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3)

올 봄에 내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소명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하며 여러 책들을 읽던 중에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 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명에 대한 책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씌여진 책인데, 왜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찬찬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저자는 책의 2부에서 소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른 책들에 비해 자신의 경험과 다른 사람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 많아서 구체적으로 와 닿는 점이 좋았다. 저자는 소명이라는 화두를 꺼내면서 가장 먼저 직업과 소명을 구분하고 있다. 




첫째, 소명은 직업을 초월한다. …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차적 소명은 능력과 지위와 기회와 배경과 무관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든 존재와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반응으로 그분을 섬기는 삶이며 특별한 헌신과 에너지와 방향으로 투자되는 것이다.”…
둘째, 소명이 결코 직업으로 격하돼서는 안되지만 종종 소명에는 직업이 사용된다. 인근 의대 레지던트 프로그램에서 병리학을 가르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직업 의사지만 그의 소명은 직업보다 크다. 의사라는 직업을 사용해 그는 세상 의사들이 대부분 간과하는 목표들을 이루고 있다. …

셋째, 소명은 전통적 직업이 가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를 보낼 수 있다. 최근 나는 친자녀 여섯에 입양 자녀 열 네명, 도합 스무 명의 자녀를 둔 분을 만났다. 집안이 난장판이 돼도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기는 커녕 그녀의 말에는 침착함과 기쁨과 활력이 배어있다.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무희처럼 말이다. 스무 자녀의 어머니 노릇은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그녀에겐 전통적 의미의 직업은 없었음에도 자신의 소명을 이루고 있었다.

끝으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소명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그 단어의 사용에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의 소명은 단일 직무인 경우가 드물다. 그 직무가 수사의 직분 같은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의 소명-경우에 따라 단수든 복수든-을 발견하는 길과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이루는 길은 깔끔하고 질서정연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인생 여정이 시작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쭉 뻗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pp. 90-92)


그리고나서도 부족함이 느껴졌던지, 저자는 다시 독자들이 소명과 직업을 분명히 구분하도록 돕기 위해 직업에 대해서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첫째, 모든 소명이 다 구체적 직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자신의 가장 깊은 관심이나 동기와 별 상관없는데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일하는 경우가 있다. … 보람이나 소명의식을 별로 못 느끼는 일을 평생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먹여 살릴 가족들과 다달이 갚아야 할 돈이 있기 때문이다. …

둘째, 때로는 직업이 오히려 소명의 발견이나 추구를 방해할 수 있다. … 직업은 협력보다는 경쟁을, 나눔보다는 부를, 봉사보다는 권력을, 진실보다는 이념을 강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직업은 사리사욕의 수단이 될 수 있다. …

셋째, 어떤 소명은 결코 공식적 직업이 될 수 없다. 여기에 해당되는 이들은 때로 자신이 ‘한지로 밀려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대 사회가 직업 특히 그 직업이 가져다주는 권력과 지위와 수입에 집착하다 보니 무직을 택하는 이들은 그만 주변으로 밀려나고 만다. (pp.98-101)


저자는 소명이 직업 이상이며 우리의 존재와 세계관과 인생 목표의 연장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명과 직업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인간은 직업으로 규정되지 않으며 소명도 직업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을 규정하고 그 인간에게 소명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럴 때 인간은 자유로이 직업을 사용해 하나님 나라의 뜻을 이룰 수 있다. (p. 104)

저자가 말하는 소명은 이런 것이다.

소명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뭔가 긍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그분을 높인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구원하려 일하고 계시고, 언젠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실 때 세상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 소명이란 유독 종교적 직업을 가진 자들만의 몫은 아니다. … 이 원리는 그리스도인, 불신자 할 것 없이 의, 진, 선, 미를 창달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분은 세상을 위해 세상 속에서 유익한 일을 하도록 사람들을 부르심으로써 그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일을 사용하여 당신의 뜻 – 미를 창출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의미있는 일을 제공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깨어진 세상을 고치는 것-을 이루어 가신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에 기여하는 소명의 자리는 독특하다. 소명이 있는 이들은 더 높은 목표 의식을 갖고 더 큰 그림을 본다. (pp.102-103)

저자가 제안하는 대로 직업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세상의 필요를 보는 내 마음의 눈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갈 때 나의 소명이 발견되어지리라 기대한다. 소명에 이르는 여정 자체가 소명의 필수 부분이라고 강조한 저자 덕분에 나는 용기와 위로를 많이 얻었다.



