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일하는 여성 – 인터뷰

이코스타 2003년 10월호

이코스타: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엄마로써 일 혹은 공부를 함께 하시는 자매님들이 겪게 되 는 여러 가지 애환들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에 대해 이 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세요. (살고 계시는 지역, 직장, 학업, 가족 관계, 그리고 교회나 캠퍼스에서 하시고 있는 사 역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K 자매: Boston에 살고 있으며, 결혼한 지 6 년이 다 되어가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가 있습니다. Boston University 에서 Biomedical Engineering(의공학과) 박사과 정에 있습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는 Biomaterials (생체재료)와 Tissue engineering (생체조직공학)입니다. 지금 교회나 캠퍼스에서 특별히 공식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는 사역은 없습니다.

R 자매: 저는 Cambridge, MA 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Harvard 대학 전 산과 에서 포 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광통신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 는 남편과 16 개월이 좀 지난 딸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하 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알고자하 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학생과 직장인, 미혼과 아이가 있는 가정, 하나 님을 믿는 사 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희 모임 가운데서 하나 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분들이 생길 때가 제일 행복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부부가 이런 성경공부 모임에서 많이 배우고 자라고 섬김을 받았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섬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코스타:
가정을 갖고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혹은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힘든 일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가정, 일(또는 학업), (교회 또는 캠퍼스)사역 들 가운 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시는 기준은 어떤 것인 지요? 그리고 그 기준을 지켜 나 가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신 지요?

K 자매:
가정과 일(학업)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했던 것처럼 사역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로 미뤄두고 있습니다. 그저 삶 속 에서 자연스럽게 섬길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이와 제가 준비되고 (공식적 인) 사역을 적극적으로 할 시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신호를 주실 것 같습니다. 결 혼 전에는 가정이나 학업보다도 사역을 더 중요시하는, 조금은 이원론적인 경향 이 있었고, 가정에 매여서 교회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어른들께 반 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가정을 가져보니 가정을 잘 보살피고 아이 하나를 하나님 안에서 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사역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가정과 일이 충돌될 때에는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가정이나 일 어떤 것을 우선으로 할지 정합니다. 몇 가지 꼭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면, 학교 일이 아무리 바쁠 지라도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고 아이가 잠 들 때까진 함께 있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또 주말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합 니다. 매일 매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은 compromise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 려고 합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공식적) 사역이라는 걸 못 하고 있기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아주 큰 죄책감과 위기감을 때론 느끼기도 합 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러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 들은 시간관리와 체력관리입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 고 일이 많아 피곤한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개인 시간을 못 가지기에 스스로를 충분히 점검하고 정돈할 시간도 별로 없고, 남편과 깊은 대화 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항상 피곤한 몸 상태로, 계속 쏟아지는 일을 계속 해 나가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시간, 체력, 또 다른 resources의 한 계 속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가족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대하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족끼리 intimate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특별히 신경을 써서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R 자매:
가정, 일, 사역 가운데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라면, ‘하나님께서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일반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말일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이 모든 일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최선의 길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딸에게는 엄마가 곁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을 테고 남편에게 좀 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고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공부하게 하시고 일하게 하 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애의 각 순간마다 어쩌면 우 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이 문제가 오래된 기도제목입니다. 내년 7월이면 Harvard에서의 계약이 끝 나고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맞을지, 아이가 더 클 때까지는 일을 쉬는 것이 나을지 계속 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가정, 일, 사역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기준을 지켜나가는데 어려움 이라고 할 게 없겠네요.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 뜻을 구하고 우선순위 를 정하는 게 제게는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이코스타:
엄마로서 직업을 가지고 계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고 계신가요? 그 렇다면, 그 소명을 함께 나누어주실 수 있으신 지요? 언제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K 자매:
가정과 일을 동시에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 음과 같습니다. 우선 Os Guinness의 The Call에서처럼, 하나님의 소명이란 직업 등에 대한 calling보다는, 하나님 그 분을 향한 부름이 우선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분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장이 현재 제 상황 (가정과 학업) 이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바쁘 고 힘든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떤 때는 전혀 의미가 없 어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께 무조건적 순종을 배우기도 합니다. 자기 고집 을 피우는 아이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배웁니다. 두 번째로는 학문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학문의 주 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매순간 인정하면서 살고 싶다고 기도합니다. 또 저희 분 야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학문으로 온전히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께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쓰시는 학문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런 계획 속에서 제가 담당할 일이 있다면 그 것을 위해서 준비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 번 째로는 직장에서 하나님 과 사람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실험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 사실 잘 못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험실 내에서 각자 자기 project를 하는 가운데, 섬길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좀 더 적 극적으로 섬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임사역자가 되겠다 는 건 아니고, 지금껏 공부해 온 것들을 계속 연결해서 하면서 사람을 섬기는데 적 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진로 결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딸아이에게 좋은 role model이 되었으면 합니다. 딸아이가 일을 하게 될 지 전업 주부가 될지는 철저히 딸아이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서 결정될 일이지만, 지금 사회의 흐름으로 볼 때 딸아이 세대에는 대부분의 여성 이 직업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클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제 딸아이도 저와 같 은 고민을 가지고 살게 되겠지요. 그런 딸아이에게 제가 지금 삶으로서 모범을 보 여 줄 수 있으면 좋겠고, 나중에도 대화와 의논의 좋은 상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위와 같은 소명을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는 사건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를 막 낳고 대학원에 apply 했을 때 있었던 일인데, 하나님께서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가정과 학업을 다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한 1 년 반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있었던 기간이 있었 습니다.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GRE를 보고 원서 essay를 썼습니다. 아이를 낳고 application을 여러 학교에 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tissue engineering) 가 있는 학교가 보스턴에는 하나만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보스턴에 서는 한 학교만 apply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들에 apply 했었습니다. 몇 달 후, Admission 결과가 나왔는데, 보스턴에 있는 그 학교에선 reject가 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만 admission이 왔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아이를 데리고 먼 곳에 있는 대학원에 가야 할 지, 아니면 대학원 가는 걸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 와 다 함께 있어야 할 지,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랜 고민과 기도 그리고 남편 과의 의논 후에 선 결심은 가족이 흩어져서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 다고 일하길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고 보스턴에 있는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었습 니다. 이곳 저곳 알아보는 가운데 tissue engineering을 연구하는 교수가 지금 제 가 다니는 학교에 1 년 전 부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전에 apply할 학교 들에 대해서 알아봤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지요. Application deadline이 몇 달이 나 지났음은 물론이고 admission 발표까지 다 난 후였지만 application을 보냈습니 다. 얼마 후, 학교로부터 admission은 물론이고 Deans Fellowship이라는 장학금까 지 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함께 있으며 저도 제가 원하는 공 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철저한 간섭과 섬세하신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진로 결정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선 제게 가정도, 일도, 또 제가 공부하는 학문도 포기하지 않길 원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R 자매:
엄마로서 직업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반면에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에서 제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을 따라 자라가고 또 이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주시는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고민하면서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 중에 하나 가 아닐까 합니다.

이코스타:
특별히 일하는 여성으로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으 신 지요?

K 자매:
이기적으로 자기일 만을 챙기고, 자기를 내세우고, aggressive하고 competitive하 게 일을 추진해야 하는 work environment에서, Christian으로서의 섬기는 자세와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주변에 보면 가정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Christian 여성으로서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에서 고민하며 사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전 family-friendly working environment 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런 고민은 크게 겪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지도교수도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같은 실험실에, 지금 임신 중인 post doc도 있고, 같은 과에 얼마 전 아이를 낳은 다른 여자교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남자 researcher 는 아이를 데리고 실험실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 정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직장에서 가지게 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지역교회나 공동체에서 여자이기에 기대되는 일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구역예배 때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할 때, 아무래도 부담스 럽게 느껴졌었습니다. 아이가 어리고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 한 가지 일이 더 주어 지는 듯 해서, 섬길 수 있다는 기쁨보단 일의 부담감이 더 크기도 했습니다. 다른 가정은 거창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죄송함 등도 컸습 니다.

