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정길, 이동원 목사님

24년 전 코스타를 시작하시고, 섬겨주고 계신 홍정길, 이동원 목사님을 코스타 보이스가 만나 보았습니다.
25주년을 맞는 코스타가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평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이하 존칭 생략): 한국의 학생운동이 다 힘들어하고 학생운동이 부흥하지 못했습니다. 유학생들이 해외에 나와있으면 마음이 가난해지는데 그런 면에서 코스타가 유학생 전도에 기여하였습니다. 센서티브한 청년기이기에 신앙이 무엇인지 자기들의 가치관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결정적 영향을 많이 주었고, 적지 않은 분들이 한국 여기저기서 리더의 역할을 훌륭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코스타가 지속성 있는 기관은 아니지만, 코스타 운동을 통해 자연스러운 영향을 끼친 것을 감사합니다.
홍정길 목사님(이하 존칭 생략): 세계적인 선교학자인 패트릭 존스톤이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사에 남을 만한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새벽기도와 코스타운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보스톤에서 1980년부터 5년간 성경공부를 했는데, 1983년부터 30명의 노스캐롤라이나 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이 목사는 워싱턴에서 젊은이들과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게 커져서 유럽으로, 세계 각처로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유학생이 확장하는 시절에 하나님이 준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youth들이 굉장히 잘 모이게 되었습니다. 또 KOSTA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추석 기간에 CHISTA로 모입니다. 그리고 미국 내 중국 유학생들도 위튼에서 이런 집회를 엽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코스타 집회에 중국, 일본 학생들이 함께하고 유럽 코스타의 경우에는 독일학생들이 동시통역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코스타의 모습이 여러 모양으로 진화하고 있지요. 코스타의 대표적인 특징은 모든 강사가 사례를 받지 않고, 때로는 헌금도 한다는 것입니다. 코스타가 이런 모임을 최초로 시작하였습니다. 1회와 지금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동원: 5회까지는 눈물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대학가가 군부독재하에서 투쟁하면서 분실 자살도 많았고, 경제도 열악했습니다. 거의 그 당시에는 강사들이 와서 많이 도와주었는데, 김치도 강사들이 다 실어다가 참가자를 먹이고 그랬습니다. 특별히 2회 코스타는 통곡 그 자체였습니다. 1987년 6.29 이전에 집회를 했었는데, 코스타가 끝나고 얼마 후 6.29가 있었는데, 그때 잠도 안 자고 울었습니다. 한국의 근세역사는 유학생들에 의해 리더십이 세워진 역사입니다. 유학생들을 복음으로 무장시켜 조국으로 돌아가게 하면 그게 조국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복음이 없이 돌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강조했던 것이 신앙과 학문의 통합입니다. 코스타 때마다 빼놓지 않은 게 복음이란 무엇인가입니다. 해마다 10~20%의 비그리스도인이 참여합니다. 그 복음 위에서 학문을 통합하고, 민족을 섬기고, 또 개인의 영성을 위해 QT 이야기를 했지요.
코스타의 중요한 변화는 20주년까지는 이들이 돌아와 조국의 리더십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 나라에서 디아스포라 한국인으로서 사는 게 하나님 나라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5년 전에 수용했습니다. 이것도 바람직한 애국의 헌신입니다. 몇 번 코스타가 발전적인 진화를 했습니다. 코스타의 ‘A’가 처음에는 ‘America’를 뜻하다 나중엔 ‘Abroad’, 지금은 ‘All Nations’을 뜻합니다.
“민족”의 주제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홍정길: 한국 교회가 앞으로 주도적으로 해야 할 국가적 책무는 통일입니다. 통일엔 다양하게 헌신하는 주체가 필요하고, 중재자가 필요합니다. 그것을 교회가 해야 합니다. 윤영관 교수 등이 남북나눔운동 연구위원이었는데 통일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모금하여 독일, 베트남, 예멘, 마카오에 가서 통일 문제를 연구했습니다. 이 모든 일을 교회가 해오고 있습니다. 민간단체 싱크탱크로 한반도평화연구원 같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성장을 하다보니 운동성이 줄고, 조직화되면서 운동성이 줄 수도 있을텐데요.
이동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있어야 할 사람들은 모두 다 자원 봉사자입니다. 당분간은 조직으로 존속하기보다는 무브먼트로 존속할 것입니다. 몇 년 후에 코스타가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하나님의 때에 계속 쓰실 거라 고 생각합니다. 
홍정길: 최초의 10년에는 이사장도 없었습니다. 의논을 위해서 하다 보니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젊은 세대가 맡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사분들도 학생들과 끊임없이 활동을 함께하는데, 예전의 학생들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홍정길: 예전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관심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인간관계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동원: 지금 젊은이들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똑똑합니다. 헌신이 부족하고, 고민을 직면하는 강인함, 야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쉽게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목회자, 선교사로의 치열한 헌신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의 이해타산이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청년의 매력은 야성인데요.
해외 곳곳에 강의를 많이 다니시는데 코스타의 젊은이와 국내 젊은이를 보고 어떤 차이를 느끼시나요?
이동원: 해외에 있기에 마음이 가난하고, 진지합니다. 한국에서는 너무 바쁘고, 일상적인 면에서 종교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습니다. 해외에 있는 젊은이에겐 구도적 자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코스타에 한국의 학생 운동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선교의 터전이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이 기회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코스타를 섬겨주지 않으면 코스타가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복음, 민족, 땅끝 중 아무래도 젊은 세대에게 “민족”이 낯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면, 다른 측면으로는, “땅끝”으로 나아가는데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동원: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것,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입니다. 국수주의가 아닌, 우리에게 강한 정체성을 주는 ‘민족’을 바탕으로 세계선교를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는 같이 가야 합니다. 코스타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갔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으면서 과거에 섬김을 받아왔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초기 코스탄에게 ‘조국’이라는 개념은 강렬했는데 지금은 희미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코스탄들은 영어세대인데도 참석하였습니다. 한국말 설교를 잘 이해 못 하지만 코스타에 와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코스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홍정길: 미국에는 이런 열정이 없습니다. 과거에 선교에 참여했던 국가들은 식민지 정책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린 약소민족이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전 선교국가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비참할 정도로 가난해 본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경험은 어떤 경험보다 훨씬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선교 현장에서 불가능한 것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우리 민족에게 주신 장점입니다. 코스타를 통해 양질의 선교사들이 많이 헌신하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08 KOSTA/USA 참석자 좌담회 – 서정석, 서혜진, 최자영, 한동호

이코스타 2008년 8월호

eKOSTA: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서혜진: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남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번 코스타에서는 기혼조 조장으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코디로 섬겼고, 조장은 이번이 번째였습니다.

