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태 목사와의 만남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라는 주제로 열린 2004 KOSTA/USA집회에는 ‘한국교회사 속에 나타난 공동체의 고난과 영광’이라는 눈에 띄는 주제를 볼 수 있었다. 이번 eKOSTA에서는 신사참배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사의 고난과 영광에 대해 강의해 주신 김승태 목사님을 만나본다.


“김승태 목사는서울대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를 전공하고 한신대, 숙명여대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한신대 신학대학원에서 한국교회사를 전공하고 2002년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사단법인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세움교회 목사로 섬기고 있고, 저서로는<한국기독교의 역사적 반성> 등 다수가 있다.”


eKOSTA 목사님의 강의를 매우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한국기독교의 신앙 전통으로 강의의 문을 여셨는데요, 강의를 듣지 못한 많은 코스탄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번 강의 내용을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승태 제 강의의 요지는 우리 신앙 선배들이 어떤 고난을 당했고, 고난이 닥쳤을 때 그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태도를 가졌는가를 그분들이 직접 남긴 자료들, 편지들, 책들, 회고록 등 일차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공부해온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하신 분들, 옥고를 치루신 분들, 순교당하신 분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KOSTA 신사참배 문제가 큰 이슈가 되어서 개신교의 경우 교파가 분립될 정도의 문제가 되었는데, 카톨릭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김승태 개신교의 경우 장로교회가 큰 문제가 되었고 다른 교파는 이른 시기에 굴복을 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카톨릭의 경우, 일본 카톨릭의 경우 오히려 프로테스탄트에 비해 더 강력하게 저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32년 경에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양심의 저항으로 거부한 분들이 계셨습니다. 평양의 메리론 선교회는 미국 계통의 선교회인데 그때까지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만 바티칸의 결정 이후는 굴복했습니다.


eKOSTA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고 전공이신 한국기독교회사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김승태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마을에 교회가 생겨서 누가 나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나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가 생겨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가정에부터 예배드리곤 했습니다. 교회 자리에 뽕나무가 있었는데, 새벽에 뽕나무에서 기도하던 기억도 나고, 한번은 책을 읽다가 소를 잃어버려가지고 소를 찾으려고 산에서 기도하는 것을 담임선생님께서 보셨고 그 다음날 겨우 소를 찾은 기억도 있습니다.


실 제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깨달은 것은 중학교 3학년 쯤이에요. 중학교 1학년 마치고 집안이 어려워져서 검정고시를 하려 서울에 올라왔는데 학교에 안 나가니까 교회에서 중등부나 고등부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어느 학교 다니냐고 하셨을 때 아무 말을 못했어요. 그게 상처를 받아서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어요. 한 일년 정도 못나가다가 마음속에 내가 사람보지 않고 하나님보고 교회에 나가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새벽기도하던 습관이 있었으니까 새벽기도회부터 나갔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마침 로마서를 강해하고 계셨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나를 포기하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인데요,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정하셨다는 말씀인데요. 내가 왜 이렇게 방황하는가? 이것은 내 죄 때문이고 내가 나를 포기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회개를 하고 그 후 하나님께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계속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KOSTA 그러면 그게 몇 년쯤 됩니까?


김승태 서울에 온 것이 68년이고 1970년에 세례를 받았으니까 그 사이가 되겠네요. 처음 신문배달을 해서 성경을 샀습니다. 성경을 처음 읽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밥도 세끼 먹는데 세장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안 읽으면 밥을 굶는다 결심했어요. 나중에 하도 재미있어가지고 줄을 치는데, 나중에 서신서를 보면 다 줄을 쳐 놓아서 더 줄을 칠 필요가 없는 그렇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제 가 신학은 늦게 했어요. 40이 넘어서 했는데, 제가 남동생이 네 명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신학을 공부한다면 내가 그것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공무원도 하고 군인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던 중 그러면 “너는”이라는 내적 음성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신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학 하기 전에는 한국 근대사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만열 선생님과 같이 한국기독교회역사연구회에 84년부터 활동하면서 기독교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신사참배 문제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일 본의 신도가 어떻게 한국에 들어오게되었고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저항했는가를 공부했고, 독립기념관에 근무했었는데 사람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꼭 해야되겠다고 생각해서 이 일에 전념을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고 모임을 만드는데 전념하게되었습니다. 이만열 교수님이 회장 맡으시고 저는 총무를 맡고 해서 모임이 이루어졌습니다.


eKOSTA 목사님께서는 ‘신사참배’ 문제는 교회와 불의한 세속 권력과의 갈등관계로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신사참배와 관련된 갈등에서 더 넓은 교회와 세속 권력의 충돌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김승태 세속 권력은 항상 권력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서 작동하죠. 자기 권력의 확장을 항상 추구하는데, 목적을 위해서 성서에 어긋나는 방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 교회는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종교와 정치는 창조적인 긴장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일 본제국주의하에서 침략전쟁에 협력할 것을 강요하고 심지어 교회에서 헌금을 내고 종을 바쳐라 하는 명령이 있었죠. 그런 거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이 성서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었죠. 이것을 거부했어야 하는데, 거부하고 목숨을 걸고 저항한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참여하거나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순교하거나 항거한 분들을 귀감으로 삼을 만하고 신앙의 좋은 유산으로 살려야 할 것입니다.


eKOSTA 신사참배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거부하다 순교 당하신 많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계신데요, 어떤 분들이 계신지 말씀해주십시요.


김승태 제가 강의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많은 분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회고록, 수기, 재판 기록등을 접할 수 있습니다. 순교하신 분 중에 박관진 장로님, 최삼열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같은 분들, 순교하신 분들이 50여분들이 있었고, 옥고를 치룬 분들이 2000여명 계시고, 4, 5년 이상 옥고를 치루시다가 해방을 맞으신 분들도 20여분 계십니다. 안이숙 여사라든지, 손양원 목사님이라든지 그런분들을 소개했었습니다.


eKOSTA 신사참배의 고난이 순교자적 교회를 세운 기회가 된 반면 한국교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점도 있는 것 같은데요 (예를 들어 교단간 갈등), 전체적으로 평가해 볼 때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요?


김승태 신사참배 거부가 해방후 장로교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교회 출신이다라면서 자신들과 연관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국 교회의 훌륭한 전통으로 생각합니다.


그 런데 해방 직후에는 이 문제로 교회가 분열되는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했던 사람들은 회개하고 거부했던 사람들은 굴복했던 사람들을 포용해주는 태도를 보여주었다면 교회가 특히 장로교회가 지금과 다른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포용하는 것이 필요했는데 비판하고 정죄하는 태도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나누어진 이유는 소멸했지만 분열이 더 심화되었습니다. 교회가 하나되는 운동, 일치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eKOSTA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세속 권력에 대한 타협의 유혹이 많이 있는 것같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를 바라보시며 한국 교회가 순교자적 전통을 어떻게 계승해야할 지 조언해주십시요.


김승태 우리나라 초대 교인들은 사실 목숨을 내놓고 예수를 믿었어요. 신앙의 자유가 법령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각되면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죽게되는 상황에서 믿었습니다. 일제시대에도 여러가지 불이익이 있었지만 고난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한 믿음을 소유한 분이들이었고 순교의 태도, 안이숙 여사의 예를 들었지만 순교의 훈련을 준비하는 분들도 계셨죠. 이런 신앙 선배들에 대해서 우선 한국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되겠습니다. 요즘은 고난에 대해서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거든요. 축복만을 강조합니다. 먼저 이런 고난에 대한 믿을에 대해서 알고 그럼으로써 신앙 전통들을 유산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같습니다. 교회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하겠습니다.


eKOSTA 새롭게 교회를 개척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새로운 교회에 대해 어떤 비젼을 갖고 계신지요?


김승태 우선 기본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정말 교회다운 교회,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어렵듯이, 정말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는 어려운 일인 것같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사람을 사람으로 세우는 그런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세움교회, 세우다라는 뜻으로 사람들을 대접하고 세운다는 뜻에서 지었습니다. 이름대로 사람들을 세우고, 누구든지 기쁘게 와서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제 가 평신도에 있을 때 독립교회가 좋을 것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제가 어렸을 때 처음 나간 교회가 기장교회였고, 기장 신학대학에서 공부했기때문에 독립교회는 아니고 기장교회가 되었지만 교파가 아닌 하나님의 교회를 지향하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는 방학동에 지하에 작게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eKOSTA 마지막으로 코스타에 참석한 많은 유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김승태 코스타에 대해서 이야기만 듣고 이번에 처음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젊은 분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평양 과기대를 준비하기 위해 자기 삶들을 포기하는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당부하고 싶은 말은 그런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주님의 분신이 되어서 한국 교회를 섬기고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그런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신앙의 선배들처럼 그렇게 되려면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신앙의 유산을 잘 받아서 또 후배들에게 잘 전달해주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International ministry – Min J. Chung목사




KOSTA/USA 2004기간동안 편집팀은 강사로 섬겨주신 Min Chung목사와의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그는 펜실바니아의 Biblicak Theological Seminary에서 공부하였고, 현재 일리노이의 어버나-샴페인에 위치한 커버난트 휄로쉽 교회 (CFC)에서 시무하고 있다. One in Love (OIL) Network and Conference 강사로 활동하혔으며, 미주 한인 2세들의 영적각성 운동을 섬기고 있다.


eKosta: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고 특별히 어떻게 international student outreach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Min J Chung: 네, 제가 12살에 미국에 와서 한국학생으로 미국에서 국민학교, 중학교 다니면서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하게 되었고, 1.5세로서 적응하면서 일리노이 주립대학의 선배님들에게 신앙을 더 배우고 다시 모교로 돌아와서 교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코리안 펠로우십 교회를 시작했는데, 우리가 영어로 예배를 진행하니까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니까 더 이상 코리안 펠로우쉽 처치라고 말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커버런트 처치로 이름을 짓고 계속 다른 아시아 국가의 유학생들이 모이고 백인학생들도 오게되어서 인터내셔널 교회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러는 동안 한국 학생들이 적응하는데 쉽지는 않았습니다. 잉글리쉬 스피킹 코리안이지만 그들이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차이니즈 크리스챤만 되어도 교제를 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았고 미국 사람들과 소그룹에서 생활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많은 트래이닝을 시도했고 아직도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인정하고 한국문화를 너무 드러내지 않도록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교회생활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복음을 위해서 조금 희생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eKosta: 목사님께서 강의에서 전달해주신 seven doors of cousin evangelism을 강의를 듣지 않은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 잠시 소개해주십시요.


Min J Chung: 이 것은 제가 보기에 전도를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한다고 보지 않고 각자의 삶의 여정에서 각기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같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한다는 것보다는 계속적인 사역 중에서 어떤 사람은 뿌리고 어떤 사람은 거두는 것에서 교훈을 받아야 할 것같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뿐 아니라 한 사람이 완전히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할 때 이 전체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모든 구속사가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특별히 인터내셔널 스튜던트들에게 전도하는 것에는 이러한 과정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약에서 열매를 거두지 않고 사역했던 선지자들의 노력이 예수님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첫 째 단계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고(make a connection), 둘째 단계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personal testimony), 셋째 단계는 교회에로의 초대 (Jesus Film and Church invitation) 넷째 단계는 친숙한 문화를 매개로 한 증거 (cousin friendly version of the Gospel), 다섯째 단계는 온전한 복음의 증거 (full version of the Gospel), 여섯째 단계는 신앙 고백을 얻음 (obtain verbal profession of faith), 일곱째 단계는 교회에서 제자화하는 것입니다(Plug them into the Church).


관 계를 만들 때는 단순한 미소라도 친밀감을 줄 수 있고, 친해지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교회에서 예수 영화 같은 교재를 동원하여 눈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복음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각자의 세계관에 맞게 가령 이슬람 배경의 사람에게 친숙한 복음, 무신론자에게 맞는 복음 설명, 일본문화에 맞는 복음 설명을 이용하여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할 수 있습니다. 점차 온전한 형태의 복음을 설명하고 그들의 입술의 고백을 얻어내고 무릎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여 제자화하는 과정을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노력을 하여서 그들이 모국으로 돌아갈 때 선교사를 파견한다는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이 런 생각을 갖고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이 첫번째, 두번째 단계를 심었다면 우리가 릴레이에서 바톤을 받듯이 다음 단계에서 사역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사람이 거두는 자로서 승리를 얻지만 이는 그 사람의 승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는 다르지만 결국 복음의 승리입니다.


eKosta: International ministry를 경험하면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셨을텐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요.


Min J Chung: 여 러 사람들이 떠오르는데요, 중국 자매 한 분이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에서 국제법을 공부하는 분이었는데요, 남편은 사업가였습니다. 자매님이 신앙을 갖고 그 삶의 변화에 큰 감동을 받아서 그 남편분이 그 자녀의 세례를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그 남편분은 아직 신앙을 갖지 못했지만 신앙에 대해서 매우 진지하고 점차 복음에 가까와지고 있습니다.


또 생각나는 한 사람은 일본인 교수입니다. 그분은 교환학생으로 저희 대학에 왔는데요, 그분은 음악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지나가다가 우리 모임을 보고 그 음악을 좋아해서 들어와서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찍어가는 겁니다. 사람들이 조금 당황했지만 그가 예배와 말씀을 듣고 그분이 영어를 잘못해서 언어로 이해는 못했지만 예배를 통해서 점차 마음을 열고 드디어는 부활절에 세례까지 받고 전체 모임에서 간증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분의 영어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 듯지 못했지만요.(웃음) 그분이 일본으로 떠나시면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고 저희는 선교사를 보내는 심정으로 그분을 보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이 있습니다.


eKosta: International students들은 모국의 기독교적 리더쉽을 세운다는 중요한 선교적 의미가 있는 것같습니다. 한편 그들은 그 사회의 엘리트 층이라는 점에서 저개발국 사회구조에서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들이 각 사회에서 모범적인 낮아지는 그리스도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자화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Min J Chung: 마 태복음에 나오는 탤러트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은 탤런트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도 고난 당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자원입니다.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는 리소스라고 생각합니다. 이땅에 온 사명과 뜻과 구원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가 왜 살아야하는가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서 내 자신을 모두 하나님을 위해서 살수 있도록 훈련을 하려고 합니다.


우 리가 항상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고 마태복음 9장에 나오는 일꾼이 적다는 말씀이 제가 사역을 시작할 때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을 만드는 것이 저희 교회를 목표입니다. 선교지에 선교사들이 적고 여기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꾼이 적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코 스타에 참석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이 좋은 탤런트를 받았는데, 두 가지 선택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것인가, 나를 위해서 살아갈 것인가의 결정에서 옳은 결정을 내리기 바라는 마음이 많이 듭니다. 어디에서 살고 있든지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확실히 깨닫고 그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비젼을 찾아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eKosta: 목사님을 뵈면서 한인 1.5세 또는 2세의 영적 자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한인 diaspora에 있음을 느끼게 되는데요, 1.5세나 2세들에 대한 비젼은 어떠하신지요?


