타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더군다나 기혼조의 조장이라 싱글일 때와는 기분이 다르더라구요. 작년에 뉴욕/뉴저지 지역의 gpKOSTA에 참석을 하면서 코스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김정숙
저는 현재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살고 있고요, 코스타는 93년 미시간에서 대학원재학 중 처음 참석하였고, 96년부터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맡았던일은 코스타 수양회 시작 전에는 오퍼레이션 부문에서 준비과정을 섬겼구요, 기간 중에는 프로그램
진행을 도왔습니다.

김경수
저는 1993년부터 코스타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고, 지금은 비영리단체경영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는 조장 멘토로서
작년에 이어 2년째 조장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eKOSTA
예, 다들 반갑습니다. 이번 2002년 코스타를 통해 개인적으로 받았던은혜들과 코스타 이후 변화된 부분이 있었다면, 짧게 각각
한, 두가지씩만 나눠 주시죠.

최재범
전 제가 속한 공동체의 어려움으로 인해 힘들었던것들로부터 회복될 수 있었던것에 대해 감사하게 되었구요. 조모임을 통해서 우리
세대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교회나 가정 그리고 학교나 회사에서…. 예전과는 달리 많은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지요.

차문희
미국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언어와, 다른 문화적인 차이등을 비롯해서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을 미국에서
친구의 전도를 통해 만났는데요, 그다지 믿음이 뜨겁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코스타에서 제일 은혜받은 부분이 있다면 나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갖게된 것입니다. 신앙과 학문적인 비전 말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말씀과 기도로
치유받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불평보다는 하나님 측면에서 문제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결국 내 자신의 치유없이는
하나님나라의 일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김경수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 코스타에 참여한 것은 작년에 이어 올해가 두번째로, 코스타에 참여하면서, 가족관계의 변화와 가족들 간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아내의 신앙이 말씀 안에서 견고해져가고 있다는 것이고, 저 자신도 말씀과
가족공동체를 이끌어갈 힘과 지도력을 코스타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김정숙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저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반추해 볼 수 있었던것이 가장 감사할 부분입니다. 아침 강해
설교에서 다루었던비전에 관련된 메시지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저의 삶을 통해서 손수 이루어가시는 비전을 다시 한번확인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예, 다들 굉장히 많은 은혜들을 받으셨군요. 그럼 이제 다음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코스타의 주제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였는데 코스타 전체 진행을 놓고 볼 때 주제의 충실도는 어떻다고 개인적으로 느끼셨나요? (편집자
주 : 올해 KOSTA의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과 KOSTA 집회에 있어 주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재평가는 eKOSTA 9월호의
좌담을 통해 보다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대를 바랍니다.)

차문희
세미나의 대부분과 새벽기도, 성경강해, 저녁설교와 일터의 현장의 메시지가 코스타 주제와 많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유학생들의 삶에 많이 중점을 두고 있어서 제 자신의 삶에 많이 비추어 보았습니다.

김경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주제에 충실했다고 보여집니다.

최재범
전 수련회기간 동안에 새벽예배가 가장 일관되게 주제를 맞추어가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eKOSTA
저희가 관심있는 부분은. 두가지 주제를 조금 나누어서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치유되는 자아를 구분한다면 (물론 궁극적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것이겠지만) 두 부분 다 충실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치유되는 자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어졌나요?

김경수
다분히 개인적인 치유 쪽에 더 치우쳤다고 봅니다.

차문희
예 그렇습니다.

최재범
제 생각도 개인적인 회복에 많이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전체적인 메시지의 비중을 따지자면 하나님나라의 회복보다는 개인의 치유에 관련된 메시지가 많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나, 취지문에
명시된 것처럼 하나님나라의 회복이 바로 “나”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하나님나라/공동체의
회복은 코스타 후의 개인의 삶을 통해서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에 대한 부분들을 어떻게 하면 코스타 이후에 개인의 삶에 실현시킬 수 있을 지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겠군요.
이에 대한 의견들을 좀 주시죠. 이제는 딱딱한 질문과 대화체에서 벗어나 좀더 메신저 컨퍼런스의 생동감을 살릴 수 있는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문희
글쎄요, 아마 내 자신의 신앙상태를 수시로 정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 아침 하나님과 큐티를 하면서 큐티에서 얻은 말씀을
가지고 하루를 살며 하나님과 기도로써 교재의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지요. 그리고, 크리스천으로서 나는 교회나, 학교나, 직장에서
하나님께 떳떳한 삶을 살고 있는 가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겠지요. 나의 영적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치유받기가 어렵겠지요.

최재범
저희 조에서 가장 많이 오고간 이야기 중의 하나가 바로, 가정을 만들고 아이가 생긴 부부로서 어떻게 교회와 직장 그리고 가정을
섬기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교회와 직장에 대해서는 결혼 전 그리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많이 고민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별
문제가 없다가도, 아이가 생기면서 고민을 시작하더군요…. 그 세가지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잘 섬기는 모습…. 그것에
대한 소망은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힘든 것을 인정해 주시지 않고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시는 현실
앞에서 많이 힘들어 했지요.

차문희
아직도 많은 한국 교회들 특히 이민 교회들은 기본적인 영적 치유보다는 교회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기 바라는 게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김정숙
제가 생각하기에는 일단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게 되면 주변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이 자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차문희
건강한 자아상, 정말 중요한 부분이지만 건강한 자아상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늘 불평만 하는 마음을 갖고 사시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김경수
자아상, 이성(결혼한 사람은 가정), 진로문제 이 세가지가 현실적인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아마도 아직까지 회복된 자아가 나타나는 모습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차문희
맞아요.

김경수
최근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서 심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주님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하는데요.

eKOSTA
문희자매님은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정숙간사님은 자신에게서 시작되어서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으로, 그리고 재범형제님은 결혼에 관련해
교회와 직장과 가정으로까지의 하나님의 확대를 말씀하셨군요. 그렇다면 우리 코스타에 참석하는 유학생과 eKOSTA 독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나라의 범위 혹은 개념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요?

김경수
제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나와 주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이웃과의 회복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될 것이고 이러한 일이 나의 가정, 학교, 그리고 사회에 확장될
때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오는 것이지요.

김정숙
저도 동감 합니다. 그리고 “이웃”이라는 개념을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가정, 교회, 삶의 터전의 영역도 포함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차문희
일단은 학생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 어떤 목적으로 와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학생들은 자신이 왜 왔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교회만 나가서 구하기만 하고 봉사활동만 열심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 확장과 그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신앙도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그의 나라에 일군으로 쓰시니까요. 즉 실력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지요. 학문과 신앙에서 모두.

eKOSTA
예, 그렇군요. 문희자매님께서는 자아의 치유를 통해서 자신의 삶과 내부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 되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것이 교회와 직장 사회에까지 영향력을 미쳐 나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회복이라고
보시는군요.

차문희
네.

eKOSTA
그런 의미에서 postKOSTA의 역할이 아주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경수
진정한 의미에서 코스타는 지금이 시작 아닌가요?