5장에서 소명을 직업으로부터 구별해내는 데 애썼던 저자는 6장에서 소명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소명을 발견하는 것을 여정에 비유한다.

길가며 만나는 경험들의 효과가 누적되어 우리를 장래 일에 준비시켜 준다. .. 우리가 삶의 소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은 경험 자체를 통해서다. … 시도와 실험과 실행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 경험은 우리를 가르치고 준비시키고 단련시켜 다가올 미래를 잘 맞이하게 해준다. 이 현 순간에 하나님께 귀기울일 때 그 영광스런 발견의 과정은 시작된다. 우리는 여정 중에 배워서 미래를 맞을 준비가 되어 간다. 성품과 신앙이 자라고,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며, 전체적으로 성숙해진다. 그러다 때가 되면 소명의식이 싹튼다. (p. 110)


…우리는 10년 전에 미리 인생을 계획함으로써가 아니라 현순간 당면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소명을 발견해 간다. 산길을 오르는 등산객에게 점차 경치가 펼쳐지듯, 시간이 가면서 우리의 소명의식은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앞에 뻗은 등산로를 단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때로는 다음 발을 내딛을 만큼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 틀림없이 도중에 아리송하고 모호하고 혼란스런 상황에 부딪칠 것이다. 그러나 계속 가야한다. 계속 가면서 계속 찾아야 한다. (pp.114-117)

소명을 발견하는 여정 중에 많은 시도와 숱한 실험들을 해보면서 실패도 하고,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듯한 상황에도 처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소명찾기의 일부이고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소명을 찾아가는 여정 자체가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해주는 저자의 격려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저자는 그 다음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소명을 분별함에 있어 우리가 귀기울여할 하나님의 음성이 내면의 동기, 재능, 삶의 경험, 기회, 공동체, 마음의 기쁨을 통해 들려온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일종의 신호들이지 공식처럼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고요히 앉아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길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소명에 대해 또 다른 별개의 장을 할애하여 우리 인생에 단 하나의 소명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명이 있기 때문에 그 소명들 간의 충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얘기해주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로서의 소명을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으면서 이 장을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소명이 단 하나뿐이고, 그것은 그의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네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아이를 돌보는 책임은 아내에게 있다고 여겼고 아내가 요구하는 대로 따르기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세 아이와 함께 남겨진 그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야심이 많았던 자신이 차츰 변하여 이젠 하루종일 아이들과 가정을 마음에 품고 다니며 아이들 얘기를 할 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리는 아버지가 되기까지 그 바탕에는 실패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했던 기도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아버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면서 그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그는 현재 교수이면서 작가이기 때문에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가정주부의 소명까지 감당하는 것이 벅찬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분주함과 압박 속에서도 소명의 복수성에 잘 대처하기 위해 단순성, 균형, 유연성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터득했다. 그래서, 그는 첫째 것을 첫째로 삼고 인생에 하나의 최고의 관심사-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 -를 잃지 말고 그 하나의 초점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매일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면서 내면의 단순성을 연습하고 실천할 것을 권하고 있다. 또,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가장 중요한 일을 구분해내고 자신이 가장 전념하는 것 중심으로 삶을 재편하는 연습에 힘씀으로써 선한 우선순위에 바탕을 둔 삶의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균형의 원리를 설명해주고 있다. 끝으로, 자신의 통제권 밖의 상황에 대해 유연하고 홀가분한 자세로 임할 것을 충고하고 있다. 인생이 우리가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 실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가 바라지 않았던 상황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그가 소명의 복수성으로 인한 어느 정도의 긴장과 충돌이 오히려 건강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인상깊었다. 그때 야기되는 불안이 우리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겸손한 종과 청지기의 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끝)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1)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2)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2)