Min J Chung: 제 가 15년 전쯤에 하용조 목사님께서 빛과 소금에서 쓰신 아티클을 읽었는데, 그때 상상하기 어려운 내용을 말씀하셨는데, 그분이 말씀하시길 앞으로 1.5세들이 미국의 한인 교회의 지도력을 인수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사실 저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과연 미국 교회 목사님들이 한인1.5세들에게 리더쉽을 넘길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제 친구들이나 목사님들이 교회를 받고 시니어 패스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목회자로서뿐 아니라 선교사 세계에서도 1.5세의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습니다.


선 교사 세계에서 어떤 사람들이 동원하는데 가장 좋은가 조사를 했는데, 코리안 아메리카가 가장 적당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패스포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패스포트의 얼굴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어디를 가면 꼭 끝까지 물어봐요. 제가 미국인이라고 말해도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고 저를 한국인으로 취급합니다. 이슬람 세계에 미국인들이 더 이상 사역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인의 얼굴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자 원이 있고 미국 여권이 있지만 한국 얼굴을 갖고 있고 영어를 할 수 있고, 또 미국에서 공부한 기술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한국 1.5세들이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미션 무브먼트에 큰 기여가 있을 텐데, 제가 보기에는 폭발적인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런 측면에서 제가 분명히 Right Place and at the Right Time에 있는 것같습니다. 제가 아마 Wrong person일지도 모르겠습니다.(웃음) 그러나 지난 일년간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이 이런 과정에서 제가 해야할 일이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1.5세, 2세와 유학생들을 잘 연결하여 시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 국에서 교육받는 사람들은 좋은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잘 연결하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내일이면 선교사들이 전세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 계신 분들과 선교지를 네트워킹하고 한편 1.5세들은 1세와 2세를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분들이 미션 동원을 할 때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반면 현재 선교 헌신에서부터 선교지 파송에까지 이르는 일을 미국 선교단체가 하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선교 동원 사역도 1.5세들이 해야하는 중요한 영역입니다. 이들이 1세와 2세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어떻게 해야할 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교회는 한분은 일본에 한분은 태국에 선교사로 파송하는데, 선교에 헌신하신 때부터 선교지에 도착하실 때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희들도 이러한 노력을 통해 여러가지 자원을 계발 중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숙제라고 하겠습니다.


eKosta: 마지막으로 코스타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한인 유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Min J Chung: 항상 코스타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강사로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많은 분들이 매우 많은 자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갈 수 없는 곳에 갈 수 있는 분들입니다.


비 젼을 크게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 살고 잘 되는 비젼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쓸 것인가하는 큰 비젼말입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해야하는데, 북한도 생각해야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두가지 큰 과제는 이슬람과 중국입니다. 이슬람 세계에 복음이 전파될 때 이 시대의 마지막 땅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땅끝이라고 봅니다. 백인들이 못들어가기 때문에 동양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이 들어가야 합니다. 리더쉽 트래이닝이 필요한데, 중국에서는 아직 그런 훈련이 충분치 않음을 생각할 때 미국에서 훈련받은 한국 사람들이 정말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자주 목회자들을 트래이닝하는 리더쉽 컨퍼런스에 가곤하는데 이런 접근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가까운 다른 나라에 신학교를 세우고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각 국가의 토착적 지도력을 훈련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코스타에 오신 분들이 눈을 크게 뜨고 이슬람 세계에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제 가 무슬림 국가에 들어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술이 없기 때문이죠. 기독교인임을 알지만 노라고 말할 수 없는 실력을 가지고 여러가지 사역을 한다면 복음 전파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분들은 Right Place at the Right Time에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eKosta: 장시간의 인터뷰가 힘드셨을텐데요, 귀한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Min J Chung: 감사합니다.

황병구 PD와의 만남



eKosta: 먼저 본인과 가족의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있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학도에서…PD를 거쳐지금 경영학 공부에 이르시기까지의 근황을 좀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국에서 섬기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이신지요?



황병구: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하나… 30대 양띠(나이가 좀 들었지요)구요. 사회사업을 전공한 아내의 사업의 일환으로 결혼에 성공했구요. 지금은 여덟살 딸 아이(은율, 恩律)와 세살 아들 아이(지언, 知言)를 기르는 아빱니다. LA에 와서는 6개월간 여러 교회를 방문하는 기회를 좀 가졌었구요. 지금은 엘에이한인침례교회에 출석하고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성가대원으로 참석한 지도 1년이 되어 가네요.



제 과거가 좀 복잡합니다. ^^ 전자공학(세부 분야로는 제어계측공학이라고 합니다.)을 석사과정까지 마쳤었는데, 석사과정까지 공부한 공학을 접었던 것은 몇 가지 사건 가운데 알게 된 부르심 때문이었습니다. 몇 가지 사건 중에는 병역을 면제받는 사건이 들어갑니다. 현역병 대상이었던 제가 일반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특례로 5년 동안 기업체에 묶이는 것이었는데,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어릴 때 복합 골절되었던 제 왼팔이 장애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겐 박사과정 또는 직업연구원 생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그러나 80년대 중후반에 당시 기독운동의 영향을 두루 받았던 저는 보기 드문 진로 선택을 하게 됩니다. 군복무 기간 정도를 하나님을 위해 일하겠다는 나름의 신앙적 소명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이후 5년간 기독노래운동 뜨인돌에서 리더 역할을 하면서 낮에는 선교한국에서 자원 봉사하는 이력을 쌓았습니다. 20대 박사로서 성공을 기대하셨던 아버님과의 갈등이 제가 치러야 할 마음고생이었습니다. 물론 이 기간 중 결혼이라는 문에 들어서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르바이트 정도의 가계수입으로 부모님 용돈 챙겨드리고 융자 받은 것 갚아 나가면서 결혼생활을 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 기간은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훈련받은 은사들을 총동원해서 제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해나갔던 때였습니다. 공연연출이나 컨퍼런스 운영, 이벤트 기획, 글쓰기, 노래짓기 등등. 그러던 중 우연히 새로 시작되는 기독교텔레비전의 방송 책임자 되시는 분과 만나 큰 신임을 얻게 되어, 노래운동을 마무리하고 이후 5년 간 프로듀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도 선교한국 운동이나 ?부흥? 콘서트 등을 위해 계속 일했었지요.


2000년이 되면서 지난 10 년간을 돌아보고 향후 10년 정도를 계획하는 시간으로 1년 정도를 지내기로 하고, 포항에 있는 한동대에서 미디어센터를 운영하는 일을 요청받아 서울을 떠났습니다. 센터를 구축하던 반년은 무척 바빴지만 이후 반년은 좀 한적한 시간을 지내면서 미래를 구상했는데, 이제껏 참여해온 일들을 보다 잘 섬기기 위해서는 리더십에 대한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미디어 과정이나 신학, 심지어 공학에 대해서도 주변의 추천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MBA 과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와 교수로 대표되는 기독지성인들의 리더십 유형이 보다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나름의 고집도 있었고, 리더십과 실무능력을 함께 갖추어 그간 해왔던 일들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관심을 두었던 것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던 여러 뜻있는 모임과 단체를 보며, 앞으로는 더 효율적이면서도 큰 유익을 가져오는 조직이 되게끔 돕고 이끄는 일을 자청하고 싶었습니다. 미디어와 문화 관련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경영지식이 필요하지만, 이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기에는 한국교회의 인적자원들이 역부족임을 절감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페퍼다인(Pepperdine) 대학으로 오게 된 것은 (TOP 비지니스 스쿨에 가기에는 우선 제 실력이 많이 딸렸구요) 이 학교 설립의 바탕이 된 기독교적 정신 및 오래도록 지속된 비영리기관과의 관계를 주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학교로 믿게 되었고 만족하며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유학 온 지난 일년은 나름의 고생은 있었지만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았고 가족들도 평안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드물게 제공되는 장학금도 일부 받게 되어 학비 부담도 좀 덜었습니다. MBA 자체가 워낙 학비가 드는 과정이라 전세금을 털어서도 1년 밖에 감당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따라가 보겠다는 용기로 시작을 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남편을 믿고 따라 나선 아내의 용기가 더 큰 것 같습니다.



eKosta: 911일이 결혼기념일이라는 루머가 있던데요


황병구: , 지난 911일이 결혼 1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루머가 아니고 사실이지요. 결혼 8주년 때 테러사건이 있었고, 세계인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날로 역사에 남게 되었지요. 흠… 급기야 올해로 결혼 1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날 기념될 만한 이벤트를 해야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좀 맘을 태웠는데, 막상 애 둘 딸린 부부가 타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더군요. 결과적으로 이곳 문화방송에 근무하시는 선배께 추천을 한곳 받아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부부만 단둘이 우아한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자축파티를 대신했습니다.


 


eKosta: 코스타 참석은 지난 2003년도 미주 코스타가 처음이셨나요? 이번에 예배와 찬양 분야에 강사로 오시게 되었던 과정과 강의에서 나누어 주셨던 강의 내용을 잠깐 소개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미주 코스타에 참석하시면서 받으신 느낌과 강의에서 만났던 학생들로부터 받으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황병구: , 처음이구요. 2003년에 LA 지역에서 열린 cKosta와 시카고 Kosta(감히) 강사로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두 수련회에서 ?지역교회와 캠퍼스에서의 찬양팀의 운영?이라는 선택식 세미나를 맡아서 참석했었습니다. 수련회마다 90분 강의를 사흘 동안 네 번씩 하면서 120명 정도의 참석자들을 가까이서 대했는데… 역시 제겐 체력보강이 개인적인 과제로 남았습니다. ^^ 다들 크지 않은 교회에서 어떻게든 찬양을 통해 회중과 함께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까 고민하는 분들과 마주한 시간이었고, 여건도 인력도 재정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해서 제가 경험했던 그간의 이야기들이 좋은 이야기 재료가 되었습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제가 번번히 부탁했던 부분은, 찬양과 예배라는 주제가 모든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한 훈련과 교육의 과정에 꼭 들어가도록 각자 섬기는 곳에서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에 대해, 전도에 대해, 경건의 시간에 대해 강조하고 훈련하듯 예배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이런 과정도 없이 찬양팀이 마치 공동체의 예배를 책임진 양 그 역할을 언제나 도맡아 나아가는 것은 하염없는 소모전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새 회중찬양마저 몇몇 찬양인도자 또는 찬양팀이라고 일컬어지는 은사집단의 소유물이 되고 있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구요.


 


eKosta: 예배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많은 코스탄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질문 중에서, 아무래도 크게 부각되었던 이슈가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의 예배 인도, 그리고 예배 인도자의 영성과 실력의 조화 부분인데요. 어떻게 그 질문들을 풀어나가셨고 그 부분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하신 점들이 있다면 나누어 주시기 바랍니다.



황병구: 앞서의 답변과 상통하는 부분인데요. 예배인도라는 문제를 반드시 일년 52주 목회라는 큰 틀에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 이 문제를 푸는 데에도 유효하리라는 생각입니다. 보통 예배인도팀이 의욕적인 젊은 세대로 이루어지고, 회중과 목회자는 더 나이 드신 세대여서 드러나는 어려움이 대부분이지요. 그 반대의 경우도 간혹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도리어 그동안 젊은 세대가 묵묵히 참아온 익숙한 세팅입니다.



어쨌든 한방에 무언가를 성취한다는 환상을 내려놓고 한 가족이라는 관점으로 다양한 회중을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악스타일이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어울림과 선택의 문제이거든요. 요즈음에 새로 나온 예배곡들 중에 좋은 내용을 지닌 곡들이 상대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최신곡의 트렌드를 좇아가지 못한다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예배 안에서 어떤 내용이 나누어져야 하는가라는 필요의 문제가 선곡의 문제를 좌우하여야 합니다. 요즘 뜬다는 곡을 어떻게 해서라도 꼭 소화해 봐야지 하는 욕심이 무리한 적용을 낳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세대간 선호하는 찬양 스타일의 문제를 단순화해보면 사실 명료한 내용을 담은 복잡한 음악‘(young)깊고 다양한 내용을 담은 단순한 음악‘(old)이라는 두가지 부류이지요. 이 두가지를 적절히 균형 있게 다룰 수 있으면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도 큰 갈등은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복잡한 내용을 지닌 복잡한 음악?이 일단은 금기인 셈이지요. 참… 어떤 때는 엉뚱하게도 단지 음량의 문제가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음량 조절만 잘해도 어르신들이 큰 부담 없이 젊은이들의 음악을 이해하시려는 엄두를 내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영성과 실력이라고 할 때 출발점은 기본기, 즉 성실함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영성의 기본기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성실함이라고 보구요. 음악적 실력의 기본기는 일반적으로 음정과 박자인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또다른 의미의 성실함입니다. 악기 반주의 경우도 우선은 주어진 악보에 충실할 수 있는가가 출발점입니다. 모임 약속시간을 잘 지키고 개인적인 연습에 일정한 시간을 투자하는 나름의 책임감이라고 이해해도 좋습니다. 사실 이런 바탕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제가 예배팀을 사역공동체가 아닌 훈련공동체로 이해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바탕이 확보된 이후에야 영성이나 음악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


 


eKosta: 2002년도에 출판되었던 많은 물소리.org’가 큰 반향을 일으켜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찬양집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물소리를 만드시고 편집하시면서 겪으셨던 수많은 경험들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많은 물소리 홈페이지 역시 관리하시느라 몸이 두개라도 모자르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황병구피디께서 생각하시는 우리 세대가 갖고 있는 찬양에 대한 화두랄까요님께서 보시는 우리 세대는 어떠한 세대입니까? 무엇이 바뀌어야 하겠습니까?



황병구: 저 혼자 그 일들을 다 한 것은 아니구요. 드러나지 않게 찬양집과 홈피를 위해 중요한 부분을 섬기며 힘쓰는 동지들이 있습니다. 우리 세대라… 찬양과 관련해서 생각한다면 일단 현대적인 미디어의 혜택을 상대적으로 제법 받은 세대인 것 같습니다. 음반이나 영상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자료와 정보들은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기술의 발달도 한 몫 하고 있지요. 예전에는 엄두를 못내던 고가의 악기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많은물소리 CD-ROM 이 지닌 찬양시트 편집기능도 생각은 오래 전에 했었지만 최근에나 가능하게 된 거지요. 결과적으로 도구에 능한 세대로 변하는 느낌입니다.



예전에는 실용적이지 못한 생각들이 비판 받았지만, 이제는 도리어 지나치게 실용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비판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 내에 아직 남아 있는 지나친 권위와 비효율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은 없구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그 무엇만을 추구하는 경향을 되도록 경계하자는 것입니다. 찬양들도 점차 그 수명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한번 받은 감동을 되새기는 이들보다는 새로운 감동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찬양의 트렌드는 좋은 악기와 시설이 없으면 구현하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화려한 도구에 의해서라기보다 심중을 꿰뚷는 적절한 비유와 상징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진실함에서 비롯됩니다. 이런 것들은 개인적인 순발력이나 효율적인 조직운영에서 온다기보다, 사람에 대한 오랜 생각과 만남, 삶에 대한 이해에서 오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우리 세대가 혹 이런 가치를 놓치고 있다면 함께 돌아보며 다시 채워갔으면 합니다.