차문희
예.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어떻게 우리 삶이 변화하느냐가.

eKOSTA
올해의 아주 큰 특징 중 하나는 코스타 이후로 웹을 통해 아주 진지한 나눔과 교제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참여하고 계시고 어떤 영향들을 받고 계시고, 이를 통해서 우리 유학생들과 지역 교회나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요?

김경수
코스타 이후 공식적인 웹사이트 이외에 이미 있던유학생 모임 웹사이트나 코스타 이후에 생긴 사이버 클럽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김정숙
간사님 중의 한 분이 코스타 직후 함께 평가회를 하면서 코스타 마지막 날의 폐회예배의 명칭을 개회예배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는데,
다들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코스타는 그후가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최재범
저는 지역 게시판에 종종 들어갑니다. 비록 글은 많이 남기지 않지만, 그래도 서로가 고민하고 힘쓰는 모습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있지요. 무엇보다도 가장 좋은 점은 “동역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살아가기에, 외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차문희
저는 jjKOSTA, eKOSTA, tmKOSTA 보드에서 활동 중이고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하는데, 기도 부탁합니다.

김경수
저희 유펜(UPenn) 성경공부 모임의 예를 들면 기존에 잠자던웹사이트가 성황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자면 오프라인과 온라인 모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김정숙
코스타 이후에 개인이 들어가서 참여할 수 있는 게시판들이 영역별로 다 활성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jjKOSTA, tmKOSTA,
각 조별 게시판, 전체 게시판 등

차문희
그런데, 아직도 많은 tmKOSTA의 전공별 모임들 중 활동을 개시하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eKOSTA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postKOSTA를 힘써 이루어갈 수 있고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서 어떤 부분들까지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한계와 또는 주의할 점들은요?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jjKOSTA와 gpKOSTA를 합쳐서 운영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차문희
제가 있는 동남부 지역 jjKOSTA는 다른 지역에 비해 참여율이 별로입니다.

최재범
지금은 아무래도 지역적인 상황이 가장 좋은 매개체인것 같습니다. 지역에 있는 코스탄을 묶어줄 수 있는 방법이 postKOSTA를
통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tmKOSTA 게시판에 좀더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같은 전공을 가진분들과 전공과 신앙에
관련된 진지한 대화를 하기란 지역교회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KOSTA
그렇군요. 지역 매개체와 전공매개체 둘 다 중요한 부분들인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gpKOSTA와 jjKOSTA 둘 다 중요하겠지요.
그렇지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지역별 혹은 전공관심별로 약간의 차이들이 있군요.

김경수
아마도 지역별로 묶여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다들 지역별로 활동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더군요.

eKOSTA
그렇다면 올해 jjKOSTA가 지역을 타겟으로 하고 사역한 것이 아주 중요하고 유효했다는 이야기인데요.

최재범
그런데 tmKOSTA의 경우 공통 관심사를 갖기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같은 전공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좀 약하지 않을까
싶네요. 같은 전공내에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전공보다는 “하는 일” 또는 “연구분야”
중심으로 재편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면, 반도체를 하는 사람의 전공에도 재료, 전자공학, 물리 등 많은 것이 있으니까
반도체를 하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모이게 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들이 하는 연구와 직장에서의 문제점들을 나누는 거지요. 제 경험상,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을 때, 전공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의 관점만 고집하다가 문제를 더 크게 만드는 경우도 있거든요. 이러한 문제가 생길 때 전공별 모임을 통해
나눈 지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됩니다. 또한, 그런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올바를 자세가 어떤 것일까 고민하면서 성장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김경수
재범 형제 의견에 공감하면서, 앞으로는 미국에 남는 영프로페셔날들과 대학원생들 간의 교류가 필요해지리라고 봅니다. 이번 KOSTA에
젊은 교수님들의 약진이 두드러졌거든요.

김정숙
최형제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전공자체가 공동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일하는 환경이 더 친밀한 공통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eKOSTA
tmKOSTA는 더 세부화된 전공혹은 관심(하는 일)들로 묶여서 아주 적은 인원이나마 전공혹은 일속에서 동역자를 찾을 수 있다고
볼 수 있군요. 그리고, 김총무님이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이번KOSTA에서의 젊은 교수님들과 더불어 젊은 목사님들의
약진도 느껴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젊은 교수님 혹은 전문직 종사하시는 분들과 대학원생들의 네트워크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교수님과 직장인님(?)과 학생들 간의 네트워크가 필요하지요..

eKOSTA
그리고 지역별 사역들이 언급되었었는데요, 어떤 방향으로 지역별 네트워크가 진행되면 좋을지 의견들을 주세요. 지역이 캠퍼스 사역일
수도 있고, 또 지역 교회의 갱신과 연합 등일 수도 있고 한데요….

김경수
소위 말하는 Social Capital 개념인 네트워크가 KOSTA 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즉, 일년에 한번하는
수련회가 KOSTA가 아니라 네트워크가 KOSTA가 되는 것이지요

차문희 그런 네트워크를 하게 되면 학생들에게는 좀 더 비전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겠네요.

김경수
재범형제가 생각하는 네트워크를 모델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 대도시 중심으로 말이지요.

차문희
네트워크 KOSTA, 상상만 해도 기대가 큽니다.

최재범
저희 지역에서는 지역 내에 있는 학교에서 일단은 찬양집회를 시작 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찬양집회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 집회는 그 지역의 교회와 성경공부그룹이 협력을 하는 형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지역의 캠퍼스사역에 동역하는 거지요. 어느 교회나 단체의 이름을 드러내기 보다는 그냥 학생들의 모임으로 말입니다.

eKOSTA
와! 벌써 구체적인 모임들이 시작되고 있군요! 정말로 그런 실제적인 네트워크와 사역들이 미국 각 지역으로 확산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김경수
제 견해로는 찬양집회만으로는 약하다고 봅니다. 연합모임의 경우 말씀에 기초한 기도운동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범
네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 합니다.

김정숙
구체적으로 그런 모임들을 주선하려면 어떻게 시작을 하시나요? KOSTA에 참석한 분들과 연락망을 사용해서 일단 모이게 되나요?

최재범
글세요, 그냥 일단은 시작을 하면서, 기도모임과 성경공부모임 등으로 모임을 서서히 키워 나갈 예정입니다. 기도해 주세요..

차문희
그런데…, 그런 모임이 큰 지역은 가능하지만….

김경수
저희 필라에서도 UDT(Upenn, Drexel, Temple) Network Zone(가칭)이라는 모임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교회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유학생 출신들과 영프로페셔날, 유학생 이상의 세그룹이 만나는 네트워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재범
저희는 일단, 지역 내의 공동체에 대한 파악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학교 내에 장소를 섭외할 곳, 찬양을 인도해 주실 분,
설교말씀을 주실 분을 분담했습니다.

