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5,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죄로 왜곡된 이 세상은 분리와 차별의 사회이다. 이곳에서는 서로간의 소통은 사라지고 오해와 반목과 갈등만이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세상의 나라를 거스르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이런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겸손의 하나님,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오셨고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셨다. 그분의 낮아지심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주님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의 죄로 갈라진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다른 언어지만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의 지향점은 그리스도 한 분이 될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피조 세계와 인간은 완전한 관계를 회복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주와 회복된 관계를 갖고 구속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는 하나님의 화해에 대답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므로 다른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완성을 향해 가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왜곡된 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찾고 그 나라에서 그분의 뜻과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전달된 그 나라는 이어져 이제 이곳 휘튼 코스타 수양회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하나님 나라를 더 넓히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현실에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하나되는 완성된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을 다 내주신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에 동참하며 그 뜻을 실현시킬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이 요청에 응답할 것인가? 누가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것인가? 누가 이 열방을 향해 나아가 그들과 하나가 될 것인가? 누가 이 열방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것인가?
우리는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겠다고 결단한다. 우리는 인간을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결단한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고 그분의 질서에 따라 살아갈 것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의 책임과 중요성을 믿고 그 공동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여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감사하여 그것에 부응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다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의 직장과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우리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가정이 그분의 계획하신 질서에 따라 세워지기를 바란다. 주위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라보며 우리를 희생하여 그들을 돌볼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영광 중에 다시 오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킬 것을 믿는다. 그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생을 인도하시는 그분의 주되심을 믿고 즐거이 순종함으로 그분을 기다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려고 한다. 열방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가 이 열방을 비추는 빛으로 살 것을 결단한다.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시기를.
Jul 4,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My bones suffer mortal agony as my foes taunt me, saying to me all day long, “Where is your God?”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d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Psalm 42:10-11)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전 우주에 미친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온 시간을 규율하신다고 우리들은 믿는다.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세상의 나라의 질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주권이 적용된다면 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통, 고난을 하나님은 왜 허용하시는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신다면 왜 세상의 나라가 번창하며 이 우주에는 왜 죄와 악이 번성하는가? 이 세상의 수많은 악과 무질서, 그리고 세상 나라가 번창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세상 나라의 질서, 그리고 악의 주권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그 질서를 유지하는 분(sustainer)이라는 믿음, 역사를 전지와 전능 그리고 전적인 선하심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자주 우리들은 심각한 악의 존재에 이런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분이라는 믿음을 버리거나,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거나, 그분의 전적인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것 같다. 성경에서도 이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욥,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
욥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전제되어 있다. 심지어 사탄의 어떤 행동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대답한다. 욥의 항의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기다렸다가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대답은 그에게 닥쳤던 일들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대답은 욥과의 관계에서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형성되었던 믿음과 신뢰에 대해 지적하신다. 우주와 세상의 운행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시고 과거에 그에게 쌓인 믿음과 신뢰를 다시 되살아나게 하신다. 지적인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고통 당하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세상의 악과 그 악의 결과에 의한 고통에 대하여 무관심한 하나님이신가. 세상에서 생기는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을 경험하실 때 예수님 뿐 아니라 그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계시던 성부 하나님도 죽음을 경험하신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은 성부 하나님에게도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모든 악의 결과인 죽음을 스스로 감당한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신, 고통을 직접 경험하시는 하니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
하나님 나라의 운행의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들의 지적인 한계로 역사와 사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발전되어 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것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고 영적인 결단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에 관심이 있으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이 그런 믿음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그 승리를 향한 역사의 발전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하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는 그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으로 산다.
Jul 3,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우리는 기획기사를 통해 예수님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 그분은 십자가를 지신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그리고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그가 주장하고 보여주었던 하나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의 확증이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임재한 하나님 나라와 승리할 하나님 나라의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사명을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교회에 대해서 살펴본다.