R 자매:
하나님께서 정말 내가 일하기를 바라시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 니다. 여성으로서, 아이와 남편에게 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일 터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의 형 제/자매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직장 일 에 쓸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보게 됩니다.

이코스타: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으로서 남편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K 자매:
저희 남편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큰 시험이 있을 경우, 공부에 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줬고, 집안 일도 잘 나눠서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집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시간이 적기에 이메일로 QT share도 하고 생각도 나누자고 initiate하기도 했구요.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정의 일을 나눠서 할 경우, 그것을 ‘아내의 일을 돕 는다’는 맘으로 하지 않고, ‘내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자세로 임해 주셨으면 좋겠 다는 겁니다.

R 자매:
남편이 영적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더 봐주고 집안 일을 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엄마로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K 자매:
장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출퇴근했기에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몸에 베이는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다른 분이 봐 주시고, 더 어릴 적부터 학교 생활을 시작 했기에,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하 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낯을 별로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도 금방 친해지는 편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독립적이고 부모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 아닙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제한되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듯 합니다. 가끔은 엄마를 어린 자기가 care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자기가 절 위로해 주기도 합니다. 엄마가 피곤해 하고 스트레스 받는 기색을 보일 때, 옆에서 계속 웃으면서 재잘재잘 거리면서, 엄마를 결국 웃기고 맙니다. 또 아빠 가 학회에 가서 없을 땐 자기가 아빠 흉내를 내서 엄마에게 힘을 주기도 합니다. 정말 딸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걸 매일매일 확인하게 됩 니다. 제가 딸아이와 함께 항상 있었다면, 딸아이를 양육하는데 제 생각과 제 고집 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텐데, 어린 시절부터 떼어놓으면서 저도 딸아이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 다. 제 딸이 세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큰 시험이 있어서 새벽 일찍 학 교를 가야 했는데,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깨서, ‘엄마, 학교 가지 마’라고 매달리 더군요. 아빠가 일어나서 안아줘도 다른 때완 달리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 마 학교 가야돼, 엄마가 큰 시험이 있어서 학교 가야돼’ 라고 꼭 안아주면서 이렇 게 저렇게 잘 설명해 줬더니,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군요. 그러고 잠시 후,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단호한 어조로, ‘엄마 학교 가세요. 학교 가 서 공부하세요,’ 라고 어른처럼 얘기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집을 떠나 학교를 향하면서 딸아이가 너무 기특하기도 하고 딸아이에게 너무 고맙더군요. 그와 동시 에 그 순간 제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반면에 단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는 장점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단점이기도 합니다. 함께 있을 때도, 아 이가 원하는 관심을 못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혹시 불만을 가지게 되 지는 않을까,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못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가 듭니다.

R 자매:
남편이 영적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더 봐주고 집안 일을 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여성학이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계기를 제시했습니다. 하 지만, 최근에는, 그 여성학이 “일하는 여성은 우월하고, 살림하는 여자는 열등하다” 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원론을 제공했다는 역풍 또한 맞고 있는데, 그로 인해 고민 을 하신 적이 있으신 지요?

K 자매:
있습니다. 일을 쉬는 동안 그런 사고방식에 많이 젖어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기에 가지는 열등감도 있었고 이러다가 영영 일을 다시는 못 하게 되지는 못 할까 하는 불안감도 크더군요. 하지만 전업 주부로 있었던 약 2 년 동안, 교회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전업 주 부들의 고충과 생활 속의 도전들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일하는 여성을 더 인정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전업 주부로서의 설움과, 일을 하기 원하심 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닿지 않고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고민 등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반대로 가정을 가지고, 일하는 Christian 여성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Christian 분들도 뵙습니다. 언젠가 자녀교육에 대한 기독교 서적을 보다가 아이가 있음에도 직장을 가지는 엄마들은 이기적이고 잘못되었다 라고 매도해서 말하는 부분을 보고 는 분노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여성이 전업주부를 하건, 직장을 가지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어떤 생활방식으로 살게 되건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걸 알고 순종하고, 또 그 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R 자매:
여성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생각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여성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월하고 열등한 지 결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차별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뜻을 구하고 주만 바라보며 산다면, 여성학에서 누굴 우월하게 생각하고 열등하게 생각하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k and R 자매님, 이렇게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두 자매님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 다.

[박수경] 일과 양육의 소명

이코스타 2003년 10월호

분주히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 예상치 못했던 딜레이가 생기고 어느덧 시계는 4시 30분을 막 지나가고 있다. 한번 분석프로그램을 돌려놓으면 밤새 분석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퇴근하기 전에 일을 마쳐 놓아야 내일 아침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마음이 급해지니 자꾸 에러가 나고, 눈으로는 프로그램을 읽고 있는데 머리로는 어디서 에러가 나는지 읽혀지지 않는다. 4시 40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퇴근을 한다. 어서 집에 가서 아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못 본 아기가 궁금하고 보고싶은 마음이 퇴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오늘도 일을 깔끔히 마무리 못해 이렇게 하루가 더 딜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무겁다. 다행히 마감 일이 임박한 일이 아니라 크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필요에 따라 늦게까지 시간조정을 하면서 할 일을 하던 productive한 연구생활은 이젠 더 이상 나의 얘기가 아니다.


아기를 낳고 일을 하면서 내게 가장 큰 변화는 내 자신이 아닌 존재를 위해 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것이다. 퇴근 후 아기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시간은 아기와 놀아주고,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일로 꽉 차 있고, 아기가 잠이 들고나면 남은 집안일, 출근준비, 뒷정리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직장에서 한아름 싸 가지고 오는 일감을 뒤로한 채 잠에 취해 버린다. 새벽에 깨어서 젖을 먹이기 때문에 이젠 제법 나눠 자는 것에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늘 피곤하다. 그러나 한 영혼을 키워 가는 이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을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성장해 가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대견해 하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에서 내가 조금씩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당히 제한된 나의 시간을 관리하는 일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는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들을 시간 내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오는 것 이외에도 곳곳에 나를 시험 들게 하는 요소들이 언제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4-5개월 안에 마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입사 지원서와 이력서를 작성하는 중에 연구 실적란을 채우면서 문득 지난 1년 남짓 연구실적이 너무 미비한 것이 거슬린다. 풍부한 연구실적이 좋은 직장을 guarantee한다는 사실에 나는 문득 불안해 진다. 내가 가고 싶은 직장에 지원서를 받아 놨지만 지원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 아무개가 좋은 직장을 얻어 귀국했다는 얘기가 생각이 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postdoc을 시작한 사람들의 금의환향하던 모습과 지원서를 들고 망설이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이유를 생각 해 본다. 지난 1년 남짓, 동기들이 학위 취득 후 한참 연구에 몰두하고 실적을 쌓는데 투자해야 할 시간에 나는 임신을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좀더 자자 좀더 쉬자 라며 휴식 해 왔고, 출산에, 출산휴가에, 복직 후에는 아기 돌보는 것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했으며, 복직 초기에는 집중력도 많이 떨어 졌었다. 그래.. 원인을 찾았다. 바로 아기 때문이야. 내가 working하면서 mom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내가 일에만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실적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기 갖는 시기를 조금만 늦췄어도 좋은 직장에 갈 준비가 되었을 텐데… 앞으로 직장에 가서 더 많은 실적을 쌓고 인정을 받으려면 지금처럼 정시에 퇴근해서 아기를 돌보면서 가능한 일일까?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마음이 복잡해진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이 생기고 여자라서 억울하다는 생각, 괜히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든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게 아닌데 싶다. 그러나 곰곰이 무엇이 본질인가를 잘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은 일하는 것과 아기를 돌보는 것을 병행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임신했을 때부터 육신의 약함을 핑계로 기도의 자리에, 말씀을 읽는 자리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적어졌고 출산이후에는 더더욱 영적으로 회복해야 할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일과 육아로 지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내지 못하는 데다가 주일 예배시간마저 유아 방에서 아기와 씨름하다 보니 하나님과의 교제가 많이 소원해 졌고 내 안에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직업을 찾으면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충성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세상이 세워놓은 성공의 잣대를 가지고 좋은 직장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들을 추구하고 있는 나의 내면이 보였던 것이다.