차문희
저 역시 제가 속한 교회에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들과 힘을 모으는 중인데, 기도해 주세요.

eKOSTA
그러한 연합모임이 지향해야 할 구체적 사역과 방향의 범위 등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차문희
교회나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겠지요. 작은 지역과 큰 도시를 함께 비교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도 우리의 사역의 목표와 미래의 방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최재범
사역의 목적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저희는 저희 학교나 맨하탄 지역의 학생들에 대한 전도와 성장이 주목적이라고 정했습니다. 문제는
각 유학생이 지역교회의 활동과 캠퍼스 내에서의 활동을 어떻게 조율하는가 하는 거구요.

김경수
새로운 형태의 모임들이 시작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유학생 연합운동은 이제 그 시작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eKOSTA
예, 최형제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와 양립될 수 있는지, 혹은 자칫하다가는 지역교회의 반대에도 부딪힐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김경수
지역교회와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봅니다. 유학생사역으로 지역교회를 변화시키려고 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고 보면 되겠지요.

김정숙
제가 있는 지역같은 경우에는 4-5개 되는 교회들 간의 교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 연합모임을 시작하는
것이 교회와의 관계를 생각할때 아주 리스키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문희
(김경수총무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김정숙간사의 발언에 대하여) 지역이 작고 교회
수가 작다 보면 단합은 힘들 것 같은데요.

최재범
아직 저희는 활동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별 문제는 없지만 충분히 예견되는 문제 입니다. 저도 김총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희가
지역교회를 바꿀 수는 없지요. 단지, 그 쪽에서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부탁하고 저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저희가 하는 거지요.

김경수
문희자매님의 질문에 먼저 답하자면, 지역 교회 특히 이민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이란 바로 불신 유학생들에게 전도하는 일이구요.
기본적인 제자훈련도 포함됩니다. 더 나아가서 아시아권 유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외에도 더 많습니다.

최재범
이에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역교회가 하지 못하는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저희 학교 예를 들면, 학교 내에서 집회를 하는
겁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단체 이외에는 절대로 건물을 빌려 주지 않거든요.

차문희
김총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지역교회의 이민자들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유학생들이 돈이 많아서 돈 쓰러 왔다고 편견의식을 갖고
있기도 하거든요.

최재범
사실 유학생들에 대한 그런 편견은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유학생들 간의 신앙훈련이 더 필요하리라 봅니다. 그 부분도
지역교회에서는 감당하기 좀 힘든 부분이 아닐까 생각이 되구요.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KOSTA
김경수 총무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때로는 한국 유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할 때 지역교회와 그 연계성이나 결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부분들도 있는데 (예를 들면 전도한 사람들이 속하게 되는 개교회), 아시아권 유학생들이나 외국 유학생들에 대한 선교의 개념으로
간다면 지역교회들이 함께 해 나가야 될 큰 명분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김정숙 저는
개인적으로 지역교회와 캠퍼스 모임 등과 같은 다른 사역들의 협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는데요, 중서부 지역같은 경우는 대도시들과는
달리 지역교회와 캠퍼스를 분리해서 생각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KOSTA
저희도 정숙 간사님 말씀을 십분 이해하며, 그래서 한가지 생각을 갖게된 것이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선교차원의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경수
정숙간사님이 계신 곳의 상황은 쉽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지역적인 한계라고나 할까요. 제가 주장하는 연합은 대도시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소수의 교회들은 지도자들의 결정이 연합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야 일은 유학생(KOSTA) 출신 중에서 사역자가 나오도록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숙
김경수총무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중서부 지역 같은 경우에는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eKOSTA
김총무님 말씀대로 목회자들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설득할 수 있을 지는 의문입니다.

김경수 지역별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전도와 제자화에 힘쓰고, 영프로페셔날 네트워크를 통해서는 사역자화에 힘쓰는 것이 개념화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떻습니까?

차문희
네 동의합니다.

최재범
이런 학생 운동에 대한 경험이 없으신 교역자분들은 이해하시기가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분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경험상 이해를 못하시는 것이지요….

김정숙
최형제님과 eKOSTA의 말씀대로 단시간에 교역자들을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시도는 해야할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경수
“설득”이라는 말보다는 “동역”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고 봅니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해가 없는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인정하면서 그 분들과 동역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편하지 않을까요?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봅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예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집회가 끝난 바로 순간부터 KOSTA는 시작된다”는 사고의 전환과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서 새로운 사역으로의 발돋움이 시작된 것을 생각하자니 가슴이 벅차오는군요.

차문희 저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최재범
요즘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지역교회와 학생운동 간의 괴리에는 학생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KOSTA
같은 모임에서 지역교회에 문제점이 많은 것처럼 느끼고 가서 지혜롭게 해결하기 보다는 젊은 혈기에 부딪힌 분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도 어렸을 땐 그랬던거 같구요.

김정숙
최형제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KOSTA사역을 하면서 KOSTA에 참석하고 각자의 지역교회로 돌아온 분들을 볼 때 가슴이
“조마 조마”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김경수
KOSTA 운동 즉 유학생운동이 교회를 섬겨야 한다고 믿어왔고 또 앞으로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런 의미에서 정말 더 기도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더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죽고 삶으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최재범
동의합니다

차문희
저도 동의합니다

eKOSTA
유학생운동을 통한 교회의 회복과 하나님 나라의 회복…. 더 나아가 이 사회와 조국의 갱신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문희
앞으로 우리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eKOSTA
시간이 많이 되어서 이제 정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eKOSTA와 eKOSTA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들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차문희
eKOSTA의 독자광장코너에 유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립니다. 서로의 신앙과 삶을 나누면서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요.

최재범 유학생활을
통해 느낀 기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나그네” 입니다. 나그네 동안 잃을 것도 없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으로 잘 준비하는 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문희
좋은 말씀해 주셔서 저도 오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KOSTA
그래요.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유익한 말씀들 나눠 주셔서 고맙습니다.

[한명선] 어느 코스탄의 편지

이달의 초점


어느 코스탄의 편지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헌신과 사랑으로 이번 2002년 미주 코스타에서 큰 은혜 받았습니다.


제 이름은 한명선이구요,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생각 나는 몇 가지가 있어서 적어 봤습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몇 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혹, 제가 하는 말들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마음으로 코스타에 헌신하고 계신 여러분들의 열정에 찬물을 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하지만 저도 코스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두 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 코스타가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에 얼마나 집중했나 생각해봅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와 그 안에 치유되고 회복될 자아라는 생각을 하고는 참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는 정말이지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라고 믿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세적 하나님 나라 이해에서 현세적 하나님 나라, 우리 가운데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하고 찬양할 것을 크게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집회가 내내 진행되는 동안 이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 치유되는 자아”라는 주제는 얼마나 언급되어졌고 또 얼마나 생각되어졌는지 생각해봅니다. 아마 새벽 시간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믿기로는 코스타는 매 해 밖으로 걸리는 주제보다 더 강한 주제가 그 저변에 이미 깔려 있습니다.


“Tentmaker”.


