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재]섬김의 축복, 특히 성경공부 조장으로서

이코스타 2006년 8월호

1. 피츠버그에 내리다.
1999년 8월 피츠버그 공항에 혼자서 처음 내릴 때만 해도 제가 교회에 가게 될 거라고는 꿈도 못 꾸었습니다. 교회를 안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드러내 놓고 싫어했으니까요. 그러다가, 2000년 8월 엄청난 교만을 깨닫고 나서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는 역사를 경험하고선 교회 활동에 깊이 참여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성경공부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청년부 공동체에 대한 소개
제가 섬기고 있는 피츠버그 한인 중앙교회 (Korean Central Church of Pittsburgh, 이하 KCCP)는 주일 출석 인원의 약 절반 정도인 250 여명 정도를 ‘청년’으로 분류합니다. ‘청년’에 포함되는 사람은 일단 나이가 만 40세 이하의 대학생 및 대학원생, 포스닥, 직장인 등입니다. 이들 중 약 110명 정도가 매주 토요일 6시에 모이는 청년회 예배에 비교적 꾸준히 참석합니다. 6시에 모여 같이 식사를 하고, 6시 45분부터 약 30여분간의 찬양예배, 7시 반부터 10시까지는 조별 성경공부를 합니다. 각 조당 구성인원은 대체로 8-16명 정도로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경공부 조는 克?싱글/매리드 등의 각 그룹 별로 편성됩니다. 학부 성경공부 조의 조장들을 위한 성경공부는 간사 역할을 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하게 되고, 싱글/매리드 조의 조장들을 위한 성경공부는 부목사님이 담당하고 계십니다. 조 편성은 가을/봄/여름 의 각 학기 별로 약간씩 바뀝니다. 교재는 IVP나 프리셉트 등에서 나온 GBS 교재 중 성경본문에 충실한 것으로 해서 그때그때 저희 청년회 공동체의 영적인 상황에 적합한 것들을 조장들과 목사님이 상의해서 결정합니다. 좋은 교재가 많이 부족하여 언제나 아쉽습니다. 요새는 그래서 두어 개의 교재를 같이 놓고 본문 내용에 더 집중하는 방식으로 교재를 조장들이 만들어 오는 방법을 취하기도 했었습니다.


3. 성경공부를 처음으로 해보다.
2000년도 봄에 생전 처음으로 접했던 성경공부는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저보다 나이도 많고 공부도 많이 하시고, 인격적으로도 훨씬 성숙하신 분들이 진지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성경공부를 하시는 모습들이 저부터 (이전의 교만한 모습을 벗고)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말씀을 되새기고 생각하면서, 그 말씀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들을 자신의 입술로 고백하고 나누는 모습으로 풍성했었습니다. 그러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 말씀이 제 자신에게도 달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말씀들이 제 영혼도 하나씩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또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 또한 새로이 들리기 시작했고, 찬양 예배 역시 이전에는 지루했으나 점점 찬양들이 하나하나 마음에 들어와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4. 성경공부 조장으로서의 섬김 그리고 부어주시는 축복
2001년은 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뀐 해 였습니다. 교수가 저를 본격적으로 다그치면서 몰아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처음이니까 하면서 봐주는 모습이었는데, 더 이상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럴수록 더더욱 하나님 말씀 가운데 받는 은혜가 더욱 귀했고, 아무리 학교 일이 바빠도 토요 성경공부를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2001년도 가을 학기에는 한 선배의 권유로 드디어 조장으로 섬기기 시작했고, 그것이 훨씬 복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약 5년간 두 학기 정도의 공백을 제외하고는 계속 성경공부 조장으로 섬기게 됩니다.


