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들임글 (Introduction)


의 관심은 한국인이 신앙, 인생, 세계와 사람들을 접근할 때에 어떤 특색이 있느냐는 데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은
내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나의 신앙 형태가 한국인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움직인다는 자 인식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인과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그 문화가 기독교 신앙 안에서 어떻게 제자리를 잡아 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부단히 변화하는 특정 문화권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인들의 숙제이다.


리는 우리 속에 들어와서 사는 다민족, 또 우리가 찾아가서 섬겨야 할 다민족에게 한민족은 어떤 특징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하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복음이 어떻게 오염된 민족의 모습들을 정화시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언약의
천국백성의 모습으로 승화시켜 가는지 담담히 정리 해 볼 이유가 있다. 그 과정적 어색함과 초라함까지라도 말이다. 복음은 겉치레로
감싸왔던 선비의 도포자락을 세마포 흰옷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수가 그 일을 한다. 진짜 백의 민족이 탄생하는 것이다.

씨는 땅을 먹고 자란다


릴 적 출옥성도 손 양원 목사님의 옥중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일본인 재판관이 손 양원 목사님께 ‘어째서 내선일체로 다른
기독교인들과 같이 일본적 기독교를 믿고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졌다. 손 양원 목사님은 대답하기를, 일본은 조그만
간장 그릇 같은데, 기독교는 천지 만한 바윗돌이다. 그런데 이 간장 종지 같은 그릇에 바윗돌을 담으려 한다면 어떤 것이
깨어지겠는가? 그래서 일본의 노력은 풍비박산으로 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 한다. 복음이 씨앗이라면, 민족성과 문화는 그
씨가 먹어야 할 토양이다. 씨는 땅 속에 들어가도록 심겨야 하지만, 어디까지나 씨는 씨고 땅은 땅이다. 그 씨가 토양을 먹으면
생명이 자라난다. 반대로 토양이 씨를 먹을 때에는 토양만 커졌을 뿐이다.


국인이 기독교를 수용하고 받아들인지도 구교 200년, 신교 100년의 역사가 지났다. 세계 선교사의 유례 없는 성공사례로
자찬하지만, 너와 남의 집을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한국 교회의 오염된 문화, 지도자, 교인들이 쏟아낸 오물도 세계에 그득하다.
그리고 그 배설되는 오염에도 한국인 적인 공통점이 있다. 대단한 저력이다.


리의 방심을 타고, 한국적 기독교가 부정적인 줄기를 타고 형성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반만년 민족을 괴롭혀왔고
병들게 했던, 독특한 한국적 병폐가 교회 안팎을 둘러싸고 옴짝달싹도 못하게 얽어 매고있다. 그래서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소리에 선지자적 권위도, 지혜자적 혜안도 상실하게 되었다. 장독 안을 맴도는 메아리처럼 그런 하릴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유기농장 대한민국


렇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밭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누가 8장). 하나님의 밭도 유기농업을 해야 한다면,
우리는 풍성한 유기농 거름을 자체 생산하는 민족이다.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가 한국인의 문화와 민족성을 거름처럼
먹어야 한다. 토양은 한국인의 토질인데, 피어나는 것은 예수의 꽃이 되어야 하고, 맺히는 것도 예수의 열매가 맺혀야 한다.
그래야 세계교회와 역사에 누(累)가 되지 않고, 보탬과 유익이 되는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다. 반만년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는
세계역사가 조용한 주목을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다. 한민족을 사랑하는 신의 섭리가 있다면, 이보다 더 이상 귀한 대우가 어디
있겠는가?


가 존경하는 목사님의 사모님은 자신을 예수 향기로 소개한다. 그 분과 목사님은 성년이 되어서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이다.
기독교와는 무관하게 지어졌을 수향이라는 이름을 예수 향기로 전환시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이름의 본뜻을 예수가 살려준다.
예수의 마음이 한 민족의 심성을 먹어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 인격과 공동체로 민족이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주의
창조물로서 주어진 우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알아 가는 잣대와 시각을 성경 속의 복음에서 찾아야 한다. 민족혼 속에 이미
들어와 계시는 예수의 복음 이야기를 캐내어야 한다. 수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예수 향기는 전달자의 인격과 삶을 통해 전달된다.
그래서 성경기록도 전달자가 기계적으로 책을 적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인생에 일어난 사건들과 그런 와중에 일어난 깨달음과
계시들이다. 그래서 기록자들을 알면 성경이 보이고, 성경이 보이면 기록자의 세상이 느껴진다.

성경도 유기농을 한다


경이 다른 경전들과 다른 특징은 다른 종교에서 내세우듯이 전면에 내세워서 미화하는 인물들이 없다. 성경은 그들을 미화하기를
철저히 거부한다. 지극히 사적이라 할 수 있는 치부와 오점들을 가릴 것 없이 뚜렷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된다. 일반 세속의
기준으로 따지면 혹독한 유명세를 치르는 것이다. 안면이 뜨거워서 감히 다루기가 힘든 주제들을 성경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놀라운
기독교의 진리는 그런 흠을 가진 인물들을 가지고 역사와 나라를 펼쳐나가는 신의 고집이다.


자가가 십자가인 것은 예수의 몸이라는 씨앗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없는 십자가는 사형장의 형틀에 불과할 뿐이다. 혐오스러운
부패와 죽음의 냄새로 가득한 일그러진 고통의 현장이다. 예수는 여기에 자신의 온 몸을 던져 씨앗이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벽의 중압감에서 개인 뿐 아니라 민족정기를 해방시킨다. 낮은 땅에 처하는 자는 그만큼 높고 큰 하늘을 머리 위에 지고 살아 갈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개인이 모자란 점이 있듯이 민족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척 하느라 애쓰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완성은
그리스도이시다. 그의 복음은 개인뿐 아니라, 무리도 민족도 인류도 온전한 회복을 하여주시는 명약이다. 그게 신약과 구약이
아니겠는가!


