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혁]나의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

이코스타 2007년 11월호

샬롬!


저는 텍사스 러벅에 있는 홍성혁이라고 합니다. 코스타 수련회는 2005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구요. 이번 2007년이 3년째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미국 유학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인도 하셨는지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처럼,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기간을 돌아보면 제가 계획해서 모든 것을 한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특별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99년 1월에 미국에 유학을 오기전에 저는 대학 졸업후95년부터 99년까지 4년간 효성중공업 정보지원팀에 입사를 해서 전산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효성그룹 계열사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회사내에서 좋은 인맥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95년부터 회사대표로 전국핀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해서 메달을 따면서 자연스럽게 효성그룹 월간 소식지와 사내 사보에 제가 메달딴 소식과 함께 사진이 실렸고, 회사내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존재를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생활은 즐겁고 재미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 직장에서 안정되게 회사생활을 할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저의 직장 환경을 갑자기 변화시키셨습니다. 98년 이후 회사가 IMF위기를 격으면서 각 사업부가 독립된 단위 회사로 나누어 지면서 제가 있던 정보지원팀도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각 사업부 관리팀에 전산담당자로 발령이 나면서 전산업무보다는 영업관리업무를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이것이 저로 하여금 다른 직장을 찾게 하였습니다. 그런던중에 98년 말 전세계적으로 Y2K 문제가 발생해서 Y2K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게 되었고, 때마침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는 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해외채용업체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채용절차는 1차 서류심사와 2차 영어 인터뷰와 면접이었습니다. 어떻게1차 서류 심사는 통과했는데, 2차 영어 인터뷰때 말도 않되는 말을 하고있는제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끼면서 인터뷰를 대충 마쳤습니다. 그때 이후로 영어공부와 전공공부에 대한 부족을 실감했고, 결국 유학을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외채용업체를 알어보던98년그때만 해도신혼 살림을 강남에 잘 마련했기 때문에 만약 유학을 결정하게 되면 잘 꾸민 아파트도 처분하고, 차도 팔고, 온갖 가구를 다 팔아야 하는 번거러운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후 6년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학했던 아내의 동의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후 6년동안 유학생활을 했고, 한국에 나와서 저와 결혼후8개월간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가게 된것을 너무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것도 다 유학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중에 하나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별다른 계획없이 무작정 떠났지만, 현지에 계셨던 아내의 이모부 가족의 도움으로 학교를 정하고 정착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학가기전 98년 여름에 아내의 이모부께서 지금 제가 졸업했던 Texas Tech University에 Visiting professor로 1년간 가게 되었는데, 저희부부가 그때 공항까지 마중을 가서 선물도 드리고 잘 배웅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왜 내가 이런일을 해야 되는가 궁금했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나중에 유학생활때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돌고 하나님께서 계획 하신것으로 지금은 믿고 있습니다.


미국에 오긴했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오자마자 Texas Tech어학원에 다니면서 99년부터 1년간 토플과 GRE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0년 5월 Computer Science에 입학 할때도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들어가기가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신 역사로 쉽게 입학하게 되었고, 2007년 8월에 박사학위 받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동안 늘 기도했던 것은 학위를 잘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고,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한적은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목마른 기도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구하지 못한 것을 요즘들어 후회를 많이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을 요즘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학위문제가 해결되자 진로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또그것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job search를 시작했고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에 지원했던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코스타에서 알게된 Computer Science 교수님이신 김현주 자매님과 이화정 자매님과에도 지원했는데, 결과는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미국내 teaching job에 더집중하기 위해서 졸업하면 가기로 했던 보험과도 같았던 삼성전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를 하고 비장한 각오로 Job search를 했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200군데 넘게 지원을 했는데 단 3곳에서만 인터뷰 요청이 있었고 나머지는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지원자가 450명이 넘어서 자격이 되는 지원자를 뽑는 것이 참 힘들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망연자실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뷰한 대학에서도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아서 미국에서 teaching job을 잡는 다는 것은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았습니다. 삼성에 않가기로 결정한 제 자신을 한탄하였고, 아내의 끊임없는 구박이 그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게 아닌가 보다 하면서 제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던중 7년간 기다렸던 석박사 통합과정 defense를 지난 6월에 마치면서 점점더 진로에 대한 불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도 저처럼 defense후 1년씩 job이 없어서 놀다가 한국에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 하지도 않았던 job을 저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8월OPT card를 받으러 Office of International Affairs에 갔다가 우연히 international counselor 중 한명이 제 전공을 물어봤고, 제 전공이 Computer Science 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저를director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director는 우리와 같이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director는저를 처음보는 자리에서 저를 보고 우리들의 오랜 기도 응답이라고 말하면서 International Affairs의 총책임자인 Vice provost 에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그분은 여기는 아주 일하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며너 마치 new employee대하듯 저를 대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job 인터뷰같은 것을 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그분과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진행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일 후 정식으로 job공고가 Texas Tech job site에 실렸고 저는 온라인 지원서를 작성해서 지원했습니다. 얼마후 director로부터 이메일이 왔고, 최소10일동안 Job공고를 해야 하는 것이 학교 규정이라는 내용과 함께 인터뷰 일정을 알려 줬습니다. 인터뷰날에 저는 집에서 5분도 않걸리는International Affairs에 금방 도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서 저희 학교 IT department의 director 와 manager가 와서 컴퓨터에 관한 전문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하기에 앞에 Computer Science Ph.D. 앞에서 컴퓨터에 관해서 질문하는 자신들이 참 어처구니 없다는 말을 먼저 꺼내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인터뷰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후 불과 1시간도 않되서 만장일치로 저를 뽑기로 했다는 이메일을 받고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지원자들이 많았을 것을 예상이 되는데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고 끝을 내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 동안 Job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했고 미국내 Teaching Job을 잡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거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와 다른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계획이 저에게 가장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었던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쉽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하는 동안 쭉 연락을 해왔던 한국의 한 교수님으로 부터 메일이 왔는데, 이번에 신규 교수채용을 하게 되는데 자네가 지원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이제 우리학교도 우리학교 출신 교수를 뽑을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네 전공으로 공고를 낼 수 있도록 자네가 미리 교수들에게 이력서를 보내서 분위기를 만들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그렇게 했고, 교수회의때 교수님들이 다 제 전공으로 신규채용을 하는 걸로 합의를 하고 지금현재 공고가 나있습니다. 아직 제가 임용된것은 아니지만 그 교수님이 왜 그렇게 저를 교수로 임용하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지 이유를 지금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번 일들을 통해서하나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을 다 알고 계시며 그것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획하고 그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제 계획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고민은 내려놓고 오직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뜻만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때 다른 구하지 않는 저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번 코스타 주제강의때도 손희영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진로를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지만 그런것에서 자유함을 가지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살면 그것이 결국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되고, 비록 우리가 순간 잘 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고 선한길로 인도하신 다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저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준비하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우리가 바라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코스탄 출신의 강사 – 팽동국 교수