한동호: 네브래스카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에 있고, 미국에 지는 3, 그리고  코스타에 참가했습니다. 조장 참가했고 이번에는 조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최자영: 시애틀에 살고 있고, 코스타 참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원이었구요.

서정석: 뉴욕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이번이 처음 참석입니다. 기혼자 신학생 그룹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 전체를 평가해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주시고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 건설적인 비판을 해보겠습니다.

KOSTA/USA 2008 주제가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이었습니다. 주제가 시대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청년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라면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동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이 들었고, 코스타 참석하면서 아주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맘에 들었습니다.

eKOSTA:작년 코스타의 주제와 연결이 되었습니까?

한동호: 작년에는 주제가 시대를 본받지 말고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차별화된 삶이었는데 올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란 느낌입니다. 비슷한 주제가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최자영: 한인 청년 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고, 시대에 적절하며, universal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석: 보통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얘기하면 추상적이라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것 같은데 이번에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있었습니다. 청년 학생들로서, 다른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중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혜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굉장히 관심이 많은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주제 때문에 가기로 하신 분들도 있었고, 작년 주제와도 아주 연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주제 찬양도 계속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면 주제에 대한 열망이나 관심과 비교하면 주제가 아주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코스탄들 마다 주제를 묵상하고 이해한 정도가 다른 같았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주제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나라의 이중 구조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한 코스탄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설명이 되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니 좀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말씀과 세미나도 주제가 들어맞았지만, 강사님들께서모두들 그런 기초가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들어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김도현 교수님의 특강이 주제를 잡아 주었던 것처럼 많은 코스탄들이 맥을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주제 세미나가이재천 목사님의그런 역할을 하긴 했는데 보다 많은 코스탄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주제를 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주제 세미나가 주제 세미나인지 몰랐던 사람들도 많았고, 그것을 통해서 제공된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제 자체는 아주 적절하고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적인 바탕뿐만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 하나님 나라까지도 다뤄져서 좋았습니다.

eKOSTA: 그러면 개별 프로그램을 평가해보겠습니다. 전체 집회에서 설교하거나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전달되었습니까?

최자영: 저도 서혜진 자매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정말 중요하고 살아야 주제를 갖고 나왔는데, 그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eKOSTA: 코스타에서 주제의 역활이 아주 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자영: ‘주제’라는 자체가 모든 것을 꿰뚫어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든지 계속해서 생각해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기 위해 기도가운데 그런 주제를 들고 나오신 아닙니까?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서, 주제를 놓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주제를 전달하려면 어떤 부분들이 필요할까요?

최자영: 개인적으로 코스타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충분히 답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제의 전달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코스타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방법상의 문제인지, 코스타의 정체성 문제인지, 어쩌면 일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메시지 전달에 앞서서 코스타 운동의 정체성이 확실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이 새로운 phase 로의 발돋움 하기 위한 과도기 수도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메시지를 전달 받고 싶었던 사람으로 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를 위주로 참자가 운영체계가 편의상 유용하긴 하지만 조장들에게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낼 있도록 주어진 자원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조장들조차 코스타의 핵심 가치에 대해 온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장도, 조원도 힘든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스타의 기본 주제와 사이가 너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아닌지 합니다. 그러므로 조장의 인도로 코스타의 핵심정신이나 이번 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 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일도 있어 사실, 수련회 기간에 코스타가 이야기 하려는 주제에 거의 접근이 힘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빡빡한 일정 가운데 강의를 소화하거나 주제에 대해 생각해 시간은 모두 조와 함께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조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 서로 알아가면서 함께 나누게 은혜와 기쁨 또한 컸습니다. 하지만, 코스타가 정말로 부르짖고자 하는 메시지가 우선순위를 가져야 하는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자꾸 빠진다면 여느 청년 수련회와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조금 강하게 말씀드린다면, 조를 없애던지, 아니면 조장 훈련을 강화하고, 자원을 제공해서, 코스타의 주제를 이해할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문제를 파격적으로 개혁하든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정석: 어떤 집회의 영향이 개인의 삶에 영원히 남을 수는 없을 같습니다. 항상 집회가 가져다준 영향을 되짚어보고 새기는 것이 각자의 과제입니다. 이번 주제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있어서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소그룹에서도 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있는 곳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학적인 얘기를 이끌어 가면서 이해를 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좋았습니다. 내년 코스타의 주제와도 연결이 거라 생각합니다. 비판을 하자면 있지만, 주제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동호:   전체집회에서 전달할 있는 부분과, 소그룹에서 대화하면서 받는 메시지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집회에서는 주제를 선포하면서 메세지를 전달한다면 조에서는 주제를 나와 연결하도록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가 조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장의 역량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조장의 관심사가 이성교제라면 많은 부분에서 이성 교제로 가는 것을 봅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최자영 자매님 말씀대로 전체적인 주제가 선포되는 가운데 주제에 대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구체적인 대화가 없었던 같습니다. 결국은 나의 문제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eKOSTA: 오후에는 주로 세미나로 채워졌는데요, 세미나 운영이나 내용에 대해서 평가해주십시오.

서혜진: 제가 택한 세미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고 알차고 도전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지 아쉬운 점은 올해는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있었던 세미나가 없어진 것도 보았고, 한정된 인원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좁았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TM 세션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TM 참석을 못했지만, 올해는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 연구에 관한 TM 세션에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고 이런 것이 TM 정신에 맞는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참가자 수가 , 정도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분은 쉽게 해결할 있는, 활성화 시킬 방법이 있는 같습니다. TM 내용이 홍보되었으면 쉽게 많이 왔을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분들이 오시고 유익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사전에 TM 선택하신 분들과  코디, 그리고 강사들이 서로 먼저 연락을 있어서 토론의 이슈도 먼저 모으면 좋을 같고,  세미나 TM 경우에는 내용이 먼저 알려졌으면 좋았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한동호: 번째 참석했는데 동안은 이성교제와 같이 사람들이 추천하는 세미나를 많이 들었었는데, 올해는 선교라는 주제를 나름대로 정하고 선교에 대한 세미나를 들어봤습니다. 대부분은 세미나 강사로 오신 선교사님들의 경험과 가져 오신 주제에 따라 세미나의 성격이 많이 다른 같습니다. 굳이 코스타 세미나라고 하지 않아도 정도로 개성들이 강했습니다. 세미나에서 이론적인 내용보다도 실제적인 내용을 전달할 도움이 되었습니다. TM 세미나는 정치학 세미나에 들어갔는데, 강사님이 놀랄 정도로 많은 참석자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오셨는데, 이유가 정치학 세미나 제목에 ‘세계화’라는 시사적인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토론이라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의견들을 한두 마디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서정석: 세미나가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생각을 해봤습니다. 주제와의 연결이 우선순위인지 아니면 다른 면으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세미나가 주제와는 거리가 있었던 같습니다. 세미나를 인터넷으로 사전 등록을 했지만, 의미가 없었습니다. 특히 특정 세미나에는 인원이 너무 많았고, 시리즈 강의에 대한 혼동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전체 시리즈를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시리즈인 것을 나중에 알고 신청하지 않은 세션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님들과의 소통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강의 선택했을 받았던 쿠폰이 거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 그룹을 담당하다 보니 저녁 11시에 유명 목사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모임이 급조된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주제가 없었고, 인도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방향 없이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먼저 주던지, 아니면 참석 가능자에게 미리 의견을 들어봐서 어떤 부분에서 듣고 싶은지, 주제나 방향을 정했으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있었을 같습니다.