제 한민족은 십자가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로마병정도, 철새처럼 바뀌지만 있는 동안에는 한껏 폼을 잡는 권력자들,
비아냥거리는 구경꾼의 무리, 이들을 부추기며 군중 뒤에 숨어있는 종교 기득권자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무기력한 제자들, 통곡하는
여자들, 그리고 예수 흉내를 내어서 같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인물들, 그리고 해골의 곳이라는 골고다라는 장소까지 이제 한편의 대
드라마가 펼쳐질 준비가 다 갖추어 졌다. 각본도 완성되어 있고, 연출과 감독까지 준비가 되었다. 이제 그 십자가에 예수 마냥
자신의 생애를 던져 한 알의 밀 알이 되어질 주인공의 자리만 비어있다. 한 민족이 그 주인공이 될 자격을 성경은 이렇게
알려준다:


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25-31)

[박총] 적음직한 날들, 나눔직한 이야기들

이코스타 2003년 9월

고백컨대, 저는 삶을 기록해두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쓰는 것이 생활에 큰 분깃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님과 함께 또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엮어지는 매 순간순간이 하나 같이 가슴 벅찰 정도로 행복하고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꼬박꼬박 적어두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스란히 잊어버릴 정도로 흥겹고 신나는 일들이 차고 넘치는 것이 바로 저의 삶입니다. 말하자면 적음직한 삶이지요. 그런 재미난 일들의 연속이기에 제 삶에는 권태란 없습니다. 아내도 저의 이러한 점을 늘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살아온 시간들을 부지런히 이야기로 변환하는 또 다른 까닭은 “시간은 이야기로 엮일 때 비로소 인간적 시간이 된다”고 말한 리쾨르(Paul Ricoeur)에게 십분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인간적인 시간이 된다는 것은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는 형태가 된다는 것에 다름 아니니, 학업과 가정의 돌봄이라는 이중고가 있음에도―복상에 원고를 게재하는 여부를 떠나―쉼 없이 글을 쓰는 것은 제 삶이 조금은 나눔직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올 연초부터 이어진 적음직한 날들과 나눔직한 이야기들 중에서 몇 가지를 뽑아 보았습니다. 읽는 모든 분에게 적음직하고 나눔직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1월 3일 어제부터 내린 눈이 제법 수북이 쌓였다. 이번엔 엄청난 눈이 올 거라고 한다. 이곳은 눈도 많은데다가 나무도 많고 낮은 주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파트숲인 한국에서는 설악이나 한라에서만 볼 수 있는 멋들어진 설경을 창 밖에서도 비스므레하게나마 맛볼 수 있다. 날이 춥다는 핑계로 해민이를 겨울 내내 좁다란 집에만 가둬두는 것이 대체 미아내서 오늘은 옷을 차려 입히고 같이 베란다에 나가 눈사람을 만들었다. 작다란 베란다에 고인 눈만으로도 눈사람 하나를 낙낙히 만들 수 있었다. 눈사람이 형태를 갖추자 해민이는 제 엄마한테 당근을 달라고 한다. 책에서 본대로 당근을 꽂아 빨간 코를 만들려는 심사다. 브로콜리로 초록색 눈을, 바나나 껍질로 노랗게 웃는 입을 만들고는 드럼 스틱으로 팔을 꽂은 다음 털장갑을 걸고 목도리를 둘렀더니 정말 근사한 눈사람이 되었다. 녹기 전에 사진기에 담아두었다.

평소에는 15불이 넘는 왕립온타리오박물관(Royal Ontario Museum) 관람이 금요일 오후 4시 반부터는 무료이기 때문에 해민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다. 참 잘 해놨다는 말이 절로 나왔고 그 규모만큼 볼거리도 엄청났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것들을 실물로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해민이도 신기한 게 많은지 계속 “압바, 엄마, 이것 좀 봐요!”라는 말을 줄곧 해댄다. 이어 박물관 근처에 사시는 박윤만 목사님/황윤정 사모님 댁에 저녁 먹으러 갔다. 차려놓은 저녁도 맛났고 오가는 얘기도 기름졌다.

1월 5일 오늘부터 성산교회 한글권 중고등부를 맡아 첫 설교를 했다. 신학생 출신들도 전도사 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가만히 서 있는 내게 하나님께서 오셔서 “놀면 뭐 하냐. 예서도 양을 먹여라”고 기회를 가져다주신 경우다. 이를 두고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약간은 재정적인 도움도 되겠지만 그보다는 배운 것을 고여 두면 썩을까 저어하여, 목양을 해가며 책을 펴야 현장에 붙박은 공부가 되리라 생각하여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또 이참에 이민 교회와 이민 사회라는 것을 좀 더 깊이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통찰과 화두를 던져줄 것이라 믿는다. 오늘 첫 성경공부 시간에는 창세기 강해를 하고, 예배 시간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설교를 했다. 오랜만에 양장(洋裝)을 하니까 몸이 죄이는 것이 꽤나 불편하다. 그나저나 우리 아내는 졸지에 팔자에도 없는 사모님 소리를 듣게 됐다(으~ 닭살).