처음이라서 그랬는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훌륭한 조원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존경스런 신앙의 선배들과 갈망함을 가지고 열심히 임하는 초신자들이 조화를 이루었고, 화기애애하고 웃음이 넘치는 분위기에서도 진지함을 결코 잃지 않는 분위기가 조원들 가운데에서 절로 우러나왔습니다. 그러한 분위기가 주는 편안함 가운데에서,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시간 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시는 지혜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조원들 안에서 생명의 양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라는 느낌을 매번 받았습니다. 신기하면서도 은혜로운 경험들이었습니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나누게 되는 기도제목들에서는 깊은 나눔들이 있었고, 그렇게 내놓은 조원들의 기도제목들을 주님께서 응답해주시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조장으로서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었습니다. 조원들이 서로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는 것에 감사해 하며, 그 공동체 안에서 같이 성경말씀 나누고 같이 기도해가며, 하나하나 결국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같이 체험해 가면서 같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장들끼리 모여 부목사님과 함께하는 조장성경공부는 그 나눔의 깊이에 있어서 조원들과 하는 성경공부와는 비교가 안되었고, 고영양가 말씀의 집중 투입으로 인해 저의 영적인 성장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체험들은 참으로 큰 축복이었고, 그 기쁨이 참으로 강해서 그 이후로 5년 정도 거의 끊이지 않고 조장으로 섬기었습니다. 결코 작지 않은 축복이었지만, 겨우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5.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특히 힘이 되는 섬김의 축복
그 무렵 학교에서도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과에서도 소문나게 깐깐한 제 지도교수님은 2001년도 12월에 제게 “네가 앞으로 박사과정을 계속 하더라도 잘 할 것 같지 못하니까, 다음 학기부터 다른 데를 알아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신을 수습하고 교수님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부분에 대해서 차근차근, 잘 안되는 영어로 말씀을 다시 드렸더니 좀 생각해 보시더니 “한 학기만 더 두고 보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당시 제 일과는 아침 9시 반에 교수와 미팅, 10시 반에 처절하게 깨어진 모습으로 미팅을 마치고, 1 시간 정도 실험 준비, 간단한 점심식사, 그리고 12시 반 경에 실험 시작, 저녁 식사, 실험 계속, 새벽 4시 귀가, 다시 아침 9시반 교수와 미팅. 이런 스케줄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런 스케줄을 10개월 가까이 유지하고 있었다는 게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교수님의 특별관리 대상이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한테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준 것이어서 감사하게 생각이 되지만, 그 당시에는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육체적인 혹사였습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열등의식은 끊임없이 저의 영혼을 잠식하려 했지만, 토요일 저녁마다, 찬양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서 겨우겨우 이겨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은 도리어 저로 하여금 섬김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보게 합니다. 학교 일은 잘리느냐 마느냐의 칼날 같은 능선 위를 걷는듯한 살벌함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교회에서의 섬김은 제게 학교에서의 일을 감당해낼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공급해 주는 축복의 통로였습니다. 2002년 봄학기에 그 축복이 제 학교 일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웠던 실험이 어쩌다 두 번 만에 실험결과가 잘 나와서 바로 논문을 쓸 수 있었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8월에 스웨덴에서 열렸던 국제학회에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회에서 만난 다른 그룹 사람들과의 토론 가운데에서 제가 2001년도에 교수한테 저를 쫓아낼 빌미를 제공해 주었던, 마치 실패한 것 같이 보였던 실험의 결과가 사실은 맞는 것이었다는 것이 발견되었고, 학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논문을 써서 제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 지도교수님은 박사과정을 마치는 데 있어서 필요한 논문 개수를 3개로 정해 놓으셨기에 2개를 한 해에 한꺼번에 제출했던 저는 1년 만에 박사과정 자격미달자에서 박사과정의 2/3나 마친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2003년도 1월에 실험실 전체의 연구 방향이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 저 역시 예외일 수는 없어서 이전에 경험이 없던 큰 장비를 가지고 연구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만 당시의 저로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해야만 했기에 많이 어려웠습니다. 이전같이 새벽 4시까지 일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매일 밤 11시, 토요일이나 주일에도 예배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험실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 한 10 개월 정도 지속됩니다. 3월에 저한테 새로운 장비에 대해서 가르쳐 주던 다른 그룹 사람이 저지른 하나의 결정적인 실수로 인해 교수님이 제게 최후통첩을 하기에 이릅니다. 지도교수님이 저를 department head 앞에 데리고 가서 저로 하여금 각서를 쓰고 사인을 하게 합니다. 내용인즉슨 한번만 더 실수를 하면 쫓아내겠다는 내용이었죠. 다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 되었던 겁니다. 그래도 교회에서 감당하고 있던 성경공부 조장은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그 섬김의 축복이 저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2003년도를 아무런 실수 없이 보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2003년이 지나 2004년으로 접어들면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 시작해서 교수님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2004년도 초에 마지막 논문을 제출하고 2004년도 12월에 박사 디펜스를 통과하면서 학위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저는 섬김을 통해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저를 생각하면 제게 그러한 능력과 지혜는 처음부터 제 안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죠.


6. 새로운 섬김의 자리, 일대일
2005년부터는 PostDoc으로 일하면서 그 이전까지는 시간이없어서 엄두를 못 내던 KOSTA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됩니다. KOSTA 에서 ‘조장’이라는 섬김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충 무엇인지 파악을 해보니, 교회에서 성경공부 조장으로 섬기는 것에 비해선 별 거 아니라 생각이들어 조장으로 자원합니다. 조장 코스타에서부터 받은 은혜와 도전은 실로 엄청나서, 돌아와서는 가을학기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봐야겠다는 의욕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가을학기부터 일대일이라는 것에 도전을 했습니다. 토요모임에서 조장으로 섬기면서 동시에 주중에 일대일까지 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쉽지는 않았지만, 일대일을 통해서 새로이 깨닫게 하시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두란노에서 나온 교재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제 자신이 신앙의 기초부터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고, 그 기초는 제게 새로운 힘이 되었습니다. 가을 학기 내내 해서 한 명을 마치니, 이 후배가 많이 고마워 하더군요. 저도 많이 뿌듯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그 기쁨이 은근히 대단했습니다.