아울러 피아노 한대, 기타 한대로 이민교회를 섬기며 찬양을 인도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분들은 부족한 악기와 장비에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진실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으로 주어진 환경을 선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여서 잡히시기 전날 밤 감람산으로 올라가시면서 한 찬양을 생각하면, 또 지하교회에서 숨어서 빌립보서 2장을 찬양하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옥에 있던 사도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국교회 초기의 가정교회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찬양은 참 넉넉한 도구들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eKosta: 찬양의 상황화‘(Contextualization)를 많이 이야기 하시는데요. 두개의 문화가 공존하는 이민교회의 현실을 비추어 보면서 느끼시는 이민교회의 찬양의 현실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황병구: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CCM, ,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주로 현대적인 음악장르나 스타일로만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Contemporary(동시대의)라는 말 속에는 Contextualized(상황화된)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 현대성은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가사의 내용에 많은 부분 투영되어 있다고 보는 거지요.



저는 이민교회의 찬양의 내용이 미국의 것(EM)과 한국의 것(KM)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것 외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상황 안에서 독특한 내용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다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문화 가운데 던져진 성경의 인물들 중 요셉이나 다니엘의 고백을 찬양의 내용으로 나눌 수도 있다고 보는 거지요. 나아가 이런 이중적인 환경이 아모스적인 예언이나 예레미아 애가의 현대적인 해석이 가능한 문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의 시편은 이제 우리가 음악으로 다양하게 덧입히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많은 음악이 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느 부분들은 남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다윗의 저작권 침해라고, 표절이라고까지 말할 때도 있습니다. 일면 우스개로 들릴 수 있지만, 제가 더욱 염려하는 것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회중들의 내용적인 편식입니다. 찬양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회중의 영성을 함께 신경쓰신다면 특정 내용에 집중된 찬양에 대해 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찬양을 사랑하는 이들 대부분이 말씀의 깊이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말씀의 깊이가 깊은 분들이 지은 찬양곡들이 장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의 깊이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기본으로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시로 잘 표현할 수 있다면 전 이것이 바로 시편 151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보다 가까운 적용으로는, 음악적 스타일은 미국의 것과 보다 가까와서 음악언어로는 이곳의 이들과 무리없이 소통할 수 있으면서, 담겨있는 내용은 한국민족의 정체성과 한국교회의 사명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채워 갈 수 있다면 미국이라는 시공간에서 고유한 사역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eKosta: 최근 마이클 카드의 책을 한권 번역하셔셔 그 책이 얼마 전에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을 잠깐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황병구: , 올초부터 지난 여름까지 짬짬히 번역했던 책이 올 10월 출간되었습니다. 중견 아티스트이자 사역자인 마이클 카드의 ?Scribbling in the Sand-땅에 쓰신 글씨? 라는 책입니다. IVP에서 나왔구요. 저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먼저 살펴보았답니다. 아마 제게 올 책은 태평양을 건너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예술적인 창조성에 대한 생각과 묵상을 실은 책인데, 꼭 예술과 연관되지 않은 분들께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번역자로서 ?꼼꼼히?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저도 혼자 ?곰곰히? 생각할 만한 좋은 재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소개드리자면… 진정한 창조성은 지극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된다… 라는 것인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사건도 마리아의 향유 사건도 이러한 범주에 드는 창조적 표현이라는 것이지요. 어떻게 연인을 기쁘게 할까 고민하는 이들이 늘 기발한 사랑의 방식을 생각해 내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토론토에서 공부하고 있는 밀월일기의 저자 박총 아우가 생각이 나더군요.


 


eKosta: 오랜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내년 코스타에서 더 맛깔스런 강의로 함께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황병구: 감사합니다




한국 라브리의 성인경 목사님

eKosta: 오랜만에 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말씀해 주시지요.


성인경: 서울 후암동에서 12년 남짓 청년 대학부에서 일하다가, 강원도 양양으로 이사한지 2년 다 되어 갑니다. 아시지만, 서울이란 곳이 청년들 만나기도 쉽고 찾아오기도 쉽지만, 제가 원하는 intensive하고 personal 만남을 가지기는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강원도 양양에 오색 밑에 카페가 하나 생겼어요. 카페 주인이 좋은 조건으로 라브리를 초청하셔서, 그리로 이사했죠. 그곳에서, 제가 서울에서 만나던 청년의 십분의 일을 만나지만, 인격적이고 조용하고 심도 있는 만남을 가질 수 있어서 훨씬 좋습니다.


eKosta: 라브리 사역을 시작하신 지가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어떻게 처음 라브리에 연관이 되셨는지 말씀해주십시오.


성인경: 라브리를 처음 만난 것은 프란시스 쉐퍼 책을 통해서입니다. 먼저 ‘이성에서의 도피’, ‘진정한 영적 생활’ 등의 책을 읽고 라브리의 본산지인 스위스나 영국을 가봐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총신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영국 라브리에 가보게 되었는데 그게 처음입니다.


eKosta: 쉐퍼의 책을 접하신 것은 신학교 다니시던 때인가요?


성인경: 신학교 들어가기 전이고 라브리를 접한 것은 신학교 다닐 때입니다. 그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쉐퍼책을 읽었으니까요. 영국의 라브리에 가서 공부하면서 이렇게 일을 하는 게 내가 이 시대의 청년 대학생을 돕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영국 라브리와 스위스 라브리에 4년 정도 있었고 주로 영국 라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eKosta: 자, 그럼 이코스타의 독자를 위해서 라브리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경: 라브리는 국제적인 기독교 공동체고 연구 센터인데요, 누구든지 정직한 질문을 가진 자라면 와서 질문하고 공부하며 쉴 수 있는 연구 단체입니다. 현재 스위스, 영국, 미국 보스턴과 로체스터에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오고, 믿지 않는 사람도 올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와서 기독교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고 신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곳입니다. 오랜 신앙을 가진 사람은 기독교 세계관, 문화관, 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기본 프로그램은 성경공부를 하는 것과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는 것, 진로와 인생에 대해 상담하는 것, 영적인 지식과 부흥을 도와주는 곳입니다. 기본 방법은 성경을 공부하고 세계관을 공부하면서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Kosta: 라브리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해 가는 것이 순수하고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라브리에 참여하는지, 참여하는 기간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성인경: 라브리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지는 못합니다. 극소수의 사람이지만 진리를 찾고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청년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주로 열 명에서 스무 명까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국 라브리의 경우는 더 작은 규모로서 될 수 있으면 열 명 이하의 청년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주고, 같이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일 큰 라브리는 스위스 라브리이고 미국의 보스턴의 라브리가 삼십 명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영국 라브리도 스무 다섯 명 정도의 학생이 있습니다.


eKosta: 보통 머무는 분들이 어느 정도 기간을 머무는지 궁금합니다.


성인경: 기간은 자유입니다. 보통 일주일에서 5주 6주 7주정도 머뭅니다.


eKosta: 한국에서 처음 라브리를 시작하실 때의 동기와 현재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시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경: 제가 라브리를 시작한 것은 영국 라브리에 가서 공부하면서 제 자신이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매우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영성에 대해서 잘못된 가르침이 굉장히 많다는 것입니다. 경건주의적인 영성이 있고 이원론적인 영성이 있었는데, 한국 교회에서도 유교적인 불교적인 영성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심각하게 도전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는 세계관 자체가 성경적 세계관이 형성이 되지 않고 세속적인 세계관이 마치 성경 적인 것으로 오해되거나 잘못 세뇌되어 있어서 세계관 자체가 개혁하고 바뀌지 않고는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에서도 라브리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동기입니다.


라브리는 가르치는 학생 숫자가 작고 규모가 작지만 큰 운동을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극소수의 인재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확실하게 키우는 것이 라브리의 원칙입니다.


eKosta: 시험 봐서 들어가야 하나요?


성인경: 아닙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지원하진 않습니다. (웃음) 그러나 극소수가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번 학기에 못 받아들이면 다음 학기에 오라고 합니다. 기대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학생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학생, 아프리카 학생, 인도에서 오는 학생이 있어서 국제적인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매 학기마다 외국인 학생이 한두 명 씩 들어오고 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한국학생들이 외국 학생들과 공부하면서 타문화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한국의 문제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영어 공부도 되고요. 외국학생과 같이 공부하는 것을 매우 반갑게 생각합니다.


eKosta: 머무는 동안 공부하는 내용은 주로 책과 토론을 통해서인가요?


성인경: 라브리의 공부는 대학원식 공부입니다. 학생이 라브리에 오면 먼저 라브리에 왜 왔는지 이유를 묻습니다. 공부의 방향을 지도교수와 간사들이 의논을 해서 교육과정을 짭니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학생이 오면 기독교란 무엇이냐, 성경이 뭐냐, 왜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하느냐하는 과정을 짜고 디스커션을 만들어주고, 신앙을 가진 학생이 오면 기독교 세계관, 문화관 등을 공부하도록 합니다. 프로그램을 짜주고 디스커션을 짭니다. 라브리가 갖고 있는 커리큘럼을 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틀을 짜서 적합한 커리큘럼을 만듭니다.


때 로는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강의 테이프를 추천하기도 합니다. 리포트나 에세이를 쓰도록 하기도 합니다. 교육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관심이 어떠냐 에 따라서 따로따로 프로그램을 바꾸는 거예요. 서울에서 오는 학생들이 맞춤교육이라고 하더군요. (웃음)


eKosta: 라브리를 공동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라브리에 와서 책을 읽고 씨름하고 고민하는 것뿐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많은 도전을 받을 것 같은데요?


성인경: 라브리에 와서 토론하고 공부하고 지적인 논쟁을 통해 변화되는 사람보다도 오히려 생활을 통해서 바뀌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단히 재미있는 현상인데요, 포스트 모던 시대가 왔고 포스트 모던 시대에 세뇌된 청년들이기 때문에 감각적이고 체험적인 인격적인 컨택을 원하고 이런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고 토론하는 과정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어떤 법대생 친구가 신명기에 나타난 법 사상을 공부하겠다고 했었습니다. 일주일동안 밤잠을 줄여가며 같이 공부를 했었는데, 나중에 온 편지를 읽어보니 같이 밥하고 밖에 나가서 풀 뽑고 나무 심고 하는 시간이 자기 인생을 바꿨답니다.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어요.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게 의미가 없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제가 곧 깨달았는데 이 친구를 변화시킨 것은 실제 삶이었다는 겁니다. 한번도 법학 공부하느라고 밖에 물줘 본 일도 없고 부엌에서 같이 밥해본 적도 없고 나무 가꾼다든지 꽃을 가꾼다든지 하는 경험이 없었던 거예요. 하나님은 공부라는 방법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고 삶의 경험을 통해서 사람을 변화시키기도 하십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매력이고 파워이기도 합니다.


eKosta: 재정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성인경: 라브리는 출판 수익금이 전부이고, 형제 자매들이 보내주시는 헌금으로 의존하고있습니다. 라브리는 영리활동이나 모금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습니다. 대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학생들도 모집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학생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학비는 없고 밥값은 냅니다. 밥값도 없는 사람은 가능하면 장학금을 드립니다.


eKosta: 저도 시간을 내서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 참 좋겠습니다.


성인경: 예, 오십시오. (웃음)


eKosta: 프란시스 쉐퍼하면 생각나는 것이 저에게는 기독교 세계관과 영성이라는 단어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을 많이 듣는데요 성목사님이 간단히 정의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인경: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 적인 기초를 가진 지적 체계입니다. 우주의 문제든지, 사회의 문제든지, 역사적 문제든지 성경적 기초를 가진 지적 체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성경과 떨어져서 안되고 단순히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문제를 체계적으로 학문적으로 성경적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이 마치 인간의 이성, 논리에 세워진 지적 체계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인간의 지적 체계는 성경을 이해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적으로 인간의 문화, 역사에 적용하는 학문의 체계입니다.


eKosta: 기독교 세계관과 영성은 별로 상관이 없으며, 영성은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으로, 세계관은 지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영성이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성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핵심이고 기독교 세계관에는 영성이 핵심이지 않습니까?


성인경: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영성이 없는 세계관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에 베소서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게 하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말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영적인 세계와 지적인 세계가 하나가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의 이원적인 세계관 때문에 신앙과 지성이 분립되는 것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아주 잘못된 것으로 보고 있고 신앙과 지성이 하나가 되고 신앙과 생활이 하나가 되는 것이 바른 기독교라고 보고 라브리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eKosta: 기독교 세계관이 근래에 한국 기독교 내의 화두가 되고 있는데, 복상이나 기학연을 중심으로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인경: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이 세대들이 일 세대들이 한 운동에 대한 정직한 반성을 하는 단계라고 봅니다. 저는 아주 복음적으로 보고 있고 앞으로 이들이 잘 해주기를 바랍니다.


논 점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일 세대들의 세계관 운동은 지나치게 개혁주의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게 마치 복음주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세계관으로 소개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개혁주의라는 것은 화란이나 미국에서 말해지는 종교개혁에 기초를 둔 세계관 운동인데 이게 전체 기독교 세계관이라고 소개한 것은 잘못입니다.


제 대답은 기독교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그룹은 이 그룹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얽매여서는 안되겠지요.


두 번째는 기독교 세계관의 내용을 너무 이성적으로 소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생활과 동떨어진 사변적이고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논의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책을 내러티브한 글로 써봤습니다. 이론적인 책도 써봤는데, 역시 이야기가 있는 책이 많이 팔리고 이해되었습니다. 이런 비판에 동의합니다.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전달해야하겠습니다.


셋 째로 서구적인 이론 틀을 한국 사회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 아니냐 하는 겁니다. 한국적인 문화 컨택스트가 통일문제, 빈부격차문제, 민주화문제, 여성문제 등 한국 사회의 당면문제를 토론하지 못하고 서구 사회의 문제에 주로 매달려 있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저 의 대답은 세계관 운동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겁니다. 지적 유산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 단계로서는 외국의 책을 번역하고 그대로 수용하는 단계가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 맞는 발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차세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일세대의 운동으로는 역할을 다한 것이 아닌가 봅니다.


eKosta:기 독교 세계관에 대한 정리 감사 드립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친구들 옆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던 386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다른 지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데요, 어떻게 요즘 세대의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성인경: 제 현재 결론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내러티브한 이야기가 있는 책을 계발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문제라든지 페미니즘 문제라든지 통일문제라는지 이런 삶 속의 문제를 터치하면서 왜 이런 대답과 공부가 필요한지 그 밑의 근본적인 원리를 가르쳐주는 방법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을 벌고 효과적인 공부를 위해서는 아주 정교하게 다듬어진 이론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관 공부의 초기에는 동기부여를 위해서 이야기가 있는 책이 필요해요. 그 다음에는 정교한 이론화 작업을 해야 학문적 발전이 있습니다.