1월 7일(禍) 다른 학교로 옮길 것인가, 전공을 변경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멘토(mentor) 교수인 아드리엔느(Adrienne), 학장(dean)인 밥(Bob), 교직원인 팸(Pam), 위클리프(Wycliff)의 브라이언(Brian), 그리고 학교의 여러 친구들까지… 그러고 보니 오늘 참 많은 이의 소리를 들었다. 이런 낱소리들이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텐데, 공부길을 바꾸고자 하는 심사가 내 욕심의 소리인지, 아니면 주님의 진실한 음성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는 갖가지 소리가 있다. 들을 줄 아는 이에게 이 소리는 선물이다. 오감에 민감한 나이기에 보통 소리에 대한 반응도 아내보다는 내가 더 세심한 편이라도 믿어왔지만 간혹 아내가 나보다 소리에 더 민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내나 바다가 아닌 화장실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예쁘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은 아내였다. 물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면 그래서 일부러 세면대에 마개를 막고 수돗물을 아주 살짜기 틀어서 물방울이 오륙초에 한 번씩 똑똑 듣게 만들어놓거나 세면대에 수돗물을 가득 받은 다음 마개를 약간 헐겁게 꽂아서 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내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점점 물소리에 익숙해지면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고 뜨거운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온 누리에 60억이 넘는다는 그 사람들의 목소리 중에서 아내의 소리를 찾지 못하는 적은 없다. 무리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아내의 목소리는 헤맴 없이 착착 내 귓바퀴를 찾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느냐로 친밀도를 측정하고, 상대가 내 목소리인지 기연가미연가하면 대번 서운해 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오늘처럼 주님의 소리를 감별치 못할 때가 있다. 그것이 내 육신이 낸 소리였는지, 주님의 음성인지 헷갈릴 적이 있다. 그럴 땐 참으로 당혹스럽다. 얼마나 주님과 가깝지 않았으면 주님의 목소리를 감별하지 못할까? 자기 목소리를 못 알아본다고 삐치는 연인처럼 주께서도 섭섭해 하지 않으실까?

“나의 영혼아, 잠잠하라. 바람과 물결은 이 땅에 내려와 자신들을 다스렸던 그분의 음성을 아직 기억하고 있도다.”(카테리나 폰 슐레겔, ‘나의 영혼아, 잠잠하라’ 중에서) 바람과 물결도 이 땅에 내려와 자신을 다스렸던 그 분의 음성을 기억하고 지금도 순종하고 있건만, 나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날마다 나와 교제하시기 위해 오늘도 기꺼이 나만큼 낮아지신 그 분의 소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니 연기독(戀基督, 그리스도를 연모한다)이라는 우리집 가훈 첫 줄이 새삼 무색해진다. 더구나 때로는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드는 타지에 나와 변두리의 삶을 꾸려가면서 그 분의 음성조차 변별치 못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캄캄하고 섬뜩한 일인가?

1월 17일 오늘은 체감기온이 30도라는데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서 브라이언 월시(Brian Walsh)의 Guided Reading 수업에 들어갔다. 영하 24도까지 내려가던 날도 자전거를 탔으니 뭐 대수랴. 온 몸을 옷가지로 완전무장 해서 칭칭 감은 채 얼굴만 살짝 드러내놓고 자전거를 모는데 그 옷차림이 얼마나 웃긴 줄 모른다(사진기로 박아놓지 않은 것이 아쉽다. 내년을 기대하시라, 하하). 아내는 박장대소를 하며 일명 ‘토론토 패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자전거를 타고 온 걸 보고는 브라이언이 “You’re crazy!”라며 놀란다. 이번 학기 읽을거리는 브라이언의 원고로 그 아내 실비아와 함께 쓴 것인데 조만간 출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삶의 세계관을 골로새서를 모색해본 것인데 재미있어 보인다. 집에 오는 길에 크리스티 고아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자르고, 블로어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샀는데 마침 현찰이 모자라서 학생증 맡기고 외상으로 사왔다. 집에 오는 길은 정말 너무 추웠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환하게 맞아주자마자 몸이 단번에 다 녹는 기분이다.

2월 11일 혹시 화면보호기 편지라고 들어보셨나요? 연초부터 아내는 6월에 있을 간호사 시험 준비에 열심이다. 내가 데스크탑을 장악하고 있는 관계로 아내는 대신 화면까지 깨진 늙은 노트북을 켜서 한컴사전으로 단어를 찾아가며 차근차근 연습문제를 풀고 있다. 그런 아내가 기특하고 어여뻐서 어케 격려를 해줄까 궁리하다가 화면보호기 편지를 착안하였다. 화장실을 간다든지 하는 이유로 노트북을 5분 이상 쓰지 않으면 자동으로 화면보호기가 뜨는데 거기에다가 짧은 편지를 적어 넣은‘움직이는 텍스트’를 가동시키면 내 편지가 한 자 한 자 눈앞을 지나가게 되고 상대는 “어, 이게 뭐야?”하고 놀라게 되는 것이다. 하여 이런 내용의 글을 남겼다. “순영, 살림하랴 공부하랴 힘들쟈? 당신이 늘 우리와 함께 있어주고 단 마음으로 섬겨주는 것이 요샌 한결 더 고맙게 느껴지네. 늦게사 철이 드나?^^ 당신은 참 좋은 내 짝이자 동지야. 내내 우리 집 ‘안’의 환한 ‘해’로 남아줘요. 나도 당신만을 올곧게 사랑할 테니” 신혼 초엔 갖은 방법으로 아내를 기쁘게 해주었는데 간만에 풋풋한 방법으로 아내에게 사랑을 전했다.