맛들인 김에 2006년 봄학기에는 일대일을 두 명을 했습니다. 일단 한번 교재를 다 공부했었기에 준비하는데 비교적 적은 시간이 들 것이므로 두 명도 감당이 될 것 같았습니다. 물론 감당이 잘 안되어 힘들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7. 미완의 꿈, 캠퍼스 사역
KOSTA 2005에서 도전 받은 것 중, 다른 하나는 캠퍼스에서의 성경공부였습니다. 피츠버그 지역에서는 지역교회 기반의 청년 사역이 주류이지만, 캠퍼스에 교회에 나오기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 부담으로 많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루다가는 아예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씨라도 뿌려보자는 심정으로 캠퍼스에서 혼자서 조촐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Christianity for Everyone’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교회 문턱을 높게 느끼는 사람들, 교회까지 가기엔 부담이 되는 바쁜 사람들,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잘못 알고서 비판 정신이 많은 사람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주로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전설같이 들리던 얘기들, 5-6개월 동안 벽 붙잡고 기도만 했다는 얘기를 거울 삼아, 기도만 하다가 피츠버그를 떠나게 되어도 전혀 상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과 3주 만에 한 영혼을 제게 붙여 주셨고, 지금 그 친구와 같이 일대일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만 많고 믿음은 없던 친구에게, 주님의 사랑과 지혜를 하나씩 하나씩 일깨워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으로 가득한 마음이어서 제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마치 튕겨나오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제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많이 늘었습니다. 특히 두란노 교재를 가지고 3번을 일대일을 하면서 익히게 된 기초적인 내용들과 관련 성경구절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생전 처음으로 전도를 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이 친구가 제 앞에서 영접하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도 많고 믿음도 연약하여 일대일을 계속 해 나가는 동안 이 친구의 믿음이 더욱 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영접을 시키고 제자를 삼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과정을 처음으로 겪게 되었는데, 만나는 시간시간 마다 성령께서 제 영을 가득 채우고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 느껴져서 긴장도 되지만 나태한 저에게 도리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갈망하는 마음은 있지만, 교회에 나가기에는 뭔가 부담이 있는 사람들이 캠퍼스에는 정말로 있었고, 그들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보다 활성화된 캠퍼스 사역의 꿈을 꾸어보지만, 이것은 제게는 미완의 꿈으로 남게 됩니다. 제가 8월 말에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도 더 가르칠 수 없게 되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하나님의 또 다른 인도하심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실제로 가을 학기부터 캠퍼스에서 모임을 시작하려는 움직임들이 교회 내에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8. 맺으면서
교회의 어떤 집사님의 동생 되시는 분께서 한국에서 목사님으로 사역하시다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러 한국에 갔다오신 이 집사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사실 평소에 그 동생 되시는 목사님을 안쓰럽게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자기보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던 동생이 왜 고생고생하는 목사로 살아가야 하는지. 하지만, 그 목사님의 장례식에 운집한 3천여 명의 인파를 보고, 그들의 통곡과 흐느낌을 보고선 생각이 바뀌셨다고 합니다. 자신의 동생이 옳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삶이 점점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7년 전 피츠버그에 내렸을 때에는 제가 이런 모습과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가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습니다. 그때 피츠버그에 내려서 교회에 안 나가게 되었다면, 떠날 때에 저의 떠남을 아쉬워할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같은 과의 몇몇 후배들 정도가 조금은 아쉬워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떠난다 하니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시는 걸 봅니다. 제가 이 피츠버그에서 박사 학위 말고도 뭔가 의미 있는 삶을 보낸 것 같아 아쉬움 가운데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삶의 순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섬김의 축복은 이제는 모든 섬김을 내려놓고 떠나는 마당에까지 유효하더군요. 한국에서의 새로운 자리에 예비해 놓으신 새로운 축복에 가슴 설레어 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신선묵]영적 지도자와 능력 이양 (Empowerment)

지도력의 상황적 이론을 전개한 Paul Hersey 와 kenneth H. Blanchard라는 사람은 지도자가 사람들의 성숙도에 따라서 적절한 종류의 지도력 스타일과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도자라면 여러 가지 종류의 파워를 소유하고 그들이 이끄는 사람들의 성숙도에 따라서 적절한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동기부여가 되어 있지 않고 기술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위협이나 보상 혹은 지위와 같은 저 차원적인 파워를 사용하고 숙련된 기술과 동기 부여가 되어있는 사람들에게는 전문기술 제공 혹은 인격적 대우 등과 같은 고차원의 파워를 사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이론은 사실상 최고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한 지도력의 스타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잘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지도자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력의 스타일을 사용하여 효과를 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도를 받는 사람들의 성숙도를 발전 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였다. 다시 쉽게 말하면 참된 지도자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동시에 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신감이 없을 때에는 격려해?자신감을 심어주고 그들이 기술과 지식이 부족할 때에는 그들이 지식과 기술을 가질 수 있도록 공급해 주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에게 실제적으로 일을 결정하고 책임지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파워를 나누어 주는 일들을 통하여 추종자들이 하나의 지도자로 성숙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한 지도자로 세워 나아가는 데에 가장 힘드는 부분이 파워를 나누어주는 부분이다. 사람들이 성장해 감에 따라서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파워를 소유하고 사용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지도자들이 자기만이 파워를 소유하고 사람들에게 파워를 나누어 주지 않아서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세워 나가는 노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워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참되고 현명한 지도자는 사람들의 성숙도에 맞게 파워를 나누어 주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파워를 실행해 보면서 지도자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사역의 기회를 함께 나누고 적절한 영역에서 의견을 물어보고 함께 상의하여 결정하는 과정들을 통하여 파워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능력을 추종자에게 이양해 주는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 사이에는 파워를 바라보는 관점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어떤 지도자는 파워는 남에게 주면 자신에게 그 만큼 파워가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지도자는 파워를 추종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능력 이양을 이루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들은 파워는 나누면 나눌수록 더 많아 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파워를 나누어 주고 그런 경험을 통하여 추종자들이 능력 이양을 경험하게 되고 지도자는 더욱 더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파워를 자신만이 소유하고 나누어 주기를 거절하고 사람들을 사용하기만 하려는 지도자는 사람을 세우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에 나의 지도 교수님이셨던 클링톤 교수님의 지도 아래 학위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같은 원리였던 것 같다. 그분이 다른 교수님에 비하여 특별히 나에게 준 것은 없다. 장학금을 준 것도 아니고 학점을 특별히 잘 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에게 준 것은 강의 시간에 나에게 도전을 주고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또 계속적으로 나의 은사를 개발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움을 준 데에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비교적 영어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공부는 할 수 있었지만 수업시간에 질문을 한다거나 앞에서 나가서 발표하는 것을 엄두를 못내던 나에게 수업에서 20분짜리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것에 대해 인정해 주고 또 나중에는 나의 연구한 글을 가지고 1시간 짜리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여서 나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은사를 발견하게 해 주신 것이다. 그분은 학교의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간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지도자로 서 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강의를 하는 파워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줌을 통하여 강의를 더욱 풍성하게 하고 동시에 가르치는 지도력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간다.