코스타에 참석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코스타가 가지고 있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코스타 저변에 아주 처음부터 깔려 있는, 확고한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학문 공동체 혹은 직업 공동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기도로 코스타에 찾아오고 또 코스타는 그들을 활동하는 그리스도인, tentmaker들로 길러내는 중요한 산실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해 코스타의 주제가 “순결”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년 코스타에서 얼마나 그 주제가 강조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매년 코스타의 주제를 정하지 않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의미한 주제로 집중력을 흐리게 하는 것보다 이미 코스타의 저변에 깔려있는 “tentmaker”라는 주제를 전면에 부각시켜 그 하나로 신앙적 역량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신도 사역자,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을 길러 내자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입니다. 이미 그 주제가 코스타와 코스타에 참석하는 사람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매년 또 다른 주제가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또 다른 하나는 코스타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 코스타가 이제는 “transition”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참여하시는 강사님들이 바뀌어 가고 참여하는 학생들도 바뀌어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 교회가 아직 그 70년대 80년대 폭발적인 부흥 성장을 뒷받쳐 줄 마땅한 후계자를 찾고 있지 못하듯, 코스타도 처음의 그 열정과 그 헌신을 뒷받쳐 줄 다음 지도자를 찾는 일에 이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저녁 남서울 교회와 지구촌 교회에서 부목사님들을 지내셨던 목사님들께서 설교를 하시고 그 뒤에 코스타의 원조격이신 이동원 목사님께서 나오셔서 마무리 하시는 것을 보고는 지금 코스타가 겪고 있는 transition의 어려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면서 내내 이동원 목사님께서 앞에 나서신 두 목사님의 지원(back up)을 해주고 계시며 그 무게를 더 해주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코스타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이제 코스타에 변화가! 필요하고 transition이 필요하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의 열정이 식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코스타가 소위 인기있는 강사들을 찾기 보다 신실한 강사들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어느 한 단체든지 소위 처음의 인기를 의식해서 아주 중요한 transition의 시기에 내용보다는 그 인기 유지에 힘을 더 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처음의 뜻과 취지는 온데 간데 없어지고 오직 사람들, 그 인기만 남게 되지요. 하지만 나는 코스타의 힘은 그것이 아니었다고 믿습니다. 코스타의 힘은 하나님께로 향한 천 오백 영혼들의 헌신과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스태프, 그리고 강사님의 마음이 여기까지 코스타를 오게 한 힘이라 믿습니다.


이제 이 transition의 시기에 코스타가 더 신실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숫자나 규모에 휩싸이지 말고 인기나 소문에 휩싸이지 않고 신실한 마음으로, 신실한 사람으로 다시 코스타가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이미 고민하고 기도하고 계신 것들을 제가 다시 이야기한 것이라면 괜한 사족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 코스타를 위해서 늘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2년도 미주 코스타 평가회

이달의 초점


2002년도 미주 코스타 평가회


코스타를 섬기는 사람들은 매년 코스타 수양회가 끝나고 나면 평가회를 갖습니다. 이 평가회는 간사들이 각자의 사역을 통해서 바라본 코스타와 2003년을 위한 보안점을 중심으로해서 이루어집니다. 올해에도 역시 7월 6일(토) Wheaton 대학의 Fischer Hall에서는 2002년 코스타를 마무리하고 2003년 코스타를 준비하는 평가회가 있었습니다.


미주코스타본부는 코스타의 구석 구석 모두를 여러분과 함께 투명하게 나누고자 하는 바램으로 올해부터는 이 평가회의 내용을 여러분께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여러 코스탄 여러분, 그리고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따끔한 충고와 질책, 그리고 격려와 칭찬의 말씀을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코스타 수양회 및 postKOSTA 사역을 위한 평가나 제안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코스타 홈페이지(kosta.ws)나 이코스타(ekosta.org)를 통해 전해 주십시오.



1. 자원봉사(자봉)



  •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으로 코스타를 섬김에도 불구하고 큰 은혜주셨다.

  • 어린이코스타를 위해서 많은 인원들이 인터넷으로 자원하셨지만 실제로 나타나 봉사하신 분들이 많지 않았다. 코스타 이전에 인터넷으로 자원하신 분들 보다는 오히려 기간 중 은혜의 표현으로 자원하신 분들이 더 효율적이고 헌신되어 봉사하셨던 것 같다.

  • 인터넷 지원자 현황: 영아부1부 97명, 영아2부 59명, 유아부 2명, 등록수속 90명, 세미나자봉 29명(이중 반만 나타나셨고 현지자원하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심) 의료자봉 6명 +7명(현지)

  • 의료자봉에 미진했던 느낌. 그러나 병자가 하나도 없어서 하나님의 은혜 느낄 수 있었다.

  • 자봉에게 감사카드를 드리자.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식당자봉이 필요하다.

  2. 의료사역의 경우 자봉만으로는 미흡한 것 같다. 의료를 전담할 수 있는 간사를 따로 두는 것이 나을 것이다.

  3. 의료간사 및 의료자봉에겐 비퍼를 채우자.

  4. 자봉들에게 명찰을 달아 드리자.


2. 일터전시관



  • 일터전시관에 참여할 단체를 접촉하는 문제에 있어 담당간사가 혼자서 하려고 하니 효율적이지 못했다. 코스타 중진 간사들의 측면지원을 요청한다.

  • 일터전시관 안내책자는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면에서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 실제로 읽힐 수 있는 책자를 사전에 조정하여 잘 구성해서 미리 냈으면 한다.

  • 일터전시관 장소가 너무 열악했다. 거의 호흡곤란이 일어날 정도로 무덥고 힘들었다. 중요한 사역인데 발전시키려면 장소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 시간적인 측면: 빡빡한 코스타 일정 가운데 참가자들이 일터로 올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 일터 토크쇼는 홍보가 부족했다. 일터 토크쇼에 대한 광고가 나갔지만 이를 통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전달이 참가자들에게 되지 않았다. Adman Chapel에서의 presentation이 필요한 것 같다.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잔디밭에 텐트를 쳐서 야외장소를 마련해서 축제형식으로 하면 좋겠다.

  2. 일터전시관의 사역개념을 잘 잡는게 필요하다. 코스타 이후를 잘 Follow-up해주는 사역으로서의 일터전시관. 선교가 아닌 사회 속으로의 부름을 받은 코스탄들을 위해 많은 단체를 소개해서 잘 연결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각 전공별 관심별로의 Follow-up 또한 필요하다.

  3. 홈페이지를 통해 웹상에서 일터전시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리고 링크를 시켜주는 일을 하려고 한다.

  4. 점심을 도시락으로 하면서 일터에서 먹으며 Fair를 하는 것은 어떨까?

  5. 일터전시관이란 이름을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했으면 좋겠다. KOSTA-Expo가 어떨까?


3. 사운드



  • 콘솔이 두 대로 운영이 돼서 너무 편안했다. 앰프에서 팬노이즈 문제 있었지만 잘 해결돼서 좋았다.

  • 소리가 크다고 느꼈던 분들은 자기가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하라.