2월 15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가시화되자 토론토에서도 반전집회가 열렸고 우리 가족도 반전의 목소리에 가세하기 위해 자리에 함께 했다. 다운타운인 던다스 스퀘어(Dundas Square)에는 낮 기온이 15도에 체감기온 30도임에도 8만명이 운집했다. 우리는 피켓이 없어서 누가 두고 간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앞면에는 “Canadians say, No to War!”, 뒷면에는 “Stand up to the Empire before it’s too late!”라고 씌어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바로 밑에 캐나다 공산당(Communist Party of Canadian)이라고 적혀 있는 바람에 엉겁결에 공산당원이 되었다(^^ 혹자는 어케 공산당의 피켓을 들 수 있느냐고 따질지도 모르겠지만 자유총연맹의 피켓을 드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해민이는 혹한 데모 3회의 경력자답게 꿋꿋이 잘 버텼지만 아내가 너무 춥다고 야단이었다. 1시간 가량 사람들과 함께 행진하다가 무등을 탄 채 해민이가 잠든 것이 안쓰러워 오늘은 이만 접고 전철역 안으로 피한(避寒)하였다. 아내는 실제로 손이 벌겋게 얼어서 한동안 굽혀지지가 않았다. 때마침 해민이가 쉬가 마렵다고 해서 항상 상비하고 다니는 쉬통(일명 휴대용 화장실)에다가 쉬를 뉘였다. 노란색 액체가 차 있는 물통이 좀 엽기적이긴 하지만 따끈한 것이 손을 녹이기에는 아주 그만이었다.

전철 안에서도 이곳 캐나다 사람들이 설마 이것을 오줌이라고 생각이나 하랴 싶어 아내와 나는 계속 쉬통을 주물럭거리며 손을 녹이는 대담함을 과시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거대한 쇼핑몰인 이튼 센터(Eaton Centre)에 가자 아내는 언제 힘들었냐는 듯 눈요기(window shopping)를 하느라 룰루랄라 아주 신이 나서 돌아다닌다. 근데 사람들이 우리를 흘낏흘낏 쳐다보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알고 보니 다음 집회 때 또 쓰려고 피켓을 들고 다녔는데 바로 그 공산당 라벨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이었다. 공산당 라벨을 떼고 반전구호만을 남기자 그제야 쳐다보는 이들의 시선이 우호적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도 공산당은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 집에 가고 싶은데 아내는 물 만난 물고기가 따로 없다. 이튼 센터 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애들 마냥 오르락내리락 하며 재미를 본 다음, 식원(食園, food court)에서 그리스 음식으로 배를 채운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3월 19일(?) 썩을 놈의 부시와 그의 제국(Empire) 때문에 전운은 고조되고 있다. 몇 개월째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대체 잠이 안 온다. 지난주 가정 예배 시간에 이라크 국민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마음이 내 안으로 들어온 다음부터 말할 수 없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편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은하가 이라크로 갔고 영신이 누나도 뒤를 이었다. 조국의 보수교단이 친미 기도회를 여는 꼴불견을 연출하는 마당에 두 사람이 너무나 귀하고 고운 결단을 내려주어서 고맙고 자랑스러울 따름이다. 복음주의권에서 자라난 자로서 이 땅과 이 나라에 앞에서 늘 송구스러움만을 느낄 뿐이었는데 두 이 덕분에 이 민족 앞에서 조금은 덜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부디 우리의 기도와 응원을 씩씩하게 즈려 밟고 가길 빈다. 영신이 누나와는 막역한 사이인데다가 양쪽 집 애들이 같이 어린이 뮤지컬을 본 적도 있어 가족을 두고 떠나는 누나의 마음이 중량감 있게 느껴진다. 나 역시 한국에 있었다면 함께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터져 나온다. 아내 역시 한국의 처형과 통화를 하면서 해민 압바는 맘만 먹으면 처자식을 남겨두고라도 갈 사람이라고 한다. 영신이 누나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누나, 잘 다녀와요! 내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이라크로 떠난다고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냈던 요즈음, 누나가 날 대신해서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결 기쁘네. 몸 성히 다녀와요.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여정 내내 살 속 켜켜이 스며들도록 기도할테니… 토론토에서 총

기독교 우익과 시온주의의 입김 아래 석유 에너지의 확보, 침체된 군수산업의 활성화, 중동지역 재편 등의 노림수, 아니 삼척동자도 다 아는 야욕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이번 전쟁이 만약 터진다면 미국은 필히 몰.락.의.길.을.걸.을.것.이.다. 열방이 야웨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교만해질 때 그 분의 심판을 자초했듯이 미국 역시 저러한 교만으로는 패방의 선봉밖에 되지 못함을 잠언은 확실히 밝히고 있다.

4월 8일(逢) 아내랑 만나지 5,000일째 되는 날이다. 이럴 수가 있나. 인간 박총이 이런 날을 깜빡하고 말다니… 하루가 거의 맺어가는 시점에서야 아내가 보여준 미소로 알게 되었다. 선물도 아무런 축하 의식도 나누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사랑해’라고 5000번 말한 편지를 썼다.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나의 恩海, 순영! / 우리 만난 지 5000일을 만나 그저 주님께 감사드려요. / 그 오천일 동안 참으로 우리를 괴여 주셨지요. / 우리의 사랑은 그동안 얼마나 자랐는지… / 어찌보면 많이 큰 것 같지만 달리 보면 첫날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아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깜빡 하고 챙기지 못한 나를 이해해줘요. / 요샌 1일1건 사랑 표현도 거의 못(안)하고 있지만 / (결혼 5년차면 자연스러운 건가? 이벤트보다는 삶에 배인 사랑?!) / 그래도’날’을 챙기는 거야 내 전공이라 생각했는데 / 막상 이렇게 되니 미안한 마음이 자못 큽니다.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순 없어서 뜨거운 동품을 한 후에 이렇게 이메일을 띄웁니다. / 우리가 만난 뒤로 최소한 하루에 한 번 정도 이상은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 적어도 사랑한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믿기에 사랑한다는 말을 5천 번 써봅니다.