최자영: 세미나는 전체 주제 아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지를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주제로 하나로 묶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많은 참가자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결혼 문제에 그런 주제를 하나님의 나라로 풀이하기보다는 굉장히 방법적인 면으로 치우쳐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그런 것을 바라고 오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다급한 필요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보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는가입니다. 또한 미혼이고 결혼이라는 것이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실제로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코스타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삶이 무엇이고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가 얘기하는 가운데 이런 결혼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아쉽습니다.  참가자들의 필요와 원함에 따라 여러 가지 토픽을 두루두루 갖추며 제공하기보다는, 무슨 토픽이든 하나님의 나라로 또는 그해의 주제로 연결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TM 아주 좋은 시도인 같았습니다. 저도 정치학 세미나에 들어갔었는데, 많은 인원이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려니까 시간적, 현실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토론 주제를 좁게 잡아서 이야기하면 결국 주제로 연결되고 원래 의도였던 토론도 이루어 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KOSTA: 일주일 내내 조원들과 함께 보내셨는데, 조활동이 이루어졌나요? 어떤 점이 좋으셨고 어떤 점이 아쉬우셨는지요?

서혜진: 제가 기혼 조장으로 섬기는 동안, 사람을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되었던 가장 좋았던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같은 길을 가는 자체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혼 조가 염려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사역의 대상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기혼 조의 비율이 앞으로도 점점 높아질 같은데, 이제는 기혼 조를 전체적인 운영에서 특수한 그룹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체로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혼 조와 강사들의 만남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희는 장평훈, 이민자 선생님께서 하시는 Q&A 들어갔는데, 굉장히 좋았습니다. 부부가 함께할 있는 세미나가 많이 개발될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함께하기 때문에 더욱 시너지를 있는데, 그것을 살리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스타가 부분을 앞으로도 개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동호: 저는 미혼 조에 3 참석했고 앞의 2년간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이번에는 조원으로 참석하면서, 조원으로 많이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선 운영에서 조장의 역량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JJ에서 해의 주제와 코스타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침 큐티 시간이 조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조장들에게 큐티 본문에 대한 훈련뿐만 아니라 소그룹 인도에 관한 훈련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코스타의 활동이 의미와 적실성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최자영:  조장으로 섬기시는 분의 헌신된 마음을 생각할 조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섬김을 위해 조장에게 제공되는 자원이 부족할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장 훈련이 어떠한지 들어보면, 같아도 마음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정도로의 훈련으로는 시행착오가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장들이 미리미리, 또는 내내 교육이 되고 훈련 받으면 조장에게도 유익이 있고, 그들이 코스타에 밀착되어 운동할 있게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조원들에게 유익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구요.  조장들 훈련이 단기간, 훈련과 섬김의 일회성에서 벗어나서 정말 삶의 현장에서 코스타수련회까지 이어지도록, 코스타 운동의 일원이 되도록 훈련받을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서정석: 우선 조장들이 미리 큐티를 준비하는데, 문제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큐티 본문에 대한 의도를 얘기해주는 메시지가 있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무언가 억지로 맞추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얘기들도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조는 큐티 나눔에서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같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나눔 이전에 큐티 질문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코스타가 생각하는 주제가 조장에게 주어지고 조장이 큐티를 만들어 가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가지는, 기혼자 그룹은 활동이 많이 제한되어 있어서 가족이 같이 모이는 시간이나 배우자들과 모이는 시간을 확실히 프로그램화해서 각각에서 모두 유익을 얻을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eKOSTA: 찬양이나 금식 기도회, 엑스포, 그리고 상담 등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외에 운영에 관해서 코스탄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한동호: 금식 기도회 끝나고 조금 기도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코스타에 참석자의 70%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인데, 그들에게코스타란 무엇인가하는 점을 집회 처음 부분에 소개해 준다면, 참석자들이 빨리 적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KOSTA: . 전체에게 짧게나마 코스타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주제에 대해 안내할 있다면 처음 참석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겠네요.

 한동호: 해가 지나가면서 코스타의 분위기도 다소 달라지는 같습니다. 예전에는 민족을 비롯한 공동체를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해지는 같습니다. 제가 아는 코스타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모임이거든요. 예를 들어, 작년은 정진호 교수님의 세미나와 같이 조국과 민족을 생각할 기회들이 있었는데 비하여 올해는 특히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점들이 다소 약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일 코스타에서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강조가 약해진다면, 개인의 만족만을 생각하는 소비자 기독교적 행태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정석: 엑스포를 홍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경우 자리를 지키시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뉴욕에서는 선교단체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엑스포에 가서도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코스탄들이 엑스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코스탄들에게 엑스포가 무엇인지, 어떤 단체가 참석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같습니다.

 eKOSTA: 엑스포에 관한 정보가 교재에 실리기는 하는데,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할 같네요.

 서혜진: 저는 이번 코스타에서 찬양이 좋았습니다. 이번 찬양시간이 말씀과 예배에 들어가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던 같습니다. 상담은 저는 받지 못했지만, 조원들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어보면, 상담이 도움이 되었던 같습니다. 운영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있다가 보니, 저녁 집회를 2층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같은 경우 이번이 코스타 번째 참석임에도, 언제 다시 1층으로 내려갈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일터의 현장 마치고 내려갔던 같아, 내려가 보면, 어느 날은 통제되고 있었고, 안내하시는 분들도 곤혹스러워 하셨고요. 차라리, 간사님 분이 2층에 계시면서  언제 내려오실 있다고 정확하게 안내를 해주시면 좋을 같습니다.