좋은 지도력이란 무엇일까? 사람을 선택하고 함께 일하면서 단순히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통하여 어떤 일들을 성취하는 것에서 끝이 나지않고 그 과정들을 통하여 사람들을 세우고 키워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지도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교회 속에서도 담임 교역자가 부 교역자들에 대하여 또 교육자는 평신도들에 대하여 또 사회 속에서 평신도들은 그들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을 통하여 어떤 과업을 성취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들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실제적인 발전이 있도록 또 그들이 지도자로 서갈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이 참다운 지도력인 것이다.


James MacGregor Buns는 퓨리쳐상을 받은 그의 저서“Leadership”에서 변화를 시키는 지도력(Transforming leadership)은 “임무가 완성되는 것을 넘어서 관련된 자들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지도력”이라고 말하였다. 진정한 지도자는 “다른 사람의 행동과 태도 비전과 가치관 또는 신념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의 그들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보고 그들과의 관계에 투자하여 그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도하신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참다운 지도력이라는 것이다.

[장이규]지도자의 자기 관리와 성장 (6)

다섯번째 질문: 개인적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이를 정하라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성장을 위해 더 없이 중요한 것은 믿음을 함께 나눌 수 있고, 붙들어 줄 수 있으며, 쓰러지면 세워 줄 수 있는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이다. 아무리 개인적 믿음이 좋다고 자부해도 믿음을 함께 나눌 영적 가족이 없으면 그 믿음은 외롭고 무능력해 지게 되어 있다. 개인의 믿음은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 속에서 믿음의 ‘give and take’ 법칙을 통해 믿음의 개인적 의미와 훈련, 성숙이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주는 차원(giving)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어(give) 본 사람이 사랑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며, 더 성숙한 감사와 찬송을 돌릴 수 있게 된다. 받는 차원(taking)에서 역시, 개인의 믿음은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의 각기 다른 구성원들의 은사를 통해 나의 제한적인 사고와 환경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더욱 새로이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나의 개인적 믿음이 도전받고, 영적으로 깊어(spiritual mature) 가는 것이다. 신앙의 영적 가족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 이다.


그런데 문제는 리더의 차원이다. 모든 사람의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 본질적인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이 정작 그 영적 가족을 인도하고 있는 리더에게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물론 리더도 다른 사람들처럼 섬기는 소 그룹 공동체 속에서 구체적으로 삶의 문제와 믿음의 문제를 나누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룹의 영적 성숙도에 따라 나 눌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리더쉽 측면에서 함께 나눌 수 없는 일도 있다. 가령 그룹원 가운데 리더와 갈등을 일으키는 일 들 이라든지, 그룹 원의 비밀스러운 일, 그렇지만 혼자서 다루기에는 벅찬 일 들이 이 범주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리더 역시 영적으로 자신을 돌보아주고,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영적 코우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때 영적 코우치가 없으면 리더는 고민과 갈등, 그리고 힘겨운 신앙의 여정을 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곧 쉽게 지치게 된다. 심한 경우는 열심히 섬기던 리더가 그 지침에 못 이겨 아예 섬기던 교회를 떠나기 까지 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다섯번 째 질문은 리더가 섬길 때 리더의 영적 탈진을 방지하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도록 재생산 능력을 가지도록 지도자의 자기 관리와 성장을 위해 중요한 도구 중 하나는 ‘신앙 서적’이라는 말이다. 왜 ‘신앙 서적’이 리더의 영적 성장을 지속적으로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가?