짐작하다시피 일일이 다 쓴 것이 아니고 복사 기능을 사용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 당신 역시5천 번을 소리 내어 ‘사랑해’라고 읽을 필요까지는 없어요. / 그러나 최소한 10번 정도는 소리 내어 ‘사랑해’라고 읽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복사 기능을 사용해서 ‘사랑해’라는 말을 늘려간 것처럼 / 우리 사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한다는 생각과 말이 습관처럼 ‘자동화’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 오천 번의 ‘사랑해’라는 글은 복사 기능을 사용했지만 / 실제 삶에서의 사랑은 복사 기능이 없는 일일이 손을 사용해 수고로이 쓴 것이기를 바랍니다.

나도 이제 곤해서 자야겠어요. / 그럼, 사랑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중략) ……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 참, 자정이 넘었으니 한 번 더 써야겠네.

“사랑해.”

4월 16일 어제와 오늘 이틀 간 토론토 근교 오렌지빌(orangeville)에 위치한 생태수양관(ecology retreat centre)으로 피정 다녀왔다. 외국에 와서 처음으로 수양관을 와 봤고 생태수양관은 더더욱 처음이었다. 야트막한 야산 사이로 냇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매번 평평한 곳에서만 지내다가 이른 아침 산이라고 부름직한 곳을 거닐다보니 한결 기쁨이 컸다. 그렇지만 토론토에 온 뒤로는 아직도 나무들에게 한 마디도 듣지를 못했다. 한국에 있을 적에는 나무들의 또렷한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땅이 악인을 토해낸다는 말씀도 있듯이 내 삶이 하나님 앞에 신실하지 못하다보니 나무들이 나와 대화하기를 꺼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4월 19일 같은 동네에 사는 실비와와 브라이언 선생님 부부가 다 감기에 걸려서 두 딸 메들린과 리디아를 데리고 나와 해민이랑 오후 내내 놀았다. 먼저 시데베일(Cedarvale Park)에 가서 축구를 좀 하고 우리집에 와서 장난감 갖고 놀았다. 역시 애들은 말이 안 통해도 잘 논다. 배가 고플까 싶어 간식을 좀 먹였다. 리디아는 새우깡이 맛있다며 봉투째 제집에 갖고 가서 먹었다. 해민이 녀석은 사내애들하고 놀다가 성이 날작시면 막 치고 박기도 하더니만 누굴 닮아서인지는 몰라도 여자애들한테는 늘 신사적이다.^^

4월 22일 해민이 난날이다. 아침에 짜잔~하고 놀래켜 줄려고 아내랑 밤늦도록 풍선불고 카드 쓰고 했더니 피곤하다. 4번째 출일(出日)이라 열네 개의 풍선으로 벽에다가 4자를 만들어 달고 토토로 엽서에다가 축하한다고 썼다. 어제 산 꼬마 케익에 불을 붙여 노래를 부르고 엄청난 규모의 중고품 백화점인 밸류빌리지(value village)에서 각각 3불과 1불을 주고 산 농장과 목욕용 배, 그리고 달러마트에서 2불을 주고 산 농장동물세트를 선물로 건넸다. 낮에는 아내가 미역국을 끓여줘서 맛나게 잘 먹었다. 해민이는 늘 우리의 기쁨이요, 감사 제목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토록 사랑스러운 자녀를 주셔서 주님께 늘 고마울 따름이다.

4월 23일 1월달부터 해민이는 뒤뜰과 연못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동시집 <꽃씨 안이 궁금해>를 보다가 연못 그림만 나오면 갑자기 숨이 가빠지면서 물고기랑 올챙이가 헤엄치고, 개구리랑 오리도 같이 사는 연못이 있는 집에 살았으면 좋겠단다. 연못 주위엔 돌멩이도 가지런히 놓여 있고 큰 사과나무가 있어서 사과도 따먹고 나무 위엔 나무집도 지어서 거기에 올라가 잠도 자고 놀았으면 좋겠단다. 아직은 장난감밖에 좋아할 줄 모르는 네살배기가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간절한 바램이 그대로 내 가슴녘에 와 닿는다. 하루는 눈빛을 반짝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연못 타령을 하는데, 이젠 그 소원이 내 마음까지 움직여 함께 기도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해민이의 기도가 응답되어 어제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하우스(한국으로 치면 단독주택)로 간다. 우리 아파트 관리인인 데이빗과 마우이의 집인데 주께서 두 부부에게 은혜를 입게 해주셨다. 돈보다는 집을 잘 관리해달라며 아파트와 거의 같은 임대료만 받기로 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보다 250불 인상된 1100불이 다소 부담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나 그만큼 값을 하리라 믿는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이곳에서도 주님은 늘 후하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 신학을 하지 않은 내가 전도사가 된 것도 기적이라고 하던데 어떤 이들은 10년 이민 생활을 해도 살지 못하는 하우스에 10개월도 안 되어 들어가 사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신비한 일이라고들 한다. 가만 헤아려보면 우리네 삶에는 신비로운 일들이 많다. 단돈 60만원만 갖고 결혼한 것도 신비한 일이요, 유학 와서 이토록 넉넉하게 지내는 것도 신비로운 일이다. 어디 그것뿐이랴. 아내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만나 10년을 줄곧 사귄 것도 신비요, 결혼해서 이제껏 애틋하게 살고 지고 해온 것도 신비요, 해민이와 같이 사랑스러운 이를 아들로 갖게 된 것도 신비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부터가 신비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따지고 보면 <숲에서 만난 발자국>의 저자 톰 브라운의 말마따나―조금은 다른 의미로 한 말이지만―인간은 자기 앞에 놓인 신비를 먹으면서 세상을 사는 법이다.