간략하게 자기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제주대학교 해양대학과 의공학협동과정에서 수중음향과 의료용초음파를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부터 해외장기연수로 1년동안 미국 남가주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의 의공학과와 Doheny Eye Institute에서 40 MHz 이상의 고주파 초음파를 이용해서 안과관련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해양공학과(Ocean Engineering)로 유학을 와서 수중음향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으로 옮겨서 2002년에 의료용 초음파 분야로 음향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남가주 대학에서 1년동안 research associate으로 있다가 2003년 제주대학에 임용되었습니다. 저는 유학생활동안1998년을 제외하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2004년을 제외하고는, 감사하게도 1996년부터 올해까지 계속해서 미국 코스타를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조원과 조장, 그리고 간사와 강사로 코스타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여정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충청북도 괴산의 샛골이라는 그 당시 16가구밖에 없었고 교회도 없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11살까지 그곳에서 자라면서, 외지에서 우리마을로 이사온 한 아주머니가 옆 마을에 있는 교회로 매일 십리 정도를 걸어서 새벽기도회를 다닌다는 얘기(그래서 미친사람 같다고 하는 부정적인 얘기)를 들었던 것이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대해 접했던 사실입니다. 5학년 때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가까이 살던 친척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고, 어느날 나를 교회에 데리고 갔는데 가는 날 이름을 적고 출석 체크를 해서 그 후로 계속해서 나가야 되는 줄 알고 계속 다니다 보니 아직까지 다니고 있지요^^. 중고등학교 시절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마냥 즐거웠던 기억들 뿐입니다. 탁구, 배구, 축구, 농구 등 다양한 운동과 성가대와 문학의 밤을 통해서 음악과 문학과 연극 등을 하면서 그 당시에는 거의 교회에서만 가능했었던 모든 예술 문화 활동을 교회 학생부 중심으로 접하며 누리며 즐길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주로 들었고, 수양회를 통해서 나름대로 신앙이 싹트고 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책을 읽었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 한 두번 성경책을 읽으려고 했다가 너무 어렵고 이해도 안 되어서 포기했던 기억만이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고2 겨울방학 동안에 교회에서 예수전도단의 영향을 받은 한 집사님이 제자훈련을 하셨고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한 성경공부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얄팍하게 쌓아왔던 신앙적 가치관으로 대학에 와서는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웠던, 파도처럼 몰려들어오는 사회부정과 부패와 독재와 광주항쟁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굉장히 많은 갈등을 하다가 88년 방위를 하면서 현대인의 성경을 사서 처음으로 개인적으로 성경을 통독하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때 읽던 성경을 통해서 내가 그때까지 설교를 통해서 들었던 말씀과는 사뭇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알수 있게 되었고, 지역교회에서 도무지 해결되지 않던 문제로 인해 괴로워 하다가 찾은 교회가 남서울 교회였습니다. 주일예배를 혼자서 몇 개월 다니다가 1999년 12월 31일에 청년부 겨울 수련회에 아는 사람 없이 처음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저는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와 평화를 경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1년 가을 어느날에 인격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2003년 여름 수련회를 통해서 ‘부흥’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내게는 나름대로 심각했었던 대학시절 이후부터 풀리지 않았던 문제의식에 대한 답을 얻으며, 하나님의 폭포수 같이 쏟아부어 주시는 은혜의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때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셨던 기도의 영은 10분 이상을 기도하지 못했던 제가 수련회 이후에1시간 이상씩 하나님 나라와 ‘부흥’에 대한 기도를 거의 매일 하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만드셨는데, 몇 일로 끝난 것이 아닌 몇년동안 지속되는 그러한 특별한 은혜의 수련회 였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에 미국 보스턴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또 다른 단계의 신앙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KOSTA를 알고 involve하게 되셨는지요?