올 봄에 내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소명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하며 여러 책들을 읽던 중에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 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명에 대한 책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씌여진 책인데, 왜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찬찬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의 2장에서는 우리가 행해야할 하나님의 뜻은 미래보다 현재와 관련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는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현 순간에 하나님께 충실하게 순종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특히, 우리가 매 순간 붙들어야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저자는 산상수훈 말씀을 짚어준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단순하다. 그분은 우리에게 현재의 상황이나 미래의 문제에 대해 불신자들처럼 걱정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대신 그분은 이렇게 명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선순위를 바로 하여 첫째 것을 첫째에 놓을 것을 요구하신다.
… 우리는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지 그 선택 과정을 하나님이 정확히 일러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요구는 단순하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고 동기가 순수하며 기본 방향이 옳은지 – 즉 ‘하나님 나라’라는 ‘정북’을 가리키고 있는지 – 그것만 확인하면 된다. 여러 바람직한 대안들 중 선한 양심으로 아무 길을 선택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더불어 저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런 시각으로 보게 되면 놀라운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배우자도, 우리의 직업도 정해놓지 않으셨다. 나 자신 역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한 우리에게 가능한 모든 길들이 우리의 삶에 대한 그분의 뜻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풍성한 자유함을 누리는 동시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붙어있고자 애쓰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사는 게 진짜 재미있어졌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놀라운 자유를 사용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 궁리하고 하나씩 시도해보는 건 신나는 모험이다. 물론 나에게는 사랑과 지혜와 능력과 건강과 재화가 모두 부족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닮기 위해서, 나의 부족함을 아뢰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1)

[하늘에 닿은 사다리] 하나님의 뜻 (1)

올 봄에 내 인생의 구체적인 목적과 소명을 어떻게 찾아야할지 고민하며 여러 책들을 읽던 중에 <하나님의 뜻: 오늘 여기서 그분을 위해> 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소명에 대한 책을 더 구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10년 전에 씌여진 책인데, 왜 이제서야 내 손에 들어왔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문제에 대해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좀 찬찬히,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도했지만,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아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의 원제목은 “The Will of God as a Way of Life: Finding and Following the Will of God”이고 저자는 Gerald L. Sittser이다.  그는 49년의 인생을 돌아보며 수많은 중간 지점에서 자신이 갈 길을 스스로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고 얘기한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의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목사가 되었고, 서른 살에는 목회의 길에 남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인 줄로만 알았던 길과는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경험을 여러 번 하면서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음주운전자의 중앙선 침범으로 한 순간에 어머니와 아내와 네 살난 딸을 잃는 비참한 고통을 겪으면서 그의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현기증이 날 만큼 혼란스러웠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 치명적인 아픔 속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었던 의미를 성경을 묵상하며 발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발견하여 따라야 하는 미래의 길’로 언급한 하나님의 뜻에 관한 말이 성경에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따랐던  ‘하나님의 뜻에 관한 전통적 접근’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통적 접근에서 보는 하나님의 뜻이란 우리가 따라야 할 미래의 구체적 길로 규정된다. 하나님은 그 길을 아시며 우리가 따르도록 정해 놓으셨다. 우리의 책임은 그 길-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따를 수 있는 많은 길들 중 정작 따라야 할 한 길을 찾아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계획해 놓으신 그 길을 말이다. … 그래서 우리는 갈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고, 표징을 바라고, 조언을 구하고, 깨달음을 얻고자 성경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살핀다. 하나님이 분명한 신호를 보내주실 거라는 희망 속에 기다린다. 하늘에서 분명한 음성이 들려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침내 선택을 피할 수 없는 시점이 찾아온다. … 다른 모든 길을 거부한 채 유독 한 길을 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 한 구석에는 끈질기게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놓친다면? 내 선택이 결국 막다른 골목으로 끝난다면? 잘못된 결정의 결과에 갇혀 영원히 그 값을 치르며 살아야 한다면? (pp.21-22)