이제 해민이가 집안에서 뛰어다녀도 아래층 울린다며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되고, 화분만 몇 개 키우던 나는 드디어 꿈에도 그리던 너른 꽃밭과 텃밭도 가꿀 수 있게 됐다. 아내는 살림하는 사람답게 집에 세탁기가 있어서 너무 좋다며 야단이다.

이사를 이틀 앞두고 있는 오늘, 우리 부부가 한 몸 이룬 후 첫 둥지였던 서울 독산동 공군 부대 철매아파트에서 가졌던 그 마음, 장기복무자에게만 지급되던 그 우풍 심하던 아파트가 우리에게 주어진 다음에 “주님, 이 집은 저희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소서. 지치고 힘든 이들이 와서 밥을 먹고 쉼을 누리고 기쁨과 힘을 얻어갈 수 있는 곳이 되도록 이 집을 모두에게 열어놓습니다.” 했던 그 마음, 그래서 교회의 후배들과 제자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던 그 시절 그 마음을 다시 지니게 된다. 이제 5월이면 날도 따뜻해질 것이고, 우리집에서 교회 중고등부 아이들과 같이 먹고 놀고 삶을 나누며 그렇게 어우러지고 싶다. 더불어 이웃들과 학교 친구들 등에게도 편안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우리집이고 싶다.

(*편집자 주) 2002년 9월부터 월간지 <복음과 상황>과 eKOSTA가 기사 제휴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역사와 사회를 조명하는” 복음주의 정론지 <복음과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복음과 상황> 홈페이지 (http://www.goscon.co.kr) 나 이메일 goscon@chollian.net 로하시기 바랍니다.

Introduction to KOSTA

Introduction to KOSTA


Introduction to KOSTA


The KOSTA movement began by the participants and speakers at the first KOSTA convention held on May 29 in 1986, with the purposes of growing Korean evangelical leaders through the evangelization of the Korean students studying in North America. We have encouraged students to develop scholarship based on Christian worldview through the fellowship among evangelical student movements and evangelical contribution to the history and culture of Korea. Our movement has also encouraged them to live the mission-driven lives where they are living now as well as at their local churches. In order to extend our movement, we changed at the third KOSTA convention in 1988 the name of our movement from KOSTA to The Evangelical Fellowship of Korean Students International.


One of the main KOSTA ministries is holding the KOSTA convention every year in North America, Europe (including Germany and France), England, Japan, and Russia to provide evangelical leaders and students with the opportunity of fellowship and training. Since the KOSTA ’91, we have published 19 volumes of the collection of KOSTA-related essays by July of 2001.


We also support campus and regional bible study groups and promote all year around follow-up program and exchange of information among students by publishing monthly webzine, eKOSTA ( http://www.ekosta.org ).








The International Board of Directors


Rev. Jeong-Kil Hong, Rev. Dong-Won Lee, Rev. Young-Jo Ha,
Rev. Han-Eum Ok, Rev. Seung-Jang Lee, Rev. Dong-Ho Kim,
Seung-Soo Park (E-Land Co.), Rev. Jeong-Hyun Oh,
Rev. Won-Ki Kim, Rev. Kyu-Dong Kim








The Representatives of KOSTAUSA


Dr. Dong-In Kang, Rev. Choon-Min Kang, Rev. Jason Kim,
Rev. Chang Soo Ro, Rev. Young-Sun Song, Prof. Chong-Hyuk Ahn,
Rev. Soon-Geun Lee, Dr. Il-Hyong Lee, Rev. Sekyu Chang,
Missionary Jong-Wuk Chae, Dr. Jeeseong Hwang








The Permanent Directors of KOSTAUSA


Rev. Man-Poong Kim, Rev. Doo-Hwa Kim, Rev. Won-Ki Lee,
Rev. Kwang-Chul Park, Rev. Won-Sang Lee,








The Supporters’ Association of KOSTA/USA


Dr. Bum Chang


What Is Evangelicalism?


J. Gresham Machen who is called the father of fundamentalism denies the title of “fundamentalism” as a name to describe his faith.


Just as he asked why the great faith of the church was called one of “isms,” we can ask the same question about the title of “evangelicalism.”


The reason why we have chosen the name of evangelicalism is, however, that we believe that evangelical spirit is the core of the spirit of Christianity.


Truly, “a Christianity without evangelical spirit can not be a movement that has a historical substance.” (Kenneth S. Kantzer)


Evangelical faith begins with understanding the Gospel. C. H. Dodd defines the kerygma of the Gospel as the facts “that a new era has arrived through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the Messiah; that Jesus Christ has become the Judge and the Savior by his ascension and return;


and that the Holy Spirit and salvation will be given to those who answer to Christ with repentance and faith. The spirit of the Gospel is manifested by the religious reformation that was provoked by Martin Luther as follows: 1) Only Grace (Sola Gratia); 2) Only Faith (Sola Fide); 3) Only the Scripture (Sola Scriptura); and 4) Only Christ (Sola Christus).