코스타는 1990년부터 홍정길 목사님을 통해서 거의 매년 얘기를 들었었는데, 나와 상관이 없는 얘기인줄 알았다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인해 95년도에 유학을 오면서 많이 들어왔던 그래서 꼭 가보고 싶었던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계속해서 ‘부흥’에 대해서 기도하던 때였는데 마침 그 해의 주제가 ‘부흥의 불길을 온 땅위에’라는 주제였기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든걸 제쳐두고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4월 중순경에 등록을 했었는데 조장으로 섬겨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서 참으로 두려웠고 부족함을 많이 느껴 금식하며 준비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합니다. 그렇게 참석했던 코스타는 말로만 듣던 것 보다 훨씬 더 풍성했던,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풍성한 영적 잔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부흥의 역사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로 다할 수 없었던 은혜의 시간이었고 코스타 이후, 개인적으로는 닫혀 있었던 연구조교의 길이 열리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는 결과가 있었고, 교회적으로는 한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영적으로 회복을 경험했던 그런 한 해였습니다. 일년 뒤에 그 교회에서 코스타에 참석한 수가 50명이 훨씬 넘어 단일교회에서는 가장 많이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고 그 이후 코스타 보이스를 그 교회 사람들 중심으로 맡게 되는 그런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받고 보니 거의 매년 코스타를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는 한 코스타를 가보자는 생각으로 한해 한해 가다보니 유학생활 8년동안 98년 아내가 임신 초기라서 12시간을 운전해서 갈 수가 없었기에 한 해 빠진 것을 빼놓고는 계속해서 코스타를 가게 되었습니다. 99년 쌍둥이 딸아이들이 태어난지 4개월이 갖 지났을때 12시간을 운전해서 코스타를 2년만에 가니 얼마나 감격스러웠던지 시카고 근처까지 가니 그때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한 2년정도 조원으로 있다가 2001년부터 코스타 보이스에서 간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2004년을 빼 놓고는 계속해서 연구와 맞물려 코스타를 참석하게 해 주셨고, 2006년부터는 강사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계시는데 어떻게 세상의 교수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사시려고 하시는지요?


참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을 해 주셨는데요…. 제가 대학생때 주위에 크리스찬 교수님이 몇 분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은 학생들한테 친절은 하나 강의도 잘 못하고 실력도 없으셨던 분들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크리스찬임을 들어내지 않는 분들이셨던 기억이 있어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균형잡힌 크리스챤 교수가 되려면 마땅히 연구와 교육에 있어서 실력도 갖추고, 동시에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하며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주님의 향기가 퍼져 나가도록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는 말씀을 못 드리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 저의 삶에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는 제 자신이 스스로 평가할 단계는 아직 아닌것 같고, 시간이 지나면서 열매들이 열리는 것을 보면 조금씩 알게 되겠지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목표를 세상의 교수들과 다른 구별된 삶을 살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직업을 청지기적 삶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의면에서는 학생들이 잘 못 따라올때 학생들을 탓하기 보다는 제 자신의 전달 방법에 문제점이 있거나 제가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기 반성에 초점을 맞추어서 개선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절대로 혼자서 좋은 강의를 할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따라올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격려하고 동기 부여를 충분히 하는 것은 많은 경우 교수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제주대학교 해양대학은 상대적으로 기초실력이 매우 약한 학생들이 많은 편입니다. 이런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이 답답하고 학생들 탓을 하기가 쉬운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서 패배감에 젖기가 참 쉽습니다. 그럴때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서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한 기대와 계획이 있다는 생각으로, 나 같은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의 시각으로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보면서 그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바라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빠지는 유혹 중에 한 가지가 수업을 따라오는 학생들만을 바라보고 나머지 학생들은 포기를 하거나,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들을 무시하거나 비인격적으로 아무렇게나 대하고 싶어질 때가 많아집니다. 개인의 엄청난 실력차가 있음에도 주어진 시간에 진도를 고려하며 여러 그룹의 학생들을 만족하게 하는 강의를 하기가 정말로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과 상황을 고려하면서 최선을 다해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이끌어서 잘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하고 지혜를 구하고 또 학생들의 의견을 많이 들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에 최소한 3과목, 많게는 5 6 과목을 가르쳐야 될 때 특별히 그런 태도를 견지하기가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저는 가르칠 때 퀴즈를 보거나 숙제를 내 주고 시험을 비교적 자주 보는 편인데, 이것은 학생들이 제 강의를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각 학생들의 약한 부분이 어떤 점인지를 파악하기 좋습니다. 그런데 가르치는 과목이 많아지거나 과목당 학생수가 많아지면 이렇게 하기가 매우 어려워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과목을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서 한 두 과목을 집중적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퀴즈, 숙제, 시험을 소홀히 다루게 되면 아무래도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의 자료 준비 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만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제 강의를 잘 신청하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로 고민도 참 많습니다. 약간 얘기가 빗나가서 너무 장황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렇게 강의 하나만 보더라도 주어진 환경에서 청지기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점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거기에 연구와 학교행정에 있어서도 역시 비슷한 문제들이 늘 있는것 같습니다. 연구에 있어서는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시키기만 하는 교수가 되기 보다는 함께 해 나가고 제가 모범을 보이면서 지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 행정적인 문제도 제가 종으로서 섬기는 모습을 보이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인것 같습니다.


그외에 저는 매달 한영으로된 오늘의 양식과 교회에서 매달 나오는 소책자를 열심히 나눠주면서 학생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신앙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들이랑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성경공부도 하고 있고, 동료 교수들과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신앙서적을 함께 읽어나가며 함께 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크리스찬임이 들어나다보니 더욱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고 실력있는 교수가 되려고 노력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그런면에서 좋은 교수가 되는데 제가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이 훨씬 유익하게 작용되는것 같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로 인해서 좋은 교수가 될수 있겠지만요.


KOSTA에서 간사로서도 섬기셨고 이제 강사로 섬기시는데 간사의 눈으로 바라본 KOSTA와 강사의 눈으로 바라본 KOSTA의 부족한 면과 발전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질문이 점점 더 어려워 지는것 같습니다….제가 코스타의 발전 방향이나 부족한 면을 잘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제가 간사로 그리고 강사로 섬기면서 코스타에 대해서 느끼는 부분들을 좀 나누겠습니다.