‘하나님의 뜻에 관한 전통적 접근’은 우리 대부분이 가진 통념이라 너무나 익숙한데, 저자는 이 전통적 접근에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이 접근은 날마다 내리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결정 대신 미래의 중요해 보이는 결정에 마음을 쏟게 한다. … 하지만 날마다 내리는 작은 선택이 누적되면 이따금씩 미래에 대해 내리는 큰 선택의 의미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때가 종종 있다. …날마다 내리는 작은 선택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어느 길을 택하든 내가 내 삶에 진정 이루기 원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에는 이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미래에 관해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우리는 전혀 안달할 필요가 없다.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가능성 때문에 염려한 필요가 없다. 단순히 현재 이미 알고 있는 일을 행하기만 하면 된다. 반드시 분명히 밝혀야 할 부분에 관한 한 하나님은 이미 분명히 밝혀 놓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여부는 날마다 내리는 선택- 말다툼 후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 퉁명스런 직장 동료를 존중하면 대하는 것, 부엌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 기분 내키지 않을 때도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 -으로 결정된다. (pp.22-25)

미래에 관한 어려운 선택도 중요하지만,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소명을 찾는데 집착하여 초조한 나날을 보낸다면 결국 하나님의 뜻을 놓치는 허송세월을 살게 될거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내가 마음을 쏟아야 하는 것은 미래에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룰 것인지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나님이 오늘 하루동안의 나의 삶을 어떻게 보실 것인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이후 차분하고 정돈된 고요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맞이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비록 지금 내가 직장도 없이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어도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에 대한 전통적 접근에는 두 번째 문제가 있다. 하나님관이 잘못되어 있고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숨기시고 우리는 그것을 찾아다녀야 한다. … 하나님은 분명해야할 부분에서는 언제나 분명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그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설득하시는 것만도 하나님께는 이미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 뜻을 숨기심으로 당신과 우리를 더 힘들게 하실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한번 ‘잘못’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를 당신의 선한 계획에서 끊으실 만큼 비정하신 분일까? … 난관과 고난에 부딪칠 때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는 남은 인생을 ‘그때 다른 길을 택했어야 되는데’하고 한탄하며 보낸다. 아이러니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그 상황이 아무리 힘겨운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분과의 관계를 세워나갈 기회를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통적 접근은 이런 어림짐작과 요행심리를 낳지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그분의 은혜에 어긋나는 태도다. (pp.25-27)

나를 자녀삼으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지금 내 삶 속에서 실습하며 배우는 중이다. 고통과 어려움이 계속되고, 힘든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처음엔 쉽지 않지만, 점점 쉬워진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상황에 따라 슬픔과 아픔은 느껴질지라도 두렵지는 않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또한 바라며 매순간 그분께 의지하는, 가난한 마음…이것만을 나의 본분으로 알고 하나님을 꼭 붙들며 살아가길 소원한다.

[편집부] Interview


예 전과 달리 현대 사회는 여성의 사회 진출로 인하여 일(공부)하는 엄마들이 계속 증가하다 보니 자녀를 양육하면서 부부가 함께 공부하는 유학생들도 역시 증가 추세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을 갖고 자녀를 양육하면서 일(학업)을 병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일(공부)하는 엄마들이 그들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나 갈등을 기독교 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나누어 보기로 하자.


이코스타: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엄마로써 일 혹은 공부를 함께 하시는 자매님들이 겪게 되 는 여러 가지 애환들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에 대해 이 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세요. (살고 계시는 지역, 직장, 학업, 가족 관계, 그리고 교회나 캠퍼스에서 하시고 있는 사 역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K 자매: Boston에 살고 있으며, 결혼한 지 6 년이 다 되어가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가 있습니다. Boston University 에서 Biomedical Engineering(의공학과) 박사과 정에 있습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는 Biomaterials (생체재료)와 Tissue engineering (생체조직공학)입니다. 지금 교회나 캠퍼스에서 특별히 공식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는 사역은 없습니다.