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무엇이 문제인가? 절대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얼마나 집중하여 일 하는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다. 정말 내가 일 하는 동안 최선을 다 하는가? 불필요한 web searching으로 버려지는 시간을 활용할 수 없었는가? 집중하지 못해 필요이상의 시간을 들여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 안에서 무엇엔가 화가 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인가 아니면 나와 같이 출발한, 그러나 벌써 저 만치 앞서 가고 있어 보이는 동료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오는 상대적인 불안감인가? 나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다.


한 생명을 낳고 지금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하는 이 아기가 스스로 생활 해 나갈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양육하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그래서 그 영혼이 또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양육하는 수고로움을 해산의 수고로움에 비유해도 될까?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보면서 내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자녀를 양육하는데는 해산의 수고 이상의 수고가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고로움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나의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심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담당하며 제한된 시간을 잘 분배하는 어려운 숙제를 푸는데 있어서, 또 언제든지 세상이 주는 가치관에 흔들려 일 핑계로, 육아핑계로 불평하거나 나를 합리화시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나에겐 가장 절실하다.

[차문희] 유학생들의 이야기

이코스타 2003년 9월호

한참 젊은 시절,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은 한번쯤 생각 해 볼 수 있는 유학의 길, 나름대로 현재 하고 있는 공부를 바탕으로 좀 더 밝은 자신의 인생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하여 꿈꾸게 되는 유학 생활, 그러나 남다르게 부푼 꿈을 가지고 금휘환향을 기대하며 오른 유학의 길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아닌 모습들을 실제적으로 많이 볼 수가 있다.



유학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큰 기대와 달리 현지에 오면 제일 큰 언어 문제와 문화의 차이로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고 특히 언어의 장애는 자신이 기대했던 학업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많은 실망감과 괴로움을 가져오고 있다. 또한 언어의 장애가 있다 보니 현지의 문화의 이해가 부족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워지며 결국은 기대했던 성공적인 유학 생활과는 달리 외로움과 고독함으로 가득한, 그리고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꿈과 목표가 사라져 계획성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학생들을 더러 볼 수가 잇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약 1년 전, 미국 조지아 주에 있는 K대학에 경영학 석사 공부를 하러 온 M군은 보조 장학금 (graduate Student assistant ship) 을 받을 정도로 자신이 학업과 TOFEL 실력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여 남다르게 야무진 꿈을 가지고 유학 길에 올랐다고 한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가능하면 박사 학위까지 얻어서 미국 회사에 취직하거나 아니면 한국에 가더라도 정말로 큰 기업에 취직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해야겠다는 비전을 갖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미국에 와서 한 두 달 지나다 보니 현실은 그가 생각한 것과는 반대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유학 생활, 아니 자신의 삶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째, 한국에서 대학 시절 그렇게 성적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TOFEL 또한 우수한 성적을 얻어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의 강의를 모두 알아듣기가 힘들었고 공부하는 방법 역시 다르며 언어의 부족으로 미국 학생들과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둘째, 지나친 성공 의욕과 출세의 욕심 때문에 매일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인생의 허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서 안정에 지장이 많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함 때문에 그는 신앙 생활을 시작해 보았으나 한국의 젊은이들의 문화에 익숙했던 지라 교회 생활 역시 정신적으로 그를 힘들게 만들었고 오히려 자신감을 잃어 지금은 그냥 학위만 받을 수만 있다면 감사할 뿐이라고 말을 한다.



역시 미국에 온지 2년 정도가 지난 P양은 한국에서 학부를 하다가 직장 생활을 몇 년 한 후 미국의 대학으로 편입을 하면서부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과 학생들 보다 나이가 많은 P양은 H군과는 달리 한국에서부터 신앙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왔기 때문에 교회에는 매 주 출석하며 교회 활동도 돕고 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보면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덧 한계가 있다는 사실과 좀 더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1-2년 정도 유학 준비를 하면서 미국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왔다고 이야기한다. 영어도 유창하게 잘 할 수 있고 공부도 많이 해서 한국에 금휘환향 할 것을 꿈꾸며 온 미국,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 유학 생활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유학 생활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미국에 와서 어느 정도 살면 언어 문제가 해결된다는 착각, 어려운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 전공도 제대로 정하지 못해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는 그만 두기 아까워서 하는, 할 수 없이 하는 유학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 결국, 자신이 어느 길로 어떤 목표를 갖고 전진하는지 불확실하고 그저 어떻게 하면 쉽게 끝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들만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부푼 꿈을 갖고 시작하는 유학 생활은 현실과는 늘 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되는가? 왜 학업에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은 유학을 꿈꾸게 되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성공 지향적인 생각들과 출세에 대한 욕심? 아니면 옛날과는 달리 유학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가야 하니까’ 하는 생각에서인가?



유학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거치는 하나의 절차로 볼 수가 있다. 우리들이 학문을 연구하여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띄고 최고가 되려는 이유는 우리들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 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공부를 하는 동안, qualifying exam, 논문, 지도 교수와의 갈등, 가정 문제, 고국에 대한 그리움 등등을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 들이 있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하신다. 그래서 학업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하는 과정 역시 우리의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1997년에 미국에 와서 현재 MIT Nuclear Engineering 에서 박사 과정 6년째를 보내고 있는 정태균 형제님은 유학 온 해에 청년부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그의 유학 생활에서 남 다른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유학 초기에는 별 어려움 없이 지냈으나 시간이 지나 면서 그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득점 취득에 치우쳐 있는 한국 학생들처럼 그 역시 유학 3번째 학기에 세 과목을 수강한 성적 중에 모두 A 학점을 받지 못해서 절망과 좌절했던 시간, 생각하지 못 했던 누나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그리고 지도 교수의 교체로 인한 불안과 초조한 갈등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기독 학생의 삶을 살고 있었던 정 형제는 힘든 순간에는 분주한 교회 일에서 무조건 벗어나려 했고, 혼자서만 하나님 앞에 앉으려 했으며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함 가운데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게 되어 당신의 무릎 위에 앉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고 한다.



99년에 처음 미국에 와서 Yale 대학원에서 환경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 MIT 의 도시계획학과 환경 정책 박사과정 4년 차 인 김동영 형제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졌다고 한다. 모든 유학생들이 함께 어려워하는 언어의 장애를 비롯해서 동반자로 F2 신분을 가진 아내의 미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결혼을 해서 왔기 때문에 고국에 대한 외로움과 고독함은 없었지만 미국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아내를 보는 모습이 더 자신을 힘들게 했고 그럴 때마다 기도를 통해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얻을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김 군은 “유학생활이야 말로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만약 제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 생활을 했으면 이만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적인 유학생활이 무엇인지 그 정의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오히려 성공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유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학의 여러 요소들이 하나님을 찾게 하지만, 유학이라는 다른 부분들이 자기 자신을 더욱 부각시키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도록 만들기도 하지요. 즉 자기 자아가 너무 강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공부에서 매순간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 뜻을 찾아나가는 길이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내 자신이 항상 성령에 충만하다면 그 뜻을 모를 수 가 없겠지요”



정 형제와 김 형제 모두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두 형제 모두 하나님을 신뢰했고 유학 생활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학교들이 개강을 했고 많은 학생들이 다시 학업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늘 힘들고 고독한 유학 생활을 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준비하는 유학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이정희] 유학, 그 새로운 길을 시작하며

이코스타 2003년 9월호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 새로운 길 중에서


유학을 위하여 타국에 발을 딛은 지 일 주년 되는 날이 며칠 지났는데, 나에게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감회를 적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유학 생활 1년차 라는 것은 아직 시작조차하지 못한 단계인가 보다. 하긴 뒤돌아보면 365일이라는 날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도 안 나고, 그 동안 내가 한국에서 기대했던 어떤 성장이 구체적으로 있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유학생활의 본류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시간을 앞둔 지금, 지난 1년의 시간이 미국에 오기 1년 전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불연속적인 시간은 아니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야 하는 새로운 길은 항상 새로우므로 매 순간이 다르지만 동시에 이어진 한 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딛은 발걸음은 항상 위기와 변화의 파고를 지닌 항해였지만, 궁극적인 구원을 향한 여정이듯이, 나의 짧은 삶의 여정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주어진 천로를 향한 여정임을 믿는다. 그들이 가끔 뒤돌아보며 지나온 길에서 배운 하늘의 교훈을 상기하듯이, 나에게도 지나온 과거는 창신(創新)을 위한 하늘의 보고이기도 하다. 숙제처럼 주어진 글 쓰기의 고역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변한다.