첫째, 신앙서적이 리더의 개인적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서적을 통하여 리더는 새로운 차원에서의 영적 교통(spiritual communication)을 하게 된다. 모든 서적은 그 책을 쓴 작가의 의도가 있지만 동시에 그 책 스토리 자체 안에서 생산되어지는 영감도 있다. 작가가 의도한 신앙의 세계와 스토리 자체에서 생산되는 신앙 서적의 영적 영감 가운데 리더는 자신의 삶과 영적인 삶의 여정을 함께 얹어, 스토리의 주인공과 함께 영적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리더 자신의 삶의 수준과 영적인 수준을 스토리의 주인공과 비교하며 대화를 시작한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린다. 때로는 안타까워하며, 때로는 통쾌해 한다.


이 신앙 서적을 통한 리더의 영적 세계의 여행과 대화는 놀랍게도 리더 자신이 오늘 현실 속에 함께하는 신앙 공동체에서 나누지 못한,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현실 속에서 부딪히는 섬기는 공동체 내의 인간 관계 문제에 때로는 자신을 합리화 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억울하다고 이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영적인 대화의 과정은 리더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한다. 때로는 스토리의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때로는 그 스토리 주인공의 상대자가 되어 자신의 믿음에 대해 성실한 면, 지혜로운 면, 연약한 면, 부족한 영적 능력 들을 투사 시킨다. 그러면서 리더와 신앙서적은 여전히 대화를 계속하면서, 리더로 하여금 새로워 질 수 있다고, 변화 시킬 수 있다고, 주님이 알고 계시다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동역자들이 많다고, 주님이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응답한다.


결국 리더는 신앙 서적을 통해 섬기는 현실 세계의 영적 공동체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영적 가족(spiritual family)을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부담 없이 깊은 대화를 하게 되면서 신앙의 안정과 도전을 끊임없이 경험하게 된다. 늘 공급하기만 하던 현실의 신앙 공동체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오히려 도전을 받고, 지혜를 얻으며, 나아갈 방향을 얻어 성장을 한다. 그러면서 보이는 현실 세계가 다시 새롭게 보이고, 다시 주어진 기회의 세계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의 비전을 얻게 된다.


둘째, 신앙서적이 리더의 개인적 영적 멘토 (mento)가 되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 인들에게는 영적인 멘토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영적 멘토의 역할을 자신들이 속해있는 신앙의 그룹을 인도하는 리더에게서 취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의 문제, 혹은 삶의 문제가 생기면 리더에게 찾아와서 상담을 하고, 함께 기도를 하며, 지혜와 능력을 얻어 새로운 차원의 믿음의 성장을 또 다시 시작한다. 리더 역시 차원은 다를지라도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사람들과 똑 같이 삶의 문제, 신앙의 문제, 더 나아가 리더쉽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에, 리더 역시 그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를 하며, 주님이 지혜와 능력을 리더 자신도 멘토를 필요로 한다. 이때 신앙 서적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과 지혜, 능력을 공급하는 귀한 멘토의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신앙 서적이 공급하는 멘토의 역할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개인적 삶과 신앙의 문제에서부터 리더가 섬기는 소그룹의 운영 문제, 그리고 자신의 리더쉽을 어떻게 개발 할 수 있을 지에 관한 그 전략적 문제에 이르기 까지 그 폭넓은 멘토링이 주어진다. 여기서 리더는 문제의 해결을 얻게 되고, 자신의 지나온 리더쉽의 여정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더 나아가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비전을 얻게 된다. 그 가운데 리더는 순간 순간 제기되는 문제와 결단의 위기에 성숙하게 대처하여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리더는 자신의 영적 가족이 되고 또한 영적 멘토가 되는 신앙 서적에 대한 독서를 꾸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어떠한 신앙 도서를 선택하여 읽는 것이 리더의 자기 관리와 성장을 위해서 도움이 될 까? 개인적으로 4가지 영역에서 1년에 4권을 추천한다.

첫째, 성경을 매일 통독하라.
특별히 성경을 많이 읽으려 하지 말고, 꼼꼼하게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신앙의 전기를 읽으라.
성숙한 신앙 선배들의 생을 통한 신앙의 여정이 오늘 나의 삶과 믿음의 여정에 대한 대화를 깊게 하게 된다.


셋째, 리더쉽에 관한 책을 읽으라.
오늘 내가 서 있는 위치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하게 된다.


넷째, 섬기는 분야의 전문적 전략과 기술(strategies &skills)에 관한 책을 읽으라
섬기는 공동체가 소그룹이라고 하면 소그룹 인도에 관한 전략과 기술에 관한 책을 읽으라. 사소하지만 매우 귀중한 지혜들을 얻게 된다.


각 분기별로 하나 씩을 읽어도 좋고, 아니면 겹쳐서 필요한데로 읽어도 좋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신앙 서적에대한 독서가 리더로 하여금 주위 사람들이 채워 줄 수 없는 영적 양식이 되고, 능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리더는 이를 통해 내적으로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되고, 외적으로도 영적 능력 면에서 매우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된다. 그 가운데 리더의 영적 탈진은 방지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재생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도움이 될 만한 참고 도서들이다.