R 자매: 저는 Cambridge, MA 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Harvard 대학 전 산과 에서 포 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광통신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 는 남편과 16 개월이 좀 지난 딸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하 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알고자하 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학생과 직장인, 미혼과 아이가 있는 가정, 하나 님을 믿는 사 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희 모임 가운데서 하나 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분들이 생길 때가 제일 행복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부부가 이런 성경공부 모임에서 많이 배우고 자라고 섬김을 받았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섬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코스타: 가정을 갖고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혹은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힘든 일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가정, 일(또는 학업), (교회 또는 캠퍼스)사역 들 가운 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시는 기준은 어떤 것인 지요? 그리고 그 기준을 지켜 나 가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신 지요?


K 자매: 가정과 일(학업)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했던 것처럼 사역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로 미뤄두고 있습니다. 그저 삶 속 에서 자연스럽게 섬길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이와 제가 준비되고 (공식적 인) 사역을 적극적으로 할 시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신호를 주실 것 같습니다. 결 혼 전에는 가정이나 학업보다도 사역을 더 중요시하는, 조금은 이원론적인 경향 이 있었고, 가정에 매여서 교회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어른들께 반 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가정을 가져보니 가정을 잘 보살피고 아이 하나를 하나님 안에서 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사역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가정과 일이 충돌될 때에는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가정이나 일 어떤 것을 우선으로 할지 정합니다. 몇 가지 꼭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면, 학교 일이 아무리 바쁠 지라도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고 아이가 잠 들 때까진 함께 있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또 주말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합 니다. 매일 매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은 compromise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 려고 합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공식적) 사역이라는 걸 못 하고 있기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아주 큰 죄책감과 위기감을 때론 느끼기도 합 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러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 들은 시간관리와 체력관리입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 고 일이 많아 피곤한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개인 시간을 못 가지기에 스스로를 충분히 점검하고 정돈할 시간도 별로 없고, 남편과 깊은 대화 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항상 피곤한 몸 상태로, 계속 쏟아지는 일을 계속 해 나가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시간, 체력, 또 다른 resources의 한 계 속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가족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대하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족끼리 intimate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특별히 신경을 써서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R 자매: 가정, 일, 사역 가운데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라면, ‘하나님께서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일반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말일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이 모든 일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최선의 길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딸에게는 엄마가 곁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을 테고 남편에게 좀 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고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공부하게 하시고 일하게 하 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애의 각 순간마다 어쩌면 우 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이 문제가 오래된 기도제목입니다. 내년 7월이면 Harvard에서의 계약이 끝 나고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맞을지, 아이가 더 클 때까지는 일을 쉬는 것이 나을지 계속 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가정, 일, 사역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기준을 지켜나가는데 어려움 이라고 할 게 없겠네요.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 뜻을 구하고 우선순위 를 정하는 게 제게는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이코스타: 엄마로서 직업을 가지고 계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고 계신가요? 