바 울 사도의 기독교 세계관 작업이 바로 그것이라고 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콘텍스트를 보면서 대답을 해줍니다. 고린도전후서를 보면 성 문제가 심각할 때 기독교적인 성담론을 제시합니다. 한편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면 짜임새 있는 지적 토론과 논쟁과 합리적인 접근을 합니다.


포 스트 모던시대가 감각적이라고 해서 자기가 아무리 피부적으로 세대가 감각적으로 흘러간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합리적인 존재라는 거죠. 지적인, 이성적인 존재예요. 그래서 접촉단계, 혹은 초기단계, 동기부여 단계에는, 굉장히 재미있는 혹은 실제 삶과 연관된 이야기가 있는 세계관 접근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 그 단계를 벗어난 성숙한 사람에게는 훨씬 더 논리와 이론이 겸비된 조직적인 지적 설계, 지적 체계를 가진 작업 필요하다고 봅니다.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봅니다.


eKosta: 사실 코스타의 대상이 대학원생들이고 코스타 정신에도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배출하자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판이하게 다른 전공을 갖는 대학원생들에 코스타가 구체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잘 제시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참여하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내 학문분야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공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스타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거나 선교에 헌신하는 일도 참 감사하지만, 대학원생들답게 자신의 분야에서 기독교적 조망을 가지고 학문을 공부하는 일이 절실한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코스타에 바라는 점이랄까, 조언하실 내용이 있으신 지요?


성인경: 저는 일본, 중국 코스타를 다니다가, 미주 코스타는 처음 와 보았는데요, 참 심리학적이고 개인적인 접근을 많이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대학원생들이라 할지라도, 다들 공부하느라고 지치고 해서 외롭고 해서, 이곳에 와서 위로도 받고 마음에 힘도 받고 하려고 한다는 면에서, 그런 접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학원생답게 또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기독교 세계관을 좀더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점에 대해 하고픈 이야기들이 있는데요, 사실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서 학문을 제대로 하려면요, 우선 사실 성경공부를 제대로 해야하고, 신앙의 베이직을 분명히 해야 하고요. 이런 점에서는 코스타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신앙의 베이직을 잘 깔아주고, 순결한 삶에 대한 기초를 깔아주는 작업들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리더들이 이거라도 하자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점에 대해서는 감사 드리고, 이 일을 계속하라고 권합니다. 기본이 안된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 다음 단계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기초가 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겁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자신 학문 분야를 마음껏 최고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관 입장에서는 학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자기 분야의 학문에 대해서는 비기독인보다도 더 탁월한 수준의 학문적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지만 현 학문이 상대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이기 때문에 사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 상대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들에 노출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기 쉽지요. 그러지 말고요, 학문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인 상대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비판이라 함은, 성경적인 기초 위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서 버리자는 거죠. 고린도후서 10장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거든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항하는 잘못된 이론과 세계관은 다 파하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성경적인 기초에서 그 학문이 도저히 성경의 기본적인 맥락과 대치된다고 할 때는, 그 이론이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해서 밝혀줘야 합니다. 하지만, 고린도후서 10장에 또 보면, 모든 이론을 수용하라, 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의 핵심은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초해서 이것이 충분히 옳고 바른 데이터라면, 이것이 비록 비기독교인이 개발하고 발전시킨 것이라 할지라도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수용한다 몰입한다는 의미로, 즉 적극적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거죠. 참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대학원생이기 때문에 부탁드리는 것은, 세상의 학문이라도 옳은 것이라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비판할 것은 비판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단지, 제발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의 학문이라고 해서 쉽게 비판하거나, 수용하는데 두려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러나 한가지 조심할 것은, 어떤 것이 너무나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농후할 경우에는, 수용하기보다는 버리는 쪽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제가 기본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대학원생답게 학문의 최고의 위치에 가려고 애를 쓰되,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겁니다.


eKosta: KOSTA 에서도 그런 전공 분야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기 위해, tmKOSTA를 열고 있지만 3년 되어 가는 tmKOSTA도 아직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문에 대한 기독교적 사고는, 전공별 모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지, 목사님께나 교회에서 배울 수도 없는데, 한 5년 10년 후에는 tmKOSTA 출신 졸업생들이 각 분야의 멘토로 섬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반면에 아직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에게 전공분야로의 부르심, 즉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소명이 교회와 관련된 부르심만은 아닐텐데 갑자기 신앙이 뜨거워져서 공부를 포기하고 신학교로 가는 경우도 보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성인경: 소명은 Lordship하고 관련이 되어 있는데요, 만일 대학원생들이 예수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면, 자신의 전공분야의 주인도 예수님이다라고 인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자신의 전공의 발전을 기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첫 번째 소명입니다. 만일 대학원생이 자기 전공을 천문학, 혹은 물리학을 한다면, 그 분야의 학문적 업적을 쌓는 것, 말하자면, 박사과정 논문을 쓸 때, 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는 좋은 논문을 쓰는 거죠.


eKosta: 그 자체가 소명이라는 거죠?


성인경: 그렇죠.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는 겁니다. 학위를 받는 수단으로 대충 논문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학문적 업적을 내어놓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부른 1차 소명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전공을 살려서 평생에 학문적 업적을 남겨 놓는 것이 하나님의 중요한 소명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 전공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전도도 하고 양육도 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중요한 부르심입니다. 하지만, 부탁컨대, 전공을 소홀히 하면서, 전도하고 사람을 키우는데 만 너무 신경 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만일 그 전공분야를 자기가 최선을 다 않고 포기한다면, 그 분야를 누가 점령하겠습니까? 폴 존슨이라는 역사학자가 이런 분석을 했는데, 200여 년 전에 서양 기독교는 각 전공분야의 예수님의 Lordship을 포기함으로써, 모든 분야가 다 세속화되는 길을 열어 주었고, 아직도 그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했다고요. 그 분은 말하기를, 그 영역에 대한 주도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200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요.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우리의 삶의 영역 중에서, 특히 전공분야에서 주님의 영광과 주권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대학원생들, 교수님들, 연구원들에게 이런 특별한 사명을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소명입니다. 부탁입니다. 자신의 분야에 학문적 업적을 나타내십시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너희들의 업적이 따라오리라. 그 업적은 전도한 업적뿐만이 아니라, 예술가면 좋은 예술적인 작품을 만든 것, 과학자는 과학적 업적을 남겨 놓은 것, 이런 것들이 어디까지 따라 오느냐 하면, 하나님나라까지 따라온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전 공만 공부할 수는 없죠. 자기의 취미생활도 하고 다른 사람도 돕고, 전도도 하고 말입니다. 나는 예수 믿는 대학원생들만큼 행복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은, 한국 청년 1000명중의 한 명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정말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죠.


eKosta: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학문에 관해 자주 듣는 얘기 중에 학문의 탁월성을 추구해야 하며 비기독교인들 보다 더 뛰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요,


성인경: 맞아요. 그런 얘기 들으시면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웃음)


eKosta: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꼽자면 학문의 구조 자체가 타락한 상태여서 경쟁구조 속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탁월해지려면 경쟁구조 속에 빠지게 되고, 또 그 경쟁 속에 있다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동기가 소멸되어 지는 듯한 강한 느낌이 들거든요.


성인경: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탁월성만이 우리의 목표는 아니에요. 그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참 좋겠어요. 학문을 할 때, 탁월성이 중요한 기준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 기준들을 이야기해보죠. 탁월성은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탁월성 추구와 동시에, 그에 따르는 도덕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만일 탁월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학문적 업적을 도용한다던가 하면, 그 탁월성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됩니다. 탁월성이라 하면, 그에 따르는 다른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도덕성입니다. 탁월성이라 하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는 또 다른 하나의 기준, 즉 독창성이랄까 창의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탁월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우수하고, 최고의 것을 추구한다기 보다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누구도 만들지 못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새로운 것을 의미하죠. 탁월성을 최고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수준차이를 생각하기보다는 독창성이라는 기준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의 기준을 말하자면, 종교성입니다. 말하자면, 탁월하고 윤리적이고 독창적인데, 만일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런 업적의 탁월성, 독창성은 인정받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독창적이어도 신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합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린다면, 사상적으로도 전통의 기독교 정신과 배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편적 학문 정신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기준들을 함께 보아야지, 학문의 업적을 탁월성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경쟁의 구조 속에서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겠죠.


eKosta: 세계관과 학문에 관한 중요한 얘기들 감사합니다. 혹시, 이번 코스타에서 예수님을 처음 믿게 된 분들이나 침체기에서 회복된 분들에게 하고픈 이야기가 있으신 지요? 사실 코스타의 약발이 얼마나 갈까라는 문제의식이 있는데 eKOSTA도 그런 배경에서 코스타의 감동과 결단을 현장으로 연결하자는 뜻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글이 언제 실릴지는 모르지만, 그 때, 여기 휘튼대학이 아닌, 현장에 가 있을 분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지요.


성인경: 제일 먼저 이야기 드리고 싶은 건, 영적인 실체, 즉 spiritual reality가 순간 순간 하나님께 붙어 있으려고 애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까 프란시스 쉐퍼의 책에서 제일 중요한 테마가 영성이라고 했는데, 쉐퍼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영성은 일회적인 은혜의 충만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순간 순간(moment by moment) 적용하는 거죠. 예를 들면, 비디오가게에서 영화를 빌릴 때라도, 어떤 비디오를 볼까, 포르노 영화를 볼까, 로맨스 영화를 볼까, 혹은 액션 영화를 볼까 결정할 때도, 순간 순간 바르게 결정하려고 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공부할 때, 데이트할 때, 인터넷 검색할 때, 친구랑 교제할 때, 혼자 있을 때, 순간 순간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놓치지 않았다고 봅니다. 또 하나를 추가한다면, 규칙적인 기도생활, 규칙적인 성경 묵상, 또한 규칙적으로 예수 믿는 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생활 없이, 약발이 1년 동안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규칙적으로 자기의 경건의 삶을 늘 조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Kosta: Tony Campolo박사님도 언급하셨듯이, 함께 자신의 삶을 체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겠습니다. 이민교회들이 참 어렵지만 그 가운데서도 서로의 신앙을 점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경: 특히 double check을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겠죠.


eKosta: 사실 이민교회들이 참 어렵거든요. 그런 중에서도 서로의 신앙을 점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경: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그 checkup은 이차적입니다. 아무리 친구가 자신의 삶을 점검해 준다해도 24시간 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주일에 한번, 많아야 매일 점검 받을 수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핵심은, 순간 순간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것,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걸 놓치면, 기독교 영성의 핵심을 놓치게 되고, 신앙생활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라브리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을 회복하자는 겁니다. 청년들이 죄를 처음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할 때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요. 하지만 그가 공부하고 하나님 제게 새로운 insight와 탁월성과 독창성을 지금 주십시오 라고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머리만 의지한다는 거죠. 아시겠죠? Moment by moment trust라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essence인데, 그걸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eKosta: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모님께서는, 라브리로 이사하실 때 혹은 라브리 사역을 하실 때, 반대를 하시지는 않으셨는지, 아니면 동역자로 잘 도와 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KOSTA에서도 보면, 마지막날 mission calling을 하면, 남편은 마구 뛰어 나가지만, 아내는 그냥 앉아 있어서,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이 있거든요. 특히 유학생들 중에는 아내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공부 않는 아내들이 갖는 어려움, 외로움, 또 자아에 대한 실망을, 남편들은 어떻게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지, 또 남편들은 공부만이 길이다라는 답말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성인경: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저는 사실 제 아내와 10년 이상 함께 동역 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제 아내가 일만하고 공부를 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거든요. 아내들이 공부를 안 하고 있을 때 콤플렉스를 가질 수 있는데, 제가 부탁드리는 것은, 아내들도 대학원 같은 전문적인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모으고 생각하고 글도 쓰고 발표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 아내 이야기를 하면, 제 아내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러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셋을 낳았고, 또 라브리가 교육기관이다 보니까, 계속해서 청년 대학생들이 오니까, 그들을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교육적인가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삶 속에서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가르치는 법이었어요. 제 아내의 강의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면 ‘생활 속의 세계관 교육’이죠. 말하자면, 한두 가지 관심분야를 자신이 정해서, 꾸준히 자료도 모으고 독서해서, 교회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발표하고, 히어링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하고,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글도 쓰고 했으면 좋겠어요. 제 아내는 사실 공부할 기회를 놓쳤어요. 하지만 교육학 전공한 사람 못지 않게, 교육학에 관한 많은 글도 썼지요. 이건 상아탑에서 배운 것이라기보다는 현장에서 깨달은 진리이죠. 자기가 수천 명의 청년들 밥해주면서, 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까 를 고민하면서 깨달은 거라고 할 수 있죠. 특별히 학교 가서 공부를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루터가 말했듯이, 가정이 최고의 영성 훈련 장소예요. 남편과 아이들 키우면서, 신학교 못지 않은 영성 훈련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온갖 유동적인 상황 속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곳이 가정이거든요. 재정문제, 부부관계, 자녀교육문제 등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전공분야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영성을 발생시키는 곳이 가정이라는 것을 인식하면,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아내도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이 있으니, 가서 공부하라고 많이 권했지만, 자신은 생활 속에서 공부를 하겠다고 거절을 했지요. 그런 것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지면, 아내들도 전문분야를 공부할 수 있으면 좋죠.


eKosta: 하지 못한다고 안달하지 않고, 주어지면 또 열심히 하고요.


성인경: 남편들은 아내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를 좀 더 했으면 좋겠어요. 저희 라브리는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오면 반반씩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만일 오전에 남편이 공부하면, 오후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보고, 아내들이 공부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것이 가장 힘든 노동이기 때문에, 부부들에게는 노동하는 시간을 전부 면제해 줍니다. 저희 라브리는 부인들에게 똑같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부인들이 똑같은 레포트를 쓰면, 그들에게 먼저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eKosta: 오늘 해 주신 많은 말씀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복음과 상황의 서재석 편집장님


eKOSTA 안녕하세요, 서 부장님. 작년부터 이코스타와 복음과 상황(복상)이 기사제휴를 맺고 있는데, 잡지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어떤 잡지이고 어떻게 시작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서재석 복상은 매 달 발간되는 기독 월간지로 1991년 1월에 창간되어 13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1991년의 한국은 문민정부가 탄생하기 직전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교회 안에서 비교적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던 복음주의 권에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여파로 공정선거 감시운동 등 지역교회 혹은 선교단체 학생청년들이 비로소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1974년에 발표된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조항들에 지도자들이 눈을 뜨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청년 학생들에게 복음적 사회참여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80년대 말에 이르러 복음주의 권 안에서 피크에 오르는데, 그 운동을 주도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리더들이 이런 운동이 확산되려면 어떤 매체, 즉 문서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를 느꼈고, 이렇게 해서 시작된 잡지입니다. 처음 창간할 때는 90년대 초반이었기 때문에 아주 급진적인(radical한) 내용들이 많았고, 당시로선 생소한 상황(situation 혹은 context)을 다루니까 일반 교회 지도자들은 굉장히 경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잡지가 상업적으로 몇 차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eKOSTA 제 기억으로도 잡지가 폐간될 뻔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서재석 네, 폐간 위기가 네댓 번은 있었고, 실제로 97년 2월 호 같은 경우는 폐 간사까지 싣고, 그 다음 호를 3/4월호로 합권해 발간한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eKOSTA 그럼, 서 부장님은 언제부터 복상 일을 하셨나요?