유학 준비 과정


나는 솔직히 내가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공부의 길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이 길이 바로 나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기보다는 배우는 기쁨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크게 느끼고 한편 다른 일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야를 한 두 가지로 좁혀 갔다고 할까.

오히려 소명에 대한 확신은 유학 준비 단계를 거치면서 얻은 것 같다. 비행기표만 끊고, 가면 되는 유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것이고, 대학 입시에 버금가는 긴장의 연속인 유학준비과정에서 비록 실패의 불안감으로 바짝 긴장한 상태였지만, 천자문 외우듯이 단어 하나하나 외우고, 독해지문 읽어보면서 갖고 있던 지식의 양을 검토해볼 수 있었고, 추천장, 학업 계획서를 준비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학문적 비전을 확인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었다.

‘이 상태로 어드미션 프로젝트(admission project)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이 길이 정말 소명의 길이라면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하나 추진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될 텐데, 답장을 기다리며 메일 보내고, 편지 보낸 피 말린 긴장의 시간도 인내와 믿음을 단련한 시간이었다.


이 때 나에게 주어진 두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첫째가 Gre 집단 치팅(Cheating)이었고, 둘째가 학교 선정 문제였다. Gre 문제가 유출되어서 인터넷에 떠돌 때 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무지 어려운 윤리적 결단을 해야 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로 걱정하고 속상해 했었고 사실 불이익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느낀다. 이 일 이후 한국, 중국, 대만, 홍콩에서는 컴퓨터 시험이 더 시행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두 번째는 서너 학교의 어드미션을 받은 후 입학할 학교를 정하는 일이었다. 더 낮은 재정지원의 더 나아 보이는 학교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더 나아 보인다는 것이 기껏해야 불명확 기준에 의한 소위 랭킹에서 더 높다는 것인데…-에서 숨어 있던 가치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결정에서 내가 잘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 상태에 여러 가지 이유로 만족하고 있긴 하다.


새내기 유학생의 경험


공부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을 모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가지 써 있는 종이쪽지를 모으고, 서지를 모으고,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모으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처음 미국인들과의 수업에 참석하면서 무조건 모은다고 생각했다. 잔뜩 긴장해서 한 마디 한 마디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물리적으로 머리가 아플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작업이 무의미하고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서서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교수님들이 한국 대학원을 경시하는 것이 부당한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제외한다면 공부 자체는 한국에서 해도 개인적 역량만 된다면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잖은 실망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한 양질의 지식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었다. 관점을 바꾸어 내가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라는 측면보다 창조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방법,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대학 교육 시스템, 연구자와 실무자와의 분업 체제 등을 배워야 함을 알게 되었다. 적절한 검증과 지원을 통해서 활동적인 연구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시스템이 여기는 있고 한국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영어는 처음에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주문할 때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아직도 말실수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자 교수님께 써(sir)라고 한다든지 조동사 뒤에 과거형을 쓰는 것 등은 귀여운 편에 속한다.


아직도 감이 안 잡히긴 하지만 잠정적인 결론은 영어를 새로운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로, 이 사회를 유지하는 문화의 총체로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로만이 아닌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충분히 읽고 다양한 생각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에 약간 위안이 된다.


첫 학기에 있었던 비교정치 세미나 시간에 말은 거의 못했지만 세 번에 걸친 리서치 페이퍼 발표에 열심히 노력해 의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일은 실망과 좌절감으로 처져있던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교수님들이 견지하는 창조적인 가설과 논증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언어는 세계를 창조적으로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학생들과의 교제도 새로운 즐거움의 하나였다. 영어도 잘 못하는 외국학생을 동료로 잘 받아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있다. 통계 문제 몇 가지 가르쳐주니까 매우 좋아한다.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덕을 좀 봤다.


배우고 확신한 일


유학을 준비하고 워밍업을 한 1년 반의 과정에서 배운 삶의 교훈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생활이 특수한 상황인 것도 확실하지만 하나님과 가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인생의 다른 시점과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을 살아갈 때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가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생활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으로 ‘정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Gre같은 시험에서도 그렇지만 한국, 중국 학생들의 부정직한 태도는 미국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이 생각해낸 듯이 복사해서 붙이다가 표절로 정학 내지 휴학 당한 학생들이 주변 학교에 매 학기마다 있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고, 누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자주 들지만 바른 일을 바르게 해야겠다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아야겠다.


유학생활의 친한 친구인 외로움은 나에게 그 동안 부족했던 침묵의 기도(prayerful silence)와 피정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겸손과 온유가 외로운 기도의 시간에 자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새로운 길, 당신과 가는 길에 대한 기대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중에서


인생은 답사기와 같다고 누군가 말한다. 한 곳에서 하나를 배우고 또 다른 곳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유학이라는 삶의 답사를 위해 이곳까지 온 나의 이 길이 당신과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리고 학문이 공부를 담은 삶이라면 그 삶도 길일 것이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미지의 앞을 향하여 하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유학 생활의 본류에 들어선 지금 앞으로 또 많은 굴곡과 좌절이 있을 것 같다. 코스웍을 마치면 봐야 할 논문자격시험, 프로포잘에 논문 완성까지 고된 일상과 불안한 내면이 불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즐거이 가고 싶다.


유학이라는 나의 길이 하나님과의 사귐의 여정이라면 좋을 것 같다. 외로움과 침묵의 시간이 성숙의 방편이라면 더욱 좋겠다. 무지에 대한 좌절감이 겸손을 만들면 좋겠다. 수고하여 얻은 지식으로 정직이라는 윤리가 몸에 깊이 배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길 바란다. ‘그분과 나’에서 ‘당신과 나’ 관계로 바뀌는 친밀한 사귐이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길에서 답사기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노력에 달린 것 같다. 감상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게 묵묵히 가련다. 당신과 함께.

[반영운] 균형잡힌 유학 생활을 위하여

이코스타 2003년 9월호

글을 시작하며


해마다 이맘 때 즈음이면 많은 유학 새내기들이 저마다 가슴에 나름대로의 꿈을 품고 각 나라로 흩어져 간다. 대부분 각자의 전공을 좀 더 갈고 닦아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이리라. 게다가 크리스천 학도들에게 있어서 유학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유학을 통해 세상의 견문을 넓히고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도 10여 년 전에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났던 경험이 있다. 유학생활 동안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며 학문과 인생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필자의 부족한 경험을 통해 유학 새내기들이 혹시라도 필자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좀 더 나은 길을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기독교인의 영적인 생활