그 렇다면, 그 소명을 함께 나누어주실 수 있으신 지요? 언제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K 자매: 가정과 일을 동시에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 음과 같습니다. 우선 Os Guinness의 The Call에서처럼, 하나님의 소명이란 직업 등에 대한 calling보다는, 하나님 그 분을 향한 부름이 우선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분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장이 현재 제 상황 (가정과 학업) 이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바쁘 고 힘든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떤 때는 전혀 의미가 없 어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께 무조건적 순종을 배우기도 합니다. 자기 고집 을 피우는 아이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배웁니다. 두 번째로는 학문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학문의 주 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매순간 인정하면서 살고 싶다고 기도합니다. 또 저희 분 야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학문으로 온전히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께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쓰시는 학문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런 계획 속에서 제가 담당할 일이 있다면 그 것을 위해서 준비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 번 째로는 직장에서 하나님 과 사람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실험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 사실 잘 못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험실 내에서 각자 자기 project를 하는 가운데, 섬길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좀 더 적 극적으로 섬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임사역자가 되겠다 는 건 아니고, 지금껏 공부해 온 것들을 계속 연결해서 하면서 사람을 섬기는데 적 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진로 결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딸아이에게 좋은 role model이 되었으면 합니다. 딸아이가 일을 하게 될 지 전업 주부가 될지는 철저히 딸아이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서 결정될 일이지만, 지금 사회의 흐름으로 볼 때 딸아이 세대에는 대부분의 여성 이 직업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클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제 딸아이도 저와 같 은 고민을 가지고 살게 되겠지요. 그런 딸아이에게 제가 지금 삶으로서 모범을 보 여 줄 수 있으면 좋겠고, 나중에도 대화와 의논의 좋은 상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위 와 같은 소명을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는 사건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를 막 낳고 대학원에 apply 했을 때 있었던 일인데, 하나님께서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가정과 학업을 다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한 1 년 반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있었던 기간이 있었 습니다.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GRE를 보고 원서 essay를 썼습니다. 아이를 낳고 application을 여러 학교에 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tissue engineering) 가 있는 학교가 보스턴에는 하나만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보스턴에 서는 한 학교만 apply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들에 apply 했었습니다. 몇 달 후, Admission 결과가 나왔는데, 보스턴에 있는 그 학교에선 reject가 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만 admission이 왔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아이를 데리고 먼 곳에 있는 대학원에 가야 할 지, 아니면 대학원 가는 걸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 와 다 함께 있어야 할 지,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랜 고민과 기도 그리고 남편 과의 의논 후에 선 결심은 가족이 흩어져서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 다고 일하길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고 보스턴에 있는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었습 니다. 이곳 저곳 알아보는 가운데 tissue engineering을 연구하는 교수가 지금 제 가 다니는 학교에 1 년 전 부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전에 apply할 학교 들에 대해서 알아봤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지요. Application deadline이 몇 달이 나 지났음은 물론이고 admission 발표까지 다 난 후였지만 application을 보냈습니 다. 얼마 후, 학교로부터 admission은 물론이고 Deans Fellowship이라는 장학금까 지 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함께 있으며 저도 제가 원하는 공 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철저한 간섭과 섬세하신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진로 결정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선 제게 가정도, 일도, 또 제가 공부하는 학문도 포기하지 않길 원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R 자매: 엄마로서 직업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반면에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에서 제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을 따라 자라가고 또 이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주시는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고민하면서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 중에 하나 가 아닐까 합니다.


