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현] 유학생 사역: 첫걸음이 중요하다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계획은 빨리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석사과정도 M.Div가 아닌 MA를 먼저 시작했다.

기독교 교육학으로 석사를 하기에 아무래도 사역 경험들이 필요할 것 같아 지역의 이민교회에서
파트타임 사역자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좌충우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와준 교사들이나 아이들, 그리고 배려해 준 교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던 중 한 지역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로 섬기기 시작하면서 한 영혼을 바라보는 나의 영적 시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 한 영혼, 한 영혼을 말씀으로, 인내로 섬긴다고 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나는 M.Div를 고려하고 현장에서의 사역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은 자연히 대학생들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힘든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당시만 해도 “캠퍼스”에 있는 대학생들에게는 당시 이민 교회들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던 때였다. 모든 사역이 그렇겠지만 캠퍼스 사역 역시 자신의 은사나 적성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단은 자신의 은사나 적성을 바탕으로 그에 적절한 교회/단체등에서 사역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열정적이기 보다는 좀 차분하고 사색적이기를 바라는 성향이 많기에 그런 색깔(?)을 가지고 사역하는 단체에 마음이 끌렸고 그래서 직접적으로 접하게 된 학생선교단체가 바로 IVF였다. 당시에 남가주에는 한국기독학생회의 남가주 지방회라는 이름으로 UCI, El Camino collge, Cal State in Long Beach, 그리고 UCLA에서 KIVF가 활동하고 있었다.

S 목사님으로 부터 접하게 된 존 스토트의 많은 책들이 내 신학적인 밭을 일구는데 일조했다면, 그 존 스토트가 활동했던 IVF와의 만남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요, 만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같은 대학원을 다니던 1.5세 가운데 T 형제와의 만남은 본격적으로 캠퍼스 사역에 연결된 계기였다. 그러나 캠퍼스 사역에 관심이 있다는 나의 말에 보인 T 형제의 첫 반응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단 한 마디였다. “쉽지 않아요!”) 지금 돌아보면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이었는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캠퍼스 사역은 쉽사리 덤빌 수(?)있는 현장은 아니다. 너무 겁을 내고 두려워 뒤로 물러설 필요도 없지만 그러나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덥석 발을 담글 수 있는 곳도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나 ‘지속성’의 주제와 관련하여는 더욱 그렇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오랜 인내와 겸손이 필요한 사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T 형제의 소개로 만난 지역대표간사님이었던 H 간사님과의 만남은 그 후로도 내가 캠퍼스 사역이 무엇인지를 배워 나가는데 있어서 좋은 토대를 놓기에 충분했다. 베테랑 간사님이었던 그 분의 경험과 간사 회의때마나 나누어 주던,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주 오래된, 직접 수리하시면서 타시던 빨간 니산 센트라 안에서 나눠 주시던 귀한 말씀들이 생생하다.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 세사람, S 목사님, T 형제, 그리고 H 간사님과의 만남은 큰 축복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캠퍼스를 마음에 품으며 기도하는 수많은 미래의 동역자들, 혹은 캠퍼스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동역자들, 특히나 한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속에서 캠퍼스를 마음에 두고 있는 동역자들에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과 훈련받아야 할 부분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것을 채워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눈을 부릅뜨고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기를 간청하고 도움을 요청해 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맨땅에 헤딩하지 않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처럼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등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첫걸음이 됨을 믿는다.  