간사였을때 저는 동료 간사들의 헌신과 열정 때문에 참 많은 도전과 위로를 받으면서 사역했었고, 그래서 그런 귀한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섬기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코스타를 통해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되고, 치유받고 변화받고 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하나님이 일하시는데 제가 조금이라도 사용된다는 사실에 감격하면서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이 생각은 강사로 섬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간사의 자리는 그야말로 무명으로 대부분이 육체적 노동을 동반해서 (쉽게 얘기하면 노가다를 필요로 하는^^) 보이지 않게 섬기는 자리인 것 같고, 강사는 유명으로 자기 강의 내용이 직접적으로 학생들의 사고와 결정과 상황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면에서 책임감이 따르고 그래서 두려운 자리인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코스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코스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보다는 코스타 이후에 개인적인 삶에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나 교회 혹은 그 지역에 어떤 변화가 있게 되었는지를 평가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두고 코스타가 평가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향력을 양적으로 혹은 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이 쉽지 않은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우리는 현재 진행형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코스타를 통해서 그런 선한 영향력을 미국 각 대학과 유학생 교회와 지역 교회 그리고 더 나아가서 한국의 교회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기대하고 매달리면서 매년 코스타를 준비해야되는것 같습니다.


코스타는 끊임없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 가장 귀한 것 같습니다.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느끼면 조금씩이라도 그 부족하거나 잘못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변화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살아있는 유기체같고 하나님과 호흡하며 변화하며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주어진 현실과 여건 속에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 한계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그 틀을 인정하면서 한꺼번에 전격적으로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한번에 조금씩이라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96년 이후에 느꼈던 변화내용을 얘기하자면, 일회성 집회였던 코스타에서 연중 코스타로, 시카고로 모이는 코스타에서 각 주와 도시와 캠퍼스로 흩어지는 코스타로, 선교 헌신으로 부르심을 확인한 이후에 계속되는 선교 훈련과 단기선교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 중심에서 한인 디아스포라 사역으로, 코스타 집회에서 코스타 ‘운동(movement)’으로, 학부생의 필요를 채우려는 코스타인 cKOSTA….


그런데 더 나아가서 대형집회 위주의 시카고 집회가 다양한 그룹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도록 세분화 될 필요성도 느낍니다. 가령 예를 들면, 전반적인 대형 집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동시에seeker그룹이거나 예수님을 갓 영접한 사람들을 따로 떼어서 한 트랙으로 분류해서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보다 더 깊이 다룰수 있는 소규모의 집회를 운영해 나가기도 하고, 신앙과 학문의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데 관심이 많은 기존의 크리스찬들의 모임을 트랙으로 구분해서 따로 모임을 갖게 하고, 이제는 유학생 이후에 미국에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필요성을 돌보고 비전을 나누고 제시하는 전문가 모임 등으로 세분화 되어서, 지금처럼 한번 코스타를 갔다가 오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아닌, 몇 년에 걸쳐서 필요에 따라 훈련을 받고 연구하고 힘을 얻고 하는 그런 코스타 모임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참석자들의 필요를 그렇게 분류해서 그룹핑하기도 쉽지 않고 제한된 장소나 간사와 강사들의 한계로 인해서 그리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점은 아직도 코스타에서 tmKOSTA가 활성화 되고 있지 않다는 점 같습니다. 학문과 신앙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모임이 너무 약해서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어도 쓸만한 자료도 쌓이지 않고 자꾸 일회적 모임으로 멈추는 것이 좀 안타까운 점입니다. 박사과정 혹은 박사를 받은 사람들이 학문을 크리스찬 신앙과 조화시키려는 노력과 결과들이 축적되는 그런 모임이 빨리 자리를 잡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KOSTAN선배로서 후배KOSTAN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 주시겠습니까?


코스탄이라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을 코스탄으로 이해해야 하는가가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번만 코스타에 참석을 해도 코스타 스피릿을 많이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몇 번을 참석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면에서 코스탄이란 말들은 많이 쓰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코스탄이라고 해야 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코스타를 참석했던 사람들을 통틀어서 코스탄이라고 한다면 저는 무엇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얘기는 미국에 있는 동안 가능하면 여러 번 코스타를 참석하기를 권합니다. 사실 코스타가 워낙 다양해서 한번만 참석하고 코스타를 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단지 참석만 여러 번 하지 말고 자원 봉사로도 섬기고, 조장으로 섬겨보기도 하고, 또 간사로 섬기기도 하면서 받은 은혜를 나누다보면 거기서 참 많은 것을 배울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천국까지 계속될 깊은 영적 동반자들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 같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코스타에서 받은 은혜들이 삶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가령 개인과 가정에서, 섬기는 교회에서, 그리고 자기가 속한 학과나 학교, 그리고 직장등에서 나눠지는 그런 저와 여러 코스탄들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조한상] 세상은 이해 못할 성경적 경제관

이코스타 2007년 11월호


“세상이 이해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여도 ”


2008 KOSTA/USA 컨퍼런스에서 거의 매일 부르다시피 했던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의 찬양 가사 중의 일부이다. 난 집회 기간 내내 이 가사를 묵상하다시피 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의 어떤 부분을 세상이 이해 못하고 조롱하고 있을까?’


예상보다 많이 길어진 유학생활을 마치고, 미국의 작은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바뀌게 된 몇가지 중에서 특징적인 한가지는,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되는 관심사의 변화다. 학생 시절에는, 각종 시험에 대한 이야기, 연구에 대한 이야기, 또 진로에 대한 염려가 주된 주제였다면, 졸업 이후에 듣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돈’에 관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조금 주춤한다고는 하지만, 한때 미국의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사고 파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마나 놀랬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는 사람들일찌라도 말이다. 지금은 이율이 낮으니까 집을 사기에 좋은 때라는 둥, 이 지역은 투자 가치가 있으니까 지금 사면 좋다는 둥… 아무튼 집을 사고 파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무슨 문제는 아니겠지만, 모인 사람들이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모두가 그 부동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1. 돈은 정말 가치 중립일까?