 최자영: 저도 찬양 시간은 매우 좋았습니다.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기도회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다는 점이었습니다. 2/3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조모임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들이 미리 나가셔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조원들을 기다리며 잠깐 기도회의 처음을 있었는데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준비하고 기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가기가 아쉬웠습니다. 

eKOSTA: KOSTA 감격을 안고 열방으로 흩어진 코스탄들이 각지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특히 gpKOSTA, ekOSTA, jjKOSTA같은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기대하신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자영: 지역에서의 성경공부를 통해 지속적인 말씀 묵상과 공부로 제자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현재 가장 필요가 크고, 핵심적이며, 활성화되어야 코스타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반복된다고 해도 코스타의 일회성적인 면이 부정될 없을 같습니다. 그런 한계는지역 성경공부 운동 gpKOSTA 통해 충분히 극복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련회를 시작/마무리로 해서 일년내내 지역에서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코스탄들이 계속 복음화되고 그것이 지역공동체로 연결될 비로소 코스타의 열매가 맺힌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코스타의 이름으로가 아니어도, 지역에서 적게는 두셋이 모여 성경공부를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자원을 제공하여 지역교회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누구나 참가할 있는 자율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성경공부 모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조장 , 코스타를 섬기려 하는 분들이 훈련을 받는다면, 앞에 이야기했던 조운영체계의 문제점이 많이 보완되는 것은 물론 굳이 수련회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일년내내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는 삶을 사는 훈련으로서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공부를 해가면서 변해가는 가운데 지역교회를 섬기는 코스탄들이 교회와 동역 하면서 끼치게 선한 영향력은 어떻겠습니까? 말씀으로 변화된 삶들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능력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나님의 딸과 아들들이 일어나 신음하는 세상으로 향할 것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벅찹니다.

한동호: 일상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코스탄들의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의 과정에서 성공의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의 경험도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gpKOSTA, eKOSTA, jjKOSTA 모든 프로그램들이 크리스천으로서 함께 나가는 좋은 동역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만 고민하기보다는 주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혜진: 코스타에서 부어주신 은혜가 온전히 삶으로 살아지려면, 하나님 앞에서 매일 매일 진실하게 겸손하게 있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같고, 같은 길을 가는 지체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주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제가 있는 지역 (San Francisco/Bay area) 이번 코스타 전에 gpKOSTA 열려서 같은 지역에 몸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발견하고 힘을 얻는 귀한 기회가 되었을 아니라  jjKOSTA 그리고 코스타까지 이어지는 선한 기운/동력의 출발점이 같아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gpKOSTA 내용도 지역 리더들에게 필요한 알찬 훈련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gpKOSTA 사역이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jjKOSTA 해가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코스타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중의 하나가 jjKOSTA 였습니다. 강사님의 말씀이 서로 상호보완되면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아니라 코스타 말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조장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조장님들이 말씀으로 먼저 orient 되고 은혜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운영 tip 다른 부분은 온라인 여러 다른 방법으로도 훈련되니까요.)

eKOSTA: 내년 코스타의 주제가 ‘Shalom in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발표되었는데요, 내년 주제를 보시면서 떠오르시는 것들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그냥 이미지도 좋고, 신학주제도 좋습니다.

한동호: 내년 주제를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세상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맞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코스타에 참석하는 이유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들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내년에도 그런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서혜진: 내년 코스타의 주제는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번 코스타의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이중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phrase 표현하면 내년 코스타 주제가 되는 같습니다. 갈등과 고통이 있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이 흔들 없는 평안을 가진 . 그러나 세상을 향해서는 세상을 거스르는 참된 용기를 가진 . 모습이 연결될 밖에 없는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eKOSTA: 개인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 코스타에 참석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오시려는지, 혹시 아니라면 꺼려지시는지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정석: 저는 주제 때문에 다음에도 가고 싶습니다. 다음 주제가 이번 주제를 구체화 면이 있는 같습니다.

최자영: 코스타 참석 전에도 코스타를 귀하게 여긴 사람으로서 코스타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코스타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에 집중하고 겉도는 느낌을 없앤다면 더할 나위 없을 같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지지하겠습니다.

한동호: 코스타가 저를 항상 긴장하게 하고 년에 번씩 코스타에 가면 항상 많은 도전을 받기 때문에 내년에도 가고 싶습니다.

서혜진: 저도 개인적인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에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코스타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돕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코스타 참석 때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계신 분들 보는 도움이 되고, 그게 코스타에서 받는 은혜의 많은 부분인 같습니다. 도전이 많이 되기 때문에, 여건만 된다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좌담회 –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적용” – 김동록, 윤여재, 최인석

eKOSTA: 이렇게 좌담회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히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저는 김동록입니다. 코스타와 관계를 맺게 된 지는 약 6년째인데 코스타에서 서북미지역 멘토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씨애틀 근교에 살면서 조그만한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윤여재: 안녕하세요. 저는 윤여재라고 합니다. 코스타는 2003년에서부터 참석하고 있습니다. 현재 데이튼, 오하이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인석: 안녕하세요, 저는 최인석 입니다. 코스타는 2006년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동부 DC부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반갑습니다.


eKOSTA: 일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본인이나 혹은 함께 교제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보통 어떤 모습으로 연결하시나요?


윤여재: 지난 성경공부의 도입부분에서 세가지 하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첫째 하늘은 우리가 땅의 딛고 있는 이 세상이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야기하면서 마치 첫째 하늘과 셋째 하늘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곳처럼 묘사하면서, 물론 교재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물리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마치 먼 하늘나라 저 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것 같고, 저 또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기 보다는 눈과 귀로 쉽게 접하게 되는 세상의 삶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땅이 아니라 통치권이라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의 현장에 함께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통치권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이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적인 영역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내 하루 생활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QT), 기도, 또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내가  결정해야할 것들 등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는 것들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실때, 이런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나라”라는 말 자체가 집단이라는 성격이 들어가 있는 단어이니까요. 어떻게 보자면 통치권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보다는 “통치하시는 집단적 영역”이라는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을때 같은 그룹에서 당황해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아기자기한 기도는 드리지 말아야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있었구요.


최인석: 저는 요즘에 마태복음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에 초점을 맞추는 세미나가 여러번 있어서 대부분 현재적 의미의 천국도 많이 고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제가 변화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에서의 충만함, 그리고 왠지모를 자유감 등이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천국의 속성 혹은 맛이라면, 그러한 경험을 통해 천국에 대한 모습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되고 또 그것을 사모하게 된다고 자주 나눕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면, 확장되어 나갈 천국에 대한 모습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eKOSTA: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는 숨겨져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즉 하나님 나라의 은닉성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데요, 생각나시는 비유라든지, 혹은 성경 내용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더 와 닿았던 내용이 있으신가요?