[안상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서…

eKOSTA로 부터 정기적으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한참이 지났다. 이제는 마감의 기한도 한참 넘어버린, 그래서 eKOSTA도 포기한 지금에야 글을 올리면 좀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나 하는 심정으로 부탁받은 캠퍼스 사역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워낙 글재주도 없고, 사역도 특별한 것이 없는지라 그냥 내가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있었던 일들을 기억나는대로 적어보려 한다. 그래서 혹여나 캠퍼스 사역의 현장에 있는, 아니면 캠퍼스 사역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조금이나마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내가 국민학교(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 6학년때 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6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던 겨울 방학에 다니기 시작한 교회는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고 그 특별한 경험을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처음 간 교회 수련회였다. 그 당시 가장 컸던, 그리고 유명했던 금식 기도원에서의 수련회는 내게 충격이었고 늘 선하게만 보이던 교회 여자 선생님의 울부짖던 통곡과 회개의 기도는 내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으며 나로 하여금 두려움 반, 기대반의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했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3개의 다른 교회를 다녔다. 처음 다녔던 교회에서 두번째 교회로는 어떤 이유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두번째 교회에서 세번째 교회로는 아시는 친척이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을 하시는 바람에 가까이 사는 친척된 도리를 하느라 옮겼었다.

세 교회 모두 소위 동네 교회들이었기에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의 과정들을 거칠 수 있었고 또 친척이 담임 목사로 계시던 교회에서는 개척교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고등부 회장도 하면서 마치 신앙이 탄탄한 아이처럼 그렇게 착각하며 교회 생활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목사님의 큰 딸이던 누나는 당시 대학 4학년으로 CCC 멤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누나 덕분에 CCC의 행사에도 참석하며(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나름 신앙을 ‘키워’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나 아주 이원론적인 삶을 살았는데(물론 그때는 그런 용어조차도 몰랐지만) 신앙생활이란 주일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그 당시 많은 고등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소한 일탈행위를 일삼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전기에서 믿었던 대학에 떨어지고 후기를 가야하나, 재수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부모님이 제안하신 신학대학은 정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물론 지금은 아내를 만나게 하시고 내 인생을 변화시킨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지만..^^) 입학을 하고야 말았다.

내키지 않은 공부를 하려니 결코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당시에는 당구장과 술집이 학교보다도 더 친숙한 곳이었고 신앙이 자라기는 커녕 요즘 용어로 Silent Exodus(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에 빗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들이 졸업과 동시에 교회/신앙도 조용히 떠난다는 것을 표현한 용어)의 무리에 끼고 말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학대학생이라는 내 겉모습은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 주일학교 총무, 성가대원이라는 자리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나 역시 부모님의 입장,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교회를 다녔다.

왜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참을 쓰느냐 하면 당시에 내가 다녔던 교회들, 혹은 나와 같은 신앙의 여정을 겪은 사람들을 찾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신앙적으로 많이 아프고 고민되고 혼란스러운 것들이 많았는데, 아니 신앙을 넘어서서 인생이란 것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이 많았는데 그 질문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가이드해 줄 사람을 찾질 못했다. 내가 그렇게 아파하는데도, 그래서 방황하면서 대학부 모임에 거의 나가질 않았는데도 중학교때부터 알아오던 교회 선배들, 대학부 전도사님들/목사님들은 왜 내게 대학부 모임에 나오지 않는지, 혹은 따로 만나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물어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캠퍼스 사역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나와 같은 젊은이들이 분명 캠퍼스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원래 길을 잃은 사람은 스스로 찾기가 힘든 법이다.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누군가 ‘내가 그 쪽으로 이미 가봤는데 아니더라. 이 쪽으로 한번 가봐’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신앙적으로 그리 뛰어나지도 않고, 몇 마디 어줍잖게 알고 있었던 신앙지식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대학생때의 나처럼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 속이라도 털어놓으면 그걸로 시원하겠는데 그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조용히 울고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작은 바램을 가지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하였다.