RESOURCES FOR SEEKER


  • THE JOURNEY BIBLE —Zondervan, Willow Creek Resources
  • THE CASE FOR CHRIST — Lee Strobel
  • CHRISTIANITY 101 — Bill Hybels, Seeds audio Tape DBR101
  • MORE THAN A CARPENTER — John McDowell
  • THE TOUGH QUESTIONS CURRICULUM SERIES – Judson Poling and Garry Pools

EXPERIENCING GOD’S GRACE


  • THE SACRED ROMANCE — Brent Curtis/John Eldredge
  • ABBA’S CHILD — Brennan Manning
  • THE GOD YOU CAN KNOW — Dan De Haan
  • THE APPLAUSE OF HEAVEN — Max Lucado
  • WINDOWS OF THE SOUL — Ken Gire
ISPIRATION

  • THE IMITATION OF CHRIST — Thomas a Kenpis
  • DEVOTIONAL CLASSICS — Richard J. Foster & James Bryan Smith
  • INCREDIBLE MOMENTS WITH THE SAVIOR — Ken Gire

PERSONAL DEVELOPMENT


  • HOW PEOPLE GROW — Dr. Henry Cloud
  • THE HEALING PATH — Dan Allender
  • HONEST TO GOD? — Bill Hybels
  • DESCENDING INTO GREATNESS — Bill Hybels
  • TESTORING YOUR SPIRITUAL PASSION — Gordon MacDonald
  • INSIDE OUT — Larry Crabb

LEADERSHIP


  • THE MAKING OF A LEADER — Dr. J. Robert Clinton
  • SPIRITUAL LEADERSHIP — J. Oswald Sanders
  • SERVANT LEADERSHIP — Robert K. Greenleaf
  • THE LEADERSHIP CHALLENGE —Jim Kouznes & Barry Posner
  • DEVELOPING THE LEADERS AROUND YOU — John Maxwell
  • DEVELOPING THE LEADER WITHIN YOU — John Maxwell

GROUPS/SHEPHERDING


  • CHRISTIAN COUNSELING: A COMPREHENSICE GUIDE —Dr. Gary Collins
  • THE BIG BOOK ON SMALL GROUPS — Jeffrey Arnold
  • DOUNDATIONS OF COACHING — Willow Creek Institute Class
  • COACHES HANDBOOK — Willow Creek Resources
  • HOW TO LEAD SMALL GROUPS — Neil F. McBride
  • BRING OUT THE BEST IN PEOPLE — Alan Loy McGinnis
  • CARING ENOUGH TO CONFRONT — David Augsburger

[김철수] 예수의 복음: 새언약의 성취, 화평의 완성 (히브리서 8-10장 강해) 1

KOSTA/USA 2006 아침 성경 강해를 진행해 주셨던 김철수 선교사는 앞으로 eKOSTA를 통해 코스탄을 만날 것이다. 그 준비를 위해, KOSTA 집회 기간에 행했던 김철수 선교사의 성경 강해를 2회에 걸쳐 요약하려고 한다.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는 예수가 역사 속의 다른 어떤 영적인 인물들이나 혹은 우주의 그 어떤 영적 존재들보다도 왜, 어떻게, 얼마나 더 우월하신지에 대한 논의로 서신을 시작합니다. 결국 히브리서 기자의 논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진정한 제사장으로 오셨다는 것인데, 그의 제사장 되심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의 계열을 뛰어넘어, 마치 율법이 미처 주어지기 전인 아브라함 시대의 멜기세덱과도 같은, 율법 위의 신적인(divine) 계열로 오셨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은 이 점을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요점은 모세의 율법에 지정된 제사의 법으로는 영원한 구원이 불가능하며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7:19) 오직 예수의 제사장 역할만이 율법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 8장에서부터 10장까지는 예수의 오심이 구약(옛언약)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어떻게 하여 예수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는 확실한 보증이 되신 것인지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를 공부하게 되면 다음의 중요한 성경의 (신학적) 개념들을 심도있게 파악하게 됩니다. (히브리서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구약의 모세의 오경(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내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신약의 로마서 역시 매우 중요한 참고서가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다음의 개념들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복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 율법(모세의 율법, torah)은 무엇인가? 2. 율법에 의하면 제사장 및 대제사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3. 옛언약(구약)과 새언약(신약)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4. 예수 그리스도는 이 언약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인가? 5. 결국 복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6. 결과적으로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러한 연구의 질문들(research questions)을 염두에 두고, 히브리서 8, 9, 10장을 탐구하고 묵상하며 가슴에 복음진리의 말씀들을 새겨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8장 – 구약(옛언약)/율법의 기능과 구원


(1) 구약에 있어서의 제사장의 역할을 먼저 생각하여 보십시다. 제사장의 위치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왜 제사장이 필요하였습니까?


-  제사장의 위치는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입니다. 즉, 중재의 역할이 제사장의 가장 큰 임무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 앞에 스스로 설 수 없는 “죄인”입니다. 자신을 창조하시고 주인되신 그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선택된 백성의 특권을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조차도 반드시 누군가의 중재를 통하여서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12지파 외의 특별한 지파/부족을 하나님은 따로 세우셨는데 그것이 바로 레위 지파이며, 이 가문은 남성 전부가 제사장의 직무만을 수행하여야만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모세의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참조해주셔야 합니다)


-  제사장의 임무는 히브리서 7, 8, 9, 10장에서 거듭 설명하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신분을 유지하고 살도록 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짐승의 희생의 피를 뿌림으로써 “대속 (대신 속죄)”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의 사함은 오직 피뿌림의 희생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히 9:22).