서재석 저는 95년 3월부터 시작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복상 역사의 3분의 2를 함께 하게 됐는데, 제가 참여할 시기에는 평판이 아주 어려웠었습니다. 야구로 치면 10: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패전처리용으로 투입이 된 것 같습니다. 9년째 일하는 동안 상황은 그렇게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죠.(웃음)


eKOSTA 그래도 9년 동안 꾸준히 일 하시는 모습을 보면 패전처리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그럼 복음주의권 내에서는 유일하게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는 잡지라고 봐야겠네요.


서재석 네, 그렇게 보아야겠지요? 최근에 한 3년 전부터 대학생들한테 초점을 맞추어서 새벽이슬(dawndew.com)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도 생겼는데, 신문/잡지로 내다가 재정적인 이유로 지금은 폐간을 했고, 뉴스앤조이(newsnjoy.co.kr)가 교회문제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복상은 복음주의 노선에 건실하게 기초하고 있는데 비해서 뉴스앤조이는 신학적 스펙트럼이 좀 넓다고 볼 수 있습니다.


eKOSTA 복음주의가 아닌 경우에 유사한 잡지가 있나요?


서재석 특별히 진보 진영에서는 그런 잡지들이 계속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1957년에 만들어진 <기독교 사상>은 통권 500호가 넘고, 그밖에도 기장 측의 작은 잡지들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재정적인 이유로 거의 대부분이 없어졌습니다.


eKOSTA 서 부장님은 개인적으로 어떻게 복상에 참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서재석 대학 시절 서울 광화문에 있는 내수동 교회(예장 합동)를 다녔는데, 대학생 운동이 활발한 교회였습니다. 큐티, 성경 공부, 제자 훈련 등 거의 선교단체급의 훈련들을 그 당시 지역 교회에서 받을 수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좋은 교회였습니다. 대학부에서 훈련받고 후배들을 돕다가 하나님께서 문서운동에 관한 부르심을 주셨고, 그래서 직장 생활을 잠깐 하다가 문서 운동에 전임 사역자(full time worker)로 뛰어들었지요. 처음에는 성경공부 교재를 만든 다든지, 회보를 만든 다든지, 캠퍼스에서 실제로 학생들과 성경 공부를 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병행했었고, 복상에 들어오기 전 3년 동안은 IVP에서 편집과 출판기획 일을 했었습니다.


eKOSTA 잡지 일을 혼자서 9년 동안 해 오셨으면 외로움도 많으셨겠습니다.


서재석 글쎄요, 외형적으로는 그런데, 이 문서 운동이라는 것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자들이나 다른 자료들, 다른 저자들의 글이나 생각이나 사상을 섭렵해 가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덜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자신이 일단 즐거우니깐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책 읽는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 했다면 아마 많은 보수를 주면서 하라고 해도 하지 못 했을 겁니다. 책 읽는 자체가 즐겁고 글 쓰는 일, 또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고 균형 잡힌 사고방식을 갖게 하고 적절한 비판의식을 갖게 하고, 글 쓰는 훈련을 시키는 게 아주 많은 의미가 있었어요.


eKOSTA 코스타에서 매년 책을 소개해 주시는데, 평소에 어떤 독서 습관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하네요.


서재석 저 개인적으로는 일단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여건이라든지 환경은 좋은 것 같은데, 잡지 편집을 하고 있으니깐 여러 출판사에서 신간 소개를 위해서 복상 사무실에 거의 매월 20-30권은 오는 것 같아요. 그 책들 중에서 좋은 책을 골라내서 소개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필요한 책들은 신문의 자료나 정보를 본다든지 아니면 인터넷 서점들의 자료를 통해서 중요한 책들은 구입을 해서 읽고 있지요. 그렇다고 예전처럼 따로 시간을 정해서 읽지는 않지만, 20년 이상 책을 읽어 왔으니깐 비교적 빠르게 읽어 나가는 편입니다.


eKOSTA 책을 읽는 면에 있어서 직업적으로 읽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서재석 단점은, 책의 홍수 비슷하게 밀려드는 책들을 읽다 보면 조금 건조해(dry)질 수 있는데, 몇몇 책들은 밑줄을 치거나 빨리 읽지 않고 묵상을 하면서 정독을 하고, 또 메모를 하면서 내용을 잘 정리해 놓는 식으로 극복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비교적 잡식성 독서를 하는 편인 저는, 딱딱한 책과 쉬운 책, 학문적인 책과 일상생활에 관한 책, 기독교 서적과 일반 서적을 오가는 독서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독서에 물리거나 권태를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균형 잡힌 독서생활을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eKOSTA 고전에 해당하는 책들은 읽을 기회가 적지 않나요?


서재석 고전 읽기는 굉장히 중요한데요, 신앙 고전도 그렇고 일반 고전도 중요한 책들이 많은데, 사실 고전들이 양이 좀 많고 두껍고 난삽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개인적인 독서 훈련을 위해 꼭 끼어 놓지요. 주로 전기나 자서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고전들을 다시 출판하는 크리스천 다이제스트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한 권이 보통 7, 8백 페이지에 이르지만, 맘먹고 도전해 볼만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코스타에 오는 비행기에선 1955년에 에콰도르에서 사역하다가 아우카족이란 식인 부족에게 희생된 짐 엘리엇 등 다섯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다룬 『영광의 문』(Through Gates of Splendor)을 다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eKOSTA 코스탄들에게 책을 소개하실 때 어떤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서재석 코스타에서의 책 소개는 쉬운 일이 아닌데요, 일단은 늦어도 5월초까지 코스타 Book Table에 있어야 할 책들에 대해서 한국에서 목록을 보내드리는데, 책 선정 작업은 일주일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작년 코스타 이후부터 올해 코스타 열리기 직전, 그러니깐 1년 간 나온 신간들 가운데서 중요한 책들을 고르고, 최근 몇 년간 나온 책들 가운데서 꼭 필요한 책을 고르다 보면 약 300-400종정도 되는데, 그 중에 실제로 코스타 집회에서 직접 소개할 수 있는 것은 화, 수, 목요일 오전 5분씩이기에 가급적 여러 사람에게 두루 필요한 책들 위주로 하다 보니 늘 기본적인(Basic) 책들에 치우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코스탄들은 소개되는 책들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고 그런 책들은 즉석에서 다 팔리는 것 같은데, 사실 소개되지 않은 책들 가운데서 양서들도 많이 있습니다. 조금 시간을 내서 살펴보시면 숨겨진 보물들을 꽤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eKOSTA 그럼 코스타에 있는 모든 책들이 서 부장님의 추천을 거친 책이라고 봐도 되겠네요.


서재석 음, 제 개인의 추천이라기보다는 코스타의 역사가 담겨 있는 책들도 있고, 그 해에 강사로 오시는 분들의 추천을 일부 받기도 하니깐 협력작업이라고 볼 수가 있겠지요. 저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뿐입니다.


eKOSTA 정말 몰랐습니다. 코스타에 꽤 깊이 관여하셨군요.


서재석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서 기쁜 마음으로 돕고 있습니다.


eKOSTA 정해진 시간에 책 소개를 하시다 보니 아쉬운 점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중요한 책들을 코스탄들이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가 없을까요?


서재석 매년 코스탄들이 등록 시에 받는 가이드북에 주제별로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으면 좋겠고, 평균적인 유학생들의 1년짜리 독서 커리큘럼이 샘플로 제시되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년 가이드북에는 제시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 보겠습니다.


eKOSTA 서 부장님께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어떤 책들입니까?


서재석 제 개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저자는 영국의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인데, BST(Bible Speaks Today) 시리즈로 나온 사도행전, 로마서, 에베소서 등 성경 강해서들은 성경을 보는 눈뿐만 아니라 신앙 문제를 정리하는 데도 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기본진리』,『그리스도의 십자가』,『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 등 존 스토트의 50여 권에 이르는 책은 거의 다 봤는데, 기독교적 지성(Christian Mind)을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국내 저자 가운데에는 대학 시절에 지도해 주셨던 송인규 교수님의 여러 책들이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eKOSTA 송인규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셨다구요?


서재석 송 교수님은 제가 다니던 교회 대학부의 전도사님이셨는데, 2년 간 지도를 받을 수 있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도움과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 그 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 역시 제 나이의 평범한 그리스도인처럼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거나 아니면 일년에 한 두 권 읽는 삶에 머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KOSTA 한국 출판계, 특히 기독교 출판계의 상황이 매우 나쁘다고 하는데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독자가 책을 안 읽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 크리스천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할 수 있을지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신 지요?


서재석 사실, 한국 교회의 상황은 목회자들의 역할이 성도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목회자들께서 책의 중요성, 독서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면 상황이 좀 나아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주 교회 나가면서 일년에 50회 이상 목사님의 설교나 광고 시간을 접하게 되지만, 책 소개를 하는 교회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중요한 책, 신간, 고전 중에서 책을 선정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또는 교회마다 <이 달의 책>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든지 하면 훨씬 흐름이 달라질 것 같거든요, 실제로, 이 달의 책을 운영하는 교회들을 보면 한 책이 100권 이상 팔리면서 성도들이 읽게 되고, 또 조금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요약과 토론을 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우리 한국 교회는 이상하게 중요한 포지션,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일수록 책을 안 읽는 경향이 있지요, 흔히들, 어떤 교회에서 누가 장로로 피택 되면 ‘성경 많이 보시고 기도로 많이 준비하십시오’ 하는 게 훈련의 알파와 오메가인 것 같은데, 하지만 제가 만약 목회자라면 그렇게는 안 할 것 같아요. 물론 그것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지만 독서를 많이 시키면 교회의 일꾼답게 생각을 무장시킬 수 있거든요. 또 읽은 책들에 대해 리포트를 쓰게 할 수도 있는데, 이러면 안 읽을 수가 없겠지요.(웃음) 장로나 리더로 피택 되어서 준비하는 기간이 일 년이라고 하면, 그 일년 동안에 최소한 한 달에 한 권씩 10권 정도의 책을 읽히면 웬만한 중요한 교회 이슈들과 교회 일꾼으로서 가져야 할 자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음, 목회자들이 책에 대해서 얘기를 잘 안 한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요즘 목사님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닐까요?


서재석 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목사님들은 대개 매주 설교를 준비하시면서 주석이라든지, 강해서 뿐만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어필하는 예화를 준비하시기 위해서도 책을 안 읽지는 않을 거예요.


eKOSTA 사실 이코스타 독자들도 유학생들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책을 가장 많이 읽어야 될 위치에 있지만 학교 과제, 논문 때문에 많이 읽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최근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책을 쉽게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 서 부장님께서 책 읽기의 중요성을 언급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서재석 우리가 한국 교회의 기성 세대를 욕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지금 유학생 세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그룹들이 이전 선배들에 비해 독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우리 역시 몇 년 뒤 기성 세대로 편입되었을 때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기 훈련(Self-Discipline)은 말씀과 기도 생활뿐만 아니라 이제는 독서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Lifestyle)로 인식하면서 적극적으로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유학 시절이 어렵고 힘들다고 하지만 코스타에서 추천하는 중요한 책들을 중심으로 한 달에 1권 정도는 읽는다고 다짐하시면 좋겠어요. 한 달에 1-2권 정도 읽으면 일 년이면 10-2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유학 생활 3-4년 하는 동안 50권 안팎의 책을 읽을 수 있는데, 그 정도면 굉장히 많이 읽는 것이거든요. 50권 안팎의 책을 읽게 되면 지적으로나 영적으로 무장되고, 교회와 사회 현상을 기독교적인 안목으로 보는 눈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리라고 봅니다. 처음이 어려운데, 그것을 습관화하기 시작하고 꾸준히 자기 훈련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eKOSTA 어떻게 보면 역설인 것이 외국은 책값이 상당히 비싼데도 불구하고 질 팔리는 반면에, 한국은 책값이 싼데도 팔리지 않아서 출판 업계들이 힘들다는 것을 보면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서재석 한국도 요즘에는 책값이 올라가는 추세인데, 일반 서적, 특히 인문 서적 가운데는 2-3만원 하는 양장본 책자들도 외국처럼 늘어나는 것 같아요. 경제적 부담도 조금 있기는 한데, 중요한 건 1%가 됐든, 5%가 됐든 자기 소득의 일정 비율을 책을 사는데 투자한다는 개인적인 원칙 같은 것을 세워두면 좋겠습니다.


eKOSTA 복상 홈페이지(goscon.co.kr)는 독자 소모임 같은 것을 많이 운영하고 계신데, 글이 많이 올라와 있나요?


서재석 아직 까진 표지와 목차, 편집장의 글 정도만 제공하고, 전체 article은 올리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미 웹진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조만간 온라인 판을 대폭 강화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자 소모임은 여러 개가 있는데, 현재 가장 활발한 것은 서울독자모임으로, 매호마다 지난 호에 대한 모니터링 작업을 신랄하게 해 주어서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eKOSTA 정기 구독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됩니까?


서재석 구독자수는 영업 비밀인데(웃음), 생각하시는 것보다 적을 거예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기 돈 내고 잡지를 정기 구독하시는 분들은 저희 잡지뿐 아니라 아직 많지 않아요. 복상 같은 잡지는 유료 정기 구독자가 3,000명 정도는 되어야 자립 경영을 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거기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eKOSTA 복상을 읽다 보면 몇몇 필진들로 제한적이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고정 칼럼 외에 투고가 되는 글들이 많지 않습니까?


서재석 아주 좋은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사실, 잡지가 매 번 기획을 새롭게 한다든지 다양한 필자들을 계속 등장시켜야 하는데, 저희는 과도할 정도로 연재 필자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연재 필자들의 문장이, 글이 좋다는 평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는 새로운 필자들을 영입하고 필자들을 섭외하고 싶은데, 재정적인 부담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딜레마이기도 한데,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eKOSTA 일부 목사님들 외에는 눈에 띄는 저자가 많지 않은 현상인데, 글을 쓰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적다고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발굴이 안 되는 건가요?