몇년전 한국 기독교 내에서 청부론-청빈론 논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 논쟁을 지켜보면서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던 고민이 바로 ‘크리스천이 진정 부자로 살 수 있는가’였고, 그 질문의 기저에는 ‘돈은 정말 가치 중립일까?’라는 좀 더 기본적인 의문이 있었다. 만일 돈 그 자체가 가치 중립이라면 깨끗하게 벌어서 깨끗하게 쓰는 크리스천 부자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겠고, 만일 중립적이지 못하다면 크리스천으로써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문제가 있을 테니까. 그 이후 성경공부를 통해서, 또 성경적인 경제관에 관한 책들을 통해서 현재까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세상의 제도나 시스템들과 마찬가지로 물질도 원래는 선하게 창조되었다. 하지만, 그 물질은 인간의 타락과 함께 타락했고, 또 그 물질은 구원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재물이라는 것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현재는 본래의 모습을 잃고 타락했을 뿐만 아니라 인격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재물에 대해 인격적인 신의 개념을 빌어 말씀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다시 말해, 재물이 그 원래의 속성, 즉 타락하기 전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면 크리스천이 부를 추구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재물이 철저히 타락했을 뿐 아니라,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속성까지 포함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부를 추구하는 것이 타당할까라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2. 내가 가진 경제관은 세상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 역사에는 가난을 신앙의 큰 덕목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가난하려고 노력하고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해 죄의식마저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는 어떤가? 현대를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 더욱이 미국이라는 경제대국에서 사는 우리들 가운데 ‘가난’을 미덕으로 삼고 추구하며 사는 크리스천을 찾아보기란 정말이지 너무 어렵지 않은가?


물론 가난하게 산다고 좋은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대의 미국이나 한국의 크리스찬을 향해 ‘왜 크리스천은 물질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나? 크리스천도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닐까?


사실, 진정한 문제는 현대 미국과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이 가진 물질에 대한 생각이 세상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 아닐까? 직장을 구하는 기준이 연봉을 비롯한 조건이다. 어떻게든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기뻐하고 집값이 떨어지면 절망한다. 그렇게 버는 것이 일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불로소득이며 그로 인해 세상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고도 소득을 얻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은 접어둔지 오래다. 투자한 주식으로 돈이 벌리면 기쁘고 떨어지면 절망한다. 근데 그것이 정말 바른 것일까에 대한 고민은 없다. 내 경제의 여유분 중에서 적당한 액수를 교회나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그리고 나중에 세금혜택을 받는다.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하듯이 말이다. 나름대로의 노후대책을 세운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는 말이다.


교회는 건물과 행사에 집중하는 상업주의 기독교의 전형이 된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작은 목회는 늘 실패한 것으로 간주왔다. 작은 회사는 늘 실패한 것이듯이…


도대체 세상은 우리의 무엇을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의 어떤 점을 조롱할까?


3. 나는 진정 누구를 의지하나?


최근 사무엘서를 읽으면서, 사울의 이야기가 계속 눈에 들어온다. 전쟁에 임하기 전, 칠일 후에 오겠다던 사무엘을 기다리가 결국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자신이 제사를 드렸던 사울. 이 사울은 정말로 하나님을 믿기는 한걸까? 사울 뿐 아니라, 구약에 나타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은 건 맞나? 사울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거부한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늘 애굽에서 자신들을 불러내 온 야훼 하나님을 믿었다. 또한 그 하나님의 심판을 믿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관련한 농사와 자식번성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는 바알을 의지했다. 하나님은 그런 일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믿었다고 해서, 일상 생활 속의 신을 따로 숭배하는 모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성경은 그런 모습을 우상숭배라고 정죄하며, 바람난 아내의 모습으로 비난한다. 분명 하나님이 있다고는 믿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무언가에 지배당하며 사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 걸까? 하나님을 세상의 창조자로 인정하며, 또 지금고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왕으로 인정하는데, 나의 미래는 내가 투자한 집과 주식, 그리고 저금통장에 의존하고 있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믿는 걸까?


4. 존재한다고 선은 아니다.


대학부 시절 기독교 윤리를 공부하면서 함께했던 형제 자매들과 자주했던 표현이 기억난다. ‘존재한다고 선은 아니다.’ 낙태가 행해지고 있다고 선한 것은 아니며, 전쟁이 존재한다고 선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우리가 착각하기 쉬운 것 중의 한가지가 있다면, 남들이 다 그렇게 하고 있고, 또 그 일이 딱히 위법이 아닌 경우에는 선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남들이 정당하게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또 그 돈을 집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늘려 나가고, 그리고 그렇게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 애쓰며 산다고 그것이 쉽게 선으로만 간주될 수 없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삶을 생각해 보자. 나의 삶을 하나님께만 의존하며, 가난한 자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며, 또한 형제 자매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 그래서 그럼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삶. 그래서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를 조롱하지만, 결코 돌아서지 않은 삶.


아주 솔직히 말하면, 이런 삶이 성경적이라고 깨닫고 나서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하는 그런 삶을 살아 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한걸음을 함께 할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함꼐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며,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시는 분을 따라 가면서…

기독교 세계관 – 손봉호 교수

본 기사는 2002 KOSTA/USA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주제로 강의한 손봉호 교수의 세미나를 eKOSTA 편집부에서 녹취한 것이다.