당시 속칭 열성적인 (?) 크리스천으로서 필자에게는 어떻게 하면 유학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것은 다분히 교회생활과 전도를 염두에 둔 영적인 생활과 관계된 것이었다. 유학을 떠날 때 가졌던 신앙과 학문의 조화라는 화두가 내면에서 정리되기 전에 다시 한국에서 익숙해져 있었던 신앙생활의 습관과 함께 유학생활에 들어서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생활이 어쩌면 필자에게 필연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영성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각자의 세계관이 허락하는 범주 내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설령 세계관이 제대로 정립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세계관이 제대로 소화되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히 이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영적인 생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신 교회 내에서 좀 열성 있는 그리스도인에게‘’’‘영적이다’ 는 말은 대부분 세상일에 신경을 덜 쓰고 교회 생활에 열심을 내며 전도하고 기도하고 명상하는 어떤 것이라고 이해되곤 한다. 세상을 이해할 때 다분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품게 만들고 마치 벗어버려야 할 어떤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거인 성경은 우리가 생활하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려져 있는 세상에 대해 결코 부정적이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하시고 그 사랑하신 정도가 자신의 외아들을 주실 만큼이라고 한다 (요 3:16).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그의 공생애 전 삼십 여 년을 목수의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고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일을 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많은 신앙의 선배들도 세상에서 필요한 일을 열심히 성실히 했었던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괴리가 생겨난 것일까? 그것은 다분히 성경 적이지 않은 이교 적인 사고가 우리의 사고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 교회 시절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영지주의를 비롯한 희랍철학 등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바로 그것이다. 육체적인 일들을 세상 적인 것이라고 하고 정신적인 것들을 영적인 것이라고 하는 사고에서 생겨난 이교 적인 것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직업에도 선호가 분명하게 생겨났다. 학자, 성직자, 관리자 등 육체적인 일과 거리가 먼 직업을 더 영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직업들에는 보다 많은 부와 명예가 따르도록 세상의 구조가 짜여져 버린 데 있다. 따라서 이분법적인 영성이해는 성서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교묘하게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켜 주는 이교 적인 것이며 우리가 만들어 낸 무서운 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이 부정하는 세상은 바로 죄 그 자체인 우리의 교만과 욕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세상의 자랑 등에서 생겨나는 산물들이다. 성경에서는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그 역할은 오직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의 기쁨과 천국의 소망으로만 이루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으로 하나님이 지으시고 좋았더라고 하셨던 세상이 얼마나 중요하면 이러한 역할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흔히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영적이라고 하면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며 구제를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전도에 총력을 기울이는 행위 그 자체가 영적이거나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에서 경고하시는 대로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를 하고 구제를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마도 그것이 죄가 되거나 교만으로 연결되기 때문은 아닐까? 참으로 영적인 것은 성경을 읽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한 뜻을 분명히 하여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뜻대로 변해가도록 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해 가며 날마다 회개의 걸음걸이를 연습하고 다시 한 번 순종을 각오해야만 한다. 흔히 우리가 훈련되어 온 틀에 박힌 전도의 행위를 통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의 백성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자신을 감동시키시고 그러한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서 세상 속에서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찾아가는 적극적인 전도를 통해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흔히 세상에서 말하는 실패도 성공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극한 정성으로 다루시며 당신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가 있을 뿐이다.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해 내려는 노력을 함에 앞서서 삶의 여정을 통한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해 보고 그 속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을 느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치우치지 않는 걸음걸이가 중요하다.


학문, 영적인 예배


그렇다면 유학생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 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유학생이라고 하여 일반 그리스도인보다 특별히 중요한 다른 삶이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유학생들에게는 좀 다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유학을 통해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칫 위에서 지적한 치우친 세계관에 의해 성과 속에 대한 그릇된 구분으로 인해 섣불리 열정적인 종교생활에 휩싸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있어서 종교에 열심을 내게 될 때 그 종교는 한 사람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종교가 바르고 치우치지 않는 가르침을 제공하면 좋으나 많은 종교가 의식에 빠지고 종교행위에 그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성경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해지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라는 영역일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배는 교회당에서 성직자에 의한 일정한 의식을 행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심지어는 더 이상은 피 흘리는 제사가 필요 없게 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인 현재에도 제사로서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그러한 현상은 바로 목사를 성직자로 그리고 신약의 레위 족속으로 이해하고 있는 데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목사를 레위 지파로 이해하는 것은 다분히 우리의 예배가 구약 적인 의미의 특정한 제사장을 중심으로만 드려지는 중요한 의식임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대 교회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던 속칭 평신도 (성경 적인 용어가 아님)의 세례문제나 설교문제가 현대에 와서는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현대 교회의 예배가 의식 중심의 중세교회의 전통을 벗는 표시로서 설교중심으로 변모하면서 전문적인 설교가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형식적인 예배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원받은 백성에게 있어서 진정한 예배란 무엇일까? 로마서 12장 초반부와 성경전체가 말하는 참 예배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는 일상의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예배가 종교적인 의식의 집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상식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즉 우리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성심으로 드려야 할 예배가 아니라면 우리 주류 기독교는 어느 새 한쪽으로 치우친 이단종파의 하나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 유학생들이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해외로 나가 공부하는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유학을 통해서만 학문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명시해 둔다). 요즘 우리가 하는 학문의 영역과 그 내용을 보면 우리 인간의 삶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래된 학문부터 신흥학문까지 모두 다 인간의 정신부터 실제적인 삶의 대부분을 다루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학문은 단지 세상에서 일정한 삶의 수준을 유지하고 흔히 말하는 거룩한 일인 전도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해 내야 할 바로 그 현장이다. 죄에 빠져있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이 친히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모델이 구약 적인 의미에서 최상의 예배였다면, 이제 예수께서 드리신 제사와 예배의 본을 따라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고난과 눈물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가 하고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문을 함에 있어서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기준과 방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학문은 일정한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근거한 가정과 그 가정을 입증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시작은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입각한 질문에 기반을 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일반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심각하게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의 근거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정리하고 우리 행위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세계관으로 하는 일련의 학문행위를 통해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세상 속에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영역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자 정체성이 아닐까?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 전문가 되기


필자는 아직도 스스로 질문해 볼 때 균형 있는 그리스도인 전문가가 된 것 같지 않아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난감함을 느끼곤 한다. 돌이켜 보건대 이렇게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늦게나마 깨닫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필자는 후배들에게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무력함과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과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많은 것을 얻었음이 분명하다. 필자의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인 전문가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생각해 보고 싶다.


첫째는 개인 성경공부 이다. 그리스도인은 성경공부를 통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 인간의 현주소와 책임을 분명히 알아낼 수 있다. 물론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알 수도 있으나 성경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나라의 성공과 실패의 역사를 아우르면서 전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백성들이 유일하게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분명히 보여주고, 구원받은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치우치지 않는 학문의 연구를 통해 각 분야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밝혀내려면 심도 깊은 개인 성경공부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노력이나 열심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구원을 얻은 존재들임을 분명하게 증명해 주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생각과 행동의 준거가 되는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혹 우리는 깊이 있는 성경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무언가 모를 벽을 느끼곤 한다. 예를 들어 성경공부를 제사 드리는 행위로 이해하여 특별히 교육받은 몇몇이 해야한다는 이해는 아주 무서운 생각이다. 즉 성직자들만이 해야할 것이라고 치부하거나 조금 양보해서 그들이 공부한 것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성경을 많이 공부한 사람들에게 성경을 배우는 것이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인정하지만, 어쩐지 우리에게는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의 거의 대부분이 성직자 (목사, 신부 등)들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주위에 성경공부를 꽤나 하는 성도들이 있으면 목회자가 되거나 목회자가 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이는 성경공부 자체를 신성시하며 일반 성도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려는 교묘한 사탄의 전략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이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만인제사장의 정신과도 많이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균형 잡힌 시간 관리이다. 필자는 일반적으로 비슷한 분야의 다른 사람들 보다 학위를 좀 늦게 마친 편이다. 물론 논문을 빨리 써서 졸업하는 것이 균형 있는 전문가가 되었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면을 고려해 볼 때, 필자에게 있어서 늦은 졸업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써야할 시간을 제대로 할애하지 못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이렇데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들라면 시간관리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간 사용의 우선순위 설정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유학을 떠날 때 먹었던 마음과는 달리 유학초기부터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교회생활에 대단한 열심을 내게 되었다. 한 문제가 생기면 다른 것은 돌아보지 않고 그 문제에 매달려서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성격과 맞물리면서, 그리고 열심 있는 젊은 형제를 신앙이 좋다고 칭찬하는 교회의 분위기에 휩싸이면서 균형을 잃었던 것 같다. 코스웍을 마치고 나서 조금은 자유로웠던 상당한 시간을 전공공부에 투자하기보다는 청년회를 포함한 교회봉사와 성경공부, 당시 생활비의 일부를 지원 받았던 한글학교와 아르바이트에 썼다. 그리고 논문을 시작할 즈음에 시작된 이성교제는 또 한 차례 필자의 연약함을 절실히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조금 늦게 졸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러나 졸업 후에 직장을 구해야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부딪치면서 균형 잡힌 전문가가 되지 못한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경험을 통해 한 가지 생각되는 것은 바로 시간의 우선순위를 성경 적으로 그리고 이성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필자처럼 일명 종교적인 영역에 지나치게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을 조절하여서 전공공부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면 한다. 그러나 반대로 지나치게 전공 공부에만 시간을 투자하게 되면 방향성을 상실하게 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건전한 양심이 무뎌져서 균형 잡힌 질문을 잃게되고 하나님의 원리와 반대되는 편에서 열심히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이론만을 연구하거나 실험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시간을 투자하면 좋을 것 같다. 시간 나는 대로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 나가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 가족이나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미국 일주 여행을 실행해 보는 것도 유학 생활 동안 누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실제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연습을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즉 한달, 육 개월, 일년, 이년, 오 년, 십 년, 십 오 년, 이십 년 이상의 계획을 기도하면서 짜고 그에 맞는 시간표를 작성해 보았으면 한다. 혼자서도 좋고 신앙생활을 함께 하는 친구들과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시간표를 짜다보면 시간이 많이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 번 짠 시간표에 연연해하지 말고 수시로 점검하여 현실에 맞게 시간표를 수정해 가도 좋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하루 시간을 계획할 때 15분 단위나 30분 단위로 시간을 끊어서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기도와 함께 내일 시간표를 짜고 잠자리에 들면 다음 날 허둥대지 않고 차분히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우찌무라 간조는 그의 좌우명의 하나로 일일일생 (一日一生) 즉 하루를 일평생으로 여길 만큼 긴장감 있게 하루를 대했다고 한다.