안상현 목사 인터뷰 – cKOSTA를 통해 일하실 하나님

이코스타 2006년 9월호

1. 안녕하세요. 안상현 목사님. eKOSTA 독자들에게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안상현 간사라고 합니다. 현재 엘에이에 살고 있고 캠퍼스 선교단체인 IVF의 남가주 지방회와 UCLA를 섬기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코스타에서는 cKOSTA를 처음 시작할때부터 섬기고 있고 지난 11월부터 코스타/USA의 서부 순회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2. cKOSTA가 벌써 4년이 되었네요. eKOSTA 독자들에게 cKOSTA가 생기게 된 과정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마도 가장 처음 학부생들을 위한 코스타에 대한 필요가 제기된 것이 2000년 시카고 코스타로 기억됩니다. 당시에 약 1600명 가량의 최대인원이 참가하면서 숙박이라던가 여러가지로 힘든(?) 코스타로 기억되는데 당시에 수양회가 끝나고 참가자 통계를 내보니 그중 약 400명이 약간 넘는 인원이 학부생으로 파악되면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학부생을 위한 코스타의 사역이 수면위로 급부상(?)한 계기가 아니었나 기억됩니다. 그 후 약 2년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후에 2002년 3월경에 구체적으로 cKOSTA를 위한 첫 준비모임을 엘에이에서 가지게 되었고 그 후 2003년에 처음으로 엘에이 근교의 채프만 대학에서 제 1회 cKOSTA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3. cKOSTA가 4년을 지내오면서, 2년은 LA에서 그리고 2년은 Indianapolis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변화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처음 엘에이 근교에서 2년 동안 cKOSTA를 가졌던 것을 뒤돌아 보면 당시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현재의 cKOSTA를 위한 귀한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처음 cKOSTA를 섬기시던 분들이 서부지역에 많았던 것과 또 시카고를 중심으로 한 중.동부로 치중되어 있었던 기존의 코스타 수양회와의 균형, 그리고 엘에이를 중심으로 한 한인 대학생들의 숫자를 감안하여 서부에서 첫 2년의 수양회를 가졌습니다. 한가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것은 처음에 시카고 수양회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학부생들이 Big-Ten 지역과 동부지역에서 온 학생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cKOSTA 수양회의 장소로 엘에이를 선택한 것이 학생들로 하여금 물리적인 거리가 너무 멀어서 참가에 주저하게 만들었던 요인이 아니었나 평가해 봅니다. 동시에 기존의 남가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지역에 수많은 대학과 한인 교회, 한인 커뮤니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서부지역의 참가자들이 저조했던 것은 기존에 개최되고 있는 대학생들을 포함한 한어권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개교회 중심의 집회나 수양회들로 인하여 차별성 부각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두번의 수양회를 거치면서 위에서 말씀드린 부분들이 부각되었으며 특별히 지리적인 위치로서 참가자들이 cKOSTA 참석을 적극 고려할 수 있는 최종 지역으로 인디애나폴리스가 선정되었습니다.


4. 2006년 cKOSTA는 감사하게도 많은 성장이 있었던 집회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2006 cKOSTA의 특징이랄까, 변화랄까 하는 점들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무엇보다도 먼저 학부생 중심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해서 미주 한인 젊은이와 대학생들을 섬기는 수양회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코스타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코스타가 더 이상 유학생들만을 섬기는 집회가 아니라 미주 한인/청년을 섬기는 수양회로서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가장 먼저 두드러지게 참가자들의 변화를 볼 수 있는 부분이 cKOSTA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현재 cKOSTA의 참가자들을 분포를 보면 유학생과 이민자가 각각 반반씩을 사이좋게(?) 양분하고 있는 것만을 보더라도 미주 코스타 사역의 방향성이 자리잡히고 있는 집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가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주에 있는 학부생과 젊은이들을 위한 수양회이고 이름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을 위한 영적인 가려움을 긁어줄 수 있는(?) 수양회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일단 강사 선정에 있어서도 한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아니라 이곳 미국의 대학생활이나 직장생활을 이해하실 수 있는 분들을 모시고자 노력함으로 강사와 참가자들간의 갭을 줄이고자 노력했던 것이 참가자들에게 우리들을 위한 수양회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더불어서 소그룹과 상담을 통한 크지만 작은 수양회를 지향함으로서 혹여나 큰 대형집회에서 놓칠 수 있는 개인적인 나눔과 그 나눔을 통한 치유와 성장에 치중했던 점이 자리잡히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진행이라던가 등록등 세밀한 부분에 미숙했던 점들은 아직 개선되어야 할 과제로 남아있고 이 자리를 빌어 그런 미숙함을 인해 불편을 겪었던 참가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과 또 계속 cKOSTA를 위해 기도해 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5. KOSTA하면, 한국말을 하는 청년들의 모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요, cKOSTA에는 어쩔 수 없이 영어가 더 편한 학생들도 있을 법 하거든요. 언어의 문제들은 별 장애가 되고 있는지 않은지요?