세계관이란 말을 자주 들어보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세계관은 분명한 개념이 있는게 아닙니다. 19세기 독일철학가들이 철학의 일부로 이야기한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 철학자 도이벨트라는 사람이 세계관 이야기를 조금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일반화된 신학적, 철학적 개념은 아닙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합시다. 월드컵에 대해서 온 사회가 열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은 모두 기독교인입니다. 뉴스앤조이라는 온라인 신문 인터뷰에 월드컵에 대해 비판을 했습니다. 월드컵이 너무 상업적이고 스포츠정신에 근본적으로 어긋난다. 혼자만의 생각인가 했었는데 기독교방송국에 방송할 일이 있어서 가보니 그곳 기자들이 상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MBC방송국에서도 월드컵에 대해 토론을 하는곳에 가서 한참 비판했더니 다음에 나오지 말라고 하더군요. 같은 사건에 대해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시각이 다르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입니다.


또 다른 예를 생각해보면 어느 장로님이 딸이 셋인데 음악을 잘했습니다. 장로纛?박정희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불러서 청와대에서 연주를 하라고 했습니다. 장로님은 기뻐서 이야기를 전했는데 딸들은 왜 가냐고 하는 거였습니다. 하나님이 최고라는 소리를 어려서부터 들었더니 대통령은 시시하게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에서 세계를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가지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월드컵을 보는 눈이나 권위에 대한 시각이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따로 따로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통일이 되어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경우에 일관성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문화마다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자연을 어떻게 보는가? 사회를 어떻게 보는가?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 신을 어떻게 보는가? 가치기준은 어디에 두는가? 이런 것은 모두 연관이 되어있고 이것을 세계관이란 이름으로 이야기합니다.