예수님은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님은 당시의 세상의 질서를 적극적으로 거스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것에 걸맞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원했다. 그 새로운 공동체는 다른 종교 운동을 추구하는 공동체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폐쇄된 집단, 분파가 아니었고 모든 사람들이 초대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죄인이라도 손가락질 받던 세리들과 창기들도 초대되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신분과 직업, 종교적 성향, 지역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셨고 그것에 반응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베풀어 주셨다. 곧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다양성과 예수님의 관심인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한 관심이 예수님이 원하는 공동체, 교회의 기본 성격이라 하겠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가 특별히 구별하여 자신의 사역에 언제나 동참하도록 부른 열두 사도 공동체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그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하여 그 안에는 강한 민족주의자(zealot)들 뿐 아니라 세리라는 식민지 정부 관리까지 포함되어 있다. 열둘이라는 숫자에는 이스라엘 전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했는데 세상에는 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한다. 사실 예수님은 교회에 대하여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구체적으로 임재하는 장으로 삼으심으로써 자신과 그 공동체를 동일화하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인 하나님 나라와 그 공동체를 동일화하는 것이었다. (마 18:17, 20)
예수님의 새로운 공동체, 교회에 대한 사도들의 이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장이 된다고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 (엡 1:22-23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골 1:18-20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실재이며 교회를 통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비전은 죄로 인해 분리되고 분열된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갱신되고 통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 7:10-11).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분열과 분리, 소외와 배타,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려는 모든 성도들의 노력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은 그리스도라는 실체로 전이하며 역사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점을 공동체가 공감하고 추구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된다는 비전은 현실의 교회의 모습을 지도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만들어 내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며 우리들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실재하는 몸으로,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노력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가 그것을 막는 최대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며 나아갈 때 그것은 가능한 미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우심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실 것을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Jul 3,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앞을 쉽게 내다보기 힘든 불투명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호소력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복음의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해 본다.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IVP
리차드 미들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살림출판사
이승구,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SFC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문제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세 책은 기독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큰 틀을 제공하는 교과서적인 책들이다. <창조, 타락, 구속>은 세상의 창조, 죄에 의한 타락,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에 의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라는 주제를 교과서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입문서이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그런 주제를 좀더 확장하여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의 사조와 비교, 대조한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틀을 좀더 심층적으로 검토하여 대안적인 틀에 검토해보는 책이다. 세계관 문제를 좀더 지성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IVP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은 정치, 이혼과 재혼, 동성애, 반유대주의와 인종갈등, 낙태 등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그런 문제에 어떤 견해를 갖기 전에 성경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원칙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논의하듯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연구할 때 바울서신, 복음서, 계시록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세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 두란노
<The IVP Women’s Bible Commentary>, IVP
복음주의권에서 성적 차별의 문제, 여성성과 남성성의 역할 문제, 여성성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각 가운데 성적 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 그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와 성경적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은 교회 안에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좀더 바람직한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The IVP Women’s Bible Commentary>는 여성 저술가들에 의해 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신구약에 대한 각 권 주석을 시도한 책이다. 본문 중 이슈가 될만한 70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다.
제임스 패커, 캐롤린 나이스트롬, <하나님의 인도>, 생명의말씀사
우리는 매일같이 삶 속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외부의 징후를 통해 확인해야만 안도감을 느끼고, 각자의 지혜와 분별력을 외면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한다든지, 혹은 지나친 신비주의를 용납하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면서 시편 23편에 등장하는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다 실용적인 지침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거나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Jul 3,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기원하는 것은 참된 의미에서의 평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겨자씨와 같이 시작하였지만 그 큰 나무 속에 새들이 날아와 쉬는 나라이다.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스스로 선택하신 죽음과 부활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나라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시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 사도들이 전해준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인간성이 가장 충실하게 발현되는 참된 의미의 삶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발견해야 한다. 악의 나라에 대항하여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질서인 하나님 나라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우리 안에 오는가.
첫째, 하나님 나라는 초월로부터 임하는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다”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 우리가 하는 일은 들어가고 상속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초월에서 오는 것이고 인간이 신적인 나라를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내재적인 제한성이 없는 무한의 하나님에게서 초월적으로 오므로 인간에게 진정한 구원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의탁하기로 한 성도들에게 도와주실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였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일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이 내 안에서 충만하게 일하시도록 우리를 그분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자신을 비우는 것은 그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도록 할 때 의미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야 한다.
셋째, 한편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들의 적극적인 제자도의 삶으로 온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영성을 담보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부인이 필요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날마다의 삶 속에서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 자신의 소욕을 억제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욕구를 끊임없이 부인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가능하다. 날마다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의지하고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나라,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는 우리의 삶을 광야로 초대한다. 세상이 주는 안정감으로부터 벗어나 고립되고 외로운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의미의 평화이기도 하다. 고요함 가운데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정이기도 한다. 초월에서 은혜로 오는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그곳에 참된 의미의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Jul 2, 2008 | 코스타 사역/코스타 보이스
기독교적 결혼관의 핵심은 결혼을 언약 관계로 보라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시각이 계약으로서의 결혼이라면 기독교인들은 언약으로서의 결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 이익을 위한 계약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 맺는 언약으로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수용의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교제와 결혼, 그리고 가정생활에 대해서 고민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독교적인 이성관, 결혼관을 이해하는 일일 것이다. 이번호 코스타 서평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한 이성교제, 결혼에 대한 몇 가지 책을 소개해 본다.