이코스타: 특별히 일하는 여성으로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으 신 지요?


K 자매: 이기적으로 자기일 만을 챙기고, 자기를 내세우고, aggressive하고 competitive하 게 일을 추진해야 하는 work environment에서, Christian으로서의 섬기는 자세와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주변에 보면 가정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Christian 여성으로서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에서 고민하며 사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전 family-friendly working environment 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런 고민은 크게 겪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지도교수도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같은 실험실에, 지금 임신 중인 post doc도 있고, 같은 과에 얼마 전 아이를 낳은 다른 여자교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남자 researcher 는 아이를 데리고 실험실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 정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직장에서 가지게 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지역교회나 공동체에서 여자이기에 기대되는 일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구역예배 때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할 때, 아무래도 부담스 럽게 느껴졌었습니다. 아이가 어리고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 한 가지 일이 더 주어 지는 듯 해서, 섬길 수 있다는 기쁨보단 일의 부담감이 더 크기도 했습니다. 다른 가정은 거창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죄송함 등도 컸습 니다.


R 자매: 하나님께서 정말 내가 일하기를 바라시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 니다. 여성으로서, 아이와 남편에게 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일 터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의 형 제/자매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직장 일 에 쓸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보게 됩니다.


이코스타: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으로서 남편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K 자매: 저희 남편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큰 시험이 있을 경우, 공부에 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줬고, 집안 일도 잘 나눠서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집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시간이 적기에 이메일로 QT share도 하고 생각도 나누자고 initiate하기도 했구요.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정의 일을 나눠서 할 경우, 그것을 ‘아내의 일을 돕 는다’는 맘으로 하지 않고, ‘내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자세로 임해 주셨으면 좋겠 다는 겁니다.


R 자매: 남편이 영적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더 봐주고 집안 일을 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엄마로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K 자매: 장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출퇴근했기에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몸에 베이는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다른 분이 봐 주시고, 더 어릴 적부터 학교 생활을 시작 했기에,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하 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낯을 별로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도 금방 친해지는 편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독립적이고 부모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 아닙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제한되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듯 합니다. 가끔은 엄마를 어린 자기가 care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자기가 절 위로해 주기도 합니다. 엄마가 피곤해 하고 스트레스 받는 기색을 보일 때, 옆에서 계속 웃으면서 재잘재잘 거리면서, 엄마를 결국 웃기고 맙니다. 또 아빠 가 학회에 가서 없을 땐 자기가 아빠 흉내를 내서 엄마에게 힘을 주기도 합니다. 정말 딸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걸 매일매일 확인하게 됩 니다. 제가 딸아이와 함께 항상 있었다면, 딸아이를 양육하는데 제 생각과 제 고집 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텐데, 어린 시절부터 떼어놓으면서 저도 딸아이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 다. 제 딸이 세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큰 시험이 있어서 새벽 일찍 학 교를 가야 했는데,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깨서, ‘엄마, 학교 가지 마’라고 매달리 더군요. 아빠가 일어나서 안아줘도 다른 때완 달리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 마 학교 가야돼, 엄마가 큰 시험이 있어서 학교 가야돼’ 라고 꼭 안아주면서 이렇 게 저렇게 잘 설명해 줬더니,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군요. 그러고 잠시 후,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단호한 어조로, ‘엄마 학교 가세요. 학교 가 서 공부하세요,’ 라고 어른처럼 얘기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집을 떠나 학교를 향하면서 딸아이가 너무 기특하기도 하고 딸아이에게 너무 고맙더군요. 그와 동시 에 그 순간 제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반면에 단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는 장점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단점이기도 합니다. 함께 있을 때도, 아 이가 원하는 관심을 못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혹시 불만을 가지게 되 지는 않을까,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못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가 듭니다.


R 자매: 남편이 영적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더 봐주고 집안 일을 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여성학이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계기를 제시했습니다. 하 지만, 최근에는, 그 여성학이 “일하는 여성은 우월하고, 살림하는 여자는 열등하다” 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원론을 제공했다는 역풍 또한 맞고 있는데, 그로 인해 고민 을 하신 적이 있으신 지요?


K 자매: 있습니다. 일을 쉬는 동안 그런 사고방식에 많이 젖어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기에 가지는 열등감도 있었고 이러다가 영영 일을 다시는 못 하게 되지는 못 할까 하는 불안감도 크더군요. 하지만 전업 주부로 있었던 약 2 년 동안, 교회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전업 주 부들의 고충과 생활 속의 도전들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일하는 여성을 더 인정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전업 주부로서의 설움과, 일을 하기 원하심 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닿지 않고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고민 등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반대로 가정을 가지고, 일하는 Christian 여성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Christian 분들도 뵙습니다. 언젠가 자녀교육에 대한 기독교 서적을 보다가 아이가 있음에도 직장을 가지는 엄마들은 이기적이고 잘못되었다 라고 매도해서 말하는 부분을 보고 는 분노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여성이 전업주부를 하건, 직장을 가지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어떤 생활방식으로 살게 되건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걸 알고 순종하고, 또 그 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R 자매: 여성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생각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여성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월하고 열등한 지 결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차별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뜻을 구하고 주만 바라보며 산다면, 여성학에서 누굴 우월하게 생각하고 열등하게 생각하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k and R 자매님, 이렇게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두 자매님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