-  제사장들 가운데 최고 대표자로서 대제사장이 있었는데 그의 가장 중요한 직무는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 (Day of Atonement)”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그들의 죄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성소의 맨 뒤에 있는 “지성소 (Holy of holies, 또는 Most Holy Place)”에 홀로 들어가 그동안 제사제도가 다 망라하지 못한 남은 죄들의 사죄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레 16:29-34; 히 9:1-10)


-  결국, 히브리서 7-8장이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속죄를 위한 언약인 율법의 제사제도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보증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은 오히려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2) 그럼 Torah 혹은 율법(Law)은 무엇입니까? 그 기능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구원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  율법은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음의 구절들은 이를 명확히 해줍니다. (행 15:10; 롬 3:20, 28; 롬 4:15; 롬 7:6; 롬 8:3; 롬 10:4; 갈 2:16; 갈 3:5, 10-14, 21, 24; 갈 5:3-4; 딛 3:5; 히 7:11-12, 18-19, 28; 히 8:7; 히 10:1)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부터 “구출/구원”된 이후에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구원을 위한 방편이 아니라 구원하신 분과 구원 받은 백성들 사이에 맺어진 언약(covenant)입니다.


-   율법은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주어졌습니다.


  1. 하나님의 성품, 혹은 하나님의 의를 계시해줍니다. 모세오경, 특히 레위기 서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성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신적 본질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완벽하게 깨끗하며, 흠이나 죄가 없으며, 영원토록 변함없는 사랑의 본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즉, 피조물과 온전히 구별된 신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불의에 대해서는 의로우심으로 나타나십니다. 다시 말하면 불의와 죄에 대해서는 진노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세의 오경을 비롯해서 오경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받은 모든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말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2.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야 될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거룩성과 의입니다. 율법은 끊임없이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성에 기초하여 모든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이 그렇게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로 그렇게 살 수 없음을 가르쳐주기 위하여 끊임없이 율법의 의를 요구합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인간은 “하나님 수준의 의로움”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별히 마태복음서에서 예수님 자신이 강력하게 설파하신 주제입니다.



    -  마 5:17-20 – 당시의 유대인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성이 강한 자신들의 지도자들을 숭상하였고, 예수님이 그들의 유대전승을 따라서 율법을 “종교적”으로 지키지 않음을 보면서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율법을 주신 당사자로서 율법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지적해주시고 있습니다.

    -  마 5:21-47 – 신학적으로 antithesis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예가 6가지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구약의 율법의 말씀의 원래 의도를 왜곡하여 가르쳤음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율법의 의도는 “신적 요구”입니다. 즉, 인간이 신의 요구 앞에서 불의함을 적나라하게 봄으로써 (심지어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구원을 이루게 해주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그러한 의도를 가진 율법의 요구를 유대 지도자들은 종교적 도덕 수준으로 그야말로 “종교적 율법”으로 타락시켜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율법을 주신 분으로서 “저자 직강”을 통하여 이 점들을 신랄하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  마 5:48 – 예수님의 결론은 유대인들이 (나아가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20절) 결국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 즉 “완벽하심 (perfect)”과 같이 완벽해야 한다고,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만큼 의로와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가 있어야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율법의 메시지입니다.

  3. 그렇다면 누가 과연 이러한 신적 의를 가질 수 있습니까? 아무도 그러한 의를 가질 수 없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롬 3:10; cf. cf. 14:1). 율법은 오히려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지독한가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성질은 죄성이라,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에 결코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율법은 보여줍니다. (롬 8:3, 7-8절의 “육신”은 바울의 용법에 의하면 바로 이러한 인간의 본성/죄성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또한 율법 내의 내용에서도 이미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명기 28장 이하 31장까지를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을 주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신 31:16, 20, 27, 29).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전체 문맥에서 읽지 않고 “복받고 싶은 심리”에서 엉뚱하게 읽는 것을 잘 보여주는 성경부분이 또한 신명기 28장 1-14절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전체와 특히 28장 본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맺는 “계약” 부분입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계약입니다. 즉, 율법은 조건 계약입니다. 오직 “만일 . . . . 하면” 기록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의 계약부분은 저주 부분에 비하면 지극히 적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언약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 혹은 옛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cf. 출 19:5).

  4. 그러므로 율법, 즉 옛언약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항상 죄인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옛언약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위해서는, 혹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의 문제를 “대속”을 통하여 해결하여 함을 율법은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 자체가 처음부터 한계를 전제하고 주어진 것입니다. 이제 히브리서는 이러한 율법/제사장의 역할이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5. 율법은 따라서 인간의 종교적 의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가르쳐줍니다. 율법의 모든 요구를 인간이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대신 “신적 의”를 가져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이 신적 의를 대신 가져다 줌으로써 우리를 죄인의 낙인에서 벗겨주어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을 알고 싶으시다면 고린도 후서 5장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cf.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3: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3) 결론
결국 율법으로서는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것은 율법이 흠이 있거나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때문입니다.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죄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종교적인 노력도 인간을 죽음의 문제에서 구원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을 지킴으로써 인간은 또다시 자신의 의를 세우는 교만의 죄에 빠집니다 (롬 10:1-3). 그래서 바울은 율법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롬 4:15). 죄(죄성)가 기회를 타서 율법의 계명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속이고 그것으로 자신을 죽였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롬 7:10). 그것은 인간의 죄(죄성)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죽을 지경으로 만든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롬 7:13). 다시 말하면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즉,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 앞에 우리는 지극히 겸손히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하여 율법 외에 그 구원의 길을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베다니 사역 – 최원영 교수