서재석 아직까지 필진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희망적인 것 중에 하나는 해가 갈수록 젊은 필진들이 늘어가고 있는 거예요. 인터넷 시대를 맞아 과거에는 글 쓰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나 다 키보드 앞에서 조금씩 쓸 수가 있기 때문에 잠재적인 필진은 어느 정도 형성되어 가는 것 같아요. 꼭 글쟁이는 아니더라도 신앙과 자기 생각, 전공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업을 글로써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이죠. 또 전문인들 가운데서도 실력을 갖춘 분들이 여럿 있어서, 전통적으로 목회자와 신학교 교수님들을 중심으로 한 필진에 이런 전문적이고 젊은 필자들이 조금씩 형성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코스탄들도 잠재적인 우수 필진 공급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웃음)


eKOSTA 전문가로서 이코스타를 평해 주시고, 조언을 해 주시면 한계 내에서 바꿀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재석 우선, 이코스타가 지난 2년 간 코스타 운동에 중요한 지원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데, 실제로 매월 글이 업데이트 될 때마다 클릭 수, 조회수가 데이터 적으로 입증되는 것 같습니다. 이코스타가 없었을 때에 비해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와 조짐들이 보이는데, 앞으로 웹진으로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메뉴를 좀 다양화 할 필요가 있는데, 한 달 내내 같은 글이, 같은 포맷으로 올라와 있는데, 물론 매 번 바꿀 수는 없겠지만 자주 들어오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신다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씩 뉴스라든지 아니면 짧은 아티클 서비스, 즉 볼거리를 늘려 주면 좋겠습니다. 비슷한 주문이 되겠지만, 시대 상황에 맞추어서 약간 시각적으로도 돋보이게(visual하게) 만들었으면 해요. 또 하나는 역시 복상과 마찬가지로 필진 문제인데요, 잠재적이고 가능성 있는 필진들이 많은데 비해서 이코스타에 투고를 하시는 분들은 제한이 되어 있잖아요, 특히, 연재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일정한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편집 진들이 연재 글의 비율을 다소 조절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매월 새로운 필자를 한 명 이상씩 소개한다든지 하는 원칙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KOSTA 네, 감사합니다. 제일 아쉬운 점은 독자 광장이 좀 활발해지면 하는 건데요, 매 달 클릭 되는 횟수에 비해서 활발하게 운영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서재석 독자 광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슈 파이팅(issue fighting)을 잘 할 필요가 있는데, 어떤 주제에 대해 찬반 토론을 붙인다든지, 또는 어떤 제안을 받는다든지, 자료를 업데이트 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eKOSTA 이 인터뷰를 읽는 분들 가운데 복상을 정기 구독하시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씀해 주세요.


서재석 복상 홈페이지(goscon.co.kr)로 들어오시면 정기 구독에 대한 안내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에 계시기 때문에 항공 우편료까지 내야 하니깐 조금 부담은 되실 것 같은데, 코스타에 참석한 분들은 1년 구독료를 $60 내시면 됩니다. 그 돈이 어떻게 보면 큰돈이고 어떻게 보면 작은 돈인데,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시는 분들은 자신의 자아를 위해 투자를 하시면 좋을 것 같고, 꼭 복상이 아니더라고 관심 있는 저널이나 잡지를 자기 돈 내서 구독하는 습관을 길러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eKOSTA 네, 이렇게 인터뷰에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 드리고, 복음과 상황이 더 좋은 필자, 더 많은 독자들을 얻어가면서 한국 교회와 기독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잡지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예수전도단 홍성건 목사

eKOSTA 인터뷰


예수전도단 홍성건 목사


eKOSTA 제가 알기로는 홍성건 목사님은 처음으로 코스타에 참석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경위로 코스타를 참석하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홍성건 목사 코스타에 관계하는 사람들 중에 잘 아는 사람이 많이 있고, 여러번 초청을 받았었는데 그 때 마다 시간이 안 맞았어요. 코스타와 같은 기간에 늘 한국에서 예수전도단 대학생 수련회가 있었어요. 지금 이 시간도 사실은 전체 대학생 수련회가 열리고 있는 기간이라구요. 그래서 안된다라고 말했는데, 곽수광 목사가 국제본부를 코디네이트 하면서 작년말에 또 다시 부탁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이번에는 가자 하고 왔어요.


eKOSTA 그럼 한국에 예수 전도단 수련회가 있는데도 예수전도단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그 집회를 포기하고 이렇게 코스타에 참석하셨단 말씀인가요? 코스타로서는 너무너무 귀하고 고마운 일이군요. 그럼 목사님께서 전해들었던 코스타에 대한 이미지와 직접 와서 보신 후 그 느낌은 어떻게 다른가요?


홍성건 목사 사실 코스타 얘기 들을 때마다 그냥 그런 모임이 있나보다 했었지요. 유학생들을 위한 수련회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막상 와 보니까 훨씬 더 헌신되어 있고, 훨씬 더 소망이 있고, 사회 각 분야의 중요한 사람들이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전체가 자원봉사(volunteer)로 움직인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고 그것이 코스타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 인상이 좋았어요.


예수 전도단 이야기


eKOSTA 코스타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아직 예수 전도단과 홍 목사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예수전도단과 목사님 소개를 좀 해 주시지요.


홍성건 목사 예,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구요. 예수전도단 그러면, 사실은 단체의 시작은 한국 안에서, 어떻게 보면 자생적으로 시작되었지요. 그렇지만 예수전도단을 시작하신 분은 미국 선교사였고, 60년대 초에 한국으로 선교를 오신 오대원 선교사님이었어요. 그분이 한국에 와서 사역하시다가 사역의 실패감을 맛보고 상당히 좌절 속에 있다가 안식년으로 미국 땅에 돌아갔지요. 그 당시 미국에서는 Jesus People Movement가 있었어요. 그래서 상당히 많은 히피들, 즉 마약하고 하던 사람들이 돌아온 것이 60년대 말이었지요. 그런 가운데서 성령의 체험을 많이 한 대학생들의 조그만 모임이 있었는데 그분이 그 모임에 참석하게되었어요. 마음이 실패감으로 좌절되어 있다가 성령의 체험을 하고 그런 다음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사역을 하겠다 하면서 시작한 사역이 예수전도단이죠. 이분은 비록 선교사이지만 한국말에 능통하시고 사역하시는 대상들이 한국사람이고 다른 외국 선교사랑은 좀 다른 면이 있었죠.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은 청년들이었으며 교파를 초월해서 모였어요. 단순하게 우리의 모임의 중심이 예수를 전하는 단체가 되자고 해서 예수전도단이라고 했죠. 마침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큰 영적 각성운동이 있었고,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리는 복음성가(Gospel song)가 한국에 들어왔죠. 예수전도단의 모임의 특징이 있다면, 성령, 또 하나는 예배 즉 그 당시 말하는 복음성가를 통한 예배, 그리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증거하는 삶, 또 기도 많이 하는 특성이 있지요. 처음에 이런 모임을 하는 것은 한쪽으로는 좋은 반응이 있었어요. 왜냐하면 한국의 청년들이 많이 모이고 새로운 스타일의 예배가 있어서 흥미가 있었고 신선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한국교회에서 아주 어색하고 생소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화요모임을 가졌었는데 찬양과 기도를 통해서 많은 청년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한국 교회에서 그 뒤부터 경계하기 시작했지요. 그 모임에 가면 손들고 찬양도 하고 방언도 하고 하니까, 이것이 이단이 아닌가 했었지요. 그렇지만 교회는 못 막았어요. 청년들은 계속 그 모임에 갔기 때문이지요. 근데 감사한 것은, 예수전도단이 원래 멤버쉽이 없으니까 이 청년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교회에서 와서 은혜 받고 바로 교회로 들어갔지요. 화요모임이 끝나면 바로 주일에 교회에 돌아갔어요. 초반에는 한국 교회 안에서 아주 작은 예배의 모임이었지만, 알다시피 지금은 많이 바뀌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예수전도단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데 도구로 사용하신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중보기도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당시에 한국 교회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용어였고, 그렇지만 지금은 온 교회가 중보기도 사역을 하고 있고, 예배도 그 당시에는 예수전도단만 하는 예배였지만 지금은 예수전도단보다 더 잘하더라구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 다음에 전도, 그때까지만 해도 명동이나 종로나 서울역 등 길가에서 하는 전도는 생소했었어요. 그렇지만 그것도 하나의 흐름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 다음에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점점 반응이 좋아지고 있지요. 예수전도단은 목적 자체가 국내에서 복음을 전하고 해외에 선교하는 목적이지만, 우리가 해야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교회가 해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우리 단체에게 좋은 선물들을 많이 주셨어요. 교회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좋은 선물들을 먼저 주셨는데, 그 이유는 교회에 흘러가라고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이러한 것들이 저희 단체의 특징들 이예요. 교회를 섬기고 교회를 힘있게 하는데 저희 단체를 사용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쯤에는 처음부터 우리를 부르신대로 이제 세계 선교를 감당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해서, 전도에 더 힘쓰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사역이 활발하고 중고등학생들의 청소년 사역 또한 활성화 되고 있어요. 예수전도단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자훈련이고 그것이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죠. 단순한 제자훈련이기 보다는 독특한 훈련이며, 지적 중심의 제자훈련 이라기 보다는 성품훈련과 내적 치유에 중점을 두었던 일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러한 흐름으로 흘러가게 하신 것 같아요. 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그것도 아주 생소하고 뭐 이단 소리도 들었지요. 지금은 또 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으며, 또 다음에 묵상, 그것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사람들은 아마도 예수전도단에서 그런 영향을 주었는지를 잘 몰라요. 옛날사람들은 알지요.


저 같은 경우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장로교에서 자라났는데, 여섯 살 때 예수님을 영접하고 또 십대 초반에 헌신했고, 헌신에 대한 표시로 전공과목을 택하고 평생살기 위해서 서강대의 독문과를 들어갔어요. 그 이유는 독일로 유학가서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려고 했어요. 나중에 깨달은 것은 독일 유학 안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 다니는 동안에 성령 체험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저를 예수전도단에 연결시켜 주었는데, 저는 대학졸업하자마자 지금까지 쭉 예수전도단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단체가 예수전도단이란 이름으로 쭉 가고 있는데, 그런 중간에 국제 YWAM(Youth with a Mission)에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국제 YWAM의 지도자들인 도이 조우슨, 로렌 커닝햄 그런 성경지도자들이 우리가 초청해서 여러번 와서 강의를 했지요. 그러다 보니까 YM의 예배나 성격이 예수전도단 하고 똑 같아요. 결국은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버렸지요. 그래서 1980년에 국제적으로는 우리가 YWAM으로 쓰고 그래서 국제적으로 YWAM의 한 지부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YWAM과 예수전도단이 다른 단체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죠. 예수전도단이란 이름을 우리가 많이 써왔고 또 좋은 이름이라서 한국 이름으로는 그 이름 그대로 쓰고 영어로는 YWAM으로 쓰자 해서 한 단체에 두 개의 전혀 다른 의미의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죠.


열방대학


eKOSTA 이번 2001년 코스타의 강사로 하와이 열방대학에서 크리스티 김 교수님이 오셔서 명 강의를 해 주셨는데, 제가 듣기로는 열방대학이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열방대학에 대해서도 소개를 좀 해 주시지요.


홍성건 목사 우리단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복음 전파하는 데에 있어서 효과적이고도 체계적인 훈련을 거쳐서 복음전파 하는 것이예요. 복음전파하는 것이 단지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고 말로 전하는 방법이거나 교회개척 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그 나라의 성경적 경제의 영역이나, 성경적 교육 분야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total mission을 말하는 거라고 봅니다. 성경에서 total mision을 명하시고 본격적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으므로, 당연히 그 나라를 변화시킬수 있는 각 영역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떻게 성경적으로 제자를 삼으며 복음전파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에 대한 연구를 하며 전략을 가지고 그 안으로 들어갈 필요를 느끼게 되었지요. 그러다보니까 각각 그런 분야에 필요한 훈련과정들이 생기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런 훈련과정들을 하나로 묶어서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묶은 것이 열방대학이예요. 어떻게 보면 기독교 대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어떻게 보면 선교를 위한 훈련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겠고,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total mission으로서의 선교훈련 기관, 교육훈련, 그것이 열방대학이지요. 처음에 이것이 미국 하와이 주에서 76년인가 78년부터 열방대학이 시작되었어요. 89년도에 한국 YWAM에서도 그런 열방대학 같은 선교훈련 교육기관을 한국 내에서 세우자 결정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나서 96년도에 제주도로 그러한 캠퍼스를 선정하고 우리가족이 먼저 내려갔죠. 지난 5년동안 열방대학이 제주 캠퍼스에 계속해서 세워지고 있는(build up) 과정에 있어요.


eKOSTA 그럼 아직도 세워져 가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홍성건 목사 왜냐하면 대학은 건물이 세워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열방대학의 statement 가 있는데, “University is not the building, University is a people.”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대학 세운다 하니까 건물 세운다고 생각해요. 그건 순서가 바뀌는 거예요. 건물은 없어도 사람이 서면 그것이 대학이예요. 제가 대학 한다고 내려간다니까 제게 자꾸 묻는 것이 건물을 생각하고 ‘건물 섰습니까?’ 하는데, 예수님은 건물을 세운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웠지요. 물론 사람을 잘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 건물인데 그것은 그 다음에 따라와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건물을 건축하는 것과 사람을 세우는 것을 병행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전도단이 돈을 많이 donation 하는 단체도 아니고 또 어떤 돈을 융자받아서 건물 지을 마음도 없어서 사람들이 헌금해 주는 것을 모았다가 건물짖고 하다 보니까, 아직까지 원래 계획(Master plan)에서 하려던 것의 10분의 1 밖에 안되요. 요즘 매일 기도하고 있어요. 열방대학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께서 건물을 세워 주시도록. 나는 건물을 세우기 위해 fund raising을 못하는 사람이고 기도만 하고 있어요.


성령사역과 사회참여


eKOSTA 사실 성령에 대해서는 총체적이고 균형있는 시각을 갖기가 쉽지 않고 그래서 은사위주이거나, 혹은 능력위주나 열매 위주로만 강조해서 치우치거나 아니면 아예 무시하기 쉬운데 예수전도단은 참 잘 균형을 이루면서도 성령의 역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은데, 이 성령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주시지요.