윤여재: 오늘 아침 저의 큐티 본문이 요한복음 18장 후반부분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빌라도의 관정까지 끌여오게 되고,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저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의 한 면을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즉 하나님의 뜻, 계획하심 아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내가 왕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 말씀에서 저는 다시 한번 내가 섬기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김동록: 비유는 아니지만, 최근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왜 광야에서 사단이 돌더러 떡이 되게하라고 유혹한 그 기적을 예수님이 행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보니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인해 기대되는 정치적 인기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드시더군요. 이로 인해 오히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 버렸다고 나오고요. 또 이 일 이후로 단호하게 십자가의 길로 향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가 사회경제적 정치적 성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이시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인생의 방향성이 다시한번 크게 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실패한 듯 보이는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중심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심으로 인해 그분이 그렇게 원하고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또 하나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만드신 제자공동체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임이었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실 씨를 뿌리신 것입니다.


최인석: 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보물이 숨겨진 밭에 대한 비유가 와 닿았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귀함을 알 수 없기에,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eKOSTA: 하나님 나라가 부분적으로 이미 드러나 있지만, 또한 숨겨져 있다는 이러한 속성이 본인의 삶의 방식이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시나요? 예가 있으시면 함께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성경에서는 권속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도전을 감당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가 저와 제 주위에 있고 임하였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격려를 주고받으며, 함께 영원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공동체가 중요한 것 같고 교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공동체와 교회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때론 상처를 받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현재적 삶 속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저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김동록: 제가 언급한 현재적 소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강의를 하고 나서도 너무 현재적인 면만 강조를 했나 싶은 의아심과 함께 신앙의 열린 미래성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 하는 궁금증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히브리서를 공부하다가 우리가 안식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더군요.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고, 또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관점은 저 자신의 궁금점을 많이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삶이라는 의미도 깨닫고 나니 더욱 심각해지더군요. 제자들의 공동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미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최인석: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때문에 전도를 할 때에 천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때론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곤 해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eKOSTA: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 나라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시고 비밀스럽게, 다른 표현으로는 신비롭게 (mysteriously)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그 의도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여재: 원죄 이후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 예수 이전에는 아주 제한되었고, 예수님이 오심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고 임하고 있으며 오실 하나님 나라의 연속성을 나타내지만, 그 경험하지 못하였던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겨자씨 비유가 그렇고 밭에 숨겨진 보물이 그러한 예인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어느 한 두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 하나님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실 경우 오히려 명문화된 하나님 나라의 설명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기보다는 제한해 버리고, 또한 사람들이 율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최인석: 김동록 멘토님과 윤여재 형제님께서 잘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인식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도 이유가 될 것 같구요. 또한 비유를 통해서 오히려 그 속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청중에게 익숙한 삶의 특정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직관력과 연결시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고수의 방법 아닌가 합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이미 임하였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조금 옮겨가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말씀, 특히 산상수훈과 같은 가르침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윤리가 발견되는데요. 그런 가르침 실제 삶에 적용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또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요?


윤여재: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하나 하나 따라가기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것에 따라 가려고 하면 때론 억울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즉, 내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속옷까지 주라, 십리까지 가라, 육체가 죄를 지으면 그것을 절단해 버리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말씀이 절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이 진리임을 알고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심령이 가난하게 될 것이고 박해를 받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이 복있다고 말씀하시며 천국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청량제와 같이 제 마음을 확 씻겨 내립니다.


김동록: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라서 (왼뺨까지 내어준다든지, 겉옷까지 준다든지, 원수를 용서한다든지) 실천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기 보다는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은 혼자서 하기는 힘이 드는데, 같이하면 좀 나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철저한 이해와 믿음이 있을때 적용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공동체에서 같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면 성령님께서 아주 큰 능력으로 그 공동체에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인석: 이런 어려움이 있는 데에는 지금 죄가 들어오고 왜곡된 상황에서 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국에서의 모습이 목표라고 한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변화를 받아서 회복되어져 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천국의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천국에 대한 경험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쳐서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 또 그와 함께 내 의가 높아지고 자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체화해나가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등을 통해서 또한 더 많이 변화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강조되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다’ 혹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라는 표현을 주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이 표현을 사용하실 때 혹은 들으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떠올리시나요?


최인석: 복음이 더 많이 전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한 천국을 알게 되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들이 이 지상에서도 부분이나마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확장이 아닐까요?


윤여재: 저는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부분과 사도행전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저희들에게 명령하신 것이지요. “가라”, “이르러”, ‘제자를 삼고 증인이 되라’하신 말씀에 힘입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눌리고 억눌린 자의 고난에 함께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구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성령 안에서 온전하게 거듭남이 있어야 겠지요.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중생함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니깐요.


김동록: 질적 양적 팽창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질적인 변화를 통해 양적인 확장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 개인의 이해가 깊어지고 삶이 깊어질 때, 즉 우리가 변화될 때, 우리 주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누룩의 비유가 그렇다고 할까요. 질적 변화가 있을 때 전염성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의 관계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현재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일텐데요. 지난해 주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와 연결시켜볼 때에, 이러한 모습은 세상의 삶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최인석: 저는 공부하는 학생이다 보니, 다른 문화와 믿음 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래 학생들과 그 동기에서 다른 부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성공과 다시 말해 부와 명예를 위해서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치닫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저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도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생각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갈수록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해야 하고, 이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여재: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기독인과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비기독인의 삶의 차이는 비기독인이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야한다고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깐요. 세상이 나를 기이히 여기지 않고 잘 섞여 살아간다면 그것을 이상히 여기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의 삶이 세상과 아무런 마찰없이 잘 지낼 때에 더욱 두렵습니다.


김동록: 우리가 전공이나 직장을 정할때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순수한 학문적인 또는 인문적인 관심만으로 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위대한 학자”, 성실하고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기를 꿈꾸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궁극적인 뜻이었다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꿈꿀때 생각하는 내용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허용해 주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마음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려는 태도라면 성공적인 사회인을 목표로 하지는 않겠지요. 또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는분들도 많은데 설사 실패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믿고 나갈 소망 안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소위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낮은 자리로 가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닮아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eKOSTA: 현재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의 균형이 깨어질 때에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나요? 혹시 생각나시는 예가 있으시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미래적으로 극단인 예인 것 같은데, 밀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다들 느끼셨겠지만, 교인들이 너무 착실하다는 것입니다. 착실하다 못해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또는 전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섬뜩한 것은 교인들과 제 모습에서 별 차이를 못느끼고 답답해 하던 저의 모습입니다.


또 현재적으로의 극단이라면 마치 고지론이라고 알려져 왔던 그런 신앙의 태도가 생각이 나는군요.


윤여재: 하나님 나라는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예수님도 처음에 말씀하실 때, 천국이 가까와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꼭 미래에 올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한 긴장감은 좋은, 유익한 긴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깨어질 때는 좀 극단적인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예를 드러,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게 되면 예수님 시대의 열심당원들과 초기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는 봐와 같이 이 땅에서 물리적인 무엇을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구요. 지금 우리에게도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안에 기복적인 성향을 강화시키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여 그쪽으로 치달으면 우리가 많은 들어 왔던 극단적인 이단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 가 싶습니다. 즉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벗어나기 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 둘의 긴장이 중요하지 않는 가 생각합니다.