As Paul defines in Romans 1:2-3, the gospel of God is “the gospel he promised beforehand through his prophets in the Holy Scriptures regarding his Son.” The gospel teaches us “that Christ died for our sins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at he was buried, that he was raised on the third day according to the Scriptures” (1 Corinthians 15:3-4), because “he [Jesus our Lord] was delivered over to death for our sins and was raised to life for our justification” (Romans 4:25). We find in a historical review of evangelicalism that the Evangelical Left has emphasized the person of Christ, while the Evangelical Right has focused on the work of Christ. In spite of their different emphases, all evangelicals share our common faith in the Jesus of history and his death and resurrection.


We believe that the significance of evangelicalism lies in its historicity rather than in modernity as some people consider evangelical faith to be one of the modern religious movements. We agree with Bernard Ramm when he says that “the evangelicals who have an unhistorical faith are superficial Christians.” We also agree with Robert Webber’s warning that “the indifference to ancient and medieval churches would limit the history of evangelicalism only to after 16 th century.


The historical tradition of evangelicalism is rooted in the doctrinal tradition of the Western Church rather than in the mysterious tradition of the Eastern Church. We believe that Protestantism was not a mere resistance against Roman Catholicism but a movement to restore our faith into the evangelical kerygma of the early Church. The reformist Calvin acclaimed that “Were the contest to be decided by such authority (to speak in the most moderate terms,) the better part of the victory would be ours” when he dedicated the famous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o Francis I. The reformists formed alliance with each other on the base of the doctrine of the Bible affirming the priority of God’s Word to the church, the doctrine of salvation about justification only by faith, and the doctrine of the church not as the distributor or administrator of grace but as the means of grace.


The evangelical movement of twentieth century began as an anti-movement against the liberal theology that arose in nineteenth century. 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 argued that religion was not adherence to dogma or the Bible but “the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 He doubted the absoluteness or supernaturalism of religion, undid the difference between nature and grace, and gave up the singularity of Christianity’s revelation, which led to the doctrine of universal salvation by Albrecht Ritschl. As a reaction to this liberal theology, The Fundamentals was published in 1909 (which was republished by Los Angeles Bible Institute in 1917), which began the current movement of fundamentalism. This movement defended the inerrancy, trustworthiness, authenticity, and sufficiency of the Bible. The doctrinal basis of fundamentalism consists of Biblical inerrancy, the Virgin Birth, the belief that Jesus died to redeem humankind,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and a n expectation of the Second Coming or physical return of Jesus Christ. We are, however, aware that fundamentalism has committed cultural and ethical errors due to the hostile nature of its reaction against liberalism.


Philip Schaff critiqued fundamentalism in that it overlooked the importance of the church by emphasizing individual holiness and that it downgraded Christian tradition in its emphasis on faith. Kenneth S. Kantzer, an evangelical, also critiqued fundamentalism, especially its indifference to social issues, and the fact that it simplified the Christian ethics by seeing individual salvation as an answer to all other problems and that it brought about radical separation and defeatism through its narrow interpretation of eschatology.


Current fundamentalism or evangelicalism consists of fundamentalist evangelicalism, dispensational evangelicalism, conservative evangelicalism, reformed evangelicalism, Pentecostal evangelicalism, Wesleyan evangelicalism, traditional evangelicalism, and radical evangelicalism. According to the Confession of Faith of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formed in 1942, evangelicalism 1) does not sharpen the conflict between Calvinism and Arminianism 2) does not make an issue the different denominational positions on eschatology 3) liberates itself from non- essential issues on doctrines 4) denies liberal theology 5) facilitates a flexible interpretation of Scripture 6) admits the results of modern scholarships 7) calls for the interest in the social ethics with the position of evangelicalism.


Theologians such as Edward Carnell, Harold Ockenga, Harold Lindsell, Wilbur Smith, Carl Hnry, and Kenneth Kantzer developed an evangelical movement called neo-evangelicalism after the World War II with the evangelist, Billy Graham. This movement centered around Christianity Today, by both criticizing traditional fundamentalism and shifting away from liberalism. They had interests in overcoming secularization and expressing a mature Christian faith. The modern characteristics of the evangelical faith that they represent are as follows: keeping the inerrancy of Scripture and evangelicalism, conversation with non-evangelicals, interests in scholarship and society, and the emphasis upon the historicity of the church.


The confession of Evangelical faith has been manifested most recently in the Lausanne Covenant taken by 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held at Lausanne, Swiss, in 1974. We, evangelical Christians who have grown in the historical contexts of Korea confess our faith with keeping the ideal of Korean Christians as well as that of World Christians.


Doctrinal Basis


1. We believe in the divine inspiration and authority of both Old and New Testament Scriptures in their entirety as the only written word of God, without error in all that it affirms, and the only infallible rule of faith and practice.


2. We believe in the only true God, the almighty Creator of all things, existing eternally in three persons–Father, Son, and Holy Spirit.


3. We believe in Jesus Christ, fully human and fully divine, who is the only Savior of sinners and the only Reconciler between God and humans, and put our faith in Jesus Christ alone for salvation.


4. We affirm the responsibility and significance of the universal Church and local churches that Lord has given us as the body of our Lord, Jesus Christ, for the sake of worship, fellowship, teaching, service and world evangelization.


5. We affirm that God has called us into the missions of the evangelization of our country, Korea, both in our country and abroad, and realization of God’s will toward our country.


6. We are grateful that God has graced us with the privilege of learning as Korean intellectuals. And we believe that Jesus Christ is the Lord of our lives including our academia and that we should live as his stewards to accomplish the tasks given by God.


7. We affirm the privilege of our being God’s fellow workers to join His work to pursue justice and reconciliation and to liberate all people from all kinds of oppression. We believe in the primary responsibility for the spread of the gospel, but we also confess that Christian duty consists of both evangelism and social action.