  • 강의를 하실 때 소리가 너무 컸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무대에 서신 분들의 성량에 따라 조절하기는 했지만 말씀하시는 분 각각의 목소리가 너무 차이가 나 조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4. 등록



  • 내년에는 참가 신청자들이 온라인으로 다 지불까지 하실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이메일 문의에 응답하는 게 등록팀의 주된 일이 될 것이다. 강사님 등록자들도 미리 확인이 되어서 적어도 일주일 전에는 등록이 마감이 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 내년 cKOSTA가 있으므로 학부생 등록은 공식적으로는 받지 않는 것으로 한다.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등록과 조배정을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게 시급하다. 이런 등록과정을 일반 참가자들에게도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게 하자.

  2. 12시 check-in이 가능하도록 Wheaton측에 요청하자.

  3. 등록담당간사 확보, 온라인 program 만들기, 보다 안정적인 시스템 만들기 등의 과제

  4. 코스타 홈페이지에 등록에 관련해 FAQ(Frequently Asked Questions) 코너를 만들자.

  5. 포스트코스타로 들어가는데 해야할 일-매뉴얼 만들기 (FAQ 같은 것, 각 사역별로 필요한 물품 리스트 만들기 등).


5. 세미나



  • 코스타 기간 중 세미나 티켓을 떼는 방식은 현재의 상태로는 안 될 것 같다. 세미나를 미리 미리 어레인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기간 중에 세미나 시간 등이 자꾸 바뀌기 때문에 미리 어레인지를 다 해 놓기 어렵지 않겠는가.

  • 참가신청을 해서 등록할 때 이미 세미나 배정도 다 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아예 티켓을 안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세미나 티켓은 몇몇 강의에 사람들이 편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강사에 대한 배려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한 세미나에 참여 가능한 숫자가 제한되게 배정이 돼서 참가자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의 부족이 될 수도 있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세미나 제목과 내용이 너무 다르다는 불평이 제일 많았다.

  • 세미나 평가서를 강사들에게도 보내라 – 강사님들에게 전체 통계를 보내고 본인 자신에 대한 평가는 본인이 원하는 경우 보내 드리기로 하자.

  • 세미나 녹음을 간사들이 듣고 평가한 다음 스태프 보드에 평가를 올리도록 하자.

  • 강사님들이 세미나에 필요한 장비 신청을 코스타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해 주셨으면 좋겠다.


6. M&M: sam-tv.com



  • 비디오 presentation을 sam-tv.com 과하게 돼서 감사하다. 여러 가지 방송사고가 줄었다. sam-tv.com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설정해야 할 것 같다. 잘 알아서 흐름을 타는 전문성을 지닌 팀이다. 매우 좋은 Outsourcing 대상인 것 같다. 코스타와의 협조관계를 확실히 해서 Contract를 Release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7. jjKOSTA



  • 코스타 기간중 조장들의 활동에 얼마나 비중을 줄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조별모임에 많은 비중을 두었으면 좋겠다. 강사와의 모임을 일부러 오피셜하게 주지 않으니 식사 시간 등을 통해서 더 좋은 만남이 많이 이루어진 것같다.

  • 멘토를 더 확보하는 문제, 코스타 전에 조장들을 리크루트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지역적으로 잘 활성화되야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 멘토들은 다른 강의 안 들어가고 멘토링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뜨는 코스타가 되어서는 안된다. 코스타와 지역교회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조심스럽게 지역교회의 사역을 돕는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 사람의 모습이 많이 안 보이는 세미나 등을 조장들을 위해 지정해 주고, 멘토링의 방향은 학생들 가운데 자질이 있는 사람들을 멘토로 세우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케어하는 것이 멘토링의 바람직한 모델이 되어야 한다.

  • 코스타 스피릿을 갖는 것과 코스타를 전하는 것은 다르다. 각각 개교회에 흩어져서 해야할 일들이 있다. 정말 중요한게 뭐고 중심이 무엇인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조장코스타의 미션이 무엇인가? 이를 문서화해서 코스타 홈페이지에 올리자.


8. 시카고팀



  • 어린이 코스타를 좀더 영적으로 향상시켜야 할 필요성이 많다. 선생님들을 대학생들로만 구성하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다. 윌로우크릭에서 선생님들을 트레이닝하거나 실제로 어린이 코스타를 맡아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9. tmKOSTA



  • 31개의 그룹, 전공별 18/관심별 13, 여성관련 3개.

  • 작년의 경험을 발판으로 사회자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게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작년의 방향은 토론 중심이었는데 올해는 소그룹이었고, 이렇게 작은 그룹으로 모인 것이 앞으로의 networking 등을 위해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 앞으로 tm의 방향은? 교회의 동역자 이외에 삶의 현장에서의 동지를 만나 그룹을 유지해서 서로를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얼마나 살아 남을 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networking을 통해 사람들이 쌓여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런 그룹 하나 하나가 일터전시관 부스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내년에 사람들이 그 결과물들을 들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3 코스타를 위한 제안>



  1. 이런 사람들이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tmKOSTA 보드를 통해 관련 단체에 알려주고 정보를 주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어떤 그룹이든 코스타 기간을 통해 전공이나 관심에 따라 이벤트를 갖는 것이 좋겠다. (예: 미술전공-전시회)

  3. 조배정할 때 1/3이라도 전공별로 묶어주는 것은 어떻겠는가? – 등록 과정이 이미 너무 복잡하다. 전공별까지 고려한다면 등록팀이 너무 힘들어진다.

  4. tm 세미나 시간이 목요일이어서 만나자마자 헤어지게 되니 서로 networking하기가 쉽지 않으니, 세미나를 수요일 정도로 미리 여는 것이 어떤가.

  5. 세미나 시간을 2회 연속으로 늘리자. 예를 들어 tm 세미나를 수요일로 할 경우 세미나 3-4를 다 tm으로 잡으면 좋을 것이다.


10. KOSTA Voice



  • 올해는 갑자기 사무실이 없어져서 자봉 관리에 헛점이 있었다.

  • 이코스타와 코스타보이스의 두 사역이 함께 가는 것이 무리였다. 이코스타에 관련된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코스타보이스가 집회 전체 맥락에 따라 충분한 서포트를 줄 수 있어야 했다. M&M 등에서 몇컷 짜리 만화 등을 미리 만들면 어떨까?


11. cKOSTA



  • 많은 도움, 기도의 도움이 필요하다. 대학원사역과 학부사역은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마음 가운데 상처를 치유하고 비전을 갖도록 돕는 일이 학부사역이다.

  •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것과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다른 것일 수 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인격적인 교제를 했느냐를 생각해 보라.


12. 기타평가



  •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이 주제에 얼마나 충실했는가?

  • 참석자들의 7-80%가 치유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 전반적으로 jjKOSTA는 밸런스가 맞은 것 같으나, 코스타 전체적으로 볼 때 말씀 등에 있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포커스가 부족했다.

  • “코스타, 크지만 작은 집회”라는 컨셉트와는 얼마나 상응했는가? – jjKOSTA나 상담, 그리고 멘토링은 이런 관점에서 매우 좋았다.

  • 조장숫자는 현재의 10%, 조별시간도 20% 정도 늘었으면 좋겠다.