실제로 많은 수는 아니지만 영어가 더 편한 학생들이 참가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라고 해서 더 불편해 하지는 않습니다. 참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선 이 수양회가 한국어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참가해서 ‘언어의 불편을 감수하겠다’라고 다짐(?)하고 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참가자들과 강사님들이 이런 참가자들을 위한 배려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단 참가자들이 여기서 현재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또 대학을 졸업했기에 한인 2세를 포함한 다문화권 사람들과의 교통에 그리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어권에 있는 참가자가 와도 소그룹 모임등에서 잘 배려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영어권 참가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점도 있구요, 동시에 위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강사님들이 1.5세들 혹은 이 곳 미국에서 공부하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비록 전체 예배등에서 한국말로 진행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영어권 참가자들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상담등을 통하여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올해 성경강해를 섬기셨던 장성욱 목사님(Steve Chang)만 하더라도 9살에 미국에 오신 분이라 한국말이 서투르시다보니 쉬운 한국말로 설교하시고 또 단순히 언어의 문제를 넘어서서 강사가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가졌다고 하는 점에서 영어권 참가자들이 쉽게 동화되어 상담 신청을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습니다.


6. 21년을 지나온 KOSTA의 중요한 목적이라면, ‘복음, 민족,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cKOSTA가 시작하기 전에는 학부생 참석자의 숫자를 제한하기도 했었고요. 이제 학부생이라는 제한을 넘어 설 뿐 아니라,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는데요. 그런 과정 중에서, 아직은 학문의 전문분야로 들어오지 않은 학부생들에게 ‘복음, 민족, 학문’이라는 KOSTA의 중요 정신들이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요?


먼저 ‘민족’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cKOSTA에 참석하는 참가자들이 생각하는 민족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복합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예전에 코스타가 태동한 후 초창기에 가졌던 내 나라, 내 조국, 내 민족, 내가 돌아가서 발을 디디고 살아야 할 땅으로서의 민족의 개념과 비교하자면 현재 cKOSTA에 참가하는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민족의 개념은 그보다는 좀더 지리적,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꼭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내 나라로 돌아가지 않아도(실제로 참가자들의 반 이상이 이민을 나온 사람들이구요..) 한민족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충분히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듯 합니다. ‘복음’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개인의 구원이라든가 천국, 혹은 영원한 생명으로서의 복음에 관하여는 분명한 인식이 있지만 “하나님 나라” 측면의 복음에 관한 이해는 좀 약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각자가 살아가는 이 땅에서 복음을 “온전하게 살아내는 것”에 관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강조가 적은 듯 해서 이 부분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가치인 ‘학문’과도 연결이 되는데요, 사실 시카고 코스타에서 강조하는 학문은 말씀하신대로 아직 전문분야로 들어서지 못한 참가자들이 대부분이라 실제로 관심을 갖는 부분 역시도 진로상담이라든가, 혹은 전공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뜻 분별하기’로 치우치는 것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미나나 상담을 통하여 현재 참가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들에 관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를 넘어서서 더 학문의 분야로 나가려는 사람이나 혹은 졸업후에 곧바로 직장을 갖고자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골 3:23)처럼 하나님 나라의 시각에서 인생을 준비하고 풀어나가는 준비를 돕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7. 그렇다면, 현재 cKOSTA에서 중심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은 어떤 점들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점들이 실제로 cKOSTA에서 중점적으로 강조하는 점들입니다. 기존의 시카고 코스타에서 핵심가치로 지니고 있는 것들을 지키되 그 안에서 강조점이 조금 다른 식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의 것들에 덧붙여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꼭 cKOSTA만이 아니라 많은 다른 사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개인적인 회복과 치유에 관한 필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춘기 혹은 20대 초반에 이민이나 유학을 온 사람들 많아서인지 이민 가정에서 보여지는 정서적, 영적 방치가 개인의 성품등에 영향을 미쳐 이를 말씀으로 치유해야 할 필요가 많구요, 동시에 유학생들 역시 새로운 환경(이는 이민자도 마찬가지)에 적응하면서 생기는 여러 상처나 갈등들, 아픔들에 관한 사역의 필요는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것 같습니다.