최인석: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묘사나 속성에 대한 설명 혹은 상상등이 치우쳤다고 발전시키신 형제님들의 말씀에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처음 입교식을 할 때였습니다. 전도사님께 솔직히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전도사님께서는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천국은 너~~~무 좋은 곳이예요”라는 말씀만 반복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의미로서의 천국보다 다가올 천국에 대한 것만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이렇게 공감하기 힘든 천국의 이미지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KOSTA: 2008년 코스타의 주제가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를 통해 기대하시는 바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의 코스타 주제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이 시대, 이 세대의 가치관을 휘어잡고 있는 물질주의적, 자기 중심적, 이기적 세계관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화평의 세계관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푯대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소원하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예수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코스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이, 사도바울이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김동록: 2007년도 주제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였었는데, 어느정도 부정에 의한 진리찾기라면, 올해는 더 발전해서, 이 시대에 가야할 진리의 길이 저희들에게 보여지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주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서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핵심개념이 참석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서 좋은 신앙갖기를 넘어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인석: 저도 개인적으로 이번 코스타의 주제문구가 참 마음에 듭니다. 작년에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라는 주제로 이 세대의 가치과 세계관 등과 성경적인 가치와 세계관에 대한 구분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과 생각등을 남겼다면, 올해는 그렇다면 “바른 길”은 무엇인지 조금더 나아간 적용을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08년 코스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eKOSTA: 오랜 시간 좌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7 KOSTA/USA 참석자 좌담회 – 문태균, 백정진, 안태상

이코스타 2007년 8월호

1.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문태균: 안녕하세요, 저는 문태균이고 지금 앤아버 미시간에 있습니다. 박사 과정 학생이고 코스타는 이번 코스타가 네번째였고 조장으로 참석한 것은 세번째입니다. 반갑습니다.
백정진: 안녕하세요, 저는 오하이오 신시내티에 있고 코스타는 첫번째 참석이었고 이번에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안태상: 저는 안태상이라고 하고 조원으로 참석했고 두번째 참석이었습니다.


2. 이번 코스타 전체를 평가해보죠. 전체적으로 평가해주시고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태상: 은혜 많이 받았고 가장 좋았던 점은 역시 오전에 있었던 주제 강의 말씀이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조별 모임이 좀더 Formal한 형태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문태균: 손희영 목사님 말씀이 굉장히 좋았구요, 조별 모임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번에 조별 모임이 쉽지 않았습니다.
백정진: 저도 주제강의 너무 좋았고, 아침에 코스탄들의 간증 시간도 짧았지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보통 간증에 거부감이 생기기도 쉬운데, 짧은 시간에 간결하게 잘 해주셔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3. 그러면 개별 프로그램을 평가해볼까요. 전체 집회에서 설교하거나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지요.


안태상: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하나님 말씀을 리마이드 해 주고 이런 것들에서 많은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문태균: 손희영 목사님께서 개인의 경험과 연결시켜주셔서 말씀해주셔서 좋았고 개인적으로 충분히 묵상하신 말씀을 잘 전달해주셔서 감사했고, 주제와도 정확히 부합했던 것 같고요. 약간 아쉬웠던 점은 올해는 시작하는 시간은 약간 느슨했고 끝내는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끝맺음할 때 갑작스럽게 해야 해서 약간 무리가 있지 않았다 합니다.
백정진: 유학생들이 삶에서 매우 조급하게 사는 경우가 많은데 손희영 목사님께서 그런 문제에 대해서 잘 말씀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저녁집회에서 마지막에 약간 시간에 쫓긴 것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4. 오후에는 주로 세미나로 채워졌는데요, 세미나 운영이나 내용에 대해서 평가해주세요.


안태상: 세미나도 운영 면에서는 아주 좋았습니다. 강의실까지 안내해주시고. 내용도 참 좋았습니다. 노숙자 사역하시는 이야기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미나는 내용이 약간 업데이트되어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에서는 예전에는 많이 도움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요즘은 인터넷 같은 데서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정보전달은 좀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태균: 세미나는 약간 기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어본 느낌에서 강의가 강사님의 삶 속에 완전히 내재되지 못한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 내용을 전체를 통제하시긴 힘드시겠지만 약간 노력해주시면 감사 하겠고요, 세미나 CD을 가지고 가서 계속해서 듣는 것이 좋다고 조원들과 나누었습니다.
백정진: 티엠의 경우 조원이 들으셨는데, 토론이 시간이 부족해서 정리가 안 된 것이 아쉬웠고, 세미나의 경우 너무 광대한 내용을 다루면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았고요. 세미나 취소된 것이 좀 아쉬웠고요. 세미나 소개와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었는데 좀더 자세한 소개가 필요한 것같고요.


5. 일주일 내내 조원들과 함께 보내셨는데, 조활동이 잘 이루어졌나요? 어떤 점이 좋으셨고 어떤 점이 아쉬우셨는지요?


안태상: 조활동을 통해서 본인이 고민했던 것들 나누고 성경에 대해서 토의하고 이런 시간들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아쉬운 점은 아까 말씀 드린대로 얘기를 하다 보면 다른 주제로 빠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좀더 형식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장님들이 조모임을 좀더 이끌어가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문태균: 조장입장에서 조장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작년에 비해 올해 준비를 못해서 어렵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침 시간에 조장 모임이 많이 있었는데 조별 모임에 약간 방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요, 조장 모임을 다른 시간에 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백정진: 기혼부부들, 처음 참석하신 분들이었는데, 감사하게 잘 따라주셨습니다. 큰 문제는 없었는데요. 조별 모임 장소를 싸인 업을 했었는데, 그게 조금 안내가 안 되어서 싸인 업 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경우가 있었는데, 제이제이 코스타 때 안내를 더 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멘토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장들이 멘토님들을 초청 해야 하는데 처음 참석하다 보니까 잘 몰라서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6. 찬양이나 금식 기도회, 엑스포, 그리고 상담 등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태상: 개인상담을 하지 않았는데 저희 조에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해주셨는데 참 좋았던 것같애요. 질문도 하고 대화도 하고 참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찬양도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따라 부르기 어려웠던 것도 전혀 없었고요.
문태균: 찬양이 참 좋았습니다. 너무 길거나 짧지 않고 예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적당했고, 금식 기도회도 좋았습니다.
백정진: 찬양이 참 좋았고요. 평양 과기대에 대한 정보를 갖고 같이 기도했던 것도 좋았고. 조원 중에 상담하신 분 중에 다른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7. 이외에 운영에 관해서 코스탄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안태상: 세미나의 경우 매년 같은 내용으로 하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시겠지만 제목이라든지 내용을 확실하게 소개해서 동일한 것을 또 듣지 않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영 중에 가장 힘든 점이 식사 통제하는 것일텐데 올해 더 복잡한 것 같았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고민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좀더 많은 정보가 올라왔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휘튼 칼리지 지도라든지 디렉션이라든지 코스타 내용에 대해서 좀더 자세한 내용들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태균: 식당에 인원을 더 배치해서 줄을 잘 설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식사 시간이 모자라진 않았지만 상당히 빡빡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좀더 신경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정진: 저의 조는 공대생들이 많았는데 그런 분들은 미디어에서 파워포인트라든지 이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시더라구요. 실수가 좀 많지 않았나 하고요. 그리고 코스타 보이스가 많이 도움이 되었고요. 처음으로 조장을 하는데 정보를 제공해주니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미나가 어떤 강사님의 경우 너무 많은 내용을 한번에 하려고 하니까 무리가 있는 경우가 있었고요. 그런데 어떤 세미나 강사님들은 이메일을 제출하도록 해서 계속 연락을 취하도록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웃음)