셋째로 좋은 이웃 관계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 신앙을 키워가고 가꾸어 가는 것은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어갈 때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학문도 신앙 실천의 영역으로 생각할 때 개인적인 영역이라고만 하기에는 어색한 면이 많다. 자고로 좋은 생각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생겨난다. 학문도 좋은 이웃이 많이 있을 때 질문이 건전해 지고 문제를 분석하는 면이나 해결하는 면에서 균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좋은 이웃관계를 그리스도인 학자 그룹 안에서 만들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리스도인인 아닌 학자나 전문가들과의 관계를 무시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논의와 토론의 장을 넓혀서 생각해야한다. 그러한 토론의 장으로 인해 학문과 전공의 네트워크 (이웃관계)가 형성되고 장차 그 관계가 발전하여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전공분야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서 계속적인 토론을 하고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학생활을 하는 동안 주위의 몇몇 형제 자매들과 (결혼한 가정을 포함하여)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서 참 교회의 모습을 체험해 보길 권한다. 유학생활은 많이 외롭고 지치고 힘든 과정이기에 서로 돕고 위로하고 권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 보듬고 끌어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한 사랑이 생겨나게 된다. 필자의 작은 경험이긴 하지만 필라델피아에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작은 밥상공동체는 필자가 어려운 과정을 이겨나가는 데에 큰 힘이 되었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식구들에게도?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학교에 있을 때 학문적인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한 것이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 (교회친구, 학교친구, 주위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이웃들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넷째로 건강한 경제생활이다. 필자의 유학 생활 중에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경제생활을 혼자 해결하는 것이었다. 처음 일년 여의 학비를 지원 받는 조건으로 택한 유학생활은 생활비와 학비를 해결하는 데에 많은 비중을 두게 되었다. 전공이 사회과학 분야이고 사양학문이라서 공부하는 중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학교 아르바이트와 기타 조교 및 강사 생활 등을 통해 경제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부에 신경을 쓰기가 힘들 때도 있었다. 모두 시간관리가 잘못 되었던 때문이지만?학교에서 강사를 하기 전까지 약 4년 동안은 아주 힘든 기간이었다. 유학 초기부터 경제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무조건 선택한 유학으로 인해 빚어진 어려움이었다. 어려웠지만 경제생활에 있어서는 그래도 빚을 지지 않고 그런 대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한 사람에게도 임했기 때문인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그리고 어려운 경제생활을 무난히 넘긴 이유를 필자 편에서 한 가지 찾자면 바로 가능한 생활비용을 줄이고 예산을 초과해서 생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드 빚을 쓰지 않고 예산의 범위에서 생활규모를 정하는 것은 백 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문화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유학생활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모든 의욕을 상실하게 결국 유학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기 때문에 백 번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혹시 석사를 마치고 박사를 지원하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경우, 이러한 경제적인 면을 잘 고려하여 학교를 선택하길 바라고 싶다.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필자의 부족한 유학생활을 통해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 전문가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면을 살펴보았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중심으로 세계관을 정립하여 건강한 생활을 누려야 한다. 학문의 영역에서 참 예배를 드리기로 결심한 그리스도인 유학생들에게는 무엇보다 균형 잡힌 세계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심도 깊게 연구해야 하며 성경을 통해 가치관이 정립되고 다른 학문적인 질문들이 성경 적인 세계관으로 소화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각자의 학문적인 영역도 전문적인 수준에 도달해야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고, 성경에 정통하게 될 때 그에 대한 균형 잡힌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분야이거나 자연과학 분야이거나 사회과학 분야이거나 공학 분야이거나 예술 분야이거나 기타 실용학문이거나 할 것 없이 성경에 기반을 둘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질문과 대답의 준거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인제사장의 정신을 학문 세계에 구현하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각 전공분야에 실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실제적으로 균형 잡힌 시간관리와 경제생활로 장차 직업의 현장에 들어 갈 때를 대비한 훈련은 물론, 유학생활 자체를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는 늘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 해하는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하곤 한다. 힘든 유학생활을 통해 그 하나님의 은혜를 맘껏 경험하여서 평생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학문의 세계와 직업의 현장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담당해 가길 기도한다.

[황지성] 요셉이 가정 이야기 그리고 그 후기

2003년 7월 12일에쓴 간증서신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 그리고 요셉이 가정에 대한 사랑에 감사드리며

미국 코스타 황지성 간사가 존경하는 믿음의 동역자님들과 선배님들께 올리는 감사의 편지.

코스타집회를 통하여 많은 헌신과 수고로 함께 해주셨고 요셉이 가정,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의 가정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기도해 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신 여러 믿음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서신을 올리면서도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지난
일년동안 코스타를 섬기는 간사님들 가정가운데 두 가정이 사랑하는 자녀들을 천국으로 보내야 하셨던 일에 대하여 또 캔사스에서
코스타에 등록했던 한 자매가 교통사고로 소천한 사건에 저 자신 마음을 다해 같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저 자신 사랑으로
그 어려움들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제 마음가운데 있음을 고백합니다.

구자신 형제님 가정에 사고가 난 후 벌써 두 주가
지났지만 몇 개월이 지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매우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큰 그림의 조그만
퍼즐조각들이 맞추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 엄청난 고통가운데에서도 세상속의
그리스도인의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신 구자신 형제님의 믿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깊은 감동이 있어서 이렇게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속에서 구 자신형제님 가족은 이제
영육간에 빠르게 회복되어가고 있습니다. 황윤희 자매 (요셉이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글로 자기 의사표현을 할 정도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아직은 몇주동안 더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7월 15일 화요일 12시에 구자신 형제와 황윤희 자매그리고
둘째 아이 송아는 인디아나 Elkhart General Hospital에서 Washington DC의 George
Washington University Hospital로 옮겨질 것입니다.

이제 그 주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하여 간단한 보고를 드립니다.