  • 식사시간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 같다. 이에 대한 새로운 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 (예: 점심을 도시락으로 대체하여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도록 하는 것을 어떤가)

  • 참여자들의 열린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열린 리크루트를 해야 한다.

  • 조장의 온라인 등록을 일반참가자보다 미리 시작할 수 없나.

  • 코스타 준비와 진행과정의 투명성 – 이것은 우리의 게으름의 문제이다. 코스타의 타임라인을 일년 내내 일반에 공개하자.

  • 참가자들의 반응을 반영하는 본부의 노력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자들의 respect도 조장들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강조되어야 한다 (예: 새벽기도시간에 말씀이 끝난 후 묵상 3-4분도 참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나가는 참가자들의 모습. 이것은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의 부족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훈련에도 좋지 않다.)

  • 코스탄의 무대를 코스타 대회 이전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 중보기도시간이 좋았다. 올해의 코스타는 기도의 능력이 놀라웠던 코스타였다.

  • 코스타의 캠퍼스 순회간사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 유학생 교회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를 통해 목회하시는 데 필요한 자료나 강의 내용 등을 제공하고자 한다.

  • 강사님 중에서 미국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리크루트해야 하지 않을까? 좋은 강사님들의 발굴을 위해 우리 간사들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고, 서로 추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코스타가 영적 충전의 장소가 아니라 지난 일년간의 승리를 기뻐하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코스타의 폐회예배가 앞으로 1년의 코스타를 시작하는 Commencement라는 의미에서, 코스타의 개회예배는 지난 1년의 승리의 삶을 마감하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폐회예배를 개회예배로, 개회예배를 폐회예배를 바꿔부르는 것은 어떨까?

<KOSTA 2003 kick-off 간사 수양회>


8월 중이 어떨까? 노동절 주간은 어떨까? 8월 17일?

[조경호] 회복되는 하나님나라, 치유되는 자아

eKOSTA 성경강해


회복되는 하나님나라, 치유되는 자아



“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 2002년도 코스타집회에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회복은 바로 나의 회복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자아의 회복이란 곧 나와 주님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며, 이는 곧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회복을 가져온다. 내 안에 하나님나라가 회복될 때야 비로소 나의 가정과 학업과 직장과 사회와 세상에 하나님나라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을 너무 피상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은가?


이코스타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여러분의 보다 정확한 이해와 실질적인 적용를 돕고자 조경호목사를 초청하여 “하나님 나라”에 관한 연재물을 기획하였다. 조목사는 2002년 코스타집회의 새벽설교를 통해 “하나님나라”와 “자아상”이란 주제를 균형있고 심도있게 다루어주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마태복음에 4회, 마가복음에 14회, 누가복음에 32회, 요한복음에 2회, 사도행전에 6회, 바울서신에 8회, 요한계시록에 1회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의 통치권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원수를 굴복시킬실 때까지 왕의 통치권을 행사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 그리고 ‘그리스도의 권세’와 병행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며,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곧 그 마지막이 사망인 모든 적대적 세력들의 파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통치에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파멸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다스리시는 것을 뜻한다 할 것이다. 우리는 [에베소서]를 매월 한 장씩 묵상하며 이 세상에서 완성되어가는 하나님나라와 인간의 자아를 살펴 보고자 한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교회의 비밀]이다. 교회란 무엇인가? 마이클 그린피스는 “우리는 교회를 천국가기 위한 시골정류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에 감추인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는 구원과 하나님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에서 한국기독교의 현황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정확하다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통계이긴 하지만, 이에 따르면 2001년 2월28일 기준으로 한국 기독교는 17개 주요교단이 있으며, 교인수는 1282만 5001명, 교회수는 3만 9412개에 달한다고 한다. 1개 교회당 평균 325명의 교인이 있는 셈이다. 목사수는 7만3678명으로 교회당 평균 1.9명의 목사가 시무하는 숫자이며 목사 1인당 돌보아야 할 교인수는 평균 174명이다. 그리고 통계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교인들은 교회생활에 대해 권태감과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베소서 제1장: 구원의 전체 설계도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매일 7만명의 새로운 신자가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고 있다. 또한 전세계 60개 국가에서 2천3백만명이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고통과 박해를 당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으로 초대한다. 본문 1장 3-14절에서 바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과 과정의 전체를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문 1장 3-14절의 중심단어는 “찬송(찬미)하리로다”는 고백이다. ‘율로게토스’는 거대한 군중의 환호성, 집단적 열광을 의미한다. 지난 2002년 6월. 월드컵 축구 기간동안 한국민이 보여준 2100여만의 길거리 응원이 ‘율로게토스’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바울의 가슴은 뜨거웠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을 설명하면서, 그 가슴엔 뜨거운 군중의 환호성이 넘쳐났다. 오늘도 하나님의 구원을 온 마음과 몸으로 체험한 신앙인들의 가슴엔 십자가의 사랑으로 인한 열광이 넘쳐나고 있다.


성부하나님과 구원의 계획(엡1:3-6)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豫定)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1:3-6)


성부하나님께서는 구원의 목적을 설정하셨다. 구원의 목적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구원의 경주(racing)를 추구할 수 있다.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는 말은 구원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단순한 구원공식만을 암기하고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 구원은 수학공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을의 나이 많은 할머니를 갓 부임한 젊은 목사가 심방했다. 오랫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않고 있는 할머니를 방문하고 구원의 도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는 동안 할머니는 미소로 듣고 있었다. “이보게 젊은 목사, 난 이미 12살 때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네.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지만, 난 이미 구원받았다는 걸 믿네,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니까…” 그러나 그 할머니에겐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삶의 주인이시라는 증거가 없었다.


1. 구원의 목적(4절)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거룩-‘하기오스’-구별된 자. 곧 구원받은 자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을 의미하고, 흠이 없어(‘아모모스’) 하나님께 바쳐지기에 합당한 제물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그리스도인은 말과 행실에 거룩한 자, 곧 하나님을 닮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거룩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최우선적인 목적이며, 삶의 완성이다.


2. 구원의 방법(5절)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가? 어떤 훈련과 경건의 연습을 통해 하나님께 완전하게 바쳐진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을 본받는 삶의 방식은 출생이며, 그 출생은 [완전한 복사능력]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연예인은 키가 커야 뜬다. 남자는 평균 180cm, 여자는 평균 170cm는 되어야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유지태와 차승원은 187cm, 정우성 186cm, 신현준과 정준호 183cm이며, 장동건과 배용준도 181cm나 된다. 그런데 부모가 키가 크지 않으면 자녀들도 큰 키를 가질 수 없다. 신체적인 조건이나 외모도 모두 부모가 복사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노력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성을 닮을 수 있을까?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다 놓고 아무리 인간훈련을 시키고, 인간의 문화생활을 연습시킨다고 해도 사람이 될 수 없다. 강아지로 태어나면 강아지로 사는 것이 쉽다.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신의 성품과 능력을 닮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거듭나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1:12-13).