오랜 시간 말씀해주셔서 감사 드리고, 코스타 사역에 계속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복음에의 도전(1) – 개인주의: 좌담회

이코스타 2007년 2월호


1.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정희: 현재 Washington DC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에 있습니다. 지역교회와 KBS라는 성경공부를 섬기고 있고요.
정대석: 미시간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콜로다도에서 포스트닥 과정에 있습니다. 지역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고요.
장선희: 얼마 전에 컨사스에서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저도 지역교회를 섬기고 있고요.
김진태: 저는 김진태라고 합니다. 미국에 온지는 4년 되었구요. 일리노이주에서 3년 남짓한 유학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시애틀 근교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 최근 한국과 미국의 교회를 보면, 복음 자체가 ‘자아’가 중심이 된 채로 왜곡되어 있는 듯 합니다. ‘자아 중심의 왜곡된 복음’을 어떻게 규명하시고 계신지, 그리고 그에 따른 실례가 있으면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정희: 근래의 교계의 큰 뉴스거리 중 하나가 한국에서의 개신교인의 숫자가 줄어든 데 비해서 카톨릭 신자는 거의 많게는 두 배 정도까지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개인의 구원보다 더 강조되는 카톨릭의 공동체성이 현대인들에게 어필했다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분위기가 개인의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자아의 문제에 초점을 집중하다보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다른 속성인 공동체성, 교회의 모습 등을 통해서 함께 성장해 나가고 서로 격려하고 힘이 되는 측면이 약화되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장선희: 복음이 왜 자기중심적으로 나타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의식주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복음을 하나님의 은혜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보다는 교양이나 액세서리로서 혹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들어간다면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정대석: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복음 안에서 찾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그것이 우리를 높인다든지 우리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버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자기 중심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래서 기복주의로 많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내가 좀더 행복하고 좀더 잘되고 좀더 좋아지는 모습으로 자꾸 교회의 분위기나 경향이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음, 즉 나를 죽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내세우는 교회는 신자들이 줄어들게 되고, 그것이 아니라 복받고 형통하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는 신자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합니다. 한국이나 미국 같이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태: 자아중심주의(egoism)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자기의 유익/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가장 상위의 목적이 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중심주의에 의해서 왜곡된 복음은 개인이 불편할 만한 요소가 제거되거나 혹은 다른 것으로 대체된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는 흔히들 이야기되는 반쪽짜리 복음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타락은 강조하지 않는다든지, 죄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죄의 추악함은 강조하지 않는다든지, 십자가의 승리를 강조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은 강조하지 않는다든지, 회복과 축복을 강조하지만 변화와 순종을 강조하지 않는 등의 모습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석형제님이 언급하신 기복신앙의 흐름에 대해서 동의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세련된 기복신앙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일례로 예수를 믿음으로써 자아가 회복되고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70년대의 예수믿으면 복받는다는 다소 투박했던 기복신앙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 것 같습니다.


eKOSTA: 그러면 그런 흐름이 역사 속에서 계속 존재했나요, 아니면 20-21세기 들어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보시나요?


정대석: 교회 역사나 흐름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을 안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전혀 없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진태: 세상에서 주목받는 사상과 가르침이 교회에 흘러든 예는 역사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개인주의나 자아중심주의가 최근에 인기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현대에 교회에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다면 그 전에는 개인주의적인 현상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현대의 사조를 개인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로 규명해서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전에는 개인주의적인 모습이 덜했는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궁금하군요.


이정희: 다른 모습으로 많이 나타났지요. 예를 들어 전체주의가 만연하던 시기에는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교회보다는 편승하는 교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eKOSTA: 편승을 하게 되면 복음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나요?


이정희: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나치 정권 하에서의 고백교회라든지 본회퍼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구요. 사실 그 고백교회가 당시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았고, 나치병들을 축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속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세속권력이 교회를 지배하려고 강하게 들어왔을 때에 저항했던 교회도 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경우도 많이 있었지요. 지금과는 반대의 경향이긴 했지만.


eKOSTA: 그런 경우에는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왜곡이 가능한가요?


이정희: 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적인 예도 존재하구요.


3. 그런 ‘자아 중심의 복음’이 미치는 폐해는 얼마나 되며, 그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정희: 폐해는 원론적으로 얘기한다면 복음에서 한발짝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본연의 모습 그리고 신앙인의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장선희: 자아 중심의 복음이 들어온다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복음이 왜곡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폐해가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알게 하시려는 풍성하신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신 외의 폐해라면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폐해도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중심이니까 나랑 상관없으면 관여하지 않고, 내게 폐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어도 순종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김진태: 복음을 풍성히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폐해가 돌아온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그런 폐해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의 교리가 상대적으로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복음에서 이것만큼 개인이 불편해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번째는 개인적인 경건의 생활이 공허한 행동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말씀묵상이나 기도는 경건생활의 참 중요한 일부이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는 강조되지 않은 채 행동 자체만이 강조되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율법이나 또는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며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용서를 선포할 수 있을 때에, 그 공동체는 삶의 밑바닥까지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을 때에는 교회의 정체성이 상실된 채 피상적인 친목모임 이상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정대석: 자아 중심의 복음으로 가다보면, 예수님은 빠지게 되고 자기 편한 방식으로 복음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폐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끈끈한 모습이나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는 모습보다는 푸석푸석한 모래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KOSTA: 자아 중심의 왜곡된 복음의 특징으로는 죄성,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는 복음의 형태, 그것 때문에 나타나는 기복주의적 현상으로 현재까지 정리가 되었구요. 또한 폐해로서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언급되었는데요. 기복주의 신앙이 만연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것도 내가 너무나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반쪽 복음만을 믿을 때에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장선희: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믿는다고 노력해도, 모두 잘못 믿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복음을 100%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다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 혹은 왜곡의 가능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즉 잘못 믿는 부분이 있어도,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신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eKOSTA: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장선희: 개인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복음을 잘못 알기 때문일수 도 있을 것같아요. 교회만 다니고 복음을 잘 못알고 있는, 하나님과 관계를 제대로 잘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아서 그런것 같기때문에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세워진다면 현상해결이 될것같습니다.