이코스타 2006년 8월호

KOSTA/USA 2006을 연 jjKOSTA에서 University of Nebraska에서 화학을 가르치시는 최원영 교수의 강의를 편집부에서 요약한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은 우리 각자에겐 ‘사전’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가진 사전의 definition이 다르면 대화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적 가치는 무엇이 문제인가? 공중부양을 하겠다며 도를 찾던 사람이 ‘내가 떠서 뭐하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혀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와 같이 세상적 가치는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세상적 가치의 한계를 짚어보자.


1. 세상적 가치는 영원을 담지 못한다.
볼테르의 말처럼, 몇분을 타고 사라지는 지푸라기 같은 삶의 허무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나서 평균수명이 ‘영생’이라는 것으로 새로운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의 가치를 넘어 하나님의 가치를 가진 우리는 ‘생명을 건지는 일’, 즉 ‘화해자로서의 초대’라는 사명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딜레마가 있는데, 바로 ‘나도 가끔은 주목 받는 인생이고 싶다’라는, 영원한 빛인 별보다 20분 타고 마는 불타는 지푸라기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런 딜레마를 처리하는 방법은 욕구를 참는 것이 아니라, 내 시선을 옮기면 된다. 다시 말해 내 사전을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보자. ‘그리스도인이 피곤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우스게 소리로 이렇게 답하기도 한다. ‘일요일에 쉬지 못하고 교회에 가니까’라고… 하지만, 이 말을 잘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은 피곤하다’ 혹은 ‘교회는 안식을 주지 못한다’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서글픈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세상의 전제들이 깔려있는 사전의 정의를 성경의 바른 사전으로 다시 써야 한다는 말이다. 편한 것이 좋은 것이다’라는 말이 정말 좋은 것일까? 한번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전제들은 ‘이생의 자랑,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전을 다시 쓰기 위해서는 성경의 메세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2. 예수님의 베다니 사역
나사로를 살리신 사역이 베다니 사역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나사로의 기적’이라는 표현보다는 ‘예수님의 베다니 사역’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예수님의 사역은 잘 알고 있으리fk 생각한다. 요한복음 본문 1 4절을 읽어보자. 예수님은 나사로의 아픔, 혹은 죽음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계셨다.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이런 의도를 들은 사람은 제자들, 심부름꾼, 마르다와 마리아, 그곳에 있던 유대인 등이겠다. 각각 그들의 반응을 살펴보자. 4절 이후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들었슴에도 불구하고, 위험하다고 베다니로 들어 가지 말 것을 권한다. 또한 도마의 ‘우리도 같이 죽으러 가자’라고 조금은 과장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의 ‘잔다’라는 표현을 문자 그래로 잠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 같다. 반면, 베다니에 도착해 예수님께서 처음 만난 사람은 마르다인데, 그녀의 반응을 보자. 예수님의 의도를 예전에 들었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곳에 계셨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자신만의 반응을 보인다. 마리아도 마르다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유대인들 역시 ‘이 사람이 죽은 자들은 살리지 못하는 구나’라고 죽은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듯 하다.


정리해 보자.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라는 것이었고, 구체적인 사역은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였지만, 예수님 주변의 그 누구도 그 의도를 바로 깨달은 사람은 없었다. 예수님의 사역은 참으로 외로운 사역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의 ‘통분히 여기다’라는 표현을 집중해 보자. 다른 번역을 보면, ‘아픈 마음으로 슬퍼하셨다’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아파하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 수 있는 베다니 사역의 성격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짝사랑 전문가가 아닌가 싶다. 짝사랑이란 상대편은 관심이 없는데, 당사자만 안타까워 하는 것이니까. 정말 짝사랑은 감동 아닌가? 관심도 없어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쏟아 부어 주시는 사랑은 정말 감동이다. 또한 향유를 붇는 마르다의 사역도 베다니 사역에 염두에 두어야 하겠다.


예수님의 베다니사역은 정말 쉬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진정 물어야 할 것은 ‘편한가’ 혹은 ‘쉬운가’라는 질문이 아니다. 그 대신 그 ‘의미’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결혼할 때 물어야 할 것은 ‘쉬운가, 어려운가’가 아닐 것이다. 정말 이 결혼이 의미가 있는가를 물어야만 한다. 사실, 인생은 의미의 싸움이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을 살펴보면,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라는 의미를 짚어 주셨다. Steven Jobs은 코카콜라의 사장을 설득하기 위해 ‘설탕물을 팔기에 평생을 바칠까? 아니면 세상을 바꾸는데 쓸 것인가?’라고 했다. 사실 애플 컴퓨터를 많이 판다고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없기에 이 말은 별 의미가 없지만, 우리는 세상을 향해 이 말을 선포해야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