성자 하나님과 구원의 성취(1:7-12)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람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經綸)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7-12)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성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성취하셨다. 구원의 목적과 방법을 십자가의 대속 죽음을 통해 실현하신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성자 하나님,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세가지 사역은 다음과 같다.


1. 구속(7절)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구속’은 ‘값주고 사다’라는 뜻으로 노예매매에서 빌려온 단어다. 우리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 의의 종으로 다시 거듭난 사람들이다.


2. 지식(8-9절) –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목적과 비전을 우리에게 보이신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십자가 앞에 무릎꿇은 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내적 지식이 있다.


3. 공동체(10-11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통일’은 ‘하나로 모으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지구상에 세워가시는 오직 하나의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다. 교회는 생물학적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구속사의 완성이며, 하나님나라의 본질이다.


성령 하나님과 구원의 적용(1:13-14)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3-14)


생산과정을 예로 든다면, 연구실 설계파트가 ‘성부 하나님’이시고, 공장 생산부분이 ‘성자 하나님’의 사역이며, 성령하나님은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과 비숫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지식과 공동체를 각 개인에게 적용하시고 실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님의 사역도 세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1. 구원의 동역(13절) –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한 사람이 죄에서 구원받기 위해 교회와 개인과 성령님의 동역이 필요하다.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들은 사람이 인격적으로 응답할 때, 성령께서는 그에게 인치신다.


2. 구원의 보증(14절) –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때의 ‘보증’은 ‘아라본’, 즉 ‘미리 맛보다’라는 뜻을 갖는다. 성령의 내주(內住)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하심과 천국을 미리 맛볼 수 있다. 성령의 보증을 통해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시련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며 사랑할 수 있다.


3. 구원의 책임(14절) –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성령께서 시작하시고 성령께서 완성하신다. 실패는 없다.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케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삶을 얻고 성령으로 행하는자”들이어야 한다.


바울은 구원의 전체 설계도를 “찬양”으로 설명하고 무릎을 꿇는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기 위해서는 구원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를 회복하고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지성인으로 자신을 세워야 한다. 바울은 구원의 지식의 도구와 지식의 내용을 무릎꿇고 기도하고 있다.




















지식의 도구

지식의 내용

17절

지혜와 계시의 영

하나님

18절

마음 눈 밝히심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성자 하나님)

19절

성령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

바울은 본문 1장 3-14절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1장 14-19절에서 다시 기도로 반복하고 있다. 우리도 힘써 기도해야 한다. 충분한 지식을 얻기까지 기도를 멈출 수 없다. 바울은 가르치고 기도했다. 에베소서 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은 허상일 뿐이다.


미국 제2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때 내건 슬로건이 “뉴프론티어”(New Frontier)였다. ‘프론티어’는 미국 역사에서 개척된 지역과 미개척된 지역의 경계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개척정신(Frontier Spirit)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 교수는 “21세기는 영성의 시대다.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이 영성의 삶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하나님 말씀에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삶이다”라고 영성을 정의했다.


하나님께서는 익숙해진 신앙에 안주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 곧 복음을 다시 펴고 참된 계시의 지식을 구하는 젊은이들을 통해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나라와 자아를 회복하실 것이다.


[정진호] 루카스 스토리(Lucas Story)

회복과 치유의 신학 – 내 아버지의 뜻


루카스 스토리(Lucas Story)


(1)


데이브레이크(Daybreak)의 하루를 기억하라.


아마도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역에 지쳐 내 영혼이 곤고한 날이 이를 때면, 데이브레이크를 회상할 것이다. 데이브레이크에서의 하루는 내 인생에서 사역적 영성을 갱신시키며 갈증 속에서 새벽이슬을 마심과 같은 영적 각성의 기쁨을 안겨준 특별한 날이었다. 육신의 피곤함을 이끌고 찾아간 그곳에서 나는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며 위로하시는 그 분을 직접 체험했다.


2002년 6월은 한국 축구의 월드컵 열기로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민족의 마음을 한껏 달구어놓고 있었다. 캐나다 토론토 코스타가 끝난 직후, 강의하랴 축구 응원하랴 지칠 대로 지친 강사진들은 하루를 같이 보내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기 원했다. 그 전주에 벤쿠버 코스타를 이미 치르고 도착했던 나는 토론토를 거쳐 이제 다시 시카코 코스타를 향해 떠나야할 상황이었기에 더욱 휴식이 필요했다. 청년사역을 받은 소명으로 여기는지라, 어렵게 떠난 여행길에서 한 사람의 청년이라도 더 만나고 가겠다는 영적 욕심으로 무리한 스케줄을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토론토 근처의 데이브레이크(Daybreak)를 찾아갔다. 헨리 나우웬 신부가 장애인들을 위해 사역하여 널리 알려진 라르쉬(L’Arche) 공동체가 있는 곳이었다. 평소에 책을 통해 비교적 가깝게 느끼던 나우웬 신부의 깊고 순결한 영성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듯한 설렘을 품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가르치던 그가 모든 학문적 명성을 뒤로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외받은 장애인들을 위해 몸을 던져 여생을 바친 일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숲 속에 한가하게 세워진 아담한 별장으로 안내를 받아 여장을 푼 우리는 바로 그 집이 나우웬 신부가 직접 장애인들과 함께 거하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잠을 자던 침대와 그가 책을 읽던 서가를 둘러보며 한 시대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했던 위대한 신학자의 체취와 온기가 밤의 정적을 타고 다가옴을 느꼈다. 근처의 거리에 나가 가벼운 산책과 쇼핑을 하고 돌아온 우리 일행은 그 동안 못다한 이야기들을 하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은 터키와의 월드컵 3, 4위전이 있는 날이었다. 코스타 강사진들을 배려하는 친절한 목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새벽 일찍 눈을 떴다. 아쉽지만 열심히 싸운 한국 축구팀을 향해 마음의 박수갈채를 보내며 다시 라르쉬 공동체로 돌아온 우리는 부족한 수면으로 거의 눈이 감기는 지경이 되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저 쉬고 싶은 마음 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전에는 채플에서 헨리 나우웬 신부의 인생을 돌이켜보는 세미나를 듣도록 예정되어 있었기에 일행은 마지 못해 또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곳에서 나는 사역에 지쳐서 잠든 내 영혼의 안팎을 뒤흔들어 깨우는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다. 헨리 나우웬 신부의 맑고 깊은 영혼에서 흘러나오는 강하고 온유한 메시지를 듣게 되었을 뿐 아니라,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이야기… <루카스 스토리>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2)


아름답게 지어진 채플에서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수(Sue)라고 불리는 온화한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먼저 소개하며 그곳으로 찾아온 우리들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했다. 그녀의 자연스런 인도를 따라 자기 소개를 한 후 나우웬 신부의 육성 설교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되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 보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아름답게 재연이라도 하듯이 나우웬 신부의 온유하고 잔잔한 설교가 흘러나왔다. 둥근 빵을 하나 집어들고 축사하며 그것을 쪼개어 나누어주는 그 모습에서 비록 육신은 죽어 땅에 묻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그의 영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인생은 본문에 나타난 4개의 동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 취하시고(taken)
  • 축사하시고(blessed)
  • 쪼개시고(broken)
  • 나누어주심(given)

바로 이것입니다.