8. 그런 가치를 공유하고, 미국 내 청년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강사님들을 찾고 함께 섬기는 것이 쉽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 어떤 분들이 함께 일하시고 또 어떻게 새로운 동역자를 찾고 계신지요?


많은 동역자들께서 이 젊은이들을 향한 마음을 품고 기도해 주시고 섬겨주십니다. 초창기부터 엘에이 지구촌 교회의 이현수 목사님, 뉴저지의 이진석 목사님, 조경호 목사님, 백은실 집사님, 김종필 권사님, 이일형 권사님 등이 섬겨주고 계시고 감사하게도 계속적인 네트워킹을 통하여 젊은 세대를 향하여 마음을 품고 계신 귀하신 분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9. 지금까지 cKOSTA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 또 어떻게 인도해 주실지 많이 기대가 되는데요. 목사님께서는 개인적으로 기대하시는 cKOSTA의 10년 후의 모습을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계속적으로 섬겨주시는 동역자들의 기도와 섬김이 이어진다면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한인 대학생,청년을 위하여 1회성이 아닌, 구체적인 도움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cKOSTA 사역이 되리라 기대하고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10년후를 예상한다는 것 자체가 교만한 것 같구요, 처음의 초심을 잃지 않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그” 사역에 집중한다면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서 하나님이 쓰시는 그 순간까지 잘 쓰임받는 사역이 되리라는 점에는 확신합니다.