홍성건 목사 사실 크리스찬들의 삶과 교회의 생활가운데서 성령을 빼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것은 마치 호흡을 하지 않는 사람과 똑 같으니까 말이지요. 예를 들어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리고 나서 거기서 마침표를 찍으셨다면, 그것은 조각품에 지나지 않죠. 흙으로 만든 하나님의 조각작품, 그 다음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명이 된지라. 성령께서 사람의 생령을 불어 넣어주신 것 그것과 똑같은 원리이지요. 신약에 가면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120명이 기도하기 시작했잖아요. 그러다가 오순절 날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큰 역사가 시작되었고 교회의 출발을 거기에 보고 있지요. 사도행전 2장 말씀에 말이지요. 그것은 마치 창세기 2장 말씀과의 대칭관계에 있다고 보고 비교할 수 있어요. 처음 2장에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후에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명이 되었다. 그것처럼 120명이 모여 있을 때에 그 자체로는 파워가 없고 그 자체로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성령이 임하신 뒤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교회로 변형된 것이예요. 그 다음부터 사도행전의 전체 역사는 이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와 땅 끝이라고 말하는 것은, 복음의 파워가 세속사의 교회와 도시와 나라를 바꿔나가는 것이고,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성령의 역사예요. 이 말씀을 사도 바울은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된다는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증인된 삶을 사는 것이예요. 성령님이 없으면 불가능한 거예요. 세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전략으로는 교회를 세우시고 성령과 교회가 함께 역사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성령을 제한한다 하는 것은 교회가 스스로 이 세상에 대한 아무런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는 말과 똑같다고 봐요. 박물관에 소장된 교회처럼 모이기만 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있는 교회 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거기에 성령의 능력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한다면 성령에 대해서 지나치게 오해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은사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까, 잘못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증인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은사를 주실 수도 있고 파워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성품이 바뀌어서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지요. 능력은 나타나는데 삶이 엉망이다 하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어요. 균형있는 성령의 역사는 성령의 은사가 있고, 성령의 열매가 있고, 은사로 파워가 나오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의 삶이 바뀌어서 예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초자연적인 은사를 주시고 또 동시에 우리의 성품이 바뀌어서 이 두 가지가 균형있게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인 성령의 역사예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충만하면 말씀이 약하고, 말씀이 충만하면 성령에 약하다 했는데, 이것은 이해가 안 되는 말이지요. 왜냐하면 말씀도 성령이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고 따라서 말씀 충만한 것이 성령 충만한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성령 받아라 하면 능력 받으라 하는 소리로만 이해하는데, 성령 받으란 말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내 삶 가운데 주인으로 모시는 일인 셈입니다.


eKOSTA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은사를 많이 강조하는 오순절파 중에 일부분이 사실 바람직하지 않은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고 또 그런 사람들이 미친 나쁜 영향력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홍성건 목사 사실 오순절 계통에 있는 교회들 중에도 성숙하고 균형있는 신자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런데 영적으로 너무 어린 사람들이 은사에 대해서 너무 강조하고, 그러다보니 은사가 없는 사람들은 마치 2등급 신자처럼 취급하며, 은사는 갖고 있어 그 은사를 강조하다보니 성령께서 삶을 바꿔 나가고 성숙한 성품으로 바꿔 나가는 것을 등한시한 나머지, 은사는 드러나는데 성품이 바뀌지 않아서 관계를 깨뜨려 나가고 다른 사람들을 우습게 평가하는 이런 사람들이 자꾸 나쁜 영향을 미치다 보니까, 결국 성령의 은사운동 자체에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것은 아니지요. 정말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라면 은사를 강조하면서도 삶이 바뀌는 것도 함께 강조해서 균형있게 잘 움직였더라면 충분히 좋은 반응를 받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사실 있어요. 지금은 오순절 안에서도 바뀌고 있어요. 또 장로교도 바뀌구요. 옛날에는 무슨무슨파 해서 오순절이면 오순절, 장로교면 장로교 확실 했었는데, 요즘에는 구분이 별로 없어요. 이제는 성령께 순종하느냐 안 하느냐 이것으로 나뉘어 집니다.


eKOSTA 기독 지성인들 사이에는 성령운동 혹은 성령사역을 많이 하시는 분들이, 물론 개인적인 성품이나 은사들을 강조하시다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회 참여를 하지 않거나 등을 돌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불의나 부정과 부패를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대책도 없을뿐더러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성건 목사 성령을 강조하는 사람들만이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보수적인 교파나 정통적인 장로교도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원론적인 생각,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영적이고 세상과의 관계는 속된 것이다 하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모든 활동들은 다 거룩한 것이고 세상에서의 삶은 속된 것이다 하는 이 개념은 오순절 계통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한국 교회에 상당히 만연되어 있는 잘못된 이해이지요. 저는 이 분야가 제일 관심 있는 분야이고 많이 강조하고 있는 분야인데, 성경에는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 것도 영적인 것이고 세상을 바꿔나가고 참여하는 것도 영적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창세기 1장 말씀부터 땅을 다스리라, 2장에 땅을 경작하라, 12장에 땅을 축복하라, 땅의 모든 것을 축복하라, 마태복음 28장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등등 이 말씀들은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이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사회에 참여하고, 그러나 사회에 참여하되 성령의 능력으로 참여하며 성경적 원리를 가진 전문가로서 참여해서 하나님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대리자로서 하나님이 그 지역을 바꾸었다 라고 말하도록 맡기셨어요. 이원론은 기독교 안에 아주 교묘하게 자리잡은 사상인데 그런 이원론 사상은 당연히 깨뜨려야 하고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며, 또 동시에 세상에 참여해서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한다면 이것 또한 거룩한 것이죠. 저는 사회참여의 입장에서 socialism 입장에 있지는 않지만, 성경은 처음부터 세상을 바꾸라고 말하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저는 옛날에 주기도문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어요. 십대 때에 세상사는 것이 힘들고 민감하던 사춘기 때에, ‘이 세상은 너무 살기 힘들고 고통도 많고 슬픔도 많고 또 그리고 공평치 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이 세상은 너무 살기 힘들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기도문을 읽을 때 주의 나라가 임하소서 ! 왜냐하면 거기에는 그런 것이 없으니까 말이지요. 나는 지금 고통 많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빨리 저쪽에 있는 다른 공간에 주의 나라가 임하시면 그리로 들어가야 되겠다는 개념으로 살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런 고백을 했었고, 나중에 주기도문을 묵상하고 연구하면서 성경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말씀은 원래 이런 의미이죠. ‘주님, 주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서 임하소서,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 주옵소서’. 그리고서 자기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헌신하면서 자기를 통해서 가는 곳마다 거기에 주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것, 성 프란시스코의 고백처럼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그런 것이 바로 크리스찬의 사명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공간적으로 따로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우리로 말미암아 세상을 바꿔나가라는 이야기예요. 그것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참여하는 것을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 주의해야 될 것은 인본주의자들 과는 다른 것이 있는데, 인본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socialist) 들은 내 힘으로, 내 지혜로, 내 열심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얘기하지만,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으로 세상을 바꾸어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 다른 점이지요.


eKOSTA 원론적인 부분은 잘 이해가 되는데요, 가령 예를 들자면, 한국 교회의 세습문제 같은 일이 있을 때, 이성적인 지성인들은 가서 데모도 하고 포럼도 열면서 물리적인 방법까지 사용해서 막으려고 하기도 하면서 교회의 불의나 사회의 불의에 대해서 항거하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예수전도단은 다를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성건 목사 예수전도단에서는 사회가 불의 하다고 할 때, 첫 번째로 하는 것이 중보기도를 시작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중보기도는 나라를 바꾸는 파워가 있어요.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와, 산들을 쳐서 부수리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주님 앞에 나가서 이 사회의 불의를 바꿔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해야하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이시니까요. 그리고 역사를 바꾸는 능력도 하나님 이시니까요. 그리고 두 번째로 이 사회의 공평치 못하고 올바르지 못한 체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올바르게 접근해서 영향을 줄 것인가 하면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그 가운데 평화적인 방법으로, 올바르게 호소하는 방법으로 항의(appeal)해야 한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 두 가지 방법이 어느 하나 필요치 않은 것이 아니라 둘 다 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먼저 중보기도 하는 사역을 하면서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하라고 하면 해야 되죠. 예수님께서도 책망하신 적이 있고, 세례요한도 책망한 적이 있으니까, 말씀하시면 우리가 소리(voice)를 높여서 얘기해야 되지요.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해야될 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용서하고 사랑하고 민망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죄를 미워하면서 불의에 대해서는 용납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면서 해야되는 것이지요. 폭력이나 무력을 사용하면서 세상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고 비폭력적인 평화적인 방법으로 소리를 높이고, 또 한가지는 중보기도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실 보면은 해방이후에 역대 대통령의 반 이상이 크리스찬 이었어요. 그리고 국무총리 반 이상이 크리스찬이고, 국무위원 반 이상이 늘 크리스찬이었고, 지난번 국회의원들 중에서도 299 명중에서 자기 입으로 크리스찬이라고 말한 사람이 154 명이었어요. 또 보니까 그때 당시 육해공군 4성 장군이 9명 이었는데, 그 때 8명이 크리스찬이었어요. 기업가, 교육가, 매스컴, 각계 각 층 안에 크리스찬들이 많이 있다구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오히려 데모 성토 대상이 되고 있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이원론 사고가 있으니까 그래요.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이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적용하는 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우리 스스로에게 길을 주었는데 데모도 좋고 소리를 높이는 것도 좋지만 실제로 참여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권위와 영향력으로 나라를 바꿔야 되는데 그것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 책임이지, 정권이나 그 누구의 책임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중보기도 하는 일도 있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도 있지만,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권위를 주고 능력을 주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줄 때에, 정말로 우리가 성경적 방법에 따라 성령의 능력에 의지해 가면서 나라를 변혁시키는 일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코스탄들이나 대학생들에게 말하는 것이, 데모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각 방면에 뛰어난 전문가가 되고 그 방면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서, 실제로 각 사회의 전문분야에 들어가서 성령께 의지하면서 자기 힘으로 제도를 고쳐 나가고 자기 힘으로 사회 제도를 바꿔 나가야 된다고 강조하는 거예요.


eKOSTA 이원론 때문에 고지를 점령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사회가 바뀌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상부구조의 변화가 하부 구조에 변화를 주는데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하부구조를 변화시키셔서 상부구조까지 바꾸셨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요.


홍성건 목사 저는 양방향에서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성경 말씀에서 보면 풀뿌리 운동에서 시작된 것도 있었지만, 분명 또한 요셉을 세우시고 다윗을 세우시고, 모르드개를 세우시고, 다니엘을 세우시는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상류층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두셔서 상부에서 하부로, 또 동시에 거룩하고 경건한 기독교 사상에 의해서 하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나는 이 두 가지가 함께 병행해서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지, 어느 하나를 주장할 수 없다고 봅니다.


eKOSTA 그렇지만 예수님은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출신들을 제자로 택하셨고, 또 가난하고 지혜없는 자들을 택하셔서 부자와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말씀에도 나와있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가난한자들과 연약한 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편애하신다고 까지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초기 교회사도 보면 로마가 정복된 것은, 몇몇 지도급 계층의 사람들도 신자들이 되었긴 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고지를 점령해서 그 영향력으로 로마가 정복되었다기 보다는 그 당시 그야말로 풀뿌리 같은 민중들에게 복음이 편만하게 전해지고 그 복음의 능력으로 사자굴에 던지우면서 까지도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수많은 민중들의 힘에 못 이겨서 결국은 지도층과 로마 전체가 바뀐 예를 들면서, 코스타나 혹은 대학생 운동, 혹은 고지론 자체의 원론적이고 태생적인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홍성건 목사 그 말씀은 단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고, 고학력자 보다는 저학력자가 복음을 받기 쉽다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교만하고 자만심이 있고 마음에 가난함이 없으니까 복음을 받기 어렵다는 것일 뿐이지, 예수님은 절대로 부자를 무시하고 가난한 사람을 택한 것은 아니잖아요. 사실은 부자도 헌신된 부자라면 얼마나 귀하겠어요. 가난한 사람이지만 가난한 사람이 헌신해서 쓰이면 얼마나 귀하겠어요. 그런데 잘못 되어서 마치 주님께서는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 중심으로만 사셨다고 한다면 말씀을 오해하는 거예요. 주님은 모든 계층을 다 사랑하시고 또 성경 안에도, 사도행전 말씀 가운데 복음이 전파될 때에 높은 위치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들어가서 영향을 실제로 주었지요. 이디오피아의 내시 한 사람이 바뀜으로 이디오피아 전체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부르조아냐, 프롤레타리아냐 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예요. 기독교는 계급투쟁 사상도 아니구요. 기독교는 모든 계층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택해서 사용하시기도 하지만 또한 부자와 지도층의 사람들도 택해서 사용하시기에 우리는 양방향에서 접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찬양과 문화운동


eKOSTA 계속해서 찬양 사역에 대해서 여쭙고 싶은데요, 특별히 한국의 국악찬양 하면 편견과 오해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국악 찬양은 사탄에게 드려진 음악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합당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역자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뿌리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이원론 사상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일제시대 때 선교사들의 문화 우월주의나 중미 사상의 영향력에서 비롯되어서 국악찬양이 장려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억압 내지는 눌려져 있었던 결과라고 봅니다. 최근 예수전도단에서 부흥 콘서트 팀과 함께 국악찬양에 관심을 갖고 계셔서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그 이유와 배경을 말씀해 주시지요.


홍성건 목사 제가 아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인데, 요한 계시록 성경말씀에 보면은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고 믿는 사람들이 주님나라 갈 때에, 각 나라와 족속과 각 백성과 각 방언에 대해서 말했지, 그냥 믿는 무리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물론 믿음 안에서 한국인 미국인이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한국인 되고 미국인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 안에서 갖는 하나의 아름다움이지요. 마치 스테인레스 글래스를 보면은 각종 다른 색깔과 모양으로 빛을 발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듯이, 또 꽃도 보면 똑같은 꽃이 어디에 있어요? 하나님의 다양성과 일치 속에서 아름다움이 충만한데 나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 또 미국 사람은 미국 사람이라는 존중함이 있어야 하고, 아프리카 사람도 다 하나님 사람입니다. 또 말씀에서처럼 하나님이 거주의 한계를 정하시고 에베소서 3장 말씀에는 ‘모든 족속에게 이름주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각 족속에게 주신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우리는 문화라고 부르죠. 각 족속에게 주신 문화의 아름다움은 서로 다른 색깔도 있고 춤도 있고 노래도 있고, 악기도 있어요. 그런데 그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영광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원래 그 목적이예요. 그러기에 하나님은 각 민족에게 문화의 아름다움을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원수마귀는 그것을 전부 우상에게로 나아가도록 이끌었어요. 그러다보니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이 있는 춤과 색깔과 노래와 가락이나 악기까지도 너무 많이 우상을 숭배하는데 쓰이다 보니까 결국 우리 민족의 문화 = 우상이라는 식으로 완전히 잘못 이해 된 것이지요. 그 잘못 쓰인 것에 대한 인식과, 그것이 우리 속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것은 인정하더라도,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이 원래의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봐요. 저는 마치 사사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으로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는데, 빼앗긴 법궤는 회복해야 된다고 봅니다. 법궤가 빼앗긴 것은 영광이 사라진 것인데 하나님의 영광이 법궤를 회복시키는 것처럼 각 나라안에 주신 문화의 아름다움으로 주님을 찬양하게 회복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 문화를 바꿔보자 라는 것이 아닌 원래를 회복하자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주님나라에 우리가 들어갈 때에는 서양 음악과 서양악기로만 들어가지 않아요. 왜냐하면 계시록에 보면 각 민족의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들어간다고 했거든요. 그것은 주님께서 각 민족에게 주신 아름다운 문화예요. 그래서 그것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기독교화 = 서구화, 기독교의 모든 음악 = 서구 음악 그랬는데, 그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지요. 나는 서구음악과 문화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예요. 그건 그것 자체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고, 우리음악과 문화의 아름다움으로 찬양하는 것은 당연히 우리가 해야할 일이죠. 그래서 열방대학 내에다가 문화 센터(Cultural center)를 먼저 세웠어요. 중보기도 센타와 함께 두 개를 먼저 세웠는데 그 두 가지가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거기에 있는 형제들에게 이런 부분들을 도전을 주어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회복해서 주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바꿔야 되겠다 해서 시도를 했습니다. 여전히 반발이 많이 있어요. 그것은 옛날에 무당 푸닥거리 하던 것인데 하면서요. 원래는 그것이 아니었지요. 그것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테잎도 만들었어요. 나는 반응이 꽤 클 줄 알았는데, 아직 크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사실 커야만 됩니다. 그리고 커질 겁니다. 사실 우리 예배의 99%가 서구문화인데,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어요. 나는 국수주의자가(nationalist) 아니고, 크리스찬들은 한국인인 것을 자랑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국인임을 초월하기도 하죠. 미국을 동경하는 것도 아니구요. 그래서 우리 안에서 이미 자리잡은 서구 음악으로도 찬양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이미 주신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함께 예배하고 찬양해야겠다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KOSTA 저도 개인적으로 이쪽 분야에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가장 가슴아픈 것은 지금은 한국 가락의 대표적인 아름다운 찬양곡으로 알려진 나운영 선생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그 아름다운 찬양이 곡으로 처음 나왔던 50년대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것이 그때 과연 찬양으로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편견과 오해에 대해서 얼마나 한심해하며 분개했었는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자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은 그 분이 우리 가락의 찬양들을 모집하고 잘 정리하고 모았었지만 그 후에 그것이 다 소각되고 상실되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참 마음 아픈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 편견과 오해가 문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에까지 없어지지 않고 있기도 하구요, 또 목사님 이전에도 이러한 국악찬양에 대한 시도와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워낙 한국 기독교인들의 호응과 인식 부족,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과 기독인 전문가가 부족함으로 인해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기독교 음악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사님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실 생각이신지요.