6월 30일 월요일

사고는 6월 30일 월요일 정오경에 Indiana
Toll Road에 일차선으로 주행하던 자동차에는 운전하시던 황윤희자매, 앞자리에 구자신 형제, 뒷자리에는 본겸이 (14살)
요셉이 (5살) 그리고 세번째, 맨 뒷자리에는 송아(8살) 그렇게 타고 있었습니다. 코스타 장소로부터 거리가 약 3시간 정도
떨어져있어 긴장이 약간은 풀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92번 Exit근처에서 2차선으로 달리던 트레일러 한 대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어 일차선으로 들어왔답니다. 그리고 윤희자매는 급히 핸들을 중앙선 쪽으로 틀고 그 순간 자동차는 중앙분리대 지역을
넘어 건너편 하이웨이로 치솟아 떨어지면서 수 차례 회전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 때에 충격으로 몸이 비교적 작은 요셉이는 차
안에서 튕겨져 나오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다른 가족들은 구르는 차 안에 갇혀있었고 다행히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들이
없어서 더 큰 사고를 모면했습니다. 큰 아들 본겸이는 순간적으로 차에서 나와 건너편에서 오는 차량을 수신호로 막은 후에 가족들을
아버지와 송아를 차 안에서 끄집어 내었고 엄마는 너무 심하게 다쳐있어 운전석에서 끌어낼 수가 없었답니다. 그리고는 먼 발치에
튕겨져 나가있는 요셉이를 찾아내었습니다.

볼티모어 갈보리교회 노진준 목사님께서 불과 몇분 사이로
사고 현장을 포착하셨고 그래서 병원까지 가셔서 도움을 주실 수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세심한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우선
본겸이는 검사결과, 하나도 다친 부분이 없이 불과 몇시간 후에 노진준 목사님께서 코스타로 데리고 오실 수 있었습니다. 김만풍
목사님과 제가 코스타로부터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약 5시였습니다. 가족들 모두 수술중에 있었고 윤희자매는 큰 수술중이어서
그날 저녁 늦게 되어서야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기 때문에 기도로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날 밤에 중환자실에서본 황윤희자매는 거의
절망적이었습니다. 풍선과 같이 크게 부어오른 얼굴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의식도 없는듯 했습니다. 구자신 형제는 오른쪽
발뼈들이 흩어져서 뼈를 맞추는 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송아는 허벅지 뼈가 부러져 여섯개의 금속핀을 허벅지 뼈에 박는 대 수술을
하고 있었습니다. 막내아들 요셉이는 병원으로 왔다가 상태가 매우 나빴기 때문에 Elkhart에서 약 두시간 떨어진 Fort
Wayne으로 헬리콥터로 옮겨져야 했습니다.

화요일

초조한 몇 시간이 지난 후, 화요일 새벽 1시경에
Fort Wayne 중환자 실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요셉이의 뇌 기능이 점점 약해져 간다는 소식이었고 만일 심장박동이 멎을
경우 CPR을 하겠느냐는 질문을 아버지인 구자신형제님께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질문이었습니다. 구형제님과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새벽녘에는 절망적인 전화가 다시 걸려왔습니다. 요셉이의 뇌사가 임박했으니 마음의 준비와
그리고 기계에 의지해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인공호흡기를 만일의 경우 계속 유지시킬 지 아니면 떼어낼 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Elkhart병원의 Chaplin David Hudson목사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기적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지금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고 분명 하나님께서
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랍고 감동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저의 기도는 더욱 간절했습니다. 구자신 형제님께서 요셉이의 출생에 관해 숨기셨던 사실을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셉이는 너무도 특별한 아이라서 하나님께서 꼭 살려주셔야 합니다. 그 아이는 원래 제 아이가 아닙니다. 요셉이
엄마는 이 아이를 낳다가 낳은 날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데려다가 친아들로 삼고 기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에
이렇게 해서 이 가정에 들어오게 된 이 아이는 반드시 살려주실 것으로 믿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감출
사실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알고 함께해야 할 일이기에 구 형제님과 어제 전화를 통해 여러분들에게 밝혀도 좋다는 승락을
얻었습니다.)

그날 오전에, 우리 모두의 기도의 힘으로 윤희자매의
회복이 빠르게 감지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 지금 의식이 있고 내가 누구인지 아시면 발가락을 움직여보라는 말에 오른쪽
발가락끝이 약간 움직였습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간호사들 모두 같이 기뻐해주었습니다. 구형제님도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오후 한시경에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셉이의 뇌사판정이 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심장은
인공호흡기에 의해 뛰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병원측에서는 한가지 요청을 하였습니다. 비록 뇌의 기능은 온전히 정지되어있지만
장기의 기능들은 아직 살아있으니 장기기증을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구형제님은 한동안 기도하시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장기기증을 결정하였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요셉이를 회생시켜주실 기적을 기대하고 더 버티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장기를 이식하면 살 수 있는 두 세명의 아이(사람)들을 살리느냐 하는 정말 숨가쁜 결정이었습니다. 장기기증을
수락했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아버지에게 한 가지 요청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한번 보고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구형제님의 건강상태도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에 Case Manager는 강력히 반대를 했습니다. 아마도
환자의 liability문제가 심각한 우려로 대두되었던 같습니다. 그러자 아빠는 요셉이에게 전화를 걸어 귀에 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미 뇌사판정을 받은 아이라서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쪽 병원에서는 말했지만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스피커폰이 연결되었습니다. 구형제님의 마지막
전화내용은 이랬습니다. “요셉아 아빠가 정말 너에게 잘 대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너는 이제 네 친엄마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겠구나. 그리고 예수님도 만나고… 이제 하나님 앞에 가면서 이렇게 기도하자. 너를 살리려고 그렇게 애썼을 그 병원
간호사들하고 의사선생님들에게 감사하자. 그리고 이 병원과 네가 있는 그 병원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병원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요셉아 잘가라. 이제 다시 곧 만나자…” 저는 이 기도를 하고 있는 구형제님 옆에서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병원을 축복하고 있는 구형제님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잠시 후에 제가 그 병실에 모여있는 간호사들과 case manager에게 말했습니다. 이 아빠가 무슨 기도를 했는 줄
아느냐고, 이 어려운 순간에 당신들을 축복했노라고… 모든 사람이 다 울고 있었습니다.

잠시후 복도에서 짤막한 회의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case manager가 병실로 돌아와서는, “OK. Mr. Koo, we decided to let you go.”
그리고는 앰뷸런스를 병원측에서 준비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있었습니다. 수간호사 Bobbie는 진통제와
약들을 챙기고 앰뷸런스안에 모든 모니터 기구들을 싣게 했습니다. 구형제님을 싣고 paramedic 팀과 저와 수간호사 가
앰뷸런스 에 타고 장장 두시간 거리에 있는 Fort Wayne의 Parkview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시간에 김만풍
목사님과 민동식형제님은 그 병원으로 오시게 되었고 그 병원에서 우리는 저녁 8시경에 아직도 심장이 뛰고 체온이 따뜻한 요셉이의
얼굴과 몸들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사망판정이 난 요셉이, 그러나 다시 살아날 것만 같았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면… 아직도 체온은 따뜻한데… 김만풍 목사님의 집례로, 요셉이의 손을 잡고 임종예배를 드렸습니다. 끓어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임종예배가 끝나고 이제 장기기증을 하는 절차를 밟는
도중에 저는 한국에서 오실 요셉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의 비자문제로 병실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에 여기저기 통화를 해야만
했습니다. 요즘같이 비자가 까다로운 시절에 어떻게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게 될까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전화통을 붙잡고 여기
저기 전화를 하는 도중에 그 병원 간호사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I have a good news. I found out
that our deputy surgeon general’s wife and daughter are donating their
organs now here at this hospital. We probably can ask him for some
help…” 놀랍게도 그 분, deputy surgeon general은 한국주재 미 대사관과 워싱턴 homeland
security 에 보낼 편지를 즉석에서 써주시게 되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6시간만에 10년짜리
비자를 받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은혜였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은 착잡했습니다. 제 손에는
요셉이가 기증하기로 되어있는 장기의 목록을 담은 영수증이 들려있었습니다. 병원으로 돌아온 구형제님과 저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낸것 같습니다. 수요일 새벽녘에 안구, 신장, 심장, 신장, 이자, 간등을 포함한 장기제거 수술이 끝났다는 전화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요셉이가 다살지 못한 삶을
그 장기를 받은 아이들이 살아드릴 수만 있다면, 그래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들이 살아드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기도를
구형제님의 손을 붙잡고 같이 드렸습니다.