세례요한 앞에서 무릎 꿇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헌신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 손에 붙잡힌(taken) 바 되었고, 그를 기뻐하시며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 성령을 비둘기 같이 내려 그의 머리 위에 머물게 하심으로 축사(blessed)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기뻐하는 아들이라….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예수는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찢기며(broken)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을 떡으로 자신을 나누어주신(given)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도 이 네 가지 동사를 통한 삶이 요구됩니다. 그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의 핵심입니다.”


7분짜리 간결한 그 설교가 얼마나 강렬하게 내 영혼을 때렸던지…. 그리고 그 순간 지난 8년간의 나의 중국 사역을 돌이켜보며 깊이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나의 지나온 시간들은 바로 이 네 개의 동사 안에 모두 녹아져 함축되어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이 하나님 손에 붙잡힌 바되어 그분의 축사하심을 받았고, 그리고 세상 속에 나아가 자신을 쪼개어 나누어주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 것이 또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요즈음 내가 이렇듯 힘들고 기쁨이 사라졌을까 하며 생각해 보니… 네 가지 동사 중에 한 가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하나님 손에 붙잡힌 것에 대한 확신도 있었고, 사역지에서 자신을 쪼개고 나누어주는 일에 열심을 다하기도 하였지만, 그분이 지금도 지속적으로 나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내 인생을 위해 축사하고 계시다는 그 사실을 어느덧 망각해 버렸던 것이다. 사역의 출발점… 모든 기쁨과 위로의 원천인 하나님의 축사하심(blessed)을 망각해 버린 사역자에게는 더 이상 기쁨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자 수(Sue)는 우리에게 1년 전에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실제로 있었던 실화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3)


장애인 부부가 있었다. 서로 사랑하는 그 부부는 간절히 아기를 갖기 원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램은 오랜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두 번에 걸친 유산은 그들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렵게 들어선 세 번째 아기를 두고 기도하던 중 임신 초기에 또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황급히 병원으로 찾아간 그들에게 의사는 아직 아기가 살아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던 그들에게 정밀 검사 결과를 가지고 다시 들어온 의사는 침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들의 뱃 속 아이는 현재 심각한 장애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인공유산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뇌가 골 밖으로 나와 있는 치명적인 장애였다. 이런 경우는 아이가 죽지 않고 세상에 나오더라도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할 뿐 아니라 호흡장애를 일으킬 것이기에 아마도 15분을 살기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들은 부부는 순간 아연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마나 기다리던 아이인가? 그리고 지난 몇 주간 얼마나 애틋하게 사랑하며 어루만지던 그 생명을 이제 죽여야한 하다니….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의사에게 아이를 계속 뱃 속에서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는 그 말을 냉정하게 잘랐다. 그럴 수 없노라고…. 당신들이 아이를 낳은 후 받아야 할 상처는 지금 아이를 유산시킬 때 받게 될 상처보다 훨씬 더 클 것이기에 의사인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부부는 생명을 죽일 수가 없었다. 의사는 마침내 화를 내었지만 결국 부부는 그 아이를 키우기로 결단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뱃 속의 그 아이의 이름을 루카스(Lucas)라고 지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겨진 몇 달간의 시간을 루카스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다. 그들은 매일 루카스를 위해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었고, 루카스를 위해 기도했다. 그들은 루카스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만질 수 있었으며 느낄 수 있었기에 매일 그 아들과 깊은 영적 대화를 나누었다. 루카스의 살아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그들은 감격했으며 그로 인해 감사했다. 루카스의 심장 박동을 느낄 때마다 부부의 애절한 사랑은 루카스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들 안에는 사랑으로 잉태된 생명의 신비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출산의 날이 다가왔다. 긴장과 두려움과 그러나 감격 속에서 아이를 받았을 때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아들의 얼굴을 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러나 그 아이의 머리 뒤에는 뇌가 삐져 나온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부부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루카스를 최대한 밀착하여 안아주었다. 부모의 피부접촉이 조금이라도 생명을 더 연장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루카스가 조금이라도 더 그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은 그 어린 핏덩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보물처럼 껴안고 있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루카스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평온하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주어진 15분이 지나고… 30분, 1시간이 지나도록 루카스는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살아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나자… 의사는 더 이상 병원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집으로 루카스를 데리고 온 부부는 그날부터 루카스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 주기 시작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모아놓은 것과도 같은 나날이었다. 루카스를 위해 서둘러 세례를 받게 했으며, 그를 위해 기도하며 조심스레 닦아주고 매일 선물을 안겨 주었다. 공동체의 식구들을 불러 날마다 작은 파티를 베풀었다. 모든 사람들이 루카스를 보며 기뻐하고 사랑의 말을 던졌고, 서로 위로하며 또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이 지나간 후 마침내 루카스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루카스는 17일을 살다가 그의 인생을 마쳤다. 부부는 사랑하는 아들 루카스의 임종을 아프게 그러나 담담하게 지켜보았다.


루카스를 떠나 보내던 날, 데이브레이크 채플의 홀에서 사랑하는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하는 장례 예배가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단 위에 놓인 작디 작은 관 안에 루카스의 어여쁜 시신이 들어있었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또 슬퍼했다. 예식이 끝나고 루카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앞으로 걸어 나와 관 앞에 선 루카스의 부모가 잠시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신들이 루카스와 함께 했던 지난 9개월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들이었는지를…. 그리고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랑과 대화를 그와 나누었는지를…. 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얼마나 루카스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그들은 조용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카스의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루카스로 인해 비로소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아버지로 만들어준 내 아들 루카스에게 감사합니다…. 라고.


(4)


루카스 스토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루카스 스토리를 들은 후, 우리 일행 중 어떤 이는 받은 감동이 넘쳐서 울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깊은 묵상 속으로 잠겼으며… 어떤 이는 아버지의 품 속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휘몰아치는 감동 때문에 도무지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테라스의 문을 열고 나서니… 채플 앞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고…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채플을 둘러싼 숲 속의 오솔길을 걸으며 루카스를 생각했다. 17일의 인생을 살다가 간 아이… 루카스…. 내 걸음은 신비한 사랑을 막 체험한 사람인 마냥 연못 주변을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잔잔한 음성이 내 귀에 들렸다.


“바로 네가 루카스다.”


내가 70년의 인생을 산다는 것과 17일을 산다는 것이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생은 모두 장애인일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철저하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인생들…. 그런 줄 알면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태 속에서부터 알고 지명하여 이름을 불러주시며 우리를 사랑하여 이 세상에 낳게 하신 이…. 그 아버지의 사랑을 네가 아느냐? 갑자기 감동이 휘몰아치며 눈물이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죽었고 땅에 묻혔다. 그러나 그 부부의 마음 속에 루카스는 영원히 살아 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루카스는 살아서 지금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