아직까지는 문화가 종교에 의해서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전세계 문화가 세속화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종교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신적인, 신비로운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문화를 분류하는데 기독교권, 이슬람권, 유교권, 불교권이라고 나눕니다. 그렇게 나누어 놓으면 상당한 현상이 설명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나눕니다. Huntington이란 사람이 문명의 충돌이란 책에서 종교를 중요한 결정요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종교적으로 문화를 분류하고 문화에 따라서 세계를 보는 눈이 다르다면 세계관은 종교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철학사상이나 이념같은 다른 것, 종교외적 요소가 세계관을 결정하는데 작용할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자연과학이 발달하면서 세계관이 많이 달라져 온 것을 보면 보고서도 알수 있구요. 그리고 앞으로는 그 정도가 심해 질 것으로 추측을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세계관이 기독교적 세계관과 다르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관성없게 신앙 생활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이라 하면서 기독교적으로 사회를 보고 인간을 보고 자연을 보고 우주를 보지 않고 불교적으로 본다면 문제가 될 겁니다. 불교가 세계를 보는 눈은 기독교와 다르니까요. 이런 것이 구체적인 가치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월드컵. 어떤 사람들은 월드컵이 우리나라에 큰 공헌을 미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한국만 잘되어서 좋아해야 하겠느냐면 기독교적인 올바른 세계관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16강에 가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기도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위해 기도를 할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세계관을 가지면 나라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애국은 다른 사람들의 애국과 달라야 합니다. 불쌍한 나라를 돕고 문화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우리나라가 훌륭하게 되는 것은 좋지만 다른 나라를 짓누르고도 애국을 부르짖는 다면 그것은 기독교 세계관에 어긋나는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주위에 휩쓸려서 가치관이 같아질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세계관이 무엇이고 우리는 어떠한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신학적 배경은 칼빈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화란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니오칼비니즘은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지 않은 영역은 하나도 없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을 월부터 토요일까지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고 주일날만 기독교인처럼 산다면 일관성있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집에도, 학교에도, 정치판에도 계시고 모든 것을 지배하신다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에 강대상에 신을 신고 올라가느냐, 벗고 올라가느냐에 대해 논쟁이 있었습니다. 저는 신을 신고 올라가자고 주장을 했습니다. 신을 벗고 올라가자는 사람들의 많은 생각은 출애굽기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라”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신을 벗으면 강대상위는 거룩하고 강대상 아래는 덜 거룩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 예배당 마당은 조금 덜 거룩하고 시장바닥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차라리 그 생각을 없애기 위해서 한곳을 거룩하게 해서는 안된다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특강할 때에 예배당은 거룩할 필요가 있느냐?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예배당은 예배 드리는 처소지 거룩할 필요가 없다. 들판도 두세사람이 모여 예배하면 거룩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이라 부르면 안된다. 왜냐하면 성전은 제사 드리는 곳이었고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실 때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누구나 이제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구든지 어느 곳에서나 제사 드릴 수 있기 때문에 성전은 없어졌다. 그렇게 특강을 했더니 노회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손봉호가 이단을 가르친다고 총회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올려야 할지 판단을 내려야 해서 박윤선 목사님께 여쭈어봤는데 손봉호 말이 맞다고 해서 이단이 안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계신다고 강조가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을 지어놓고 솔로몬이 기도한 것을 보면 천지를 지으신 분이 성전 안에 계시겠느냐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적인 가치판단, 행동구조가 성경과 일관성이 있으면 올바른 기독교인으로서의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문화를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 기준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게 정말 잘못 된거냐라고 반문이 들어오면 기독교 세계관은 모든 종교적 세계관중에 가장 옳기 때문에 이것을 따르지 않으면 손해보게 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드신 것은 이를 선전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힌두교에 과부를 화장시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같이 화장시켰습니다.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고 나서 보니까 힌두교전통을 많이 인정하려 했지만 이것만은 안된다고 금지시켰습니다. 네루수상도 안된다고 금지해왔는데 최근 인도의 지성 여인들이 그것이 영국의 법안이라고 바꾸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했답니다. 고유의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런 풍속이 과연 옳은가? 요새 다원주의라고 해서 모든 문화의 요소를 용인해야 한다. 관용이라는 것은 미덕이라 해서 받아 들어야 한다는데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기독교 세계관이 옳고 그렇게 되어야만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는 아직도 여자 할례가 있습니다. 케냐 박물관에도 할례에 사용되는 돌칼이 가장 많았습니다.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모릅니다. 이런 것들은 문화에서 독립 되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수용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누리고 가치를 누린다고 보기 때문에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럼 기독교 세계관을 결정하는 요건이 무엇인가? 다른 세계관과의 근본적인 차이는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고 나머지는 자연종교라는 것입니다. 자연종교는 사람의 경험과 지혜로 만든 종교(불교, 힌두교, 유교)이고 계시종교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기독교, 이슬람교). 키에르케고르라는 덴마크 철학자가 쓴 책 중 ”스승으로서의 예수와 스승으로서의 소크라테스”라는 문단에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모든 지식을 다 알고 있다고 전제하고 교육시킨다. 플라톤은 인간은 태어날 때에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지만 영혼이 육체를 입어서 다 잊어버린다. 교육을 통해서 잊었던 것을 다시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승이 자극을 하면 알게 된다고 하고 이런 교육방법을 산파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와 노예가 대화를 하는데 가르쳐주지는 않고 질문만 합니다. 가르쳐 주지 않고 질문으로 자극을 하니까 노예소년이 삼각형의 세각의 합은 두 직각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불교도 모든 사람들이 부처가 된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계속 돕니다만 고승들은 부처로 직행이 됩니다. 니체가 기독교는 천민종교라고 했습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이 구원 받는 것입니다. 스승으로서 예수는 제자가 완전무식해서 모두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집어 넣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찾을 능력이 없고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알려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임을 증거하라고 하면 성경이 말하기를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니까 그런다고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로마의 교구 터툴리안이라는 사람이 I believe because it is illogical. 논리적이지 않아서 믿는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삼위일체다 이거 아무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을 가치가 있다. 다 논리적이면 사람이 만들어 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 전도사님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생각이 내 생각이랑 똑같다고 좋아한다고 하는데 과연 하나님 생각이 한낱 사람의 생각과 똑같은 것인지…다른 예를 들어보면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쓰였는데 원본은 없고 사본만 남아있습니다. 사본과 사본을 대조해보면 대부분은 같지만 조금 다른 곳이 있을 때에 규칙이 하나 있는데 두 텍스트를 비교해서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 더 원본에 가깝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이기 때문에 설명 못하는게 더 많습니다. 어떤 것들은 그냥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입각한 세계관을 가지는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관을 결정짓는 것 중에 하나는 이 우주가 어떻게 생겼느냐? 에 관한 대답입니다. 원래 있었다 or 만들어졌다. 성경만이 무에서 유로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Bang theory 가 천문학에 있다고 하는데 전파가 계속 들리는데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포착했다는데 언젠가 우주가 폭발되어서 없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독교의 창조론과 너무 가깝다. 재미난 말 하나 중에는 과학자들이 연구를 열심히 해서 가니까 신학자들이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자연종교는 우주를 살아있는 생물체로 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물질입니다. 자연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됩니다. Generation vs fabrication. 생물학적으로 낳는 것을 generation이라 하고 손으로 만드는 것을 fabrication합니다. 기독교의 창조는 fabrication입니다. 고대사상들은 유기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교도, 불교도 그렇습니다.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 에 따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기독교에서의 인간관인 하나님의 형상을 지으심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칸트가 이야기하기를 인격이라는 말은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도 자유의지가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자유 의지란 원인없이 결정을 내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임회피 할 때에 안할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고 잘하면 자기가 했다고 하는데 자유 의지란 것은 원인 없이도 자기가 결정을 내리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람을 반박하기 위한 우화가 하나 있습니다. 당나귀가 있는데 두쪽에 풀이 있는데 질과 양이 똑같아서 오른쪽을 보니까 똑같아서 구지 먹어야 할 이유가 없고 왼쪽을 보니가 역시 먹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 양쪽을 보기만 하다가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결정론이란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고 합니다. 자유의지는 이유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그게 인격체이다. 어거스틴은 자유의지가 있고 그래야 책임을 질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인격의 존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못했을 때에 벌한다는 것은 그만큼 존재에 대해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에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했다고 했어도 잘못에 해당하는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적 인간관을 가져야 인권을 가지게 되고 인격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국제 보편인권선언이라는 것을 했는데 왜 인간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가? 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거기에 대한 근거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기 때문에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인간을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수단화하지 마라라고 했는데 역시 거기에 대한 근거도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연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역사학자 중 한명이 오늘날 환경오염의 문제는 기독교가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가 자연을 비신격화했다. 신성을 제거해 버려서 사람들이 자연을 착취해서 자연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인간의 욕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여기에 책임을 지려면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 기독교 실천운동은 정직과 절제를 강조합니다. 생활을 단순하게 해야 하고 에너지도 적게 쓰고 음식도 적게 먹어야 합니다. 에어콘도 덜 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물도 절약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인간이 본래 선한가? 에 대한 질문. 유교, 불교는 성선설을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성악설을 가르칩니다. 로마서 3장 이하에 인간의 죄악된 모습을 보면 무섭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스스로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누가 구해 주어야 합니까? 누군가 구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민주주의와 연결을 시키면 칼빈주의에서 장로교 제도가 나왔는데 장로교 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힘의 분산입니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이 나온 것입니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절대부패를 믿기 때문에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지 않고 인간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도 살펴보면 인간이 악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착하다고 보아서 필요한 것만 사용하고 능력만큼 일할 줄 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기주의입니다. 목사님들이 중요한 결정을 혼자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의 요건 중에 하나는 힘을 나누어 책임을 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집사로 교회에서 설교를 하니까 노회가 반대를 합니다. 그러자 교회가 노회에서 탈퇴하자고 하니까 제가 탈퇴하면 손봉호 교회가 되고 내가 잘못되면 완전히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우상화하지 않고 치명적인 부분을 드러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베드로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을 성경에서 볼수 있습니다.