홍성건 목사 제가 아주 강조하는 것이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조카 롯을 전쟁 가운데서 회복시켰던 기록이 있잖아요?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을 두 명의 왕이 마중을 나갔지요. 한 왕은 멜기세덱이고 다른 왕은 소돔 왕이었어요. 그러니 아브라함과 멜기세덱과 소돔왕이 서로 만났는데, 여기서 오늘의 문화 작업의 중요한 문제를 유추할 수 있다고 봐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계시를 받은자, 멜기세덱은 이미 거기 있지만 아브라함이 아는 하나님과 멜기세덱이 아는 하나님은 똑같은 하나님이었거든요. 그리고 소돔 왕은 진리를 왜곡시키는 그런 왕이었죠. 따라서 우리나라에 있는 문화를 100% 다 좋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우리나라의 문화 속에 둘을 구별해야 되요. 하나는 멜기세덱적 요소와 소돔적 요소를 구별해서 멜기세덱적 요소는 취하고 소돔적 요소는 버려야 되요. 그러면서 강화시키는 것은 아브라함적 요소를 강화시키는 것이예요. 그것이 문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것을 구별해 나가기는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닌데, 그것을 구별해 나가는 것은 성경에 다 있거든요. 아브라함이 기준인 거예요. 한국 문화는 다 좋다고 할 수 없어요. 원래 문화에 소돔적 요소가 들어갔고 그 소돔적 요소는 분리시켜 나가면서 우리 문화의 아름다운 멜기세덱 요소는 일으키고 세워서 드러내야 합니다. 아브라함적 요소가 들어가게 하는 것이 제가 보는 문화 사역인 것이죠. 이것은 문화 작업만 아니라 크리스찬들이 세상을 바꿔나가는데 동일하게 적용 될수 있는 원리이죠. 그래서 아주 강조를 많이 합니다.


부흥과 부흥 콘서트


eKOSTA 예수전도단 하면 부흥 콘서트 팀과 연결을 안 지을 수가 없는데요. 한국에 부흥의 개념을 보편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부흥이 아직 어떤 것인지 정의도 되어 있지 않고 그 개념이 올바로 전달되지도 않기에, 또 부흥주의로 흐를 수 있는 위험 요소도 이러한 흐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홍 목사님이 생각하는 참된 부흥이란 어떤 것이며, 동시에 이런 위험요소들을 배제하면서 어떻게 하면 참된 부흥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홍성건 목사 부흥이라고 말할 때 단순히 교인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러면 한국에 부흥이 일어났다 하는 시점을 언제로 잡을 수 있을까 하면 저는 그것을 한국의 사회가 바뀌었다하는 시점으로 잡고 있어요. 그래서 부흥(revival)이라고 말할 때 저는 네 개의 단계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renewal, 크리스찬 개개인의 회복의 단계이지요, 두 번째는 evangelization, 이것은 교회 공동체의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예요. 세 번째, reformation, 이것은 사회 공동체가 바뀌어 가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네 번째 mission, 이것은 다른 국가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러한 것이 원래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부흥의 형태(pattern)였습니다. 개인의 삶이 바뀌고, 개인이 모여있는 교회 공동체가 바뀌고,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부흥의 힘(power)이 영향을 주어서 사회와 국가공동체를 바꿔나가고 그래서 범죄 숫자가 줄어든다든지 불의와 부정직이 점점 줄어든다든지 그래서 정직한 사회나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바뀌어 나갈 수 있다든지, 그리고 빛이 있는 밝은 사회로 바뀌어 나가면 한 사회가 바뀌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reformation이지요. 그리고 참다운 부흥이 일어나서 결국에는 다른 족속과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런 부흥이 늘 일어났었다고 믿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때에 이런 부흥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또 한가지 다른 차원으로 보자면 이러한 네 가지 형태(pattern)의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준비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세 가지가 있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부흥이 일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 또 하나는 계시가 있었어요. 부흥에 대한 성경적 말씀의 선포가 있었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노래가 있었어요. 부흥에 대한 간절한 찬양이 있었어요. 기도와 말씀과 노래, 이 세 가지가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준비작업 이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부흥 컨서트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부흥컨서트는 이 세 가지가 다 있어요. 처음에 이것을 시작하니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컨서트라고 생각하고 왔지요. 왔다가 충격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자기들은 앉아서 노래를 들을려고만 했는데, 함께 노래도 부르게 하고 함께 기도도 하게 하고 그 다음에 말씀도 선포되어서 주님 앞에 반응도 하게 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지금까지 본 콘서트하고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었죠. 이 세 가지의 준비 작업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부흥을 준비할 것인가 하면서 컨서트를 준비했고, 그 컨서트가 진행되어가면서 노래해야 되는데, 그냥 가수들이 부르는 것이 아니고 전체가 함께 주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노래부르고, 또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이 선포되어서 계시와 비전의 선포가 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부흥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고 비전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게 하려고 시작한 것이 바로 부흥 컨서트를 여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였기도 했지요. 그래서 부흥이 일어나게 하는 세력이 있었어요. 두 개의 세력이 있었는데,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이었고, 또 하나는 젊은 청년들이었어요. 영적 지도자들은 부흥에 대한 장을 열어주고 도전을 주고 그 다음에 부흥을 주도하는 주체는 청년들이었어요. 마치 큰 파도가 올 때에 서핑(surfing)하는 것과 같이, 부흥을 하나의 파도로 보고 젊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큰 파도가 올 때에 뛰어들어가 서핑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지도자의 한 사람의 입장으로서 청년들에게 큰 파도가 올 때에 서핑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준비시켜주는 작업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면에서 부흥 컨서트를 준비했어요. 단순한 부흥회가 아닌, 정말로 부흥을 준비해야 될 때임을 인식하고, 이러한 역사적(historical)인 연구(research)를 통해서 나온 것이 부흥 컨서트입니다. 하나님이 큰 축복을 하셨지요. 아무리 봐도 우리단체가 잘나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예요. 그리고 2007년이면 1907년 한국의 대 부흥이 있은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꼭 무슨 100년을 맞는 기념회가 아니지만 또 다른 부흥을 기대하며 기도로 준비하자 하는 것이지요.


eKOSTA 부흥의 단계들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는데요,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께서는 찰스 피니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떤 공식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고, 그러한 공식화 내지는 인위적인 요소들이 거룩한 부흥을 부흥회 수준으로 타락하게 한 가장 큰 원인이다라고 진단 하셨는데, 그래서 부흥은 전권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자 주권이지 사람들이 일으키거나 어떤 운동으로 유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셨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홍성건 목사 잘 아시듯이 역사적으로 늘 논쟁이 붙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의지였어요. 늘 논쟁이 되어 왔음에도 아무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어요. 하나님의 주권은 아무도 항거할 수 없고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당연히 늘 강조해야 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하고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에 대해서 너무 무시하고 간과하게 되면 그러면 운명론으로 빠지게 되어 있어요. 예정론은 운명론이랑은 다르거든요. 그런 점에서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교 개혁자들이 실패했어요.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너무 강조하다가 선교를 안 했다고요. 하나님이 예정하셨다면 구원받을 사람들은 구원하실 것이다 하면서 말이죠.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계획을 세운 주권 안에는 언제든지 자발적인 헌신이 있었던 것이지요. 임의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자발적 헌신 속에, 예를 들어서 호세아 10장 1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비를 구하라 말씀하시면서 묵은 땅을 기경하라, 자기를 깨뜨리면서 나아가라 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거기 보면 땅을 기경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고 거기에 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지요. 하나님이 비를 줄테니까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하셨다면, 그 다음에 비를 내려주시기를 구하면서 땅을 기경하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두 가지가 함께 협력하기를 원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흥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부흥이 임할 것을 계시하시기 시작하시고, 그러면 우리는 부흥이 임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시작해야하고, 부흥이 임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리고 역사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고요. 그래서 찰스 피니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너무 많이 비판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예요. 한 쪽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너무 이쪽을 무시하지만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도 모르면서 무조건 그렇게 해 달라고 하며, 인간적이고 인위적인 방법을 쓰는 것도 문제이지요. 그래서 언제든지 전제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듣고 그 다음엔 순종하는 거지요. 그 때에 주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에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을 때에 모세가 막 부르짖고 있었다구요. 그런데 주께서 모세에게 왜 부르짖고만 있는 것이냐? 부르짖지 말고 지팡이로 때려라 하셨는데 그것은 행동(action)이거든요.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행동을 한 거예요. 말씀하시지 않았는데, 달라고 하면서 행동을 취하면 그것은 억지고 인위적이지만 말씀하신 것에 반응해서 때렸다고 하는 것은 순종이고 믿음입니다. 그것은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부흥에 대해서 인위적이라고만 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고 준비하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우리가 할 일을 하는 거예요. 그 패턴은 똑같고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사회 참여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그것을 이원론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이 세상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지요. 그것은 주권에 대해서 오해한 거예요. 하나님을 잘 믿으면서 세상을 우리가 바꿔야 되요. 누구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늘 우리는 조심해야 되요.


eKOSTA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았는데, 부흥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잘못되면 지금보다 조금 좋아진 상태를 그냥 부흥으로 생각하게 되기 쉽고, 그러면 궁극적으로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참된 부흥, 그것이 개인의 부흥이건 교회나 사회 혹은 국가와 세계적인 부흥이건 간에 참된 부흥에 대한 소망이 왜곡되거나 혹은 그러한 영광스럽고 위대한 부흥에 도달하기 전에 거기서 그냥 만족하고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멈출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은 한국 교회에도 현재 ‘부흥’하면 한 세대의 유행이나 바람 혹은 하나의 모토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냥 그 수준에서 끝나거나, 그냥 그것을 부흥으로 착각할 우려와 조짐들이 있고, 그렇다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견해와 경고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홍성건 목사 인위적인 것이 있으면 그것은 위험하죠. 인위적인 것과 믿음은 차이가 큰 것이지요.


eKOSTA 덧붙여서 여쭙고 싶은 것은 토론토의 blessing 이라던가 플로리다 펜사콜라의 현상 혹은 부흥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홍성건 목사 쉬운 문제는 아닌데, 우선 그 결과로 평가해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토론토 blessing 하면 울부짖는 소리라든지, 거룩한 웃음이라든지 이런 현상으로만 본다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상당히 있는데, 열매로 본다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이 회복되고 삶이 바뀌기 시작하고 하는 것을 보면 참 감사하게 생각하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외면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따 와서 흉내내려고 하니까 바로 그것이 인위적인 것이지요. 그것에 오는 부작용은 크다고 생각해요. 생명은 없고 껍데기만 가져오다 보니까 비판론이 많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토론토에서 그런 역사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 지역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역사하시고 축복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감사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똑 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실 거라고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곳의 원칙과 원리인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삶이 바뀐 것, 즉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시고 주권이 임하신 것, 그것만 옮겨오고 한국은 한국에 맞게 역사하실 기회를 드려야 되는데 자꾸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원칙이고 방법인 것처럼 알게 되면서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펜사콜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역사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요즈음 미국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약과 알콜이나 성에 대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데, 거기서는 성령의 강한 능력(power)으로 인해서 바뀌어가고 있거든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거예요. 하나님의 능력이 사망을 파괴하고 생명을 건설하게 하고 사망의 어두움 가운데 빛을 비추는 곳에는 어디든지 가야 되죠. 저는 긍정적으로 보는데, 단지 그것을 외형적으로만 흉내내거나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생과 eKOSTA에 하는 당부


eKOSTA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이코스타 독자들, 주로 유학생들을 위해 권하고 싶으신 당부의 말씀을 해 주시지요.


홍성건 목사 날마다 주님앞에 전심으로 나아가는 것을 잊지말고, 그러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각자가 알아서 준비한 후에, 부르심을 따라서 선교사와 똑같은 각오와 소명으로 세상속으로 들어가길 바랍니다. 과학자로 가더라도 선교사가 아프리카로 가는 것과 똑같이 명성과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사로서 그 영역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 사업가나 business man 으로서가 아니라 선교사로서 사업계로 들어가서 거기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 그런 일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면서도, 방법은 늘 섬기면서, 겸손하고 희생하면서, 드러나기 보다는 숨어서 하기를 바래요.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늘 무릎꿇는 삶, 항상 주님을 의지하면서 하시기 바랍니다. 유학생활이니까 당장 수업과 논문이 중요하고 먹고사는 것이 급하기 때문에, 이것이 다 끝나고 먹고사는 것도 안정되고 직업도 정해지면, 그 때부터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니까, 급할수록 그리고 위기상황에 있을수록 먼저 순서를 잘 정해서 기도를 우선하고 말씀 묵상하고 주님을 간절하게 의지하는 것이 늘 첫째의 중요성(priority), 그리고 두 번째 중요한 것으로 자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되 그 순서를 바꾸지 말기를 당부합니다.


eKOSTA 장시간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