8. We affirm the responsibility of pastors established by God to serve the church and at the same time the significant role of the laity who is indispensable to the church. We believe in the laity’s active and positive contribution to God’s kingdom realizing the role and responsibility of the laity based on “the priesthood of all believers” in the Bible.


9. We believe in the victorious reign and future personal return of Jesus Christ, who will judge all people and complete salvation. We determine to obey the authority of the lordship of Jesus Christ over all of life rejoicingly and to commit ourselves to love and serve God and our neighbors.

[최원영]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

2003/9

사용자 삽입 이미지9월의 책으로 선정한 책은 크리스티 김 교수님의 “인생의 응어리를 풀라”이다. 영어 제목은 “Pour out your heart to God”으로 “하나님께 너의 마음을 쏟아라”정도로 해석 할 수 있겠다.



이 책은 내적 치유에 관한 책이다.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가 없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상처가 드러나기를 두려워 하는 사람은 아닐까. 특별히 가족에게서 받는 상처는 도무지 내어 놓기가 힘들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치유로 나가는 출구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기술한다. “내면의 변화는 도 닦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와의 만남과 교제에서 시작합니다. 진리는 이론이 아니라 인격체이십니다” 이러한 인격체이신 예수님을 만날때 우리는 참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데, 저자는 네가지 측면에서 이런 인격적 변화를 조망하고 있다.



첫 째는 용서다. 이 용서의 키포인트는 나를 위한 용서. 미움이란 칼을 마음에 품고 있을때 결국 상처 받는 것은 나다. 은혜를 받은자가 용서할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둘째는 기도다. 나의 상처 받고 이픈 마음을 주님 앞에 꺼내 놓을 때 진정한 치유가 나에게 임한다. 저자는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쏟아놓은뒤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 고 말한다. 셋째로 영적전쟁에 대한 인식이다. 결국 크리스찬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영적 전쟁이라면 이 싸움에 승리 하기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넷째로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내면의 변화를 기대하라.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우리의 상처조차 주님 앞에서는 사명으로 승화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가 겪어야 했던 우울했던 어린시절의 경험들이 오히려 주님의 사역에 쓰임 받는 것을 보며 더욱 확연해 졌다. 유학생활이란 광야를 통과하는 우리 코스탄을 생각하며 이책을 권한다. 상처 받으셨으면 치유하시라. 치유하신후 치유자가 되시라.

[이선주]네가 가장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코스타 2003년 9월호

유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저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작은 일에 신실한 자를 찾는 하나님’ 이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학부 1학년 때 다시 하나님을 만나고 나의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바꾼 이후 나의 학생 시절에 큰 도움을 주었던 실제적인 조언, 실패를 통해 깨닫게 된 주의점 등을 간략하게 나누고자 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다. 사람이 내 안에 살고 내가 그 사람 안에 살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면서 내 말을 지키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그 분의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5:5, 7, 10)



첫째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에 대한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입니다. Quiet Time (큐티) 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는 기독학생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될 수록 큐티를 지키기가 어렵다고 토로하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하나님께 전 생애를 드리고 싶은 소망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면, 젊은 때에 하나님께 하루의 작은 시간이라도 떼어서 집중하여 드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의 큐티는 어떤 일정한 시간 동안 기도와 말씀 묵상을 하는 그 행위 자체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 외의 다른 생각과 다른 목적을 품고도 그러한 형식을 얼마든지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을 통하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큐티시간 자체가 어떠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그 목적이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 혹은 사역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조용한 시간을 가지는 목적은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 즉 하나님과 더 깊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이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는 순간부터 그 목적은 슬며시 우리의 우상이 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여러분 각 사람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의 생각을 하지말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분수에 맞게 생각하십시오. (로마서 12:3)



둘째는 작은 일을 맡으라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많은 수업에, 과외활동에, 인간관계에, 운동에, 여러 종류의 사역에, 직업준비에?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6:12). 단지 보편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유익하지 않은 것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유익해 보이는 것이라 할 지라도 내가 맡아야 할 것이 아니었는데 맡게 되었다면 나 자신과 이웃에게 오히려 해악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충실하려고 하면, 그 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시는 작은 일에 신실하게 임할 때, 내가 맡은 어떤 일도 하찮게 여기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맡은 어떤 일도 필요 이상으로 우러러 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물론, 사도바울의 이러한 권고를 받아들이는 성도들에게는 로마서 12장 1-2절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 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십시오. 이 시대는 악합니다. 여러분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십시오. (에베소서 5:15-17)



맡은 일에 시간을 잘 배분하라는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 학생 시절에는, 일하듯이 공부하라는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조언은, 말 그대로 학생들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아침 9시에서 저녁 5시까지는 공부에 집중하고 다른 일을 삼가라는 권고였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든지, 사역에 관련된 일이라 할지라도 될 수 있으면 그 8시간 외로 시간을 할당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배분은 저의 생활의 우선순위를 실현할 수 있는 큰 틀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이 틀을 지향하기는 했지만, 솔직히 제 학생시절을 통틀어 그러한 틀에 가장 가깝게 생활했던 것은 몇 번의 학기말 시험 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통해, 제가 정말로 일로 주어진 8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면, 그 외의 시간 또한 최선을 다해 다른 일에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원칙을 실감했었습니다.



그다지 새로운 개념들은 아니지만, 제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계속해서 붙들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사항들입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각자의 마음에 심어주시는 지침이며, 적용되는 형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세상사는 동안 저희들에게 주어진 모든 일에 언제나 하나님을 인정하며,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작은 일에 신실했던 착한 종이라는 칭찬을 듣는 여러분과 저가 되기를 바랍니다.


착한 종아, 잘했다. 네가 가장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누가복음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