마이크 메이슨, <결혼 그 신비로움의 비밀>, 도서출판 바울서신
Mike Mason, <The Mystery of Marriage> Multnomah Books, 2005
저자는 결혼의 본질에 대해, otherness, love, intimacy, vows, sex, submission and death의 주제로 깊이 묵상하고 있다. 간단한 몇 개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는 깊은 내용을 제시하면서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 결혼의 신비를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 저술상인 Gold Medallion Award winner이며 20주년 기념판이 재판되었다. 매우 아름다운 문장이어서 서문에도 나오듯이 커플들이 서로 읽고 읽어주면 매우 큰 유익이 있을 것이다. 번역본을 구하기 어렵고, 영어본은 쉽게 구할 수 있다.
조은숙, <우리들의 거듭난 결혼 이야기>, IVP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기독교인이나 일반인이나 모두 겪고 있는 부부사이의 문제를 진솔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신앙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문제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선교단체 커플이 실패한 결혼생활을 다시 변화시켜 나가는 이야기이다. 결혼생활에 문제를 갖고 있는 많은 부부들에게 해결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이런 나눔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마지막 장의 내용, 가정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섬김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 말하지 않는 중요한 주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데, 내용을 대폭 확장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다. 만약 2편을 쓴다면 이 부분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재구성하면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으리라 본다.
로렌스 크랩, <결혼건축가>, 두란노서원
잭, 캐롤 메이홀 부부, <사랑 그 이상의 결혼>, 네비게이터 출판사
크랩의 <결혼건축가>는 결혼준비서로는 바이블에 해당될 정도로 결혼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을 잘 제시하고 있다. <사랑 그 이상의 결혼>은 아주 표준적인 목차를 갖고 있는데, 시선을 끈 것은 ‘분명하게 말하기를 선택함’이라는 장이다. 의사소통에서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계속 상기시키기 위해 교과서로 생각하고 구입했다. 말하고 표현하고 설명하주고 하는 데에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많은 남자들이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스스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데 반해, 여성들은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특히 표현하기보다는 참고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할 것을 교육받은 한국의 남자들은 의사소통에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그런 경우가 빈번하고 심하다. 부부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그것을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추위현, <생애의 반려자>, 5장 독신이냐 결혼이냐, IVP
Albert Hsu, <Singles at the Crossroads>, IVP
추위현의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독신의 문제는 만혼이 늘어가고 있는 요즘 더 의미있는 글이 아닌가 싶다. 독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형제나 자매를 어떻게 배려해야 하는가, 또 그들이 어떤 삶의 방식을 추구해야 하는지 실제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Hsu의 <Singles at the Crossroads>는 그 부제인 A Fresh Perspective on Christian Singleness와 같이 독신에 대해 신학적으로 검토하면서, 독신에 대한 그간의 잘못된 관점, 특히나 독신은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재조명한다. 저자는 독신들도 공동체를 형성하면 하나님이 계획하신 완전함에 다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독신으로 살기를 고려하고 있거나 독신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사람들 및 소그룹에서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전경일,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 다산북스
나성숙, <북어국>, 디자인하우스
결혼, 연애, 가정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주제이고 많은 책들이 시중에 나와있다. 그중 두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맞벌이 부부로 산다는 것>에서는 한국에서 맞벌이부부로 사는 어려움과 애환이 깊이 느껴진다. 굉장히 우울해지지만 고통과 갈등 속에서 힘을 내서 사는 한 부부의 모습 속에서 희망도 읽을 수 있다. <북어국>은 신문기자인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아내의 글모음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대방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겠다.
한편 기독교 서적 중에 언약에 도달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너무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이 언약에 대한 고민과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묵상해야 하는 점들을 살펴보고, 그 이후에 언약이므로 그 언약에 충실하기 위한 자기 희생을 말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수한 이야기, 결혼 과정, 고부갈등, 가정에서 남녀의 역할의 문제 등을 포함하는 것도 좋겠다. 그런 책들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