이정희: 말씀에 기초를 한 신앙, 문화나 생활에서 들어온 세속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신앙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바탕으로 하는 복음이 제대로 세워지도록 해야겠습니다.


김진태: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균형있게 강조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을 동일하게 강조함으로써, 우리 각자,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모습을 성경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장선희: 현상들이 나타나는게 복음이 잘못된 건가요? 아니면 복음은 제대로 들어가는데 성령의 열매가 잘 안나타나는 간가요?


eKOSTA: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의 열매’라는 책에서 하우드 스나이더는, 프랑케, 진센도르프, 웨슬리에 의한 부흥의 특징에 대해서 썼는데요, 결국 복음이 제대로 들어갔다면 올바른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선희: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 사람들은 개인적인 행동을 할수 있지 않나요?


이정희: 웨슬리는 개인적인 성령체험이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분의 삶을 보면 공동체를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개인의 영성이 증진되는 과정속에서 공동체의 영성이 증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둘중에 하나가 떨어지면 불완전해지는 것같습니다.


eKOSTA: 복음주의에서 개인회심의 강조. 세례를 받거나 교회를 다니면 구원을 받았으리라고 전제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죄에 대한 지적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4. ‘내적 치유’가 기독교에 미친 좋은 영향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지나치다’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내적 치유’류의 ‘복음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 (특히 복음을 왜곡하게 될 위험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정희: 내적치유는 한국에서80말, 90년대초에 나와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를 제시하고 분석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해결책으로 복음의 삶, 공동체의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해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정대석: 예수님이 사역하신 것을 보면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내적뿐만아니라 외적치유의 사역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적인 문제들을 고침으로 복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복음보다는 치유에 중점을 두고 복음까지 연결되지 못하고 멈추어 버리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기복주의등과도 연결되는 것같습니다.


장선희: 사람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의 만지심을 통해 사람들의 내적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장점이지만 단점은 많은 경우 치유가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못하고 내적치유가 반복되어지는 모습만 남아있어서 개인의 복음은 치유의 부수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같습니다. 자기위안을 받는 선에서 그쳐 버리는 것 같습니다.


김진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가지고 있고 고민하고 아파하는데 예수님이 이해하고 치유해 주시는 것이 위로로 다가선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결국은 자기에만 머무르게 되며 치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치유를 받는 자신에만 집중이 되어버립니다. 초점이 하나님에게 맞춰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내적 치유가 가지는 장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입은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큰 소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교회생활을 할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점인데요. 이런 분들에게 예수님이 그 아픔을 전적으로 이해하시고 위로해주신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이 될 것입니다.


내적 치유의 단점이 있다면, 치유 자체,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에 초점이 머무를 수 있는 위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ove the giver, not the gift.’라는 말이 있는데요. 치유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초점은 회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있어야 하고, 주님 안에서 아픔이 치료되고 자아가 회복되었다면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특히 치유의 과정이 드라마틱한 경우, 여전히 초점이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머무르고 있다든지, 혹은 치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치유의 과정이나 방식을 더 의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KOSTA: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상처 그 자체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될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나의 죄성과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어쩌면 상처가 그대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 아닐찌요?


김진태: 죄라는 개념이 상처나 연약함의 개념으로 대체가 되어서 내적치유를 통한 연약함과 상처의 치유가 죄에 대한 회개에 대한 중요성을 놓쳐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5. 역사 속에 늘 있었던 문제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피로 사신 교회 공동체의 공동체성 붕괴 현상은, 현대에 들어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만일 교회 공동체가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을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한걸음은 무엇일까요?


김진태: 교회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피값을 치르고 공동체를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신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감사하며, 그것 자체가 개인과 공동체의 유일한 정체성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선희: 교회 공동체의 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몸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지체로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가 각 지체로서의 역할을 깨닫고, 그런 지체들의 충실한 역할을 다 해 나간다면, 진정한 공동체성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대석: 지난 주에 빌립보서 2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랑과 긍휼을 주셨고, 또한 한 성령으로 섬기게 해 주셨는데, 그 중에서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내면을 잘 살펴본다면, 공동체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내게 유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헌신하게 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본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죽기까지 섬길 생각을 한다면, 진정한 공동체성이 회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KOSTA: 예전에 이코스타에서 많이 이야기했던 것 중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첫째는,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 그 공동체가 없으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성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그런 공동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공동체없는 신약시대의 신앙생활은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또 하나는, 공동체가 그저 만나면 서로가 즐겁고 기쁜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아파할 수 있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죄를 고백할 수 있다면, 그 가운데서 서로를 진정으로 섬기는 낮은 자리에 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대석: 또 한가지를 생각해 본다면, 일의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에는 어떻게 하면 인원을 늘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모임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진정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그런 효율성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보면서 섬기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말 비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요.


6. 지역 교회 공동체와 코스타와 같은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인데요,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와 관련을 맺고 계신지요?


정대석: 만일 코스타를 섬기는 일이 지역교회를 섬기는 일과 충돌을 일으킨다면 갈등이 생기게 되겠지요. 특히 코스타를 어떤 형태의 지역교회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에 더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요. 사실 서로를 견제하고 갈라 가지는 갈등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희: 한국에서는 파라처치와 로컬처치의 갈등이 적잖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편적 교회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생각합니다.


정대석: 동질 문화 가운데 있는 한국 교회는 좀 더 공동체 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우리만 좋으면 된다는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다른 모습의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진태: 저는 그동안 지역교회를 넘어선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소속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갈등과 긴장을 느끼지는 못했구요. 현재는 직장 때문에 이사온지 오래 지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와 소그룹에 성실하게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8. 가정교회, 셀모임, 속회 등 소그룹 속에서 공동체성을 깊이 느끼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또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진태: 시애틀로 이사오기 전에 일리노이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공동체성을 깊이 느꼈습니다. 속해있던 소그룹이나 심지어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룸메이트와의 관계에서도 살아있고 역동적인 교제를 느낄 수 있었구요.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중보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역동적이고 강한 교회의 문화가 주님 안에서 훈련받고 동질성을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약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역동성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의 개방성을 병존하는 문제는 제게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있는 주제입니다.


장선희: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일원끼리는 진정한 한 가족같이 ‘닫혀’ 있지만,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서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