기독교세계관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적 자연관, 인간관, 사회관이 가장 현실적이고 합당하며 사실을 잘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세계관을 의식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하게 되면 공동체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삶이 올바르게 될 뿐만 아니라 문화를 개혁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신학자가 Christ and culture라는 책에서 칼빈주의 문화관을Christ as the transformer of culture로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허무주의로 가고야 마는 물질주의, 쾌락주의, 상대주의를 대항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가 그대로 두면 망하게 됩니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논리는 재미있잖아요 입니다. 재미있는 것 계속 해보세요 재미가 있는가? 마약이나 성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때에 문화를 구원하기 위해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김정민] 한국 조카의 미국 첫 나들이

꼭 십 년만이다. 친정어머니, 언니, 그리고 조카와 함께 온 가족이 한 달 반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남편이 유학길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그래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내가 미국길에 오를 때 갓 태어나 두 주밖에 안 된 조카를 헤어지고서 가까이서 함께 생활을 해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힘겨울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다른 모습으로 자라왔다는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삶의 이런저런 모습 속에 배어 있는 가치기준이나, 어린이로서의 관심 영역, 어른을 대하는 태도, 세상을 바라보며 이해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자란 탓일까, 늘 경쟁의식 속에서 자란 탓일까, 아니면 유복한 환경에서 독자로 자라왔기 때문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정신없이 치고 들어오는 이 어린 조카를 파악하며 연구하는 데에 근 두어 주를 보내야 했다.


제일 먼저 부딪힌 어려움은 어른으로서 주의를 주는 것에 아주 불쾌해 하는 것이었다. 잘못을 바로잡아 주려는 조언에 대한 거부감이 아이를 통해 느껴질 때면 난감해지곤 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주의를 주며 지내왔어도 아이들을 통해서 그렇게 불손한 모습을 본 일이 없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순식간에 자신의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정서적인 급변이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듯하다가도, 아주 사소한 일로 쉽게 버럭 화를 내고, 우리 아이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아이를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 주님,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어려움이 오게 된 것일까요? 너무도 사랑스럽기만 해야할 조카를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함께 지내야 하는 것일까요? 밤마다 남편과 함께 아이의 천하무적같은 일과를 나누며 지나간 10년의 세월을 통해 접해온 환경의 차이를 절감해야만 했다. 더 어려운 점은 아들의 모난 부분을 받아들이는 엄마의 생각이었다. 30년 가까이를 함께 자라온 언니인데도 아이를 키우는 태도가 어떻게 이토록 다른 것인지, 한국의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을 기죽지 않게 키운다더니 정말 우리 언니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인 것인지, 이토록 서로가 너무 힘겨워 한다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님은 좋으신 분이시기에 우리 자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으며 어떻게 다듬어가야 할 지에 대해 지혜를 주셨다. 언니 입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 기준으로는 매사가 고쳐야할 투성이인 조카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름만 이모인 사람이 느닷없이 자신의 살아온 틀을 바꾸려고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으리란 생각에 미치자, 내가 또 다시 아이를 바르게 키우려는 강박관념 때문에 사랑을 느끼게 하지 못한 우를 범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를 인내하시고, 믿어주시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시켜주시며, 깊은 상처까지도 어루만져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시는데, 나는 환경과 말과 모든 것이 어설프기 만한 이곳 생활을 하는 조카가 빨리 다듬어지기 만을 조급하게 바랬던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무조건 틀리다는 것으로 간주되었었고, 어린 시절 다른 사람 손에서 자란 깊은 상처가 어떤 것인지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카를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언니와의 대화가 진지하게 이루어진 세째주가 되어서였다. 갓 태어나서부터 다른 사람 손에서 자라온 조카는 자기를 돌봐준 이러저러한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을 배워간 것 같았다. 엄마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자신이 살아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해 먼저 터득한 것은 아닌지… 정서적인 기복이 큰 것이나, 쉽게 놀라고 불쾌해 하는 것, 자동차에 대해 심하게 애정을 보이는 것, 자기에게 적용하는 기준과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판이하게 다른 것, 등등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아이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알아가면서 그 근본 원인를 깨닫게 되었고, 아이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 그럴수록 나는 그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하는 진짜 이모임을 알게 되었다.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어떻게 자라왔는지조차 몰랐던 무심한 이모가 이제야 제대로 조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황야의 무법자처럼 우리 집안을 휩쓸고 다니는 그 아이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안게 된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피해자로 바라보지 않고 이것도 가족이 되어가는 귀한 과정임을 주님께 고백하며 감사하게 되었다.


어느덧 일주일 후면 조카와 친정 가족들이 모두 한국으로 돌아간다. 여전히 삶의 곳곳에서 아이는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제는 이모가 야단치는 이모가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는 이모임을 알아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 또 언니도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가는 것을 보면서 더욱 감사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어린 나이에 억울한 상황을 수시로 부딪히면서도 조용히 견뎌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과 그런 모습을 함께 지켜보면서도 조카를 사랑해주는 남편을 나의 가족으로 허락하신 주님이 감사하다. 십 년을 떨어져 지낸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보다 삶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태도의 거리감이 더 큰 관문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낀 지난 시간들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