[안상현] cKOSTA 2005를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5년 6/7월호

칼리지 코스타/USA가 올 해로 세번째를 맞이 했습니다. 지난 2년동안 미 서부지역에서 열리던 칼리지 코스타가 올 해부터는 중부의 인디애나폴리스로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개최장소를 옮기면서 몇 가지 변화의 조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먼저 무엇보다도 좀더 넓은 지역의 한인 대학생/청년들을 품고자 하는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서부지역에 치중되어 있던 지역성에서 탈피하여 미국의 지역적 중심에 자리 잡음으로 말미암아 미 전국의 한인 대학생/청년 학생들을 향하여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는 장점을 들 수 있습니다. 동시에 두 번의 칼리지 코스타를 치루면서 좋은 간사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코스타의 중요한 가치중의 하나인 참가자가 주인이 되는 자발운동의 정신이 칼리지 코스타에도 뿌리내리는 것을 보면서 20세기 초반 선교의 근원지였던 학생자발운동(SVM)이 시대를 달리하지만 똑 같은 미국땅에서, 그것도 학생자발운동의 수혜자들이 한민족의 젊은이들을 통하여 다시금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겨자씨들의 위대함을 꿈꾸어 봅니다. 그러나 단순히 간사들이 새롭게 배출되고 지역을 옮겨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는 것 이상의 중요성을 올 해의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강사와 간사들만이 나누고 고민하는 주제가 아닌, 모든 한인 대학생/청년들에게 각인되고 실천되는 주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 모든 한인 대학생/청년들은 우리를 선택하여 주신 주님의 피흘림과 희생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선택받은 백성’이 되었음이 우리의 정체성의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분의 죽으심과 희생에 의한 선택에 온전히 “순종함”(2절)이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의 삶의 이유에 분명한 이유를 주고 또한 영원함에 관한 소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3절)가운데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유일하고 변치 않는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희생의 복음위에 자신의 ‘선택받은 백성’으로의 뿌리를 다지는 칼리지 코스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를 “흩어진 나그네”로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가운데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유학으로 왔건, 이민으로 이 땅에 정착하게 되었던지 간에 우리는 현재 이 땅에 발을 내딛고 살고 있습니다. 몸은 미국땅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가치관이나 태도들이 아직도 이전의 가졌던 습관이나 태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신을 바꾸거나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려는 안주해 있는 대학생과 청년들의 모습을 주위에서 많이 보곤 합니다. 이것은 어떤 문화가 우월하고 다른 문화가 더 우월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어떤 문화, 어떤 삶의 정황가운데 살던지 간에 그 곳으로, 그 상황으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우리의 응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의도와 계획은 아니었을지라도 ‘흩어진 나그네’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흩어짐이 곧 ‘하나님의 미리 아심’(2절)이었다고 선포하는 사도 베드로의 선포가 21세기를 살아가는 미주의 한인 대학생/청년들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는 말씀이고 또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흩어진 나그네로서 지금 바로 이 자리의 삶의 정황가운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세번째로, 선택받은 백성으로 흩어진 나그네의 삶을 가능케 하고 또 거룩케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거룩하게”(2절) 하시는 능력임을 깨닫고 그 거룩함을 능력을 추구하는 칼리지 코스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거룩함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으로 채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꿈을 우리의 꿈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처한 삶의 모든 환경들— 학교, 가정, 교회, 일터, 만남—가운데에서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들을 그려보는 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vision 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하지만 이 vision은 하나님의 계획과 그림들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서 상상해 보고 그려보는 일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상상력의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고작 ‘큰 집, 좋은 차, 멋진 남편과 아름다운 아내’ 혹은 그보다도 더 비참하게 고작 ‘포르노’의 영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속에서 이런 그림들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그림들로 채우는 일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이는 우리가 온전히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앞에 순종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이 거룩의 능력을 발견하는 칼리지 코스타와 칼리지코스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서, ‘나’와 ‘우리’를 뛰어넘어 ‘저희’를 바라보고 품을 수 있는 칽리지 코스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000여년전 사도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흩어진 땅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일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를 향하여 사도 베드로는 너희도 나와 같은 마음을 품기를 기도하며 바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을 향하여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행 10:14—“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가르치시고(19-20절—“성령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그의 편견과 세계관을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거룩케 하시는 능력을 의지하는 것처럼 또한 우리 모든 칼리지 코스탄들은 성령의 가르치시고 변화시키시는 능력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보여준 모습입니다(행 10:28, 34-35—-“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노라”) 순종함은 곧 실천을 동반하고 그 실천하는 신앙의 모습을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서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년인가, 한국에서 열린 대학생, 청년 선교대회의 주제가 ‘벽을 넘어 열방으로’ 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마음의 벽, 얼굴 색깔의 벽, 성별의 벽, 인종의 벽, 교육 배경의 벽, 문화의 벽을 뛰어넘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땅의 베드로로 변화하기를 애쓰고 추구하는 칼리지 코스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흩어진 나그네로 다른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전하고 실천하는 일들이 바로 이 땅에 나그네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무엇으로도 값을 수 없는 희생을 치뤄주신 주님께 보답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005 칼리지 코스타 집회가 진심으로 이 ‘선택받음’과 ‘흩어짐’의 소명들을 신실함과 열정으로 채우는 집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안상현] 2004 cKOSTA를 기대하며