수요일

수요일은 요셉이 엄마 황윤희 자매에게 조금씩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습니다. 요셉이의 몸을 버지니아 알링톤 funeral home으로 이송하기로 조치해
놓고 수요일 밤에 잠깐 짬을 내어 오헤어 공항에서 아내를 픽업하여 휘튼에 돌아왔습니다.

목요일

목요일 아침에 휘튼에서 다시 병원으로 떠나기 전에
몇분의 강사님들이 저에게 요청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집회중에 요셉이 가정을 위해 계속 기도하고 있었고 궁금해 하니 짤막한
리포트를 아침집회때 해달라는 요청이셨습니다. 아침 집회중간에 잠깐 나가서 하나님께서 요셉이를 불러가신 일을 보고했습니다. 이
보고를 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고를 마치고 떠나는 참에 두 분이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요셉이네
가족이 있는 병원근처의 은혜침례교회 나창옥목사님과 노틀담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하시는 천성창형제님이셨습니다. 천형제님께서는 이제
곧 한국에서 오실 요셉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가 묵으실 숙소로 자기 집을 내주셨습니다. 나목사님은 또한 제가 토요일 매릴랜드로
떠난 후에 요셉이 가족을 돌봐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예비하심이었습니다.

목요일 점심때쯤 휘튼으로부터 제 아내와 구 형제님
큰아들 본겸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는 윤희자매를 찾았습니다. 입으로 반경 1인치 정도의 튜브를 폐까지
깊게 박아서 산소 호흡기로 호흡을 하고 있었고 자매는 입과 목의 통증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얼굴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정말 의식이 온전히 돌와왔는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본겸이를 침대 왼쪽에, 휠체어에 앉은 딸아이 송아를 오른쯕에 가게
하고 손을 잡게 했습니다. 그리고 윤희자매가 평소에 좋아하던 찬양 “주만 바라볼지라” 찬양곡 씨디를 틀고 구형제님과 함께 같이
모두 찬양을 했습니다. 찬양을 한참 하는 중에 병실 분위기가 이상해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병실 구석에 서서 이를 지켜보는
간호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간호사들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있는 것을 보고
윤희자매를 바라보는 순간 그 튜브를 박은 입의 입술이 찬양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매는 찬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뛸뜻이 기뻐했습니다. 그때부터 자매의 건강은 급격히 호전되기 작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금요일

금요일 저녁 병원을 떠날때 Bobbie를 포함한 많은
간호사들이 다가와서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감격적인 말들을 저에게 해주었습니다. “We are so honored
to have the family with us. We are seeing God’s hands through their
witnessing.” 그리고 한 간호사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믿는 것은 무엇이냐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구형제님의 기도를 통해 이미 그 병원은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제
눈으로 볼 수 있었음이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7월 12일 현재

어제는 구형제님이 전화에 그러시더군요. 요셉이 그놈만
아니었다면… 그러나 이번 일은 형제님 가정에 엄청난 축복이라고요… 요셉이가 우리 대신 갔다고, 마치 예수님처럼…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윤희자매는 이제 눈도 뜨고 글씨도 쓰고 한답니다. 어제밤에는 전화도
직접받고 작은 소리로 이야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회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확실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이겠지요… 아직도 가슴아픈 것은 요셉이 엄마는 요셉이가 천국에 간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형제님이 그러시는데, 윤희자매가 정신이 좀 돌아오면서, 며칠 전에 요셉이가 요셉이
친엄마와 천국에 있는 광경을 보았다고 했답니다. 이 부분을 갖고 계속 기도했는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충격이 크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시켜주시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하튼 이 소식을 곧 알려야 하는데, 충격이 크지 않아서 자매의 회복에 지장이 없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요셉이네 가족을 위한 기도제목을 몇가지 적으며 이 서신을 마감하려고 합니다.

1. 요셉이 아빠가 기도하신대로 Elkhart
General Hospital 과 Fort Wayne Parkview Hospital이 환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적 치료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병원전체의 복음화와 병원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이의 장기를 받은 사람들이 건강하게 자라 하나님의 일꾼으로 이 세상을 치유하는 서번트 리더들이 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3.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온전히 드러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빠 구자신 형제님과 엄마 황윤희 자매님의 소명이
확실히 확인되어지고 그들의 삶이 아름답게 드려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아빠의 전공(microbiology)와 엄마의
전공(성악, soprano)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러나 혹 이 전공과 다른 소명을 주신다면 그
소명이 확인되어지고 하나님께서 나머지 인생의 길을 인도해주실 것을 믿고 나갈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큰 아들 본겸이와 딸 송아의 마음속에 상처가 남지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5. 윤희자매가 요셉이 소식을 들었을 때에 큰 충격없이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6. 모든 재정적인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7. 이번 금요일과 토요일에 있을 장례예배가 신령과 진정의 예배가 되고 이 예배를 통해 구원받는 사람들이있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계속적인 기도와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황지성 드림

2003년 7월 12일에

2003년 8월 1일에 이 글에 덧붙이는 소식

여러 믿음의 동역자님들과 선배님들의 기도와 격려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알려드린 대로 지난 7월 18일 19일에 요셉이 장례를
잘 마쳤습니다. 지구촌교회 성도님들을 비롯하여 많은 코스탄들과 그리고 지역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도 많이 참석하셔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장례식이었습니다. 천국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요셉이 어머니께는 요셉이의 장례소식을 고별예배가 있던
금요일의 하루 전날, 목요일 오후에 조지타운 병실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사고 후 모든 사실을 남김없이 알려드렸습니다. 매우 힘든
시간이었지만 ,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덕분에, 김만풍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그
슬픔을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힘든 몸이었지만 그래도 장례예배에 가족 모두가 같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마자 요셉이 엄마아빠는 곧바로 병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매우 연약한 육체로 참석했던 요셉이
엄마였지만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마지막 찬양으로 “주만 바라볼지라”를 이 가족을 향해 불러 드릴 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셨습니다.

토요일은 화창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이진석 목사님의
집례로 발인예배후에 곧바로 장지로 떠나 요셉이를 땅에 묻었습니다. 고상환 목사님의 집례로 하관예배가 있었고 참석한 사람들이
마지막 헌화를 하면서 장례식은 그렇게 아름답게 끝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는 요셉이의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간단한 편지가 미국 장기 기증협회이름으로 날아왔습니다. 요셉이의 간을 이식받은 아이는 미시간에 사는 10살난
남자아이로, Frank라는 거북이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신장을 받은 사람은 인디아나에 사는 수영과 음악을 좋아하는
28세된 청년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장기들은 장기은행에 보관되어, 추후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기증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제 이 장기기증을 받은 위의 두 사람들이, 이름은 모르지만, 건강하게 회복되어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요셉이 가족 모두가 퇴원하셔서 집에 계십니다.
조용히 그리고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가정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이 가정을 향한 기름부으심이 가슴 설레도록
기대됩니다. 요셉이 어머님은 아직은 누워계시지만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계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것이
너무나도 감사할 뿐입니다..

혹 요셉이 가정에 직접 연락을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주소나 이메일로 연락하시면 되겠습니다.

Jashin Koo
15608 Marathon Circle #104
Giathersburg, MD 20878
jashin1028@yahoo.co.kr

다시 한번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과 선배님들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메릴랜드에서 황지성 드림

요셉이의 하늘

요셉이의 하늘:
촬영 : 민동식 , 2003년 6월 30일 저녁 8시경
Elkhart, Indi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