이코스타 2004년 6월호

이코스타의 독자들이 이 글을 보는 즈음이면 올 해의 화제작, “The Day After Tomorrow”가 이미 개봉을 했겠네요. 지구 온난화로 지구 곳곳이 상상도 못할 기상이변을 겪게 된다는 바로 그 화제의 영화말입니다. 이 영화의 극본을 쓴 사람중의 하나인 제프리 나흐마노프는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비정상적인 환경을 극복하는 보통 사람들의 드라마”라고 얘기하더군요. 저의 관심을 끌던 한 마디는 바로 “Where will you be?” 라는 부제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사사기 21:25)의 말씀처럼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 시대에 과연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모략”, 그리고 “마음의 혁신” 등을 저술한 달라스 윌라드에 의하면 이 시대의 기독교 혹을 기독교인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Consumer Christianity, 혹은 “consumer Christian” 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단어의 뉘앙스에서도 감을 잡을 수 있는 것처럼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에 익숙한, 희생보다는 유익에 관심이 많은, 고난보다는 즐거움에 관심이 많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자신의 모습도 그런 시대의 흐름에 자의반 타의반 몸을 맡기고 구해줄 사람도 없이, 빠져 나오려는 의지도 없이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더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난받는 공동체, 거룩한 공동체”라는 주제로 두번째 칼리지 코스타를 준비하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 땅의 대학생들이 ‘고난’과 희생에 대하여 고민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있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부의 복음, 건강의 복음, 기도 응답의 복음 이전에 우리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복음은 바로 고난의 복음이 그 본질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내 삶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우리를 십자가에 달리셨던 그리스도에게로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여정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동시에 고난받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은 타인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들로 하여금 완벽성과 불멸성의 환상속에서 벗어나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고 깨지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한길 가는 순례자’ 유진 피터슨)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존재임을 생각나게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짊어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며 그분을 우리의 주되신 그 분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당할, 그리고 당해야 할 고난의 영적 지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자신을 “고난받아야 하는 인자”(막 8:31)로 스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아닌, 엘리야도 아닌 고난 받아야 하는 인자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막 8:32)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의지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의지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노력이 없이는 고난의 제자의 길로 들어서는 것 역시 요원한 일이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의지적인 고백은 구체적인 섬김을 통하여 증명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각인되도록 보여 주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고난을 받아야 할 인자로 자리매김하신 것은 곧 “죽임을 당하시게 될 것”(막 8:31)을 의미하며 예수님은 그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단순히 말의 향연이 아닌 구체적인 희생을 품어야만 그 모습이 온전해지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 그 고난은 십자가에서의 고통이셨으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신”(막 10:45)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의 성취요 완성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을 ‘유목민’의 삶이라고들 표현합니다. 유목민의 삶이 무엇입니까? 바로 축적이 아닌 “경험”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축적이 아닌 경험은, 바로 그 고난의 경험은 세상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보여 주었어야 할 모습들인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고난받기를 자처하기 보다는 피하려 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꾸짖으신 예수님(막 8:32 33—“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이 어쩌면 오늘의 베드로인 우리를 향하여 또한 동일한 말씀으로 꾸짖고 계신다는 생각을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3) 축적(사람의 일)이 아닌 고난의 경험(하나님의 일)을 즐거워 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상상은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가지셨던 상상이었을 것입니다. 이 상상은 바로 기대감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우리에게 책임을 요구합니다. 주저함이 없이 기꺼이 받아들일 그 거룩한 책임 말입니다. 왕되신 주님은 종의 책임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이것이 바로 고난과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풍요나 풍성함과는 정반대로 “예수의 나라에서는 순종이 곧 풍요함”이라는 진리를 우리 모두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 순종은 바로 고난과 함께해야만 하는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고난받는 그리스도인, 고난받는 공동체 저 너머에 있는 거룩한 영광을 꿈꿔 봅니다. 이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상상력이란 고작해야 집, 자동차, 연봉 정도이겠지만 우리가 꿈꾸는 것은 바로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 12:1) 가운데 기쁨으로 손흔들며 춤추고 있는 바로 나 그리고 우리들입니다. ‘Where will you be?’ 라는 질문앞에 당당히 우리의 자리를 선포할 수 있는 공동체말입니다.


그 고난너머의 거룩함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가득한 칼리지 코스타를 기대하며 또 기도합니다.




(참고서적)
1.’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존 스토트.
2. ‘한 길가는 순례자’, 유진 피터슨
3. ‘하나님의 모략’, 달라스 윌라드
4. ‘마음의 혁신’, 달라스 윌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